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 문화는 어떻게 현실에서 도망가는가? , 컬리지언 총서 13
이택광 지음 / 이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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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화는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화나 사진 등 예술의 한 장르나 어떤 특정한 생활양식을 이르는 말로 이해된다. 이러한 개념은 자연 상태와 상반된 것으로 이해되며 물질적, 정신적인 인간의 역사적 축적물을 통괄한다. 종교나 언어, 풍습, 행동 양식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개념은 폭넓게 정의되고 사용된다.

  문화의 영역과 범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인류가 축적해 온 모든 생활 양식과 삶의 태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 범위와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문화는 대단히 모호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택광은 문화 비평을 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와 문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이 타당하게 보이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한국인에 대한 성찰과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자연 상태가 아닌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행위가 만들어 낸 현상들과 행위들은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나 만화, 드라마 음악, 소설 등은 한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구체적인 문화 현상들을 이택광은 몇 가지 개념들로 묶어 내면서 하나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바로 이러한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적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사의 무덤에 새겨진 묘사라는 비문’ 우리 사회의 문화 현상들을 서사와 묘사의 차이점을 통해 기발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그것은 모범답안처럼 제시되는 리얼리티는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순수-참여 논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다. 단순하게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분하거나 현실이 어떻게 문화 현상에 반영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왜’ 반영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와 결합된 문화 상품들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리얼리티의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서사가 죽어버린 시대에 가상현실에 대한 묘사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화와 정치는 다르다. 현실생활에서 140억을 가진 유인촌의 재산 3분의 1은 부인이 가진 현금이다. 이것은 문화예술인으로 분류되는 유인촌과 무관한 현실적인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가 아닌 문화와 예술 행위를 통해 환상과 신기루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은 몽환적 환타지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거짓이다.

  저자는 자본과 결합한 문화의 상품화를 철저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전제 조건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우리는 허위의식을 가진 채 실제 현실과 문화 현상 사이의 모호한 환상을 쫓게 된다. 보수주의는 문화를 통해 음란한 환타지를 만들어준다.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이다.

  저자의 말대로 서사가 초월의 욕망이라면 묘사는 환상적인 비극에 불과하다. 묘사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치밀하게 재현한다. 서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서사가 죽고 묘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래서? 재현된 욕망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그것이 사실이든 환상이든 중요하지 않다. 스펙터클과 포르노그라피,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친구와 텔미썸딩 등 우리들 눈에 비치는 모든 문화는 현실로부터 탈주한다. 현실과의 미세한 차이는 반복되고 정착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요한 시도는 문화 현상과 관객들의 끊임없는 질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임스본드와 오우삼을, 이문열과 이인화를, 김영민과 강준만과 김용옥과 김지하와 이진경과 진중권과 김규항을 분석한다. 앞서 펼쳐놓은 영화와 소설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와 문화 현상들을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면 이제 대중 속에 어필하고 있는 작가들을 점검한다. 단순하게 글을 잘 쓰거나 필력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 대조되는 사람들도 결국 문화 상품으로 포장되어 ‘잘 팔리는’ 욕망하는 기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자의 날선 비평들은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다. 2002년에 출판된 이 책은 세기말의 징후들을 읽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또 한참 흘렀지만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모든 문화라는 이름의 상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과 생활과 현실을 녹여내고 있다.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모든 문화는 재편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어리석은 이념 공방이 아니라 내가 소비하고 있는 문화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그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이 한 권의 책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왜 이런 분석과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의문은 조금 풀리는 듯하다.

