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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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 15쪽(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faust)』 중에서)

안철수, 박원순, 박경철의 공통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새로운 시대의 리더로 자리 잡은 세 사람의 공통점은 책에 미친 사람들이다. 큰 평수가 논란이 된 서울 시장 후보 박원순의 거실은 책을 버리지 못해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는 개가형 서고처럼 꾸며져 있다. 어린시절부터 책벌레였던 안철수와 박경철은 ‘청춘 콘서트’를 통해 이 시대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았다.

진행하던 라디로 프로그램을 접고 마지막 ‘청춘 콘서트’를 마치고 안동에 내려 간 뒤 얼마 후에 박경철은 『자기혁명』을 내놓았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중에서 현학적인 취향과 계몽적 태도는 그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지식이 자기 것으로 온전히 소화되지 못하거나 일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재단할 경우 자신의 앎의 범위를 세계의 전부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얄팍한 독서와 편협한 사고는 ‘단무지’보다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독하지 않고 진한 향기를 내는 사유의 깊이는 주변 사람을 물들이고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여름에 ‘청춘콘서트’에 갔다가 김제동의 이야기를 듣고 콧날이 시큰했다. 웃음을 주려는 노력 때문이 아니라 우스운 것이 많은 세상 이야기 때문이었다. 진지한 고민과 우울한 현실이 김제동에게 얼마나 큰 코미디로 느껴지는지 말하는 순간 청중들은 자신이 왜 웃을 수 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안철수와 박경철의 대담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회, 경제, 정치적 ‘상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 책은 박경철이 프롤로그에서 말하고 있듯이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다.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에서 묻고 있는 것과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생각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사람들과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전하는 박경철의 진심어린 조언이 가슴 아프다.

‘청춘’, 어떻게 할 것인가?

통상적으로 20대를 지칭하는 이 말은 사회에 첫 발조차 내딛지 못한 취업 준비생을 비롯해서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삶의 좌표를 설정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정신을 지칭한 말이어야 한다. 열린 가슴과 변화 가능성이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기 때문에 실수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통해 먼저 자아를 찾아야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천민 자본주의에 매몰된다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돈’ 없이 살 수도 없지만 오로지 ‘돈’을 위해 뛴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뚜렷한 사회인식과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간 활용이 중요하고 책읽기와 글쓰기도 필요하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혁명’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자기 혁명은 점진적 변화와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목표를 얻기 위한 노력과는 구별된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한 걸음씩 그러나 치열하게 고뇌하고 방항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의 질문들에 답을 해나가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지금 여기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수백회의 강연과 탄탄한 인문학적 독서는 이 책의 내용과 구성을 탄탄하게 다져준다. 시골의사, 경제전문가 박경철이 아니라 청춘들의 친근한 멘토 박경철의 진지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변화와 실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는데 주목했다면 이제는 ‘변화’와 ‘실천’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박경철은 그것은 사회적 소용돌이와 정치적 불안이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전에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살아갈 사회, 정치, 경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기혁명’의 기본 전제가 아닐까.

서점에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 마약 같은 ‘행복론’, 점수올리는 비법을 전하는 ‘공부법’ 등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거시적인 안목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박경철의 『자기혁명』은 깊이와 넓이를 담보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변화시켜주기도 한다. 그 책이 전하는 감동이나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때 그렇다. 달콤한 감언이설도 없고 실천 매뉴얼도 없는 책이지만 오래오래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어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하다.

그것은 저자의 말대로 청춘에 대한 동정(sympathy)이 아니라 공감(empathy)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혜와 계몽의 수직적 태도가 아니라 배려와 공감의 수평적 ‘애티튜드(attitude)’ 때문이다. 근거 없는 수다와 소문이 아니라 사실과 경험에 근거한 저자의 진심어린 충고가 ‘청춘’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나머지는 이 책을 읽는 청춘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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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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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 시인의 말



심심하여 시인의 말을 패러디.
 
사랑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세상이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시집을 들추니 ‘Mundi에게’가 눈길을 끈다. 라틴어로 세계, 세상이라는 의미의 ‘Mundi’. 현존재인 ‘나’의 시점으로 존재자인 대상을 통찰하는 것은 시인의 의무가 mundi를 거쳐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데 심보선은 그것을 ‘들’과 ‘둘’로 나누었다. 거칠게 ‘들’은 ‘野’, 즉 사회를 말할 것이고 ‘둘’은 ‘人’ 즉 기대고 선 두 사람의 관계 혹은 사랑을 의미한다. 한 권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싶은 시인의 욕망과 무관하게 이 시집은 이 시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의 역할을 한다. 
 

