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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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십년 만에 알고 황당했다. 여덟 장 짜리 컴필레이션 앨범 중 두 장은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채 CD사이에 꽂혀 있었다. 잡스런 CD와 빈 케이스를 버리려고 정리하다가 발견한 여덟 장 사이의 두 장은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이니 선물한 사람에게 미안해졌다. 컴필레이션 앨범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뷔페와 흡사하다.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잔뜩 쌓아놓았지만 뭘 먹었는지 알 수가 없고 무엇보다도 각자 먹는 속도와 양이 달라 수시로 오로지 먹는행위에만 집중하는 방법도 내키지 않는다. 좋은 것만 골라 놓는다고 해서 최고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전체적인 어울림이다.

이런 방법은 음악뿐만 아니라 책도 가능하다. 목적과 방향에 따라 다르게 기획되고 편집될 수 있지만 독특한 아이템이 아니면 잡탕 찌개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문학사상에서 나온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됐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창작 노트를 한데 모은 책이다. 동시대의 소설가들에게 듣는 창작론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읽을거리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열일곱 명의 작가를 한 번에 만날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다만, 한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짧다는 아쉬움은 뷔페의 모든 음식을 무한정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한 권의 책으로 만나는 여러 작가의 창작론은 서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는 색다른 장점이 생긴다. 김경욱부터 함정임까지 가나다순으로 배열된 작가들의 나이와 개성이 제각각이다. 자신의 소설에 대한 창작론이라니 본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많이들 곤혹스런 눈치다. 작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고 창작의 과정을 들려준다. 독자들은 맛있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소설가들의 편안한 형식의 진지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을 떠올리고 인물을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방식과 소설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른지 즐기면 되는 책이다. 숱한 질문과 심각한 고민은 필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혹시 읽지 않은 작가라면 그의 소설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경욱은 자신의 창작론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실존적 전언을 떠올려본다면 화자와 주인공의 타자성이라는 지옥을 작가가 견뎌낼 때 실존의 문학은 문학의 실존을 견인하지 않았는가. - 김경욱, 25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며 스스로 다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화자와 주인공은 분명 작가에게 지옥일 것이다. 그것을 견뎌낼 때 문학의 실존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우선 독자들의 기쁨이다. 살아 숨쉬는, 손에 잡히는 또 하나의 세계와 마주하는 기쁨을 욕망하는 독자들은 기꺼이 작가들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다.

 

이외에도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이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소설과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나열하고 보니 그들이 보여주었던 소설의 세계가 중첩되며 펼쳐지고 저마다 다른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그 즐거운 비명은 독자들을 위해 충분히 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 아쉽다. 지난 90년대, 2000년대 소설들의 치열함이. 개인적인 소회겠지만 현실 사회에 대한 분석과 이해 치열한 고민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다.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고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 인간의 삶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비밀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작가들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새로움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여기의 현실적인 고민과 아픔들을 성찰하는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 아닌가.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 자는 동안에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는 김연수의 말은 창작론을 넘어 삶에 대한 반성이 아닌가 싶다. 자는 동안에도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분석이기 전에 작가의 소설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사랑을 외친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고 어디서나 사랑을 욕망한다. 그러나 그보다 지독한 미움과 분노와 폭력이 난무한다. 나르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사랑과 세속적인 조건과 관계를 고려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과 이별이든 삶과 죽음이든 친구와 가족이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의 삶을 견디고 있는지 모른다. 보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욕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작가들은 어떤 창작론이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다. 수많은 독자들은 여전히 소설을 통해 잠을 자고 꿈을 꾸기 때문이다.

 

120208-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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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묻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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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Slow it down

속도를 늦춰요

 

Make it stop

그리고 멈춰요

 

Or else my heart is going to pop

안그러면 내 심장이 터져버릴거예요

 

`Cause it`s too much

왜냐하면 너무나

 

Yeah, it`s a lot to be something I`m not

그래요 그건 너무 내가 아닌게 되잖아요

 

I`m a fool

난 바보에요

 

out of love

사랑에서

 

`Cause I just can`t get enough

충분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The sun is hot In the sky

하늘의 태양은 뜨거워요

 

Just like a giant spotlight

마치 큰 스포트라이트처럼

 

The people follow the sign

사람들은 표지판을 따라가죠

 

