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④

 

4.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2)

   
 

 간단한 비유를 해보자. 사방이 막힌 방에 내가 있다. 방안에 있는 한 대의 컴퓨터가 바깥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다른 사람과의 대화 수단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 모뎀의 선을 자르고 조작된 신호를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다.   

 - 노성래, <과학동아> 2002년 6월호, 52쪽.

 
   

   모피어스는 지금까지 네오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세계가 ‘가상’이었다고 선언한다. 그는 인류가 AI(인공 지능 컴퓨터) 제조 기술을 갖게 된 것에 스스로 경탄하면서 AI의 탄생을 자축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AI와 인류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깨져버린다. AI와 인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승리는 AI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태양력으로 움직이는 AI들을 위협하기 위해 태양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인간에게 승리한 AI들은 ‘인간’을 일종의 ‘건전지’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인간은 태양을 없애버리면 AI들이 멸망할 것이라 믿었지만 태양이 없어지자 AI들은 태양에너지 대체제로서 인간의 육체를 사용했다. 인간은 ‘대량 사육’되어 AI들의 건전지로 이용되고, 2199년 현재 인류가 꾸는 ‘꿈’이야말로 그들이 지금까지 현실이라 믿었던 유일한 세계(1999년)였다. 


   모피어스 :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했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인체는 120볼트 이상의 전기를 발생시키고 체열은 2만 5천 BTU가 넘어. 인간들은 끝도 없이 널려 있잖아.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육되는 거지. 나도 오랫동안 믿지 못했어. 그러다가 직접 본 거야. 죽은 자를 액화시켜 산 자에게 주입하는 걸! 끔찍하리만치 정확한 기계들을 보면서 난 명백한 진실을 깨달았지.
   네오 : (어느새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럼 도대체 매트릭스가 뭐지?
   모피어스 :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나라야. 우릴 통제하려는 거지. 인간을 그들의 에너지로 이용하려고.  
   네오 : (이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냐! 믿을 수 없어! 불가능해!   
   모피어스 : 믿기 쉽다고는 안 했어. 진실이라고만 했지.
   네오 : 그만해!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줘!

   네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며 실신해버린다. 그는 이곳(진짜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 곧 매트릭스 안에 갇히는 것이라는 참혹한 역설에 직면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속 편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속의 세계는 안전하지만 무의미한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고 신성의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모조리 허무한 환상일 뿐이라도 차라리 그 편안한 무지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져버린 네오. “다시 돌아갈 순 없죠?” 모피어스는 미소 짓는다. “그래.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나? 사과를 해야겠군. 규칙이 있지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진 이 얘길 안 해. 위험하니까. 받아들이질 못하거든. 그런 경우를 봤어, 미안해. 하지만 난 할 일을 한 거야.”

   그 말 뒤에는 짜릿한 ‘시험’의 문턱이 숨어 있다. 모피어스의 속내는 네오가 정말 ‘그’임을 시험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네가 받아들이지 못해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정말 ‘그’라면 넌 견딜 수 있을 거야. 네가 진정 선택된 자라면, 그리고 그 선택된 운명을 네가 받아들인다면, 넌 그 정도 괴로움 따윈 거뜬히 이겨내겠지. 넌 다시 태어나야 해.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명령체계 속에서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을 지워야 해. 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까지, 네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모두 지워버려야 해. 

   모피어스 : 매트릭스가 건설될 때 그 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 그는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매트릭스를 합당하게 바꾸는 거였지. 그는 맨 처음 우릴 해방시켜 주고 가르쳤지.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자유를 얻지 못해. 그가 죽은 후 ‘오라클’은 그의 재림을 예언했지. 그가 매트릭스를 파멸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그래서 우린 평생 동안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지. 그를 찾았다고 믿었기에. 난 내 할 일을 한 거야. 푹 쉬어. 휴식이 필요할 거야.
    네오 : 뭘 위해서요?
    모피어스 : 훈련을 위해서!

