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최형선 지음 / 부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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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동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도의 발달된 언어의 사용과 소통 능력,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 등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은 생각보다 작은 차이에서 출발한다. 다른 동물들도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습성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 된 현대 사회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그 자연 속에는 다른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나무와 숲과 강과 맑은 공기뿐만 아니라 그 안에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진화과정은 인간의 진화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형선의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는 새겨 읽을 만한 책이다. 단순히 동물들의 생태를 쫓아 그 습성과 특징을 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글이 아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하나의 숭고한 생명체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진지한 자세로 기술되어 있다. 필자가 이 책을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서술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빗대기도 하고 인간 삶의 조건들과 대조하기도 하는 부분들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다.

깊은 성찰과 철학적 관점으로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습성에서 인간의 삶을 반성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동물들의 신체적 특징과 속성은 바로 인간을 돌아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살아남은 동물들의 모습은 오래된 시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중생대와 고생대로 거슬러 올라가 동물들의 조상을 상상해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겨우 백 년도 안되지 않은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경쟁과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다른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아야 하는 연쇄 작용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치타의 사냥법, 줄기러기의 이동, 낙타의 사막행, 일본원숭이의 배려, 박쥐의 기회주의, 캥거루의 지나친 모성, 코끼리의 여유, 바다로 간 고래 등 이 책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야생 동물들의 생태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표적인 동물의 비밀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보다도 더 극적인 적응력과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은 동물들의 슬픔을 읽어낸 것은 나만의 독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이 짊어진 고독이라는 운명처럼 우리는 다른 동물들의 숙명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볼 필요가 있겠다. 그 큰 덩치를 이끌고 생존 경쟁에서 ‘인내’ 하나만을 미덕으로 삼아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낙타의 당당함을 보라. 포유동물이면서 당황스런 상상력으로 바다로 뛰어든 고래는 또 어떤가. 우리는 삶의 불가해함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동물인들 그렇지 않은가. 대자연 속의 인간은 그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험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이겨 내면 삶의 자세가 진중해진다. 낙타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설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늘 심오하고 조신해 보인다. - 79쪽

이 책의 제목처럼 낙타가 왜 사막으로 갔는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생태적, 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뻔한 답보다도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우리는 왜 때때로 낙타나 고래 혹은 줄기러기와 박쥐와 코끼리와 치타처럼 행동하는지 돌아보자. 왜 그런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얄팍한 지혜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호기심과 다른 종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미덕이 아닐까 싶다.

동물생태학 책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처럼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 너무 심각하게 밑줄을 그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책과 지식과 정보는 내 삶에 대해 화두를 던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타인에 삶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듯이 다른 종을 통해 인간의 생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말처럼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슬픔을 다른 동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오늘도 내일도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모든 종(種)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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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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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앞에서 모든 인간은 겸손해 진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는 사람은 내일 죽을 것처럼 현재를 즐긴다. 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빛내는 문자는 인간의 육신과 달리 오랜 시간을 견디고 또 견뎌낸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문학은 선택적으로 기록된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역사는 살아 숨 쉬게 된다. 몇 줄의 기록과 시대적 상황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면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문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기록과 보존에 부실하여 씨줄과 날줄처럼 한 인물의 삶과 그의 글들이 엮이지 않을 때는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우리는 언제나 행간을 읽어내며 시대를 통찰하고 현재를 조망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기록의 재현이 아니라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싶은 욕망이며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고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팩션(fact+fiction)이다. 절친한 두 사람의 삶과 글은 서로 얽히고설켜있다. 이옥(1760~1815)과 김려(1766~1821) 바로 그 문제적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정조의 문체 반정에 연루되어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태도와 그 후의 삶은 사뭇 대조된다.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18세기에 경박한 소설식 문체인 소품체(小品體)로 글을 썼던 이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왕의 눈밖에 난다. 그의 삶은 그걸로 끝난 것과 다름없다. 그에 비해 김려는 조금 나았을 뿐 평생 가슴에 멍에를 지고 살았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를 상상하게 된 작가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이옥의 아들이 김려를 찾아와 문집을 내달라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평생 이옥이 쓴 글들을 읽으며 김려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경상도 삼가현으로 귀향 가는 길에 쓴 『남정십편』과 삼가현에서 쓴 『봉성문여』가 대표적인 이옥의 소품이다. 결국 이옥은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옥에 비하면 평범한 글에 안주해 버린 김려의 회한을 상상하며 작가는 두 사람을 모델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문(文)으로 도(道)를 실천한다는 재도론(載道論)이 시대정신이었던 조선에 태어나 재기발랄한 글로 자신의 재능을 감출 수 없었던 이옥의 생애와 사상은 이 소설에서 김려의 관점 재조명된다. 소설적 감동은 이옥이 친구의 귀향지를 따라 방랑한 사실을 그의 아들을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냈지만 이 책은 소설로 읽기에는 로 아쉽거나 혹은 아까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보면서 2006년에 나온 『고전문학사의 라이벌』(한겨레출판)을 떠올린 건 자연스런 일이다. 정출헌의 ‘이옥 vs 김려’ 편을 다시 꺼내 뒤적인다.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두 인물이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영혼을 불어넣은 공은 당연히 작가 설흔에게 돌아간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고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다시 살려내는 일은 후세 사람들의 자연스런 욕망일까?