And synchronize in time

동시에 말이죠

 

It`s a joke Nobody knows

이건 우스운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죠

 

They`ve got a ticket to that show

그들이 그 쇼의 티켓을 가졌단걸요

 

Yeah

...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에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Just enjoy the show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I`m just a little bit caught in the middle

난 잠시 중간에 멈춰있을 뿐이에요

 

Life is a maze and love is a riddle

인생은 미로같고 사랑은 수수께끼같죠

 

I dont know where to go I can`t do it alone I`ve tried

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시도는 해봤지만

 

And I don`t know why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I`m just a little girl lost in the moment

난 한순간에 길을 잃은 한 소녀일 뿐이예요

 

I`m so scared but I don`t show it

난 너무 무서워요 하지만 그걸 보여주진 않아요

 

I can`t figure it out

난 알아낼 수 없어요

 

It`s bringing me down I know

그게 나를 힘들게 해요 난 알아요

 

I`ve got to let it go

그냥 놔두려고 해요

 

And just enjoy the show

그리고 그냥 쇼를 즐기면 되겠죠

 

 

Lenka‘The show’가 아니라 영화 <머니볼(moneyball)>에서 빌리 빈(브래드 피트)의 딸(캐리스 도시)이 부른 ‘The show’를 잊을 수가 없다. 간결한 기타 소리, 함께 맑은 눈동자, 간결한 기타 연주 그리고 감정이 배제된 덤덤한 목소리가 남긴 여운이 길다. 좋은 선수는 다른 구단에 죄다 빼앗기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메이저리그 만년 최하위 오클랜드 애슬랜틱스의 단장 빌리 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천문학적 스카우트 비용을 거절하고 팀에 남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The show’를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쇼를 즐기라고 인생은 쇼에 불과하다고. 최고의 고교 선수였지만 길을 잃었던 빌리 빈에게 야구는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인생이다. 선수가 아니지만 전대미문의 20연승을 달성하는 과정은 우리들 삶을 의미심장하게 상징한다. 잃어야 얻을 수 있고 도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와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우리는 때때로 철학에게 묻는다, 삶이 뭐냐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철학, 삶을 묻다는 이 질문에 답한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철학자들은 똑같은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할 뿐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열두 명의 철학 전공자가 우리들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각각의 주제를 깊이 있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대중적인 철학서를 표방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대신 주제에 대한 명쾌하고 정확한 접근으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건강한 욕망, 병든 욕망이라는 주제로 1장을 열어주는 윤구병 선생님의 글은 삶의 본질과 바탕인 생명과 공동체적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2장부터는 디지철 시대의 소통과 관계 맺기, 사랑과 결혼과 가족, 다문화, 소외, 자유, 상품 생산과 소비, 대중문화, 환경과 기술 문명, 인권, 종교 등 우리들이 매일 겪고 있는 삶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현상과 본질이 뒤섞이고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헤맬 때가 많다. 철학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딴지를 걸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혼란스런 생각들을 정리해 주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준다. 사는 건 그냥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과로 말할 수 없고 과정만으로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은 어떤가. 주체적인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주체적인 사유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닌가. 그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누군가가 엿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드러냄으로써 타인과 과감하게 상호 소통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관여할 기회를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면의 일기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자신만을 위한 독백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한 심경 고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공간에서 일어나는 관계 맺기의 특징이다. - 48

 

철학사상연구회에서 내놓은 책들이 괜찮았다면 주저 없이 선택해도 좋은 책이고 읽은 적이 없다면 직접 확인하고 살펴가며 책을 고르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철학자들의 주저와 고전을 섭렵하기 전이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에 관한 2차 저작들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몇 장이라도 직접 읽어보고 문장의 난이도와 내용, 책 전체의 방향과 목적을 확인하고 읽는 것이 좋다.

 

대부분 교수가 직업인 사람들의 글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기 쉽다. 이도저도 아닌 글을 만날 때의 낭패감을 피하고 싶다면 꼼꼼하게 직접 살피는 것은 최선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적절한 난이도를 유지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보다 대중적이고 편안한 모임과 연구들이 보편화되고 다 함께 읽고 쓰는 일이 일상화될 수 있으려면 조금 덜 일하고 다함께 나누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 김성우는 허용된 자유와 허용되어야 할 자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계몽이 약속한 성숙과 책임과 해방보다는 계몽적 근대성의 본질인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와 억압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미래 사회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맹신 하에 본래적 의미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 줄 인권의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 137

 

가장 절박한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노동법과 노사협상 과정을 가르치는 유럽과 친기업 정책으로 철저하게 대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떡볶이, 순대까지 군침을 흘리고 3, 4대로 이어지는 재벌들의 파렴치한 자본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도둑질하며 기술개발 의지를 꺾는 대기업을 위축시키지 말라고 공언하는 대통령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한가.

