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1분


2020년 10월 31일부터 아파트먼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집 밖 운동이 어려워져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한 시간 가량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30분쯤은 오르내린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집 밖에 있을 때도 인근 건물을 찾아 꼬박꼬박 지켰다. 5개월이 넘었으니 당연히 몸은 좋아졌다. 무엇보다 땀을 낼 수 있어 개운했다. 영하 10도 이상 내려가는 추운 겨울에도 어김없이.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다리 운동이다 보니 허벅지는 튼튼해 졌지만 뱃살은 잘 안 빠진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작년에 입었던 옷이 끼는 것을 보고 뭔가 결심이 필요했다. 계단 오르내리기처럼 습관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내 선택을 받은 건 플랭크였다. 두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다.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은근히 어렵다. 정직하게 말하면 매우 힘이 든다. 처음엔 30초를 버티기도 곤혹스럽다. 그러나 효과는 만점이다. 무엇보다 올챙이배가 탄탄해진다. 물론 다른 곳에도 좋다. 무엇보다 자세가 좋아진다. 플랭크 30일 만에 몸이 변했다는 게 괜한 헛소문이 아니다. 


그동안 간간이 시도해보기는 했지만 매일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어제, 곧 2021년 4월 4일 밤부터 제도로 하기 시작했다. 1분을 정해 해보았는데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진짜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힘든 1분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언젠가 2분 30초, 5분으로 늘리고 싶지만 일단 지금은 시간 날 때마다 짬짬이 60초만 견뎌보려고 한다. 


사진 출처 : 코로나를 이기는 집콕 운동 '플랭크(plank..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이 장기하 음악인생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장기하를 처음 티브이에서 봤을 때 충격이었다. 텁수룩한 마리에 까칠한 수염, 주절거리듯 노래하는 그를 보고 뭥미? 이른바 88만원세대를 대변하는 듯했던 그의 정체는 금세 탄로났다. 서울대 출신에 번듯한 구체적으로 강남 태생. 그럼 싸구려 커피는 거짓말이었나? 그건 군대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 위대한 대한민국, 군은 절대평등사회구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그의 인기는 어느 순간 다시 활활 타올랐는데. 열애설 덕분이다. 상대는 무려 아이유. 와우 에스대 사회학과는 괜한 백이 아니었구나. 그런 그가 책을 냈다. 당연히 호사가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는데 결과는 맹탕. 마치 진한 술을 기대했는데 맹물을 잔뜩 부어 술인지 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듯하다. 굳이 열애 이야기를 해달라는 건 아니다. 왜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가? 아무리 연재물을 모은 책이라 해도 록 스피릿은 살아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웬 뜬금없이 라면에 냉장고에 피아노 제대로 배우지 못한걸 후회하는가? 잘 못 쳐서 좋다는 건 또 뭔가? 


그러다 깨달았다. 이 사람은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엘리트주의가 더 강하구나. 어리석은 자신을 드래내기 보다 자기합리화의 귀재구나. 스물한 살 이후 음악 외에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면서 꾸역꾸역 대학을 졸업한 이유는? 그가 직접 말한 것처럼 간판도 중요하니까? 그러나 이건 이율배반이다. 한창 기타를 배울 때라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까워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때려치웠다는 서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지어 더 일찍 그만두었다면 더욱 음악에 매진했을텐데라고 아쉬워하는, 혹은 마왕이라 불리며 미루고 미루다 겨우 서강대 철학과를 마친 신해철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혹시 책을 또 낼 생각이 있다면 그 때는 진짜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이 장기하씨의 음악인생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음악외적인 건 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개에게는 어떤 악한 의도도 없었다


습관처럼 그래미상 시상식 티브이 중계를 보고 있었다. 배철수, 임진모의 티카타가가 재미있어서다. 비티에스가 수상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음악 쇼다. 진행자는 쉼 없이 떠들고 있었다. 미국식 유머가 재미있을 턱이 없다. 아무리 번역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코미디 빅리그를 보며 박장대소할 미국인이 있을까? 그런데 배씨 아저씨가 특이한 소리를 한다. 저 친구 되게 웃겨요. 책까지 냈다던데. 태어난 게 범죄라 뭐라나? 그 말을 새겨들은 나도 대단하다. 방송이 끝나고 물어물어 찾아냈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오늘 처음 들쳐보았다. 재미있었다.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바로 알았다. 트레버 노아는 진짜 태어난 게 범죄였다. 남아공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면 감옥에 간다. 남자는 5년, 여자는 4년. 정말 엿 같은 세상이었겠다. 다행히 지금은 아니지만. 이 책은 교훈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훈계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면 강아지. 애지중지 키우던 개가 어느 날 울타리를 넘어 다른 집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개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집 아이는 자기 개라고 우긴다. 이런 X같은 일이. 급기야 어머니까지 출동하여 사진과 증명서까지 내밀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다. 사태는 희한하게 풀렸다. “좋아요. 그럼 100랜드(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를 줄게요.” “그럽시다” 그 아줌마도 동의했다.


