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해교실
이토 준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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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바닥에 대고 고개를 완전히 숙이는 사죄장면을 자주 본다. 이른바 도게자土下座(どげざ)다. 매우 비굴해보이지만 이런 사과도 자주 하다보니 도리어 반감효과가 크다고 한다. 실제로 비리로 얼룩진 기업의 대표나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들은 습관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용해교실>의 주인공 유우마는 전학 온 첫날부터 계속 도게자를 한다. 큰 잘못도 아닌데 사과를 하는 그를 보고 처음엔 다들 놀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아자와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 사죄할 거리를 만드는데. 보다 보면 슬슬 짜증이 난다. 그럼 사과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마치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일을 벌려 넣고는 고개만 숙이면 다인가? 그러나 책을 다 읽고 한 장짜리 짧은 후기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토는 개나 소나 도게자를 하는 일본 사회를 비꼰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사죄회견은 이벤트의 일종! 국민의 오락거리!!

자, 여러분! 저와 같이 사죄회견을 여시지 않겠습니까?!


4월 7일 재보궐 선거 다음날 집권당의 발언을 접하고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체 뭘 잘못했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그저 면피용으로 단체로 고개를 숙이는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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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비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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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을 그만둔 다음날 아침 나는 관악산에 올랐다. 이런 저럼 상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산에 올라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온몸이 흠뻑 젖기도 하고, 생각보다 험한 한라산에 하산 내내 욕만 늘었고, 길을 잘못 들어 조난을 당할 뻔 하기도 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문제는 산을 다녀오고 난 저녁이었다. 애써 잊었던 고민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간다고 할까? 당장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지?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습관이란 무서워서 마치 군대 기상나팔처럼 오전 6시 무렵이면 눈이 번쩍번쩍 뜨이는데 내가 갈 직장이 없다니? 


<조용한 비>를 읽으면 한동안 잊었던 그 때 감정이 떠올랐다. 웬일로 아침부터 대표가 오더니 전 직원을 모아놓고 한마디 한다. 올해를 끝으로 회사를 정리하겠다. 유키스케는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먹는다. 한 입 먹고 어라하고 멈춘다. 이거 멋있잖아. 그렇다. 회사가 망해도 지구가 멸망해도 맛있는 건 맛있는 거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배주변이 근질근질하니 웃는 것도 같고 우는 것도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방황은 뜻밖에 손쉽게 직장을 얻는 바람에 끝이 나지만 붕어빵 여주인과의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말


일본인들만큼 조용하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국민이 있을까? 어느 글에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루키도 종종 사용한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은 조용한 비静かなあめ 다. 일본사람들은 시즈카나라는 말만 들어도 왠지 감상에 젖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다. 매우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곧 조용한 상황을 다르게 표현할 줄 알아야 장인이다. 예를 들어 조용한 비는 빗소리 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빈 방이라는 식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아무리 문학적 표현이라고 해도 조용한 비는 세상에 없다.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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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만두, 김치 가히 삼합이라 부를만 하다


둘이 와서 한그릇만 시키면 면 리필 안됩니다


예전에 먹던 맛을 잊지 못해 식당을 찾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먹었다. 젊을 때는 또 오면 되지하고 스쳐 지나가곤 했는데. 명동칼국수를 먹었다. 정확한 가게이름은 명동교자다. 본점과 분점 두 곳이 있는데 이번엔 분점에 들렀다. 같이 간 사람이 이곳이 본점 맞다고 우긴 탓이다. 참고로 맛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나는 본점에 익숙하다. 


여하튼 중요한 건 근 20년만의 방문이었다. 가장 자주 찾았던 시기는 남산 근처에서 일을 할 때였다. 직장을 옮기고 한겨울에는 한두 번 찾곤 했는데 서서히 발걸음이 멀어졌다. 맛이 변해서가 아니라 여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닭육수와 얇은 피로 빚은 만두, 그리고 이 집의 시그니쳐인 마늘향 듬뿍 김치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면이 좀 퍼진 듯하고 국물이 다소 미지근해서 살짝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아쉬웠던 건 서비스다. 둘 다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 칼국수를 하나 시키고 만두를 곁들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주문했다. 당연히 면 리플이 가능하니까 나누어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안 된단다. 이유를 어보니 인원수대로 시켜야한단다. 그게 무슨 말이지? 차라리 2인 이상이면 2인 이상이지, 인원수라니? 계속 따져 묻기도 뭐해 그냥 먹었는데 왠지 찜찜하다. 게다가 옆 자리 손님이 우리를 보고 혀를 차며 그럴 거면 사리를 시키지라고 말해 기분이 상했다. 대체 언제 봤다고? 여보세요 그리고 여기는 사리를 따로 팔지 않는다구요, 아세요,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래저래 언짢았다. 예전엔 혼자 와서도 면을 두 번 정도 더 달라고 해도 군말이 없었는데. 참 인심이 좀 그렇다. 방송(맛있는 녀석들)에서는 그렇게 면이며 밥이며 국물이며 달라는 대로 다 주더니.