이옥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빈궁하고 어려워도 자기의 마음이 거절하는 일은 도무지 하지 못하는 사람. - 147쪽

소설가 김훈은 “신념이 가득한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들을 신뢰한다.”고 말했지만 이옥은 신념이 강한 선비도 아니었고 정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도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옥과 김려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문체 반정의 이면을 파헤치고 시대정신을 되돌아본 것 같다. 글은 틀 안에 가둘 때 생명을 잃고 마는 것이니 네모난 시대의 사각형 글에서 벗어난 글들이 견딜 수 있었겠는가. 빵빵한 집안의 박지원처럼 놀고먹으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옥의 존재감이다. 김려의 환상 속에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주인공격인 이옥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김려의 이옥의 아들이 주고 받는 대화, 김려의 기억과 현재 상황들이 맞물려 추리소설처럼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재미있게 읽으면서 당대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이덕무를 다룬 『책만 보는 바보』와 다른 스타일의 책이지만 조금 더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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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 개정판 문지 푸른 문학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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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오월이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 불곡산에 올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란하는 태양은 등산로에 어른거리며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아파트 숲을 거느린 산자락의 오후는 고즈넉했다. 도서의 허파 역할을 하는 중앙공원 도로 주변은 길 건너편까지 주차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나 푸른 숲에 갈 수 있는 대한민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도 삶도 그러한가?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국의 학생들은 한줄서기를 끝냈다. 어린이날과 주말을 끼고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가 계속된다. 돈이 없으면 부모, 자식 노릇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과 모두를 챙겨야 하는 어른들은 또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다. 현실은 언제나 녹록치 않고 세상은 언제나 푸르게 빛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책에는 있는 것 보다 없는 게 더 많으니까(하지만 그런 조용함이나 편안함 따위는 시험에 안 나온다). - 45쪽

아주 오래전에 발표된 청소년 성장 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이기 전에 현실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겪게 되는 사춘기는 그야말로 생각의 봄이다. 누가 사춘기를 겪지 않고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불행은 그 사춘기를 철저하게 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니 어쩌면 지나간 사춘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후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 1500여명의 대량 해고 사태를 맞으며 출범한 전교조는 1999년 7월에 합법적인 조직이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고 학교도 변했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교를 통해 학생이 배워야 할 가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경쟁 위주의 대입 제도와 현실적 가치만을 요구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은 대다수 학생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았다. 교사가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참 삶의 주인이 되는 참교육의 깃발을 들었던 교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왜냐’ 선생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국어교사다.

주인공 선재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사춘기의 방황과 내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지만 그 갈등은 현실의 견고한 벽에 기인한다. ‘왜’라는 질문이 끝없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은 질문을 원천 봉쇄당한다. 그럴듯한 논리와 너를 위한 충고라고 던지는 말들은 모두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부모없이 세상을 견뎌야 했던 선재의 누나 입장에서 보면 제 앞가림을 해야 할 선재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청소년기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고뇌가 아닌가. 인간은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하지 않는가. 부모가 되면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되지 않았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 선재는 전형적인 사춘기 문학 소년에 불과하다. 현실의 모순을 관찰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왜냐 선생이 쫓겨난 후 온몸으로 저항하는 말더듬이 친구, 입시에 번번이 낙방하는 친구, 돈 많은 친구 등 그의 주변에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흔한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선재는 일기체 형식으로 고2에서 고3 여름까지의 시간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어나간다. 기존 질서에 저항할 수도 없고 세상을 버릴 수도 없는 미성숙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고 이유는 단순하다. 선재의 고민이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성장소설이 고전이 된 것은 시대와 상황이 변했지만 인간이 겪는 성장통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선재가 겪는 방황과 내면적 고통, 현실적 모순에 대한 분노, 미성숙한 존재로서의 한계 등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문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국어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여전히 객관식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내 생각보다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할 만한 생각이 더 중요한 현실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논술시험과 입학사정관제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성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공정한 경쟁과 개선된 입시 제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의 교육과 자기만의 삶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교사와 학생과 부모가 이 소설을 읽는 방식이 다르듯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학교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을 한 줄로 세워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다양성을 포기하는 교육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소설의 힘은 세다. 선재와 그 친구들이 이제는 어른이 될 만큼 한참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조금 변했을까. 우리들의 교육은 어떻게 변했고 아이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 아니라 모두 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있는 일보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 108쪽


11050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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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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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인간의 능력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도 없고 짐작하기도 힘든, 그래서 운명이라고 말해버리는 것들 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이다. 사람이 태어나 나이를 먹고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우주로 확장해 보자. 신산스런 인간의 삶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소설이다. 한 시대를 공유하면서도 인간의 이기적 욕망은 타인의 삶을 짓밟게 된다. 나눔과 배려, 공감과 신뢰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공선옥의 『꽃 같은 시절』은 천운영의 『생강』과 또 다른 방식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한다. 공지영의 『도가니』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의 추악함과 공선옥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그들만의 견고한 네트워크는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권력이든 자본이든 가진 자의 지키려는 욕망과 더 가지려는 욕망은 못가진 자의 뺏기지 않으려는 욕망보다 훨씬 집요하고 강력하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정글의 법칙이 사실은 인간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끝없는 경쟁과 탐욕에 눈멀어 타인의 삶에 눈 감아버리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공선옥은 누구보다도 가슴이 뜨거운 작가다. 정겨운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선옥의 소설은 언제나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저마다 무지개처럼 다른 빛깔로 빛나고 문학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꽃밭이다.

