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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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반경 수십 리를 벗어나지 않았던 아주 먼 과거의 삶은 어떠했을까? 답답해서 견디지 못했을까? 넓고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사람들은 항상 기회비용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을 후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기와 결단력이 없어서 현재의 삶을 이어간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항상 변화를 모색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인생이 모두의 꿈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미래 혹은 희망의 이름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기다린다. 그 불안함,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안정을 추구하며 예측 가능한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인류에게 유목적 삶은 시원의 바다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누구나 훌쩍 떠나고 싶어한다. 바다를 동경하고 고래를 꿈꾸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생명의 근원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전혜린의 말처럼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이 숨어 있는 우리들 가슴 속에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떠나고 싶었다.

  전성태의 소설집 <늑대>는 몽골을 배경으로 한 연작들이 주를 이룬다. 낯설고 생경한 풍경, 신산스런 삶의 형태를 통해 우리들의 그것을 돌아보게 한다. 이국의 풍경이 동경과 호기심으로 그려지거나 이질적인 차이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 미묘하다. 그들의 나라 몽골은 어떤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인가 살펴보자.

  단편 ‘목란식당’은 북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곳은 남과 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음식점의 풍경을 통해 작가는 체제의 허구를 드러낸다. 이념의 대립으로 분단은 고착화되어 있고 현실 공간에서 남과 북은 달나라만큼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제 3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며 그 실체를 확인한다. 이념의 대립을 다룬 소설도 아니고 몽골의 풍속을 위한 소설도 아니지만 그 모두를 절묘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표제작 ‘늑대’는 몽골 초원을 배경으로 인간의 탐욕과 원시성의 만남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우리들은 삶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그 경계 너머를 동경하기도 한다. 단편 ‘늑대’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넘어선 자리에 서 있다. 인간의 탐욕과 문명은 자연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못한 채 파괴와 죽음을 부른다. 의외의 결말이 신선하기보다는 의도된 소설의 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남방식물’과 ‘코리언 쏠저’는 몽골로 이식된 한국인의 삶을 보여준다. 토착민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든 잠시 머물기 위한 임시 방편이든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몽골에서 잘 자라는 고구마처럼, 시적 감수성을 되찾기 위해서 머물렀지만 결국 코리안 쏠저가 되어야 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삶은 때때로 불가해한 질문들을 던진다. 예기지 않은 상황과 부딪치고 원하지 않는 길로 접어들고…….

  ‘중국산 폭죽’은 몽골의 아이들을 통해 사회주의적 삶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이념과 정치체제의 비판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몽골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로 읽었다. 뉴스나 외신을 통해 접하는 낯선 소식이 아니라 우리들의 과거와 겹쳐지는 장면들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상황이 몽골 아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한다. 기본적 삶의 조건을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이 한반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조차 어렵다.

  모두 열편의 단편 중 여섯 편이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일곱 편이 ‘지금-여기’를 넘어선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삼고 있다. 경계를 넘는 일은 불안과 공포일 수도 있고 희망과 설렘일 수도 있다. 작가가 무대로 삼은 몽골은 대자연을 무대로 과거의 영광과 상처가 남아있지만 근대적 삶의 조건들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불안한 모습으로 흔들린다. 우리는 낯선 세계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 내 구도 못 봤소?’는 작가의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가장 토착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을 통해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이 쏟아내는 구수한 사투리의 향연은 우리말을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를 감탄하게 한다.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는 기억 저편의 과거를 보여준다. 시대극을 보여주듯 저자의 유년 시절 한 토막을 구경하는 듯하고 에피소드를 통해 당대 현실을 기막히게 재현하는 듯하다. ‘이미테이션’을 통해 뿌리깊은 사회적 편견과 삶의 조건을 점검하기도 하는 작가의 관심은 한 곳에 모아지지 않는다.