 
   모피어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네오의 마음에는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이 꿈틀거린다. 그럴 리 없어. 모두가 거짓이야. 예언이라니, 계시라니. 그런 건 다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야. 모피어스가 전해주는 오라클의 계시를 믿지 않으려는 네오의 마음. 그것은 세속적인 삶에 대한 미련이기도 하고 신성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기도 하다. 막상 세속의 삶(파란 약)을 잊어버리려니 그 편안함과 익숙함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가 아니면 어쩔 것인가. 그들의 실망을, 아니 나 자신의 절망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아,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모피어스 일행 중 ‘사이퍼’의 존재가 바로 이 세속을 향한 미련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는 세속의 열망에 찌들어 신성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한 존재다. 그는 모두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애송이 네오를 질투한다. 네오가 충격의 여파로 며칠 동안 잠에 빠져 있을 때 네오의 잠든 얼굴 위로 쏟아지는 트리니티의 따스한 눈길. 아직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남아 있지만 제발 네가 ‘그’이기를 바라는 트리니티의 시선이야말로 사이퍼를 더욱 자극한다. 저 아름다운 눈빛이 내 것일 수 있었는데. 사이퍼가 질투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네오를 바라보는 동안 네오는 진정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죽음의 고통을 통과한 새로운 삶이야말로 부활의 청신호일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우주는 태초의 물에로 용해된다. (……) 1년 내내 존재하였던 세계가 진정으로 사라진다. (……) 한 해의 모든 죄, 시간이 더럽히고 닳게 만든 모든 것은 무화된다. 세계의 무화와 재창조에 상징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간 역시 새롭게 창조된다. (…….) 새해가 올 때마다 인간은 그의 죄와 실패의 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더 자유롭고 더 순수해졌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는 천지창조의 신화적인 시간, 따라서 거룩하고 강력한 시간에 다시 돌아간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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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네오라면 어떻게 했을까?
모피어스의 말을 믿었을까? 지금의 나라면 난 파란약을 선택했을듯~~~
그렇다고 너무 세속적이다 말하진 마세여~~
난 "그"가 아니잖아요 ㅋㅋ

viewfinder 2009-12-1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구나 '그'가 될 소질을 갖고있지요. 꼭 거창하게 나라를 지키거나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끝내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아닐까여^^

둥이 2009-12-12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냐 넌?(올드보이버젼)

viewfinder 2009-12-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걱, 깜놀 ㅠㅠ 저예요, 저. 저 모르시겠어요?^^

둥이 2009-12-1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그'인줄 알고^^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③

 

3.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1)

   
 

 신화란 본질적으로 무한하면서도 객관적 현상에 있어서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 어중간한 존재로서의 모순적인 인간 상태를 비애를 담아 표현한 것이다. 


 - 폴 리쾨르

 
   

   가끔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평소엔 전혀 종교생활을 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아무 신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며 까르륵 웃는 아이가 정말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일 때,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3대를 넘어 우리가 진화해온 지긋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때, 오늘 따라 매일 보는 친구나 연인의 얼굴이 불현듯 ‘여신 포스’를 풍기며 아름답게 빛나 보일 때.
   우리는 그럴 때 저마다의 무한한 시간, 저마다의 신화적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이란 유한성과 무한성의 두 기둥 사이에 가냘프게 매달려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성’의 세계와 ‘속’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분열되는 존재, ‘성’과 ‘속’의 이상적인 통합을 추구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존재.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유한한 시간의 화살표에 쫓겨 다니며 보내지만, 문득문득 정해진 스케줄의 중력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신화적 시간’의 내밀한 원심력을 느끼곤 한다. 

   <매트릭스>의 네오에게는 이제 ‘신화적 시간의 모험을 떠날 것인가, 세속의 시간에 머물 것인가’ 하는 절박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모피어스는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각각 보여주면서 각각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빨간 약은 신성한 모험의 시간을, 파란 약은 세속의 시간에 머물기를 의미한다. 


