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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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평론가 김상욱 교수가 함량 미달이라고 했다는 <흔들리며 피는 꽃>은 시적 긴장감이나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담쟁이>와 더불어 도종환 시인과 동시에 떠오르는 시다. 『접시꽃 당신』으로 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도종환 시인. 이제 25년이 지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가 쓴 시와 더불어.

8월에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고은, 도종환 두 시인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2차까지 함께 할 기회가 있어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시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담겨 있다. 밝은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시인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일평생 교육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은 시인의 삶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사와 민주화운동, 문화운동의 한 부분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으며 그때마다 어떤 시들이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기쁨보다 슬픔이 웃음보다 눈물이 가득하다.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위암으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접시꽃 당신』의 성공, 그리고 최근의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이르는 과정은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전적 해설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시인의 삶과 시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시대와 우리 사회의 면면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를 성찰하는 것은 문학적 진실을 반추하는 기회이며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문학이 한 시대를 증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도종환의 시는 현실과 서정 사이에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다. 정호승의 시 회색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도종환의 시는 『접시꽃 당신』에 대한 최두석의 비판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문지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종환의 시가 과연 함량 미달로 느껴질까. 그것의 판단 기준은 비평가의 몫일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시에 열정을 잃지 않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그의 삶을 통해 작품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도종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고 아직 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문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물어뜯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시인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타인의 불행과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보다 그 상처를 잘 견뎌낸 그의 시가 아름답다.

시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쓴 시는 독자에게 가슴으로 전해지고 울면서 쓰면서 쓴 시는 눈물까지 전달된다.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써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부터 군데군데 묻어나는 한숨과 눈물은 그의 시만큼 가슴을 적신다. 한 편의 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의 소설만큼.

손잡고 함께 걷는 일은 어렵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내부적 갈등…….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시인 같은 심성만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지도 않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담쟁이>는 도종환의 삶과 시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11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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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1-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와보네요.
여전히 좋은 글 쓰고 계시네요.

sceptic 2011-11-26 21:00   좋아요 0 | URL
책에 코를 박고 잉크냄새를 킁킁거리고 싶은 유혹을 버릴 수는 없죠. 감사합니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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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주체이며 생존의 수단이기도 한 몸. 원시사회에서 몸과 현대 사회의 몸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몸에 대한 미적 기준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달라졌다. 근대 이후 질병에 대한 관점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병원이라는 분리 공간이 생기면서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정신 질환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드러낸다.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격리, 배척했던 역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음험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다.

17세기는 진실의 상실에서 광기를 발견했다. 즉, 자연이 아니라 자유에 속하는 인간에게서 각성과 주의력의 역량만이 문제시되는 온통 부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은 광기의 가능성을 환경의 구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고 빗나간 감성, 욕망의 일탈, 척도를 박탈당한 시간이며 매개의 무한 속에서 상실된 직접성이다. -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586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는 몸에 생긴 모든 질병을 분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서양의학은 세포단위로 환원하여 끝없이 세분화하여 처방한다. 해부학의 발달로 우리의 몸은 개인적인 특성과 분리되어 표준화 일반화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매뉴얼에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다양한 의료기기의 발달과 의술의 발전은 새로운 질병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사람도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넓은 범위의 ‘환자’로 살아간다. 임신되는 순간부터 산부인과의 도움은 시작되며 의사의 사망선고로 공식적인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몸의 주인인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내 몸의 주체적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관점으로 몸과 병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인가.

전통적 직업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으나 가장 자유롭고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고미숙이 이번에는 몸에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을 이야기한다. 그린비의 리라이팅 열 다섯 번째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요약되어 있다. 의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5편(篇) 106문(門)으로 구성된 허준의 역작을 활용하는 방법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방식과 다양한 관점을 갖춘 고미숙의 해설은 동의보감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은 언제나 현재적 유용성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몸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우리의 몸은 개별적 존재로 살아온 환경, 먹었던 음식 그리고 체질과 생활조건이 다르다. 그렇다면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도 조금씩 달라야 하지 않을까. 콧물이 흐르고 두통이 있고 몸살 기운이 생겨 병원에 가면 한 번에 한 숟가락쯤 되는 약을 지어준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이라는 말이 있다. 균형과 리듬이 깨진 몸을 돌보라는 신호라는 뜻이다. 심한 경우 합병증이 생기고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환절기만 되면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켜나갈 수는 없다.