  내용과 무관하게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경험들이 - 지나간 영화에 대한 추억들, 사라진 여배우들, 현재에도 건재한 글쟁이들 - 가능했던 책이다. 이 책도 소비의 대상이지만 무엇이 같고 다른지, 그 의미와 논리는 무엇인지 믿을만한 저자의 눈을 잠시 빌려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08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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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
이택광 지음 / 갈무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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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좀 읽었다는 장석주가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을 읽다가 울고 싶었다는 고백을 읽은 적이 있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육화되지 않는 책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철학적 기초가 부족하거나 번역상의 어려움, 관념적인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이유는 다양하다. 앎과 지식으로 내면화 되지 못하는 철학과 사상은 무의미하다. 현대 철학이든 고대 철학이든 사유의 방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인 언어에 대한 문제만 남겨 놓는다면 쉽게 해결될까? 비트겐슈타인처럼 명징한 논리학으로 언어를 분석하기만 하면 철학적 명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들뢰즈나 가타리, 라캉과 푸코에게 빚지고 있는 현대 철학의 이론들은 명민한 철학자만의 몫은 아니다. 이택광은 <들뢰즈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라는 책을 통해 들뢰즈를 무기로 들고 나왔다. 대상은 전방위적 ‘문화현상’들이다. 문학에서 영화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 장르와 사회 현상들을 아우르는 잣대로 삼는 것은 현대 철학의 분석틀이다.

  문화비평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정착된 것은 80년대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붕괴로부터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좌우의 대립이나 민주와 독재의 대결 구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사회 현상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정신적 아노미 현상처럼 이념을 대신하는 자리에 문화가 등장한다. 이론적 토대위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는 책과 펜이다. 읽고 쓰며 실천과 행동으로 다양성을 표방하는 세대에게 탈주와 회귀를 읽어내려는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 이택광은 영문학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날아가 발테 벤야민을 연구했고 문화이론을 공부했다.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로 그를 만났다. 그림 이야기나 하며 소일을 할 만큼 안온한 현실에 발딛고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2002의 그를 만나는 일은 신선하다. 개인적인 관심과는 무관하지만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후일담이 아니라 현재를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지적 이력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탈주와 회귀, 차이와 반복, 시뮬라크르 혹은 욕망과 분열, 증식, 글쓰기 등의 생소한 용어들에 대한 개념들을 그가 이해한 방식들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철학적 개념과 용어에 대한 해설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과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하기 위한 좋은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지 않았거나 카프카의 <성>, <심판>을 읽지 않았거나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모른다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어진다. 어떤 책이든 한계가 있겠으나 이 책은 실제 상영된 영화, 출판된 영화들을 바탕으로 이론의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들뢰즈나 가타리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듯이 이택광의 방식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

  편협한 문학이론이나 철학의 개념들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고 예술 혹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지진 않는다. 거대담론은 언제나 구체적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일반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어쩌면 무의미한 노동에 가깝다. 즐거운가? 재밌냐? 로 요약되는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우려가 있다.

  가장 최근의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라는 다소 동떨어진 책을 통해 그를 만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글이 안내하는 혹은 그가 걸어온 관점의 변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흥미있는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개별 철학자들의 개념이나 이론들을 내면화하고 그것들을 실제 문화현상에 적용하고 분석하려는 개인적인 흥미와 관심들을 이해할 필요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면 혹독한 비판일까? 육화되지 못한, 한국적 풍토와 개념으로 전환되지 않는 사상은 낯선 이방인의 몸짓일 뿐이다.

  어쨌든 저자의 관심과 노력은 흥미롭다. 그가 이해한 개념들 사이를 따라 걷다 보면 현실밖의 현실들이 더 실감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것이 영화이든 소설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사유하고 있는 세상의 어떤 일면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것은 저자의 도움 없이도 걸을 수 있지만 그와 함께 걷는 길이 그리 낯설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이어지는 이택광의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일은 내게 언제나 커다란 즐거움이다.


