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증보판
라인홀드 니버 지음, 이한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이성과 감정의 경계에 서서 매번 흔들린다. 이성은 사람을 설득하기 어렵고 감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윤리와 이타심조차 DNA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사회화 과정의 학습효과가 절대적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타인에 대한 태도와 예의를 가르치고, 개인은 기질과 성향에 따라 고유한 도덕과 가치를 내면화한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가진 공통적 본능과 함께 각자 서로 다른 도덕적 기준이 마련된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적 도덕과 윤리적 기준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흔들린다는 데 있다. 사회가 정한 질서 즉, 법과 규정은 공동체 생활의 최소한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은 언제나 옳다. 해결되지 않는 분쟁, 서로 다른 생각, 개인 간 이해관계, 신체적 폭력과 상해 등 갈등 없는 관계는 불가능하고 문제없는 사회는 없다. 군중은 개인보다 우매하며 타인은 단순하게 악하고 자신은 복잡하게 선할까.

목사 라인홀드 니버는 90년 전에 미국에서 인간의 도덕과 인류 사회의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분석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전쟁과 폭력, 이기심과 불평등은 합일될 수 없다. 현실은 대체로 참혹하고 종교적 실천 윤리는 이상적이다. 게다가 20세기 초반에 벌어진 세계사의 폭력과 전쟁, 산업사회로 진입한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과거의 어느 시기보다 삶의 방법과 태도에 혼란을 가져왔다. 인간과 인간, 나와 탕니이 함께 살아가는 법은 없을까.

이 책은 기독교 윤리가 현실의 모순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더 나은 세상,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종교는 언제나 인류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고 성찰의 시간을 제공했다. 자기 삶의 목적과 이유를 고민하게 하는 순기능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이 문제이듯 종교가 아니라 언제나 종교인의 태도와 생각, 말과 행동이 종교적이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기독교 윤리를 해석하거나 비판하는 데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글쓴이가 목사라고 해서 교리를 앞세워 도그마에 갇혀 있는 건 아니다. 매우 폭넓은 시각으로 사회생활을 위한 개인과 민족, 특권 계급을 살핀다. 프롤레타이라 계급은 물론 당대 정치와 혁명을 살피며 도덕적 가치를 점검한다.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사회의 권력 불균형에 의해 생겨난 사회적 갈등의 해소는 그 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학자는 별로 없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의 도덕과 사회 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자들의 이익이 합치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 극과 극 대척점에 서 있는 건 아니지만 대개 개인의 도덕과 사회적 윤리는 충돌하기 마련이다. ‘도덕적 인간’이라는 라인홀드 니버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나 ‘비도덕적 사회’라는 표현에는 공감한다. 인간과 사회를 도덕과 비도덕으로 대립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민족과 계급으로 나뉜 개인의 도덕성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맥락없이 부정된다. 공리주의가 표방하는 다수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도 사회적 관점의 비정함은 변함없다. 급변하는 시대를 반영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인류 사회가 지향해야 할 혹은 극복해야 할 정의, 불평등, 분배 문제를 정치의 역할과 기능의 관점으로 살피고 있으나 답답함과 한계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개인과 사회가 지닌 모순과 부조리는 21세기가 되어도 진정되거나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소수의 이기주의와 이해관계로 단단하게 얽힌 현실은 라인홀드 니버가 보여준 당대의 고민이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한다. 적어도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해지는 잘못을 시정하려면,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이기주의보다 자기 자신의 이기주의를 더욱 가혹하게 억제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면 자기 객관화는 이기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아닐까.

특권과 권력의 유혹에 굴복해버린 모든 사회주의 지도자는 의심할 바 없이 개인적인 야심과 영달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었다. 일반대중은 진정한 지도자라면 이러한 결점을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3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에 추천받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재밌게 본 적이 있다. 고애신의 정혼자 김희성은 룸펜답게 “나는 이리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라고 말한다. 그의 입에서 자주 반복되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이익이 되지 않는 건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양분하기 어렵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선택한 삶의 방법과 태도를 찾는다. 삶에 필요한 실용적이고 유용한 것은 무엇이며,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한 것은 또 무엇일까. 사랑과 우정, 이상적 꿈과 희망은 무용한 걸까. 라캉은 오래전에 ‘욕망(desire)=요구(demand)-필요(need)’라는 공식을 만든 적이 있다.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석양처럼 비율의 문제일 뿐 모든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매일 좌절하는 게 아닐까.

