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풀도 아니고 북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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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2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책을 엄청 많이 읽으시는군요. 존경스럽네요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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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책의 시작은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은 말해 줘도 모른다는 저자의 도발적인 프롤로그로 요약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굳이 말로 확인할 필요가 없으며 말해도 모르는 것 때문에 설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발적인 변화와 인식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인간의 사유는 그가 살아온 테두리 안에서 결정되며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설령 관심을 갖는다 해도 공감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자면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낭만적 혁명론은 부정되어야 한다. 이기적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 이타적 사랑에 대한 갈급한 욕망은 오히려 혁명을 비현실적 꿈의 세계로 안내할 뿐이다. 고독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 의지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으며 사랑은 그 나머지 것들에 대한 작은 인정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어느 더운 여름 일요일 저녁 공원을 거닐 듯 가벼운 마음으로 치유 받고 싶을 때 권할 만한 책,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는 인문학적 산책의 동반자로 어울린다. 류동민은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책 말미에 덧붙이듯 열 명의 저자와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가리타니 고진, 알랭 바디우, 김훈, 슬라보예 지젝, 홍상수의 <북촌방향>, 알랭 드 보통, 루이 알튀세르, 마오쩌뚱, 폴 스위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장하준이 그들이다. 폴 스위지를 제외하고 모든 작가의 책들을 한 두 권씩 읽어보았고 <북촌방향>도 보았다고 해서 류동민의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만 남겨지는 이 책은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마르크스식 힐링 캠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단기적인 일상에 파묻히지 않고 개인의 행동이 사회 전체의 구조와 연결되는 지점과 방식을 이해하는 것, 즉 사회과학적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6이라고 강조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부터 유리된 사회과학적 논리는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6)라고 선언한다. 고개를 들고 문득 인문학적 상상력사회과학적 논리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민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어떤 소통과 믿음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사랑이나 배려라는 이름으로 위무되는 행위인지.

 

책을 쓰면서 책 읽기를 통해서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들과의 관계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7)라는 말에 밑줄 그는 내 손을 바라보며 나는 점점 더 그 배움의 의미 반대편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배운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의미가 그것이다. 서로 가 닿지 못할 것에 대해 노력하는 것은 자기파괴적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의 열 한 번째 테제를 자기 묘비명으로 삼았을까.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33)라고.

 

이 책의 구조는 --사회의 단순하지만 복잡한 관계 양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안에서 각각의 작동원리를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적 삶의 태도를 기웃거린다. 관계의 비대칭성과 권력관계로 민주주의를 분석하거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꿈꾸는 공산주의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그러하듯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인생은 뚜렷한 목표와 자명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우연과 엇갈림의 클리나멘이 때문이다. 저자는 클리나멘은 사물의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결과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직선 운동이 아니라 엇갈림의 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78)라고 정리하지만 인과관계와 논리에서 벗어난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은 또한 관계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권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사람과 권력의 대상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권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힘이 배분되는가의 문제이지, 대상에 대한 절대적 힘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프루스트가 얘기한 것처럼 질투가 사랑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 203

 

타인에 대해 함부로 지껄이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과 질투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이다. 권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지만 그 작동원리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고정된 틀로부터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나의 자유를 위해, 내 생각과 행동의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낸 논리를 객관적으로 검증받으려는 노력은 게으른 자의 또다른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류동민은 이 책에서 남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모든 자유를 허락하라는 경구는 그래서 거꾸로 읽으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이미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229)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원칙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1인치의 논리도, 합리적 판단도 없이 맹목적인 자기애로부터 출발한다. 자기 소외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사회적 관계로 나아가고 그 사회적 관계들이 자기 자신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자신을 찾으려는 여정에 불과하다고 본다. 저자 류동민과 함께 떠나는 마르크스식 자기 치유 산책 프로그램에 동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선택했던 여정, 즉 개인의 자기소외로부터 출발하여 사회관계로 올라갔다가, 다시 그 사회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개인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발전을 분석하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냉철함과는 다른 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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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 '수학사랑' 박영훈 선생의 수학사 특강
박영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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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폭탄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존 매클레인 형사는 5갤런과 3갤런 물통 두 개를 가지고 정확히 4갤런의 물을 담아 테러를 막아야 한다. <다이하드 3>에서 테러리스트가 낸 이 문제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풀었을지 궁금하다. 수학은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차분하게 고민하는 해결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수학은 우리에게 어렵고 지겹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일 뿐이다. 즐기지 못하고 극복해야 하는 과목이라는 선입견은 많은 학생들에게 집합과 명제를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눈을 뜨고 시계를 보면서 시작되는 현대인의 하루는 철저하게 수의 세계 안에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나 시험에서 벗어나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학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수학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은 현실에서 적용할 수 없는 문제 풀이 위주의 추상화된 세계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지적 호기심도 자극하지 못하고 현실적 유용성도 없는 분야로 수학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시험과 점수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이런 부담을 덜어내고 수학을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논리적이고 명쾌한 수의 세계에 매료되면 그 어떤 분야보다도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는 분야가 수학이다. 강석진은 <수학의 유혹>을 통해 이러한 즐거움의 세계로 우리를 유혹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도 있지만 수학에 미친 강석진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재미있고 유쾌하다. 가장 실용적인 학문임에도 가장 추상적인 내용의 문제 풀이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이 책은 수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수학이 왜 재미있는 학문인지 알려준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이론적인 해설서와 수학공부 비법이 오히려 아이들과 수학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단기간에 점수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수학의 중요성을 스스로 체득하는 데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책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내용들을 설명하면서도 수학적 원리와 문제 해결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축구공의 표면을 덮고 있는 정다면체의 비밀을 수학으로 설명하면서 우리가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들일수록 수학의 숨결과 신비가 숨어 있다고 말하는 강석진은 수학이 우리 생활을 더욱더 풍부하고 깊이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을 준다.

