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⑨

 

9. “미안해,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그게 너의 비범함이야.” (1)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는 이미 피와 살로 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소리나 빛이나 광선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나니. 그대는 죽을 수 없다.  


 - <티벳 사자의 서> 중에서

 
   

   살아남은 요원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 ‘시온’을 지키기 위해 모피어스를 포기하기로 한다. 시온은 모피어스나 트리니티나 ‘그’보다 중요하니까.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판단하며 탱크를 말리지 못하는 트리니티. 탱크는 모피어스를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코드를 뽑으려 한다. “당신은 리더 그 이상이었죠. 우리의 아버지였어요. 잊지 않을게요.” 자신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예언.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괴로워하던 네오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신 없던 네오가 처음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잠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로 직접 들어가서 모피어스를 구해오겠다고 말한다. 놀란 트리니티는 네오를 설득한다. “모피어스는 널 위해서 잡힌 거야. 절대로 가면 안 돼.”
 

   네오는 모피어스가 자신을 ‘잘못’ 알고 그렇게 한 거라고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가 아니라고. 미안해,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모피어스를 구해야 해. 네오는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아니라 모피어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말을 조용히 삼킨다. 모피어스를 철통같이 지키는 스미스 일당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이건 자살 행위라며 네오를 만류하는 탱크. 그런데 네오의 눈빛에서 전에 없던 단단한 광채가 서리기 시작한다.
   “미친 짓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어. 이제야 모피어스가 왜 목숨까지 바치면서 믿었는지 알겠어. 그래서 가야만 해.” 그는 모피어스가 왜 그토록 ‘그’를 찾고 싶어 했는지, 모피어스가 왜 일생을 걸고 매트릭스에 그토록 힘겹게 저항해왔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얼굴이다. 왜 가야만 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그는 말한다. “나도 이제 믿으니까. 그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각기 조금씩 엇갈리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그’일 거라 믿고 있고, 트리니티는 모피어스의 리더십과 오라클의 예언을 믿고 있으며, 네오는 자신이 ‘그’가 아니지만 모피어스를 꼭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은 아직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 세 사람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믿음’의 영역이다. 세 사람의 믿음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어디론가 이끌리는, 바로 그런 불가해한 믿음. 이것을 엘리아데는 아직 문명인에게 실낱처럼 남아 있는 ‘종교성’이라고 설명했다. 

   
 

무의식의 활동에 대한 매혹의 느낌이나 신화와 상징에 대한 관심, 이방과 원시, 고대를 향한 열광,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상반된 감정을 동반하는 ‘타자’와의 만남,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성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엘리아데, 최건원 · 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0쪽.  

 
   

   엘리아데가 말하는 종교성은 ‘신앙’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무신론자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그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종교성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일 수도 있고, 지금 여기의 이 삶 너머에 뭔가 커다랗고 신비한 무언가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느낌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의 힘이 깃든 것이라고 느끼는 숭고함의 감정일 수도 있다. 그릴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남모르게 그리워하는 그 무엇을 향한 마음의 화살표. 그것이 엘리아데가 말한 넓은 의미의 ‘종교성’이 아닐까.  


  자신의 논리와 네오의 믿음이 일치하지 않지만, 이제 트리니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네오를 믿기 시작한다. “너와 같이 갈 거야. 정말 그를 살리고 싶다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걸.” 이제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그들은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믿음의 불빛으로 움직이기에. 아무도 이토록 위험한 작전을 시도한 적이 없다며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네오는 말한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공할 거라고.

   이상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평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도 비범해 보인다.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이 세 사람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조금씩 어긋나며 삐걱거리던 믿음이 완전히 일체가 될 때, 그 순간 네오는 진정한 ‘그’로 거듭날 것이다. 