   모피어스 : 네오. 네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 주지. 넌 스스로 이미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 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 해. 하지만 뭔가가 느껴졌을 거야. 넌 그걸 평생 동안 느껴왔어.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그 생각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자넨 미칠 지경이었겠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오 : 매트릭스를 말하는 건가요?
    모피어스 :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사방에 있어. 바로 이 방 안에도 있고 창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네오 : 무슨 진실이요?
    모피어스 : 네가 노예라는 진실!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불행히도 매트릭스가 뭔지 말할 순 없어. 직접 봐야만 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먹으면 여기서 모든 게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여기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네오는 스미스 일당에게 힘없이 잡혀갈 때보다는 훨씬 단단해진 눈빛으로, 이것은 정말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굳은 표정으로 빨간 약을 삼킨다. 이제 모피어스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가 밝혀질 차례다. 네오가 ‘1999년’으로만 알고 있었던 ‘현재’는 사실 ‘2199년’이었고, 그가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육체는 사실 인공지능컴퓨터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이었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AI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한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네오가 지금까지 ‘현실’로 철석같이 믿어왔던 ‘1999년’이었던 것이다. 그가 살아온 현실은 매트릭스가 조종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매트릭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고, 인간의 기억 또한 매트릭스에 의해 자유자재로 입력되고 삭제된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황홀해 하는 기분마저 모두 ‘스테이크맛’이라는 황홀한 환상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모피어스 일행은 이러한 끔찍한 매트릭스의 음모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스미스일당은 바로 그 매트릭스를 지키는 AI 통제 요원들이었고 모피어스 일행이 스미스일당의 삼엄한 검색망을 뚫고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드디어 찾아낸 사람이 바로 ‘네오’였던 것이다.
   네오는 비로소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매트릭스 바깥에서 ‘사육’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몰골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매트릭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육 당하고 있었던 자신의 ‘진짜 육체’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네오 뿐 아니라 지구인 전체가 그런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 2199년의 현실은 전혀 모른 채 1999년을 ‘꿈꾸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매트릭스 속에서 ‘가상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명실상부한 ‘네오’로 다시 태어난다. 이제 네오는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진짜 육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모피어스 : 이게 ‘컨스트럭트’다. 로딩 프로그램이지 뭐든지 로드할 수 있어 옷이든 장비든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필요한 건 전부 다!
   네오 : 우리가 지금 프로그램 안에 있는 거라고요?
   모피어스 : 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도 없어졌잖아. 머리 모양도 달라지고.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네오 : 그럼 진짜가 아닌가요?
   모피어스 :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게 자네가 아는 세상이야. 바로 20세기 말의 모습이지. 이젠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인 매트릭스로만 존재하지. 

 

   
 

시간은 인간을, 사회를, 코스모스를 닳게 하였다. (……) 세계가 순수하고 강력하며 거룩한 시간에 멱 감았던 저 신화적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서 세속적 시간은 소멸되어야만 한다. 세속적인 지나간 시간의 폐기는 일종의 ’세계의 종말’을 나타내는 제의에 의하여 수행된다. 불의 사그라짐, 죽은 자들의 영혼의 복귀, (……) 사회적 혼란, 성적 방종, 광란 등등이 코스모스로부터 카오스에로의 퇴각을 상징한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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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2009-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구두구둥둥! 이제 좀 있으면 네오와 트리니티의 액션이 작렬하겠군요! ^^

불타는고구마 2009-12-1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전부터 들어와서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내공(?)이 엄청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여울님의 책도 사서 읽고 싶어졌어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

둥이 2009-12-1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영화속 어려운 철학
그러나 지금내게 컨스트럭트로 로드할수있다면
난 뭐가 가장필요할까? 아~~슬프다 난 돈잘버는 프로그램을 장착하고싶다.
그리고 난 또 떠난다~~~

트루릴리전 2009-12-1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둥이님 또 떠나실 채비 하세요? ㅋㅋ 내일 또 오신다에 한표!^^

둥이 2009-12-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리나 만리나 떠날꺼예여^^
하지만 한표는 획득(트리니티와 네오의 키스신은 보구 가야지^^)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②

 

2.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2)

   
 

인간은 망가진 채로 태어나 수리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바로 그 접착제이다.  


 - 유진 오닐

 
   

