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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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소설가와의 술자리에서였다. 서로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였다. 대화꽃은 한국의 정치현실과 인권의 문제에까지 피어있었다. 술이 흥건히 취해 최고의 분위기로 달아오른 순간, 함께 한 소설가는 말했다. 미국은 인권의 나라가 아니며 오히려 인권을 심하게 침해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나는 놀랐다. 자유와 평등으로 대변되는, 무엇보다 세계 제일의 인권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합중국이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인권 침해국이라고. 이후 나는 잠시 깊은 사유에 잠겼다.

  최근 한국 경찰의 강경 시위진압으로 말들이 많다. 군화발로 시민을 밟는다던가 방패로 머리를 가격한다든가 하는 강경한 진압 장면을 미디어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본 국민들은 너무 심한 처사라며 경찰과 정부를 비난한다.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라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세계 제일의 '인권국가' 미국에 비하면 그 정도는 새발의 피라는 것을. 미국 경찰이 시민들을 어떻게 검문하고 시위대를 어떻게 진압하는지 본 적이 있는가. 유투브에 가서 동영상을 보라. 시민을 개패듯 패는 미국 경찰의 역동성을. 

  비인권국 미국의 실상은 참으로 당황스럽다. 미디어를 통해 인지되는 미국의 이미지는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거대한 긍정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완벽한 삼권분립의 정치제도, 거대한 땅덩어리와 풍부한 자원, 세계 제일의 군사력,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규모, 다양성의 힘과 관용의 에너지 등 미국을 포장하는 것들은 온갖 긍정적인 키워드들이다. 하지만 실재는 항상 보이는 것과 다른 법이다. 술자리에서 강력히 설파한 그 소설가의 주장대로 미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한참 뒤쳐진 인권 후진국이다. 미국의 조악하기만 인권 유린의 단면은 조지 부시 정권에서 그 실상을 선연히 드러낸다.

  이라크 전쟁으로 대변되는 부시 정권의 실정은 한 나라의 행정부의 정책 실패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을 치뤘다. 전쟁 초기부터 목적이 없는 전쟁임이 밝혀졌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은 궁색하기만 했고 실상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이 전쟁을 통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었는가. 이라크 전쟁은 수없이 많은 것을 죽였다. 이라크 시민을 죽였고, 미국 군인을 죽였으며, 미국의 자존심을 죽였고, 인간의 양심과 용기를 죽였다. 이 참혹한 전쟁과 동일한 의미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있다. 그리고 그 악행들을 강력히 집약하는 아이콘 '관타나모 수용소'가 있다.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는 아프간계 미국인 변호사이자 저널리스트 마비쉬 칸이 쿠바 관타나노만의 미군기지에서 억울하게 수감되어 있는 수감자들과의 만남을 담은 에세이다. 뉴스와 신문으로 설핏 접해왔던 관타나모의 충격적인 실상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피의 혐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그곳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어떤 곳인가. 수감자 하나당 5,000~25,000달러를 '보상금'으로 주면서까지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들였던 곳이다. 금전적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현지인들의 고발내용을 먼저 조사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잡아온 곳이다. 기소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5년 이상 억류하고 있는 곳이다. 자살한 수감자들의 시신을 고향에 보내기 전에 조직을 제거한 곳이다. 팔십 먹은 노인을 '적 전투원'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륜적 고문과 핍박이 벌어지는 곳이다.

  저자 마비쉬가 목도한 관타나모의 현실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진실보다 심각했다. 수감자들을 위한 통역 봉사로 어렵게시리 관타나모에 간 저자는 수많은 수감자들의 접견에서 그곳의 처절한 실상을 듣고 목격한다. 탈레반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잡혀와 수감되었던 일부터 하루하루 고통스런 고문과 비인간적 핍박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보고 들은 것은 잔인하고 개탄스러운 사건의 연속이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당혹과 분노감이 치밀었다. 특히 바레인 출신의 수감자 주마 알 도사리와 가즈니 지역에서 교사로 일했었던 모하메드 자히르가 당했던 신체적 가혹행위를 소개한 부분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발가벗긴 채 미군 여성장교의 생리혈을 얼굴과 온몸에 문지르기도 하고 성기를 면도날로 칼질하기도 했다. 또한 신체적 고문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모독도 서슴치 않았다. 수시로 알라와 예언자 모하메드에게 저주를 퍼부면서 수감자들의 정신과 신앙의 자존심을 욕보였다. 불과 몇 년 전에 인권국 미국 정부에 의해 자행된 일이었다.

