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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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머리말

 

철학자 강신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욕망을 분석하기 위해 라캉을 데려온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내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를 통해 기호에 대한 욕망을 강조했다. 생산이 아니라 소비를 욕망하는 현대사회의 뒤틀린 욕망을 비판하고 있는 시선을 또다시 점검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숨은 욕망을 부정하는 이유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낸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음험한 시선과 들키고 싶지 않은 당신의 욕망에 대해.

 

누군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논어가 사람의 길을 열었다고 말한다. 유교적 질서는 그만큼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이면서 상반된 관점을 드러낸다. 우리 문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면서 행동의 준거 기준이 되었지만 그 부당함과 문제점이 일시에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생각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가 바로 유교적 윤리다. 처음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해서 스스로 서열을 결정하고 온 가족이 마치 가족인 것처럼 형, 누나, 동생으로 지칭하는 버릇이 그러하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간다. 태어난 순서, 직장에서의 경력이 도대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사유 방식이 아닌 것으로 관계를 설정하려는 불편한 방식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느 조직이든 그것부터 확인하려는 전근대적 태도를 일시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욕망이라니!

 

 욕망해도 괜찮아를 통해 꺼내기 조차 불온한 언어를 꺼내 든 김두식의 용기에 일단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 욕망)과 계(, 규범)을 키워드로 풀어내는 개인적 삶에 대한 고백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에 해당한다. 불편해도 괜찮아와 유사성을 떠올리도록 한 제목은 출판사의 상업주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국가인권위에서 기획한 인권이야기가 담겨있는 불편해도 괜찮아의 판매고에 힘없어 책을 팔려는 의도 이외에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와 전혀 무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해도 괜찮아불편해도 괜찮아에 못미치는 불편한 책은 아니다. 멘토 과잉의 시대, 자기 계발서 범람의 시대, 스펙 올인의 시대에 김두식의 고백은 오히려 불순한 현학적 자기 고백의 욕망에 충실한 책이다. ‘100퍼센트 장학금으로 스물일곱살에 미국에서 박사를 딴 후 서른한 살에 교수가 된 형이나 스물네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김두식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부부 교사였던 부모님의 경제적인 상황을 자 가족의 사자 가죽으로 풀어냈지만 우리 사회의 99% 입장에서는 1%의 엄살로 비칠 뿐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타인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한계다. 김두식의 사회적 계급과 경제적 계층을 고려하면 하품나는 자기 고백에 불과하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중산층 일반의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면 그 어떤 책보다도 솔직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쭙잖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의 욕망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안한 욕망을 나이브하게 드러낸 김두식의 글은 읽는 사람의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욕망과 규범의 갈림길에서 갈등한다. 그것을 색과 계로 읽어내며 영화 , 의 두 주인공의 관계로 풀어내고 있다. 양조위와 탕 웨이의 관계는 색과 계의 충돌이다. 하지만 결과는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것을 조절하며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어느쪽을 선택하든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굳이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욕망을 인정하는 일로 시작하는 이 책은 학벌문제와 희생양, 신정아와 똥아저씨, 정신 승리의 비법, 중산층의 은밀한 욕망, 몸과 살의 소통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통해 때로는 김두식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고백은 나의 힘이라고 외치는 이 책은 새빨간 표지만큼 발칙하다. 그래서 단숨에 읽히며 읽고 나서도 한동안 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의 모든 뒷담화에 던지는 도발이며 드러내지 않은 음험한 욕망에 대한 냉소다.

 

자기를 계발하라고 부추기는 세상의 모든 책들, 모르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세상의 모든 멘토들, 내가 아니면 이 나라가 망할 거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장삼이사들이여 진정 용기 있다면 이 책을 읽고 김두식에게 손가락질을 하시기를. 나는 내 손이 부끄러워 슬며시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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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인권 이야기
김민아 지음 / 끌레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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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 우리 삶의 현실을 읽는 사회 - ④ 인권 한겨레신문 연재 /

2012/06/04 23:4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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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낸곳 (1)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

작가
김민아
출판
끌레마
발매
201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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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어퍼컷