 

철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밥숟가락 문제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며 나와 너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는 일차원적 사고 방식으로는 현상과 본질을 구별할 수 없으며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이 책은 철학이 삶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삶의 영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가슴이 아닌 머리에게 물어볼 시간이다.

 

 

120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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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교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안소현 옮김 / 파이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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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콜 키드먼의 <래빗 홀>과 브래드 피트의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생의 불가해함을 읽어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에 대한 분노와 허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창동의 <밀양>과 또 다른 관점에서 두 편의 영화를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웰컴 투 마이 하트>는 그 슬픔에 대한 미국식 해법과 위로를 보여준다. 네 편의 영화는 단순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죽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행위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면 누군가의 죽음은 철학의 시작이다. 그것이 생물학적 죽음이든 <자전거 탄 소년>의 시릴처럼 이별과 부재로 상징되는 존재론적 죽음이든 말이다.

 

오가와 히토시는 철학의 교실에서 죽은 철학자들을 교실로 호출한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 3명과 30대 미혼 직장인 그리고 40대 초반 주부에게 철학을 이야기하는 철학자를 생각해 보자. 첫 시간에 등장하는 하이데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핵심을 설명한다. 청중은 고교생과 직장인과 주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형식을 갖춘 책이라면 난이도와 깊이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중요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열 네 번째 시간에는 저자인 오가와 선생인 등장한다. 전체 열 네 개의 강좌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헤겔, 칸트, 퐁티, 레비나스, 아렌트, 롤스, 플라톤, 알랭, 푸코, 마르크스, 사르트르, 니체가 등장한다.

 

이들이 무작위로 호출당한 것은 아니다.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철학교실에서 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설명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영화 <웰컴 투 마이 하트>에서 말로리는 더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는 거냐고 묻는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하이데거는 첫 시간에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라고 말한다. 삶은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을 이야기하는 헤겔, ‘이성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칸트, ‘고민을 이야기하는 메를로 퐁티……. 한 시간에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며 그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도식화 시켜놓은 메모는 독자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관념적일 수 있는 철학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유의 흔적들을 몇마디 개념어와 화살표로 정리하는 것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지만 철학이 막연하게 어렵거나 두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겐 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 세운 핵심 요약집은 아니다. 간략한 분량이지만 핵심적인 내용과 개념들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권도 읽지 못한 철학자도 있지만 책을 몇 권 읽은 철학자의 강의는 알기 쉽고 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헤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개인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국가는 늘 국민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55

 

이 책이 장점 중 하나는 저자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이지만 교실에 둘러앉아 철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느낌이다.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철학 카페로 설정했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겠지만 어쨌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고교생 다운 질문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사무의 이야기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장적인 강의가 아니라 편안한 대화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토론 수업을 하는 기분이 든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문득문득 라는 질문을 한다. 반복되는 생활, 지루한 업무, 하기 싫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기도 한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런지 질문하고,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배려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플라톤이 들려주는 연애이야기, 니체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노동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은 살아가기 위한 자연적인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음식을 만들거나 빨래를 하거나 이른바 생계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 일은 비자연적인 활동을 가리킵니다. 일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나 건축물 같은 공작물입니다. - 159

 

그리하여 다람쥐처럼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탈주를 꿈꿀 수 있는,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철학자들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나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삶의 태도와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러셀이 말했듯이 정답을 찾는 대신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 되지 않을까.