수학자 하디는 ‘하찮은 수학은 유용하지만 지루하고, 진정한 수학은 아름답지만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전형적인 ‘문과’ 남자다. 사유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과학자의 태도와 크게 다르다. 분과 학문 내에서도 점점 전문 분야가 세분화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지식과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좀 더 디테일하게 깊이 들여다봐야 할 일이 많아졌으니까. 하지만 이런 학문 풍토는 전문가 바보를 양산한다. 같은 전공 안에서도 연구 분야가 다르면 생각과 태도가 전혀 다를 수 있다. 하물며 인문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 자연과학의 세계는 낯설기만 하다. 어쩌면 ‘인간’ 중심주의의 폐해에 가까운 재앙이다. 반면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없는 답을 찾아 헤매고 논쟁하는 인문주의자들의 말과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드워스 윌슨은 ‘통섭consi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고 수많은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재천은 통합교육을 강조했으며 이는 교육과정에 일부 반영되어 현실적인 문제를 보완하고 수정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미 고정 관념인 줄도 모르고 자기 관점과 견해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유시민의 말은 유용한가, 무용한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탐하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학습력은 인간과 세상을 향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곧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독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무엇엔가 몰두하고 새로운 앎의 세계로 빠져든다. 영어 단어를 외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게 공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면 아이들 컴퓨터게임과 다름없는 재미와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게 공부다. 호모 사피엔스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본능에 가깝지 않은가. 우리는 공부 DNA를 가진 채 태어난다. 그 유전자를 어디에 활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는 물론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 교양서에 관한 거대한 서평이다. 소개된 책이 너무 많아 다 소개하기 어렵지만 읽지 않았거나 다시 읽고 싶은, 관심이 가는 목록은 다음과 같다.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E. K. 헌트, 마크 라우첸하이저, 홍기빈 역, 시대의 창, 2015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거, 김명남 역, 사이언스북스, 2014

물질의 물리학, 한정훈, 김영사, 2020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이언 스튜어트, 김지선 역, 사이언스북스, 2016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이용철 역, 사이언스북스, 2004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이혜경, 그린비, 2008

뇌 과학의 모든 역사, 매튜 코브, 이한나 역, 심심, 2021

진화하는 진화론, 스티브 존스, 김혜원역, 김영사, 2008

다윈주의 좌파, 피터 싱어, 최정규 역, 이음, 2011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이한우 역, 문예출판사, 2000,

화학 연대기, 장홍제, EBS, 2021

원소의 왕국, 피터 앳킨스, 김동광 역, 사이언스북스, 2005

통섭,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장대익 역, 사이언스북스, 2005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박병철 역, 와이즈베리, 2021

불확실성의 시대, 존 K. 갤브레이스, 원창화 역, 홍신문화사, 2011

김상욱의 양자 공부, 김상욱, 사이언스북스, 2017

E=mc², 데이비드 보더니스, 김희봉 역, 웅진지식하우스, 2014

원자폭탄 만들기 1, 2, 리처드 로즈, 문신행 역, 사이언스북스, 2003

수소폭탄 만들기, 리처드 로즈, 정병선 역, 사이언스북스, 2016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김범준, 21세기북스, 2021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박권, 동아시아, 2021