   
 

 정신분석처럼 특별히 근대적인 기술도 역시 입사식의 패턴을 보존하고 있다. 환자는 깊이 그 자신에게로 침잠하고, 자기의 과거의 삶을 되살리고, 자기의 외상적 경험을 또다시 직면하도록 요구 받는다. 형식면에서 보면 이 위험한 조작은 지옥에로, 마귀의 영역에로의 입사적 하강 및 괴물들과의 투쟁을 닮고 있다. 입사자가 그의 시련에서 승리를 거두고 다시 올라오리라고-간단히 말해서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 정신적 가치들을 향하여 열려 있는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리라고-기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는 정신적 건강과 통일성을, 그리고 따라서 문화적 가치의 세계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유령과 괴물들에게 쫓기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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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1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벌써 100회네요. 축하축하~
매트릭스,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인데 전 흥미를 많이 못 느꼈는데요. 여울님의 글을 읽으면 좀 흥미가 당길까나~~

맨손체조 2009-12-1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난 지 100일 이네요^^* 받으세요, 축하의 꽃(다발)?---(@

dovmfwntm 2009-12-1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안해, 난 그냥 평범해. 그렇게 말할 때 네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둥이 2009-12-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일 추카 드려여~~

잉크후 2009-12-1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시리즈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는 정말 최고이다.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이 글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최고!!

love hurts 2009-12-19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 글은 '본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매트릭스'에 대한 건데 ^^

잉크후 2009-12-24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매트릭스도 최고!!ㅋㅋ

투명인간 2010-03-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축하드려욤^^*

행디 2010-04-0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라는 고정관념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운데 작가님 글은 내용이 술술 읽혀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⑧

 

8. 오라클의 시험 : 미안하지만, 너는 ‘그’가 아니야 (2)

   
 

어둠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빛이다.  


 - 엘리아데

 
   

  

   오라클은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네오에게 결국 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네 자신이라고, 너의 신화를 만드는 것 또한 너의 힘이라고 암시한 것이 아닐까. 오라클이나 트리니티나 모피어스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네 스스로가 ‘그’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네오 스스로가 ‘그’에게 마치 사랑에 빠지듯 완전히 몰입할 때, 그는 운명의 문턱을 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다/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에 네오는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과연 ‘그’인지 아닌지 헷갈려 미칠 지경인 네오에게 또 다른 엄청난 미션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너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모피어스와 네오 일행이 매트릭스에 잠입하여 활동을 개시하려는 동안, 사이퍼는 그들이 매트릭스로부터 현실로 빠져나오는 출구를 봉쇄해버린다. 드디어 사이퍼는 모피어스를 스미스일당에게 넘기려 하는 것이다. 그는 모피어스를 처치하기 위해 다른 요원들까지 살해하고 트리니티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협박한다. 이제 너도, 네오도, 모피어스도 끝이라고. 더 이상 나는 매트리스 바깥, 이 날것의 현실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는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가상이 훨씬 안전하고 매혹적인 현실 같다고. 이제 네오가 ‘그’라는 환상 따위는 집어 치우라고.


   사이퍼: 난 오래 전부터 널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네 꿈을 꾸곤 했지. (매트릭스 바깥에 분리되어 있는 트리니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넌 아름다운 여자야.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트리니티: 동료들을 네가 죽였구나.
    사이퍼: 하하, 그래. 난 지쳤어. 전쟁도 싸우는 것도 지겨워. 여기도 지긋지긋하고 추운 것도 지겹고 맛없는 죽만 먹어대는 식사도 지겨워.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피어스 놈이 지겨워. (이번에는 모피어스의 몸 위로 올라타며 잠든 그의 멱살을 잡고) 놀랬지, 이놈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네 놈이 뒈지는 걸 봐야 하는데. 네 놈이 죽기 직전에 가서 내가 배신했다는 걸 보여 주는 건데.
    트리니티: 모피어스를 노린 거였군.
    사이퍼: 맞았어. 놈은 우릴 속였어. 속였다고! 네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빨간 약은 안 먹었잖아!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매트릭스를 선택하겠어.
    트리니티: 매트릭스는 가짜야.
    사이퍼: 그렇지 않아. 난 매트릭스가 이 세상보다 더 진짜 같다고 생각해. 여기서 플러그만 뽑으면 에이팍은 죽게 되지. (에이팍의 몸과 매트릭스가 연결된 코드를 뽑아버리고 에이팍은 트리니티와 네오의 눈앞에서 즉사한다. 사이퍼는 스위치의 코드도 뽑아버려 그녀 또한 즉사한다. 그는 이제 네오의 코드를 뽑아버리려 한다.) 모피어스의 말이 맞다면 난 플러그를 뽑을 수 없어. 만약 네오가 '그'라면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맞지? 죽으면 '그'가 아닌 거지. 넌 모피어스의 말을 정말 믿어? ‘네, 아니오’로만 대답해. 그의 눈을 쳐다봐. 커다랗고 아름다운 그 눈을 말이야. 그리고 대답해 봐.
    트리니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그러나 차분하게 대답한다.) 난 네오를 믿어.
    사이퍼: 난 안 믿어! 믿든 안 믿든 네오 너는 바베큐가 될 거다! 