   옛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각자 자기 문화에 어울리는 성소(聖所)를 찾아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루를 시작했다. 현대인은 ‘로그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략적인 ‘뇌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컴퓨터를 켜서 ‘즐겨찾기’ 리스트를 살펴보면 된다. 컴퓨터는 우리의 관심사와 우리의 욕망의 좌표를 알려주는, 너무도 노골적인 꿈의 ‘검색 히스토리’를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꿎은 컴퓨터를 탓할 필요는 없다.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구조는 신석기 시대 이후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인식의 ‘미디어’가 바뀐 것이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미디어로 하여 사유의 패턴을 만들어나갔다면, 현대인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적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합하고 사유의 그물을 짠다. 관건은 그렇게 얻은 정보를 어떻게, 어디에, 언제 활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다. 어쩌면 이제는 컴퓨터야말로 우리 존재의 ‘문지방’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현대인의 새로운 ‘성소(聖所)’다.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를 통해 사고하고 사랑하고 창조하게 된 인간이 재구성해낸 현대사회의 새로운 신화 텍스트가 아닐까.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매트릭스>는 일종의 ‘인공 신화’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매트릭스>의 스토리와 배경은 SF영화의 패턴을 따르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네오, 트리니티, 모피어스 등등), 영웅 신화의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매트릭스>의 신화적 성격을 증언한다. 네오는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최초로 깨닫게 된다. 컴퓨터가 부르는 그의 이름 ‘네오’를 통해 그는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를 통해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막연한 느낌, 내가 잃어버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맹렬한 환상’을 추격해왔다. 컴퓨터는 그에게 있어 성전이자 성소이자 성경인 셈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통해 세계의 비밀과 무한 접속할 수 있는 토마스의 ‘능력’만으로는 ‘성’과 ‘속’ 사이에 놓인 문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세속의 인간 토마스 앤더슨이 신성의 이름 ‘네오’를 향한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세속의 집착을, 신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는 매력적인 여성의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형상화된 ‘하얀 토끼’의 유혹은 쉽게 따르지만 전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모피어스의 목소리를 따라 목숨을 걸고 고층건물의 옥상 문턱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휴대폰 너머로 모피어스는 다급하게 외친다. “비계를 타고 옥상으로 가!” 아직 ‘네오’가 되지 못한 ‘토마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궁의 추격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도 안 돼! 이건 미친 짓이야!” 모피어스는 다그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비계를 이용해서 옥상으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놈들한테 잡히든가. 선택은 네 마음이야.”
   토마스는 까마득한 죽음의 골짜기가 펼쳐진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에 떤다. “미친 짓이야! 이게 다 뭐야? 내가 뭘 어쨌기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죽겠군, 젠장! 난 못해!” 자신을 추격하는 정체 모를 선글라스 신사들(스미스 일당)의 시선을 피해 달아나고는 싶지만 떨어지면 바로 죽을 것이 확실한 고층건물의 옥상을 향해 맨몸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신성을 찾아 헤매기는 했지만 막상 신성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그리고 ‘내가 바로 그’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토마스는 끝내 스미스 일당에게 붙잡히고 만다. 토마스는 스미스에게 붙잡혀 심문을 당하고 나서야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말을 ‘믿지 못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스미스는 모피어스와 네오가 동시에 경계하고 있던 ‘매트릭스’의 수문장이었던 것이다.


   스미스 : 우린 한동안 자넬 지켜봐왔다. 두 개의 인생을 살고 있더군. 하나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 떳떳한 시민으로서 세금도 내고 집주인 아줌마의 쓰레기도 버려주지. 다른 하나는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서 온갖 컴퓨터 범죄는 죄다 저질렀더군. 둘 중 하나는 앞날이 보장돼 있고 다른 하나는 미래가 없어.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겠네. 우린 자네가 필요해. 어떤 자가 연락해왔지? 모피어스라는 자 말이야. 그에 대해 자네가 아는 건 전부 무시해. 정부에서도 그자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찍었으니까. 동료들은 내가 자네 일로 시간낭비를 한다고 봐. 하지만 난 자넬 믿네. 자네가 새 출발을 하게 도와 줄 수도 있어. 자넨 테러범 체포를 도와주기만 하면 돼.
   네오 : (시니컬하게 미소를 지으며) 귀가 솔깃하네요. 더 좋은 게 있는데 말이죠.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히 펴 보이며 엿 먹으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당신은 이거나 먹고! 내 전화나 돌려줘!
   스미스 : 이런, 앤더슨. 날 실망시키는군.
   네오 :  그런다고 겁낼 줄 알아? 난 내 권리를 알아! 전화나 내놔!
   스미스 : 얘기도 못 할 텐데 전화가 무슨 소용이지? 좋든 싫든 간에 넌 우릴 도와야 할 걸.
 (갑자기 네오의 ‘입술’이 점점 없어지며 그 어떤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온다. 그들은 우격다짐으로 가재를 닮은 이물질을 네오의 배꼽으로 집어넣어 그를 경악케 한다. 네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도청 기계였다. 네오는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이 악몽이라고 믿고 싶다.) 

