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소개되면서 더욱 인기를 끈 나의 아저씨. 

아이유는 자신에게 걸맞는 맞춤형 옷을 입었다.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편이 아니다. 한두 편으로 끝낼 이야기를 구태의연하게 질질 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잡기 위해. 그러나 늘 그렇듯이 예외는 있다. 날을 잡아 나의 아저씨를 감상했다. 사일 정도 걸렸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한창 화제에 오를 때는 아예 모르다가 뒤늦게. 사실 주연 두 배우에 대한 비선호도도 한몫했다. 이선균은 목소리 개성으로 버티는 연기자이며 아이유는 가수 활동 쉬는 짬짬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내 주관적인 평가다. 정직하게 말해 이 둘의 연기를 다 본 지금도 내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둘 다 정형성(고정된 이미지)이 너무 강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적역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실존 인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녹아들었다. 시종 일관 지치고 맥 빠진 종신형 노예 같은 표정을 보여준 이선균과 서늘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어둠이 짙게 배인 아이유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사실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작가다. 어떻게 이런 소재로 극을 쓸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사실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걸며 끝까지 긴장감을 유발했고 그 사이사이 직장 내 정치, 불륜, 도청 등 자극적인 주제를 적절히 배치하여 다채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형제애와 가족 간 우애까지 곁들여 다양한 연령대를 시청자로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자체로서는 허점도 많았다. 부정을 저지를 배우자를 모른 척 한다거나 휴대폰 도청을 들키지 않는다거나 법적인 문제가 아무 일 없듯이 해결되는 건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어색했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단점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메시지다.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면 감사함을 표시하기에 앞서 잘사는 게 갚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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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녀로 데뷔한 윤여정. 

50년 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공로상


나는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다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절실하지는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는 아니다. 그냥 낯설었다. 죽을 각오로 뭔가를 한다는 게.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 그렇게까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허무주의에 빠진 건가?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작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싹쓸이 하는 바람에 감탄이 살짝 줄어들었지만 놀라운 건 분명하다. 물론 영화자체는 완벽한 미국자본이 참여했지만 윤여정은 토종 한국인 아닌가? 게다가 본인 대사 대부분을 우리말로 했다. 그런 역할을 한 배우가 오스카를 수상하다니?


그는 다채로운 말솜씨로도 화제에 올랐다. 영국아카데미상을 거머쥐고서는 거만한 영국인들에게 받아 더 감동이다, 독립영화인줄 알고 고생하겠구나라고 했다는 등 사실을 말하면서도 유머를 담아 재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아들의 잔소리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트로피는 엄마가 힘들게 일한 성과다라고 단언했다.(그러니 잔말 말라는 뜻)


그렇다면 윤여정은 왜 이렇게도 스스로를 강하게 다루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혼녀에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경력 단절녀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야말로 도둑질 빼고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노출연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몸 팔러 다니는 할머니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어쩌면 이번 여우조연상은 일종의 공로상 성격이 짙다. 아무리 자신들은 모르는 한국의 여배우라고 할지라도 데뷔 50주년을 맞은 그의 필로그래피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드문드문 온 에너지를 불사른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또다시 안이함의 틀에 갇히곤 했다. 지금은 그러기 더욱 좋은 환경이다. 나이도 들었고 몸도 아프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마인드다. 이런 생각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은 물론 사회를 위해서도 어떤 기여를 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나만의 절실함이 무엇이며, 그걸 꾸준히 유지시킬 방법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시간을 두고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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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별별 경험을 다 하게 된다. 좋든 나쁘든. 시간이 지나면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혹은 빛이 바래지기도. 그러나 신체에 남긴 상처는 늘 괴롭던 순간을 상기시킨다. 내게는 빠진 이빨이 그렇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치아 때문에 고생했던 터라 그러려니 할 것 같지만 매번 힘들다. 유전적인 영향이라 달리 방법도 마땅치 않지만 일단 치과에 가기가 싫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중간쯤 부러진 앞이빨을 빼고 의치를 해 넣었는데 빠져 버렸다. 본격적인 치료를 하기 전부터 이 모양이니. 결국 다시 가서 끼워넣었지만 매번 조심스럽다. 또 빠질까봐. 특히 음식을 앞에 두고서는 늘 엄숙해진다. 지난번에도 사과를 한 잎 베어물다가 그만. 최대한 앞 이빨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가며 먹지만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양 쪽 어금니도 없으니 도무지 씹을 수가 없다. 참고로 이곳에는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뭔가 먹으려면 긴장을 하게 된다. 최대한 조심조심하는데 문제는 누군가와 겸상을 할 때다. 혼자야 아무리 천천히 식사해도 상관없지만 남들과는 그럴 수 없다. 결국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코로나 덕에 딱히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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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거장이 만난 거장 6
엑토르 베를리오즈 지음, 이충훈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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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말이나 글은 무시한다. 직접 현장에 뛰어 들 능력이나 재능이 없는 이들이 주변을 맴돌며 내뱉는 헛짓거리다, 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친절한 길 안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설이 자신들의 무기라는 착각을 버려라.


그러나 때로는 예외도 있다. 평을 하다 필드에 나가는 경우다. 대게는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변명도 조잡하지만, 드물게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베를리오즈도 그랬다. 음악평론으로 먹고 살다가 스스로 작곡에 나섰다. 그게 빅히트를 쳤다. 이쯤 되면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볼만 하지 않을까?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은 평소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베토벤하면 떠오르는 미치광이 작곡가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는 배제한 채 철저히 음악에만 집중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비평가들은 합창교향곡을 무시무시한 광기 혹은 천재의 마지막 미광微光(아주 희미하고 약한 불빛)으로나 볼 뿐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 앞서 이미 여덟 편을 썼다. 그가 관혁악법에서 썼던 수단으로 다다랐던 그 지점 너머로 나아가려면 남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성악과 기악의 결합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다. 제대로 된 평로이란. 평소 내 생각과 일치해서 더 짜릿했다. 베토벤이 미쳐서 작곡한 게 아니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제발 부탁이니 엉터리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많이많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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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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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많이 담긴 책은 피하는 편이다. 더 이상 인터넷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의 기능은 이제 오래 두고 가끔 들춰보는 정서가 담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럼에도 잔뜩 자료를 담아내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들의 장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은 책 제목처럼 하루키가 쓴 소설 속에 나온 음악들을 소개하고 있다. 뭘 굳이 이렇게까지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드라마 킹덤 덕에 나름 오지인 문경까지 오는 외국관광객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각자가 느끼는 감정의 강도는 다르게 마련이다. 이 책의 장점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나누어 작성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모두 집필했다며 알게 모르게 지루하고 관점의 변화도 없었을 텐데 다양한 인물이 참석한 덕에 내용이 풍부해졌다.


나는 이 글을 리스트의 순례의 들으며 쓰고 있다. 하루키가 아니었다면 전혀 몰랐을 곡이다. 내친 김에 99장짜리 리스트 전집까지 사버렸다. 오, 놀라운 소설의 힘이여. 과연 평론가는 이 곡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인상적인 선율로 시작해서, 몇 소절마나 조성이 변화하며 이리저리 헤맨다. 주부에 돌입하면 민요풍의 선율이 들려오지만, 금방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가고 만다. 중간부에서 갑자기 장조로 조바꿈하는 부분은 달콤한 우울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이 주정에 동의하는가? 글쎄,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참고로 나는 이런 감상적인 평은 선호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글을 읽음으로써 음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 개인적으로 무라카미의 소설에 등장한 음악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로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이었다. 지금도 들으면 주인공이 스파게티 면을 삶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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