세상의 모든 수학, 에르베 레닝, 이정은 역, 다산사이언스, 2020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폴 호프만, 신현용 역, 승산, 1999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박병철 역, 영림카디널, 2022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등 대표적인 과학 분야의 책을 읽는 독자, 과학을 전공한 독자, 과학 분야에 평소 관심이 있는 독자가 아니면 이 책에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혹시 유시민에 대한 팬심이라면 더더욱 다른 책을 권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으로부터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질문에서 ‘나는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꾸라는 충고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동의하고 지지하며 읽었다. 여러 과학 교양서에서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많고 물리, 화학, 생물, 수학 등 기본적인 과학 분야가 왜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나’를 설명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설득하는 글이다. 환원주의 위험성과 필요성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필립 볼의 『원소』나 김상욱의 양자역학 이야기를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과학은 없다. 우주와 자연을 읽어낼 수 있는 언어인 수학을 포기한 지 오래라도 세상 만물에 대한 관찰과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든 각자의 삶에 실용적 유용성을 갖는다. 그것이 응용학문으로서 공학과 산업으로 연결되든 삶의 태도와 가치에 대한 고미이든.

과학을 공부하는 인문쟁이들의 목적과 태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수학과 공식이 아닌 인간의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오해와 분노가 싹튼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하며 살고 싶은 욕망이 책을 통해 조금은 실현된다고 믿는다. 유시민의 생각과 태도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이유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1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민함의 힘 -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
젠 그랜만.안드레 솔로 지음, 고영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민함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내성적인 성격보다 외향적 성격을 선호하는 것처럼 우리는 둥글둥글하고 무던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심리학계에서는 “꽤 예민한 사람들highly sensitive person, HSP”이 전체 인구의 15% 정도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조직과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파레토의 법칙처럼 예민함의 비율은 상대적이다. 사회생물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예민한 개미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외부의 침입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적 예민함을 비난받아 본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이라는 부제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 수도 있다.

젠 그랜만과 안드레 솔로는 상담 플랫폼 SR,sensitive refuge의 공동 설립자이자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오랫동안 예민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담한 결과를 담고 있다. 심리학 실험이나 논문의 결과를 풀어 쓴 이론 위주의 책이 아니라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편에 해당한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도 시간이 흐르고 생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사람을 향한 손쉬운 비난 중 하나가 “예민하게 굴지 말라, 과민반응 아니냐, 왜 너만 그렇게 느끼느냐……”라는 등의 말이다. 튀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중간만 해라 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정규분포곡선의 중앙에 자신을 맞출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들은 예민함이 약점인지 특별한 재능인지 묻는다. 물론 예민함은 ‘재능’이라는 관점이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 장단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법, 공감 능력, 인간관계와 사랑, 예민한 아이 양육법까지 폭넓게 이어진다.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가 틀렸다고 비난받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지금 그대로’ 유지된다. 변화는 느리고 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를 꺼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예민한 사람들이 유행을 선도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현실의 문제점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사회적 업무, 개인적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예민한 사람들의 몫이다. 어느 신혼부부가 집 청소는 더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하자고 정하는 게 옳은지 논쟁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번갈아가며 하는 게 합리적인가에 대한 감정적, 객관적 주장이 오갔다. 물론 정답 없는 싸움에 끼어들 만큼 바보가 아니라서 즐겁게(?) 관전만 했으나 예민한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그 신혼부부가 떠올랐다.

예민함은 진화적 이점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 주변의 15% 정도는 예민한 사람들이다. 부모, 자식, 연인, 친구, 동료, 동호회원 등 어디에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를 포함한 예민한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15%를 떠올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장점과 단점, 넘치고 모자란 부분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세상일 수는 없을까. 나와 다른 건 틀린 게 아니다.

사회적 학습력은 공감이 필요하다. 3루에 태어난 사람이 타석에 선 같은 팀 선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우리는 매일 목격한다. 공감은 연민의 전제 조건이다. 연민은 슬픔과 고통과 닿아 있다. 외면과 부정이 오히려 현명한 태도일까. 감정은 감기처럼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쉽게 퍼진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의 확산을 공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정서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고 부른다. 친한 사이일수록 정서가 전염된다. 이것은 공감과 다른 문제다. 긍정적 정서든 부정적 정서든 공감을 하든 말든 정서 그 잡채는 전염된다. 물론 세월호, 이태원 사고 같은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 전염이 발생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일만큼 중요한 건 공감이나 정서 전염에 대한 이해다. 개인적 태도는 그에 따른 결과이며 그러한 태도가 모여 결국 자기 삶의 무늬가 된다.

