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2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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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로 간 그녀는 인간의 시원을 밝히고 있을까. 고대 동방문헌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허수경의 시인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특별판을 아껴가며 읽었다. 떡제본이 아니라 실로 제본하고 표지까지 풀로 붙여 정성을 들였다. 노트만한 크기의 시집을 눕혀 위로 넘기면서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니 제법 색다른 맛이 났다.

시인을 처음 만난 건 『혼자 가는 먼 집』이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의 목소리는 깊고 넓어졌다. 차고 뜨거운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은 심장의 몫이다.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직관과 감성적 본능이 앞설 때가 많다. 장정일은 젊은 날 시를 썼던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만 시는 여전히 자신의 몫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허수경의 시는 그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크다.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문득 나는 한 공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도심의 가을 공원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저녁에 지는 잎들은 얼마나 가벼운지
한 장의 몸으로 땅 위에 눕고

술병을 들고 앉아 있는 늙은 남자의 얼굴이 술에 짙어져갈 때
그 옆에 앉아 상처 난 세상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얼마나 다른 이름으로 나, 오래 살았던가
여기에 없는 나를 그리워하며
지금 나는 땅에 떨어진 잎들을 오지 않아도 좋았을
운명의 손금처럼 들여다보는데

몰랐네
저기 공원 뒤편 수도원에는 침묵만 남은 그림자가 지고
저기 공원 뒤편 병원에는 물기 없는 울음이 수술대에 놓여 있는 것을

몰랐네
이 시간에 문득 해가 차가워지고 그의 발만 뜨거워
지상에 이렇게 지독한 붉은빛이 내리는 것을

수도원 너머 병원 너머에 서서
눈물을 훔치다가 떠나버린 기차표를 찢는
외로운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나는 몰라서
차가운 해는 뜨거운 발을 굴리고
지상에 내려놓은 붉은 먼지가 내 유목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술 취해 잠든 늙은 남자를 남기고
나는 가을 공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5월 밤 선선한 저녁 공기가 살갗에 닿는 시원함. 푸른 시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다. 그래봐야 아파트 단지 사잇길과 단지 앞에 공원이나 탄천이 대부분 흙을 밟을 수 없는 길들이지만 그나마 야트막한 언덕과 산길이 이어져 있긴 하지만 콘크리트 숲 속에 고립된 섬처럼 애처롭다. 뜨거운 태양과 달리 차가운 달빛이 교교한 밤이 되면 또 하나의 세상과 조우하는 느낌이다.

시인은 유목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기에 없는 나를 그리워했고 술 취해 잠든 늙은 남자를 남기고 돌아선다.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리는 동안만.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차 소리가 났다 잎새들이 바깥에서 지고 있었다

너는 중얼거렸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단 한 번도 뿌리와 소통을 해보지 않은 나뭇잎

울 수도 없었다. 울기에는 너무 낡은 정열이었다

뿌리에서 떠나 다시 뿌리를 덮어주는 나뭇잎

웃을 수도 없었다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다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내밀한 고백.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한 정현종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작은 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중얼거렸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고, 한 몸이면서도 나뭇잎은 뿌리와 단 한 번도 소통을 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 허당은 너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자명한 인식.

웃음이 사라진 사람에게 ‘웃기에는 너무 오랜 정열’이었음을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아프다. 말의 갈피 사이에서 의미가 부서지고 이미지 대신 신음소리만 웅얼거리는 듯하다.

입술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왔다
너는 세기말이라고, 했다

나의 입술이 내 봄 언저리를 지나갔다
나는 세기초라고, 했다

그때 우리의 입김이 우리를 흐렸다

너의 입술이 내 눈썹을 지나가자
하얀 당나귀 한 마리가 설원을 걷고 있었다

나의 입술이 너의 귀 언저리를 지나가자
검은 당나귀 한 마리가 석유밭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거리의 모든 쓰레기를 몰고 가는 바람

너의 입술이 내 가슴에서 멈추었다
나의 입술이 네 심장에서 멈추었다

너의 입술이 네 여성을 지나갔다
나의 입술이 네 남성을 지나갔다

그때 우리의 성은 얼어붙었다

말하지 않았다
입술만 있었다

입술만 기억하는 사랑에 대한 시 한 편. 감각적이고 관능적이어서 슬픈 장면들이 수많은 이미지를 오버랩 된다. 말하지 않았고 입술만 있었던 시간을 추억하며 너의 입술이 나에게로 오고 그 입술은 말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은 얼어붙은 심장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쓸쓸함이거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에 대한 회한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인간에 대한 공포이거나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을 심장이거나.


