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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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책이기에! 도서관에서 냉큼 집어온 책 슬픔이 주는 기쁨.

작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작가라면 호기심이 동하는게 사실이다.

책도 마찬가지지만.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사람들의 좋아하는 이야기를 쓸까라는 호기심.

이책은 알랭 드 보통의 일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각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선집으로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70권의 작품 중 70번째 책이다.
9편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이레> 개정판으로  슬픔이 주는 기쁨  <청미래>로 나온 것이다.

요즘 인기있는 작가의 예전 책들이 다시 개정판으로 나오고 있는데 왠 심통인지 예전 책들에 더 눈이간다.

얼마전 노르웨이의 숲도 빨강과 초록의 선명한 책표지가 다시 나오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괜한 심통으로 예전 책의 제목 에세이가 더 정이간다.

 

각 제목은 책 속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론 제목이 주는 느낌은 슬픔이 주는 기쁨이 더 좋았지만

공감가는 내용은 동물원에 가기였다.

 

공항에 가기, 일과 행복, 독신남, 글쓰기 등 일상에 관한 작가의 짧막한 생각을 담고 있기에

그때 그때 읽는 독자의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동물원에 가기 첫 문 장  "아이도 없이 동물원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동물원에 가서 동물을 보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담았다.

아이들에 치여 관람객들에 치여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을 동물원.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다시 한번 동물원에 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특히 무심한 듯 코를 후비고 있는 오랑우탄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풍선을 들고 있는 오랑우탄의 뒷모습도!

 

"동물들이 결국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게 된 것은 자연 환경에 적응했다는 표시이다라고 다윈은 말했다.

레전트 파크 동물원에서는 그 말을 의심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는 사람이라면 자기 얼굴이 그렇게 독특한 모양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같다.

나는 진흙탕에서 뒹구는 타르 색깔의 난쟁이하마들을 지켜보며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다가 우울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릿속에는 "공룡"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하마들이 공룡을 닮아서가 아니라,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본보기로 그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 83page 동물원에 가기 중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냥 스쳐지나는 일상을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이런 생각들로 채우면서 살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9편의 모든 에세이들이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지금 내게 딱 맞는 상황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일거다.

언젠가 상황에 맞는 경우가 나오면 아! 내가 왜 그 때 이느낌을 몰랐지?하며 의문이 가질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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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a24 2014-11-27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동물원에 가기는 이제 재고도 없어서 더 아쉽네요.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지음, 성귀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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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랑수아 가르드

 

이 책의 첫 문장  " 낮은 벼랑 끝에 다다라서야 그는 혼자임을 깨달았다." - 7page

 

19세기 중반. 지리학자 옥타브는 수상한 흰둥이 야만인을 맡아 거두게된다.

나르시스는 섬을 방문한 선원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야만인들 속에서 유난히 흰피부와 머리색깔로 백인임을 의심받고 선원들과 함께 배에 오른다. 하지만 나르시스는 백인의 겉모습만 지녔을 뿐 문명사회의 규칙을 전혀 모르고 말도 못했다. 17년 전의 기억을 모두 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옥타브에 의해서 하나씩 밝혀지는 그의 과거. 그는 17년 전 이미 사망처리된 선원 나르시스 펠티에였다. 18살의 선원이었던 나르시스는 물을 찾으러 갔던 그 섬에서 낙오되어 버려졌고 세상에서 잊혀졌다. 야만인과 함께 살았던 나르시스는 어느새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하며 야만인이 되었다.

 

지리학자 옥타브는 야만인이 되어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나르시스에게 말을 가르치고 문명을 가르치며 그가 겪은 섬에서의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내게 된다. 하지만 나르시스는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꺼내놓지 않았다.

 

왜 나르시스가 그 섬에 남겨질 수 밖에 없었는지, 18살의 소년이 어떻게 문명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야만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만인'이라는 것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느 누가 그들의 생활을 야만이라는 단어로 비약할 수 있는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문명과 야만의 세계를 두번씩 직접 체험한 흰둥이 야만인 나르시스 펠티에의 생존 실화다!