08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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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소개)『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
    from 도서출판 그린비 2008-08-11 14:32 
    ‘생명의 철학’으로 다시 읽는 들뢰즈『시네마』—탈인간의 가능성을 창조하는 예술의 역능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클레어 콜브룩 지음 정유경 옮김|도서출판 그린비|갈래 : 철학, 인문발행일 : 2008년 8월 5일 | ISBN : 9788976823151신국판변형(150*220mm)|304쪽리좀 총서의 네 번째 권으로서 들뢰즈의 독특한 이미지론을 통해 철학과 영화 그리고 예술의 역능을 살핀다. 살아 있는 인간 신체가 이미지화하는 능력으로 세...
 
 
 
리스본行 야간열차 문학과지성 시인선 34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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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아침은 찬란하기만 하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눈을 뜨며 살아있음을 감사할 때가 있다. 이른 새벽에 헤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이기도 하지만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된다. 현실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거나 외롭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황인숙의 <리스본行 야간열차>는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들, 삶의 구석구석을 헤집는 눈과 날선 감각들, 둥글고 부드러운 시선보다 음울하고 어두운 감각이 신선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장면과 사물은 색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의 본질은 언제나 대상과 시선 그리고 언어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시인의 시선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대상에서 무엇을 읽어내는지 어떻게 표현하는지 독자들은 그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사소함에서 위대함을, 무심한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삶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방법은 다양하다. 삶의 형태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시인의 개성이고 시의 특징이 된다.  

산오름

친구와 북한산 자락을 오른다
나는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걷고
친구는 느릿느릿,
그의 기척이 이내 아득하다
나는 친구에게 돌아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기를 몇 번, 기어이 친구가 화를 낸다
산엘 왔으면, 나무도 보고 돌도 보고
풀도 보고 구름도 보면서 걷는 법이지
걸어치우려 드느냐고
아하!
친구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려는데
어느 새 획획 산을 오르게 되는 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바위에 앉아 내려다보면
멀리서 친구가 느릿느릿 올라온다
나무도 데리고 돌도 데리고
풀도 데리고 구름도 데리고.

  여전히 느린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욕심도 없고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는다.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산과 하늘을 무심하게 보고 있다. 그는 나무도 돌도 풀도 구름도 데리고 산에 오르리라. 아득한 거리에 있는 사람을 재촉한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보폭과 속도가 있다. 앞과 뒤가 아니라 걷는 목적과 태도가 다른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여름 저녁

조금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을 듯한
먼 하늘에
태양이 벗어놓은 허물
둥실 떠 있다
조금쯤 바람 빠진 듯
맥없이 부푼 주홍빛 풍선
맥놀이 퍼지는 하늘

“그래, 이대로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버럭 중얼거리며
어리둥절하다
뭘?
몰라, 가슴 쓰리다.

  황인숙의 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잡아내기는 어렵다. 아니 어느 누구의 시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가슴을 쓰리게 하는 복병이 숨어 있는 삶처럼 그 혹은 그녀가 그러하듯이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만족과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독자의 모습이다. 이대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문답하듯 모른척 외면하기도 한다. 삶을 계속된다. 여름 저녁에도.

카페 마리안느

“누군 저 나이에 안 예뻤나!”
스무 살짜리들을 보며 중년들이 입을 모았다
난,
나는 지금 제일 예쁜 거라고 했다
다들 하하 웃었지만
농담 아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날이 훠언한
못생긴 내 청춘이었다.


  내 청춘은 못생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앞날은 훤하지만 눈앞은 캄캄했던 청춘의 뒷골목을 회상한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나이는? 그것도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뒤돌아보는 시간을 이렇게 잠깐씩 가질 수 있는 것은 황인숙의 시가 아니라도 독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청춘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카페도 있겠고, 이쁘고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절도 있겠지만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비춰보기 위함이다. 과거와 미래의 연속선상에서 현재는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청춘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사라져간다.

  동네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애정과 관찰로 만들어 낸 시편들이 읽을만하다.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고양이는 시인이 되고 시인은 고양이가 된다. 언어는 매개가 되어 진경을 선보이고 독자들은 순간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떨군다.

