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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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십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가 21세기 새시대를 구가하면서, 시대를 닮으려고 그 뒤를 좇아 달려가버렸을 때, 허무성은 자신이 해일이 쓸고 간 황량한 바닷가에 여기저기 뒹구는 잔해들 중의 하나처럼 느껴졌다. 잊혀진 시절이 남긴 초라한 잔해, 그것이 학생들의 눈에 비친 그의 존재방식이었다. 달라진 이 세상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감정도 관념도 다른 사람이었다. - P. 91

  내가 보낸 이십대를 90년대를 작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현기영의 소설 <누란>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읽다가 한참 멍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선배들을 따라 시위현장에서 발밑에 지랄탄을, 머리위에 페퍼포그 사과탄을 피해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일은 이제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흑백 사진처럼 남아있다. 백골단에게 끌려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닭장차에서 대가리를 처박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허무성은 386세대의 막내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잊혀진 시절인 80년대를 기억하기 위해 허무성은 90년에도 황량한 바닷가의 잔해처럼 쓸쓸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존재방식은 21세기 대학생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저항 문화를 잃어버린,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대학생들이 허무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허무성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오늘의 대학생은 어떻게 비춰질까. 그 시선은 우리들의 시선과 많이 다를까.

  문단의 거목이 되어버린 현기영의 <누란>은 작심한 듯 지나간 지난 시대를 직선적으로 들여다본다.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방법이 주는 나른함이 없다. 군데군데 마치 신인 작가의 치기어린 열정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구절들이 보인다. 십년 만에 작품이든 준비기간이 얼마가 됐든 소설 외적인 부분에 대한 사실들이 소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작가는 현실은 과거와 다른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지 못하는 세대와 지난 시절을 철저하게 망각한 세대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우리가 바꾸려했던 세상이 우리를 바꿔버렸다고.

  1999년 세기말의 불안을 넘어 2002년 월드컵 축제의 붉은 악마와 노무현의 당선으로 새로운 세기는 화려하게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 들뜬 분위기와 미칠 듯 끓어오르던 열정은 한 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남은 건 없었다. IMF의 충격은 부동산 가격폭등과 개혁의지 실종으로 이어져 다시 정권이 바뀌고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뒤찾기 위해 교과서를 바꾸고 강바닥을 뒤집고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의식 없는 국민에겐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돼있다. 파시즘의 재림을 꿈꾸는 권력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앞의 밥그릇과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것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노동하기 힘든 나라가 된다. 당신은 기업가인가 노동자인가? 기업가와 노동자의 비율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기업가인가 노동자인가? 서민인가 부유층인가? 이것은 이데올로기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우리 이웃들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고민일 뿐이다.

  고문과 인권 유린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소설로 읽지 말자. 국가권력의 거대한 음모와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읽지도 말자. 그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장 소박하고 인간적인 우리의 상식을 확인하는 소설로 읽는 것은 어떨까?

  소설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아주 오래된 명제를 떠 올릴 필요도 없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위태로운 현실을 거울로 비춰준다. 눈이 부셔 찡그리지만 그것이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된다면 현기영의 소설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계란을 쌓아올린 듯 위태로운 상황을 나타내는 ‘누란지세(累卵之勢)’와 중앙아시아에서 번성했던 모래사막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누란(樓蘭)’ 왕국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입장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소설이다. <누란>은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지난 시대와 오늘의 우리들을 돌아보는 반성문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합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치는 이념과 무관하다. 반목과 질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난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 자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불빛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다.

이 소설은 실패와 절망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의 말’의 첫 문장이다. 이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실패와 절망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많은 개인들의 실패는 그 개인 자신의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이고, 그 구조는 세계화가 만들어놓은 부분이 크다. 즉 개인의 실패, 개인의 불행은 일국의 문제를 넘어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무력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는 말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희망을 불빛을 던지고 막연한 기대를 갖게하는 완강한 현실의 벽과는 다른 불씨를 보여주려는 것이 현기영의 <누란>은 아닐까?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는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 P. 300