  이 소설집은 한 호흡으로 읽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한 시대를, 한 세대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당대 현실을 적확하게 그려내며 삶의 조건을 확인하고 현재의 상황을 점검한다.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는 듯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낯선 곳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초월적 공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읽어 볼만한 소설이다.


09051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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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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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시선이 300권 기념 시집을 찍었다. 문학과지성사시인선 300호가 2005년에 나왔으니 4년쯤 차이가 나는 셈이다. 두 출판사의 시리즈는 우리 시단의 간판이다. 기념시선집은 창비시선 201부터 299까지 시집을 펴낸 시인들의 작품을 박형준과 이장욱이 골랐다. 어떤 시를 골랐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근 10년 세월동안 우리 시문학사의 변화와 흐름을 살펴본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이해해도 시는 시대를 반영한다. 시인이 몸담고 있는 세상의 자리마다 다른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 아름답고 눈부신 언어로 때로는 슬프고 우울한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시인들의 시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숨구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죄다.


  시대를 초월하여 시는 사람 사는 풍경을 농밀하게 묘사한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언어의 상상력은 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오는 여타 예술을 능가한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 규정할 수 없는 모습으로 혹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언어의 바다가 시詩다.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들 삶이 아닐까? 시인의 눈과 입을 빌어 우리는 생을 돌아보고 현재의 나를 확인하며 관계 맺고 있는 타인들을 생각한다. 잠시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시에 해답은 없다. 늘상 거기 있는 것은 고민과 좌절 그리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뿐이다. 그 상처 보듬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일지도 모르지만.

신이 감춰둔 사랑 - 김승희

심장은 하루종일 일을 한다고 한다
심장이 하루 뛰는 것이
10만 8천 6백 39번이라고 한다
내뿜는 피는 하루 몇천만 톤이나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 4천 9백 6십만km인데
하루 혈액이 뛰는 거리가
2억 7천 31만 2천km라고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두 번 갔다올 거리만큼
당신의 혈액이 오늘 하루에 뛰고 있는 것이다
바로 너, 너, 너! 그대!

그렇게 당산은 파도를 뿜는다
그렇게 당신은 꺼졌다 살아난다
그렇게 당신은 달빛 아래 둥근 꽃봉오리의 속삭임이다
은환의 질주다

그대가 하는 일에 나도 참가하게 해다오
이 사업은 하느님과 동업이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발견하겠다


  결국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은 신이 주는 것이 아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중요한 것은 한 순간도 쉬지 않는 심장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시대를 건너 세월이 흘러도 어떤 사랑이냐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사랑하고 있나?

포옹 - 정호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두 사람이 부부이든, 연인이든 그들의 부끄러움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가장 내밀한 언어로 표현되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여전히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수많은 연인들에게 신석기 시대의 꼭 껴안은 남녀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화석이 될 만큼 사랑했던 그들의 사연은 궁금하지 않다.

  다만 십년의 세월을 넘어 100권의 시집을 만들어 낸 시인들의 가슴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랑을 확인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이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시들을 읽어야 세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던 사춘기가 있었다. 그 소년은 시를 읽으며 늙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로 세상은 가득하기만 하다.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지고 또, 오늘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09042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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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09-04-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브리핑을 보니 인식의 힘님 글이 좌르르 올라와 깜짝놀랐습니다. 얼마만인지... 다시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sceptic 2009-05-14 08:50   좋아요 0 | URL
이제야...ㅠ.ㅠ 저도 반갑습니다. 암튼 가끔씩 이러합니다.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2009-04-28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9-05-14 08:51   좋아요 0 | URL
잘 지내고 계시겠죠?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일만 있는 인생이야 어디 있겠어요...
지독한 독감이 벌써 3주째...대단합니다...

