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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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불안은 신중한 토론, 현명한 충고, 민주적 수단,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한 가지 요소로 인해 억제되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한 주제, 한 범주 안에 속한 대상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상상력,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요소였다. - P. 33

노출불안의 희생자는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힘의 표시라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를 범한 경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사람이 정직하고 책임감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 P. 41

인과관계의 혼란, 즉 원인혼란이란 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오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혼란은 종종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과도한 단순화로 나가게 하는 인지함정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종종 사건들 사이의 인과성과 연관관계를 혼동한다. 특정한 경과를 산출하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착각한다는 말이다. - P. 48

원인혼란의 인지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닫힌 마음은 지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 P. 88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평면적인 관점의 함정은 상상력에 제한을 가하고 감정이입 능력을 박탈하여 편협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흑백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도록 몰아간다. 우리는 세계를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동조하지 않거나 혹은 상반된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을 분류하는 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 P. 109

두 가지 정보집착증(정보독점과 정보회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박증을 드러낸다. 양자 사이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타인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독점자들은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독점하고 있는 정보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을 침해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 P. 209

거울 이미지는 상대가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게 되는 인지함정의 일종으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과 남들이 그것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기란 본능적으로 어렵다. - P. 217

신이 있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면 오죽 좋으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재능을 부여해준다면!
그랬더라면 우리가 저지르는 무수한 실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 로버트 번스

정태적 집착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인지함정이다. 이는 대상이나 현상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게 만든다. 정태적 집착에 빠진 사람은 세계가 근본적으로 유동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의 변화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적응하는 대신 변화에 저항한다. - P. 244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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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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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순간도 숨을 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면서도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것은 끝없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물과 공기, 비와 바람, 태양과 대지, 바다와 나무 등 자연 앞에 겸손할 줄 모르는 인간은 언제까지 그 오만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까지나 지구가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매일매일 자연을 오염시킨다. 이반 일리히는 이미 오래 전에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설파했고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조화로운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 놓았지만 그만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에서 채택된 지구 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는 구체적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했다. 지구 오존층에 대한 경고와 위협은 끊임없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우리는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문학적 상상력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공상 과학 소설의 전통을 잇고 있는 듯하고 환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환경 소설이기도 한 새시 로이드의 <카본 다이어리 2015>는 부정하고 싶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로라 브라운이라는 열여섯 살 여학생이 2015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을 기록한 10대 소녀의 일기는 ‘안네의 일기’만큼 사실적이다.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탄소 사용 규제 프로그램은 끔찍한 지구의 대재앙을 예고한다. 1인당 탄소 배급제가 실시되면서 영국은 원시 사회로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자동차, TV, MP3 사용도 철저하게 개인 탄소 카드를 통해 규제를 받는다. 마치 공산주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하루하루가 실제 상황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게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적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은 배가된다.

  폭풍과 해일까지 겹쳐 홍수가 발생하며 런던 전역이 물에 잠기고 콜레가 발생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소설의 말미를 장식한다. 관광학과 교수로 일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예상대로 금방 실직한다.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의 일상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친구들과 학교 록밴드는 이 소설에서의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통해 각각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고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록 밴드 음악을 통해 사회 비판 의식을 담아내지만 탄소 배급제를 지겨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평범한 10대 소녀의 의식을 반영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경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의 괴로움 앞에서는 금방 나약해진다. 그것을 개인들이 혹은 국가와 세계적 차원에서 감당해내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먼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끔찍하지만 이런 상상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암울한 미래 전망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들의 현실이 심각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5년에 정점에 이른다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2007년 보고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피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무겁게 쓰지 않았다. 청소년 소설답게 개성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10대 특유의 ‘짜증’과 일상들이 뒤섞여 발랄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과 질투, 실연 등을 일기의 한 축으로 삼고 짜증나는 가족들을 한 축으로 삼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는 청소년 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환경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생각 없이 낭비하는 물과 전기, 게으른 몸을 위한 자동차와 냉난방 설비 등 다시 한 번 돌아볼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편리하고 게으르기만 나는 내일부터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09111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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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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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해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낀다. 세상을 얼마나 살아왔느냐에 따라 시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시간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나이를 조금 먹었다는 증거일까. 시를 읽으면서도 지나온 세월 살아갈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하루, 한달 혹은 일년이라는 시간은 짧고도 멀기만 하다. 분절되지 않는 시간을 인간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고 계획하고 측정한다. 사람이 산다는 일이 마치 시간에 배를 띄워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은 모든 것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유리벽처럼 차고 단단한 의식 속에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시선과 인식 태도가 개성적이다. 지극히 주관적 정서에 매몰되기 쉬운 시와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열어 두어야 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독자의 바람일 수 있겠지만 불가해한 언어의 세계 속에 침잠하거나 안개같은 모호함만으로 견고한 집을 짓는 시인의 시가 이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안현미의 시는 그 중간을 서성인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해서 추상적인 개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나는 안현미의 시를 읽으면서 가볍고 상쾌한 우울함을 느꼈다. 무색무취의 물맛 같기도 하고 담백한 가을 단풍의 냄새가 나기도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안개를 찍으러