  이 책이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이유는 충격적인 실상을 전하고 있음에도 겸허하고 차분한 마음을 견지한 저자의 객관적 접근에 있다. 저자는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악으로 분류되는 수감자도 적잖이 수감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9·11 테러를 주도한 칼레드 쉐이크 모하메드나 그의 공범 예메니 람지 비날쉬브, 1999년말 요르단과 LA에서 '세기말 폭탄 테러'를 기도했다 미수에 그친 아부 주바이다가 그곳에 수감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그 어떤 사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공개적인 재판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저자의 확고한 믿음이다. 혐의도 확정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가두고 숨기면서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하는 미국 정부의 행위에 대해 저자는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감정적 표현보다는 법과 인권의 가치를 먼저 전제한 저자의 객관적 접근이 이 책의 존재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한 여성 변호사가 쓴 에세이이면서도 남의 일 같지 않은 강한 공감이 발산된 이유가 있다. 아직 완벽한 의식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대사와 관타나모'의 상징성은 상당수 많은 교집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금의 한국 현실은 이곳저곳에서의 다양한 모습으로 '작은 관타나모'의 형상을 오버랩시킨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즘의 부활과 이로써 제기된 민주주의의 역행은 2009년 한국의 엄연한 실재이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일획일점 건드리지 못한 채 그대로 살아있고 검찰의 정치화 또한 생생히 부활하고 있다. 미국인 여성 변호사가 쓴 한 편의 에세이가 2009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리는 메시지는 바로 이 대목에서 명징해진다.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1년 안에 폐쇄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재판을 재검토하고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이른바 고도 특수 심문기법 사용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자신의 주요 선거공약을 실천에 옮긴 것과 동시에 전임 부시 행정부의 주요정책을 번복하는 조치로도 보인다. 늦게나마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올바른 길로 다가가고자 하는 자생력이 아직까지 미국이 잃지 않고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라 믿는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미국의 그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부럽게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오버일까. 개콘의 유행어를 떠올린다. 왠지 씁쓸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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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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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은 통탄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2009년 5월 노무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상식과 비정의의 현재상을 응축하여 표상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역동과 오욕이라는 두 가지 상치된 성질을 함께 이뤄왔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한국인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그 역동성 이면에 존재했던 오욕과 파란의 역사는 국민을 힘들게 했고 대한민국을 곪게 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다음 세대로서 이전 세대가 이뤄온 역사를 정확히 아는 지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의 힘은 크다.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만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미래를 상식의 세계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특강』은 한홍구 교수의 한국 현대사 강의를 책으로 담은 강연집이다. 시대순이 아닌 의미의 배열로 한국 현대사를 강의한다. 저자는 지난 수십년간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8가지 키워드를 추출하여 열정적인 강의를 펼친다. 알고 있었지만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세밀한 사건들에 대해 저자는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첫 1강에서 저자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수구세력의 태동과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를 짚고 있다. 특히 16대 국회 말기에 제출되었던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이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소개한 대목은 강한 분노를 자아낸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를 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핍박을 받고 죽어나갔는가.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배는 이미 UN과 국제법상 불법으로 판명되었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데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의 저의가 역겨울 뿐이다.

  이어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아이콘들을 주제로 흥미있는 강연을 계속적으로 펼친다. 지난하기만 했던 간첩의 역사, 헌법 정신과 배치되는 민영화 정책, 일본 순사로부터 이어져 온 경찰 폭력의 역사, 거대 사교육 시장이 대변하는 일그러진 교육사, 촛불이 상징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발현 등 한국 현대사를 천착키 위해 알아야 하는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소개한다.

