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 시.공의 경계를 넘는 유크로니아 시대의 철학 에세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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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저술된 문화관련 서적 가운데 가장 밀도있고 계발적인 책이 아니었나 합니다. 저자는 나름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들을 개성있게 요리하고 자기만의 통찰과 개념 및 전망들을 그려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자가 국비장학생으로 유학했던 이태리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또한 나름의 문화철학을 그려가면서 그는 우리의 일상어(예를 들어 사이, 서로, 간과 체 등)를 철학의 영역에 다양하게 포섭해 냅니다.

이는 이 책의 접근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봅니다. 철학, 문화이론, 미학, 문학 등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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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까치글방 6
J. 호이징하 지음, 김윤수 옮김 / 까치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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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징가의 논의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숨겨져 있으며, 인간의 다양한 공동체 생활, 심지어는 전쟁마저도 놀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놀이 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문화는 그런 놀이적 성격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견 역설적이다. 현대의 문화에서 쾌락적 면모가 점점 더 부각되고 따라서 놀이나 유희적 측면도 더 부각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오늘날의 놀이는 과거의 놀이와 달리 자율적이지도 못하고 따라서 창의적이지도 못하다. 오늘날의 놀이는 (아이들 장난감의 변천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듯이) 기성품화되었고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뤄진다. 놀이란 놀이의 행위와 그에 따른 쾌락이 서로 함께 얽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천(참여)과 즐김과 창조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는 그 요소들을 각각 분업화하였고 쾌락이란 감성적 면마저 분업화, 기계화하였다. 쾌락이 행위와 분리되는 현상은 어두운 영화관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는 관객에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문화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하고, 놀이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예술 역시 인간을 시체로 만드는 분업적이고 기계적인 놀이가 아닌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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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을 - 당대문고 1
슈테판 헤름린 지음, 박소은 옮김 / 당대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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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슈테판 헤름린은 1915년 부유한 은행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밑에서 성장했으나 청소년 시절에 '공산주의 청년 동맹'에 가입합니다. 나치가 집권한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지하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 내전 때는 '국제여단'에 참여하여 판프랑코투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치 집권 이후 대대적인 좌파 검거 열풍으로 프랑스로 피신, 반나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스위스로 망명, 전후에 동독으로 돌아와, 공산당 활동을 계속합니다. 그의 저술생활은 동독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동독 최고의 문학상을 다수 수상하였고 두번에 걸쳐 하이네 상을 수상합니다.

최근 공산권 붕괴 이후 많은 동독 지식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하루 아침에 꺾고 전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필요에 따라 자신의 관점을 손바닥 뒤집듯이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시절에 슈페판 헤름린은 정말 시대착오적으로 완고합니다. 그에게 베를린은 아직도 로자가 살해당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아직도 사회주의야말로 인간의 영혼이 제대로 발전하도록 돕는 최상의 체제라고 믿습니다.

추천사를 쓴 (국정원이 그를 북한의 고위당간부라고 의심하고 있는 독일 베를린 대학 교수인)송두율은 이렇게 합니다. 사회주의가 실효를 다 했느냐 아니냐, 누가 좌파냐 아님 우파냐 하는 질문들 이전에 그 어떤 고난과 변화에도 '너는 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의 이 에세이는 다양한 신념들을 가진 사람들이 명멸하고 있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거개가 자신이 젊었을 때 품었던 순수한 정신을 더욱 정련하고 확고하게 하기 보다는 점점 더 시대의 혼탁한 시류에 오염되면서 차츰 썩어들어가다가 급기하 난센스하게 변절해버리는 모습들이었으며, 그는 그로부터 진정 인간으로써의 고위한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기에 그런 길에 잘도 빠져드는 것일까를 고민합니다.

자기 신념을 가지고 죽기는 쉽지만 자기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듭니다. 헤름린은 저녁노을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그것은 귀향의 길.... 되돌아 갈 때 마다 자신이 갈라져 들어섰던 여러가지 갈림길들과 되만납니다. 그리고 그 되울림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 지녔던 원초적 순수성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얇은 책이나 신념을 위해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존엄하게 산다는 것의 진정 어떤 의미인지 가르쳐주는 훌륭한 인생 교과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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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인간 - 가면과 현기증 (Le masque et vertige)
로제 카이와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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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화란의 역사가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이 저서는 그의 <놀이와 성스러움 Jeu et Sacre>과 짝을 이룬다. 그의 전작 <놀이와 성스러움>은 호이징가가 성스러움의 영역마저 놀이에 포함시키는 우를 범했다고 보고, 순수한 내용을 추구하는 성스러움과 순수한 형식을 추구하는 놀이를 구분한다. 한편 뒤이은 후속작인 이 책 [놀이와 인간]은 호이징가가 구분했던 놀이 분류의 기본 범주(경쟁과 모의) 이외에 운과 현기증이란 새로운 범주를 추가한다.

대체로 일괄해보면 호이징가가 목적론적 성향이 강한 놀이론을 편다면 카이유와의 놀이론은 무목적이고 우연적인 요소(현기증과 운)를 중시한다. 이는 그들의 방법론상의 차이에서도 드러나는데, 호이징가가 역사적인 접근을 통해 놀이를 바라보는 반면, 카이유와는 비역사적인 방법, 즉 '놀이'라는 범주의 근본적 특성을 따져 묻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최근 상상력, 이미지, 탈주 등과 같은 미학적(즉 놀이적) 측면의 시각이 영상매체와 뉴 미디어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틀거리로 활용되고 있다. 본 저서는 그러한 시각적 틀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보완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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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마르크스주의 한길그레이트북스 48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 한길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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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Late Marxism에서 late란 '뒤늦은', 혹은 '후기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오래간다'는 쪽에 가깝다고 합니다. [정치적 무의식The Political Unconscious]이란 저서로 유명한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 책에서 아도르노에 대한 기존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자의적 해석에 반대합니다. 제임슨은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과 반체계적 사유가 포스트모더니스트 진영에서 그들이 총체성을 거부하고 맑스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고고조 할아버지 족보를 만들려는 작태를 비판합니다.

아도르노는 총체성을 근본적으로 사유했던 것이지, 총체성 자체를 폐기처분하고 능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거시적 시각을 팽개쳐 버리고 사회를 반영하는 행위자체를 폐기했지만 아도로노는 거시적 시각 혹은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하려는) 서사를 통해 사회를 재현한다는 것의 곤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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