트레버는 안도감과 함께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을 찾아온 주인에게 반갑다며 당장 달려올 것 같던 강아지가 태연하게 잘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푸피가 나를 두고 다른 아이와 바람을 피운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이 일은 트레버에게 가치 있는 교훈을 남겼다. 푸피는 밖에 나가 자신의 삶을 즐겼을 뿐이다. 개에게는 어떤 악한 의도도 없었다. 나는 푸피가 내 개라고 믿었지만,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푸피는 그냥 한 마리의 개였다. 우연히 우리 집에 살 게 되었을 뿐이다.


이 글을 읽고 깊이 감동했다. 가슴 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린 기분이었다. 3년 가까이 어머니 집에는 강아지가 있었다.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원래 주인이 가져갔다. 그렇다면 차라리 맡기지 말지. 한동안 어머니는 그 개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아무 말도 안 하신다. 걱정이 되어 개가 잘 있냐고 물어도 그 집에서 편안하게 지낸다고 앙칼지게 대답하신다. 우리 집 개가, 정확하게 였던, 다른 곳에서도 행복하게 산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였다. 이제 알았다. 그 개는 그저 개였으며, 우연히 우리와 함께 했을 뿐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는 주어진 상황에서 맺어졌을 뿐이다.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 꺼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처 입는 사람은 본인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럴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단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훨씬 더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여전히 내게 거북하다. 그나마 조금 친근하게 다가온 건 IQ84이후였다. 그 전까지는 실험성이 너무 강했다. 반면 수필은 처음부터 좋았다. 이른바 어깨에서 힘을 빼고 독자와 밀당하듯 하는 글 솜씨가 탁월했다. 일인칭 단수는 초기 하루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부드러운 섹스 신을 넣어 남자는 물론 여성층까지 사로잡는 기술이나 특기인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하여 은근히 자기 지식을 자랑하거나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의 풍경, 곧 항구너머 바다가 보였다 사라지는 고갯길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건 진구구장. 무라카미가 하도 많이 언급해서 언젠가 가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 책은 그가 별 볼일 없을 때부터(?) 팬이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거장이 되었다고 몸에 힘 빡주고 거드름 피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시간  이상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었다는 필동면옥 평양냉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손님들이 많다


Second Best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있는 면을 먹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나는 당연히 그 정도는 아니다. 내게 냉면은 오로지 회냉면이다. 꾸준히 찾는 곳도 오로지 오장동 함흥냉면집뿐이다. 물냉면은 한여름에 인스턴트 면을 사서 가끔 먹는 정도다. 


그러나 이빨이 빠지면서, 정확하게는 앞니 아래가 절반 정도 부러져 아예 뽑고 새 이를 심는 작업 중이다, 당분간 매운 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꿩대신 닭이라고 물냉면집을 찾았다. 처음 간곳은 진미평양냉면.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초행이라 찾기 어려웠다는 점 빼고는 만점이었다. 육수와 면 모두 합격. 


오늘은 필동면옥을 들렀다. 일이 있어 근처에 간 김에 그럼 물냉면을 먹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오후 3시 넘어 도착해서 한가했다. 물론 손님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겉모습은 진미냉면과 다를 바 없었는데 육수를 먼저 쭉 들이키자마자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육향이 강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맑은 쪽이 더 맞았다. 면도 쫄깃함이 덜했다. 메밀을 약 70퍼센트 정도로 하고 섞어 만들었다고 하는데 메밀향이 강하지는 않았다. 식초와 겨자를 넣고 풀어서 다시 먹어보니 익숙한 맛이었다. 언제 어디서 먹어봤더라? 아, 인스턴트 냉면. 물론 필동면옥은 직접 육수를 내고 면을 뽑으니 인스턴트일리는 없다. 그만큼 표준에 가까운 냉면이라는 뜻이겠지. 개성은 덜하지만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냉면이었다. 본격적으로(?) 물냉면을 먹겠다고 온 두 번째 가게니 Second Best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단독건물이라 깔끔하고 인테리어도 옛스러우면서도 구질구질하지 않아 진미냉면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내 입맛에 더 맞았더라면 만 이천 원이 아깝지 않을 텐데. 물론 필동면옥 맛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