  저자가 진보주의 학자라는 점에서 한쪽에 치우친 논설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는 게 좋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를 조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다. 여러 사건들과 몇몇 쟁점들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사실 전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적확한 논지 제시는 이 책의 무게감과 풍성함을 잘 보여주는 요건들이다. 또한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청중의 질문과 저자의 답변을 싣고 있어 강의 내용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각지대를 잘 보완한다.

  자유 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 중에서 한국인만큼 권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속아왔던 국민은 드물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빨갱이 폭동으로 알았던 적이 있었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의 저금통이 뜯겨진 때가 있었다. 전두환을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했던 적도 있었다. 판매부수 1위를 다투는 두 신문사가 민족지로서 정의와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으로 알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은 속았고 어리석었다. 허탈했다. 몰랐던 만큼 고통스러웠고 어리석었던 만큼 손해봤다.

  앎의 크기는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지는 모럴 해저드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앎이 곧 국력이다. 진실만이 곧 정의가 된다. 어쩌면 오욕과 분노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진실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했고, 그렇기에 21세기 한국인들이 감내하는 대가의 무게는 더욱 큰 것일지 모른다. 노무현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한국 현대사의 독소가 유도한 비극이다. 

  한국 현대사가 잉태했던 다양한 굴곡들은 주류라는 테두리 안에서 꾸준히 소급되어 왔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잘못된 주류에 편승하고 아첨해야만 승리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떳떳하게 정의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 자신이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가치의 본질이었으리라.

  나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신뢰한다. 무지와 잘못된 선택으로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던 실수와 어리석음을 재차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불리는 현명한 종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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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7-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서평 때문에 결국 이 책을 사게 되네요^^
 
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 - 한 발 다가서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
박종현 지음 / 시공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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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으로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한다.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국민성과 문화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을 싫어하고 배척한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라는 오욕의 근대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내재한 반일감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솔직히 얘기하자. 우리들에게 일본은 무조건적으로 싫고 나쁘고 짜증나는 존재다.

  하나의 존재를 싫어하는 것과 그 존재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우리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해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략 1세기 이전에 당했던 한과 설움을 21세기까지 연장하여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이 아무리 씹고 또 씹어도 일본은 어디까지나 일본이다.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사의 감정에 치우쳐 오직 부정코드로 읽기에는 존재의 크기가 너무 큰 나라가 일본이다.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자 수없이 많은 문화와 종교를 누리는 다양성의 국가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이며 패전으로 국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음에도 불과 수십년만에 지구상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산업국가가 되었다. 80년대부터 세계 소비자들의 로망이 된 'Made In Japan'의 힘은 아직까지도 녹록하지 않다. 21세기에서도 일본의 존재감은 크기만 하다. 그렇기에 일본은 반드시 알고 느끼며 연구해야만 하는 아이콘이다.

  시공사의 『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는 오랜 일본생활을 통해 일본인들을 직접 느끼고 소통한 저자 박종현 씨의 에세이다.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라는 책표지 전면의 홍보문구는 이 책의 정체성을 잘 함축한다.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무엇보다 온갖 부정적 편견으로 읽혀졌던 일본에 대한 진실된 단면을 담아냈다.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이유는 일본에 대한 구체성을 매우 잘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보편적 성향과 세대별 특징, 패션과 문화의 특이점, 한류 열풍과 쇼핑 스타일, 섹스와 불륜의 영역에까지 일본인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잘 풀어서 안내한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책 속에서 가장 솔깃하게 읽힌 부분은 일본의 아이러니한 양면성에 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일본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양면적 모습을 보인다. 백만 원이 넘는 명품 지갑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식사비로 소소한 금액을 지불하며 몇백 원의 거스름돈을 반드시 챙긴다. 다이어트를 죽기살기로 하는 마른 민족이 식사 후에는 케이크로 대표되는 고칼로리 디저트를 줄서서라도 꼭 챙겨먹는다. 청소년이 학교 안에서 버젓이 '섹스'를 하는 것과 시험 중 '컨닝'을 하는 것을 동일한 처벌로 다스리는 나라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요 국민들이다.