의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처럼 그들만의 암호가 오고가고 언제부터인가 의사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으며 의료산업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아무도 적정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싼 의료 장비와 수많은 검사와 검사료, 적절성을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수많은 수술요법과 치료약들……. 예를 들어 고미숙은 자궁 적출 수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궁 근종 등 여성 질환의 경우 질병의 근원 자체를 없애버리는 수술을 시행하는 데 이것은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닌가. 임신여부와 무관하더라도 자궁은 필요 없는 기관인가를 묻고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한마디이다. 과잉진료, 과다복용은 자연치유보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오늘도 안녕한가.

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본 후에 『동의보감』의 구성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여성의 몸을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책 뒤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고 있다. 본문 내용에서 자주 인용했고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이나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을 더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소개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精•기氣•신 神’으로 구성된 우리 몸의 비밀과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오장육부의 신비 그리고 병과 약의 관계를 순서대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는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인 즐겁고 유쾌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한 권의 책에서 깊이와 넓이를 모두 담보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자신의 관점과 비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고 앎의 세계를 넓히거나 다양한 관점을 얻는다는 추상적인 목적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금 내 삶의 방법과 관점을 조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고미숙의 책은 ‘근대’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열하일기를 주유하고 공부와 사랑과 공부를 넘어 이제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제한된 틀과 제도권에서 벗어난 고미숙의 삶과 공부에 언제나 부러움을 느낄 뿐이지만 그 결과물인 책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최근 감이당을 개설하고 ‘수유+너머’와 결별을 선언한 이후에 활동도 주목된다. 고미숙의 책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과 같다. 늘 새로움과 자유로운 세계를 안내 받고 싶은 욕심이다. 『동의보감』에서 시작된 몸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편작에서 융까지, 치유본능에 충실한 의사들의 전언은 한결같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이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 준 우리들의 멘토인 허준의 전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정기신의 발현이자 존재의 원초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 438쪽


20111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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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50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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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동영상 그리고 종이책

EBS의 지식채널은 짧은 동영상만으로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못지 않은 감동과 정서적 충격,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광우병관련 영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보복 인사 조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륭전자3년’을 마지막으로 지식채널을 떠난 김진혁PD가 곧 지식채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남은 자들은 낮은 자세로 복지부동하거나 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누구를 탓하랴, 다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될 뿐.

책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EBS의 프로그램들은 자주 책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이라면 다시 보기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왜 종이로 된 책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깊이와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책 나름의 원칙과 방법으로 독자와 만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표지 디자인으로 책과 첫 대면을 하지만 기획에서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물론 책의 ‘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속’은 작가가 책임지지만 책의 꼴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출판기획’이 선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물에는 가끔 ‘옥의티’가 있을 수 있다. 사극의 배경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분위기가 확 깨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그 책의 속(내용)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꼴(형식) 때문에 완전히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다음 몇 문장을 살펴보자.

◆ 경복궁은 말이야, 원래 1939년에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어요. 1939년, 참 까마득…… 하지? - 35쪽
◆ 최고의 로맨스로 이야기되어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 57쪽
◆ 백호 :(난처해하며) 아니, 그게 아니라…… 범인을 놓쳐가지고…….
남자 : (화를 내며) 됐어요! (아이를 안고 돌아서며) 자, 가자. 많이 놀랐지? - 76쪽
◆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향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 106쪽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1395년에 경복궁을 창건했다. 1939년?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이야기가되어지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최고의 로맨스로 인정받은’, ‘최고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정도면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화 상황의 ‘백호’는 범인이다. 이 대사는 분명히 경찰인 ‘대찬’이다. 마지막 문장은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로 고쳐도 어색하지만 ‘삶을 방향을’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꼬인 문장을 풀어야 한다.