작가
육성철
출판
샨티
발매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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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작가
공현
출판
메이데이
발매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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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이래 학생들이 반세기 이상 입어오던 검은 교복을 하루아침에 벗어버리고 사복착용으로 바꿔 입었을 때 대부분 학부모들은 이로 인해 청소년범죄가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동아일보, 1984. 3. 30) 지나간 신문을 뒤적여보면, 1980년 교복 두발 자유화 이후 언론은 학부모들을 내세워 부정적 여론을 주도한다. 심지어 교복자유화이후 디스코클럽을 찾는 고교생들이 부쩍 늘었다. 이같은 현상 때문에 청소년들의 행태가 점점 향락 지향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많다.’(동아일보, 1984. 12. 15)는 기사를 보면 웃음이 난다. 교복 자유와 이전에는 학생들이 디스코클럽에 교복을 입고 갔을까. 교복이 자유화되고는 디스코클럽에 간 학생은 그 전보다 얼마나 늘었을까. 교복을 벗으니 향략 지향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을 한 주체는 누구였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28년 전 신문기사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프레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한 보호와 선도를 명목으로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 적용대상과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왜냐하면 추억은 모든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써니>40~50대 중년들에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파는 향수 마케팅에 불과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다. 부모 세대가 겪었던 학창시절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보편적 인권은 국가인권위회가 설립된 21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직도 학교 담장을 넘어서지 못한채 학교 붕괴, 교권 침해 문제와 맞물려 인과 관계를 찾지 못하고 사회적 논란만 거듭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인권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토머스 페인은 1791년에 발표한 인권에서 인간의 평등권이라는 찬란하고 거룩한 권리는(그 기원이 인간의 창조주에게 있으므로) 생존한 개개인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뒤를 잇는 사람들의 세대와도 관련된다. 각 세대는 그 앞서간 세대와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그와 같은 원칙에서 각 개인은 그 동시대인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을 통해 인권의 기원은 자연권임을 주장하고 있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어떤 제도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현의 인권시민권차원에서 인권이란 무엇인지 살피고 있다. 프랑스 국회가 1789년 헌법 서문에서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처음 등장하는 인권이라는 용어는 시민권과 동시에 탄생한다. 자연법에서 출발한 인권의 기원을 살펴보고 고대의 시민권의 변화를 알아본 후 근대 인권 사상과 시민권 제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주로 서양을 중심으로 홉스와 로크, 루소 사상의 핵심을 살펴본 후에 근대 국민 국가인 프랑스의 사례를 점검한다. 현대사회의 인권은 여성과 다문화 등 보다 보편적이고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인권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 시키자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시대의 변화와 사회 변동에 따라 인권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특히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김민아의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나이가 어려도, 공부를 못해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나는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부제처럼 청소년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만 청소년이 아니다. 비학생도 청소년이다.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중요하다. 아동권리협약, 유네스코 교육차별금지협약 등 본문 관련 조항들을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해서 독자들에게 주장의 근거와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는 책이다. 권리는 유예될 수 없으며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청소년의 인권도 마찬가지도 가고 싶은 학교,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 책임은 성인들의 몫이다.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학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동적 주체로 자녀를 인정하는 부모가 먼저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육성철은 세상을 향해 어퍼컷을 통해 서른여덟 명의 인권지킴이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해낸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청소년과 장애인, 비정규직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강제 이발을 진정한 이태준, 비학생 청소년 차별을 진정한 박호언, 비정규직 청소부 김순자,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진정한 양지운, 색각 차별을 진정한 김민수 씨 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인권은 남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라도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무언가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개인의 이익과 주관적인 취향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서 비롯된다. ‘인권 감수성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외경심을 높이는 감성.”이라는 국가인권위 김창국 초대위원장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120604-056~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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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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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의 갈피를 접어둔다. 소리를 내지 않는 생각은 산꼭대기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 사람의 마음 밭에 살고 있는 천사 혹은 악마들은 오늘도 식탁에 마주 앉아 거짓 웃음을 흘리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들 -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욕망, 타인에 대한 뒷담화,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 그리고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빈집에 갇혀 울고 있다. 시는 그 모든 내면의 어린아이를 호출한다. 눈물은 이내 증오로 불타오르기도 하지만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 생의 이면을 맑게 투영하기도 한다.

 

문태준의 시는 명징하게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구차하게 변명하지도 않는다. 언어의 이면은 생각보다 때묻지 않은 맑은 얼굴로 빛난다. 의미를 덧칠하고 생각을 왜곡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세치 혀에 불과하다. 순교적인 자세로 언어를 숭배하자는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파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태도가 시를 시답게 한다.

 

세상에 대한 깊이, 정서에 대한 호들갑스럽지 않은 반응, 사물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읽을 만한 시를 낳고 그 시는 늘 먼 곳을 응시한다. 그 먼 곳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일회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의 시를 우리는 여전히 경건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빈 집

 

주인도

내객(內客)도 없다

겨울 아침

오늘의 첫 햇살이

흘러오는

찬 마루

쪽창 낸 듯

볕 드는 한쪽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는

 

망인에 대한 두려움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우리를 더욱 애닯게 한다. 기억 속에 사라지는 인간은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낭만적인 잠언은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망인(亡人)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돌아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

 

흰 종이에 떨구고 간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이 사그라진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사람들은 이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낭만적으로 전망하지만 이별의 말은 오늘도 공중을 떠돈다. 그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리고 글로 쓰지 않아도 시간이 빚어내는 바람의 물결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아 다행인 것도 있지만 볼 수 없어 안타까운 것들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는 것도 때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힘이 된다.

