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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평점 :
한 달에 나는 얼마쯤의 현금을 ‘만지게’ 될까? 텅빈 지갑을 며칠씩 들고 다닐 때도 흔치 않다. 은행 갈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갑도 두꺼워 플라스틱 카드 한 장만 주머니에 넣고 외출한 적도 많다. 통장에 숫자가 찍혔다가 카드 명세에 나눠지고 그 숫자들은 곧 사라진다. 한 달을 단위로 정확하게 회전하는 숫자의 흐름은 재미있는 게임같이 느껴진다. 돈의 흐름은 마치 눈앞에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비온 뒤의 무지개보다 허무하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숫자들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수의 개념이 부족하고 숫자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이 얼마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계산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현금을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자 가끔 나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내가 사용한 내역에 따라 그것을 분배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기막힌 타이밍과 시간을 맞춰 돈은 돌고 돈다. 그리고 나는 불편 없이 살아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돈과 그리 관련이 없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내 직업의 탓도 있겠지만 하나의 상징과 기호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화폐와 신용카드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가 기억난다. 손으로 쓴 명세서가 봉투 겉면에 씌어있었고 그걸 안주머니에서 꺼내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시절이 낭만적이었을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돈’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아니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유난히 돈과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궁금해서이다. 아이들은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호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자화상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와 짝을 이룰 만하다.
전작 『사회를 보는 논리』와 『문화의 발견』 등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써온 사회학자의 책은 눈여겨 볼만했다.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호기심을 갖게 하며 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삶의 방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인문학이라면 ‘돈’에 관한 인문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에서 출발해야 한다. 화폐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내 삶에서 ‘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인문학은 언어를 생산하는 학문이다. 언어는 생각을 빚어내고 삶을 가다듬는다. 언어와 생각과 삶이 어떻게 맞물리는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 P. 9
인문학적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삶의 토대로 삶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돈’을 이야기하면서 행간에 ‘삶’을 숨겨 놓았다.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은 돈에 관한 지식과 가치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말일 수도 있겠으나 세태를 비판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을 ‘소유’가 아닌 ‘관계’로 바라보는 일이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돈과 인문학, 돈과 책이라니! 하지만 둘 다 종이가 아닌가! 이 어이없는 비교는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하지만 돈, 일, 삶이 모두 한 글자 안에 수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통계자료와 실제 사례들은 우울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한 경쟁시대의 치열함을 넘어 비극에 가깝다. 삶의 태도와 방법을 조금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생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돈에 관한 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가깝게는 내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멀게는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와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온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높은 대학 등록금,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고용 없는 성장, 인색한 사회 환원,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부족한 복지제도…….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높고 ‘돈’은 돌고 돌지 않고 한 곳에 쌓인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김찬호) - P. 271
돈과 책이라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면, 냉소적인 미소를 띠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돈과 일과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나는 누구이며 돈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