아프지 마시구요...날씨만큼 화창하세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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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쯤 전에 처음 경험했다. 그림을 보기 위해 다가서면 조용한 목소리로 그 그림을 설명해 주는 여자의 목소리. 틀림없이 혼자 미술관에 갔지만 그녀는 내 시선을 따라 그림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시작한다. 발길을 옮길 때 쯤 이야기를 끝낸 그녀는 다음 그림을 위해 숨을 고르는 것 같다. 첫 경험은 기이했다. 이제 누구와 함께 미술관에 가든 그녀 혹은 그의 목소리는 전시장을 나올 때까지 따라다닌다. 동행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 전시회는 설명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선명하게 남는다. 동행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오독일지라도 나름의 방식대로 그림을 해석하던 재미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

  이 사소한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제이 아셰르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소설을 이렇게 착안했다고 한다. 오래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카세트 테잎을 떠올렸다. 아직도 내 차에는 CD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공존한다. 카세트 플레이어 안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몇 년째 꽂혀 있는지 모른다. 카세트 테잎만 돌아가던 차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듣던 기억이 새롭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표현되고 저장되며 인식되는 세상에 아날로그 버전의 추억은 흑백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이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를 위한 소설처럼 읽힌다. 일상에 빚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사소함 속에 생의 엄숙함이 숨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도덕적 원리나 철학적 깨달음에 의해 인생이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말 한마디, 사소한 관심 하나에 목숨건다. 그것은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여성에겐.

  눈덩이 효과는 어디에나 적용된다. 한 번 시작된 작은 이야기는 구르고 굴러 바위만 해졌다가 집채만 해졌다가 지진을 일으킬 만큼 커져 산을 깔아뭉갠다. 세상을 바꿀 만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자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그 주둥이로 자신이 어떤 끔찍한 일을 벌이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하기도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통과 전파의 힘이 강한 이야기에 매료된다. 호기심과 궁금증은 이익과 손해를 떠나 견디기 어려운 욕망이다.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불사한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목숨을 건 이야기의 욕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루머는 소문의 영어식 표현이다. 소문에 관한 속담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다. 다시 말해 소문, 루머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며 그것을 만들고 전파시키는 것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고 깊은 인간의 습성이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일 수도 있으나 타인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때로는 죽음보다 깊은 생채기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에도 연예인이 루머에 휘말려 자살을 해서 사회적 충격을 던져 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을 비방하기 바쁘다.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고 그 근원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출발해서 소문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야기 욕망을 해소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원인도 결과도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들은 이야기나 확대 해석된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기도 하고 전혀 다른 버전의 새로운 루머가 탄생하기도 한다. 루머는 루머를 낳고 루머는 또 다른 루머를 낳는다. 이것이 루머의 법칙이며 변하지 않는 소문의 실체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바로 이러한 루머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다. 한 여고생의 죽음 이후에 던져진 7개의 테이프. 앞, 뒷면에 녹음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자살하기 직전에 녹음된 주인공 해나의 목소리다. 어느 날 소포가 도착한다. 유일하게, 가장 진실하게 해나를 사랑했던 소년 클레이. 그의 귀에 들리는 죽은 해나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이라기 보다 슬프고 잔인한 노래로 들렸을 것이다. 그 소년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해나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클레이의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것은 죽음과 이별이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재회에 대한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미련은 추억만 남긴 채 아득한 그리움만 증폭시킬 뿐이다. 죽음은 깨끗하고 차분하다. 허무하지만 아쉬움이나 후회를 남기지는 않는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만 확인하게 된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전학을 온 해나가 겪는 사소한 일들은 눈덩이 효과를 가져오고 사소한 장난과 루머들은 한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자살의 징조들이 곳곳에 포착되지만 타인의 일은 사소한 걱정일 뿐이다. 나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해 사람들은 진심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흐르는 소문을 따라 장난을 즐기고 말을 보태며 상상과 추리를 동원해 온갖 환상과 공상을 만들어낸다. 해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죽어갔다.