 

프랑스의 현대 사상가 들뢰즈는 탈주를 이야기했습니다. ‘탈주는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그곳에서 일탈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입니다. - 164

 

 

12013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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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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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붙이려고 목숨 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여 자유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정체로 삼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할 것인가. 과연 21세기형 빨갱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사회 민주주의로 양분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가치가 아니라 제도에 불과하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이전에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정치 제도를 실험해왔다. 현재까지 검증된, 가장 인간적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하지만 이 제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형된 형태를 띠며 변화해왔다. 정치 제도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제도에 최선은 없다. 정치권력의 부침과 선택에 따른 결정일 뿐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100년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낡은 이념대립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라고? 바보야 문제는 안보야!’라는 헤드라인을 단 인터넷 신문이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걸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안철수식으로 말하자면 상식의 문제다.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순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나라를 떠올려 보자. 가깝게 한미FTA’를 위시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준은 미국이 아닌가.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꿈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준거집단 미국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미국은 가장 선진적이고 완전한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가장 잘 사는 나라, 완벽한 안보를 갖춘 나라, 민주주의가 완전하게 실현된 나라가 미국일까. 미국 시카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로 하버드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우리에게 미국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를 제공한다. 한국의 사회학자의 미국 비판, 한국 유학생의 유럽 이야기 등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서양 이야기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콤플렉스로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이야기는 어떤가.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구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로 생각하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 교수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의 변호사가 전하는 미국과 유럽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을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은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초점은 유럽에 맞춰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독일에 집중되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되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일의 통일과정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미국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미국식 삶과 유럽식 삶을 적나라하게 비교한다. 그간 수많은 책들을 통해 끝없이 비교해 왔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통계적인 방법으로 계량적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미국과 유럽을 비교체험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하게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는 1부를 앞세워 베를린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을 통해 구체화 시킨다. 개인의 직접 체험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이 책의 한계일 수 있지만 피상적인 현상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바탕과 인문학적 사유를 토대로 한 비교 체험은 작가의 주장에 신뢰를 부여한다. 미국과 유럽, 아니 미국과 독일은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 체험이다. 1%를 위한 나라와 99%를 위한 나라, 선택은 잔인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상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부나방처럼 모든 국민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초법적 욕망, 노동자를 무시하는 풍토, 직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점검해 보는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성공 신화에 목매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관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사람에 의한 미국 사회에 대한 심각한 경고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은 건강한가를 물어야 한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려야 한다며 수십조를 쏟아 붓는 대통령은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선택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 지도자를 갖게 마련이라지만 우리에겐 지나치게 가혹하다. 한미 FTA, 인천공항 매각, KTX 민영화 추진 등 그들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곰곰이 따져 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아니 미국식인가 독일식인가. 그것은 가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냉정한 현실의 문제이며 우리들 삶의 문제이다. 선택은 잔인하고 결과는 참혹하다. 우리에게 미쿡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의 미래인가, 반면교사인가.

 

 

12012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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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선언
알랭 바디우 지음, 서용순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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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다, , 무엇 때문에 알랭 바디우를 읽고 싶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컨대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 부분이 좋았거나 그의 철학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거나.

 

철학은 때때로 삶의 도피처가 되거나 가장 실용적이지 못한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인간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웅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철학은 그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철학을 밥과 물만큼이나 꼭 필요한 무언가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우리가 철학자들을 우리 시대를 위한 독창적이고 확인 가능한 연료를 제시하는 사람들로 이해한다면, 또한 주석가들과 필수 불가결한 원로들, 공허한 에세이스트들을 무시한다면, 철학자는 열 명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 철학을 위한 선언, ‘가능성, 41

 

철학을 위한 선언사랑 예찬을 연달아 읽으면서도 1989년과 2009년의 사이만큼이나 철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20년의 시차를 둔 책들이지만 문제적 철학자의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두 책의 내용과 성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철학의 방법과 태도가 철학을 위한 선언이전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방법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고 사회적 상황 등 외적인 조건들이 주는 충격도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철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관련된] 정세를, 다시 말해 진리들의 사유 가능한 결합(conjonction)을 발언하는 것이다. 철학은 시대의 균열에 대해 사유하고, 자신을 조건 짓는 것을 반성적으로 비틀기 때문에, 대체로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조건에 의해 지탱한다. - 철학을 위한 선언, ‘조건들’, 58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서용순의 해제가 우리를 먼저 기다린다. 바디우 철학의 흐름과 철학을 위한 선언의 지위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주는 이 글은 본문을 위한 에피타이저로 적절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바디우의 지적 연대기를 그의 저작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다른 책을 읽으면서도 도움이 될 듯하다. 바디우는 사르트르와 알튀세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68혁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마오주의에 경도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70년대의 마오주의를 거쳐 바디우의 철학을 가능케한 존재와 사건은 그의 주저가 된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담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바로 철학을 위한 선언이다. 이 책은 철학의 종말 운운하던 당대에 던져진 일종의 도발이다. 어찌 보면 생뚱맞은 제목이다. 모든 선언은 도발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바디우는 수학, 정치, 예술, 사랑등 네 가지를 진리 생산의 절차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 예찬은 그를 이해하는 아니, ‘사랑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이 된다.