  반면 일본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국민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네의 독서력에 주목한다. 일본인은 책을 좋아한다. 국가 전체가 책을 사랑하고 장려한다. 일본인은 정말 책을 많이 읽는다. 고독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들은 읽고 또 읽는다. 일본에서는 지하철이나 커피숍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이 누리고 있는 문학의 번영과 권위는 책을 친구삼고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현재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독서하는 일본'은 응당 부럽고 배워야 할 모습이다. 단언컨대, 독서력은 국력과 비례한다.

  시대가 많이 흘렀다. 21세기의 지구촌은 국가와 민족의 벽이 점점 희미해지는 '세계화'라는 대세를 관통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에 함몰되어 생산성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앎이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그들을 정확히 비판할 수 있고 온전히 넘어설 수 있다. 앎조차도 무의미하다며 무조건적으로 일본을 배척하는 자들이 우리 내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일본 속에 배어있는 문화와 습속을 편안하게 소개한 에세이임에도 이 책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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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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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잠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유명 드라마 작가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관심은 충분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작가 자신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인이 보낸 책여행을 통해 다시 읽는다. 이번에는 진중하게 텍스트 속으로 몰입한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를 모두 '유죄'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 모두 죄가 있다고 도발하는 작가의 외침이 흥미있다. 하지만 공감하진 못한다. 이에 대한 내 사견은 서평 말미에 다루기로 하자.

  책의 구성과 문체는 읽기에 편안하게 쓰여졌다. 작가는 장황하게 많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드라마 작가답게 문장은 포근하다. 일러스트는 텍스트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몇몇 페이지는 기름종이에 작가 자신의 필체로 쓴 글귀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할 말은 다 하면서 무언가 억제된 듯한 느낌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작가는 시종 섬세하고 따뜻하고 예민한 문체로 사랑과 연애와 관계에 대해 애잔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노희경 자신의 내밀한 고백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로간에 상처와 치유의 주고받음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탤런트 윤여정과 나문희에 대한 작가의 고백이 흥미롭다. 또한 한동안 증오했던 아버지에 대한 관계 회복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상,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 친밀하고 섬세한 동료애 등이 노희경의 활자 속에서 애틋하고 편안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음악프로그램과 개그프로그램 몇 개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가끔 볼 뿐이다. 책을 좋아하고부터 TV와 멀어졌다. 왜 매일 동일한 시각에 결말이 뻔히 보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TV에 대한 내 극도의 반감은 결코 녹록지 않다. TV를 선택적 '악[, evil]'으로 분류하는 내 신념 속에 바보상자를 지탱케 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 '드라마'가 존재한다.

  모든 드라마의 성공은 종국 시청률로 귀결된다. 한 편의 드라마가 갖는 교육적 성취와 구체적 현실성, 인생의 의미와 가치, 극적 완성도는 모두 시청률이라는 객관적 대중성 안에서 통합되고 조절된다. 한국의 인기있는 드라마는 모두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재생산된다. 요컨대 한국 드라마의 작가와 연출자는 '대중'인 것이다.

  나는 노희경의 드라마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녀의 드라마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시청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항상 한 자릿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를 노희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창조하고 있다. 사랑이 가진 치유의 힘과 가족애, 인생의 진정성과 희망을 담은 메세지를 아름다운 위로의 언어로 뿜어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드라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내 폄훼는 종지부를 찍는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고집과 열정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대중의 요구보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에 기댄 작품들을 많이 창조해주기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책 제목에 대한 내 불편을 피력하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는 말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내 짧은 인생에 비추어 볼 때 사랑하지 '않는' 자가 아닌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을 내 사랑의 카테고리 안에서 이해하려 했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그땐 세상 모든 사랑이 동일하거나 엇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상 너의 사랑은 나의 사랑과는 완전히 분리된 우주에서 역동하는 것이었다. 당사자의 머리와 가슴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될 수 없는 미묘하고 신비스러움은 이 세상 모든 사랑들의 공통된 본질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 안에서 인간과 호흡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향한 방향성과 그것을 위한 최초의지야말로 무죄와 유죄를 판가름 하는 가장 적합한 기준이 아닐까.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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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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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표현보다 '싫어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시민은 대중들로부터 소위 '안티코드'로 읽히는 지식인이다. 국회의원 김영춘은 유시민에 대해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한다"고 평했다. 그만큼 부정적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유시민이다. 그는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유능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논리적인' 견해를 펼친다. 하지만 대중이 보기에는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현재는 집필 활동과 대학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본래 자신의 업으로 돌아간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재차 선택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유시민 자신은 지난 5년간의 현실 정치에서 적잖이 상처를 받은 듯 보인다. 비상식과 편견이 가득하고 비방과 불관용이 판을 치는 곳이 그가 목도한 한국 정치의 현실이었다. 대통령은 불행한 자리였고, 국회는 싸움터였으며, 언론은 인신공격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1987년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많은 성숙을 이루어왔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의회가 첫 헌법을 공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은 진짜로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진짜로 국민으로부터 나올까. 이러한 문제제기는 당위와 존재 사이의 상치에 연원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일갈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하지 않은 '후불제 민주주의'였다는 것을.