 

먼 곳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면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을 노래한다. 절대 고독의 경지에 오른 섬은 그 고독조차 사치라고 말한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는 오늘도 건재한 신화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사물보다 사람 냄새나는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박성우 시인은 인간의 향기를 맡을 줄 알고 그것을 보여주는 재주가 있다. 모든 빛깔과 향기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시인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 게다가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편안한 순간들을 마치 풍경화처럼 떼어내고 정물화처럼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박성우의 시에서는 느껴진다.

 

옛일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들여다보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산사

 

배롱나무 그늘 늘어진 절간

요사 마루엔 노스님이 낮잠에 빠져 있다

 

흙벽에 삐딱하게 기댄 호미와 괭이는

흙범벅이 된 몸을 건성건성 말리고 있다

 

코빼기도 없는 고무신이 삐죽

흙 묻은 코빼기를 내미는 절간,

 

연잎에 엎드린 청개구리만

목탁을 두 개나 들고 예불을 드리고 있다

 

노스님 몫까지 하느라고

울음주머니 목탁을 울퉁불퉁 두드리고 있다

 

이제 숨을 고르고 사물과 자연에서 눈을 들어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자. 밤을 새워 고열에 시달리고 멈추지 않는 발작성 기침 때문에 갈비뼈까지 울리는 날도 있는 법이다. 혼자 아프면 서럽다는 일반적인 사실 때문에 사람을 그리워하고 괴롭지는 않아야 한다.

 

허연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드러내려고 언어의 속살을 뒤집고 생각의 발길을 쫓는다. 우리가 시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맥락이다. 상황을 들여다보고 말과 글이 전하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만큼이나 헛되고 헛되다.

 

후회에 대해 적다

 

혼자 아프니까 서럽다는 낡은 문자를 받고, 남은 술을 벌컥이다가 덜 자란 개들의 주검이 널려 있는 추적추적한 거리를 걸었다. 위성도시 5일장은 비릿했다.

 

떠올려보면 세월은 더디게 갔다. 지금은 사라진 하숙촌에서 나비 떼 같은 사랑을 했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자동차 앞 유리창에 가득할 때도 그게 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아득해지지 않았으니 세월은 너무 더디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아득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나를 울린 건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은하열차처럼 환한 전철 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불행했다고 생각하며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지독한 슬픔이 지나간 시간을 위로하고,

 

지독한 슬픔

 

초코바를 빨며 지나가는 비만의 세월을 나는 안다. 그 지독한 슬픔을

 

버섯구름의 완벽한 구도를. 기울어진 채 녹이 슬어가는 버려진 철선의 고혹적인 빛깔을. 죽어가는 쿠르드 전사들이 불렀던 사랑 노래를. 전소된 집터에서 발견된 깨어진 변기를. 신장개업 할인 마트 앞 미친 풍선 인형을. 전나무 숲에 널려 있는 치골이 튀어나온 흰 시신들에서 느껴지던 성욕을.

 

! 이미 아무것도 아니어서 쪼갤 수 없는 것들. 지독해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고개를 들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낡은 서랍장에서 뒹굴고 있지만 그 세월의 두께만큼 자신의 삶에는 켜켜이 쌓인 먼지만 나풀거린다. 적지 마라, 외로우니까 쓰는 편지는 견딜 수 없을만큼 자신만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편지

 

적어 놓은 건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밤새 쓴 편지를

감히 다시 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세상에 모든 편지에는 죄가 많아

인간은 밤새 적은 편지에

초라해진다

 

편지를 받은 모두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적어놓은 것이니

세상에 남는 법

적은 자들은 늘 외롭고

벌을 받는다

적어놓은 죄, 기록한 죄

편지는 오늘도 십자가에 내걸린다.

 

적은 자의 하루는 슬프고

내걸린 편지는 세상의 어느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남겨진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를 짓지는 말자. 그것은 얼음의 온도를 재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이다. 불의 온도, 얼음의 온도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온도를 걱정할 일이다. 수치로 표현된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니아니 보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의 갈피들이다.