덧붙이는 말


명동교자 본점은 정책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혼자 가면 면 리필 안 됩니다. 단 밥은 조금 줍니다. 물론 달라고 해야만. 참고하세요. 칼국수 가격은 9천원입니다. 왠지 조만간 만 원을 넘을 듯싶네요.


사진 출처 : 중구 명동 맛집_명동교자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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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주가 고비다?


결과를 미리 알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 어차피 벌어진 거니까. 그러나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쳐야 하듯이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유성룡이 전쟁이 끝나고 징비록을 쓰듯이. 서두가 길었다. 코로나 이야기다. 연일 오백명대를 기록하고 있어 4차 대유행 소식까지 들린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크게 두 가지 잘못이 있었다. 초창기 해외 유입을 막지 못한 게 첫 번째다. 대통령은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방역보다 경제를 걱정했다. 그 사람이 중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건 애써 무시했다. 만약 그 때 국경을 봉쇄하고 강력하게 단속을 했다면 우리는 대만의 길을 갔을 것이다. 두 번째 실수는 케이 방역 운운하며 자화자찬에 빠져 백신 수입을 게을리 한 것이다. 사실 한동안 확진자수가 줄어든 건 방역도 방역이지만 검사수가 적었던 탓도 크다. 겨울이 되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 확실한데도 백신 수입은 안일했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백신개발시기가 불명확하고 가격도 비쌌기에 다소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방역과 백신 중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백신을 골라야 한다. 바이러스는 방역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백신접종을 시작한 결과 마스크 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2월이 되어 겨우 접종이 시작되어 2퍼센트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정권은 자국중심주의가 강해 어렵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자국민의 접종 데이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물량을 최대한 확보한 그들이 쓴 방법을 우리는 왜 못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기로에 섰다. 정부는 또다시 방역의 고삐를 당긴다고 한다. 앞으로 2주가 고비다라는 말로 끌어온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또 그 타령이다. 이번엔 또 누구 탓을 하려는가? 백신접종을 늘리면 해결될 문제를. 물론 그 마음도 이해한다. 당장 맞을 백신주사가 없으니까. 이래저래 실망만 안기는 무능한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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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LC3500, 내 곁을 가장 오래 지켰던 휴대전화기


I sing you sing we all sing the new song


내 첫 휴대전화는 엘지폰이었다. 번호도 019로 시작했다. 내 선택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개통하면서 함께 한 것이다. 가족이 함께 가입하면 쌌었던 듯싶다. 아무튼 꽤 오랫동안 잘 썼다. 초창기 모델이라 무겁고 무전기 모양이라 주머니에 넣기도 불편했지만. 두 번째 전화기는 애니콜이었다. 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바꿨다. 손안에 쏙 들어오고 가벼워서 편했다. 그럼에도 번호는 여전히 019 였다. 세 번째는 다시 엘지전화기. 이번에도 수리불가라 다른 선택이 없었다. 동네 대리점에서 싸고 튼튼한 걸로 달라고 하니 권해준 게 슬라이딩 폰이었다. 지금까지 써 본 전화기 중 가장 애착이 강하다. 부품이 없어 망가진 지 오래된 걸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심지어 중고로 다시 산 걸 포함해 두 개씩이나.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건 작년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살았을까 싶지만 그 때는 또 그 나름대로 큰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통신비가 저렴했다. 한 달 평균 만 원 안팎이었으니. 단연히 통신사는 계속 유지했다. 엘지가 휴대폰 사업을 중단했다. 소문이 무성했는데 결국 아니 땐 굴뚝이 아니었다. 정직하게 말해 큰 아쉬움은 없다. 작년에 이미 나는 노트북 9을 구입하고 통신사도 에스케이로 바꿨다. 


그럼에도 가끔 엘지폰 쓰던 시절이 생각난다. 키판을 꾹꾹 눌러 문자를 보내던 추억, 전원을 꺼놓아도 다시 키면 수신기록이 나와 편했던 기억(에스케이는 이 기능이 없다. 무조건 음성통화를 남겨야만 확인이 가능하다. 은근히 불편하다), 켜자마자 울리던 리얼 그룹의 아이 씽 유 씽 멜로디. 아 또 한 가지. 언젠가 서비스를 개편하면서 한 달에 두 번, 곧 일 년에 스물네 번 극장에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진짜 그 혜택 덕분에 갈아타지 않았는데. 물론 몇 년 가지 않아 없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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