   모피어스는 포기하지 않고 네오를 향해 접속을 시도한다. 스미스는 계속 그를 ‘토마스’로 부르지만 모피어스는 줄기차게 그를 ‘네오’라고 부른다. 스미스 일당이 원하는 것은 고분고분한 모범 회사원이자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세속의 인간 ‘토마스’였고 모피어스가 원하는 것은 매트릭스의 음모와 싸울 운명의 전사이자 신성의 인간 ‘네오’였던 것이다. 모피어스는 트리니티를 통해 네오의 몸에 장착된 끔찍한 기계장치를 없애버리게 만들고 네오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한다.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향해 네오를 안내하면서 그에게 당부를 한다. “네오, 날 믿어야 해. 그리고 정직해야 돼. 모피어스를 과소평가하지 마.” 그녀의 당부는 <매트릭스>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바로 ‘믿음’이다.
   내가 신성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믿음, 내가 신성한 가치의 창조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믿음, 그리고 내 곁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 사건들’이 바로 이 세계를 엮어내는 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믿음. 모피어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네오의 표정을 보며 여유롭게 말한다. “자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겠지? 토끼 구멍으로 떨어진 것 같지?” 네오는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은 이렇게 첫 만남을 시작한다. 

   
 

 거룩한 공간의 계시는 고정점을 획득하고, 따라서 균질성의 카오스 속에서 방향성을 확보하며, ‘세계를 창건’하고, 참다운 의미에서 그 속에 거주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세속적인 경험은 공간의 균질성을, 따라서 그것의 상대성을 유지시킨다. 이때에는 고정점이라는 것이 더 이상 유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방향성이란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것은 나날의 필요성에 따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는 더 이상 어떤 세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부서진 우주의 단편들, (……)무정형의 더미만이 있게 된다. 이 속에서 인간은 산업사회에 편입된 존재로서의 의무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에 지배당하여 조종받게 되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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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색, 계>로부터 시작되어 <굿 윌 헌팅>의 믿음, <쇼생크 탈출>의 믿음, <원령공주>의 믿음, 그리고 <매트릭스>의 믿음. 여울님에게 그리고 나에게 믿음이란???

tnfltnfl 2009-12-0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진 오닐의 명문장. 가슴 시립니다. 오늘따라 신의 은총으롬 만든 접착제가 왜 이렇게 안붙지? 꼭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로봇처럼 몸이 안 풀립니다. 덜그럭덜그럭 휘청휘청 ㅋㅋ

니모 2009-12-0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번을 봐도 그때마다 새로운 신기한 영화. 그러나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말 환상의 캐스팅! 특히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 짱 멋있음ㅋㅋ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

 

1.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1)

   
 

본성은 한정되어 있으나, 욕망에 있어서는 무한대를 달리는 인간은, 천국을 기억하는 타락한 신이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프랑스의 시인)

 
   
   
   
 

 만약 세계 한가운데서 살고자 한다면 세계를 창건해야만 한다. 


 - 엘리아데

 
   

   다가오는 시험이 걱정스럽고,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걱정스럽고, 가족들의 잔병치레가 걱정스러운 이 ‘일상적 고통의 차원’을 뛰어넘는 고통이 있다. 이런 걱정들은 각각 시험이 끝나면 해결되고 월급이 입금되면 잊히며 건강이 회복되면 사라진다. 그저 열심히 살아서는 해결될 수 없는 고통, ‘나 하나’의 개인적 안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욕망.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세속적 일상을 질주하다가도 문득 ‘아, 이게 전부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이 똑같은 일상이 내 인생의 전부이면 어떡하지? 회사나 학교의 스케줄에 따라 복종하는 이 틀에 박힌 일상으로 내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난리법석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을 때, 아무리 안간힘 써도 나의 운명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될 때. 우리는 이렇게 ‘위로받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생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해커’라는 ‘제2의 가면’을 쓰고 자기만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그는 낮에는 유능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지하세계에서 유명한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살아간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세속적 일상 너머에 어딘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나만의 신화, 나만의 성스러운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컴퓨터 해킹을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컴퓨터가, 그에게 정말 ‘말’을 걸어온다. 그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컴퓨터 : 일어나, 네오…….
    토마스 : 뭐야?
    컴퓨터 : 넌 매트릭스에게 사로잡혔다.
    토마스 : 그게 무슨 소리지?
    컴퓨터 : 흰 토끼를 쫓아라!
    토마스 : 흰 토끼를 쫓으라고?
    (갑자기 토마스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토마스는 자신이 해킹한 프로그램을 왈패들에게 넘겨주다가 문득 그들 중 한 명의 몸에 하얀 토끼 문신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한다. 마치 신성한 계시를 따라가듯, 신비로운 주문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하얀 토끼가 그려진 여인을 따라가는 토마스. 그는 왈패들을 따라 간 술집에서 매혹적인 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를 만난다. 트리니티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를 너무도 잘 알아왔다는 듯한 친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트리니티를 만나는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가 된다. 트리니티가 찾는 것도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였기 때문이다. 아마 신화학자 엘리아데가 이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지금 ‘성(聖)’과 ‘속(俗)’ 사이에 놓인 ‘문지방’을 넘어가고 있는 거라고. 엘리아데는 세속에서 신성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특성을 교회의 내부로 열려 있는 ‘문지방’의 공간적 은유를 통해 설명한다.

