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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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자를 자신의 소설에 취하게 할 의무가 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한 작가를 가슴에 품게 되고 오래 기억하며 그의 작품을 찾아 읽게 된다. 그것은 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 등 독특한 개성에 기인한다. 여러 작품을 통해 점점 빠져들게 되는 작가도 있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괜찮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첫 눈에 반해 버리는 작가도 있다. 처음 만나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 펼쳐지는 그 다양하고 내밀한 반응이 궁금할 때가 있다.

 

거기, 당신?으로 처음 만난 윤성희의 소설은 따뜻함이었다. 차마 긴 이야기로, 거짓 소설로 담아낼 수 없어 짧은 시의 언어가 지배했던 80년대를 기억하는 독자들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90년대 소설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까. 거대 담론의 소멸과 여성 작가들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미시적 관점과 내면의 문제에 대한 섬세한 관심은 여성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과 1차적인 관계망을 실핏줄처럼 상세하게 그려냈다.

 

2000년이 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적 충격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자유경쟁 질서의 고착은 삶의 양상과 태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문학 외적 조건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듯하다.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볼 만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나 정도상의 모란시장 여자정도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소설은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 머물며 때로는 독자들을 칙릭(chic-lit)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문학의 위기는 가리타니 고진의 근대 문학의 종언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것은 다양한 통신 매체의 발달과 흥성거리는 볼거리와 놀거리 때문이 아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주변인들에 대한 위무와 개인의 슬픔과 아픔에 호소하는 일관된 방식 때문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윤성희의 소설은 거대한 흐름 바깥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웃는 동안이 보여주는 풍경은 익숙하지 않고 현실 안팎이 뒤섞인 만화경을 연상케 한다. 가령 ‘340분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문장에서는 건조한 모래 바람이 인다. 감정은 메말랐고 익숙한 풍경은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찾아낸다.

 

우연이란 한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을 첫사랑에게 배웠다고 적으리라. - '부메랑' 중에서

 

해설에서 강동호는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는 모호한 문장을 낳았지만 윤성희의 우연은 기적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기대하는 모든 희망을 조롱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죽은 사람 혹은 유령 들은 현실 바깥에서 현실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하지만 그 현실이 특별히 뒤틀리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 혹은 관찰자가 이물스럽다. 그것은 정교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집에는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감기이후에 오랜 만에 만난 그녀의 소설들은 무미건조한 물맛이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커피향처럼 은은하지도 않고 찬 냉수처럼 마시는 순간 감각을 깨우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막힘없이 스민다.

 

투명 인간처럼 서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단편과 단편들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소설을 위해 탄생한 개성적 인물들이 아니다. 특별히 이 시대 밖으로 쫓겨난 소외된 이웃도 아니다. 평범에 기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목 받는 인생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라서 뭐라 명명하기도 어렵다. 주변인?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주 재미있고 나름의 특징을 가진 듯 보이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모두 투명인간이 아닐까. 그래서 놀란 라이언처럼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는 선수가 아니라 아주 느린 공을 던지는 은 투명인간이다.

 

형의 최대의 무기는 느린 공이었다. 너무 느려서 아무도 치질 못했다. 형이 공을 던졌다. 나는 그 공이 날아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느린 공이었다. 아주아주 느린 공, 나는 손바닥이 아픈 것처럼 엄살을 피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볼이야.“ - ‘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281

 

단편들을 다 읽고 나니 스토리는 사라지고 이미지와 밋밋한 문장의 뼈다귀만 남는다. 형체없는 주인공들과 유령들도 사라지고 헛된 일상과 현실 바깥일이 궁금해진다. 소설을 읽는 일은 현실의 메트릭스 안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비춰보는 일이다. 열정도 냉소도 없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멀건 눈으로 창밖을 보는 일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인생처럼 덧없다. 소설을 해석하려는 헛된 노력처럼.

 

우리의 삶은 필연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필연처럼 움직이는 소설의 주인공이나 우연의 무질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우연과 필연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삶의 진실은 아닐까.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묵묵하게 오르고 다시 올라야 하는 시찌프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등산객처럼.

 

필연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기보다, 우연이라는 무질서의 너울 위에서 표랑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인간의 삶이다. - 강동호, 해설 영원히 우연적인 것이 기적을 구원한다첫 문장.