 

얼음의 온도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120530-05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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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3
니콜라우스 피퍼 지음, 알요샤 블라우 그림,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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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타들이 일주일 동안 단 돈 만원으로 생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순히 돈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비싼 음식을 먹자면 한 끼조차 해결할 수 없는 만원은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선택한 즐거움과 만족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많은 돈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제학자 부크홀츠는 경제학이란 최선의 선택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경제학이란 우리의 삶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선택의 갈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큰 만족을 얻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가장 덜 힘든 것을 선택하려는 이기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일정한 금액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에 본능적으로 경제학적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경제 문제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해졌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원인이 경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를 단순히 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돈이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모든 행위를 경제학적 이론이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더라도 경제학을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버는 방법에 관한 학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은 인류가 먹고 살아온 과정에 관한 진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류가 걸어온 삶의 과정과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는 우리가 몰랐던 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해준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이론서도 개념서도 아니다. 경제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인류의 삶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의 탄생 이전과 이후의 사회, 역사적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며 경제사와 경제 사상사의 중간쯤을 더듬고 있다.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통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입법부가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 할 때마다 입법부의 조언자 역할을 맡는 쪽은 언제나 고용주들이다.’는 애덤 스미스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가 변했어도 그 관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대부분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고용주와 노동자 어느 쪽이 되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변화과정과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보다 조금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니콜라우스 피퍼의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는 고대와 중세의 경제부터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세계 경제의 미래로 나누어져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기 전에 혹은 일반인들 입장에서 품을 수 있는 호기심을 질문형식으로 바꿔 각 장을 삼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분량이나 난이도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철저하게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돈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더욱 값지게 읽힌다. 한진수의 17살 경제학 플러스등의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므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며 기업은 좋은 상품을 개발하려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인문학은 당장의 상황을 바꾸어주는 데 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거기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돈과 인문학이라는 어색한 만남이 왜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하고 소유가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 저자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아이들의 꿈과 미래, 남녀관계, 일상생활 등 어느 것 하나도 돈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돈의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한발 비껴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지금은 그러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돌아보자.  

 

이에 비해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괴짜 경제학은 가장 현실적이고 유용한 경제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이 책은 경제학 용어나 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학문인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미래와 행복을 꿈꾸며 산다. 이런 세상이 모순된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우리가 세상을 경제의 잣대가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의 만남은 이런 모순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경제학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잠자리의 눈처럼 넓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신문 경제면을 이해하기 위한 경제지식이나 데이터와 통계에 의존하는 경제학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의 힘과 그것이 걸어온 과정을 보여줄 수는 역사적 관점이다. 현 경제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해서도 경제학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안목을 제공한다 

 

120528-05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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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 -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과서 책세상 루트 5
이남석 지음 / 책세상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시카고에서 존경받는 로마 카톨릭 대주교가 피살되고 19살의 소년 용의자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는 현장에서 도망치다 붙잡힌다. 이 사건을 TV로 본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은 교도소로 찾아가 무보수로 변호할 것을 제의한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는 수많은 법정 영화 가운데 극적 반전이 압권이다.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탁월했던 이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법과 실정법이 충돌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외치며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복잡하며 정치는 외면할 수 없는 내 생활의 출발이다.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해 온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정치 제도 안에서 각종 제도와 법률에 따라 사람들은 기본적인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한다. 학교를 예로 들면, 청소년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합의해서 정해 놓은 규정을 지켜야 한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질서를 학교 규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정치 제도와 법을 이해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상식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는 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기본 질서가 되어야 한다.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과 달리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자.  

 

민주주의라는 말은 권력이 시민에게 있다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당시의 시민은 어느 정도 재산을 소유한 소수의 성인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수 천년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최선의 정치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기도 했으나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 정치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제도로만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회 경제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며 경제적 불평등의 확산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제임스 랙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에 대한 질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인간 삶의 일반적인 경향, 즉 개선과 진보 때문에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연의 기본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저자의 말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정치적 민주주의도 버티기 힘들게 된다.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민주적인 질서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인권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임스 랙서는 이 과정들을 알기 쉽고 편안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내며 대안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경제제도인 자본주의의 발달은 정치제도인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세계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선 신자유주의가 소수 특권층의 부와 권력을 위해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아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발전과 변화 과정 그리고 경제 상황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면 눈을 우리 현실로 돌려보자. 이남석은 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라는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과서를 통해 정치는 뉴스에만 나오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집단으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잘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위해서는 경제적 의미에서 그리고 정치적 의미에서 참여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행간에 숨겨 두고 있다. 권리와 의무 그리고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덕목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통해 민주주의에서 참여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뺨을 맞아도 훈수를 둬야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비유는 간섭하고 개입하는 시민 키비처Kibitzer’를 통해 민주 시민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정치, 경제적 삶의 테두리는 법이 규정하고 있다. 금태섭의 디케의 눈은 정의의 여신이 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법의 공정함과 평등함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법의 역할과 의미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 책의 시작부분에서 저자는 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의 문제부터 사회적 정의(正義)가 무엇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는 법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법을 감시하고 법집행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무관심은 부작위적(不作爲的)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와 같다. 내가 참여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내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시작된다. 행복한 삶을 꿈꾸며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제도와 규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와 법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갖고 손 내밀어야 하지 않겠는가.  

 

120521-04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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