양수리로 갔다
사냥을 준비하는 어둠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밤새, 몸을 숨기고
무한대로의 거리조절을 마친 조리개
새벽은 포그필터처럼 밝아오고
오염된 강물로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
그물 가득 안개를 낚고 있다
       f:8s:1/15
       찰칵찰칵
안개를 포획하는 카메라
단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필름처럼
       착각착각
자본의 욕망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나를 본다


  기형도의 ‘안개’를 떠올렸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났다. 자연이 주는 관습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안개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과 양수리의 두물머리 풍경이 겹쳐진다. 카메라의 셔터소리를 ‘찰칵’이 아니라 ‘착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본의 욕망! 수없이 소비되는 자신을 보아야 현실은 견고한 시멘트 벽이다. 그래도 어깨로 밀어보고 손으로 눌러보고 두발을 굳게 딛고 버티지 않는다면 사방은 깜깜한 절벽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는 헛된 카메라의 욕망에서 시인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다. 생경하고 엉뚱한 것들이 조합되지만 의식의 흐름은 굳이 논리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개와 카메라와 자본의 욕망은 그렇게 한 편의 시 안에서 소비된다.

모계

당신이 내 절망의 이유이던 때가 있었다
당신이 내 희망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그 이전 이전엔 당신이 내 아무것도 아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 이전에도 당신은 당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이후에도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시시해서 미치겠는 사랑!

멀리에선 수련꽃 피는 여름이 오고
덩굴식물의 눈[目]을 들여다본다
네 눈이 네 길을 가게 한다

소문도 없이 낳아 기른
아이가 묻는다
“내가 왜 엄마를 아빠라고 불렀지?”

  태아의 잠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능. 죽음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과정이 삶의 희망인 이유. 사랑과 절망 사이에는 늘 위태로운 사랑이 놓여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저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나는 나일 것이고.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숙명이라 부른다. 조금 느린 호흡과 편안한 마음으로 찰나를 생각해보자. 순간, 문득, 그 혹은 그녀가 떠오르거나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려진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확인하는 것은 결국 당신과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네 길이 아닌 내 길을 걸어야겠다는 시시한 사랑법!


091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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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 직업에 관한 고찰 1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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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구체적인 직업을 말한다. 꿈은 인생의 목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삶의 목적이자 과정을 말한다. 어떤 인생을 꿈꾼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토대를 둔 희망이다. 추상적이지만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이 아니라 보람있고 즐거운 이유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자신의 꿈과 직업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만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을 통해 생계가 해결되고 많은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부유하지는 않아도 보람있고 즐거운 인생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꿈과 직업은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직업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고 신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은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직업만을 생각한다. 그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보다는 돈이나 사회적인 시선을 먼저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고민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고 나의 성격과 적성 그리고 능력과 체력 등을 고려해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직업과 꿈을 실현해 나가고 그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껴야 한다.

  예전에는 성적이 좋은 학생은 법대와 의대를 선택했다. 학교를 먼저 선택하고 전공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다양화되었지만 부모나 교사의 권유와 진로지도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렸을 때 다양했던 꿈들은 입시를 앞두고 혹은 수능 점수에 따라 몇 가지로 수렴된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다양한 직업에 대한 고민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진로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나 개인적으로 적성 검사를 통해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전공을 선택하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진로 탐색이 이루어지는지 의심스럽다. 일단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면 선택의 폭이 다양한 입시 제도는 문제가 있다. 어떤 사회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예체능 계열 학생들 조차도 성적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적성과 취미, 능력과 소질에 따라 최선을 다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논리인 듯 싶지만 국, 영, 수 성적이 인생을 좌우하는 단일한 결정방법은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고 소질을 계발해 주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탁석산의 직업에 관한 고찰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와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요구하는 책이다. 세칭 일류대학 자연계열에 입학했지만 중퇴하고 영어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은 우리나라 진로지도의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체계적이고 다양한 진로지도가 이루어졌다면 저자는 아마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살아가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저자의 말은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갖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1권 <성적은 짧고 직업은 길다>는 직업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황당하지만 자주 듣는 이야기다. 꿈꾸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탓할 수가 없다. 진짜 원하는 일을 일찍부터 꿈꾸는 것도 큰 복이다. 고민의 출발이 놀고 먹고 싶다는 데 있다는 것은 당황스럽지만 매우 현실적이다. 적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다양한 경험이 없으니 무슨 일이 나에게 맞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망, 적성, 실현 사이의 거리를 통해 원하는 것과 적성에 맞는 것, 실제로 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한다. 앞서 말한대로 경험의 기회가 적고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보가 왜곡되거나 미래 예측이 어렵다는 것도 직업 선택이 어려운 이유다. 또한 수명이 길어지면서 살아가는 동안 몇 차례 직업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은 세태를 반영한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고민은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의 중요성과 인생의 보람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직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숨겨진 공공연한 비밀을 까발린다. ‘운’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자는 데 할 말이 없어진다. 안정성 높은 직업만을 선호하고 적성과 무관하게 모두 비슷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자. 저자는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준다.