카나리아는 새장에 갇혀 살며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동안 그 일을 충분히 해왔다. 이제 예민한 사람들을 너무 오랫동안 가둬두었던 새장을 부숴야 할 때이다. 예민함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예민함과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이점을 포용해야 할 때이다. - 2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거실 창밖에 밧줄에 매달린 분이 나타난 적이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린 사람을 거실에서 마주하니 놀라움이 먼저였다. 도심 빌딩 외벽에서 작업을 하거나 청소를 하는 분들을 올려다볼 때마다 ‘불가능’이란 단어가 떠오르곤 했다. 노력하면 가능할 듯싶은 일이 있고,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일이 있다. 존경과 두려운 마음으로 작업 광경을 바라본 적이 많다. 그래서 12명의 베테랑 중 로프공 김영탁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느껴졌다.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어도 현기증이 나서 유리가 바닥으로 된 관광지의 전망대나 출렁다리도 건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직장에서 일하는 로프공 김영탁은 “베테랑은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술은 왜 특정한 곳에만 쓰이는지. 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일에 진심인 베테랑이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하는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일까.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등 SPC 계열사의 음식을 먹지 않은 지 오래다. 집 근처 프랜차이즈 빵집을 지날 때마다 목이 멘다. 산업재해를 지적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베테랑들이 처한 노동환경에는 할 말이 많아진다. 작업의 위험성 여부를 떠나일하는 모든 사람, 즉 노동자의 권리가 바로 서지 않으면 행복한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배우, 식자공 등 열두 가지 분야의 베테랑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론과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경험과 실제다. 온몸으로 생을 밀어 온 베테랑들의 인터뷰가 주는 감동은 어떤 철학자들의 개념과 다양한 주장보다 숭고함이 느껴진다. 베테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고 간명하게 자기 삶의 철학을 담아낸 한마디가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게 한다. 프로페셔널 혹은 전문가라는 호칭보다 베테랑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와 깊이는 남다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감탄과 공감을 얻은 이유는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이며 곧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근함 때문이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 선민의식과 구별된다.

삶의 달인, 인생의 베테랑 아닌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 삶의 베테랑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귀하고 소중하다.

“베테랑은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 세공사 김세모

“베테랑은 자존심 지키며 일하는 사람” - 조리사 하영숙

“베테랑은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 - 로프공 김영탁

“베테랑은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 - 어부 박명순, 염순애

“베테랑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 조산사 김수진

“베테랑은 자기 일에 모르는 것은 없는 사람” - 안마사 최금숙

“베테랑은 말을 이해하는 사람” - 마필관리사 성상현

“베테랑은 내 몸 다치지 않게 일하는 사람” - 세신사 조윤주

“베테랑은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 - 수어통역사 장진석

“베테랑은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 일러스트레이터, 전시기획자 전포롱

“베테랑은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사는 사람” - 배우 황은후

“베테랑은 수많은 활자들 사이에서 길 잃지 않는 사람” - 식자공 권용국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위태롭지 않은 인생도 없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확신하며 자기 신념이 뚜렷한 사람들이 오히려 두렵다. 그러나 베테랑들은 묵묵히 일하며 자기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분들이다. 온몸으로 살아낸 삶의 흔적과 결과로 그들을 베테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을비 갠 다음 날 맑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한가로운 날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 평화와 안정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투쟁의 흔적이 숨어 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소중함이여. 다만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라고 따라 해본다.

베테랑들은 참 이 말을 좋아했다. “그냥 하는 거죠.” 다만 열심히. - 프롤로그, 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 환상문학전집 23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의 재해석은 패러디라기보다 일종의 오마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적 유용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은 인류가 공유하는 문화적 유전자인 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주는 재미, 서사를 통해 얻는 교훈, 인간 본성에 관한 성찰,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지금-여기 발 딛고 선 ‘나’를 위한 위로와 격려가 고전이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네 고통과 슬픔도 사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부과 권력도 언젠간 스러지고 생은 언제든 비극적 결말을 준비하고 있다고.

