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필날 - 오늘은 나의 꽃을 위해 당신의 가슴이 필요한 날입니다
손명찬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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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절모를 쓴 하얀 얼굴의 남자는 종이처럼 나풀거리며 꽃 한송이를 공손히 들고 날아갑니다.



누구의 가슴으로 가는 걸까요?





가을이면 어김없이 가을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의 가슴에도 어김없이 마음 꽃을 피우기 위해 찾아가는가 봅니다.





황새가 하얀 보자기에 쌓인 아가를 입에 물고 날아오더라는 신비스러운 옛이야기처럼

소리없이 꽃을 심고 가는 저이의 발자국이 가슴에 스며들면 여기도 '꽃필날'이 되겠지요.











월간 좋은생각의 편집장이자 에세이 [꽃단배 떠가네]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는 손명찬 님의 신간 [꽃필날]을 손에 쥐던 날은 소국 한다발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푸짐했습니다. 어떤 곳은 시로, 어떤 곳은 가벼운 그림으로 마디 마디 꽃씨를 품고 있는 에세이 [꽃필날]을 읽는 그 한동안의 시간은 가을같기도 봄같기도 했습니다. 꽃망울이 막 오르는 싱그런 줄기같은 한 토막, 아련한 오렌지 색 햇살 아래 등을 어루만져주는 바람 같은 한 토막이 번갈아 실려 있어서 그랬지요.








[좋은 생각]의 편집장은 그는 지난해부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좋은생각 홈페이지에 글을 연재해왔다고 합니다. 기쁘게 사는 글, 인식을 뒤집어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글, 우아한 재치로 웃음 주는 글, 짧지만 강하게 다가와 눈물을 쏟게 하는 글 등등 그의 글은 많은 회원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고도 하지요. 한 주의 시작을 마음 꽃을 피우며 열게하는, 그래서 꽃이 끊임없이 피고지는 소담한 화단 같은 생을 보내게 하는 그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 에세이 [꽃필날] 입니다.





뒷표지에 적힌 책 소개와 회원들의 감상평은 너무 믿지 마시기를. 식상한 소개의 글에 실망하거나 섣부르게 평가하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소개보다 훨씬 더 반짝이는 글들이 담겨 있으니 마음으로 읽어가기 전에는 [꽃필날]이 피워 올리는 꽃을 상상하지 마세요.














철학과 종교, 유머와 위로, 자연과 사람을 손명찬 작가 특유의 이지적이면서도 따스한 언어로 풀어낸 글과 시에 읽는 사람 누구라도 삶의 꽃을 피워내길 기원하는 그의 소망이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감동과 격려'는 너무 둔하고 멋없게 이 책의 느낌을 전하게 될 것 같아서 쓰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누군가 수줍게 내미는 꽃, 빨간 꽃잎만 오지 않고 향기부터 다가와 황홀하게 한 뒤에 풍성한 꽃송이, 든든한 줄기까지 다가와 안기는 것처럼, 그래서 웃음도 눈물도 나는 것처럼 [꽃필날] 이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걸 믿으세요...



기쁜 생각에는 기가, 예쁜 생각에는 예가 숨 쉬는데 말이지....

(본문 중에서)







밑도 끝도 없이 감상적으로 흐르기만 한다면 반짝하고 사그러지는 불꽃이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철학적이고 이치적이고 순리적입니다.

날카롭게 각으로 세우거나, 무뚝뚝한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은 따스한 지성.







봄과 여름, 가을에만 꽃이 피던가요.

겨울에도 꽃이 핍니다.

곽재구 시인이 겨울을 '끌어안으면 오히려 따뜻한 것'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이치와 순리로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겨울이든 언제든 꽃송이 같은 좋은 생각이 가슴에 피어나지 않을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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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조한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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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한욱 교수의 칼럼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작년 11월부터 한겨레 신문에 '조한욱과 서양사람'이라는 칼럼을 연재해온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역사의 에피소드들을 우리 사회의 거울로 삼아 왔다.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다분히 드러나는 그 선명한 주장이 어쩌면 이 칼럼의 존재 이유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저자의 정치사회적 목소리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들려줄 낯선 역사 이야기 때문이었다.





