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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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깨닫는 것 중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명확한 상이함이다. 동일한 종족이면서도 남자와 여자는 많은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차이는 종국 두 성별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왜 수많은 연인들이 이별을 하는가. 왜 그리도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하는가. 이는 너무 다른 두 성별의 특질에 기인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의 크기에 따라 두 존재의 친밀감의 완성도는 결정된다. 상대의 호르몬 분비와 사고의 기작이 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최대한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통해 행복한 이성애는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따르는 법. 더욱이 남녀의 사랑만큼 그 괴리감이 농밀한 곳은 없다. 어렵고 어렵도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여자에게는 남자가 말이다.

  남녀의 차이에 대한 도서들은 전세계적으로 꾸준히 출간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꾸준히 읽혀지고 있는 남녀관계의 바이블이다. 그 외 수많은 저서들이 남녀의 태생적 차이와 이를 증거로 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조언들을 증거해왔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도 이러한 책더미에 한 권을 더 보태고 있는 책이다. 단 남녀간의 차이를 넘어 남자와 관련된 문화 전반에 걸친 심리학적 고찰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존재성은 특별하다.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충격적인 제목은 저자의 논지를 유도하기 위한 익살스런 센스로 풀이된다. 저자는 결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 책은 심리학을 다룬 책답지 않게 매우 재미있게 읽힌다. 남성이 태생적으로 갖는 특성들을 문화심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무엇보다 매우 쉽고 유연하게 풀어쓴 점이 돋보인다. 또한 저자 특유의 유려하고 코믹한 문체도 독자로부터 재미있게 읽히는 데 한몫 한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실례, 적절한 인용과 알기 쉬운 설명 등은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타파하는 이 책의 강점들이다.

  문화와 사회 전반에 걸친 풍성한 내용들로 인문학 서적의 범주를 넘는 확장성을 지닌 점도 이 책이 주는 풍성함이다. 남녀의 심리학적 차이에서부터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까지 솔깃한 얘기거리들이 풍성하다. 연애법과 결혼생활의 조언도 담고 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외로운 의무에 대해 재미와 행복의 의미를 불어넣고 있다.

  저자가 전하는 논지의 핵심은 간명하다. 바로 '행복'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의 행복의 요원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는다. 경제나 사회구조의 문제로 말하지 않는다. 보다 본질의 문제를 지적한다.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의 본질은 바로 '재미없게 사는 남자들'에 있다고 진단한다. 세계의 모든 문화와 관습은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사회가 재미없고 행복하지 못한 이유의 문화심리학적 해석의 키워드로서 바로 불행한 남자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저자의 진단과 해석 위에 쓰여진 '남성 행복론'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이 많이 팔려 자신의 소원인 캠핑카를 하루속히 장만하고 싶다고 토로한다. 이 토로에는 저자의 인생철학이 잘 묻어있다. 그것은 바로 재미있는 삶이다. 매사가 재미로 점철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것보다는 사는 게 재미있어 살아가는 게 훨씬 나은 인생이 아닌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는가.

  재미없게 사는 것만큼 불행한 삶은 없다. 재미는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가장 위대한 축복 중 하나이다. 일과 사랑, 관심과 취미, 삶과 신앙 등 인간이 행하는 모든 영역에서 재미는 행복을 증명하는 보증수표다. 우리의 삶이, 아니 이 땅의 남자들의 삶이 왜, 어떻게, 재미없고 희망없이 흘러왔는지 우리는 깊이 반추해야만 한다. 경제나 사회의 문제로 환원할 일이 아니다. 보다 본질의 접근이 있어야 한다. 존재론적 탐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긴요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재미'있는 삶을 위하여 남자의 '재미'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문체로 탐구한 이 한 권의 '재미'있는 책을 '재미'를 갈구하는 이 땅의 수많은 남성들에게 일독 추천하는 바이다. 참 '재미'있는 인문학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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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11-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추천하는 이들이 주변에 몇 있던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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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좋을 때가 있다. 본래 만화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기존의 책들에 지칠 때 간혹 읽는다. 만화의 장점은 간명한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화만의 맛깔난 매력은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갖는 교집합일 것이다. 내가 만화를 간혹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화의 강점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한 예로 무겁고 교육적인 소재를 청소년들에게 부드럽고 평이하게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가 그렇다. 만화가 폭력이나 연애, 스포츠에 소재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만화는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무거움과 만화와의 만남을 좋아한다. 그 만남의 연장에서 나는 간혹 만화와 만난다.