 

사랑은 만남이라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둘에 대한 진리의 생산이다.’(철학을 위한 선언, ‘사건들’, 123)는 정의는 사랑에 대한 시각이기 전에 철학에 대한 관심이다. 세상에 진리는 존재하는가. 바디우는 모든 진리는 대상이 없다.’(철학을 위한 선언, ‘문제들’, 134)는 말로 답을 대신하다. 주체와 대상에 대한 철학의 오래된 논쟁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결국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엇이거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해서 우리는 사랑이란 만남을 넘어서 사랑이 기초 짓는 순수한 둘에 대해 충실하다고 선언하고, 남성과 여성이 있다는 유적 진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은 오늘날 유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사유이다. 그것은 시작되고 있고, 시작되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말이다. '과거의 어두움처럼, 정체 모를 화려함이 펼쳐지리라.' - 철학을 위한 선언, ‘유적인 것’, 158

 

책의 말미에서 사랑에 대해 그리고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바디우는 20년 만에 사랑 예찬을 내 놓는다.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아르튀르 랭보,지옥에서 보낸 한 철, ‘착란’)라고 랭보를 앞세운 채. 바디우는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 자는 철학이 무엇인지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여 철학에서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웅변한다. 한마디로 사랑을 모르는 자 철학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선언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컨대, 보험 계약서의 안전과 제한된 쾌락이 가져다주는 안락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정적(政敵)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19

 

사랑은 철학뿐만 아니라 진리와 정치, 예술과도 연애를 한다. 안전과 안락이라는 정적을 물리치고서. 이 책은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연이나 대담을 엮어낸 책의 단점은 전체적인 구성이 탄탄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부분에 매달리기 쉽다는 점이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질문자의 의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디우의 사랑이야기는 세계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기능하는가. “세계는 사실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랑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혁신 속에서 취해져야만 할 것입니다. 안전과 안락에 대항하여 위험과 모험을 다시 창안해야만 합니다.”(사랑 예찬, ‘위협받는 사랑’, 20)

 

섹스에서 당신은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결과적으로 당신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될 뿐입니다. 타자는 당신이 쾌락의 실재를 발견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랑 속의 타자라는 매개는 그 자체로 가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만남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당신과 함께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타자를 공략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섹스의 실재에 관한 상상적 그림일 뿐이라는, 정말이지 진부할 뿐인 그런 개념보다 훨씬 더 심오한 개념적 접근에 해당됩니다. - 사랑 예찬, ‘철학자들과 사랑’, 29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 사랑 예찬, ‘결론’, 113

 

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모두 철학자가 아닌가. 철학자가 감히 사랑을 논하다니!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사랑만큼은 철학자에게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타자에 대한 사랑은 의 고독으로부터 촉발된 공격이고 도전이다.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독한 존재들의 허탈한 몸부림은 아닌지. 그 최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굳은 신념은 아닌지. 옮긴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일, 그것은 결핍을 끌어안은 그 상태 그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자그마한 경험들, 시련과 위험을 삶의 조건으로 삼아 내 경험과 타자의 경험을 매일 그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자그마한 노력은 아닐까? - 조재룡, ‘옮김이의 말’, 136

 

결핍을 끌어안고 길 위에 포개놓으려는 욕망과의 시간차. 철학을 위한 선언의 번역을 맡은 서용순은 사랑 예찬의 해제에서 바디우의 사랑을 이렇게 요약한다. 사랑은 이다. 어떤 알레고리로 을 사용했든지 그 의미들의 차이를 헤집어 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사랑에 대한 바디우의 사유는 을 견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 ‘의 지속을 사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디우의 철학이 요구하는 사랑에 대한 성찰이리라. - 서용순, ‘바디우의 철학과 오늘날의 사랑’, 165

 

 

20120118-005,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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