 

 

2012011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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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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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론이 수많은 검증을 견뎌내고 수많은 옳은 예측을 했을 때 그것은 과학적 사실이 된다. 곧 어떤 이론이 대단히 강력한 지지를 받아서 모든 합리적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 제리 A. 코인, 17

 

종교와 과학의 오해 혹은 진실

 

사실(fact)와 진실(truth)은 다르다. 객관성을 기초로 한 사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지만 진실은 컨텍스트(context)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주관적이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진실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만 과학의 영역에서는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이 학문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반복 실험이 가능하거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증거가 필요한 과학이 세상의 모든 진실을 드러낼 수는 없다. 정상과학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증거들은 토마스 쿤의 말대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며 과학혁명을 일으켜 왔다. 이론의 합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노력은 오늘도 여전히 과학의 발전을 추동하며 인류 문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인간 이성의 발달과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해 근대 이후의 종교는 중세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오래 전에 각자의 영역에 대해 합의가 된 것이 아닌가. 종교가 있든 없든 혹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종교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도 매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당대 최고의 과학 출판 에이전트이자 편집자로 평가받는 존 브룩만이 엮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창조론진화론이라는 아주 오래된 갈등으로 구체화된다. ‘창조론은 다시 지적 설계라는 변형된 이론으로 대표된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벌어진 키츠밀러 대 도버 학군 사건은 이 책의 핵심 논쟁에 대한 현실적 충돌이다. 200512월 연방법원 판사 존 E. 존스 판사가 지적 설계를 공교육 기관에서 진화론과 함께 가르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라는 법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진화의 신비는 생명 세계에서 특별하고 신비로워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일상적인 생물학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설명들을 증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 닐 슈빈, 123

 

그러면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후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인접 학문 분야의 발달과 오랜 검증을 거쳐 핵심적인 이론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었던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누구에게나 쉽게 수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대에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창조론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진화론은 수용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각 분야의 세계적인 과학자 열여섯 명은 한 목소리를 낸다.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말이다. 지적 설계론이 사실인지 아닌지 혹은 진실인지 그렇지 않은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과학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더 이상 불필요할 만큼 명확해 보인다. 그러나 과학이 요구하는 어떤 절차적 검증도, 연구도, 논문도 없는 상태로 주장만 난무한 이 이론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법적 판결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이유는 과학의 대결 때문이 아니라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혹은 진화의 과정에 발생하는, 아직 증거가 없는 빈 구멍들은 지적 설계론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아직 인간의 과학으로 인류가 쌓은 지식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의 빈자리를 모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지적 설계로 메워버릴 수는 없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분명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지적 설계를 허구성을 폭로하고 결국 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는 존재를 숨긴 채 지적 설계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한다. 명확하고 논리적인 증거와 그간의 과학적 발견을 통해 지적 설계가 얼마나 무모한 주장인지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들의 주장을 통해 과학의 역할과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신비가 주는 철학적,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종교는 더더욱 과학의 자리를 탐낼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과학과 종교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것은 게으르거나 회피한다고 해서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구적인 논리적 해법이나 사실적 해법이 없는 인간 존재의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과학은 유독 적합하지 않다. 예컨대, 죽음을 피하고, 외로움을 극복하고, 연인을 찾고, 정의를 확보하는 문제들이 그렇다. 과학은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이래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은 오직 이렇게 할 수 있다거나, 이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 스콧 애트런, 166

 

 

20120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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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1
최승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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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시가 되고 시가 노래됨을 어렴풋이 알려준 광석이형 16주기.

 

시는 노력만으로 쓸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타고난 감수성과 언어의 활용 능력은 연습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를 만날 때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눈빛에 감전된 것은 감수성의 백열등이 깜빡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황지우와 이성복의 시를 처음 만나던 순간, 김영승의 반성과 김승희, 최승자의 시를 읽던 느낌, 나른한 5교시 박노해를 낭송해주시던 선생님의 떨리던 목소리 그리고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을 뒤적이던 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먼지 묻은 책장의 앨범처럼 가슴에 남아있거나 무턱대고 과거로 회귀하거나. 아주 오래된 기억의 편린들. 그리고 가끔씩 오래된 친구의 소식을 기웃거리듯 빛바랜 시집을 꺼내들거나 근황을 궁금해 하거나.

 

최승호의 시집 아메바는 낯설다. 기존에 썼던 시들에 대한 반성적 고찰 혹은 그림자 연습.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시집은 일종의 문체 연습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언어와 이미지를 먹고사는 아메바 같은 시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낯선 시집을 읽으며 예전의 시들과 다시 만나고 변형된 이미지, 생경한 리듬, 낯선 의미와 부딪친다.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에 해당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된 자신의 시 문제를 풀었다가 모두 틀렸다는 항변으로 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던 최승호는 이제 대학교수다. 상황이 변했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그의 시를 추동할 만한 내적 긴장과 감수성이 증발되고 있거나.