   사이퍼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신이 나서 네오를 죽이려 하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탱크가 일어나 사이퍼를 처치한다. 그렇게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와 탱크만이 살아남는다. 한편 매트릭스의 수문장 스미스는 모피어스를 납치하여 고문하는 중이다. 그는 모피어스로부터 시온의 메인 컴퓨터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한다. ‘시온’을 파괴하여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모든 반란세력들을 일시에 제거해버리려는 속셈이다. 스미스는 매트릭스가 구현해낸 안락한 미래를 예찬하며 이 아름다운 미래는 ‘너희 원시 종족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진화된 존재들(인공지능컴퓨터)’의 것이라고 말한다. 

   스미스: 수십억 인간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지. 태평하게 말이야. 첫번째 매트릭스는 원래 완벽한 인간 세상이었지. 고통이 없는 세상이었어. 그런데 비극이 됐지. 인간들에게 매트릭스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인간들은 수없이 죽어나갔어. 어떤 이들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내 생각에는, 인간들은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하는 것 같아. 너희 원시적인 두뇌들은 자꾸 깨어나려고 했지. 그래서 매트릭스가 다시 태어나게 된 거야. 너희 문명의 절정이지. 사실 너희 문명은 아냐. 우리가 맡은 이후로는 우리의 문명이 됐으니까.  진화야, 모피어스! 진화라고! 공룡처럼 말이야. 창밖을 봐. 미래는 우리 세상이야 미래는 우리 거라고.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고문하며 시온의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하는 동안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에서 네오와 트리니티는 탱크와 함께 모피어스의 안부를 걱정한다. 매트릭스 내부의 가상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자신의 두뇌를 스미스 일당들에게 해킹당하기 일보 직전이고, 매트릭스 외부의 진짜 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견디고 있다. 모피어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간신히 고문을 버티고 있지만, 탱크와 트리니티는 이제 ‘시온’의 출구가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알게 된다. 탱크는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요원들이 컴퓨터에 들어가면 시온은 끝장이야. 그렇게 할 순 없지. 시온은 너나 나나 모피어스보다 중요해.” 절박해진 네오는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묻는다. 탱크는 절망적인 얼굴로 체념하듯 말한다. “플러그를 뽑으면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매트릭스와 모피어스를 연결하고 있는 플러그를 뽑으면 모피어스는 죽게 된다. 네오는 비로소 오라클의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피어스와 나의 목숨,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인간은 누구나 고립되고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분리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의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강한 그 ‘무엇’으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속에 위치시킬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으며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옛날의 어떤 ‘상태’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도 역사도 존재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세계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 수많은 신앙은 실낙원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상반된 요소들이 대립 없이 공존하고, 다양성이 신비로운 통일성의 여러 가지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 그런 천국의 모순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 엘리아데, 최건원 · 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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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ffld 2009-12-17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둠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빛이다!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⑦

 

7. 오라클의 시험 : 미안하지만, 너는 ‘그’가 아니야 (1)

   
 

 신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신들 앞에서는
 영원의 물결로 변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떠밀려 올라가고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하고 만다네  

 - 괴테

 
   

