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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우) - 김용택 시인의 풍경일기 여름
김용택 지음, 주명덕 사진 / 늘푸른소나무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아직도 가끔 나는 그렇다.
비가 그야말로 콸콸콸콸 쏟아지는 그런 까만 날이면 샤워를 하듯 비를 맞고 싶어진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주 그랬는데, 특히 여름방학 때 그랬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고무줄을 하다가, 모래밭에서 철봉을 타다가, 학교 뒤뜰 잔디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비를 맞았다.
달아오른 뺨이 식고 온몸을 세차게 부딪혀오는 빗방울이 내 귓속에 잔뜩 들어와 앉는다.
그렇게 잠시 비를 맞는 동안 어디 냇물에라도 뛰어들었다가 나온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는다. 그리고 날이 갠다.
어둑어둑한 그늘이 저만치 날아가고 햇살이 축축해진 옷 위에 닿으면 나는 마치 부활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와 햇살이 뒤섞인, 야생의 동물이라도 된 듯한 그 살아있는 냄새.
번데기를 벗어던진 나비가 젖은 날개를 말릴 때 이런 느낌일까. 껍질을 깨고 막 볕을 만난 병아리가 이런 느낌일까.
김용택 시인의 강연회를 찾아가서 물었다.
"선생님... 여름이 뭔가요? '여름은 000다' 라고 써주세요"
이 책을 들이밀었다.
선생님은 아주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적고 웃으셨다.
'여름은 눈이 안온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여름엔 비가 온다. 그래서 기쁘다. 얼마든지 비에 젖고 야생의 동물처럼 폭삭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릴 수 있는 그런 계절이다.
이 기쁜 '비'라는 제목의 에세이에는 그러나 자연이 주는 기쁨, 계절이 주는 뿌듯함만 있지 않다.
'미쳐 버린 매미', '많이 굽은 소나무' 등 경고와 교훈의 메시지가 함께 있다.
물론 봄, 가을, 겨울의 다른 시리즈도 그랬긴 하지만 (미쳐 버린 매미 때문인지) 유독 이 에세이에서는 열광하는 햇살아래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다.
이 책이 좋은 건 그 때문이다. '비' 때문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