페트라르카가 몽방투에 올라 자연의 장엄한 풍경 앞에 남긴 성찰의 메시지, 완전한 지성인이었기에 비난에 매몰된 크리스티나 벨조이오소, 1988년 독일 크산텐에서 펼쳐진 황홀한 평화의 콘서트. 그의 칼럼마다 무대로 삼은 에피소드들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당당히 드러나 있는 표피보다 그 속내가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법. 이미 지나간 시간 속을 조금 더 들춰보고 쪼개며 서양 역사의 깊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나는 일은 역시 재미있다.





그러나 재미는 어디까지나 저자가 집어 낸 서양 역사가 우리 사회 부조리함의 판박이임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만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와 치정자들에게 진절머리를 칠 수밖에 없게 하는 정치사회의 각종 사건사고들이 서양 역사 속 깊숙히 숨어있던 이성의 야만의 재현임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저자의 칼럼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숨이 튀어나오는 우리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 사이사이 들어박혀 있는 조소가 매번 뒷맛을 텁텁하게 한다.






그래서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왜 단순히 역사(와 그 해석)에 대한 궁금증만으로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까, 후회할 만큼 어려웠다. 저자가 꼬집은 '이성의 야만'은 분명 여기에 있다. 국회에 있고, 청와대에 있고, 거리에 있고, 신문에 있다. 그러나 그 이성의 야만이 특별히 누구들에게만, 어느 한 쪽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비를 가려야 할 때, 잘잘못을 따지고 생산적인 향방을 모색해야 할때 '야만'은 더 없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잘못은 꼬집어야 하나 그것이 조소가 된다면 그것 역시 이성의 야만 아닌가. 부조리를 지적하고 개선을 부르짖는 목소리에 덕이 없을 때에도 역시 야만은 여지없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공자는 정치를 正治라고 했고 장자는 덕이 아니면서 오래 가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비단 정치가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 그 쓴소리에 동조하거나 혹은 반박하는 대중들까지도 正과 德을 생각해야 하는 게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어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딛고 살면서 너만 잘못이 있고 나만 옳을 수 있나. 품위있게 잘못을 짚어내면서도 상생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 내 눈에도 들보가 있으니 너도 티끌 빼고 나도 들보 빼자, 이런 형태의 공존은 불가능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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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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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두던 중이다. 몹시 진지한 표정의 상대는 나름 무척이나 예리한 계산을 펴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장기판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차를 대각선 다섯 칸 앞으로 움직이더니 '장이야!' 외친다. 득의양양한 표정. 아놔.....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야, 차를 그렇게 움직이면 어떡해.'라며 다소 황당하고 불쾌한 낯을 하거나 '이건 뭐, 장기의 장도 모르는 녀석일세.'하며 피식 웃을터다. 그러나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부지점장으로 있는 히구라시는 맞장구를 치며 짐짓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턱을 괼 것이다. '와... 대단한 한 수네. 완전히 당해버렸는걸.'





소년만화에서나 만났을 법한 이런 인물들이 중고매장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근데 역시나 예상대로 장사는 잘 안된다고. 개업 2년 동안 꾸준하고 적자를 유지해왔다니 이렇게 성실할 수가 없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아니 어떻게 적자를 면치 못해도 추리를 계속할 수가 있어?'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사실 중고매장의 사장 가사사기와 그의 꼬임에 홀랑 빠져 동업자가 된 부지점장 히구라시는 적자 따위 겁내지 않는다. 소면과 계란에 비빈 밥으로 연명하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탐정본능을 외면할수 없었다. 뭐, 중고매장 운영은 그냥 부업이고 사실 본업은 추리다. 각종 추리소설과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 정확도 0의 추리를 신들린 듯 펼치는 가사사기와 그의 옆에 왓슨처럼 동행하며 그가 저지른 대책없는 추리의 뒷감당을 해주고 있는 히구라시는 그래서 앞으로 얼마가 더 적자가 나더라도 아마 중고매장을 닫을 계획이 없을 거다. 근데 이봐들, 계속 적자만 났다는데 밥에 비벼 먹을 계란은 제대로 사 먹을수나 있는거야?















