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경제학 편 청소년을 위한 교양 오딧세이 1
황유뉴 지음, 이지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일상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모든 행위들을 이제 우리는 ‘경제’라는 잣대로 들여다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드는 순간까지 경제적 동물인 인간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알맞은 인간형으로 변모를 거듭해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동가치와 상품가치를 올려놓는데 골몰한다. 컴퓨터와 영어는 물론이고 자본에 복무할 준비와 자세는 전쟁터의 군인에 버금간다.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모두의 일상이 방향 없이 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철학과 삶의 목표를 추구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준비와 마음가짐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 경제학편>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관한 간략한 역사이다. 학문적인 관심과 무관하게 역사의 진행방향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 한 행위가 경제의 기초라고 생각한 케인즈부터 미국의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상 ‘돈’과 관련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책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경제적 행위를 중심으로 경제학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까지 고전 경제학 시대로 구분하면서 부아기유베르, 애덤스미스를 중심으로 초기 경제학의 특징을 설명하며 이후 정치경제학이나 한계주의, 케인즈주의, 화폐주의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학의 역사를 철저하게 인물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사건중심이나 실제 경제 현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학자들의 주장과 현실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내용을 많이 접하기 힘들다. 쉽게 풀어쓰기 위해 사례를 만들어 놓은 부분들이 있으나 어색하고 내용 자체가 연결되지 않는다.

  책의 의도는 쉽고 재미있게 경제학의 역사를 들여다 보려고 하지만 내용은 단속적이고 분절적이며 재미없고 지루하다. 각각의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이론이나 대표적인 저서를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론의 타당성도 현실 적용 문제도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빈약하고 연결되지 않아 지루하다. 깊은 성찰과 핵심적인 내용의 정리가 아니라 산만하며 단편적인 나열에 불과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책은 당연히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학문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을 위한 교양’을 표방하고 있지만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나 나열로 교양이 저절로 쌓이지는 않는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된다. 화려한 컬러사진과 지나치게 좋은 지질이 부담스럽다. 편집이 화려하다고 해서 내용의 부실함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이 어떤 것이며 그 발전 과정을 청소년들이 알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과 올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란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혹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들과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훨씬 설득력 있고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경제는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으로서 부대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측면에서 경제의 힘과 구조 그리고 문제점과 모순들을 알고 가르치고 배우며 개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나 돈과 관련된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경제학-철학 수고>를 쓰며 칼 마르크스가 고민했던 바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현실을 개선했나? 정치학이나 철학과 무관하지 않은 경제학이 되어 사람을 살리는 경제학이 되려면 어떤 노력과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청소년들이 이루어나갈 사회의 모습은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고민과 방법들을 모색해 보는 책을 기다리는 것이 지나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부족하고 필요한 책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경제학도 더 많이 필요하다. <괴짜경제학>처럼 일상과 직접 관련된 책부터 <쾌도난마 한국경제>처럼 큰 그림을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의 내일이므로.


07081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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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 - 청소년들이 만난 한국의 지성 12인, 푸른교양 001
논 편집부 엮음 / 초암네트웍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대입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고교 교육은 정상화 될 수 없으며 초중등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입제도는 대학의 서열화를 해체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능력과 실력 위주의 사회 풍토를 정착시켜야 하며 신자유주의 질서에 편승한 경쟁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들은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대입제도 변화의 핵으로 자리 잡으며 전 국민을 ‘논술’의 광풍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학생 선발을 위해 출제되는 논술시험과 통합적 사고가 요구되는 삶을 위한 논술은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 누구나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해답은 찾기 어렵고 모두가 준비하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논술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과 공포를 빌미로 학원은 돈을 벌기 시작했고 학교와 교사들은 굼뜬 동작으로 현실을 지켜본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작은 변화와 실천적 노력의 성과들을 묶어낸 책 <내일이 오늘에게 묻는다>는 책으로서 의미보다 방향과 설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청소년들이 직접 주체가 되어 사회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지식인들을 찾아 나섰다. 열두 명의 지식인을 찾아가 한 명 혹은 여러 명이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들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은 내용보다 형식을, 구성보다 방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것이 인터뷰 형식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심층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내용이나 형식들이 틀에 갇혀있고 답변의 내용이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만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 각 분야에서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열린 지식인으로 선발됐을 법한 지성인들과의 만남이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현행과 같은 교육제도에서 경험할 수 없는 값진 기회를 가진 학생들의 생각과 의식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권혁범, 임지현, 김상봉, 정희준, 강맑실, 백기완, 홍세화, 황대권, 정재환, 조희연, 이정우, 나희덕. 이상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고등학생들에게 접해보지 못한 사회의 문제와 실제 생활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관심들이고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들이다. 교과서와 입시 위주의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짙어지게 하는 내용들이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월간 <논>이라고 하는 학생용 논술 잡지에서 기획했고 초암아카데미에서 발행한 대입 논술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데 있다. 목적과 방법이 왜곡될 여지가 남아 있어 조금 아쉽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관한 부록도 학생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피상적이고 수박 겉핥기식 대담으로 깊이가 없고 짧은 분량으로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약점은 책의 의도와 학생들과 지성인들과의 직접 대면이라는 형식에 가려질 만하다.