  창비에서 출간된 최규석의 만화 『100도씨』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그렸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은 만화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버전이다. 박종철 고문치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숭고한 역사를 만화가 최규석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6월 항쟁의 시대성과 가치를 적절한 유머와 감동으로 담아내 녹록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 영호는 운동권에 대해 자못 비판적인 소년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운동권은 곧 빨갱이요, 데모는 곧 죄악이라는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진실을 목도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얼마나 호도된 거짓이었는지를. 잘못 알았던 거짓 사실에 대한 배신감은 한 사람을 더욱 극적인 대척점에 서게 한다. 그는 싸운다. 끓는다. 역동한다. 거짓된 역사의 현장 앞에서 그는 투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영호는 그 시절을 관통해야만 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원형이다. 정부와 언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았던가. 80년 광주를 폭도의 현장이라 했고 김대중을 빨갱이라 했다. 평화의댐을 건설해 북한의 물테러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저금통이 뜯겼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로 둔갑되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했다. 그때 그 시절, 거짓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지판단능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영호는 그 시절 '나'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제목처럼 최규석의 『100도씨』는 뜨겁다. 한 청년의 깨달음을 통해 87년 6월의 현장을 만화의 형식에서 가볍지 않게 담아낸 점이 돋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지만 점점 잊혀져 가는,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숭고한 역사의 현장을 『100도씨』는 생명력 있게 그리고 있다. 뒷부분의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는 15년 전의 당위와 가치가 현재 이 순간에도 살아 숨셔야 한다고 부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볍지 않은 고찰들이 잘 조명된 수준있는 끝맺음이다. 

  청소년에게 이 만화가 교육교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만화라는 형식이기에 더욱 부드럽고 재미있게 읽힐 것으로 보인다. 자유라는 당위는 시대와 문화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쟁취해야 할 가장 우선적 선善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떳떳하게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자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15년 전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쟁취할 수밖에 없었던 자유라는 고결한 가치를 우리는 후손들에게 훼손없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규석의 만화 『100도씨』가 그 숭고한 바톤터치의 도구로 작지만 힘있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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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 평범한 이웃들의 웃음+눈물+감사한 인생이야기
박은기 외 32인 지음 / 수선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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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를 먹어가면서 깨닫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다. 하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생의 영광은 반드시 고난 뒤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타인의 삶을 통해 얻게 되는 이 두 가지의 깨달음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면서 다양하게 적용된다.

  인간은 평범한 것들의 특별함을 잊고 살아간다. '평범함'과 '특별함'이라는 의미적 상치는 서로를 수식하는 종속적 관계로서 연결된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면 그 앎의 가치의 특별성 또한 알게 된다. 소소한 것에 감사하고, 녹록한 것에 기뻐하며, 범상한 것에서 기적을 보는 삶이야말로 가장 특별한 삶인 것이다.

  고난의 문제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통과의례다. 비단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인용치 않더라도 고난과 승리는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되는 인과관계를 갖는다. 우리 주변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보라. 그들에게는 반드시 역경을 이겨낸 분투가 있었다. 현재의 고난은 미래의 영광을 암시하는 가장 분명한 기회다. 이 또한 진리다.

  수선재의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는 여러 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이다. 각 필자들은 소소하면서도 은밀한 삶의 에피소드들을 고백한다. 반듯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의 현재성이 완성될 수밖에 없었던 깊은 울림들이 수필집 곳곳에 배어 있다.

  서른세 명의 필자들은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삶을 들여다본다. 고통, 상실, 번민, 실패 등 모든 부정적 삶의 편린들은 종내 '감사'라는 희망의 삶적 동력으로 치환된다. 각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독자는 필자의 입장이 되며 강한 공감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각기 특별한 삶의 형태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파하고 회복되어질 우리네 인생들의 보편성이다.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마지막에 덧글 형식으로 이웃들의 코멘트들을 달았다. 타인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녹록지 않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는 이웃들이 있기에 필자들은 행복하다. 공감 덧글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야흐로 자본주의 시대다. 능력이 선이 되고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웃들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는 점점 희박해져만 간다. 명상이라는 동일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에서 따뜻한 이웃애를 느낀다.

  이 수필집의 필자들은 전문 작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글 곳곳에 투박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투박함은 정겨움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기에 빛나는 글이 있다. 수필집의 구성과 내용을 감안했을 때 다듬어지지 않는 필력은 오히려 좋은 조화를 이룬다. 아마추어이기에 더욱 따뜻하고 공감적이며 진정성이 있는 문장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함'이라는 테마는 프로보다는 아마추어에 어울린다. 그게 훨씬 부드럽다. 그리고 정겹다. 그래서 좋다.

