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시선 3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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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해 봄 불 타기 전 낙산사 뒷방에 얼마쯤 머물자고 청했을 때 스님 한 분, 밥값으로 종두일을 권했으나 그만 못하고 말았는데 이제 와 후회한다
- ‘어느해 낙산사 새벽종 치는 일을 권해 받았으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함’ 중에서

*종두 : 절에서 종 치는 일을 하는 사람

말년에 시골에 가 텃밭이나 일구고 낚시나 하며 자연을 벗삼아 여유있게 살고 싶은 게 꿈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이없어 하는 농부나 어부의 심사를 헤아려 보자. 사는 일이 덧없고 한 점 구름처럼 사라져버리는 시간 앞에서 인간의 육신과 현실의 삶은 그저 덧없기만 하다. 허무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욕망에 대한 전혀 다른 관점에 대한 고민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원하는가.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등에서 보여주었던 장석남 시인의 관심은 『뺨에 서쪽을 빛내다』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랑’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말은 반어이거나 역설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미래가 불안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사람들은 ‘사랑’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모태신앙처럼 남들보다 ‘사랑’을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뺨의 도둑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리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뺨‘의’의 서쪽을 빛내는 것도 아니고 뺨‘에’ 서쪽을 빛낸다는 제목을 한참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제목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전작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해가 저무는 시간을 방향을 나타내는 서쪽을 뺨에 빛낸다는 말은 소멸에 대한 아쉬움, 이별 직전의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여전히 부끄럽고 두근거리는 그녀 혹은 그의 뺨을 생각해 보자. 발그스름하게 빛나던 그 고운빛을 떠올려 보자. 그것이 바로 뺨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시인은 그 사랑의 순간을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묵집에서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져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묵집에서도 사랑을 보는 것이 시인의 눈이고 양념간장부터 찾는 것이 우리들의 눈이다. 서글프지는 않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위태로운지 그것만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시인의 시를 통해 미끄러져 깨져버린 묵에서 조차 어느 사랑의 눈빛을 빌려오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시 읽기의 즐거움은 아닐는지.

찬 바람이 불고 어둠이 내리면 사람들은 하나둘씩 따뜻하게 불켜진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가을은 오자마자 뒷모습을 보일 터이고 어둠은 깊어만 갈 것이다. 뺨에 서쪽을 빛내던 사람도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모두가 혼자 남겨지는 시간을 감당해야 할 시간이 온다. 그것을 ‘석류 익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석류 익는 시간

당신은 내게 비단을 주니

그걸 눈에 두르고
더듬어서 내 맘속 둥그런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보네

항아리에 늘 허공이나 담아두는 당신의 뜻을 모르니
붉은 비단이나 두 눈에 곱게 두르고 들어가보면 알려나?

하늘이 온통 노을로 꽃핀
이 부러진 듯 시디신
석류 익는 시간

가슴 속에 ‘허공’을 담고 싶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기적인 욕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간절함 만큼 어리석은 감정이 또 있을까. 그것은 비움과 채움의 문제와 조금 다르지만 결국 붉은 비단이나 두 눈에 곱게 두르고 들어가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시디신 석류 익는 시간’은 견뎌내야 하는 생의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모든 순간일 수도 있다.

죄의식이나 부끄러움보다 사랑과 연민에 대해 마음의 갈피들을 짚어내는 시인의 목소리가 큰 울림을 갖는 것은 장석남의 특징이며 독자들에게 가장 적확하게 시를 보여줄 수 있는 그의 능력이다. 잘 할 수는 것을 계속 잘 하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 다른 생각, 다른 대상들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의 변화가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겠다. 그때 독자들은 또 다른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뿐.

지나버린 ‘처서’에 나는 무엇을 꺼내 말렸을까?

처서

마른 빨래는 방안으로 던지고
덜 마른 빨래들을 처마 아래 건다

나뭇잎이 쩡쩡 소리내며 물든다

전기 검침원의 오토바이 소리 오솔길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나는 바지춤이 풀린 줄도 모르고 그를 배웅했다

담장 밖에 아무렇게나 몸 버린 구절초는 구절초
빈 몸의 옥수숫대 끝에서 새가 울어
건너 산이 건너온다

이해가 가지 않던 일들 몇 내놓기 좋다
덜 마른 빨래를 한번 더 손에 쥐어본다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에 말리기도 했다는 처서가 이쯤이어야지 싶다. 짱짱한 햇빛에 내다 말리지 못하고 그늘에서 천천히 말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들 마음 속에도.