가독성을 해치고 책의 질을 완벽하게 떨어뜨리는 몇 개의 문장에 표시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만들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라 ‘펴낸이’와 ‘기획’은 있으되 ‘편집’은 없는 이 책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11년 11월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입맛이 쓰다. 좋은 책의 절반은 편집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만큼 출판사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야기,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간은 인관관계를 공간은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사건이 결합되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문학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뒷담화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입만 열면 무수한 소문에 상상력을 보태 전하는 사람처럼 미성숙한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전통적인 서사와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이야기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를 다루는 것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의 영화와 아야기의 뼈대는 바로 이것이었다. - 5쪽

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란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책을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기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 보자.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정된 범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오로지 안정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실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아닌가.

탄탄한 구조, 개성 있는 등장인물, 반전의 묘미, 비극을 이용한 공감대, 아이러니의 활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조건을 알기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단계와 방법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 시대를 분석하고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PD와 작가가 한 팀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과정이 짐작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구성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매체를 뛰어넘어 시청자가 아닌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명쾌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면 ‘왕과 왕비’ 예문같은 진부한 소설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리라. 
 

201111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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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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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 25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옛날,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원숭이들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자유로워진 두 손은 이제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향감각이 더 예민해졌으며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약 20만 년 전, 원숭이들은 뇌의 용량이 커졌고 드디어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5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가장 많은 지하자원을 품은 대륙이다. 인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약 10만 년 전에 이들은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베링을 통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빈곤과 기아, 각종 질병과 AIDS, 종교 분쟁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만 기억하는 대륙 아프리카.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갖게 된 편견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심리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의 힘은 아닌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너무 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이해와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많은 편견처럼 아프리카는 그저 무관심한, 불필요한, 의미 없는, 보기싫은, 열등한 대륙인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고통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갖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편견과 의심 없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 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케이프타운에서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에 의해 씌어졌다. 저자는 잘못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거창한 의도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함부르크 대학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소년이 부르던 노래처럼 ‘검정’이라는 색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과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이 한 권의 책은 너무 작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와 검정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빚어낸 비참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아주 작은 의미이다.

기원전 5억 5000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개괄하며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원과 다양한 문명을 소개하는 데 절반을 할애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 열강들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살육과 일방적인 폭력, 짐승처럼 팔려간 노예들의 역사는 어떤 비극적인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또한 신산스럽다. 아직도 빈곤과 기아, 에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은 대륙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사’를 단순히 승자의 역사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수많은 패자의 눈물과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피를 잊지 않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잃어버린 혹은 우리가 빼앗은 것이 무엇일까.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책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1895년 서아프리카 모시의 왕) - 140쪽


20111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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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 테마로 세계를 읽는다, 개정판
김윤태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457쪽

하나의 세상, 두 개의 눈

저녁 무렵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를 만나 사고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고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에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세상을,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두 개다. 왼쪽과 오른쪽 눈의 시선이 겹쳐 입체감을 형성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두 개의 눈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역사서술이란 무엇인가.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단선적인 방법에 익숙한 우리는 왕조중심의 한국사, 유럽중심의 세계사에 너무나 익숙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인류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넘나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역사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눈은 타인의 그것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은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세계사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사이다.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언어와 민족을 넘어 시간의 두께와 공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세계사는 숱한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신문의 편집처럼 선택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점’의 문제이다. 왼쪽에서 볼 것인가 오른쪽에서 볼 것인가 위에서 볼 것인가 아래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의 테마’로 읽는 이 세계사는 차례를 통해 저자의 관점과 책 전체의 흐름을 우선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말대로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보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해석한 이 책은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상식과 교양 그리고 세계사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common sense’와 ‘good sense’의 차이를 설명하시던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상식과 양식 혹은 상식과 교양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가 아니라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세계사이다. 잡다한 상식과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각각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 시기로 말하자면 근현대 세계사에 해당한다.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을 형성하게 된 세계사를 짚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과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각각의 개념들을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은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빈약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름의 관점으로 명확하고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문장과 밀도 있는 해석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각 장 끝에 ‘더 읽을 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너이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잘 만들었는지, 저자는 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때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서들이 소개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연표와 색인목록은 책의 꼴을 제대로 갖춘 마무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책과 논문, 칼럼,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두루 맞춤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어떤 역사도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란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란 모조리 부정하거나, 무조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의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369쪽


111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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