좋은 일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작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언어[言]로 지은 집[寺]. 시(詩)의 한자어는 문학의 성격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다. 말은 수많은 형태와 빛깔을 지닌 건축물을 만들고 사람들은 말없이 그 안에서 숨을 쉰다. ‘나’와 ‘너’ 그리고 세계를 떠나 생각할 수 없지만 때때로 암흑처럼 어두운 세상은 침묵한다.



텅 빈 우정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우연에 대하여

먼 훗날 더 먼 훗날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처럼

나는 대체로 무관심하답니다.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입술이 하염없이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당신’은 2인칭에 머물지 않고 3인칭 극존칭으로 존재한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한 독백이어도 좋고 마주앉은 ‘너’여도 좋다. 부재하는 제3자이면 어떤가. 연시(戀詩)에 기대어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방법이다. 주관적 경험의 객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말[言]은 나름의 기능[寺]을 획득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된다. 그것이 ‘낙화’할 때까지.



낙화



어느 지상에 가을이 임하고 있다.

처음 보는 낯선 빛이 만인(萬人)의 발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낙화의 순간

누군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누군가 넘어지고

무언가 잘못된다

아직은 인간인 고아(孤兒)가

가족과 이웃

좋은 이와 나쁜 이를

구별할 수 없어 모두가 그리웁다

떨어지는 꽃이여

찰나의 귓바퀴를 맴도는 시간의 방랑이여

누군가 급히 거둬들인 시선이여

무언가 슬피 가리키는 손가락이여

지상의 어느 문에도 맞지 않아

허공에서 영원히 헛돌고 있는

고단한 열쇠여


그 고단한 열쇠는 세상의 모든 ‘처음’을 기나리고 그러다, 그러다가 ‘첫 줄’을 기다린다. 세상의 모든 첫 줄은 다음 줄로 인도할 뿐이다. 첫 줄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슬픈 조문(弔文)에 불과하다. 그것이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이 우리를 늘 미래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이 별에는 ‘이별’이 존재한다.



이 별의 일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멸망이 이별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을 위해 멸망을 열망한다. 멸망이 쉽지 않다면 이별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 별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별은 그러나 너무 쉽다. 제2부 ‘둘’의 서시는 이렇게 이별보다 멸망을 두려워하며 시작된다.



노스탤지어



유물론자들은 일찍 죽는다

그들은 모순을 설파하지

자기 영혼에 불꽃을 던진 방화범

판관은 고민한다

후회는 양심의 증거인가

죄의 증거인가

法은 만졌을 때 더 차가운 것을

좋은 물증으로 택하지

그러나 음유시인은 노래한다

감미로운 이끼가 풍미하는 절벽

하품과 하품 사이에서 나고 죽는

산양의 일생

평생 되새김질할 만큼

뱃속에 가득한 無

기억의 치외법권에서 들려오는

영원한 헛구역질 소리

뒤돌아보지 않으리

이 삶은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았으니


여기까지 옮기고 나니 동갑내기 시인 진은영의 해설, “하이데거는 ‘눈앞에 있음’(Vorhandensein, 현전하는 존재)과 ‘손 안에 있음’(Zuhandensein, 도구적 존재)을 구별하면서 한 사물이 도구적 용도 속에서 파악되는 한,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는 부분이 떠올랐다. 결국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공기가 사라져버렸을 때의 답답함을 통해 공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즉,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그래서,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시인들은 언제나 뒤표지에 실린 시인의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일까. 미래의 모든 부재를 예언하는 세상의 존재들이여.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서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


나는 말하죠. 오늘 밤, 당신은 나와 너무 닮아 낯설군요.

당신은 말하죠. 아니, 당신은 너무 낯설어 나를 닮았어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럼, 잘 자요, 당신, 내 사랑.




11102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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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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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다

1.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2.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앞에 나타나거나 눈에 띄다.

사전적 의미와 달리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여러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닥치다. 일상생활에서 비속어로 사용되는 이 말이 주요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 2위에 오른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리고 『닥치고 정치』는 시대를 반영한다. 이 책들이 시간을 견디고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책들에 열광하는지가 문제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스스로 출연을 자청할 만큼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게 된 ‘나는 꼼수다’를 들어보면 이 책이 왜 시대적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드러내는지 알게 된다. 삶이 팍팍해지고 희망은 사라지고 스트레스는 많아지는 이유를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정치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치 혐오증을 가지고 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민주적 질서와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정치’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곧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다.