빳빳하게 마른 빨래처럼 건조하고 상쾌하기만 한 인생이 어디 있을까. 매일매일 우울하고 습한 일들이 벌어지는 일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젖은 빨래를 처마 밑에 널 듯 힘들고 괴로운 일들은 조금씩 내어 말려야 한다. 시인은 천업인 ‘시’를 다 지운다는 말로 이 시집을 닫는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자유이다. 있는 것을 없앤다는 뜻이 아니라 경계를 지우고 시의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비어있음 즉 ‘공복을 즐기’고 싶다고 한 것은 아닐까.

비움으로 차오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만 소중한 경험인지 깨닫는데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시를 다 지우다

새벽빛도
홑겹만 남고

시인으로서도 참으로 오랜만에
새벽뿐인 자리에 떨고 앉아
공복을 즐기다

언제 스민 건가?
먹물 스민 손톱을 보며
그믐달처럼 웃는다

공복 창자의 이랑마다
무슨 꽃씨를 뿌릴까
무슨 망아지를 풀어볼까

시의 나라의 국경을 부수고
시의 마을의 약도를 지우고
시를 지우고
시의 자리에 앉아
어라,
아침이 와서
함께 덜덜 떨다



100922-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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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0-09-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집에서 를 읽으면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던 그 어느 시절의 사랑의 눈빛이 아른거리며 떠오르곤 하더군요.

sceptic 2010-09-28 23:21   좋아요 0 | URL
이제 호젓하신가요?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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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역사가 서술될 때 비로소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 P. 14

많은 책을 읽다보면 눈에 띠는 작가와 만날 때가 있다. 오래 사귄 벗을 만날 때 만큼이나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깊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며 삶의 화두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것은 작가의 삶이 온 몸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한데서 오는 감동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잘 벼려진 칼날처럼 예리한 감수성이나 무심하게 던지는 촌철살인의 통찰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지이다.

어떤 분야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열정을 다하다 보면 그러한 경지가 자연스럽게 얻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열정’과 부단한 ‘노력’ 덕분일 게다. 이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안목이 아닐까? 천재적인 영특함과 찰나의 판단력이 주는 날카로움에 경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자의 지긋함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배경식의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는 공부와 연구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어 올린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싶다.

무릇 역사는 영웅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승자의 편에서 서술된 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드시 뒤집어볼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기존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불경스런 도전일 수도 있고 영웅담에 대한 개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진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용기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기도 하다. 영웅은 진정 영웅으로 태어나 영웅답게 살다 죽었을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수십 개의 문장을 걷어내고 줄이고 줄여 단 세 줄의 시를 만들어 낸 시인의 노고를 상찬하기 위해 이 책의 맨 앞에 이 시를 싣지는 않았으리라. ‘너에게 묻는다’는 안도현의 시가 놓인 자리에 따라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인간 ‘이봉창’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자가 독자들에게 먼저 시 한 편을 권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이봉창’의 모습이 우리가 믿고 싶은 영웅이 아닐지라도 함부로 발로 찰 수 없다는 전제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그래서 조금은 무겁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야할 책이기도 하다.

1932년 1월 8일 일본 경시청 앞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만 31세의 젊은 나이에 성공과 실패를 따지기 전에 무모함을 따지 전에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는 저자의 말은 역사적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일제 식민지 일본의 심장부를 노린 일대 사건은 독립운동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저자는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평가절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이 책의 목적은 앞서 인용한대로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있다.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지극히 커다란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것은 아닌가. 평범한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로 살면서 느꼈을 일본인과의 차별,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조선인의 굴레, 천황의 행렬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낼 정도로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인간 이봉창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에 충실했던 그의 삶은 영웅으로 분장된 독립운동가의 모습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천황 폭살을 감행한 이봉창의 용기는 다시 논할 필요도 없다. 다만 거기까지 가야했고 가고 싶었고 갈 수 밖에 없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생이 눈물겹다. 저자는 수많은 자료와 참고문헌을 통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독립운동가 이봉창과 인간 이봉창의 삶을 직조해낸다. 객관적인 자료와 문헌을 통해 만들어진 신화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순간, 이봉창은 오히려 화려하게 부활한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통해 살펴본 이봉창의 삶은 다르지 않다. 영웅이면서 식민지 청년이었던 이봉창을 통해 저자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한국적 근대의 모습이며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아니었을까 싶다.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일상은 비루하고 욕망은 순수하다. 어떤 사건과 행위가 그 모든 것을 가릴 수는 없다. 이봉창이 스스로 지었던 일본이름 ‘기노시타 쇼조’를 앞세워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다고 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이봉창이기 전에 기노시타 쇼조였던 그의 변화과정을 읽어내고 깊은 고뇌와 신산스런 삶을 읽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작가의 ‘이 글은 독립운동가의 영웅담이 아니라 식민지 사회라는 ‘한국적 근대’를 경험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자기고백이자 삶의 기록’이라는 프롤로그의 선언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는 독립 운동가 이봉창이 아닌 수많은 ‘기노시타 쇼조’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0091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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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최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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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많은 논증과 오류의 이름을 외우는 대신에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바로 자비로운 태도다. 그런 태도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 머리가 나쁜 것을 탓할 필요가 없다. 착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논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논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 P. 13