  각 필자들을 하나로 묶는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책 속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은 점은 자못 아쉽다. 그들이 함께 생활하며 공감하는 명상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언급되지 않는다. 명상이 나를 평온케 했고 도전을 준 결과에 대해서는 고백하지만 정작 명상 자체의 구체화에 대해서는 결락되어 있다. 수선재와 명상에 대한 보다 자상한 언급과 그로 인한 각 필자들의 관계성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어졌다면 보다 힘있는 수필집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책 제목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자. 반듯하지 않은 인생이 고맙다는 말은 '범상'과 '감사'와의 함수관계를 발생시킨다. 이 책은 반듯하지 않았던 인생을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고백함으로써 또 다른 평범한 이웃으로부터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종내 '감사'라는 절대 긍정적 가치를 이끌어낸다. 결국 제목으로 회귀한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이었기에 결국 '감사'한 것이다. 이 깨달음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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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vs 백악관
박찬수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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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온 국민은 경악했고 슬퍼했다. 한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했던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의 죽음이 오로지 언론과 검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굴곡과 오욕으로 점철된 한국의 현대사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해의 요소 중에 바로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모순적인 정치구도가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은 엄연한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다. 대통령제를 처음 시행한 미국과는 역사와 의식의 차이가 많이 벌어져 있지만 한국의 대통령제 또한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을 만큼 한국의 민주주의는 제도적으로 많은 성숙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질적 수준은 미국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아직도 먼 것이다.

  개마고원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통령중심제 국가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는 과거의 경험과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대통령제와 미국의 대통령제를 비교 대조하고 있다. 두 나라 대통령제를 표상하는 강력한 아이콘인 '청와대'와 '백악관'을 제목 전면에 배치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저자는 두 나라의 대통령제의 의식수준이 경제규모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이는 수많은 실례들을 매우 흥미있게 소개한다.

  1부 <권력의 심장은 어떻게 뛰는가>에서는 대통령 전용차에서 대변인까지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실감할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들을 소개한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규모와 구조, 대통령 전용차와 전용기의 특징과 형태, 경호원들과 주치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최고 권력의 실재를 설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두 국가의 두드러진 차이가 흥미로운데, 한국의 그것들은 위용과 형식을 중시한다면 미국의 그것들은 실용과 합리에 맞춰져 있다. 외연적 권위에 치중하기보다 효율과 실용을 중시하는 미국식 대통령제의 격식이 더 겸손하고 합리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2부 <권력의 허브를 구성하는 것들>에서는 보다 본질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에서부터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설명한다. 미국에서 정권 부패와 인사 실패가 비교적 많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소개한 부분은 자못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하게 읽힌다. 아직까지 우리의 대통령제는 그런대로의 형식은 갖추었으나 품격있는 의식을 갖추는 데는 많은 부족이 보이기 때문이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지는 정권 실세들의 부패 문제는 제도권의 후진적인 민주주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각 파트마다 양국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많은 내용들이 소개되어 독자의 관심을 이끈다. 두 나라의 차이도 흥미롭지만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성격과 기질, 업무 스타일과 공과를 다룬 부분들도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맨마지막 파트인 한미간의 정당회담 충돌사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몰랐던 사건을 아는 희열 만큼이나 한국 역대 대통령들의 개성들을 엿볼 수 있어 맛깔스럽게 읽을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이 한 권 또 있다. 네모북스에서 출간한 『도대체 청와대엔 무슨 일이?』 도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당시 현역 최장기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취재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한국 대통령의 다양한 단면들을 소개하고 있어 이 책과 적절한 교집합을 가진다. 책이 출간될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그의 서거 이후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가벼운 참고도서로 읽어보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한국과 미국은 삼권분립을 기치로 하여 대통령중심제라는 동일한 제도를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다. 하지만 운영 능력과 국민 의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한국의 모습은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름답고 모범적인 전직 대통령 문화는 미국의 자랑거리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세계 초유의 사태를 이뤄낸 대한민국의 암울한 대통령 역사는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미국의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몇번의 정권이 바뀌고 몇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도 평화롭고 안정감 있게 퇴임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의 중량감을 느낀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지 현재의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그 나라 지도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얘기다.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역사가 그대로 한국민들의 수준 낮음과 연결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허나 분명한 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엄연하게 실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좋은 지도자의 출현과 성숙된 민주주의의 실현은 바로 한국민의 책임과 의무라는 사실이다. 선택은 결국 국민의 몫인 것이다. 지난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룬 한국인의 힘과 역동성은 보다 좋은 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희망을 엿보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전제다. 난 그 전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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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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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글은 역동적이다. 그녀의 글은 유머러스하다. 그녀의 글은 재미있다. 그녀의 글은 외식적이지 않다. 그녀의 글은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글은 따뜻하다. 화려한 수식어구나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글을 충분히 맛있고 멋있게 쓸 수 있다는 점을 그녀의 활자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녀의 글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그녀가 오랜만에 에세이를 냈다. 기존의 저서 7권을 모두 섭렵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녹록지 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내가 그녀의 신간을 대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터. 전작들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제목을 전면에 배치한 한비야의 신작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는 오랜 기다림과 변찮는 믿음의 인고를 통해 내 손 안에 안착했다.

