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은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다.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또 그 위에 희망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쩌면 모든 사람은 비루하고 누추한 세상을 견뎌내는 힘겨운 투쟁을 매일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인생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확고부동한 인생의 목표조차도 ‘왜’라는 질문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기 쉽다. 삶은 쓸쓸하고 외로운 법이다.

한 인간의 섬세한 삶의 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관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현실 세계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소설 속의 주인공과 치환시키려는 노력은 모든 독자들의 음험함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수많은 서사를 통해 안도의 한숨을 이끌어낸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조금 특별한 인생에 대해, 개성적인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우리는 식지 않는 열광과 냉소를 분출한다.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이름으로 읽힌다. 벨기에 브뤼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탈출 청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서술자의 욕망과 내면 풍경은 우리들의 그것과 멀지 않다. 그것이 소설이든 일상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로기완은 이 소설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다. 한 번도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소설. 작가는 서술자의 눈과 귀와 생각을 통해서만 로기완을 형상화한다.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문득 로기완을 찾아 떠나는 방송작가가 이 소설의 서술자다. 그녀의 주변인물은 이 소설에서 벨기에로 떠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기에 애매한 PD와 방송 취재중 알게 된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윤주. 두 사람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일 뿐. 로기완이나 그녀의 소설쓰기와 무관해 보인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159센티미터 47킬로그램의 스무살 탈북청년 로기완이다. 벨기에 브뤼쎌에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그의 행적을 뒤쫓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일까. 누군가의 삶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독자들의 욕망이며 그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보려는 반성적 고찰에 불과하다. 일상이 평화로운 자, 죄의식도 없이 고민하지 않는 자, 삶의 의미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궁금하지 않는 자는 이 소설이 지루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물론 특정한 사람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소설이 무슨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소설 읽기의 출발과 마지막이 결국 ‘지금-여기’를 돌아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유목민에 불과한 우리 모두의 발자취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술자가 아니라 바로 로기완이 되어 이 소설을 읽어보자. 누군가의 시선으로 추측하고 읽어낸 것들과 로기완이 경험하고 생각했던 일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모든 인간관계의 전제가 아닌가.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척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 타인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9쪽

작가의 말대로 허술한 것,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매달리는 일은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매일 반복된다. 어쩌면 나와 너, 나와 세계의 관계는 영원히 허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마취제로 사용되는 사랑, 우정, 배려 등의 정서적 교감이나 정의는 세상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로기완은 결국 세상에 이방인이 되었다. 부모도 국적도 갖지 못한 채 이국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유목민.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그의 존재를 증거하는 작은 단서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쓸쓸한 뒷모습과 대면하는 순간 그는 로기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로기완이 관심을 가졌던 노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천국을 꿈꾸는 인간의 영원한 간절함이기 이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꿈꾸는 비극을 말해준다.

사랑하는 사람, 종교의 절대자, 불같은 신념, 도달하고 싶은 권력, 갖고 싶은 물건 등 인간이 의지하고 노크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나를 완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쓸쓸한 인생을 위무하는 삐에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독자가 아닌 로기완에게 바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은 무표정한 로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 - 189쪽


11060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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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 - 욕망과 좌절사이에서 비틀거리는 21세기적 삶
마이클 폴리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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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리스토텔레스은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를 행복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행복의 최소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말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라면 개인마다 느낌이 다르고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감정의 기준을 제시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고 있다. 행복한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생의 목적과 삶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라는 뻔한 말이 아니라 목적과 지향점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만히 서서 맞는 바람이 아니라 산을 오르고 땀이 배어날 무렵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을 우리는 행복이라 부른다.

인간이 행복할 권리 따위는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행복할 권리’도 말할 수 없다. 없다. 마이클 폴리의 『행복할 권리』는 ‘행복’을 사기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비법이나 행복해지기 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생은 부조리하며 행복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비꼰다. 맞는 말이 아닌가. 헌법에 보호된 권리는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말장난인 듯 싶지만 그 의미는 깊이 새겨볼 만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행복은 직접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에 대한 집착을 끊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하루 중 탈아(脫我)의 시간이 길수록, 몰입하는 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마이클 폴리가 말한 것도 그 시간이 가져올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복한 상태란 어쩐 지점이 아니라 하나의 범위, 맨 밑바닥에는 만족감이 있고 맨 위에는 고양감이 있는 범위이다. 달리 말하면, 행복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 13쪽

우리는 행복의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는 행복. 그러나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행복을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혼란스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논리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당신이 찾는 행복은 없다’는 말로 시작한다. 14개의 챕터에서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서와 저자의 깊은 성찰을 통해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궁구하고 고민한다.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저자의 뛰어난 통찰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결론을 얻어낼 수 없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각자 행복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걸어볼 뿐이다. 누군가 무엇인가 주어지는 행복은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지속한 가능한 행복은 스스로 찾아가는 먼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분노와 좌절은 자주 경험하지만 허무와 무기력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우울과 자살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죽을 힘으로 살아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한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이나 견딜 수 없는 모멸감, 자신도 모르는 사실들이 목을 조여올 때 행복은커녕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매시간은 마지막 시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최초의 시간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 349쪽

이제 매시간 마지막 삶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가질 시간인가 보다. 행복은 치열한 삶과 열정 그리고 삶의 성취와 결과물이 주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믿는 대로 보이고 인간은 경험한 만큼 성숙해진다. 우리는 매시간 성장하며 고통 받고 그 고통을 통해 실낱같은 생의 희망을 건져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마치 바로 곁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공포처럼.