미치오 슈스케의 신간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원제는 '가사사기 일행의 사계절'이라고 한다. 물론 일본에는 일본만의 정서가 있어서 저런 제목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ㅜㅜ 하지만 '일행의 사계절'에는 '수상한 중고매장'이 담고 있는 매력이 없다. 센스 넘치게도, 이 발랄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발현한 새로운 제목을 지은 북폴리오에게 박수를!!!) 그간 미치오 슈스케는, 환히 드러나는 외형에 가려져 있는 어둡고 음침한 이야기들을 주로 다루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미처 몰랐다. 이 사람 이렇게 발랄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역자조차 새로운 미치오 슈스케를 읽으며 열광했을 정도라고 하니 이제는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그에게 비비드 그린, 민트 블루, 핫 옐로 정도의 상큼하고 귀여운 색채를 입혀주어도 좋겠다.





이상한 놈이 무지막지한 핑크 메기를 끌어안고 있는 표지 이미지부터가 일단 수상하고 파리 한 마리가 유유히 나는 풍경이나 적자를 면치 못해도 추리를 멈추지 않는다는 카피도 허 참 수상하다. 이래저래 수상한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참 수상한데 그래서 참 재미있다. 원래 모호하고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은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타당하고 발랄한 진상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오~ 재미있어!'라고 외치게 된다.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그리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쉬크한 여중생 나미가 있는 그들의 중고매장이 적자인 이유는 국가 경제가 어려워서도 아니고 가게 입지가 좋지 않아서도 아니다. (뭐 어느 정도 그런 영향도 있겠지만;;) 문제는 고객들이나 거래처와의 사이에 반드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청동상 방화 사건, 저금통 파손 사건 등 각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한번씩은 꼭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 때마다 반드시우주같이 넓은 가사사기의 오지랖 레이더가 작동한다. '앞으로 한 수면 체크메이트.'를 외치며 사건 해결에 고심하는 가사사기. 근데 이 체크메이트가 다른 별로 출장을 간 모양인지, 가사사기의 추리는 과녁을 제대로 맞히는 일이 단 한번도 없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그의 상상의 나래를 현실화시켜 가사사기의 행복과 나미의 섬세한 성장기 감수성을 지켜주는 것은 히구라시의 몫이다. 고생이 참 많다.



















요상하고 수상한 가사사기 일행이 말려드는 사건들은 모두 '가족'에 대한 일들이다. 남편을 잃은 뒤 아들을 키우며 무척이나 까칠하고 못된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바짝 여위어 가는 가여운 스미에(봄 에피소드), 전통있는 목공소에 들어가 제자로 입문하지만 여자로서는 힘든 작업 때문에 '가족'을 핑계로 공방'가족'을 저버릴 수 밖에 없는 사치코(여름 에피소드), 이혼과 함께 집을 나간 아빠와 무정해진 엄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미(가을 에피소드), 양아버지와 진심으로 가족이 되어가기 위해 성장통을 겪는 소친(겨울 에피소드). 모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맺어진 작은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모든 사건마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주인공들이 있고 다른 가족들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의 활약 속에 그들은 상처 받은 마음에 위로를 얻고 길을 찾는다. 약간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꽤나 천재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요상한 인물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 속에는 작가가 전하는 위로와 농담이 한겨울 호빵처럼 듬직하고 뜨뜻하게 들어가 있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진틀 속의 사진을 쳐다보면서

이 세상의 다양한 일이 가능한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302 _ 히구라시의 독백 중에서









