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 여자로 살고 싶은, 하지만 남자라 불리는 열일곱 청춘의 이야기
줄리 앤 피터스 지음, 정소연 옮김 / 궁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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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동성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 적이 있다. 이성과 논리, 말과 글로 표현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생각과 시각적 이미지로 확인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처럼 낯설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생소함을 아름다운 자연 속에 배치함으로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대자연 속에 펼쳐지는 두 남자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깊은 슬픔을 토해 냈고, 히스레저의 사망으로 영화에 대한 기억은 더욱 비극적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흔히 동성애 혹은 트랜스젠더를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보다 지독한 성적(性的)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전통적인 동양 사회에서는 더욱 심하다. 이 금기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저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을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논리와 이성에 앞서 심정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그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자로 살고 싶지만 남자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그 이름은 『루나』. 밝게 빛나는 태양이 되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뒤 달빛이 되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적절한 이름이다. 작가 줄리 앤 피터스는 커밍 아웃한 레즈비언이다. 작가의 직접 체험에서 길어 온 사유의 깊이는 독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성인들에게도 많은 고민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들은 비정상일까? 정상이란 또 무엇일까?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의 몸이었던 불행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준다. 남자 아이가 여성적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자 아이가 남자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편견의 벽과 마주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집단적 성향과 관습의 벽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단순함, 그것은 그럴 것이라는 편견, 예전에도 그랬다는 안일함 앞에서 우리는 좌절할 때가 있다. 더구나 동성애도 아니고 트랜스젠더의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과 전통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해체한다. 도대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어떤 기호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본능과 욕망, 유전적 질서의 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런 마음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렴풋이 그들(트랜스젠더에 대한 거리두기와 가치 판단 미루기를 위한 3인칭)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가족과 사회 안에서 기대되는 성역할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문화적 관습으로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질서 속에서 이해하는 거대한 사회적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소설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트렌스젠더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남자 주인공의 여동생 레이건이 이 소설의 서술자이다. 오빠 리엄과 언니 루나는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자아를 곁에서 매일 지켜보아야 하는 동생 레이건의 시선은 부모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르다. 밤마다 잠을 설치며 루나가 되는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며 리엄은 가짜이고 루나가 진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레이건의 고통은 루나만큼 심각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루나와 레이건 두 명이 모두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리엄은 현실 속에서 거의 완벽한 남자로 등장한다. 잘생긴 외모와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여학생들에게 늘 인기가 많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다. 열 일곱 청춘으로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어머니의 외면 속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루나는 리엄의 진짜 모습이다. 아무리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해도 루나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더더욱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하고 쇼핑을 하러 나가는 장면은 읽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독자에게 던져진 편견에 대한 비난처럼 느껴진다. 결국, 리엄은 수술을 결정하고 집을 떠난다. 여동생과 이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이 소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특별한 소재와 인상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에 의해 서술된 소설이 아니라 한번쯤 우리 모두가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의무가 아닐까? 내가 가진 특별한 성격과 취향처럼 선택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자.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주변의 소수자들을 위한 작은 관심 그리고 편견 없이 그들을 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있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태도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 (性的) 소수자 이외에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정확하고 섬세한 표현, 탁월한 심리 묘사, 담담한 문체가 이끌어 낸 아름다운 소설 한 권을 누구에게 권해볼까.


1003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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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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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연두

난 연우다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를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우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추 잎을 신나게 갉아 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보기 드문 ‘청소년시집’이 나왔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책을 받아 들고 한참이나 뒤적였다. 최근 청소년 문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출판사마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다. 아동 작가와 기성 작가가 청소년 출판 시장에 뛰어들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고 시장이 형성되어 간다는 말이다. 반가운 일이다. 어린이 문학과 성인 문학의 중간쯤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청소년문학이 자리를 잡아 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문학은 곧 청소년 소설로 인식된다. 다양한 갈래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꾸준히 창작되고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이 필요하다. 특히 시의 경우는 청소년 대상 시가 거의 창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성우의 청소년시집 『난 빨강』은 기념비적인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 및 출판 지원사업에 청소년 시가 당선되면서 청소년문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명확한 시기를 구분할 수 없는 청소년은 어린이와 성인 사이의 미성숙한 인격체를 이르는 말이다. 성인에 가까운 육체적 성숙에 비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스무살 언저리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중, 고등학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박성우 시인은 대한민국 청소년이 겪어야 하는 생활 속의 이야기를 세심한 관찰을 통해 발랄하게 표현한다. 채 여물지 않은, 초록이 되지 못한 ‘연두’가 그들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심부름