1106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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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변명 -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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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학처럼 답이 없다. 1+1=2.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자명한 진실일까. 인간의 경험과 이성, 판단력과 비판적 안목은 주관적 아집의 결과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진실을 요구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적어도 혼란스럽지 않은 답을 요구한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상황 논리를 들이대지도 않고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수학은 언제나 인간 이성의 바탕이 되었다.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학문이다. 인간이 걸어온 길과 생각한 것들, 만들어 온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희 문사철(文史哲)로 일컬어지는 것은 폭넓은 지적 탐구의 시작이며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은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중심에 놓고 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으로 출발해서 그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자연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대부분 명석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였거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은 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비단 수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지만 일상생활에서 수학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다만 순수 학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응용학문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저자는 수학적 영감, 명민한 이론을 배출할 수 있는 나이는 적어도 40대 이전이라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창조적 수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말년의 수학자가 느끼는 회한은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감회와 다르지 않으리라.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과 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평생 담아왔던 지혜를 반듯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어 독자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는 저명한 영국의 수학자이다. 인생 말년에 자신의 수학적 창조력이 쇠퇴함을 고백하는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은 평생 한 우물을 판 학자의 이야기이다. 2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여느 에세이보다 덜하지 않는 감동과 생각의 여유를 전해준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자문자답하듯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응용수학에 비해 순수수학이야말로 진짜 수학이라고 믿는 수학자의 이야기는 학문적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 생을 살아내고 노년을 맞게 된다. 나이 들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기억할 것이고 평생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름의 생각과 회한이 몰려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너무 빨리 지나간 버린 시간에 대한 허망함 때문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성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수학이 지닌 패턴과 아름다움은 예술에 버금간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보여주는 깊은 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수학의 엄정함을 통해 정밀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어느 수학자의 짧은 인생이야기이며 수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회한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1부터 29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수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1과 1을 더하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1에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을 덧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엉뚱한 답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수학자의 정밀한 문장과 수학의 단정함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110529-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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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자의 변명 -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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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은 수학처럼 답이 없다. 1+1=2.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자명한 진실일까. 인간의 경험과 이성, 판단력과 비판적 안목은 주관적 아집의 결과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진실을 요구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적어도 혼란스럽지 않은 답을 요구한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상황 논리를 들이대지도 않고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수학은 언제나 인간 이성의 바탕이 되었다.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학문이다. 인간이 걸어온 길과 생각한 것들, 만들어 온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희 문사철(文史哲)로 일컬어지는 것은 폭넓은 지적 탐구의 시작이며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은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중심에 놓고 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으로 출발해서 그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자연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대부분 명석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였거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은 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비단 수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지만 일상생활에서 수학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다만 순수 학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응용학문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저자는 수학적 영감, 명민한 이론을 배출할 수 있는 나이는 적어도 40대 이전이라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창조적 수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말년의 수학자가 느끼는 회한은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감회와 다르지 않으리라.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과 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평생 담아왔던 지혜를 반듯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어 독자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는 저명한 영국의 수학자이다. 인생 말년에 자신의 수학적 창조력이 쇠퇴함을 고백하는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은 평생 한 우물을 판 학자의 이야기이다. 2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여느 에세이보다 덜하지 않는 감동과 생각의 여유를 전해준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자문자답하듯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응용수학에 비해 순수수학이야말로 진짜 수학이라고 믿는 수학자의 이야기는 학문적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 생을 살아내고 노년을 맞게 된다. 나이 들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기억할 것이고 평생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름의 생각과 회한이 몰려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너무 빨리 지나간 버린 시간에 대한 허망함 때문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성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수학이 지닌 패턴과 아름다움은 예술에 버금간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보여주는 깊은 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수학의 엄정함을 통해 정밀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어느 수학자의 짧은 인생이야기이며 수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회한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1부터 29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수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1과 1을 더하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1에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을 덧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엉뚱한 답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수학자의 정밀한 문장과 수학의 단정함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110529-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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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서재는 있다. 고등학생의 서재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꽂혀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꽂이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서재는 바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일 게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떤 서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궁금해 한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타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타인의 서재가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했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규정하기 어렵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기도 어렵고 사르트르식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들어봐도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발언의 내용과 실천적 행동의 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타인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역사 발전의 합리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에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지와 인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성:B잎새’의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인과 서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의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책’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식을 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러니 서재는 지식인의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열혈 독서가들은 『한국의 책쟁이들』의 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사람들, 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 서재가 삶의 중심이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행복한 책읽기 종결자들이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반복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사람,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이다 - 조국의 서재, 19쪽

책을 읽지 않고 늙어가는 수컷 영장류의 비애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조국의 서재는 그의 미모만큼 핸섬하다. 규범적 틀을 깨고 나온 그의 생각과 변화의 욕망은 모두 서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필요하다는 러셀의 말처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물론 열린 생각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독서를 만 권 이상 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많지 않아요.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게 많지요.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책은 10퍼센트나 될까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이것은 정말 새롭다' 하는 것만 골라내어 독서를 하죠" - 이안수의 서재, 81쪽

충격적인 이안수의 말이다. 만권쯤 읽으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태어나서 몇 권이나 읽었나 짐작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은 고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만 권의 경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경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으나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국부터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승효상, 박원순,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섭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부터 건축가, 시인, 북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넓이가 탄탄한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서재는 단순히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내밀한 영혼의 숙성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타인의 서재 훔쳐보기 프로젝트이다. 방송작가 한정원의 인터뷰와 전영건의 사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편안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오갔을텐데 짧게 정리된 글만 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가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책읽기 노하우와 서재의 비밀, 책에 대한 관점 등 고수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물질적인 형태 너머의 4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15명의 고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읽을 책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사람과 읽어야 할 삶이 너무 많다. 하지만 비균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계를 헤아려보면 ‘책’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유한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든 모르는 것이 약이든 읽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할 일이다.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느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지 않은가. 지식인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서재 하나쯤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부터 시작해보자.


1105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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