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인 24살 '젊은 작가'를 만났다.

1975년 생인 그도, 이제 내일 모레면 마흔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채!

(저런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을 히라노 상은 무척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만ㅋ)



사실 히라노 게이치로가 한국에 온다는 생각도 못했을 뿐 더러,한동안 그의 이름 자체를 잊고 있었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알라딘에서 단독으로 개최하는 본 행사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꽂혀 있는 그의 책들을 찾아 보았으나...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달랑 두 권, <책을 읽는 방법>과 일종의 대담집인 <웹 인간론> 뿐이었다. 


행사 전날일 14일 금요일 밤, 두 책을 다시 들춰보았다. 


<책을 읽는 방법>은 슬로 리딩(Slow Reading)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인데

소설가이기에 앞서 그 역시 한 명의 독자로서 '프로 독서가의 기업 비밀'이라는 부제가 인상 깊었던 책이다.




이번에 다시 들추면서 우연한 발견이라고 해야할까? Serendipity를 찾게 되었다.

89페이지에서 히라노 상은 다시 읽음, 즉 '재독(Re-Reading)'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면서 똑같은 한 권의 책이라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의식에 따라 그 재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책을 오 년 후, 십 년 후에 가끔씩 꺼내 다시 읽어보라... 우리는 자신의 성장의 흔적을 실감할 것이다...책과 그런 관꼐를 만들 수 있다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의 일부가 될 것이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아래에 적어 놓은 메모이다.



"이 책을 5년, 10년 뒤에 다시 읽을 것인가?" (2008.4.6)


... 정확히 5년 2개월 8일 뒤인 2013년 6월 14일, 나는 <책을 읽는 방법>을 다시 읽게 되었다.

5년 전 내가 이 책에 적어 놓은 여러 메모를 보면서, 내가 5년 간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는,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는 안타까움이 드는 순간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위를 하고 위안을 삼을 부분도 있다는 점에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책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히라노 게이치로와 2008년 책을 통해 만나고 2013년에 다시 만나면서, 

사실은 두 명의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다리같은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전날 밤의 감상은 저물어 갔다.



행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와 직간접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교류를 맺어 온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고 

한국 땅에서 나름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가벼운 소설을 쓰는 일본 작가가 주로 큰 인기를 얻는 반면, 히라노 상의 소설은 분명 그것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식 주제는 "SNS시대의 고전 읽기" 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항 씨의 사회 및 소설가 김언수 씨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약 1시간 반의 시간은

메인 주제와는 조금 벗어난 이야기였다.


우선, SNS 시대를 논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고전에 대해서 그닥 논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읽기'에 대해서 논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명의 작가로서 본인이 소설을 왜, 어떻게, 무슨 계기로 집필하게 되었는가가 중심 화제였다.



개인적으로는 즉시성, 휘발성, 실시간성의 SNS 시대에서는

과연 독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특히 Classic 이라 칭송 받는 고전의 위상이 지속되거나 혹은 재평가되거나 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본 행사에 참가하였는데 그런 부분이 크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일본의 IT 전문가 우메다 모치오와의 대담을 그린 <웹 인간론>은 2006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178페이지에서 히라노 상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  '아비투스 Habitus, 습관'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어떤 사회 환경 안에서 예를 들어 상류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를 몇 번이나 관람하는지...

결국 '계급'이 재생산되는 것은 그런 환경에 얽힌 아비투스의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SNS 시대, 독서에 관한 아비투스는 존재하는가?


오늘날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기사가 매일마다 언론에서 다루어지고

주말에 식당에라도 나가보면, 아이들은 부모 대신 스마트폰과 교감을 나누느라 정신 못차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물질적인 재산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며 행동적인 '습관'까지 포함된다고 보면,

오늘날 SNS와 스마트 혁명 시대에서의 가장 큰 '아비투스'는 어쩌면 '책을 안 읽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구텐베르크 이후 가장 큰 사회 변화'라는 인터넷과 SNS에 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을 따름이다.



롹 스타, 히라노 게이치로


2시간 조금 넘게 열린 대담이 끝난 후, 저자의 싸인회!