110608-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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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18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말을 한 시인이 정현종 시인이군요. 저는 최근에야 정현종 시인을 알게 되어 시집을 사려하는 중이에요. 사람 사이의 섬. 눈에 보이는 듯하면서 어느새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섬.
허수경의 시는 유적을 발굴하는 느낌처럼 오래되고 버석거리는데도, 불타는 심장이 느껴지는 신기한 시 같애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인식의 힘님. ^^

sceptic 2011-11-16 23:07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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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더구나 문화유산 답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연휴와 방학이면 해외여행이 붐을 이룬다. 좁은 한반도 그것도 반토막 난 남쪽의 반도에 뭐 볼 것이 있겠느냐는 선입견과 과시적인 해외여행에 대한 욕망은 아닌지.

우리 땅 곳곳에 가보지 못한 곳은 얼마나 많은가. 작은 산, 조그마한 산사를 둘러보는 데도 많은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도를 지나면서 작은 중소도시 읍내까지 점령해버린 〇〇아파트와 〇〇빌라들을 보면 깊은 한숨부터 나온다. 마을마다 특색을 살리고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모습은 각 지자체의 특색이 될텐데 그런 모습으로 마을과 도시를 발전시키고 있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다. 조금 더 시골이다 싶으면 활기가 없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조용한 노인들이 마지막 생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숨어 있다.

인문학서적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어느덧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부제로 6권을 펴냈다. 이제 시즌2로 접어든 답사 시리즈는 농익은 과일처럼 편안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몇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이다. 그 애정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는 인문학적 토대와 정확한 역사적 지식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셋째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문장이다. 현장 답사보다 먼저 텍스트로 문화를 만나는 독자들은 저자의 글솜씨에 금세 마음 한구석의 담장을 허물고 여행 가방을 챙기게 된다.

유홍준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된지 오래다. 소탈한 성격과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할 때 몇 가지 구설에 오르긴 했으나 그것은 공직자로서의 흠결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견고한 공직 시스템 안에서 일을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혔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속도와 성장을 제일의 가치로 삼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이것을 증거하는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할 숙제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색과 성장을 결합하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강을 보존하지 않고 개발하는데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켜야할 것과 사라져야 할 것을 구분조차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라.(생떽쥐뻬리) - 120쪽

이 책은 경복궁으로 시작한다. 오랜 기간에 거쳐 중건한 경복궁의 면모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일은 얼마나 색다른 감회인지 모른다. 고등학교 1학년 봄 문예반 시절 토요일 오후에 향원정에서 만났던 그리메 회원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추억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고 공간은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순천 선암사, 거창과 합천, 부산과 논산과 보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자의 삶과 인생은 물론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이해를 돕는 풍부한 사진과 적절한 설명은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다.

이 책의 부제인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바로 저자 자신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아닐까 싶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상수에게 듣는 우리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고 재밌고 구수하다.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담백하게 우리 것의 맛과 멋을 담백하게 전해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또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챙겨들고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까운 곳들을 둘러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위한 책이고 우리문화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인생은 유수와 같다. 바람처럼 부는대로 물처럼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적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아름다운 것들, 느껴야 하는 것들, 알아야 할 것들과 멀어지게 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고 떠나야 할 때와 돌아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음먹은대로 살 수는 없지만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110606-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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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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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다.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또 그 위에 희망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비루하고 누추한 세상을 견뎌내는 힘겨운 투쟁을 매일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확고부동한 인생의 목표조차도 ‘왜’라는 질문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기 쉽다. 삶은 쓸쓸하고 외로운 법이다.

한 인간의 섬세한 삶의 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관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현실 세계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소설 속의 주인공과 치환시키려는 노력은 모든 독자들의 음험함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수많은 서사를 통해 안도의 한숨을 이끌어낸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조금 특별한 인생에 대해, 개성적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우리는 식지 않는 열광과 냉소를 분출한다.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이름으로 읽힌다. 벨기에 브뤼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탈출 청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서술자의 욕망과 내면 풍경은 우리들의 그것과 멀지 않다. 그것이 소설이든 일상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로기완은 이 소설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한 번도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소설. 작가는 서술자의 눈과 귀와 생각을 통해서만 로기완을 형상화한다.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문득 로기완을 찾아 떠나는 방송작가가 이 소설의 서술자다. 그녀의 주변인물은 이 소설에서 벨기에로 떠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에 애매한 PD와 방송 취재중 알게 된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윤주. 두 사람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일 뿐. 로기완이나 그녀의 소설쓰기와 무관해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159센티미터 47킬로그램의 스무살 탈북청년 로기완이다. 벨기에 브뤼쎌에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그의 행적을 뒤쫓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일까. 누군가의 삶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독자들의 욕망이며 그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려는 반성적 고찰에 불과하다. 일상이 평화로운 자, 죄의식도 없이 고민하지 않는 자, 삶의 의미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궁금하지 않는 자는 이 소설이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물론 특정한 사람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소설이 무슨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설 읽기의 출발과 마지막이 결국 ‘지금-여기’를 돌아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유목민에 불과한 우리 모두의 발자취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술자가 아니라 바로 로기완이 되어 이 소설을 읽어보자. 누군가의 시선으로 추측하고 읽어낸 것들과 로기완이 경험하고 생각했던 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모든 인간관계의 전제가 아닌가.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척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9쪽

작가의 말대로 허술한 것,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리는 일은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매일 반복된다. 어쩌면 나와 너, 나와 세계의 관계는 영원히 허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마취제로 사용되는 사랑, 우정, 배려 등의 정서적 교감이나 정의는 세상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로기완은 결국 세상에 이방인이 되었다. 부모도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이국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유목민.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존재를 증거하는 작은 단서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쓸쓸한 뒷모습과 대면하는 순간 그는 로기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로기완이 관심을 가졌던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천국을 꿈꾸는 인간의 영원한 간절함이기 이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꿈꾸는 비극을 말해준다.