  이 소설은 한 여고생의 자살을 남겨진 카세트 테잎을 통해 밝혀내는 추리소설의 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지만 단순히 학교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만은 없다. 어디에나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벌어질 일들에 대한 지극히 사고하고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들이어서 시대와 공간을 넘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통속 소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심리 소설도 아니다. 그 접점을 찾기 위해 작가가 노력한 흔적은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재미있지만 사소하게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의 진실들, 타인에게 죽음과도 같은 루머가 내 입을 통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에 대한 반성들이 필요한 소설이다. 항상 그러하듯이 사실조차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말들 속에서 진실을 찾겠다는 것은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당신은 타인에게 루머를 전하지 않았는가? 그 사소한 말 한마디가 죽음을 불러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는가?


09032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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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시선집
김남주 지음, 염무웅 엮음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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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가 그대는
봄을 잉태한 겨울밤의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그대는 아는가
육신이 어떻게 피를 흘리고
영혼이 어떻게 꽃을 키우고
육신과 영혼이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피와 함께 합창하는가를
- ‘잿더미’ 중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때가 있다. 흐르는 시간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기억들 말이다. 김.남.주. 라는 이름은 아프다. 반역의 세월 속에서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시대를 떠 올리는 일은 아득하기만 하다. 추체험된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펄펄끓는 쇳물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목소리를 토해낸다.

  역사는 그를 기억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의 시를 가슴에 묻을 것이라고 믿는다.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는 뭉클한 감동으로 속울음을 울고 싶게 하는 책이다. 켜켜이 먼지 묻은 <나의 칼, 나의 피>도 쓰다듬고 <사상의 거처>도 어루만져 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년을 기념하여 펴낸 시선집을 5년이나 더 지나서야 읽는다.

  살아온 시간만큼의 두께로 남겨진 사람들과 대한민국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떤 사람이 떠나든 죽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비루한 일상도 빛바랜 추억도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김남주를 다시 읽는 동안 가슴은 젖어들고 목울대는 연신 어쩔 줄을 몰랐다. 보잘 것 없는, 어쩔 수 없는 먹물인 나는 그것을 아파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숱한 민중 가요를 남기고 떠난 그의 시는 모두 노래다.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아는 것이 사랑인데 사람들은 이제 모두 갖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니 내 것을 뺐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승자 독식 시대는 계속되고 이유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달린다. 가끔 주변을 돌아보지만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걸까? 그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떨어져 가지 말자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앞에 가며 너 뒤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너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중에서


  모두 함께 길을 걸어야만 힘이 생긴다. 혼자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지금처럼 뼈아프게 다가왔던 시대도 없다. 역설적으로. 각자 뛰고 있지만 어디를 향해,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기적 욕망과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내 한 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안치환의 기획앨범 ‘Remember’는 <김남주 시인 추모앨범>이다.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시와 음악의 만남은 자연스런 일이며 특히 안치환은 정호승이나 김남주의 시를 즐겨 노래했다. 운전을 하다가 차안 가득히 울려 퍼지는 ‘자유’를 처음 들었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정태춘으로 시작해서 김광석을 거쳐 안치환에서 내 가요 듣기는 멈추어버린 것 같다. 나이와 무관하게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어간다는 말은 겸손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되는 생에 대한 부끄러움일지도 모르겠다. 하종강은 그것을 ‘부채감’이라 표현했고,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이 시대를 책임질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도 오지 말아야 하지만 신념을 잃어버린 시대는 불행하기만 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 ‘사상의 거처’ 중에서


  그래서 김남주는 스스로에게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묻고 있다. 길 위에서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시인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알면서도 걷지 못하는 사람과 그 길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냐고 묻고 싶다. 난마처럼 어지러운 시대는 계속 될 것인가?