기타 연주가 취미였던 것이 와전되어, 한동안 '작가 겸 락커'로 오해받았던 그에게 있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지간한 락커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을 듯.





한명 한명 정성들여 싸인을 해주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서

나도 나름 그의 책을 싸들고 갔었지만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5년 뒤 혹은 10년 뒤 언젠가 또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번 그의 작품을 Re-Re-Reading 하면서 만날 수 있겠지...생각하면서.




p.s.마지막에 Q&A 시간에 비슷한 질문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소설을 소비만 하는 나로서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는 주제였는데 
문화 평론가라는 자들이 말한다는 "소설 무용론(쓸모없음)"에 관해 히라노 상의 의견을 묻는 질문들이었다. 

그건 마치 신작 발표회 자리에서 영화 감독에게 
'영화가 더 이상 의미 없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와 같은 질문 아닌가?

막 신작 소설을 써 낸 소설가(한국에는 9월에 나온다고, 김항 씨가 강조를! ㅋㅋ) 에게 
그런 무의미한 질문이 - 심지어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 어떤 가치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상진 작가님과 함께 하는 덕수궁 나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덕수궁은 우리나라 5대 궁궐중 하나로 원래는 궁궐이 아닌, 월산대군의 사저였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온 선조임금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 때 경운궁이라고 이름짓고, 비로소 궁궐로 승격되었습니다.

 

 


 

왕족의 사저였다가 궁궐로 승격된 덕수궁은 드라마틱 한 역사를 담고 있는 궁궐입니다.

 

1904년 화재로 인해, 건물 대부분이 없어졌고, 대부분의 나무들이 불탔습니다.그래서, 현재 남아 있는

 

나무들은 모두 1904년이후의 나무입니다.

 

1905년에는덕수궁 중명전에서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궁호가 바뀌어 지게 됩니다.

 

고종황제가 덕을 누르면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제로 인해 강제로 퇴위당한 고종의 시련

 

이 묻어 있는 곳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두나무- 앵두나무는5월말부터, 6월초까지 빨간 열매가 열리는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과실이 빨리 열

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앵두열매를 즐겨먹어 심지어 종묘제사를 지낼때도 앵두열매를 제사상에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왕으로 손꼽는 세종대왕께서도 앵두를 참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앵두 중에서도 문종이 따다 바친 앵두를 가장 좋아하셨다고 하네요.

 

 

 

이대- 왼쪽의 대나무처럼 보이는 나무가 보이나요?

 

이것이 이대라는 나무 입니다.

 

삼국지 적벽대전부분에서 제갈공명이 조조군을 속여 화살10만개를 뺏어온 내용이 기억나시나요?

 

그 시절 화살을 만드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던 것이 이 이대입니다.

 

옛날, 이대는 중요한 군사 물자가 되었던 귀중한 나무 입니다.

 

 

모과나무- 모과는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고 할정도로 울퉁불

 

퉁 못생긴 모과 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못생긴 남자를 모과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못생긴 생김새와는 달리 모과는 기침에 효능이 좋아 약재로도 쓰입니다.

 

광해군도 평소 담증이 있어서 모과를 약으로 장복했습니다.

 

하지만, 모과를 진상해야 할 충청도에서 쌀을 찧는다는 핑계로 모과를 하나도 올려 보내지 않아, 광해

 

군은 제때에 쓸 수 있도록 모과를 상납하도록 하라는 친교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중화전의 중앙에 보이는 꽃이 오얏 무늬 입니다.

 

 

성이 이씨인 사람들이 성을 한문으로 쓸때, 李라는 자를 씁니다.

 

 

李는 오얏나무이를 일컷는 말로, 오얏나무는 자두나무를 가르킵니다.

 

 

 

그리고, 이씨의 왕조인 조선은 오얏으로 상징됩니다.

 

 

 

등나무- 등나무는 보라빛 작은 꽃으로, 눈을 즐겁게 하며, 넝쿨로 그늘을 만들어 덕수궁의 쉼터를 만들

 

어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조선시대때는 그다지 환영받는 나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공자가 등나무를 소인배로 비유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소나무가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곧은 절개를 상징했던 것에 반해, 등나무는 대부분의 나무처럼

 

곧추서서 자라지 않습니다.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다른 나무들의 공간을 점령해 버리죠.