 

이렇게 즐겁고 편안하게 실제 생활에서의 유용성과 재미를 통해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면 수학의 기원을 더듬어 볼 차례다. 박영훈의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를 따라가면 또 다른 수학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오로지 공식을 외우고 수많은 기호를 통해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수학의 기원을 살펴보자.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등장한다. 수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며, 수학이라는 학문은 인류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수학에 접근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준다. 우리의 인생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수학이라고 말하는 강석진의 말이나 문제해결의 도구라고 말하는 박영훈의 이야기는 기능적 수학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으로서 수학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고대 철학자들이 수학자들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논리적인 사고와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은 철학자들을 자연스럽게 수학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최초의 수학자 탈레스부터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물론이고 유클리드까지 다양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수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을 찾아 수학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1부터 9까지 숫자 중에 하나를 떠올려 보자. 그 숫자에 9를 곱하고 두 자리 수가 나오면 각각의 숫자를 더한다. 그 수에서 5를 빼고 제곱을 한 다음 2를 더하면 당신이 어떤 숫자를 떠올렸든지 오늘 날짜인 ‘18’이 된다. 마술 같은 수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수학을 만나게 된다. 중세 문학을 전공한 앤 루니의 <수학 오디세이>는 단순히 수학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거나 수학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학이 발생한 배경과 역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인류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 수학은 시대에 따라 그 발달 속도를 달리한다. 기원전 400년께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심에서 비롯되어 2000년 전 나일강의 삼각주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의 평지 사이에서 단순한 셈 이상의 수학적 활동이 시작되었다. 앤 루니는 수학의 시작인 ‘숫자’에서 시작해서 수열, 기하학, 삼각법, 대수학과 방정식은 물론이고 미적분과 통계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전 영역의 기원과 발생 과정을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풀어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문제해결 과정은 뛰어난 상상력과 추론 능력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학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려면 공식과 계산에 얽매이지 말고 실제 주어진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방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삶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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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절반, 여성 이야기 - 성차별 깨뜨리기 일곱 마당, 개정판 우리 청소년 교양 나ⓔ太 2
우리교육 출판부 엮음, 김혜연 그림 / 우리교육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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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행복해요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이 말은 그저 유혹적인 광고 카피에 불과하다. 이 기만적인 카피는 주방 가전제품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 여자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예쁘고 성능 좋은 냉장고를 살 수 있는 여자가 행복하다는 이 광고에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보는 왜곡된 시선이 숨어있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여동생, 딸에 이르기까지 가족 안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대법관 후보 12명 중에 여성은 단 한명도 없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객관적인 공정성이 전제된 각종 시험이 아니면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여전히 히잡을 쓰는 중동의 여인, 할례의식을 하는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 등은 문화의 다양성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고민하고 생물학적인 성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에서 성역할을 다루는 젠더(gender)의 개념을 통해 여성학은 새로운 분야로 자리 잡았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여성들이 있지만 유럽에 비해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미래 사회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먼저 여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은 삶의 주체로 홀로 선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벗어나 남성과 능력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과거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깨뜨리고 있다. 공정한 경쟁에서 남녀의 능력은 차이가 없다. 차별은 차이와 다르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만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말한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세상의 절반, 여성 이야기는 성차별을 깨뜨리기 위한 즐거운 놀이마당이다. 실제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례중심으로 풀어낸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존재인가를 진지하게 살펴본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성차별의 문제를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책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이 길들여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학생들의 발랄한 문제의식과 다양한 사회 현상들에 대한 고민이 즐겁게 펼쳐진다. 문학이나 대중매체에서 여성의 모습은 어떠하며 건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여학생들이 직접 쓴 꽁트 여자는 왜?’, 마당극 다 함께 웃는 명절그리고 다시 쓰는 신데렐라는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 준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경쾌하게 지적하고 즐겁고 긍정적인 태도로 바꾸려는 노력은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무의식중에 했던 말과 행동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에 비해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 평등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여성 문제에 접근한다. ‘평등의 방법과 태도는 다양하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자다움여자다움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머니의 희생을 미화하고 강요했던 과거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이어트와 외모지상주의 문제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꼼꼼하게 짚어본다.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여성의 특성은 물론이고 남성과의 불평등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볼 것이 아니라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아 대등하고 당당한 여성의 삶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주는 책이다. 