사랑하는 사람, 종교의 절대자, 불같은 신념, 도달하고 싶은 권력, 갖고 싶은 물건 등 인간이 의지하고 노크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나를 완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쓸쓸한 인생을 위무하는 삐에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독자가 아닌 로기완에게 바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은 무표정한 로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 - 189쪽


11060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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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 - 욕망과 좌절사이에서 비틀거리는 21세기적 삶
마이클 폴리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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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은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를 행복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행복의 최소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말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라면 개인마다 느낌이 다르고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의 기준을 제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고 있다. 행복한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목적과 지향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만히 서서 맞는 바람이 아니라 산을 오르고 땀이 배어날 무렵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른다.

인간이 행복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행복할 권리’도 말할 수 없다. 없다. 마이클 폴리의 『행복할 권리』는 ‘행복’을 사기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비법이나 행복해지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생은 부조리하며 행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비꼰다. 맞는 말이 아닌가. 헌법에 보호된 권리는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말장난인 듯 싶지만 그 의미는 깊이 새겨볼 만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행복은 직접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에 대한 집착을 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하루 중 탈아(脫我)의 시간이 길수록, 몰입하는 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마이클 폴리가 말한 것도 그 시간이 가져올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복한 상태란 어쩐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범위, 맨 밑바닥에는 만족감이 있고 맨 위에는 고양감이 있는 범위이다. 달리 말하면, 행복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 13쪽

우리는 행복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는 행복. 그러나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행복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논리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14개의 챕터에서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서와 저자의 깊은 성찰을 통해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궁구하고 고민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저자의 뛰어난 통찰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각자 행복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걸어볼 뿐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주어지는 행복은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지속한 가능한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먼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분노와 좌절은 자주 경험하지만 허무와 무기력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우울과 자살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죽을 힘으로 살아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한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이나 견딜 수 없는 모멸감, 자신도 모르는 사실들이 목을 조여올 때 행복은커녕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매시간은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최초의 시간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 349쪽

이제 매시간 마지막 삶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질 시간인가 보다. 행복은 치열한 삶과 열정 그리고 삶의 성취와 결과물이 주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믿는 대로 보이고 인간은 경험한 만큼 성숙해진다. 우리는 매시간 성장하며 고통 받고 그 고통을 통해 실낱같은 생의 희망을 건져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마치 바로 곁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처럼.


1106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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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변명 -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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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학처럼 답이 없다. 1+1=2.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자명한 진실일까. 인간의 경험과 이성, 판단력과 비판적 안목은 주관적 아집의 결과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진실을 요구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적어도 혼란스럽지 않은 답을 요구한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상황 논리를 들이대지도 않고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수학은 언제나 인간 이성의 바탕이 되었다.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학문이다. 인간이 걸어온 길과 생각한 것들, 만들어 온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희 문사철(文史哲)로 일컬어지는 것은 폭넓은 지적 탐구의 시작이며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은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중심에 놓고 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으로 출발해서 그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자연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대부분 명석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였거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은 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비단 수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지만 일상생활에서 수학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다만 순수 학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응용학문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저자는 수학적 영감, 명민한 이론을 배출할 수 있는 나이는 적어도 40대 이전이라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창조적 수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말년의 수학자가 느끼는 회한은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감회와 다르지 않으리라.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과 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평생 담아왔던 지혜를 반듯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어 독자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는 저명한 영국의 수학자이다. 인생 말년에 자신의 수학적 창조력이 쇠퇴함을 고백하는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은 평생 한 우물을 판 학자의 이야기이다. 2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여느 에세이보다 덜하지 않는 감동과 생각의 여유를 전해준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자문자답하듯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응용수학에 비해 순수수학이야말로 진짜 수학이라고 믿는 수학자의 이야기는 학문적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 생을 살아내고 노년을 맞게 된다. 나이 들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기억할 것이고 평생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름의 생각과 회한이 몰려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너무 빨리 지나간 버린 시간에 대한 허망함 때문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성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수학이 지닌 패턴과 아름다움은 예술에 버금간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보여주는 깊은 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수학의 엄정함을 통해 정밀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어느 수학자의 짧은 인생이야기이며 수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회한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1부터 29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수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1과 1을 더하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1에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을 덧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엉뚱한 답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수학자의 정밀한 문장과 수학의 단정함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110529-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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