이번에는 시골 할머니들이 주인공이다. 시골 마을에 돌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시골 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언제든 돈이 되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살던 대로 살아가게 내버려 두라는 할머니들의 외침에 우리는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하나.

이 세상에는 돌공장 소리 말고도 지렁이 울음소리도 있다는 것을, 철수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며 영희는 감자밭에 몸을 엎드리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 108쪽

버려진 집에 스며든 젊은 아낙네와 할머니 그리고 소설을 쓰러 내려왔다가 이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엮어낸 『꽃 같은 시절』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슬픈 우리시대의 자화상이다.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을 만한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들 삶의 조건과 우리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들이 가진 마음의 갈피들, 돈과 권력이 조정하는 세상, 버려지는 농촌 문제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저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읽혀도 충분하다.

제목 ‘꽃 같은 시절’은 할머니들이 경찰과 군청에서 ‘디모(데모)’라도 할 수 있는 시절이니 얼마 좋은 시절이냐고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 아니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통렬하고 지독한 반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견고한 콘트리트처럼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2011년 1월 할머니들은 싸움에서 졌다. 권력은 자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법과 제도가 대다수 평범한 서민들의 편을 들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역사가 잘 알고 있다.

시대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따라 독자들은 다양하게 반응해 왔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좋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소설도 좋지만 현실에 발딛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학이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고 비판적 시각만 유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문학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공선옥의 장편 『꽃 같은 시절』은 전라도의 방언을 기막히게 담아냈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가 충청도 방언의 구수함을 잘 담아 낸 것처럼 이 소설은 지역 방언이 우리 문학을 얼마나 풍성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할머니들의 입담은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공선옥이 아니면 쉽게 담아내지 못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훈훈하고 따뜻하게 이 소설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은 순전히 작가의 할머니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만 그 경계선을 우리는 언제나 넘을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타인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무엇인지는 ‘자본과 권력’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닌 너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작가는 부드러운 목소리도 되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이웃은 행복하십니까?


1105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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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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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그리고 우리. 자아의 확장 과정은 곧 타인과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나와 너를 구별하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은 조금씩 발달해 왔다. 나와 너를 넘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사회과학이 아닌가. 사회와 과학이라는 어색한 개념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코드를 읽어내는 다양한 방식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경제다. 불합리한 인간의 경제 행위, 수많은 생각의 오류, 비이성적인 사회 현상을 우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논쟁한다. 각자의 관점이 다르고 해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현재의 모든 순간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 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과거와 현재의 결과로서.

『88만원 세대』로 촉발된 세대 논쟁을 넘어 이제는 현실적인 삶의 질과 희망의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했던 시절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극렬한 논쟁과 장하준의 당돌한 비판적 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온몸으로 이 시대를 체감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비롯한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문제는 주택 구입, 사교육 심화, 직업의 안정성, 조세 형평성, 사회 안전망 등 무엇 하나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우리의 목을 조른다. 우리는 훌륭한 국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석훈의 신간을 망설이다 손에 들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우석훈의 스타일대로 써 놓은 비체계적 인문서에 가깝다.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철학과 역사를 경제학으로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계별로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사회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의 방법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충돌하면서 융합된다.

따라서 우석훈의 강의를 들으며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의미를 읽어내기에는 조금 난삽하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사회과학의 구체적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 아니라 이론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공감과 울림이 적다. 지금까지 우석훈이 보여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강의 자료와 수강생들과의 소통 과정이 드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책에 담겨 전해질 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간과했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떤가. 각 장에서 정리된 내용이나 쟁점들 하나하나는 버릴 것이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고 생각해 볼 문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게다가 짤막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다음 장과 연결시키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시도한 장점이다. 읽기와 글쓰기가 한데 어우러진 책은 글쓰기 책이 아니면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흐름에서 이야기의 맥을 짚고 통일성 있게 전개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기존의 이론서에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과학은 결국 ‘현실’을 다루는 과학이다. 가설은 가능하지만 실험은 불가능한 사회과학은 다른 학문과 성격이 다르다.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과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이론은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사회과학이 왜 필요한 것인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명쾌하고 분명한 현상과 이론적 잣대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류가 축적해 온 수많은 지식과 과학적 탐구 방법이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다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는 정도가 아닐까.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글을 탐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제공하고 사회과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은 책이다. 대면 상황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스토리 텔링으로 구체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저자 특유의 맛깔스럽고 담백한 전달 방식과 분명한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계속 그의 책을 기다리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110429-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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