090906-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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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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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 고급 승용차, 억대 연봉이 조화를 이루면 되는 걸까? 늘어놓고 보니 돈만 있으면 가능한 삶이다. 시니컬하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삶이 대부분 사람들의 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런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고 느낄까? 욕망의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삶의 목적과 방법 때문인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과거를 성찰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작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아무도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한낱 공상에 불과한 생각들로 머리만 복잡하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전혀 다른 삶을 꿈꿀 수도 없다. 현실과 상황은 만만치 않으니 그만 오늘과 타협하고 만다. 견고한 사회 구조 안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함께 꿈꾸고 같이 걷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 속에서 살았던 20년간의 기록을 적은 <조화로운 삶>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나먼 미국에서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두 사람은 뉴욕에서 버몬트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외부적인 조건이 두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대학 교수였던 스코트 니어링과 그의 제자에서 아내가 된 헬렌 니어링이 전혀 다른 삶에 도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친다.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해직되고, 톨레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았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또다시 해직된다. 아내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명상과 우주의 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으며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됐다. 마흔 다섯 살의 스코트 니어링은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많았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궈냈다. 스코트는 1983년 세상을 떠났고, 헬렌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썼으며, 1995년 헬렌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조용한 청교도적 삶을 살아가는 듯한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지만 조금씩만 욕심을 덜어내고 생의 조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을 조금만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상적인 꿈이라고 비웃을 수 있지만 불가능한 꿈조차 없다면 현실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지 전혀 신경 쓰지 말라. 우리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우선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나 더욱 슬기롭고 사람다워질 미래에는 더욱 냉철하고, 규모 있고, 쓸모 있게, 사회를 생각하면서 살리라.”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이러저러하게 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현재를 이어받아 미래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P. 199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터무니없는 이 말을 믿고 산다.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다. 우리의 지금을 살펴보자. 버몬트에서 직접 집을 짓고 채식을 하며 공동체를 꾸리던 부부는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훗날 메인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사회를 등지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이것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 대한 동양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데, 그 사람들은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성인이나 은둔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부부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저 특별한 20세기 미국인 부부의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깊은 밤 이 부부기 20년간 버몬트 생활을 마무리 하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가장 품위 있고 친절하고 올바르고 질서 있고 짜임새 있게 살아야 한다. 어떤 처지에서도 사람은 옳게도 그르게도 행동할 수 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미워하고 공격하고 부수고 무시하고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는 것 따위의 더욱 해로운 행동을 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창조하고 건설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대도시 한가운데보다는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더 훌륭하게 조화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믿었다. - P. 201


09090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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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노래, 짧은 시
이시영 지음, 김정환 외 엮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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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날에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 옛날 우리가 새로 태어났던 날의 초록잎새처럼
아직은 푸르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당신의 맑은 얼굴을

  아득한 꿈을 꾸던 날들이 있었다. 벌써(?)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초록빛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들이었다. 지나간 모든 시간은 아름다움으로 채색되기 마련이니 무엇이라 말해도, 모든 사람의 당신은 푸른 얼굴이고 물처럼 맑은 얼굴일 게다.

  이시영의 등단 40주년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고서처럼 읽힌다. 한 시인의 시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살아온 시간들도 조용히 반추하게 한다.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시인의 감성은 내것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긴 노래를 불렀지만 돌아보면 짧은 몇 편의 시만 남은 듯한 것이 삶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소중한 시간은 흘러가고 한 시대를 살았던 흔적은 조용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시영은 자신의 시를 통해 한 세월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네 명의 시인이 엮은 이 책은 웅숭깊은 생각의 편린들이다.

공사장 끝에

“지금 부셔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용산참사의 상흔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우리가 외면하는 동안 우리의 이웃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100쇄를 넘겨 여전히 이 시대에도 읽히는 것은 과거의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삶의 터전을 잃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 한편의 시에는 처절한 분노도 성난 목소리도 드러나지 않지만 철거민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공사장 끝에는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 것들이 잠들어 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권력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돌아볼 시간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오늘을 반성하게 한다.



화살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
전신을 떨 듯이
나는 나의 언어가
바람 속을 뚫고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
불씨처럼
아니 온몸의 사랑의 첫 발성처럼


  이시영은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떨림이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큰 울림으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데 있다. 그의 바람은 성공한 듯 보인다.

  온몸으로 사랑하는 일은 시인의 시가 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이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전히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간다. 이시영의 시를 통해 언어가 전해주는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여전히 따뜻한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해야함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무에게

어느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하는구나
내가 네 발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하루를 살고 한 평생을 지내면서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잎새들이 끄떡이는 모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참다운 삶에 대한 깨달음이며 정다운 얼굴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은 나무가 아닌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수많은 오늘같은 내일이 지난 뒤에도 거기 그렇게 서 있는 나무처럼 살아가자고.