   
 

두 개의 공간을 갈라놓는 문지방은(……)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 문지방은 한계점이요 경계선이며, 두 개의 세계를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구분선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들 세계가 교섭을 갖고, 세속적인 것에서 거룩한 것에로의 전이 가능성을 얻게 되는 역설적인 장소이기도 한다. (……) 몇몇 고대 문명(바빌론, 이집트,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의 장소를 문지방 위에 위치시켰다. 문지방, 문은 공간에 있어서의 연속성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여기서 그것이 갖는 커다란 종교적 중요성이 유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행의 상징이자 동시에 매개자가 되기 때문이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3쪽. 

 
   



    트리니티 : 안녕, 네오! 
    네오 : 날 어떻게 알지?  
    트리니티 : 난 널 잘 알아. 난 트리니티야.
    네오 : 그 트리니티? 국세청을 해킹했던?
    트리니티 : 오래 전 얘기지.
    네오 : 맙소사.
    트리니티 : 왜?
    네오 : 남자인 줄 알았거든.
    트리니티 : 다들 그래.
    네오 :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어떻게 한 거야?
    트리니티 : 중요한 건, 넌 지금 위험하다는 거야. 경고하려고 불렀어.
    네오 : 무슨 경고?
    트리니티 : 그들이 널 보고 있어.
    네오 :누가?
    트리니티 : (네오의 귀 가까이로 바싹 다가오며 속삭인다.) 그냥 듣기만 해.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알아. 네가 뭘 했으며 왜 잠을 못 자고 왜 혼자 살며 밤이면 밤마다 왜 컴퓨터 앞에 앉는지도. 넌 그를 찾고 있어. 난 알아,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그가 날 찾았을 때 그는 내가 찾아낸 건 자기가 아니라 해답이랬어. 우릴 움직이는 건 질문이지. 그게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야. 넌 그 질문이 뭔지 알아. 
    네오 : 매트릭스란 뭐지?
    트리니티 : 정답은 어딘가에 있어. 그것은 널 찾고 있고 곧 찾을 거야. 네가 정말 원한다면.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감으로써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것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아직 네오는 혼란스럽다.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어쩌면 ‘성스러운 세계’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이 믿음은 아직 너무 많은 의혹들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네오는 지금 믿음이라기보다는 ‘유혹’이나 ‘의혹’에 가까운 감정으로 트리니티를 바라본다. 엘리아데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학자들이 말하는 신성은 객관적인 세계 바깥에서 외따로 고립되어 있는 신비가 아니다. 신성은 객관적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객관적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토마스 앤더슨이 ‘네오’가 되는 것은 단지 ‘세상 바깥’의 이질적인 세계가 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쭉 찾아왔던 것, 그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 하고 있었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제야 비로소 ‘계시(revelation)’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그 모든 알 수 없는 신비와 공포와 경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뜻하는 말일 뿐이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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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엔 <매트릭스>!!!. 또 어떤 사유의 '문지방'을 넘으실런지 궁금^^*

viewfinder 2009-12-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로받을 수 없는 두려움. 그렇죠. 그것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있지요. 천국을 기억하는 타락한 신이 인간이라니. 요새는 천국도 잘 기억이 안날 지경입니다, 쿨럭~^^

둥이 2009-12-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저를 매트릭스의 세계로 초대하신 건가여?^^
그럼 저두 같이 빠져 볼께여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마지막 회

 

13.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2)

   
 

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쪽. 