깊은 졸음

뒤로도 양옆으로도
벽을 훑내리는 비바람 소리
방충망에 걸러져
방 안 깊숙이 들이치는 빗가루들
등덜미에 잔소름으로 맺힌다
산란한 빗소리
속수무책.

  산란한 빗소리에 대상과 목적 없이 속수무책이라는 사자성어로 끝내버린 ‘깊은 졸음’은 정말 속수무책이다. 그 빗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외로운 섬처럼 떠 있거나 흔들리는 사람들의 가슴은 속수무책이다.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맡기거나 상황을 즐기는 것 뿐이다. 졸음처럼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볼 밖에.


080219-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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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2-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못 봤습니다.
덕분에 얼른 사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가네요.

sceptic 2008-02-19 21:1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즐겁게 음미하세요...
 
일본지식채널 -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
조양욱 지음, 김민하 그림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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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되는 일본은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 지정학적으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결코 가깝게 지낼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국가 간의 교류나 외교가 개인 간의 관계처럼 감정적으로 처리될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근대화 초기에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우리 역사는 일본에 대한 객관적 거리와 시선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식민지 사관의 논리나 민족 사관의 논리나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논의를 떠나서 일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21세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불과 60년을 겨우 넘기고 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생활과 문화 곳곳에 뿌리 깊게 배어 있다. 특히 언어처럼 사회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지닌 경우 쉽게 바뀌지 않는다. 황대권의 <빠꾸와 오라이>처럼 일본어의 잔재를 굳이 찾아서 정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일본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용어들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라면이나 초밥 등 음식에서부터 닌텐도, 도요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 일상에서 일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조양욱의 <일본 지식 채널>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생활, 문화, 언어, 정치, 역사, 사회를 대표하는 핵심 키워드를 정리한 책이다. 하나의 키워드를 한 장의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판단과 대상에 대한 인상이 간략하게 부연되고 있지만 주된 내용은 용어에 대한 설명이다. 이 책은 잡다한 박물지와 같다. 108 단어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잡다하고 일반적인 수준의 피상적인 상식에 불과한 내용들은 실망스럽다. 일본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도 없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우선 제목을 살펴보자. ‘지식 채널’은 명백한 표절이다. 무임승차를 거두기 위한 제목 선정은 책 전체에 대한 인상을 구겨 버린다. 독특하고 참신한 책이 아니라 잘 팔리고 있는 책의 제목을 등에 업고 무임승차하겠다는 발상은 출판사나 저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독자의 양미간에 주름을 잡아준다. ‘지식 채널’은 EBS에게 맡겨 놓았으면 좋을 뻔했다.

  또한, 군데군데 저자의 보수성과 편견들에 눈살을 찌푸린다. 다음의 인용문을 보자.

일본에는 “마누라와 다다미는 새것일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다.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다미는 볏집을 엮은 바닥 부분의 위에 골풀로 만든 거죽을 표면에 붙이는데, 새 다다미는 이 골풀의 향기가 신선하다. 일본인들은 새 다다미의 향기나 피부에 닿는 감촉에서 신선함을 느끼며 행복에 젖기도 한다. - P. 51

  일본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배려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의심스러워 어이가 없는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일 수 있으나 ‘새 마누라가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는 저자의 말은 문맥상 웃음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라면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는 단편적인 견해들이 일본 문화에 대한 적절한 평가나 객관적인 판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거나 특별한 안목과 관점이 없는 단순 설명은 지루한 박물지에 불과하다.

  일본어를 우리말의 발음으로 적고 일본어를 병기하고 있는 각 장의 제목을 보자.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간략한 제목들이 붙어 있지만 그 어휘나 대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장들이 많다.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설명을 읽어가면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쉽고 간단한 문장이기 때문에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하고 그것에 대한 이면적이 이야기와 문화적 배경들을 설명하고 있지만 감동은 없다. 마켓 포지션은 잡학 사전 쯤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는 책이다.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본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피상적으로 혹은 간단하지만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는 것도 있다.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지만 아쉬운 면이 훨씬 많은 책이다. 목적에 따라 일본에 대한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할 때 손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기는 할 것 같다.