누나는 고 삼이다
반에서 일이 등 하는 고 삼이다

그런 누나가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해서,
뒤에서 오 등 정도 하는 내가
밤늦게 만두 심부름을 갔다

너무 늦어서 이 골목 저 골목
문 닫지 않은 만두 집을 찾아 헤매다가
큰 사거리 근처까지 나가서 겨우 샀다

만두가 식을까 봐 뛰어서 집으로 갔다

심부름 가서 딴짓하다 늦게 왔다고
엄마한테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난 뒤에서 오 등이니까,
말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잤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고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대이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성적표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고3이 된 공부 잘하는 누나를 위해 만두를 사러 간 동생의 심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 시는 일상에서 느끼는 청소년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와 시각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똑같은 시기를 거쳤으면서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해 아이들은 오늘도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특히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와 수능 결과로 패배감을 맛본 채 스무 살을 시작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한줄세우기, 승자독식 사회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된 경쟁 구도로 만들어진 기형적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 인간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지만 스무살이 되기 전에, 성적만으로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 ‘공부기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 참고 견디라는 말로만 그들을 위로할 수는 없다.

공부 기계

알람 시계가 울린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공부 기계가 깜빡깜빡 켜진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졸린 공부 기계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간다

공부 기계는 기계답게
기계처럼 이어지는 수업을 기계처럼 듣는다

쉬는 시간엔 충전을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잠시 꺼진다

보충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학원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공부 기계는 기계처럼 집으로 간다

늦은 밤 돌아온 공부 기계는
종일 가둥한 기계를 점검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껌뻑껌뻑 꺼진다


  모두가 똑 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 공부기계가 하니라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서로 다른 특기와 적성을 살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21세기가 되어도 대입제도와 교육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혹독한 경쟁구도는 굳건하다. 이제 그 경쟁이 공정하지도 못한 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다. 신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공부기계가 아니라 ‘난 빨강’이라고 외치는 청소년들의 꿈과 열정에 주목해 보자. 발랄하고 적극적인 아이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학교, 즐겁고 밝은 웃음으로 가득한 가정이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3월이 되면 새로운 학년,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묻고 싶다. 넌 빨강이 되고 싶은지.

난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
빨강 립스틱 빨강 바지 빨강 구두
그냥 빨간 말고 발라당 까진 빨강이 끌려
빼지도 않고 앞뒤 재지도 않는 빨강
빨빨대며 쏘다니는 철딱서니 같아서 끌려
그 어디로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해종일 천방지축 쏘다니는 말썽쟁이, 같은 빨강
빨랑 나도 빨강이 되고 싶어 빨랑
빨랑, 빨강이 되어 싸돌아다니고 싶어
빨빨 싸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나도
빨강이 될 거야 새빨간 빨강,
빨강 치마 슈퍼우먼이 될 거야
빨강 팬티 슈퍼맨이 될 거야
빨강 구름 빨강 바다 빨강 빌딩숲 만들러 날아다닐 거야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빨강,
막대사탕처럼 달달하게 빨리는 빨강,
혀를 내밀면 혓바닥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빨강
빨-강, 하고 말만 해도
세상이 온통 빨개질 것 같은 끈적끈적한 빨강


  박성우의 시는 청소년들이 겪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내용과 소재면에서 그들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에서 겪게 되는 성적, 가족, 이성친구, 사춘기, 컴퓨터, 노래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감없이 그려진다. 시가 아니라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재밌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청소년시집이다.