 
   

  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고한다. “행동 교정 훈련을 받던 요원들에게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우울증, 분노, 충동적 행동……. 심각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났죠. 극심한 두통, 광(光) 과민증 등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으로 드러난다. 

   감옥이 인간을 완전히 길들일 수 없듯이, 학교가 학생을 철저히 통제할 수 없듯이, CIA는 인간을 완벽한 인조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굴들이 보여…….  내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속죄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한 짓을, 내 삶을…….”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 스스로의 삶 전체를 속죄하고 싶어 하는 제이슨. 이렇게 방황하고, 반성하고, 분열되고, 좌절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결코 포함되지 않았던 예측불허의 이상행동이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끈질긴 두뇌게임 끝에 마침내 트레드스톤의 창조주와 대면하게 된 제이슨 본. 그는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그토록 무서운 인간 병기로 제조했는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이 모든 우여곡절의 기원은 바로 제이슨 본, ‘바로 너’라고 외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회피한다. “마리를 죽인 건 너야. 그녀의 차에 네가 탄 그 순간, 네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그 순간 그녀는 죽은 거야.” 

   제이슨은 항변한다. “우릴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었다고.” 제이슨 본에게 트레드스톤의 실패를 전가하고 싶었던 애보트는 말한다.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 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제이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애보트, 제이슨에게 살인누명까지 씌우며 수없는 살인 명령을 일삼았던 애보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난 애국자야. 난 국가를 위해 봉사했어. 난 죄책감 없어.” 그들은 자신에겐 절대로 ‘죄’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의 ‘대의명분’은 바로 그들의 대단한 ‘애국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이슨이나 제이슨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 모든 끔찍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명목이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 데이비드 웹이 비밀 요원 제이슨 본이 된 것도 사실 애국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이라는 위대한 역할 모델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최고의 엘리트이자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애국심의 함정’을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진상을 알지 못했던 제이슨 본에게 한때 애국심은 정말 ‘좋은 것, 멋진 것, 폼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트레드스톤처럼 국가의 미명 아래 모든 폭력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사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도, ‘국가의 안보’를, ‘국가의 위기’를, ‘국가의 미래’를 전면에 내세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제이슨이 아직 ‘데이비드 웹’이었던 시절, 그가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회상 신으로 등장한다. 애보트와 대화하던 중 이제야 제이슨 본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때 그는 무려 72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상태였으며 잔혹한 물고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고문인지 훈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혹독한 인성교정프로그램 속에서 제이슨이 내린 결정을 ‘바로 네가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애보트 : 데이비드 웹. 설명은 다 듣고 온 건가?
    제이슨 : 네.
    애보트 :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네 임무는 미국 국민을 구하는 거야.
    제이슨 : 압니다.
    애보트 : 넌 이제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
    제이슨 : 뭐, 뭐든 따르겠습니다.
    애보트 : 넌 오랫동안 잠을 못 잤다. 이제 결심이 섰나? 더 끌 순 없어. 결심해야 돼.
    제이슨 : (자신의 눈앞에 ‘암살대상’으로 나타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죠?
    애보트 : 같은 걸 되묻지 마.
    제이슨 : 그가 뭘 잘못했나요?
    애보트 : 그건 전혀 안 중요해! 넌 네 발로 왔어! 자원했다고! 미 국민을 구하기 위해 뭐든지 한다고 했지? 거짓말을 한 거였나? 아니면 힘드니까 마음이 변한 거야? 결심해! 데이비드 웹은 잊어! 오직 네 임무만 생각하라고! 넌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이제부터 넌 제이슨 본이야! 이 프로그램의 일원!
 (그 순간, 탕! 총소리가 들리며 이제는 ‘제이슨 본’이 된 데이비드 웹의 첫번째 암살이 끝난다. 그는 이렇게 제이슨 본으로 ‘개조’된 것이다.) 


   꿈 많은 젊은이 데이비드 웹은 천신만고 끝에 제이슨 본이 되었지만 이제 그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인물이 바로 제이슨 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애보트에게 외친다. “난 이제 제이슨 본이 아냐.”  

   
 

아마도 애국자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옳든 그르든 내 나라.”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이 옳다거나 진정한 도덕은 조국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단언할 필요성을 더 자주 느낄 것이다. 진실의지는 그렇게 강력하다. (……) 우리는 우리 선택에 따라 진실을 판단하지, 진실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가 가르쳐 주었듯이,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192쪽.