 

아주 오랜만에 최승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몇 편을 옮겨본다. 그의 실험이거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거나. 혹은 살아있는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쓸쓸한 뒷모습이거나.

 

 

03 나의 두개골

 

나의 두개골 안에

불타는 가시덤불의 거센 불길이

느껴지는 이 싱싱한 밤

 

03-1

 

밤이면 흐느적거리는 시의 촉수들,

뜨거운 두개골의 창문 밖으로는

오월의 장미넝쿨이 흘러내린다

 

 

04 문자

 

문자에 스민 그의 피, 그의 숨결, 그의 고통, 때로 얼음의 책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여온다. 그는 아직 얼음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04-1

 

방산 속의 허연 유령처럼

밖을 내다보는 희미한 얼굴,

얼음의 책의 저자

 

 

14 붕괴

 

붕괴된 백화점

철거되지 않은 거대한 벽면이

폐허 위에 기우뚱하게 서 있던 것과

전봇대를 삼키듯 휘감아버렸던 나팔꽃덩굴을 너는 기억한다

 

14-2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붕괴된 벽에

누가 언어의 사다리를 걸어놓고 기어오를 것인가

 

 

19 우리는

 

우리는 거대한 증발접시 안에서 속이 타는 물방울 같은 존재들인지 모른다

 

19-4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 같은 존재들이다

 

 

36 연중강우량 1mm

 

연중강우량 1mm

아이쿠 사막에선

모래에 뿌리 박은

가시 돋친 혀들이 선인장처럼 자라면서

뚱그런 철퇴 모양 번쩍이는 해 아래 이글거린다

 

36-1

 

아이쿠 사막에선

태어날 때도 아이쿠!

죽을 때도 아이쿠!

 

 

40

 

벽에 머리를 대고

혼자서 가만히 우는 아이가 있다

 

40-2

 

절벽에서 돋아난

마애불(磨崖佛)의 얼굴을

지우개도 없이 지우는 것은 바람이다

 

 

43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43-4

 

뜨거운 무의 목욕탕

거기 들어앉았다 나온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49 한낮의 골목

 

한낮의 골목 텅

빈 골목을 꾸부정하니

지팡이를 짚은 늙은 고독이 지나간다

 

49-2

 

골목, 골목, 골목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사막에는 골목이 없다

 

 

58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58-1

 

물감을 베고 누운 화가처럼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시상에 잠긴다

 

 

20120106-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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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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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부터 사주, 별자리 등 올 한 해가 궁금하기만 하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전 세계의 동향까지 너무 복잡해서 예측 자체가 무의미한 일들조차 다양한 전망들이 쏟아진다. 그 전망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예측가능한 개인의 행동과 심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로 요약된다. 정치적 행위든 경제적 활동이든 모든 사람은 사회화된 패턴 속에서 움직이고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며 보다 나은 삶을 욕망한다. 이기적인 태도와 비합리적인 움직임의 소비기호는 늘 자본주의 사회의 판매자들을 긴장시키고 급격한 사회변화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내일이 궁금하다. 내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이크로 트렌드와 메가트렌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는 현재 사회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일 뿐이다. 넓은 범주에서 개인은 언제나 따로 또 같이움직인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은 쉽게, 아니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천성이라 부르든 팔자라고 부르든 말이다. 유전적 정보를 통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향과 우주의 시공간 속에 운명적으로 결합된 명운이 합해져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면 내면적 자아는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혹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는 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알고 있는 자아(anima/animus)와 사회적 자아(persona)를 일치시키는가. 아니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두 개의 자아가 드리운 그림자의 영역을 말하는가.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는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 후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남에게 전가하여 공격하고 비판한다. 칼 융이 말한 인간의 무의식 영역은 이후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든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부모를 통한 가정교육으로부터 또래집단, 학교교육,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인간에 대한 상반된 태도 등 수많은 조합으로 이루어진 개인들이 탄생하게 된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성찰하는 일은 피부에 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현재 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혹은 의 미래를 알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과 사회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라 관찰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뀔 뿐 개인과 사회 어느 쪽이 분석의 대상이 되든 무관한 일인 것 같다.

 

자기계발될 수 있는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을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인간은 스스로 계발되는가, 아니면 언제나 외부의 조건, 타인에 의해 변화되는가. 또 하나는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관심사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이 읽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책을 꾸미고 있다.