  제목이 심상치 않다. 사랑이라니. 세계 오지를 누비며 도전과 열정을 불태우거나 구호 현장에서 역동하는 그녀의 평소 모습과 신간의 제목은 아이러니한 부조화를 이룬다. 물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외되고 핍박받는 이들을 보듬어주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 곧 인류애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전작 어느곳에서도 '사랑'을 제목 전면에 제시한 텍스트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그건, 여전히, '사랑'이었다. 바로 한비야 자신에 대한.

  이 책은 인간 한비야에 대한 탐구서다. 한비야의 생명력 있는 필치는 철저히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첫사랑과 신앙고백, 글쓰기 노하우와 추천도서, 인생계획과 삶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내밀하고 객관적인 인간 한비야의 단면을 가감없이 고백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월드비젼의 구호팀장이라기보다는 한 존재의 인간으로서, 한 존재의 여자로서 그녀의 객관적 실존이 담백하게 묻어 있다.

  저자는 이 얇은 에세이 한 권을 통해 자신의 맨얼굴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간 말하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터뜨리듯이 저자의 고백은 솔직과 담백을 넘어 역동에까지 닿아있다. 꾸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준다. 진실된 글은 반드시 힘이 있다. 이전 에세이들이 한비야가 조망한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과 해석이라면 이 책은 관찰자와 해석자로서 살았던 자기 자신의 내면적 모습을 조명한 고백서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흥미있고 공감되었던 대목은 글쓰기에 대한 저자 자신의 철학을 언급한 부분이다. 한비야는 글에 대해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를 견지한다. 좋은 글쓰기는 반드시 인고의 노력이 담보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백 퍼센트 공감되는 말이다. 그 유명한 다독, 다작, 다상량多商量의 삼다三多 외에도 다록多錄과 몰두, 퇴고 등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노력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한비야의 글쓰기론은 응당 고개가 주억거린다. 글은 마땅히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에세이 작가로서의 활자에 대한 진지한 겸손과 경건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비야가 골라주는 24권의 추천도서 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고전을 위시하여 종교, 영성, 구호, 교양에 이르기까지 한비야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리스트들을 폭넓은 분야에서 담았다. 그녀가 추천한 책 중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루쉰의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가 인상적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폭넓게 읽는 그녀의 다독을 존중한다. 훌륭한 필자 이전에 진지한 독자 한비야의 모습을 엿본다.

  나는 한비야의 글이 좋다. 여태까지 그녀가 쏟아낸 텍스트에는 모두 동일한 문체가 사용되었다. 그녀의 문체는 항상 일관되다. 재미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외식하지 않는다. 동시에 편안하고 따뜻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녀의 글에는 심장 박동수가 느껴진다. 그렇기에 읽는 이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녀가 쓴 모든 책들을 읽어오면서 새삼 확인하는 진리가 하나 있다. 활자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펜은 강하다.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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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7-3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읽으셨군요. 저도 그녀가 권하는 책에 관심집중이었어요.
행복의정복,과 아침꽃을저녁에줍다, 저도 찜해뒀는데요.^^
한비야님 너무 멋진 '사람'이에요.

다윗 2009-08-01 09:0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한비야 팬입니다. 덧글 고맙습니다. ^^

아로 2009-08-2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른 시각으로도 한번 보세요.

여기 한번 방문해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http://afterdan.kr/40 여행자 한비야에 대한 비판 - 과대평가된 시대의 아이콘

님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알려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