  그들은 우리의 내일이다. 책의 제목처럼 ‘내일’이 ‘오늘’에게, 미래가 현재에게 묻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나아갈 방향과 지표들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이라는 망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눈과 비판적 안목을 길러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자세가 절실한 현실에서 학생들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다.

  삶의 방향과 생의 목적을 묻는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기였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최소한 내가 살아가야할 사회에 대하 보다 진지하고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들에게 열린 공간과 기회를 주어야 하며 현재의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과 그들이 고민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의미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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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16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리뷰, 추천입니다^^

sceptic 2007-08-1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게 너무 진지하다는 단점이 있죠...^^
 
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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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한다.’는 하이데거의 말은 이미 반세기 전의 진단이지만, 모든 사실과 언어가 대중 매체의 언어 조작이 되어버린 오늘에 특히 맞는 말일 것이다. 무세계의 어두운 시대는 오늘도 계속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 P. 36

  김수영의 영원한 시적 탐구가 ‘자유’로 귀결된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삶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지칭해도 좋을 김우창의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깊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현실적인 삶에 대한 고민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세대를 대표하며 생의 정리 단계에서 쏟아내는 감성과 이성 그리고 심미적 세계에 대한 선생의 발언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의 내적 긴장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 고리에 팽팽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고 있으며 전체가 단단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3부 심미적 질서 부분이 그러하다. 1부에서는 무세계의 세계성에 대해 2부에서는 적극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이 부분들이 책의 핵심적 사유를 드러낸다. 심미적 질서는 쉴러의 저작과 사상에 대한 해석들이고 선생 자신의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지만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미적 기준과 역할들을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어 적극적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개인적,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다루는 부분에 핵심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목표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만들어 가는 투쟁에 불과하다. 철학과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에 대한 의미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저자의 선언은 조용하고도 분명하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진보의 역사이다. 이 역사 발전에서 도덕은 매우 착잡한 현실적 연관을 가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도덕은 너무 쉽게 왜곡되어, 인간의 자유에 대한 외적 구속으로 작용한다. 그 왜곡은 그 자체의 속성보다도 현실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 P. 123

법이나 도덕을 외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교에서 신적인 것을 성스러운 것이라기보다 힘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 P. 123


  법과 도덕과 자유에 관한 개인의 생각과 태도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외연적 요소들이 왜곡되고 뒤틀려서 개인과 사회에 미쳤던 해악과 위험들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과연 신자유주의와 매스미디어와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의 삶을 예로 들어 자유와 현대인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수학적 난제를 해결하여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인터넷에 풀이과정을 공개하고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메달 수상을 거부했으며 돈과 명예가 보장된 직위들을 모두 거부한 채 어머니를 모시고 등산을 하며 버섯을 따는 일이 하겠다는 페렐만을 단순히 이 시대의 기인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공적인 빛은 모든 것을 어둡게 하는 것인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당장 오늘 하루와 내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자유의 의미를 묻는 것은 배부른 유행가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유 속에 태어나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로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시작한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선언인지도 모른다. 과연 ‘자유’란 무엇이며 저자의 말대로 ‘진실 안에 산다’는 말이 그렇게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몸에 묶인 사슬을 끊고 진실 안에 살 수 있는 삶은 스스로의 노력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할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아닌가?


070809-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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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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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없는 사회>에서 “학교제도는 기회를 평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하고 말았다”고 선언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성을 기르기 시작하는 첫 걸음을 학교라는 체제에서 출발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근대적 사회 제도 안에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반성적인 성찰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생각하는 방법과 틀조차 정형화 규격화되어 버린다. 자본과 권력에 좀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한 지름길을 모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은 끊임없이 사유의 폭을 좁히고 닫힌 세계 속으로 개인을 몰아간다.

  생각이라는 것은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역설적으로 어느 곳에서든 만들어지는 것이며 일회적이지도 순간적이지 않다.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변화를 일으킨다. 기본적인 사고의 방향과 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가치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 성장기에 굳어진 생각들이 끊임없이 외부적인 요소나 조건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변화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과 방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처절한 몸부림으로도 얻기 힘들어 질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초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니 인정받을 수 없는 학교 제도에 묶여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와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는 교사들에 의해 강요받은 생각과 전쟁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법을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판단일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상황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 공부와 공부를 거듭하여 실업계나 인문계를 결정하고 점수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죽기 살기로 취업에 목숨 걸거나 시험에 도전하고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꿈꾼다. 자본과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몰려가지만 그 끝은 허망하기만 하다.