08021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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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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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세상 살아가면서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아끼고 기대고 의지하며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냉정하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다. 객관적으로 감정의 우열를 가릴 수 없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태도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관적 감정과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의 태도와 반응에 따라 내 마음은 춤을 추고 스스로의 자아 정체감이 흔들린다. 그 많은 사람, 관계의 네트워크는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복잡하다.

  이렇게 많은 관계망 속에서 특정인에 대한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관심과 배려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구속하고 집착하며 억압하는 관계는 누구나 맺고 있다.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그러한 영향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로빈 스턴은 자신의 상담 경험과 피상담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향 관계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가스등 이펙트>는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인간의 심리 상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다. 마음이 원인이라면 행동은 결과가 된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생기는 괴로움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지배하는 원인을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더불어 원인을 명확히 알지만 제공자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역할 모델일 경우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영혼의 처방전이다.

  애인이나 남편, 직장 상사나 친구, 가족이 대표적인 가해자gaslighter이다. 피해자gaslightee는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여성 피해자로 한정된다. 상대방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하는 당연한 소망과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가스등 이펙트’가 발생한다. 1944년에 제작된 영화 ‘가스등’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주인공 폴라는 남편 그레고리와 결혼한다. 탐욕스럽고 권위적인 그레고리는 이모가 남긴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을 뒤지는데 가스등의 특성상 다락방에 불이 켜지면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는다.

  이처럼 ‘가스등 이펙트’는 두 사람 사이의 영향 관계를 의미한다. 한 사람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상대방은 그에게 인정과 사랑을 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문제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아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영화에서는 그레고리가 처음부터 재산을 가로챌 분명히 나쁜 의도가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처음부터 사악한 의도를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만 생각한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가에 어긋나는 작은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논리를 세우고 상대방도 자신과 동일한 논리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끔찍한 일이지만 현실에서, 주변에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늘 함께 생활한다.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모르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막강한 영향력 아래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은 ‘가스등 이펙트’의 피해자들인 것이다.

  첫째 ‘불신’의 단계에서 ‘자기방어’를 거쳐 ‘억압’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고도 실감나는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 효과는 저자가 명명했지만 일상생활을 통해 항상 접하고 있다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와 영향을 받는 피해자의 관계는 한 인간의 주체성과 연관된 문제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과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폭력적 성향을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선량한 피해자를 만나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나쁜 의도가 없을 경우 가해자의 태도나 입장은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참고해야할 이야기가 많고 실제 상황들이지만 객관적이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아쉽다. 먼저 인용된 사례의 문제이다. 애인과 남편, 직장상사와 어머니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들은 책의 시작에서 끝까지 반복해서 인용되고 재해석되며 문제의 극복 방법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가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고 일반화하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 변수가 많다. 다양한 사례로 공통점을 끌어내거나 설득력 있는 일반화가 아쉬운 장면이다.

  두 번째는 여성 편향성의 문제이다. 사례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여성 피해자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의 관계를 예로 든 미첼만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여성일 경우가 많겠지만 남성 피해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폭넓은 사례 수집과 연령, 성별, 인종과 직업을 망라한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보다 설득력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관성의 문제이다. 상담 사례 중심이기 때문에 저자가 경험한 폭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조사 혹은 단계별로 심각서의 정도를 객관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겠지만 읽으면서 지나치게 주관적인 판단과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많은 책으로 분류한다.

  어쨌든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변화는 시작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관계의 중심은 ‘나’일 것이다. 하지만 자기주장과 타인에 대한 적절한 배려는 자아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기 존중감에서 비롯된다. 우주의 중심은 나지만 지나치면 타인에게 ‘가스등 이펙트’를 나타내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조심하라!


08021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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