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2
마리아나 발베르데 지음, 우진하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 혹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착한 사람들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이 말은 분쟁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 많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고 포기하는 성향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두 사람만 모여도 서로 관점과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와 ‘도덕’은 바로 이런 분쟁 상황에 대한 기준을 의미한다.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현대 사회에서는 ‘법’이라는 말로 규정된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법’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법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법은 항상 인간의 행위와 사회 변화를 뒤쫓아갈 수밖에 없고 법을 만들고 운용하고 판단하는 ‘사람’의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법이 항상 돈과 권력을 움직이고 반대로 돈과 권력이 법을 부린다. 우리는 모든 질서와 규칙과 합의된 원칙들을 법과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에 의해 공식적인 폭력이 가능한 법과 그 구속력과 효력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법치(法治)’는 국가를 통치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법치’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민주시민 권리장전」 두 번째 시리즈 시리즈의 두 번째 『법치란 무엇인가』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우리 삶의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틈엔가 법의 이름으로 규정된 ‘정의’와 ‘도덕’들의 우리들의 행동과 생각을 제한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국가 통치의 목적, 공공선을 위한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대가만큼 제도와 법도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의 대가로 그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 책은 먼저 법치 제도의 중요성과 법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질서유지를 위한 법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법은 이제 인간사회를 지해한다. 사람이 사람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인간을 지배한다. 이것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 정의로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하지만 정말 법은 정의를 실현할까? 그 자체가 모순인 준법 투쟁, 잘못된 입법 과정과 각종 이익단체들의 로비, 입법과 시행 과정의 이해관계는 대다수 국민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투표로 심판하고 하나로 뭉쳐 문제를 제기하는데 소홀하다. 우리들의 삶을 조건 짓는 과정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법의 집행과 경찰의 존재에 주목한다. 근대 경찰의 탄생과 사설 경비업체를 다루고 도대체 경찰의 임무가 무엇이며 주로 어떤 일을 하는데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법을 시행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각국의 상황이 조금씩 다르고 그 역할이 비교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느껴진다. 특히 법 집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딜레마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만의 고민으로 미루어 둘 수 없다. 늘 논란이 되고 있는 성매매, 아편과 코카인 마약을 예로 들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읽는 사람들에게도 고민의 시간을 남겨준다. 최근 연예인들의 도박과 마약 사건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개인적 선택의 문제와 사회의 공익의 문제가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국가는 폭력이다’라고 했지만 공권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결국 국민들의 입장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니 거꾸로 경찰이나 검찰의 태도와 입장을 잘 살펴보자. 답은 명약관화하다. 때때로 ‘중립성’을 외치지만 지나가는 강아지도 웃을 일이다. 어찌 ‘중립’이라는 말이 가능한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경찰과 검찰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민주주의와 정의사회의 구현은 역대 정부가 내세운 식상한 가치이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제도와 법의 테두리를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법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시민들은 끊임없이 경찰의 독립을 감시하고 검찰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적극적인 민주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사회는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그들은 단 한순간도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정의를 가져다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정의와 도덕은 없다. 플라톤의 말대로 정의는 어쩌면 토론과 대화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소통이 가능한 사회는 우리들 스스로가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의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넘어 사람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며 인류 전체의 환경조건을 개선시키는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특수한 상화에서 정의의 개념은 달라질 수도 있다. 수천 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 정의란 항상 토론과 대화의 문제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 85쪽


11020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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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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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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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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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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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나 할 듯한 고민을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장삼이사의 일화, 세상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사건 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했던 내밀한 고민과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갈등이 느껴질 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글들은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에 자원한다. 5년간의 인도 경찰 생활 후 귀국해서 부랑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를 다시 돌아본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의 반전과 그가 남긴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는 왜 쓰는가』를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동물농장』, 『1984』로만 기억되는 조지 오웰은 다양한 글과 소설들을 남겼다. 이한중은 그의 에세이 중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을 묶어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선택한 글들이 읽을 만 했고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읽힌 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영국,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전까지 소용돌이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대응방식이 흥미롭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71쪽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조지오웰은 신랄한 풍자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썼다. 명성을 얻기 전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나 헌책방에서의 경험, 부랑자 생활, 간디에 대한 생각 등을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재치 있고 발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느 시대를 살았던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조지오웰은 백인 영국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랑자를 바라보고, 인도에서의 경찰 생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부족한 점, 간디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그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든 ‘글’은 오래 기억되고 읽히고 해석되고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지오웰과 그의 소설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7쪽

가령 이런 고백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문장이다. 그것이 소설로 어떻게 실현되었고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내면 풍경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표현론적 측면에서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부한 배경지식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시공간적 무대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비틀고 냉소하는 태도는 당대 현실을 넘어 현실을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케케묵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방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도 그의 글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442쪽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통렬하게 다가온 글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재미있는 글이다. 더구나 대가없이 미친 듯 읽고 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공짜 책은 없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짜책 서평이벤트와 서평 관련 잡지들과 기자들 그의 표현대로 ‘꾼’들에게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상적인 문장 몇 개를 옮겨둔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댛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게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 세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6쪽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11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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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
셰리 시세일러 지음, 이충호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한번 들어간 것은 다시 꺼낼 수 없을 테니까. - 토머서 울지(Thomas Wolsey, 1471~1530)

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확인시켜 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질문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셰리 시세일러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은 최소한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흔히 밥을 먹거나 술자리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와 달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모두가 동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것들 예를 들면 ‘폭력 범죄 발생 건수 증가 추세’나 ‘교통사고 사망 건수 감소’ 등의 뉴스는 일시적인 통계 수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과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학 논문 ⇨ 보도 자료 ⇨ 신문 기사 ⇨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 라디오 청취자나 텔레비전 시청자’ 과학이나 건강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원래 정보의 출처는 사라지고 가공되거나 왜곡되거나 일부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우리는 들은 것을 부정확하게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고 과학적 지식과 이론들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만들어진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과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며, 왜 과학자들의 의견이 가끔 엇갈리는지 이해한다.
2. 어떤 쟁점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3. 어떤 결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자세히 파헤쳐 본다.
4. 트레이드오프를 평가하기 위해 적절한 맥락에 대안을 대입해 본다.
5. 인과관계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한다.
6. 어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을 얼마나 넓게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7. 숫자의 마술을 꿰뚫어본다.
8. 과학과 정책 사이의 관계를 구분한다.
9. 논리를 비켜 가기 위해 만든 계략들을 돌파한다.
10.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전문 서적이 아닌 경우 통상적으로 몇 가지 단계나 원칙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이 책도 유사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뻔한 자기계발서 종류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으로 우리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판단인가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심리학과 결합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면,

확증 편향은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확증 편향은 완고한 것과는 다르며, 사람들이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는 문제에만 국한해 나타나지도 않는다. - P. 17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다. 결국 과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과학적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과학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하든 우리 스스로가 자기 최면에 걸리듯 확증 편향을 갖고 잘못된 과학 상식을 길러가든 그것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열 가지 방법으로 모든 거짓말이 밝혀지거나 오해하고 잘못 해석된 사실들이 바로잡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것은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일방적인 관점으로는 다양한 사유 방식으로 신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을 위한 사유 방식의 훈련을 위해서도 저자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실증적인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잘못된 상식과 새빨간 거짓말에 속으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그러할 수 있을까? 사람 혹은 사건?


1101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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