 

 

 

 

 

"이 고독과 미지의 땅에서 그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죽음은 더이상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러니 살아야 했다. 살아야만 했다."

 

처음 나르시스가 원주민들을 만났을 때는 미개한 야만인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문명 사회에서 온 사람이고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를 가지는 미개한 인간들이라고만 치부했다. 하지만 18살의 나르시스가 외딴 섬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불가능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억척스럽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르시스는 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르시스는 불도 지피지 못했고 물도 찾지 못했고 먹을 것을 사냥하지도 못했다. 배고픔에 허덕이다 죽기 직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원주민 노인이었다. 물을 주고 식량을 주고 추위에 떨때 체온을 녹이게 꼭 안아준 것도 노인이었다. 원주민들이 처음부터 나르시스를 받아들여준 것은 아니었다. 문명사회의 생각을 지우지 못했던 나르시스는 원주민의 생활에 동화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도 점점 지쳐갔고 외로웠다. 그렇게 문명을 고집하며 지내는 사이 그는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더이상 선원들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도 없었고 탈출의 희망 또한 버린지 오래다. 목숨을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그가 택한 것은 문명을 버리고 오롯이 그들에게 동화되는 쪽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버려진 채,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식인종이나 맹수 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아닌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고, 불을 피울 방도도 없다. 허리띠에 찬 단도와 입은 옷이 가진 것 전부다." - 12page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버려졌다면?  무엇보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나르시스의 선택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문명인의 눈으로 볼때 원주민들은 야만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 환경에 최적의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야만이라 부르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 봤던 책의 이누이트 원주민 말살정책이 떠오른다. 강대국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을 쫓아내야 했고 죽이는 방법대신 택한 것이 바로 원주민들의 문화를 말살해 문명에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생각할 수록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구대륙 도착, 침략이라고 배워야하는 것은 아닐지. 새로운 시각으로 그 야만!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나르시스를 관찰하는 지리학자 옥타브는 "대체 그자는 어떤 끔찍한 일들을 껶은 걸까요?"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옥타브가 흰둥이야만인으로 살았던 세월이 끔찍하고 암울한 기억이었을까. 그건 문명인의 잣대로 지켜본 기준이며 모순이 아닐까.

옥타브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이른바 문명인들이 나르시스를 대하는 장면들과 나르시스가 떠올리는 원주민들을 비교해보면 어떤 것이 더 끔찍한 일이었는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르시스 펠티에. 그는 문명인 나르시스와 야만인 암글로!

두 삶 중 어떤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그의 대답이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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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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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의 달을 만났다.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젊은 시인의 탐미적인 환상을 담고 있는 달.

24의 나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이 책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보다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의 초반부는 참 내 머리 속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이게 현실일까? 꿈일까? 현실과 꿈을 왔다 갔다하면서 지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날, 신바시 역에서 우연히 보았던 양산 쓴 여인의 모자에 하야 리본이 둘러져 있었던가?

아아, 그렇다, 역시 그래.

지금까지 그 이야기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렇지.

예전에 어떤 책에선가 분명히 읽은 적이 있어. 아일랜드 전설이었지.

하얀 리본을 두른 모자의 여인을 만났다가 여섯 달 뒤에 죽었다는 사내의 이야기......" - 34page

 

1897년, 메이지 중기를 배경으로 여행을 하던 마사키는 어느 마을의 숲속에서 나비를 따라간다.

어두운 밤 숲을 헤매던 그는 뱀에 물려 의식을 잃고 어느 암자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노승은 닫혀져있는 어느 방문을 절대로 들여다봐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앞부분의 내용이 마사키의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하는 이야기였다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꼭 어릴 때 들어봤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듯한 이야기다.

 

"나는 산 속에 쓰러져 있고, 또 나는 선방 가운데 앉아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는...... " - 97page


마지막까지 마사키의 꿈인건가? 현실인건가?에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마사키가 본 것들은 진실일까.