0909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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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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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탁오는 어떤 진리도 스스로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때 그 진리는 더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 P. 76

  ‘진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세상에 객관이 존재하지 않듯이 진리는 현실밖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신념과 진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사람도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에 비추어 보아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수결과 다르다. 잘못된 법과 제도가 통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사회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과 미래지향적인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선의 가치일 수 없듯이 자유경쟁과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서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강명관의 <시비를 던지다>는 조선 사회를 통해 21세기 한국사회를 조망하고 있다. 한학자인 저자는 조선시대를 학문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밝혀보지 않는다면 지식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위해 역사가 필요하고 선인들의 글을 도구로 삼았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의 학문적 열정을 통해 바라본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선별하여 제공하는 글이지만 오늘에 되새겨 볼 만한 글을 읽다보면 책은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며 삶의 교훈과 미래에 대한 지혜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전체 4부로 나누어 노비와 비정규직을 비교하고 역대 왕들의 행적을 돌아보며, 학문적 진리를 논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선조들의 고민을 살펴본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매일 일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이 편리해졌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도가 공평하게 치러지지 않았고 21세기 수능도 공평한 경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탐관오리와 지방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지배층의 백성 훈육과 입시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소통과 어울림은 요원하기만하다. 그들만의 세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백성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국민이란 명사를 들을 때면, 백성이란 명사가 떠오른다. 백성이 사실상 멸시받는 ‘상것’의 현실을 덮고 있는 호사스런 말이었던 것처럼, 국민이란 명사는 다른 어떤 명사를 그 속에 덮고 있는가. - P. 93

분명한 것은 돈과 권력, 학벌과 인척관계로 결합한 극소수 귀족층의 한국 사회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지, 외국 국적을 가진 자녀를 두고 있는지, 왜 특정 대학 출신들인지 묻는 것조차 이제는 어리석다. 이런 속성의 ‘고소영’과 ‘강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정확하게 19세기 조선의 연장이다.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 P. 118

“일제고사 좋아하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산의 <하일대주(夏日對酒)>의 한 구절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들만이 재상이 되고, 그들만이 판서와 감사가 되고, 그들만이 승자가 되고 그들만이 헌관(憲官)이 되네.” - P. 274

  부정적 시각과 비판적 안목은 구별되어야 한다.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무모함이 영원할 수는 없다. 국민과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먼 안목으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삶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다.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단으로 결정된 일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념과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충고와 자기반성의 시간을 촉구한다. 멀지않은 과거였던 조선시대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수많은 고민들은 어쩌면 얼마 전 선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발짝만 비껴서서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의 믿음과 진리에 시비를 걸어볼 시간이다.


09090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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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재구성
하지현 지음 / 궁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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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의 진정한 죽음은 망각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존재는 소멸하고 만다. 육체적 죽음과 별개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의미망에서 잊혀지면 그 사람은 비로소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거꾸로 살아있다고 해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또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기도 한다.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동호회, 각종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곧 한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의 정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1차적 관계도 있고 직장동료 같은 사회적 관계도 맺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관계 안에서 충만한 사랑과 행복을 찾기도 하고 인생의 비극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현의 『관계의 재구성』은 바로 이런 관계들을 조망해 보는 책이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관계망 속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의 삶은 큐브의 한 조각과 같다. 상하, 좌우 서로 다른 색을 맞추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 제 몫을 해내야 한다. 변신로봇처럼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힘겨울 때가 많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피할 수 없는 관계 양상들을 점검하고 그 관계의 특징들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상처받는 이유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그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자. 우리 인생의 출발인 부모와의 관계다. 유년기에 맺은 부모와의 관계는 일생을 지배한다. 최초의 신뢰 대상이며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부모는 나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초를 형성한다. 형제라는 거울을 통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익히고 친구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며 나의 또 다른 자아를 확인한다. 성장한 후에는 결혼을 통해 부부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형성한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중년에 일어나는 제 2의 사춘기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남은 후반생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사랑, 공감, 후회, 상실 등 다양한 감정을 통해 기쁨과 행복,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은 성장하며 삶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관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시작이며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관계와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상황에 따라 또는 나이에 따라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그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확인해준다.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영화’다. 그는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굿 윌 헌팅>,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통해 유년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하고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를 밝힌다. <냉정과 열정 사이>, <봄날은 간다>는 사랑과 돌봄의 차이를 밝히는 도구가 되며, <나비효과>, <박하사탕>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을 다룬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아들의 방>은 영원한 이별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상실이 주는 고통을 말해준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영화 속의 관계를 빌려 실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계 양상을 설명한다. 때로는 동일시를 통해 또 때로는 감정이입을 통해 울고 웃었던 영화들을 재해석하는 재미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항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관계 맺을 사람들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거나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복잡한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그 원리와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를 알고 타인과의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주어진 숙명을 이해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09082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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