  <준비가 알차면 직업이 즐겁다>는 실전편에 해당한다.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방법과 준비물을 점검한다. 돈이냐 시간이냐, 혼자냐 여럿이냐, 안정이냐 모험이냐에 따라 직업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 직업을 바꾸었으니 세가지 일을 해 보았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몇 가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직업을 위해서는 전문지식과 교양, 체력이 중요하다. 이밖에도 매력있는 사람, 개성있는 사람, 잡기에 능한 사람도 직업에 성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는다. 결국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라지고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

  두 권 얄팍한 책으로 간단 명료하게 핵심을 짚고 있다. 개조식으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직업의 중요성과 직업에서 필요한 요소를 점검하고 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직업에 관한 고찰 시리즈지만 학부모나 교사들 입장에서 먼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흔히 청소년 대상 도서가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알고 있지만 어른들의 생각이 먼저 달라지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나 교사들이 먼저 읽어야한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춘 부모와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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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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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이전의 삶은 아득한 강 건너편에 있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는 시기를 사춘기라고 한다면 세상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가득한 시기를 유년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은 나와 가족 그리고 세계와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해법을 찾기 어렵고 어른들의 설명을 이해할 수도 없는 시기이다. 아니 이해는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시기라고 해야겠다. 대체로 초등학교 시절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닌 세대라서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도 낯설다) 시절은 온통 또래 친구들과 놀이로만 가득하다. 딱지와 구슬치기를 거쳐 본격적인 구기 종목에 흥미를 갖게된다. 어머니가 처음 사 준 야구 글러브를 끌어안고 잠이 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딱한 가죽 축구화를 축구공 하나를 그물에 넣어 발로 차며 등하교를 했다. 운동장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매일 공을 찼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지만 내 기억 속의 유년시절은 공이다.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생활이다. 겉으로 드러난 흥미와 놀이를 중심으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트라우마가 될 만한 가족사나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뜻도 포함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기억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망각’의 힘으로 견뎌내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기억의 빈자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뉴욕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전국의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라 윅스의 『기억의 빈자리』는 모든 사람들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가난, 아버지의 가출, 성폭행 등 흔치 않은 상처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왕따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제이미는 학교에서 제임스라고 부른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 만큼 관심밖의 학생이다. 선생님에게 골치 아픈 학생이고 친구들에게는 놀림감이 되는 아이다. 아버지의 가출, 이모의 사고 때문에 제이미는 배틀 크릭으로 이사를 한다. 원더러스 에이커의 트레일러 집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이모와 산다. 이모는 사고 이전의 기억만 갖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가족들은 잘 견뎌낸다. 오늘 일을 잃어 버리고 내일은 또 다시 사고직 후 깨어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이미는 이모의 ‘망각’이 부럽기만 하다.

  공동 세탁소에서 우연히 무료로 최면을 걸어준다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지만 같은 반 친구 오드리 크라우치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결국 최면에 걸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매일 점심은 샌드위치와 체리 캔이다. 혼자서 점심을 먹고 책을 좋아하는 제이미에게 오드리의 관심은 불편할 뿐이다.

  소설의 스토리와 구조는 탄탄하지 못하고 사건과 갈등도 밋밋하다. 앞서 말한대로 가족에 대한 상처, 가난, 성폭행까지 경험하지만 긴장감이나 우울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의 눈으로 유쾌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친구들과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본다.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지만 어린 소년에게 공감의 눈길을 보낼 수 있을 뿐, 잔잔한 감동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볼 수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작위적이다. 현실에서도 모든 사람은 성장통을 겪는다. 그것이 어떤 계기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나 목적이 전혀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망각’의 힘을 빌린다. ‘기억의 빈자리’는 연속적인 흐름 속의 구멍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과 웃음만 가득한 낙원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함께 웃고 울고 성장하고 치유하는 과정의 연속일 수도 있다. 누구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 수는 없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또 다른 ‘기억의 빈자리’를 꿈꾸는 아이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들에게도 ‘기억의 빈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싶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절감한다. 다만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흔들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흔들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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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에산다 2009-11-09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이 너무 진지하지 않게 사건을 해결해가서 좋았어요~ 아직 어린 학생이 너무나 무겁게 그 고통속에서 몸부림치는 것보다 그것을 잊고 싶어서 그래서 가벼운척 아무것도 아닌척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게 더 아프더라고요~닮은꼴책으로는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가 생각났어요

sceptic 2009-11-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무거운 주제는 가볍게 가야 하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경쾌하게 풀어내서 더 찡하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