무심하고 아무 생각없는 한량인 듯 하지만 정의감 넘치는 매력남 가사사기, 손재주가 상당하고 지능지수와 감성지수, 잔꾀지수가 가히 월드클래스인 히구라시, 예민하고 당돌하지만 그 당돌함이 사랑스러운 나미. 작가는 이런 녀석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들의 중고매장을 개업했다고 했다. 만약 작가의 의도가 이 가사사기 일행들의 팬덤을 형성하려던 것이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명중했다. 어떡하지. 가사사기 중고매장의 팬이 될 것만 같다. 나도 나미처럼 날이면 날마다 여기로 출근하련다. 미니 트럭의 짐칸에 히구라시와 사이좋게 구겨 앉아 배달도 가고 말도 안되는 물건도 사오면서 가사사기의 오지랖에 편승해 나의 만만치않은 오지랖을 겨뤄보고 싶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자네들 혹시. 해외 영업을 생각해 본 일은 없나? 일본의 유명 프랜차이즈 '가사사기의 중고매장'. 어이쿠. 생각만 했을 뿐인데 벌써 망조가 보이는구만. 뭐 그래도. 적자면 어때. 추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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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희망 프로젝트 2 - 자궁경부암, 위암, 대장암 편 암 희망 프로젝트 2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엮음, 박지훈 그림, 이수겸 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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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만큼 괴로운 게 또 있을까요.

암은 재발도 잦고 종류에 따라서 조기 발견이 어렵기도 한 질병이죠. 더구나 길고 험난한 투병 생활 동안 많은 치료비가 들고 말기로 치닫게 되면 더 손 쓸수 없어 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번 여름에도 제가 무척 사랑하던 분이 길었던 암투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소천하셨었기에 저는 '암'이라는 질병이 유난히 더욱 무섭고 처참하게 다가온답니다.



북폴리오에서 작년에 암희망프로젝트 - 간암, 폐암, 유방암을 출간했는데 이번 10월에 그 두 번째 시리즈 - 자궁암, 위암, 대장암이 출간되었네요.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서 펴낸 책인데다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읽기 쉬운 [암희망 프로젝트]. 무엇보다 '암'하면 절망이 먼저 떠오르는데 '암희망'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는게 참 마음에 들어요.




스토리 작가 이수겸과 만화가 박지훈이 합세한 [암 희망 프로젝트]는 세상에 쉬운 병이란 없어 암 치료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치료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한다면 암이 결코 두렵기만한 질병이 아니라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암 특별 기사를 쓰기 위해 유재승 기자는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에서 취재를 하게 됩니다. 암센터에는 그의 선배도 있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 은미네 아빠, 자궁암 발견 후 약혼을 파하고 투병생활을 시작한 모란씨 등 많은 사람들이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받으며 투병 생활을 하고 있지요. 암환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전문의들을 두루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 기자는 자신의 습관적인 위 통증이 혹 암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하고 암환자들의 애환에 본인마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유기자의 선배가 결국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퇴원을 하게 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끝납니다. 암투병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죽을만큼 절망스럽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격려하고 암을 무작정 두려워하기보다 전문의들이 전하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해와 인내로 접근하라고 충고합니다.