 

그리하여 "소인배는 등나무와 같아서 다른 사람에 기대지 않고서는 혼자 일어서지 못한다” 라는 비유

 

되는 굴욕을 앉게 됩니다.

 

 

땀이 뻘뻘나는 더운 날씨에도 2시간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찬찬히 덕수궁에 얽힌 역사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설명해 주셨던 박상진 작가님 정말 감사

 

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눌와출판사측에도 감사드립니다.

 

 

 

중화전- 덕수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입니다.

 

 

 

 

 

 

 

 

 

정관헌 내부- 궁궐후원에 세운 휴식용 건물입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고종은 이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들과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고종은 커피애호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커피와 관련된 독살미수사건이 발생합니다.

 

김홍륙이라는 사람이 부하를 시켜, 고종과 황태자가 즐겨 마시는 커피에 독을 넣은 것입니다.

 

다행히 고종은 입에 품었던 독차를 뱉어냈지만, 이미 독차를 한모금 마신 황태자는 그것을 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독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덕수궁 내부를 둘러보며,

 

찬찬히 조선말기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을 머물면서, 죽는 순간까지 일본을 미워했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고종황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본인으로부터 자신의 부인인 명성황후를 잃고, 일제로 인해 강제로 폐위되어야 했던 왕.

 

사랑하는 자신의 딸인 덕혜옹주를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인인 대마도 지주에게 시집보내야 했던 왕.

 

왕으로 죽지 못하고, 죽어서도 철도를 통해 짐짝처럼 옮겨져 명성황후의 옆에서 안장되어 최후를 보내야 했던 왕.

 

 

과거야 어찌되었든

이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되찾고, 덕수궁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덕수궁의 연못에는 원앙가족들이 평화롭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토요일에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도착하니, 덕수궁 나무 지도와 함께 예쁜 엽서와 책갈피도 선물 받았구요.

 

인자한 모습의 박상진 교수님과 참하신 staff 분들을 따라 덕수궁 구석구석을 누볐습니다.

나무이름, 풀이름 많이 아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이날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멋있어 보이는지 알겠더라구요.

작은 것에 대한 관심, 여러 각도에서 그 나무의 쓰임새와 사연, 특징, 장점, 나무의 입장, 역사속의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실때 재미도 있었지만, 세상과 삶에 대한 관심, 열정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너무나도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는데, 그래도 '경복궁 처럼 그늘 없는 곳 아니고 덕수궁처럼 쉴만한 그늘이 많은 곳" 이어서 얼마나 좋았는지요.

 

다음번에 덕수궁을 방문한다면 친구들에게 아는척 좀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적는다고 적었는데, 책에도 자세한 내용들이 나와있어서 보물을 얻은 듯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또 좋은 기회를 기대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 덕수궁으로 '궁궐의 우리나무' 덕수궁 나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10분 지각해서 ㅎㅎ; 표 사서 얼른 들어갔죠.

다행히 초입에 측백나무를 설명하고 계셨는데 펜을 들자마자 다음 나무로 이동~~

 

 

 

 

유아용 그림책에서나 봤던 그 앵두를 처음으로 봤습니다. 덕수궁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

혼자 답사왔을 때 나무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아 그냥 지나쳤던 곳에서 '꼭! 먹어봐야지'하고 생각할 때쯤

교수님께서 궁궐에 나무들은 약을 쳐서 관리하기 때문에 궁궐 열매 함부러 따 먹다 간 큰일 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앵두 앙증맞고 맛있게 생겼어요. ///ㅅ///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모과는 맛

없다고 합니다. 열매가 맛 없고 못 생긴 게 모과나무의 번식전략이라는 걸 교수님 설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날 찾지 말라고 못 생기고 맛 없는 거라는 말인거죠.