 

먼저 외모를 평가해보자. 567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의 책을 코팅표지로 무선제본했다. 결과는 25천원. 어떤 물건과 비교해도 책값은 항상 가장 저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책값은 더구나 번역서는 다양한 가격결정 요소가 있지만, 내용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게 포장했다. 소장한 후 자주 찾아보고 참고하다가 자손대대로 물려줄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계발서를 낮잡아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히고 나름의 운명대로 흘러갈 책으로 보이지만 책의 표지와 디자인은 잔뜩 힘을 주고 권위를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 안타깝다.

 

전체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말하자면 소설처럼 두 주인공의 부모님부터 연대기적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 마치 고전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부모님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구체화된다. 에리카와 해럴드는 어떻게 일과 사랑을 이루며 그들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저자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는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큰 틀과 체계를 세우지 않고 연대기적 소설 기법을 활용한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상의 주인공의 내세워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간과하기 쉽다. 책의 내용은 사실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심리학적 요소를 설명하고 다방면의 전문가와 방대한 저서가 소개된다. 핵심적인 내용을 짚어내고 간략하며 설명하며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 관계를 맺는 양상, 선택의 순간에서 발휘되는 능력 등을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어 이해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반면에 특정한 주제나 내용을 장으로 구별해 놓았으나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고 읽고 나서도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음식점으로 치자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에 해당되겠다. 넓고 고급스런 인테리어, 온갖 종류의 음식, 즉석요리와 다양한 음료, 신속한 서비스와 만족스런 사람들의 표정. 그러나 문을 나서는 순간 뿌듯한 포만감이 아니라 잔뜩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알 수 없는 허전함.

 

이 책은 결국 비범한 성취와 행복으로 이끄는 조건, 과정, 방법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두루 살피고 있다. 의사결정과정, 인간관계, 학습, 재산, 문화, 지능, 자기통제력, 실수, 집단사고, 도덕, 본능, 정서 등 두 주인공의 생활을 통해 다른 자기계발서와 달리 실제 생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생생한 현장감은 미국사회의 가장 화려한 면을 부각시키며 기회의 땅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목표와 가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1%의 행복에 도전하는 이 책은 2011년 미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피로가 극대화되고 있는 99% 현실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1%가 아니라 99%를 위한 세상을 고민할 시점에 1%의 삶을 꿈꾸며 그것이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그 안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난감하다. 나쁜 책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지는 않고 싶은 애매~한 책이다.

 

 

2012010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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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문할 때 사람들은 타인의 서평이나 신문기사를 얼마나 참고하는지 궁금하다.

혹은 유명 서평가와 북로거(파워블로거)의 글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러 가면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의 서평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특히 신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빌렸을 리 없고 서평용 도서를 받았거나 관계자이거나 친인척이거나.

그리고 내용은 객관적이지 않고 주례를 세울 확률이 높다.

공짜로 책 받고 악평을 썼다가 먹게 될 욕의 양과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한 발빠른 손익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것이다.

특히 각 인터넷 서점, 각 포털의 우수, 파워블로거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의 서평이 올라온다면,

십중팔구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다. 서평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광고다.

회당 10만원, 주당 1~2회 서평 제의를 하는 사이트부터 다양한 제안을 하는 프로모션 업체까지.

그 분들은 몇명이 혹은 누가 제안에 응하고 있으며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차피 운영하는 블로근데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공개여부다.

그리고 그 서평과 책 구매여부의 상관관계다. 순수한 매니아와 책벌레를 찾는 일은 그래서 더욱 어렵다.

대형출판사가 아닌 경우 몇몇 인터넷 서점 메인을 점령해야 하는 어려움, 광고홍보비의 부담 등 여러가지 이유로

블로그 마케팅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가 직접 쪽지를 보내 책을 보낼테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일까지 벌어진다.

숨어있는 좋은 책을 찾아읽고 함께 나누고 광고에 휩쓸리지 않고 옥석을 가리고 내 몸에 맞는 옷을 고르듯 내게 필요한 좋은 책을

골라 책 표지를 넘기기까지는 많은 수고로움을 이겨내야 하고 깊은 안목도 필요하다.

어디 책 뿐일까마는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책 한 권 주문하기도 험난하고 숨어있는 책을 보물찾기는 더욱 어렵고 어느덧 책이 떨어지면

늦은 겨울 밤 담뱃갑이 빈 취객처럼 마음이 급하다. 미리 목록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고 책을 살펴두지 않으면

즉흥적으로 주문하게 되는 책이 끼어들고 광고에 속거나 본전을 헤아리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게으름의 대가!

미리 준비하고 계획세워가며 계통과 주제를 생각하고 분류해 놓은 빈 구멍을 메우지 않더라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다가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운동을 하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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