 

나임윤경은 여자의 탄생을 통해 여자의 일생을 살펴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여성은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차별을 받는다. 작가는 여자의 생애 전체를 자신의 경험과 여성학 이론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여성으로 길러지는 과정의 문제점, 학교에서 남학생과의 강요된 차이, 사춘기에 느껴야 하는 정체성을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랑을 할 때도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지는 이유와 데이트 비용의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돈을 벌고 결혼하는 과정, 아줌마가 되어 받아야 하는 편견어린 시선에 대해 점검해 보자. 이 책은 여자로 태어나 철저하게 여자로 길러지고 여자로 살아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녹여내고 있기 때문에 친근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여성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대안까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남자든 여자든 어느 한쪽의 성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한 사회, 모두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시선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도 불행하게 한다. ‘더불어 함께사는 지혜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점에서 평등한 관계를 이루는 데 있다. 젠더(gender)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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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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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때로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도망치려 했던 사람으로서, 이 소설이 끝을 맺어 기쁘다.

 

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독자들을 상상해 본다. ‘(,욕망)’(, 규범)’로 자신을 드러낸 김두식이나 우연과 필연 사이의 알 수 없는 인생의 간극을 드러내려는 은희경이나 그들이 말하려는 것은 인생이 아닌가.

 

모든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스며 우리의 인생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 불안과 혼란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 환멸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은희경의 장편소설 태연한 인생의 가제본을 단숨에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김두식의 욕망해도 괜찮아때문인지 몰라도 소설가 요셉이 몸담고 있는 속물세계와 비루한 일상성 그리고 대책 없는 감상은 장삼이사들의 하루하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래전 어느 봄날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통화중인 한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시선은 운명에 회오리를 몰고 온다. 그것이 바로 아이러니한 인생의 우연이고 그 우연은 의 서사를 만든다. 소설 전체의 액자에 해당하는 이 사건은 내부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모든 사건들의 시작과 끝이 아니다. 그저 와 연결되는 한 변곡점을 암시할 뿐이고 그 변곡점은 절대적인 서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역할이 아니라 계획될 수 없는 생의 이면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읽힌다.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영원으로 가정한 채 달려가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소설의 내부 이야기는 소설가를 통해 문단권력이나 상업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와 조직이든 유사한 문제는 있다. 다만 그것에 대한 풍자와 반어 그리고 냉소적인 문체는 이 소설이 지닌 통속성을 갈음하는 것 같아 깔끔하게 읽힌다. ‘요셉두 사람 중 누가 태연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마치 호수 표면에 우아한 백조의 발놀림처럼 누구나 그렇게 태연을 가장한 채 혼란과 불안을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과 분위기가 영화 <북촌방향>이 떠오르게 했지만 전혀 다른 곳의 시선들이 하나로 모이기도 하고 하나로 모였던 시선들은 제각각 인물들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조언과 충고를 구하는 사람도 질색이었다. 의욕적인 계획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동의를 원할 뿐이다. 충고를 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희망을 기대했다. 비관이 신중함이고 냉정해야만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결국 시간만 아까웠다. - 19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밑줄 긋기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꾸 빨간펜을 찾게 되는 것은 공감의 다른 표현이다. 유사한 상황이었던 순간이 떠오르거나 작가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소설의 군데군데 밑줄 그은 대목만을 들여다보며 작가의 말을 대신 떠올리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한다.

 

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세상의 끝은 S시가 아니었다. 열정이 끝나는 지점이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열정에는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 241

 

흔해 빠진 이야기의 통속성도 문장으로 확인하고 나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은희경의 소설이 서사 위주의 재미와 첨예한 갈등으로 인한 긴장감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의 술자리처럼 느슨하게 읽히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런 문장들 때문일 것이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 243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자발적인 소설의 소비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그 나름의 이유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설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최소한 다른 즐거움을 포기한 기회비용이 생각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니, 그 다른 즐거움들에 대한 냉소를 키웠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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