 

 


 

중국으로 부터 유입됐다는데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다네요.
세포모양이 칠엽수와 비슷해 칠엽수로 분류되고, 1억년동안 거의 변하지 않아서 화석식물이라고

불린답니다. 교수님께서 바퀴벌레와 비교를 하시더라고요. ㅎㅎ
화석식물이라 불린 비결이 병충해에 강하고, 고약한 열매 냄새도 한몫해서 그런거랍니다.
우리동네 가로수가 왜 죄다 은행나무인지 알게 됐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받는 곳의 대표적인 곳 성균관! 행단에 은행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행단 :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로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백송은 중국 북경지방의 특산나무로, 흰꽃이 활짝 피면 길조였답니다.

추사 김정희가 할아버지 묘에 백송을 심었다고 하네요.

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를 견재하며 개혁을 준비할 때 성공 유무를 백송으로 점쳤다고 합니다.

어느날 백송이 유달리 흰 것을 보고 개혁 정치의 성공을 확신하고 진행했다고 합니다.

 

한번 가봤던 곳이라 백송하면 통의동 백송을 무의식 중에 떠올렸는데 헌법재판소에 600년 된 백송이라니

북촌 왔다갔다하면서 지나치기만 했는데 떨리지만(?) 꼭! 헌법재판소 내로 들어가봐야 겠습니다.

 

 

 

 

 

TV 사극에서도 뻑하면 나타나는 모란 ㅎㅎ; 그 모란 꽃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어릴 때 복숭아 열매 사진처럼 저렇게 안 익었을 때 자주 먹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뭇잎이

돌돌 말려있다 싶으면 그 속에는 애벌레가 있고 복숭아가 익었다 싶어 나무 타고 올라가서 입에 물고

내려오면 여지없이 그 속엔 애벌레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덜 익은 맛에 푹 빠졌었나 봅니다.

안 익어도 맛있어요. ㅎㅎ

 

보리수, 인도의 부처가 도를 깨우친 보리수 나무.

불교가 중국을 걸쳐 우리나라로 오면서 아열대 식물인 보리수를 가져올 수 없어서 그 대용으로

피나무를 보리수로 불렀다고 합니다.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고 하네요.

 

 

 

 

 

이렇게 튼실하게 자란 회화나무를 보다니 카메라 렌즈에 풀샷이 안 잡혀서 몇번이나 부분부분 잘라서

찍었던지~

창덕궁 후원에 갔을 때 해설사 분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나무들이 나이가 있는 만큼 병충해에 아프기도 하고, 벼락을 맞기도 해서 링거를 맞거나 수술을

한다고 합니다.

껍질이 패여있는 부분이 에폭시인가? 수술 자국이라 말을 들었는데 이 회화나무도 그런건지...

 

 

 

 

 

 

벚나무도 있었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많이 봐온 나무라서 좀 등한시 했습니다.

역사상 벚나무는 궁궐 안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 다른 궁궐은 벚나무를 많이 뽑아

재정비 했다고 하는데 덕수궁에는 몇 그루 남아 있다고 합니다. 베어버리기에는 국민정서에 너무 가까이

파고든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네요. 봄마다 벚꽃놀이하는 일본문화가 너무 친숙하죠?

 

교수님께 잣나무와 소나무 비교법을 배웠습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잎이 2개씩 붙어 있으면 소나무이고, 잎이 다섯개 붙어 있으면 잣나무,

3개는 미국산 소나무, 미송이라고 합니다.

 

 

 

 

창덕궁 외에 나무는 근래에 심은 것들이라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하네요.

 

그리고 교수님께 들은 말씀 중에 가장 귓가에 남는 설명은 무궁화는 국산이 아니라는 겁니다. -_-;;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노래에 세뇌 당해 있어서 추호도 의심 한점 못해봤는데 무궁화의 원산지는 중동이라고 합니다.

귀화종이였다니...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요?; 부끄럽기도 하고 씁쓸하네요;;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걸렸고, 더웠지만 재미있는 교수님의 설명 때문에 더위도 시간도 어떻게 보냈는지

정신없이 후딱 지났습니다.

늦게 도착해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 교수님께 내밀었는데 안주머니에서 싸인펜을 꺼내시며 정성스런

사인도 받았습니다. +ㅁ+

 

 

 

첫 답사는 시간이 안 맞아서 참여 신청을 못했고, 두번째는 신청해서 떨어지고,

세번째가 되서야 다녀왔네요.^^

 

 

 

 

마지막으로 박상진 교수님 몰카 한장 찍어 올립니다!