만화로 경쾌하게 풀어낸 암병동 이야기 뒤에는 자궁암, 위암, 대장암에 대한 친절한 설명들이 이어집니다. 이 장기들의 모습과 종양이 진행된 모습, 왜 암이 발병하는지와 진행에 따른 증상, 치료방법 등에 대해 너무 어렵거나 복잡한 설명을 피하고 간단하고 쉬운 설명을 싣고 있어 이해가 쉬웠습니다. [암 희망 프로젝트]를 읽으며 암에 대한 두려움과 암투병 자체에 대한 무서움이 줄고 질병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암'은 굉장히 어려운 병임에도 특히 최근들어 주변에 암에 걸린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병이지요. 특히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게만 걱정이었던 위암, 대장암 등은 젊은 세대로 그 발병 연령이 확장되고 있다고 하니 당장 아버지 걱정이 아니라 저도 제가 걱정되네요. 특히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자궁암에 대한 설명을 읽고나서 당장 산부인과에 찾아가 검사를 받아보는게 좋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암을 발병하게 하는 음식을 피하거나 운동을 자주 하는 등 예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 정기적이고 꼼꼼한 검사가 아닐까 싶어요. 무엇보다 암은 초기 발견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얼마전 수많은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여인의 향기'의 김선아가 극 중에서 난데없는 암선고를 받았을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는 없기를 바라지만, 사실 암은 조용히 고요히 몸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곤 하잖아요. 예방과 검사로도 어쩔 수 없이 암이 발병했다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정신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 마음 아닐까해요. 드라마일 뿐이었지만 결국 연재도 판정받은 6개월을 넘어서 계속 살고 있잖아요. [암 희망 프로젝트]는 암에 대한 정확하고 명료한 지식과 함께 긍정적이고 끈질긴 암 투병의 의지를 주기 위해 세상에 나온 책이 아닌가 싶어요. 아직 암을 직접적으로 맞닥드린 적이 없는 제가 막연하나마 암에 대한 공포를 지웠듯 이 책이 암 때문에 고민하는 다른 분들에게도 두려움을 덜어주는 좋은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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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 콘크리트 정글에서 진짜 정글로
제니퍼 바게트.할리 C. 코빗.아만다 프레스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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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을 지나면서 부끄러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린데다 예년과 다르게 한 주 걸러 한 주씩 골골대며 보냈던 올 여름에, 나는 결국 꿈만 꾸던 지리산 종주를 다녀오지 못했다. 쓰리고 아쉬운 나의 마음과 빌빌 거리는 몸을 달래준 것은 여행 에세이. 여행 자료들을 꼼꼼하게 담아준 여행 서적은 오히려 시큰둥했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작가의 개성으로 잘 감싸 부친 소포같은 그런 여행 에세이들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특별한 사진이나 자료들이 없어도 글만으로 충분하다. 때로 눈이 아닌 머릿속에서 그리는 게 더 황홀할 때가 있으니까.





여름이 다 지난 지금, 내 부끄러운 여름 취미가 섭렵한 여행 에세이 목록에 뒤늦게 이 책이 발도장을 찍었다.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일상에 파묻혀 앨리스같은 담대한 내가 죽어버리거나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빨간 알약을 삼키듯 짐가방을 들고 떠나거나. 굳이 스물여덟이 아니라도 인생은 언제나 그 사이인 것 같다.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




도심 한복판에서 복달거리며 뉴욕 문화의 첨단을 향유했을 세 여자가 합심해 세계 여행을 떠났으니 당연히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건드리는 어떤 깨달음이 있을터였다. 그토록 긴 여행을 그토록 고생해서 다녀왔는데 가슴과 정신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면 그게 더 빅 이슈. 그래서 이 여자들이 여행지에서 무엇을 느꼈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내 구미를 당긴 것은 동기였다. 스물여덟이라는 중요한 나이에 왠 세계여행? 혼자도 아니고 셋이서.








다른 사람들의 물건들을 집채만큼 큰 보따리로 싸서 나르는 짐꾼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작은 물건에도 하다못해 남이 쓰다 만 항생제 연고에도 감사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름지고 살짝 바랜 것 같은 그들의 눈이 내게는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월스트리트를 걸어가고 있는 어떤 남자보다도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 할리, P110







로프가 끊어지면 어쩌지? 양 볼이 심하게 퍼덕이네. 주의를 기울여. 그렇지 않으면 경치를 못 보고 지나치게 돼.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이것이야말로 하늘을 나는 것과 가장 비슷한 경험이라는 것이었다.

