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고전 공부는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세계의 근본적인 바탕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 P. 14.

우리가 어떤 책을 읽을 때 그 책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그 책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개념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 P. 26

철학은 한 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를 우리 함께 고민해 보자는 시도이다. 그래서 환상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한마디로 딱 부러지는 구원의 메시지도 없다. - P. 34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민주주의가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독재를 찬양했으며, 그에 따라 그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재를 찬양한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존재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플라톤 읽기의 요체다. - P. 80

고전은 역자해제를 먼저 읽어서 참조한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 P. 100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잘못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은 범주 착각의 오류이다. 가령 이명박이 성공한 CEO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자. - P. 113

글을 쓸 때는 증거가 많고 결론이 간결해야 한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과 많이 벗어난 멋있는 말을 마지막에 장식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 P. 114

논술시험 볼 때 느낀 점 쓰면 감점이다. 100명이 논술을 보면 90명은 느낀 점을 쓴다고 한다. 객관적 사실만 있는 그대로 서술해서 전제와 결론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만 점수를 받는다. 보고서는 100퍼센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 P. 115

보고서는 앞서 말했듯이 어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중에서 좁은 범위의 주제를 정한 다음 그 내용을 책에 있는 그대로 정리하는 것이다. 소논문은 보고서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이 들어가는 글이다. 그렇지만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장을 정해 놓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모아서 규모 있게 제시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 P. 115

보고서든 소논문이든 자신이 서술하고 주장하는 주제의 범위는 좁을수록 좋다. - P. 115

먼저 좁은 범위의 주제를 잡는다. 그런 다음 해당되는 주 텍스트를 읽고 해당 주제에 대한 간략한 정리글을 쓴다. 이 개요를 가지고 참고문헌을 찾는다. - P. 116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글을 쓰는 데 창의력은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인문학 공부를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의력 뛰어난 사람은 돈 되는 일을 한다. 인문학은 보잘 것 없더라도 온전히 자기 것을 갖고자 하는 이들이 몸으로 때워가며 공부하는 거다. 그러니 창조적인 메시지를 넣으려 하지 말자. 진짜로 무서운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서술했는데 그 서술을 읽고 난 독자가 폭풍을 맞은 것처럼 떨게 되는 그런 것이다. - P. 117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이다. 소논문의 주제는 범위를 좁게 잡아라. 자신이 쓸 글의 목차를 짠 다음에 참고문헌을 찾는다. 참고문헌을 읽을 때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다. 글을 쓸 때는 메시지 강박증에 빠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것만 서술해야 한다. - P.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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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연인은 늘,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 한다”는 결여에 시달리는 법이다. 그 시달리는 방식은 은밀하고 집요하다. 수동과 능동의 정서가 변덕스럽게 교차하면서 양철판을 긁듯이 간지럽힌다. - P. 21

결여감은 곧 잉여감을 낳고, 잉여감은 다시 결여감을 불러들인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했던 사람을 동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은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동경한다. - P. 39

모욕과 상처의 기억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여전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상처의 기억은 곧 기억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 P. 46

사랑은 운명적인 접슬接膝이 아니다. 사랑은 우연하게, 그리고 우연한 ‘사이’에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찾아 나온다. 알리바이가 아닌 사랑, 칸트의 물자체Ding-an-sich 같은 사랑을 보았는가? - 85

물건들 사이의 인력이 아닌, 연인 사이의 그리움이 대칭적일 리 없고, 또 흔히 그리움이란 그 속성상 비대칭성에 의해서 그 빈도/강도가 높아지는 법이니, 그리움은 인력이긴 하되 바로 그 물매 효과에 의해서 생기는 경사의 템포 탓에 일종의 공포, 혹은 위기의식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 140

그리움도 만남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애무도 섹스를 연기하는 과정이요, 연애도 혼인을 연기하는 과정이요, 사랑도 그 완성을 연기하는 과정일 수 있을 터. 심지어, 과연 삶인들, 죽음을 연기하는 기술적 과정이 아닐런가? - P. 223

고백과 소문은 서로를 모른 체하면서도 실은 내연의 관계다. 우선 둘 다 반칙이며, 둘 다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 P.250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의 화제畵題는, “달은 기울어 밤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경이든 오경이든, 두 사람의 마음을 두 사람조차 모른다는 사실 속에 사랑의 진실이 맥동脈動하는 법. 그 마음은 어느 먼 미래의 것이었고, 매번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속하였다. -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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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 P. 12

진실에 대해서는 항상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 P. 20

제삼자에게 객관적 진실이란 과연 있을까? 나는 내가 <라쇼몽>에 등장하는 나무꾼과 같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내가 나무꾼일까? 그리고 과연 나무꾼의 말은 진실일까? - P. 35

어떤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외부의 적과 만났을 때 내부의 희생양을 찾아 구성원들의 단결을 이뤄내고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한 것은 역사상 흔히 있던 일이다. - P. 88