  유시민의 신간 『후불제 민주주의』는 현실 한국 민주주의의 단면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헌법의 선언들이 당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온전히 존재되지 못하고 있는 현재상을 꼬집는다. 한 때 현실 정치인으로서 국정을 운영했던 경험과 반성을 토대로 작금의 한국 사회에 내재한 민주주의의 녹록함을 분석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선언하는 대한민국 헌법 1조가 과연 우리 사회 안에서 얼만큼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한다.

  '헌법의 당위'와 '권력의 실재'라는 큰 두 개의 대주제 안에서 다양한 소제목들을 통해 자신의 논지를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이 얼마나 가치있고 뛰어난 헌법인지를 저자는 명확히 논설한다. 이를 쟁취하기 위해 흘렸던 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 지불되어진 수많은 사회적 비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1부 <헌법의 당위>에서는 '행복', '자유', '주권' 등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소중한 가치들을 분석하고 천착한다. 매우 소중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헌법의 조항들을 소개하면서 헌법의 당위가 우리사회에 얼마나 실재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복지와 법치, 차별과 인권 등의 항목에 헌법의 정신을 대입하기도 한다. 특히 미네르바 구속 사건으로 알 수 있는 현 정권의 헌법 정신의 몰이해를 지적한 부분은 고개가 실로 주억거린다.

  2부 <권력의 실재>에서는 보다 다양한 논지를 펼친다. 대통령이라는 존재에 대한 저자의 주관, 노무현 대통령과 저자와의 관계, 국회의원과 장관 재직 시절 때의 경험담, 최장집 교수와 장하준 교수에 대한 저자의 견해 등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저자의 생각과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저자 특유의 논리적이면서 재치있는 필력은 여전히 돋보인다.  

  무엇보다 흥미있는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자신의 공직생활 경험담을 소개한 부분이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를 반은 성공했지만 반은 실패한 정부라고 평가한다. 대중의 인기 여부를 떠나 무엇을 실현했고 무엇을 놓쳤는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저자의 사모함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지식인 유시민이 국회의원과 장관에 자리에 올라 보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국민에게 서비스할 수밖에 없었던 그 운명적 삶의 방향성에 바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스승이 있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숱하게 느껴온 바 있다. 최근 밝혀지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비자금 사건을 바라보며 유시민은 어떤 생각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 공고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 개혁 정권에서 이뤄놓은 자유 민주주의의 만개가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는 퇴행되고 있음을 언급한다. 이는 정확한 판단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우리사회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수배되었고, 유모차 엄마는 기소되었다. 전교조가 압수수색 되었고, 노동조합원들은 불에 타 죽었다. 인터넷 논객이 구속되었고, 방송사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엄연히 헌법에 명시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법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공권력의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가운데 우리 모두는 다시 헌법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위정자들은 헌법의 정신에 맞게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국민들은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우리사회 안에서 얼만큼 역동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명제가 될 때야 비로소 민주주의에 대한 값을 다 지불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이를 위해 우리 국민이 앞으로 더 지불해야 하는 노력과 시간은 얼마일까. 책 제목 '후불제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니묄러의 인용문 패러디, p. 379>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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