진정한 사랑이란 늘 이런 식인건가라는 의문까지.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이미지, 첫인상, 그 자체로의 모습만 보고

빠져드는 모습.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할 수 있을지에 딴지를 걸고 싶다.

 

사랑이건 유혹이건 짧은 이야기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왠지 오랫동안 알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의 이야기로 다가오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매력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찾는게 아닐까 싶다.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또 이런 느낌이 드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정말 젊은 작가다!

한글로 된 트위터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짜 작가가 남기는 이야기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슬쩍 보기만 하고 나와버렸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안타깝게도 겉표지를 다 벗겨서 검색을 통해서 찾아보게 되는데

일본에서 출간된 달의 원서 표지들이 더욱 이 책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一月物語 제목도 더 어울리는 듯.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일 것 같은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머지 두권의 책도 빨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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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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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읽는 방법 

 

얼마전 이웃님께 히라노 게이치로의 '달'을 추천받고 이 작가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달'을 읽기 전 '소설 읽는 방법'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소설을 읽기 위한 준비부터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는가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제가 읽었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눈으로 보았다가 맞을 것 같아요.

 

작가는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를 절실히 보여주기는 했지만

저처럼 일반인이 책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도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그 책을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서 참 꼼꼼하게 설명해주는데

애석하게도 그 책들 중 읽어본 책이, 아는 책도 한권도 없으니.

뭘 비교하고 나는 어떻게 읽었던가를 떠올릴 수가 없어서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까 고민하면서 읽어갔습니다.

 

이미 이 책 속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작가의 친절한 설명을 들어가면서

흥미롭게 읽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눈으로만 봤습니다.

그게 참 안타깝고 내가 소설을 아직까지 제대로 못읽고 있구나를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작가의 소설 읽는 방법은 참 치밀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시카 고타로의 골든 슬럼버라는 책을 읽는 방법입니다.

 

- 엔터테인먼트 작품의 두 가지 특징

- 현실에서 살짝 떠오른 무대 설정

- 엄청난 사건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 전반과 후반이 선대칭을 이루고 있다

- 독자를 끌어들이는 연구

- 독자를 어떻게 배반할까

- 독자의 의문을 대변하는 목소리

- 어떻게 정보를 보여주는가

-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만 등장하는 인물

- 독자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와! 그냥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몇 십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습득할 수 있는 소설 읽는 법은 아닌 듯합니다.

 

소설이란 세상에대해 작게 이야기하는 것.

 

하지만 이 문구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소설을 좀 읽어봤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땐 저자가 말한 소설을 읽는 방법들이 좀 이해가 될까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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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 전3권 세트
하시다 스가꼬 지음, 김균 옮김 / 청조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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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

 

책귀퉁이가 뜯어지고 많은 사람의 손을 탄 느낌이 더욱 잘 어울리는 책. 오싱을 만났습니다.

12월달에 영화로도 개봉이 된다고 하고 새롭게 출간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는데 왠지 저는 이 낡은 책이 더 끌렸습니다.

NHK-TV 대하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오싱은 눈많은 일본 동북지방의 한촌에서 태어나 가난과 시련을 극복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온 오싱이라는 한 여인의 일생을 그린 작품입니다.

 

진정한 가치 기준이 무엇인가. 전통에서 뭘 버리고 보존해야 하는지 도덕적 기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이야기라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1권을 보는 내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입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일곱살 어린 소녀의 이야기 부분인 1권은 정말 가슴아프고 감동적이었어요.

그에비해 2,3권 성장한 오싱이 이야기는 일본의 전쟁과 고부간의 갈등, 무능력한 남편의 이야기등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도 흡사한 답답한 이야기에 애써 외면하고 싶던 이야기였습니다.

나도 어쩌지 못하고 누구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시대를 막론하고 어쩜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라며

속이 답답해진다고 해야할까요.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그녀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80이 훌쩍 넘은 백말의 여인이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을 찾습니다.