  사상의 거처는 없다. 한 곳에 머물지도 않는다. 유목하는 사상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미혹케하고 현실은 요지부동이며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식인들 자취를 감추었고 아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더 많이 갖기 위한 우리들의 제살파먹기는 멈출 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새가 되고 싶었나보다. 새가 아니면 누구보다도 가벼운 하늘이 되고 싶었을 게다. 너무 일찍 새가 되어 떠나버린 시인의 발자취는 긴 여운과 따스한 온기만 남겼다. 역사와 시대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다간 시인으로 우리는 김남주를 기억할 것이다. 시와 삶이 하나가 된 시인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새가 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을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 가을에
하늘을 보면 기러기 구천을 날고
진눈깨비 내릴 것 같은 이 가을에
잎도 지고 달도 지고
다리 위에는 가등도 꺼진
이 가을에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오직 되고 싶은 것은
새다
- ‘새가 되어’ 중에서



09032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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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진리’. 우리는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도, 그것에 속거나 공범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쉼표 하나를 위하여 죽게 되는 세상을 동경한다. - P. 8(언어의 위축)

  아포리즘aphorism은 시에 가까운 짧은 산문이다. 뚜렷한 하나의 생각이나 가치를 특별한 시선이나 생각을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한 생각을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아포리즘이 된다.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생각과 시선의 문제이고 이차적으로는 표현의 문제와 결부된다. 짧은 단상을 수첩이나 일기장에 적어놓은 것들이 하나의 일관된 생각으로 모아지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나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관점들을 표현하면 아포리즘이 된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긴 글보다 더욱 정확하고 치밀한 표현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생각하고 낯선 시각과 자신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만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포리즘에 담긴 말들은 작가의 영혼을 대변하고 내면의 고백을 드러낸다.

  이성복의 아포리즘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두고두고 오래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랑에 관한 문학에 관한 시인의 내밀한 고백은 그의 시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산문집과 달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고백과 같았다. 오랫동안 전해오던 사소함들을 모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랜 글쓰기 훈련과 탄탄한 문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1976년 65세의 나이에 쓴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는 신비로운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철학적 사유로 빚어낸 짧은 글들은 오래 두고 곱씹어 볼 만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시간, 고독, 종교, 사랑, 음악, 역사, 공허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내밀한 고백과 시니컬한 시각, 독설에 가까운 비틀기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관점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심각한 후유증이나 니체에 대한 몰입 등 그의 젊은 날이 이 책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누구나 겪게 되는 삶에 대한 회의나 인생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모두 철학자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그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간의 벽 앞에서 우왕좌왕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나 일말의 ‘희망’을 볼모로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다. 긍정적인 태도와 유쾌한 웃음 뒤에 숨은 진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면서.

  에밀 시오랑은 슬픔과 우울 그리고 불면과 절망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작은 고백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개인적 삶이 평범하지 못했고 세상을 비극적으로 인식한 듯한 태도와 달리 그의 글은 아름다운 언어의 서정으로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0세가 넘도록 살아낸 것도 아이러니 하지만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나 40세이 이르도록 직업도 갖지 않고 대학 구내 식당을 전전하며 그가 고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쓴 아포리즘이 지금 읽히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역설이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삶은 때때로 비극적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고 눈부신 기대로 유혹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게 펼쳐지든 켜켜이 먼지 앉은 세월의 두께를 이겨내야 하는 시찌프스의 형벌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기적 같은 일로 오늘 하루를 채우겠다고 결심하는 마술사가 된다. 그러고는 침대에 다시 누워 사랑, 돈…… 난처한 문제들을 저녁까지 되씹는다.

*

실망하기를 거부하는 인간보다 저질의 인간은 없다. - P. 89(고독의 서커스)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은 그 사람과의 대화를 의미한다. 대면적 접촉을 넘어 깊은 사색의 영역을 공유한다는 면에서 일상적인 대화보다 한 인간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든 것이 객관적이고 수치화될 수는 없다. 특히 인간의 내면에 관한 한.

  그리하여 한 사람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을 알게 될 수록 사랑하게 된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진 않겠지만, 어쩌면 모든 고통과 비극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래서 에밀 시오랑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의 존엄성이란 흥분의 순간이 지나고 남아 있는 허탈한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무한을 내포하고 있다. - P. 137(사랑의 생명력)



09032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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