서울시장 재보선 때문에 SNS는 뜨겁다. 방송과 신문이 독점하던 현장성과 신속성, 정보의 정확성은 이미 그 본질적 권력을 인터넷과 SNS에게 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중동이 전해주는 기사에만 고개를 끄덕이는 바보도 없고 극단적인 이념대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정치는 그 변화 속도가 감지되지 않는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닥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김어준과 지승호

『닥치고 정치』와 ‘나는 꼼수다’은 김어준이 있기에 가능하다. 「딴지일보」에 들어가기 위해 마우스로 똥침을 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어준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가리고 덧붙이지 않고 날것 그대로, 솔직하고 경쾌한 김어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에 왜 정상적인 우익이 없는지 좌파의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의 말이 길이요 빛이요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당파성을 띠지 않고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예의를 갖추거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말끝마다 ‘씨바’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이, 모든 언론에서 철저하게 외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에 오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시작된 대선과 정치와 무관하게 살수 없다는 사실은 닥치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선거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좌우의 이념 문제도 아니다. 정치는 생활이고 삶이며 미래이다. 상식과 합리, 이성과 논리, 자유와 평등, 나눔과 배려...듣기 좋고 이상적인 가치를 외치는 헛된 구호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된 세상을 말하고 있는 김어준의 이야기는 점점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만남은 반말로 낄낄거리는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시원하고 통쾌하게 묵은 체증을 씻어준다. 수없이 등장하는 현실정치인에 대한 평가도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도 대한민국과 사람에 대한 주장도 모두 철저하게 개인적인 김어준의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김어준은 김어준이다. 점점 더 깊어가는 내공과 ‘나는 꼼수다’에 대한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은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김어준은 강력하게 외칠 것 같다. 정치는 사람이다, 씨바.


111018-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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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의 발명 - 지식 편집자를 위한 12가지 생각도구 아로리총서 20
정상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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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트렌드를 읽는다는 것은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주류와 변방, 메이저와 마이너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해와 관찰 그 자체이다. 이미 존재하는 그 흐름의 힘과 방향 속에 미래는 내장되어 있다. 트렌드란 바로 독자의 재재된 혹은 잠복해 있던 욕망에서 비롯된다. - 99쪽

기억의 한계

사진과 동영상조차도 대상을 포착하는 시간의 조명과 앵글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물며 인간의 기억은 어디 비유할 만한 데도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억을 통해 울고 웃으며 사랑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기억의 한계에 부딪친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기억하는 장면이 다르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책을 이해하고 내면화한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밑줄과 메모다. 한 번 흘러가 버린 페이지는 돌아오지 않고 머리 속에 가물거리는 내용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 손에 펜이 들려 있지 않거나 밑줄 칠 수 없는 상황이면 더욱 당황스럽다. 페이지를 외워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눌러 보기도 하고 끝부분을 접어보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잊을 때가 많아진다. 그래서 ‘공감’의 영역이 큰 책일수록 읽는 속도가 더디고 밑줄은 많아진다. 책 두께와 상관없이 그렇게 된다.

편집자

영화나 드라마와 나오는 편집자와 실제 편집자는 어떻게 다른가. 내가 만났던 많은 편집자들은 출판사의 성격, 만들어왔던 책의 내용, 지향하는 삶의 방향, 편집자가 되기 전까지 생활, 현재하고 있는 업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고집스럽고 꼼꼼한 자세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송곳처럼 파내려가는 A, 주변 상황이나 방향을 감지하고 사람을 잘 상대하는 B, 묵묵히 한 길을 걸었지만 차별화되지 않는 C......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편집자도 분명 생활인이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프리랜서도 있고 1인 출판사도 존재하지만 편집자는 책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든 직종 중의 하나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과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끔 편집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정상우의 『편집의 발명』은 ‘편집자’를 이해하기 좋은 책이다.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와 유사한 판형과 두께를 가진 ‘아로리총서’의 소통과 글쓰기 중 한 권의 나온 책이다. 문고판의 책들은 선명한 주제와 에둘러가지 않은 직설적인 힘이 장점이다. 할말 안할말을 가릴 줄 알고 핵심과 변방을 구별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책을 만들면서 쌓은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지식 편집자를 위한 12가지 생각도구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보통 10년 쯤 지나면 나름 전문가가 된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균질하게 흐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똑같이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은가. 공부도 일도 마찬가지다. 교정, 교열의 대가가 되기 위해 편집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이론으로 무장한 편집자도 필요 없다. 그렇다면 편집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편집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끝없이 찾아야 하는 대답일 것이다. 각자 다른 답을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가진 ‘연장’은 어느 정도 통일성도 있고 호환성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살아남는 자와 죽는 자,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구별되고 시간을 견디는 자가 생겨나지 않겠는가.