“당신 계속 그렇게 말하면 이따 방송 끝나고 나하고 토론 좀 해야돼!”

이 멘트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정당의 국회위원이 한 말이다. 앞뒤 맥락을 잘라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토론 프로에 나와 말문이 막히지 방송 끝나고 토론을 하자는 말을 하는 국회위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터넷에서 ‘어록’으로 떠돌던 토론 프로그램의 찌질이들이 여전히 국회위원 뺏지를 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을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의견이 대립되고 논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말싸움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과 논쟁에서 이겼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논쟁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류와 억지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이미 논쟁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우리 사회가 참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건전한 토론 문화와 이성적인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도 수정될 수 있고 나의 주장도 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을 따기보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용과 형식 그리고 난이도 등 책을 권할 때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부담없이 누구에게나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을 만난다. 최훈의 『변호사 논증법』이 그렇다. 좀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통쾌하고 시원한 책을 만난 기쁨이 크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를 설득하고 내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항상 내가 옳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 조롱과 풍자, 경멸과 욕설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토론과 논쟁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부족했거나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자비로운 태도’ 즉, 착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역지사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며 자신은 절대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과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변호사의 논쟁 방법을 빌려 오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논리학의 범위 안에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주의해야 하는 원칙들이기 때문에 어렵거나 난해한 방법이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변호사의 논증법 네 가지는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 ‘근거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 ‘입증 책임의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실전 논리와 방법들이 전제가 된다. 이 원칙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제 생활에서 주의한다면 우리는 논쟁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

입증의 책임이나 주장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 애매모호와 정의, 전문가의 견해, 논란이 되는 근거, 인신공격, 감정, 유비, 인과, 일반화 등 국어시간이나 철학, 논리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실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법들이 속속들이 소개된 책이다. 훈련과 실전의 적용은 물론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흔히 범하는 실수를 지적하고 왜 그것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논쟁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논거를 통해 주장하고 오류를 줄여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관련 분야의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고 둘째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귀가 없는 사람과 논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찬가지로 귀를 막고 떠들어 봐야 당신은 어느새 말이 통하지 않는, 논쟁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목소리는 가장근본적인 마음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 함을 강조한다. 복잡한 논증이나 오류는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기술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낸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은 뱉고 나면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이기는 논쟁의 비법이 아니라 보다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마음을 배웠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생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듣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정확한 어법으로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개인적인 다짐이다. 자 이제, 잠시 침묵해 보자.


10091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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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나의 선택 실험실 -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
쉬나 아이엔가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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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일요일 점심,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짬짜면이 추가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택지가 세 개로 늘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자장면, 짬뽕, 짬짜면 중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은 인생을 후회의 고통에 빠뜨린다. 그것은 음식뿐 만 아니라 대학의 전공, 직업, 결혼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된다. 어쩌면 삶이란 선택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그때 그걸 선택했다면……’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으리라.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자. 내 인생길을 바꿔 놓은 ‘그것’은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것 같은 우리 인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모순투성이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이성적 판단에 근거해서 투자를 결정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 같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 등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경제 행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심리학은 말할 것도 없다. 불완전한 인간의 심리를 다룬 『생각의 오류』, 『클루지』, 『거짓말의 진화』, 『가스등 이펙트』 등 수많은 책들이 넘친다. 인간의 마음은 그만큼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쉬나 아이엔가의 『쉬나의 선택 실험실』의 원제는 ‘선택의 예술The art of choosing’이다. ‘선택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100가지 심리실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이 책은 실제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 ‘선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가 ‘선택’을 심리학자 이상의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링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나 『체크!체크리스트』의 저자 아툴 가완디가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분야가 다른 저자들의 혜안이 빛난다.