 
   


   데이비드 웹은 ‘국가에 충성’하는 멋진 임무를 맡기 위해 요원이 되었고, 트레드스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의 명목으로 제이슨 본을 죽이려 한다. 도대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의 명분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기이한 자기정당화들. 푸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의 습성을 ‘진실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치밀한 반성과 시행착오 끝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신념을 고르기보다는 수많은 우연과 감정적 변수와 비합리적 취향에 의해 삶의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거기에 ‘진실’의 갑옷을 입히고 만족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찾아 떠난 끝에 간신히 부여잡은 소중한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것, 혹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된 주변 환경이 만들어낸 습관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 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 달려왔으면서도 궁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옳든 그르든 내 나라’라며, ‘내가 한 일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트레드스톤이 애국의 미명 하에 모든 부정부패를 정당화했다면, 젊은 시절 데이비드 웹은 ‘애국’이라는 환상의 그물이 얼마나 지독한 환멸을 품고 있는지 모른 채 순진하게도 그 그물에 포획되어버린 셈이다. 

   제이슨의 결백을 믿는 CIA 요원 파멜라 랜디는 그의 진짜 이름과 생일을 가르쳐준다. “데이비드 웹. 자네 진짜 이름이야. 자넨 미조리 주 닉사에서 1971년 4월 15일에 출생했네.” 하지만 이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게 된 제이슨은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이나 기원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내가 만들어가야 할 삶인 것이다. 이 모든 물고 물리는 살인의 게임을 끝내기 위해 제이슨 본은 트레드스톤과 블랙 브라이어에 관련된 일급 기밀 서류를 빼내어 파멜라 랜디에게 전달하고 이 사건을 스스로 매듭짓는다.
    “대통령은 각료 회의를 열고 블랙브라이어란 암살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미국 시민마저 표적이 됐던 이 프로그램을 승인한 국장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실험소장 알버트 허슈와 총괄 책임자 보슨 부국장 등 두 명의 간부 요원은 체포됐습니다. 한편 블랙브라이어의 음모를 폭로한 데이비드 웹, 일명 제이슨 본은 총을 맞고 10층 건물에서 강으로 추락했으나 3일간의 수색 끝에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푸코와 나는 그의 작은 텔레비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 관한 르포를 보고 있었다. 두 진영 가운데 한 진영에 속한(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투사 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더니 이렇게 공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의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만들어졌고, 그에 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바로 저거야”, 푸코는 소리쳤다. 기껏해야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로서나 쓸모 있었을 장광설을 듣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미학적 선호에 대해서 만큼이나 거대한 이상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는 사회를 잠시 상상해보자.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쪽.

 
   

   푸코는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변수들을 수학공식처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취향과 왜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필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하필 왜 이런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푸코는 당신들이 어떻게,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지 콕 집어 가르쳐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푸코는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우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많은 제약과 차별과 억압으로 찌들어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낀다면, 그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드릴 수는 있다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인체의 모세혈관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치밀한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준 푸코. 그 지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지도를 소중하게 몸에 지닌 채 우리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나는 여러분에게 자, 여러분이 수행해야 할 투쟁은 이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토대 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반면 나는 여러분에게 권력의 현재 담론을 기술하려 합니다. 마치 여러분 앞에 전략지도를 펼쳐놓듯이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쟁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전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지도에서 저항 지점들은 어디인지, 가능한 통로들은 또 어디인지 보게 될 것입니다.
 푸코는 자기 청중과 마치 군주와 그 조언자 같은 관계를 맺었다. 군주가 말했다. “나는 인민의 행복을 원한다.” 학자-조언자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당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수단은 바로 이렇습니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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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제 마직막이군여^^
그동안 하루하루 많은걸 생각하게 해준 우리의 본,아니 푸코,아니 여울님,아니 데이비드 웹?
아무튼 또다른 작품으로 또 저에게 양질의 영양분 쫘악~~아셨져^^

맨손체조 2009-12-0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듀~, 본!! 습관은 진실이다??? 오늘 오후의 화두!

훈남 2009-12-0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없이 본 액션물 이였는데ㅋㅋ

love hurts 2009-12-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코의 멋진 강의를 '쌩'으로 들었을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하이킥 2009-12-0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