  다소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경쾌하고 즐겁게 엮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청소년들은 시가 어렵지 않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어른들은 그들의 생각과 고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시집이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시집이 활성화되고 보다 많은 시인들이 그들의 고민과 생각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어 선생님

내가 가진 책들은
어떤 페이지를 펴보아도
온통 국어 선생님 얼굴만 보여준다
책 속에서 아른아른, 또렷하게 나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

찰싹, 내가 내 뺨을 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국어 선생님은 책 속에서 잠깐 사라진다

그러다가는 금세 또 또렷하게 나타나는
내 사랑 국어 선생님은,
내가 펼치는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나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는
나를 등 뒤에서 꼭 껴안아 준다

찰싹, 정신을 바짝 차리려
찰싹찰싹, 내가 내 뺨을 때리고는
얼얼해진 뺨을 가만히 어루만지다 책을 들면

어느내 나는 또, 국어 선생님과 검푸른 바닷가에 있다

말똥말똥 멀뚱멀뚱 내려온 뭇별들과
찰바당찰바당 바다를 거니는 달이 있는 바닷가,
모래밭에 나란히 앉은 내 사랑 국어 선생님이
간질간질 달콤한 귓속말을 해온다 나도 사랑해,

책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100307-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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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yur 2010-03-0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통쾌, 상쾌한 시편들을 마주 대하니
문학의 힘이 느껴집니다. 나이를 떠나서 공감할 수 있는 편편들이었습니다.
박성우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작가란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마술사라는 생각이 드네요.


sceptic 2010-03-28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즐겁게 아주 잘 읽었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짚어내서 공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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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맨 허리에도
제 온몸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꺾이고 마는 노동자에게도

그 허리에 재물 올려 도둑놈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 두룬 재벌의 담벼락에도
그들돠 한패되어 시시때때 벌이는 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축제에도 있다.
있다. 있다. 어디에도 있다. 아아아...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3.8선은 3.8선에만 있는 것은 아냐

- 안치환, 5집 Desire


  깊은 밤에 만화책을 읽다가 눈가에 눈물이 맺혀 천장을 오래 보아야 했다. 하종강은 ‘부채감’ 때문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는데 우리는 그 ‘부채감’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이 시대를 건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역사는 무어라고 기록할 지 자못 궁금하다. 먼 훗날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총리와 서울 시장의 형식적인 사과와 대책 협의가 이루어지고 1년 만에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다섯 명의 철거민은 구천을 떠돌았다. 누구와 왜 싸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죽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모호하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형을 선고 받았다. 과연 용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여섯 명의 만화가가 그린 『내가 살던 용산』은 용산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숨을 거둔 다섯 명의 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그들은 왜, 어떻게 그곳에 있었으며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끔찍한 뉴스로 생각하기 쉽다. 사건의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현상과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태는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그마저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언론의 행태는 참사보다 끔찍하다. 도대체 용산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상림(72세), 양회성(58세), 이성수(51세), 한대성(54세), 윤용헌(49세).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들이 그곳에 가는 과정은 신산스런 삶을 살아가던 순박한 우리 이웃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준다. 돈이 없어 어려운 생활을 꾸렸던 사람들, 장사가 잘 되다가 보증금에 대출금까지 건질 수 없게 된 사람들, 혼자 힘으로 견디기 어려워 힘을 나누던 사람들……. 죽을 정도로 잘못을 한 사람들일까?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어 진압할 정도로 위험한 폭도들이었을까? 왜 살기위해 국가권력이나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 책을 쓴 만화가들은 용산 망루에서 숨을 거둔 유가족과 철거민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야 하는 가족들과 그것을 그리고 써야 하는 만화가들의 만남이 아프게 느껴진다. 한 컷 한 컷 정성스럽게 만화를 보다가 글보다 감동적인 그림을 만나기도 했고 그림의 감동을 뛰어넘는 대사를 만나기도 했다.