- 젠, P544














서른을 앞두고 있는 스물 여덟(혹은 스물 아홉이나 서른에 이르기까지, 이십대 후반을 보내는 여인들에게 스물 여덟이나 스물 아홉이나 뭐 그리 큰 차이가 있겠나)은 분명 불편한 나이다. 주변에는 벌써 애가 둘인 대학 동창도 있고 오래된 남자친구와의 결혼은 대체 언제 할거냐고 어른들은 성화이신데다 직장에서는 위에서 찍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 분명 아직 빵!하고 터질 열정은 남아 있는데 아무데나 터뜨릴 수는 없고 적당한 배출구가 없어 더 혼란스럽고 불편한 이십대 후반은 그러나,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고민만 하다가 어느새 훌쩍 서른이 되고 서른 중반이 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그런 현실 앞에 뉴욕의 세 아가씨들은 굳은 결심을 했다. 오랜 연인과의 위기도, 경제적인 어려움도 이들의 여행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의 여행은 그들의 일상이 가져온 그런 갈등이 있었기에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갈등이 없었다면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이렇게 늙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용감한 아가씨들의 기나긴 여정이 이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에 담겼다. 그녀들이 여행 가방을 꾸릴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개성 넘치는 사연들과 극적인 의기 투합,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여행. 혹시 별4개 이상의 편안한 호텔에서 머물며 고급스럽고 풍요로운 먹거리를 즐기고 낮에는 명품 쇼핑이나 박물관 관람으로 밤에는 분위기 있는 와인바나 화려한 파티장을 도는 그런 여행을 꿈꾸는 여자라면 이 책의 주인공인 그녀들과 코드가 맞지 않을수도 있다. 제니퍼, 할리, 아만다는 남미의 오지와 정글을 누비고 인도와 동남아를 겁없이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종종 값싸고 푸짐한 현지 식사를 즐기기도 했지만) 며칠씩 이어지는 고된 하이킹을 하며 초코바 하나로 배고픔을 달래거나 바퀴벌레가 드글드글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거나 온갖 소음이 난무하는 여행자 숙소에 지친 몸을 눕히는 그녀들의 여행은 유명한 어르신들의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전 세계 여성들의 실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그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게 되었고 반면에 내가 그동안 엄청난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고 터무니없이 순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아만다, P377












여리고 발랄한 제니퍼,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아만다, 진중하고 부드러운 할리. 마치 삼각형의 세 꼭지점처럼 이들은 서로 균형을 맞추고 존중하며 경쾌한 여행을 만들어간다. 분명 저 세 명 중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노력이 부족했다면 일 년에 걸친 그들의 긴 노정은 분명 중간에 틀어졌을 것이다. 세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 돌아가며 진행된 [스물여덟,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는 드라마틱한 여행의 순간들 뿐만 아니라 더 강하고 아름다운 정신으로 남은 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여행 에세이보다 더욱 재미있다. 내가 그들과 같은 또래라서, 나 역시 그들이 가진 고민과 같은 생각으로 앓고 있기에 그들의 여행기(인 동시에 성장기이자 성찰기)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 주인공 모두 나름의 매력이 가득한 멋진 친구들이었지만 나는 누구보다 할리에게 매력을 느꼈다. 긍정적이고 온화하면서도 신중한 성격의 할리는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기를, 동시에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딱 두 가지 실수를 한다.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할리가 인도에서 요가 수행을 하던 중에 인용한 이 말은 할리의 가슴 속에 있다가 문득 수면 위로 떠오른 것처럼 언젠가 내 인생에서도 다시 떠올라 나의 용기를 북돋워 줄 말이 될 것 같다. 길을 잃더라도 여행은 떠나는 게 옳다. 어차피 인생 자체도 여행이고 우리는 다 나그네인데 길을 잃어봐야 헤매이는 것밖에 더하겠나. 멈추지만 않는다면 헤매다 길을 찾거나, 새로 길을 내거나 결국 길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지금 가방을 싸고 있다.'고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는데, 나 역시 배낭을 짊어지고 청계산 야간 산행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다. 가슴이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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