이 책도 한국적인 교육풍토나 지적 토양에서는 나오기 힘든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17살부터 문,이과를 나누는 교육과정을 통합하고 인문학에 새로운 인식과 교양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통섭원을 설립하고 이런 학문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지만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결국 우리 사회도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쉬나 아이엔가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내 선택의 심리, 선택의 기술, 선택의 함정, 선택의 역설을 통해 결국 ‘인생은 선택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선택하는 자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그의 에필로그는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었던 ‘선택’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에 대한 자연스런 결론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다음 시간, 다음 해, 또는 그 너머를 살짝 엿보고 거기서 보는 것에 근거해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나 아마추어 점쟁이다. - P. 419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의 연속인 인생을 산다. 선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인생의 비밀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왜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 선택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의존적이고 게으른 천성 탓에 누군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근대 이전에는 운명론적 세계관이 지배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고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모든 운명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성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선택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는 데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누구보다도 즐거운 마음과 올바른 선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만 그 선택의 유혹에 대처하는 방식과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제는 개인과 몫이다.

이 책을 통해 사회적 선택이나 집단 선택의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집단지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목적에 대한 사회적 선택은 특정 위치에 있는 개인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이 갖추어진 듯해도 우리가 신경 쓰고 감시하지 않으면 산으로 가는 배를 함께 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선택에서 시작해서 선택으로 끝나는 우리들의 인생을 성찰하고 싶다면 이 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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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슈퍼맨과 배트맨 중에서 누가 더 용감할까?

엉뚱한 상상이지만 현실은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하루하루 시간을 견뎌내는 것 같은 삶이 있는 반면 즐겁고 유쾌하게 창조적으로 이끌어가는 삶이 있다. 반복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새로움을 찾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울하고 만사가 귀찮기도 하며 때로는 하늘을 날 듯 기쁘고 행복하기도 하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고가는 예측 불가능한 삶의 비밀을 알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렇게 고민하고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은 인간 삶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서사의 힘은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개연성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한국 소설이 가진 정서와 세계관은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으나 새로움과 낯선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확장된다고 해도 독자들은 조금 더 새로운 이야기에 포섭되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문학은 세계를 확장하고 인간의 이해를 넓히며 우리 삶의 범위와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크레이그 실비는 우리가 접하기 힘든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다. 지구의 저쪽 반대편에 자리잡은 나라의 작가라는 사실이 먼저 흥미를 끈다.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랍과 아프리카,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 등 유럽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교류가 적은 지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자. 슈퍼맨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별다른 용기가 필요 없다. 일반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슈퍼맨에게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트맨은 연약하고 평범한 보통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공포를 이겨낼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배트맨이 슈퍼맨보다 용감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엉뚱한 질문과 나름대로 일리 있는 논쟁을 통해 이 소설의 서술자인 찰리 벅틴은 베트남에서 이민 온 이방인 제프리 루와 코리건의 토착민 사이를 잇는다. 소설의 전면에 나타나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재스퍼 존스는 원주민과의 혼혈이다. 두 이방인은 전통적인 백인 거주 지역의 이방인으로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멸시와 천대를 이겨낸다.

1960년대 베트남전이 벌어지던 무렵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거나 인종차별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개성이 뚜렷한 세 소년을 중심으로 코리건 마을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추리 소설의 형태로 소년과 소녀들의 성장과정을 재치있고 유쾌한 문장으로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로라 위셔트의 실종으로 온 마을은 공포에 휩싸인다. 이 마을의 또 한명의 이방인 잭 라이어넬은 재스퍼 존스와 함께 세상의 편견과 루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서술자인 찰리를 제외하고는 세상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힘없고 나약한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차이와 차별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비극은 나와 너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피부색과 종교, 지식과 재산의 유무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취급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한 편견과 배태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머리와 가슴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쉽게 드러난다.

백인의 마을에서 벌어진 백인소녀 실종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히는 것은 복잡하고 정교한 소설적 장치 때문이 아니라 1인칭 서술자인 찰리의 솔직하고 실감나는 심리적 갈등과 모든 사람이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 설정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장정일도 지적했듯이 기존의 영미 문학과의 차별성이다. 무수히 많은 영미 소설 속 주인공을 차용하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바치는 오마주라는 띠지를 둘렀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과 개성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우둔한 독자인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인간의 위선과 증오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한 점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든 10대 소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왜 재스퍼 존스가 문제인지 확인해 볼 일이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상황을 얼마나 넓게 둘러볼 줄 아느냐가 어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거야 -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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