크리스타 볼프는 프랑스 문학이론가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의 ‘아크로니achrony(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사건들을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배열하는 이야기 방식. 비시간적 서술.)’와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하나의 큰 인형 속에 여러 개의 작은 인형들을 크기가 점차 작아지는 순서로 집어넣은 러시아의 전통 인형. 비옥한 토지와 다산을 의미. 러시아어 여자 이름인 ‘마트료나Матрёна’의 애칭.)’를 소개하며 소설을 시작합니다. 문제적 여인 메데이아는 자식을 죽였는가, 동생을 살해한 범인도 메데이아일까, 아버지와 조국을 배반한 이유가 단순히 이아손을 향한 사랑때문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삶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 수고와 무관하게 독자 개인의 관점과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평온한 일상일 때는 모릅니다, 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위기의 순간, 힘겨운 시절을 지나고 나면 알게 됩니다, 내 곁에 남은 사람을. 메데이아와 이아손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르고호 원정의 목적은 황금 양털이 아니라 이올코스의 왕위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 양털을 얻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코린토스에 도착한 이아손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낼 리 없습니다. 아버지 아이손이 잃어버린 왕권을 찾으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아손의 어머니는 마미손이 아니라 알키메데입니다. 코린토스의 딸이 젊고 예뻐서가 아니라 자기 삶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아손을 위한 변명은 비난받아 마땅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쎈 언니의 대명사 메데이아가 눈뜨고 당할 리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메데이아는 물론, 이아손, 아가메다, 아카마스, 글라우케, 로이콘 등 6명의 등장인물이 각각 제 목소리를 냅니다. 도대체 그때 코린토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소설의 원제는 ‘Medea, Stimmen’, 메데이와 목소리들입니다. 살로메, 유디트 같은 팜 파탈로 보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메데이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모임에서도 주된 논의는 메데이아에 대한 재평가, 이아손에 대한 논란, 아카마스의 욕망 뿐만 아니라 신화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평소 신화에 관심이 많고 배경지식이 풍부한 분이 사회를 맡아 논의가 풍성했습니다. 소설제목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작가가 바라보는 주관적 해석과 평가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메데이아와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를 보다 깊게 들여다보고 각자의 입장과 위치에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수많은 변명 혹은 그럴듯한 상황을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메데이아의 동생과 이아손 사이에 낳은 아이 둘을 과연 메데이가 죽였을까요, 코린토스의 공주까지? 제작비를 고려한 흥행 압박으로 에우리피데스가 막장 드라마를 쓴 건지 알 수 없으나 가장 강력한 캐릭터 중 하나인 메데이아는 입체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키르케, 판도라, 카산드라 등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고 싶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생명과 분별력을 가진 만물 중에 우리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예요. 첫째, 우리는 거금을 주고 남편을 사서 우리 자신의 상전으로 모셔야 해요. 이 가운데 두 번째 불행이 첫 번째 불행보다 더 비참해요. 다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얻는 남자가 훌륭하냐 나쁘냐 하는 거예요. 헤어진다는 것은 여자들에게 불명예스럽고, 남편을 거절하기도 불가능하니까요. 새로운 관습과 규범 속에 뛰어든 여자는 집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남편을 가장 잘 다룰지에 관해 점쟁이가 되지 않으면 안 돼요.

- 「메데이아」중에서, 메이아의 독백(코로스에게), 230행~(38쪽)

에우리피데스가 쓴 비극의 일부입니다. 번역가 천병희는 “메데이아는 결론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대립적인 두 힘은 격정thymos과 숙고bouleumata며, 이 가운데 격정이 숙고보다 우세해지면 그것이 곧 인간에게 재앙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해석합니다. 과연 우리는 ‘격정’과 ‘숙고’ 중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까요. 나이, 성별, 직업,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망설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메데이아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게 들릴 지도 모릅니다. 정답 없는 인생이라고 삶은 계속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