저자는 다음 12가지 도구를 제안하며 그것을 내용, 시장, 마음가짐이라는 세 단계의 설계라고 명명한다. 12가지 연장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편집자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책은 단순히 종이 뭉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처럼 탄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의 고뇌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영혼이 함께 만들어낸 유기체가 바로 책이다. 그래서 책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책 같지도 않은 책을 보면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가 아니라 바로 책과 나를 이해하기 위한 생각 도구들이다. 책을 통해 천천히 음미해 보자.


- 모듈 : 종이로 생각하기

- 플로우 : 몰입의 세계

- 스타일 ; 작가의 지문

- 스토리 : 어느 이야기꾼의 이야기

- 장르 : 타인의 취향

- 포지셔닝 : 인식의 재구성

- 트렌드 : 예측의 기술

- 사이클 : 편집자의 사계절

- 콘셉트 : 기획에 필요한 5가지 눈

- 브랜드 : 출판사의 지문

- 놀이 : 열정의 작동 버튼

- 마스터 : 혁신의 장인


11101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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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대논쟁 통섭원 총서 2
최재천 지음 / 이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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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계

어떤 개별적 존재가 자신이 소속돼 있는 집단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제3자의 입장에서 개별적 존재를 관찰하고 집단 전체를 분석하는 것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개별자로서의 의미를 타인과의 관계와 집단의 상황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대상인가. 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철학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과정에서 불가해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다. 중세를 넘어 ‘근대’ 이후에는 해결의 주도권이 과학에 넘어온 듯하다. 150여 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에 대한 개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이행만큼이나 충격적인 선언이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논의를 추동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 진실을 드러냈을까.

전체 > 부분의 합

생명은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데 동의한다면 인간을 탐구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그런 이유로 인간에 대한 모든 철학과 종교와 과학은 단지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회생물학’을 바라보자.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인 최재천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사회 생물학 대논쟁』은 바로 이러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으로 손색이 없다. ‘통섭, 에드워드 윌슨, 진화심리학, 데이비드 버스, 이기적 유전자, 밈, 빈 서판, 털 없는 원숭이……’ 등과 익숙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거쳐야 할 만큼 중요하다.

인간은 유기체다. 세포와 뼈의 결합체가 아니다. 다윈주의적 환원주의가 인간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장대익의 분류대로 다윈주의적 반환원주의, 비다윈주의적 환원주의, 비다윈주의적 반환원주의로 사회생물학이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가. 사회생물학을 주도한 윌슨의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의 ‘통섭統攝’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생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문간 통합과 다른 개념으로 설득될 수 있는 것인가.

끝없는 의문과 호기심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며 『이기적 유전자』, 『털 없는 원숭이』, 『욕망의 진화』, 『오래된 연장통』이 뒤섞여 정리되지 못한 우둔한 머릿속이 조금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과학문 영역 사이의 장벽이 만리장성보다 견고한 국내의 학문 풍토에서 학문간 통합을 넘어 ‘컨실리언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학문적 토대의 척박함과 문화적 바탕을 간과한 과욕은 아닌가. 만 16세가 되면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그 벽을 뛰어넘는 일이 과장하자면 성별을 바꾸는 것만큼 힘든 상황에서 최재천의 노력과 인문, 사회학자들의 논쟁은 더할 수 없이 값지고 귀하게 여겨진다.

주목할 만한 글 몇 편

이 한 권의 책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과 이화여대 통섭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부분과 전체 : 다윈, 사회생물학, 그리고 한국”의 결과물이다. 여덟 명의 무림의 고수가 펼치는 진검 승부가 흥미진진하다. 그 중에서도 이병훈의 ‘한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도입과 과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귀한 글이다. 또한 김동광의 ‘한국의 통섭 현상과 사회생물학’은 국내의 ‘통섭 현상’에 나타난 특징과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어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데 일조하고 있다.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의 시작은 작은 관심과 호기심이거나 우연한 마주침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딱딱하고 이론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넓이와 깊이를 한 번에 꿸 수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간’이란 존재가 ‘동물’과 구별되는 지점, 세상을 해석하고 원인과 결과를 밝히고 싶은 욕망, 미래의 학문이 지향해야 할 부분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다. 모든 독자는 나름의 방식대로 그 답을 구하기 위해 힘을 얻고 또 다른 길을 찾기에 나서는 수고로움을 즐거움으로 치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논쟁은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논쟁을 낳는다. 이 책은 논쟁의 단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논의된 ‘사회생물학’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이며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작이다. 길은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자유로운 사유의 유목,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 나와 너의 관계 양상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방법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1101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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