그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오싱.

지금은 크게 성공한 사업가지만 집안의 불화로 짐을 싸서 가출을 하고 고향을 찾은 것입니다.

답답한 현실을 극복할 마지막 힘을 얻기위해 추억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오싱은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오싱이 추억하는 기억들은 어쩌면 이토록 험난한 여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발 좀 행복하게 살게 해줘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말이죠.

이제 좀 행복해지려나보다 싶으면 또다른 사건이 일어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고

다시 일어나면 또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런 것들이 지독하게 반복됩니다.

 

 

 

 

 

"오싱은 그렇게 어려운 때에 태어나 자란 아이였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가난이 몸에 배어 그게 고통스런 생활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먹을 것은 모자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사랑을 흠뻑 받았기 때문이다. " - 23page

 

"싫어! 나는 아버지랑 어머니랑 엄마 곁에 있을래. 아무데도 안 가."

 

"뭐가 꼴사나워? 여자들은 다 이런 쓰라림을 삼키며 살고 있어! 남자인 네가 여자들의 이런 괴로움을

알기나 하겠느냐?" - 31page

 

 

일본의 예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의 이야기.

차가운 물 속에 뱃속 아기를 지우기 위해 들어간 엄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는 할머니.

일곱살 오싱은 사랑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보며 더부살이를 결심합니다.

 

"엄마,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면 안돼. 알았어?

내가 없으면 할머니도 밥 먹을 수 있어!

애기도 낳을 수 있잖아? 예쁜 애기 낳아. 응?" - 32page

 

제 자식보다 며느리의 아픔을 생각하는 시어머니,

자신의 눈물보다 며느리의 눈물부터 생각하는 시어머니. 오싱의 할머니는 시대에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어머니와 엄마 밑에서 자란터였는지 오싱은 정많고 사람을 배려할 줄아는 아이였습니다.

 

"걱정 마. 할머니...... 엄마, 개울물 차가웠지?

나 요전에 빠져 봐서 잘 알아.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엄마......" - 33page

 

사랑받고 자란 아이 오싱이 눈에 선합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오는 이 부분에서 눈물이 펑펑 나왔던 것 같아요.

아이와 남편이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동안 옆에서 책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눈물을 닦아가면서 봤다죠.

 

오싱이 더부살이를 떠나러 갈때 엄마는 안보내려고 애쓰고 할머니도 밥도 안먹고 굶는 것과는 달리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와 장남은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며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이기적이기만 한 장남. 집안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면서도 동생들을 살뜰하게 보살피지 못하는 모습을 나오는데요.

오싱이 그토록 힘들게 도쿄에서 출장미용을 하며 번 돈으로 결혼비용을 마련하고 집도 지었으면서

가족들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모습에 정말 화가났어요.

억울한 더부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돌아온 오싱을 보자마자 화를 내며 뺨을 때리는 아버지 또한 욱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싱이 문득 개울가 울창한 나무숲으로 눈을 돌렸을 때 그곳에서 한 남자가 뗏목을 따라 뛰는 모습이 보였다.

앗! 아버지...... 아버지!"

 

하지만 이부분은 자꾸만 읽어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어 버리는데요.

내가 알고 있는 가부장적 아버지들도 그네들만의 아픔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

하지만 더부살이로 팔려가는 딸아이를 놓지못해 뗏목을 따라 몰래 뛰어오는 모습.

그 몰래 뛰어오는 모습을 지금껏 보지 못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얼마전 기러기 아빠의 유언이란 뉴스를 보았습니다. "아빠처럼 살지마."

4년간 혼자 생활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50대 남성의 이야기었는데요.

이 책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긴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뿐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딸, 남자와 여자. 느끼고 마음에 담는 것 다 똑같을 수도 있단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 서 하루 196쌍이 결혼하고 55쌍은 이혼한다고 합니다.

오싱이 지금 세대에게도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결혼이라는 것, 효도라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아내로 남편으로 산다는 것.그런 사람사는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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