  <꽃들에게 희망을>의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은 지향을 잃고 맹목적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루트번스타인 부부의 <생각의 탄생>은 ‘창조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와 세계를 고민하는 사유로서의 생각은 아니다. ‘창조성’에 찍힌 방점은 책의 마지막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21세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넘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각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이 그것이다. 단순한 사고 기능이나 창조성을 돕기 위한 방법들의 나열은 아니다. 계통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관찰로 시작해서 마지막 통합에 이르기까지 학문과 예술 등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나 천재적 창조성을 보여준 사람들의 실증적인 예가 중심이 된다. 각각의 능력이나 방법들이 왜 중요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그 분야에서 탁월한 정신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서 근거를 갖추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림이나 도표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창조적 사고와 통합적 이해라는 능력의 상관관계를 잘 풀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지만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유기적으로 엮어내는 방법도 창조성을 위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과정과 절차를 설명하고 개별적인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을 위한 ‘통합’의 과정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한 권의 책을 완결성 있게 만들어 준다. 더구나 마지막 장을 ‘전인을 길러내는 통합교육’으로 설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통합교육에는 여덟 개의 기본목표가 있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창조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예술과목과 과학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혁신을 위해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해야 한다. - P. 415

  개인적인 냉소적이고 삐딱하기 때문일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가능한 것은 몇 번째 항목일까? 예체능 과목은 내신과 수능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과 상황들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분과 학문별, 과목별 이기주의는 극단적이다. 당장 없어져야할 ‘교육부’에서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통합논술’은 ‘통합’ 아니라 과목 간 ‘짬뽕논술’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공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못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평가하겠다고 공언하는 대학들의 배짱은 언제나 가진 자의 거만함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아니라 ‘선발’에 올인하는 기득권 대학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침이 마르도록 이 책을 칭찬하는 이어령은 미래 사회의 방향과 목표가 이쪽이어야 한다는 원론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방법론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암울한 현실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생각의 도구가 없거나 방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 책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실천론이 궁금해진다.


07080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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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인성(wholeness)을 위한 사고의 체계화 "생각의 탄생"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25 17:38 
    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에코의서재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25일 읽은 책이다. 430여페이지의 책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특정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려고 했던 나였기에 여기서 제시하는 부분들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스스로도 어떠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다. 어찌보면 나도 사고의 틀을 완전히 깨지..
 
 
 
광기와 천재 - 루소에서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고명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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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해 본 사람들은 모른다. 박제가 된 천재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생물학적 기준으로 높은 IQ와 수학과 과학에 관한 문제 해결 능력이 천재의 조건은 아니다.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집념으로 거탑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라고 불러도 좋겠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사람이나 노력하지 않는데도 높은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천재는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모든 수재와 영재와 천재들은 유전적인 요소에 의해 태어난 머리 좋은 바보인 경우도 많다.

  고명섭의 <광기와 천재>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작품 <천재와 광기>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생물학적으로 뛰어난 지능이나 능력의 소유자에 대한 감탄과 경외와는 거리가 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관점에서 주목받았던 인물 탐구에 불과하다. 혹여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천재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각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전기와 생의 절정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그들의 성장배경이나 내면의 풍경들을 되짚어 보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 세르게이 네자예프, 조제프 푸셰는 정치인으로 장-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는 작가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미셸 푸코는 철학자로 묶었다. 전체 9명의 천재 아닌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담박하다. 기자인 저자가 직업의식에 투철하게 객관성과 공공성을 담보로 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고 해석의 과잉이 없다.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하고 해석하며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어떤 책도 객관적일 수 없다. 다만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풍경일 뿐이고 그의 설득력과 목소리를 독자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에 문제만 남는다고 본다면 고명섭의 이야기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지식의 발견>을 통해 나는 고명섭을 발견했다. 녹녹치 않은 독서와 꼼꼼한 내공은 이 책을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단순하게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나열하거나 보통 사람들과 다른 부분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거나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다. 9명 모두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시대와 상황을 예견할 줄 알았던 혜안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으며 동성애자였던 푸코의 삶이 그의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하이데거의 행적들은 씁쓸했다. 히틀러나 카프카, 비트겐슈타인의 경우는 다른 책이나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정리와 해석일 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이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광기’일 것이다. 태생적인 성격이 아니라 생의 어떤 순간, 선택의 시점에서 보여준 무모한 혹은 냉정한 판단과 추친력은 이 책의 성격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까지 자신을 밀어 올리며 내면의 욕망과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대로 한 편의 영화처럼 역동적이다. 유럽 역사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히틀러나 신경쇠약에 가까울 정도의 감수성과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었던 소세키는 그 영향력 면에서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상반된 인물들이 가진 성장 과정과 갈등 상황을 풀어 나가는 방식들은 우리가 단순히 천재 혹은 천재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광기는 천재성의 발현이며 천재는 광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9명이 인류의 역사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천재들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 밖에 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나 훨씬 더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광기’는 불행한 의식이다. 끊임없는 모험과 투쟁을 통해 자신을 이겨냈거나 그 능력의 한계치를 확인한 사람들의 내면은 외롭고 쓸쓸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욕망의 극한을 확인하거나 절망의 바닥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작은 희망을 보여주었던 우울한 천재들의 모습은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에서 만난 특별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그 천재성을 길어 올리고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치열함으로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일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확인하고도 외면했기 때문에 버려진 천재성이 훨씬 더 많은 곳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070807-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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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10-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퍽퍽한 건 내용때문인것 같고...뭔가 부족한 것에 대한 느낌은 있는데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라...기존의 것들에 대한 재해석과 관점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