박상진 교수님과 눌와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 _)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고싶은잎싹이 2013-06-09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고 싶은데 저도 연속으로 떨어지고 있네요..교수님 책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요..마지막에 기회를 주시겠지요.모란이 꽃이 졌지요??제가 2주전에 창덕궁에 작약을 보면서 벌써 계절이 이리 되었구나 했거든요..멋진 후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책읽는노력가 2013-06-11 16:55   좋아요 0 | URL
모란꽃이 한송이도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ㅎㅎ 후기 잘 읽으셨다니 저도 기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궐의 우리나무' 답사 7차인가? 계획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7,8월은 너무 더워서 건너뛴다고 하신 것 같았는데 =_=;; 제가 다녀온 건 3차니까 기회는 더 많습니다. 꼭! 가보길 추천드려요. 교수님께서 책에 나와있는 나무 보다 더 많은 종류의 나무를 알려주신답니다. 행운을 빌게요 ^^

히미나 2013-06-1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가했었는데, 이렇게정리를 잘 해주시니 다시봐도좋네요~감사합니다~

책읽는노력가 2013-06-11 16:58   좋아요 0 | URL
빠진 것도 있는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각한만큼 불량 빼먹고, 석조전 오얏나무 문양 설명은 나무가 아니라는;; 귀차니즘에 ㅎㅎ;
 

오늘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마음 단디 먹고 은평문화회관으로 출발!

우리 집에선 자그마치 50km!! 왕복 100km다..ㅡ.ㅜ

9시쯤이니 막힐 시간도 아니고.. 시원~~허게 내부순환로까지 갔으나...

홍은동쪽에서 완전 막히고..ㅡ.ㅜ 길은 좁고... 신호는 어디를 가리키는지 당췌...ㅡ.ㅜ

거기다 은평문화회관 주차는 만차고........

은평구청에 주차해놓고 막! 뛰어 들어갔다. 

 

이미 강연은 시작되었고.. 사람은 가득!!! 뒤에 서계신 분들도 많았다. 역시나... 좋은 강연인걸 다들 아시고 오셨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강연 녹음을 해야하기때문에 앞쪽으로 기웃기웃~ 하며 걸어갔더니..

두번째 줄에 자리가 딱! 있었다.

냉큼 앉아서 핸드폰 녹음기능을 켜고 강연을 들었다.

 

어제 분당 AK아카데미의 강연도 들어서 알고 있었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재치있게 말씀하시는데.

내 얘기같고. 내가 아는 누구의 얘기같고.... 웃고 반성하고.. 다짐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에 대한 믿음과 아이를 향한 성실함. 그리고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는 자세.

 

아이와 나의 관계를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나 상사와의 관계로 생각했을때. 내가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겠는가?

- 중간에 말 자르고. 소리지르고. 그런 친구를 사귈것인가. 그렇게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절친으로 생각해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 아이의 말을 메모하며 듣기.

 

아이가 20살에 독립할때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성실함과 긍정적인 생각이 생활방식에 녹아들도록 도와주기. 잦은 잔소리보다 보고 배울수 있는 본보기가 되는 것.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아이는 방황을 하더라도 반드시 돌아온다!!!!

- 매우 매우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항상 믿어주기. 아무도 없는 간이역의 벤치처럼. 언제 올지 모르나 항상 그 자리에서 자리를 내어주는 지원군이 되기.

 

 

 

어제 ak 아카데미 강연을 듣고 트위터로 혹시 오늘 강연 내용이 중복되는 지를 여쭤보았었다. 왕복 100km는 아무래도 부담되기에 여쭤본 것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다르다는 회신을 주시어 오늘 강연을 들으러 갔었다.

결론은 100km 그까이꺼.. 아무것도 아닌게 될 정도로 많은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모든 강연을 다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선생님 강연 녹음 파일을 수시로 듣고 자주 깨닫고 반성하고 다짐하며 노력해야겠다.

 

오늘도 행복한 엄마와 아이 그리고 가족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