  행간을 뛰어넘는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라면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는 것이 만화의 즐거움이다. 김수박의 ‘철거민’, 유승하의 ‘잃어버린 고향’, 신성식의 ‘던질 수 없는 공’, 김성희의 레아호프, 그들이 만든 희망, 앙꼬의 ‘상현이의 편지’, 김홍모의 ‘망루’ 와 용산 참사일지로 구성된 『내가 살던 용산』은 전국민 필독서로 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30여년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 GNP가 높아지고 빛의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우리 현실은 아니 가난한 이웃과 없는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함께 어깨 겯고 웃음과 행복을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앙꼬의 ‘상현이의 편지’는 고(故) 이성수씨의 아들 입장에서 서술된다. 다른 만화보다 특히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와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와 아픔을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한 시대를 공유한다는 것은 시대의 아픔과 구성원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관심과 따뜻한 정성이다. 진실을 알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용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철거민이 그랬던 것처럼.


10030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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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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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암기가 아니다. 하지만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여사를 암기 과목으로 기억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얽혀 있는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기억하기도 바빴다. 시험을 목적으로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그러나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다.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는 얼마나 지루한 흑백 화면인가.

  한 나라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원시시대에서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의 순서대로 역사를 서술하는 직선적 역사서술은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데 유용하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이런 통사류의 역사는 수없이 많다. 평면적인 서술 방법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이 주목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세계사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를 내세웠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가 그것이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욕망은 물질과 동경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쓰였다.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망한다. 서양 근대화의 힘이 되었던 모더니즘, 군주들의 영토확장에서 비롯된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몬스터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세계사의 중심에서 서 있었던 종교를 통해 인간에게 신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20세기가 전문가를 필요로 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적 지식인 즉 백과사전적 지식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다. 학문간 경계를 넘어 창발적 사고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단편적인 지식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정보는 흘러넘쳐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하고 정확한 것들을 수렴,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굴러왔고 때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세계사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과 관점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어떤 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문제의 원인을 달리 진단한다. 원인이 달라지면 결과도 다르다.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통찰력을 기르는 데 있지 않을까? 결국 역사는 인간의 삶이다. 역사는 중심에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놓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은 물론 행동 양식과 삶의 패턴을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세계사를 읽는 즐거움 인류의 발자취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사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설명이 명확하다. 구체적 지식이나 복잡한 흐름에 연연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다섯 가지 힘’과 ‘인간의 감정’을 통해 역사를 읽는다고 선언한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저자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대를 제공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능하게 해 준다. 한 권의 책에 대한 높은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으나 이 책은 다른 책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역사도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세계사의 지루한 흐름도 필요하다. 흥미와 신선함 측면에서만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세계사에 관한 다소 딱딱한 통사적 흐름이라도 읽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읽어 둘 필요가 있다. 이 책 한권으로 세계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둘째, 다양한 관점을 읽혀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가지 외에도 세계사를 지배한 힘은 여러 가지이다. 그 핵심 키워드는 수없이 많을 수 있다. 저자의 관점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책을 풍요롭게 읽어내는 좋은 방법이 된다. 마지막으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설을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 세계사의 흐름과 사건을 저자가 이해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역사는 해석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역사에 관한 다양한 관점의 책들을 읽어두면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저자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거나 조금씩 다른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도 사건도 그러하다. 사랑은 영원히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그렇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수만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한다. 역사학자의 관점이나 깊은 지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지금-여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읽는 진정한 이유다.