법은 나에게 항상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아름다운 여인처럼 구애와 도전의 대상이었다. 온갖 암시와 신호로 가득 찬 법의 미로 속에서 진실의 단서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결코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 진지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과도 같았다. 짧고 보잘 것 없는 글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동행을 찾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 P.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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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손에 잡혀야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지식에의 열정이 시작되는 때이다. - P. 18

실용적인 지침 하나 : 누군가 뭘 ‘안다’고 말하면 ‘해봤어?’라고 한번쯤 물어서 그의 지행합일 정도를 측정해 보자! - P. 22

‘내가 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할 때에는 항상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한다. 따라서 앎에 대한 참다운 자세를 가진 사람은 늘 자신이 있는 것이 무엇이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 P. 28

책과 세상이 따로가 아니니 책 읽기와 세상 읽기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 이렇게 말하면 사실 거짓말이다. 책은 책이고 세상은 세상이라고 느껴질 때가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 P. 44

책이라는 게 그저 종이에 활자로 인쇄해서 나오면 끝나는 물건이라는, 책에 대한 얄팍한 생각만을 가진 사람들은 나의 이론 분노를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은 그렇게 만만한 물건이 아니다.
책 따로 세상 따로인지, 책과 세상이 서로 엉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내 삶과 책은 서로 엉켜 있다. 난 책에서 읽은 것을 세상에서 확인하고 세상에서 겪은 것을 책에서 정리한다. - P. 52

현대사회에 지식인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 않다. 둘뿐이다. 체제 안으로 흡수co-고용opt되어 살아가거나, 아니면 꿋꿋이 살아가거나 뿐이다. 후자를 선택하면 훨씬 개운하다. 단 후자를 선택했으면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남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우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 P. 76

끝으로 한국의 일상적 파시즘론자에게 두 마디.
한마디, 뭘 분석하려면 경제적 바탕 위에서 하도록.
두 마다, 남들 욕하지 말고 자기부터 파시즘적 작태를 저지르지 말도록. - P. 116

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 - P. 130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21세기적 인간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살기가 귀찮으면 단순한 사회로 돌아가라. - P. 130

내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기준이 대체로 이렇다. 사람 자체보다는 그가 하는 짓을 따진다. 그가 나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서로를 이용할 것인지 등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난 소위 ‘인간적 관계’로 얽힌 사람이 별로 없다. 담담하게 사람을 만날 뿐이다. 정이 별로 없다. 누구를 특별히 미워하지도 않으며 각별히 아끼는 사람도 없다. - P. 160

내가 특정이념을 신봉하지 않는 것은 이념이 덧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념 이전에 인간이 있었으니 이념이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의미 있는 게 못된다. 나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주는 이론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P. 161

부박한 세상에서,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사회에서 믿을 건 고전뿐이다. - P. 167

세상이 아무리 뒤죽박죽되어도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되돌아올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아무리 어린 사람이어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세상은 나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과 인격으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제대로 된 삶의 기초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공부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서도 기본이다. - P. 178

역사책 읽기는 철학적 주제들에게 생동성을 가져다준다. 몰역사적인 철학적 사유는 위험한 것이다. - P. 192

지금까지 어설프게나마 적어본 <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학대>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매저키스트가 된다면 남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공부를 해서 명예를 얻지 않아도 슬프지 않으며, 공부가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서럽지 않다. 어쩌면 이런 상태가 바로, 옛 사람들이 말했다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인지도 모르겠다. - 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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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가족을 통해 여성을 지배’(K. 밀레트)하고, ‘사회는 억압과 지배의 임무를 소그룹에 떠맡긴다’(H. 르페브르)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 P. 66

‘의사소통의 구조가 뒤틀린 탓에 생활세계가 식민화되었다’(하버마스)는 식의 지적은 우선 각종 매체의 주변에서 쉽게 확인된다. - P. 109

문화의 이상은 전달(관념)과 표현(몸)이 일치되는 어느 소실점에 놓일 것이다. 마르크스적 기획 속의 이것은 계몽주의적 이상과 표현적 낭만주의가 결합하는 문화를 향한 노력이다. - P. 114

생각을 조금 멀리 이끌어 나가면, 기억에 터 잡지 못한 화해를 강하게 불신했던 까뮈, “적을 기억하면 힘이 더 난다”는 몽양, 그리고 “적들이여 나를 계속 미워하라 나도 나의 적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랬던 루신을 생산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 P. 120

까뮈의 말처럼 오직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대접만이 화해를 불러올 수 있으며, 아렌트의 말처럼 시대의 어두움은 기억의 빛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 P. 126

나는, 그렇게, 몇몇 인간들을 그리워하였고, 훈련을 통해 마침내 그리움을 끊었으며, 그 여력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찔레꽃으로 사랑하였다. - 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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