10022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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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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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처럼, 잊고 지내던 첫사랑이 생각난 것처럼 반갑게 ‘최승자’를 만났다. 시인을 처음 만난 건 『즐거운 일기』를 통해서였다. 시를 쓰며 살아보겠다는 꿈을 꾸던 무렵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오규원이나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정호승을 만나면서 시인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허접한 글쓰기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이었을까. 적어도 내게는 최승자의 시가 하나의 세계로 보였다. 살리에르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낭패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일기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오늘도 여의도 강변에서 날개들이 풍선 돋친 듯 팔렸고 도곡동 개나리 아파트의 밤하늘에선 달님들을 둘러앉히고 맥주 한 잔씩 돌리며 봉봉 크랙카를 깨물고 잠든 기린이의 망막에선 노란 튤립 꽃들이 까르르거리고 기린이 엄마의 꿈 속에선 포니 자가용이 휘발유도 없이 잘 나가고 피곤한 기린이 아빠의 겨드랑이에선 지금 남몰래 일 센티미터의 날개가 돋고……
수영이 삼촌 별아저씨 오늘도 캄사캄사합니다. 아저씨들이 우리 조카들을 많이많이 사랑해 주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코리아의 유구한 푸른 하늘 아래 꿈 잘 꾸고 한판 잘 놀았습니다.
아싸라비아
도로아미타불


  표제작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을 떠올린다. 당시 상황과 현실에 대한 냉소와 반어가 발랄하게 튀어 오른다. 그 젊은 시인을 다시 만나는 일은 또 하나의 기쁨이다. 나이 들어 많이 아팠다는 시인의 목소리에 기운찬 울림이 아니라 멀고도 쓸쓸한 세계의 침묵을 보여준다.

  영원한 삶은 없다. 찰나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 모든 작가가 한번쯤 부딪치는 문제겠지만 시인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저기 저 ‘먼 세계’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이거나 자웅동체처럼 한 몸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혹은 한 세계를 완전히 잊고 산다. 곧 만나게 될 그 세계를 완전히 외면한 채.

쓸쓸해서 머나먼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박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마치 선문답을 하듯,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시인은 세월의 학교를 졸업한 모양이다. 그래서 ‘바다는 바다, 섬은 섬’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다만 건너야 할 바다가 점점 커져 걱정이다. 우리도 그런가? 걱정인가 바다가 커져서? 나는 무슨 바다를 건너려하는가?

  쓸쓸하고 머나먼 세계를 인식했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을 느낄 만큼 살았다는 말이다. 넓고 큰 이치와 흐름을 읽어내고 작고 누추한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서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하늘을 본다. 해가 지는 푸른시간과 하늘이 없는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보다 끔찍하다.

세월의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지면 먼 바다여서
연락선 오고 가도
바다는 바다
섬은 섬

그 섬에서 문득문득
하늘 보고 삽니다

세월의 학교에서
세월을 낚으며 삽니다

건너야 할 바다가
점점 커져 걱정입니다


  다변이 달변은 아니다. 침묵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온몸으로 진실을 드러내듯 그렇게 시간과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자명해질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어리석은 인간은 지금, 현재를 즐길 줄 모르고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 눈물 흘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보지 않은 사람이 쉽게 죽음을 말하듯 원론과 원론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울타리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라질 것들을 영원히 지킬 수 없다는 자괴감을 견뎌내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는 지당한 말씀.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 사이에 풀이 있듯
숲 사이에 오솔길이 있듯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
죽음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거꾸로도 참이었다는 것이다

원론과 원론 사이에서
야구방망이질 핑퐁질을 해대면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돈이 되어버린 세상,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삶의 참다운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흐린 날에는 주막에 앉아 한 잔 술을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용히,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먼 하늘에 상현과 하현을 구별하지 못해도 달이 둥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듯 만월과 초승달은 하나다. 차고 기우는 자연의 이치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구나 흐린 날, 달은 어떻게 바라 볼 건가. 그래도 어디엔가 달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

흐린 날

자본도 월급도 못 되었던
내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도 아닌 나를 누군가 흔든다
나는 내가 아닌데 누군가 나를 흔든다
조용히 흔들린다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서

만월이 초승달을 낳니,
초승달이 만월을 낳니

차고 기우는 것, 그게
차다가 기우는 건 아닌데

만월이 초승달을 낳니,
초승달이 만월을 낳니

천장에서 비 새는 듯한 흐린 날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초승달이
보이지 않는 만월을 또 낳기도 하겠구나



10022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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