    엘리아데는 도시인들 대부분의 삶이 오직 경제적 타깃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꼬집어 말한다. 마치 ‘진화된 인류’는 비과학적인 신화 따위엔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듯 이성 지상주의적인 교육이 판을 쳐왔다. 그러나 신화의 힘을 믿는 종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문명인의 교육이야말로 ‘우주적 시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우리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힘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매트릭스의 회로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창조해야 할 새로운 신화를 방해하는 모든 집착과 강요가 우리 안의 매트릭스를 오늘도 열심히 가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세속적 존재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은 그 자신과 그의 사회에 대한 책임 이외에는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 근대인의 커다란 관심사는 지구의 경제적 자원을 어리석게 고갈시키는 짓을 피하는 데 쏠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적으로 원시인은 언제나 그 자신은 우주적 맥락 속에 던진다. 그의 개인적 경험은 진정성도, 깊이도 결여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근대인의 눈에는 거짓되고 유치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83쪽. 

 
   



   사이퍼 : 자네 생각을 알아.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난 항상 그 생각뿐이지. 빨간 약이 아니라 파란 약을 먹을걸. 너도 그렇지?
    네오 : (살짝 미소 짓지만 이제 더 이상 파란 약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사이퍼 : 얼마나 부담스러워? 세상을 구해야 한다니! 충고 한마디 하지. 매트릭스의 요원을 보면 나처럼 해. 죽어라고 도망치라고. 

   지금 여기 보이는 삶 너머로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사이퍼. 그는 세속적인 가치 이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되어버렸기에, 지금까지 그들 모두를 지켜온 믿음직한 수장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팔아넘긴다. 저항운동의 본거지인 ‘시온’의 메인 프레임 접근 코드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사이퍼의 눈에는 네오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그 거대한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 할 불쌍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낯설고 불확실하지만 이제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진심 어린 눈빛을 믿기로 한 눈치다. 아직 ‘내가 바로 그다’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사이퍼의 유혹만큼은 달갑지 않다. ‘당신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라는 듯 안타깝게 빛나는 네오의 눈빛에는 이제 지금-여기 너머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이퍼가 잔인한 배반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네오는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 내가 정말 ‘그’라는 것을 확인할 준비. ‘오라클의 계시’와 ‘네오의 존재’, 그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출 준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네오를 오라클에게로 데려간다. 여신의 치렁치렁한 드레스자락을 휘날리며 머리 뒤로 광배를 드리우고 있을 것만 같은 ‘예언자 오라클’의 모습을 상상했던 관객들은 오라클의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에 놀란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푸근한 아낙네 같은 오라클의 모습. 오라클의 카리스마는 그래서 더더욱 따스한 빛을 발한다.  


   오라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네오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예상과는 많이 다르지? (오븐에서 익어가고 있는 쿠키를 바라보며) 거의 다됐어. 냄새가 참 좋지?
    네오: (얼떨떨한 표정으로) 네.
    오라클: (……) 넌 생각보다 귀엽구나. 그녀가 좋아할 만해.
    네오: 누가요?
    오라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다지 똑똑하진 않구나. 왜 나한테 왔는지는 알지?
 어떻게 생각해? 너 자신이 ‘그’라고 생각해?
    네오: 솔직히 모르겠어요.
    오라클: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지. ‘그’라는 존재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아무도 알 수 없고 자신만이 알아. 온몸으로 아는 거지.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입을 벌려봐, 네오. 좋아. 
 ‘흥미롭군’이라고 말해야겠지만, 하지만…….
   네오: 하지만, 뭔가요?
    오라클: 자넨 이미 알고 있어.
    네오: (더없이 실망한 눈빛으로) 전 ‘그’가 아니군요.
    오라클: 미안하다. 넌 재능이 있지만 뭔가를 기다리고 있어.
 (……)
    네오: (쓸쓸히 웃으며) 모피어스한테 거의 설득됐었거든요.
    오라클: 불쌍한 모피어스. 그가 없으면 우린 안 돼.
    네오: ‘그가 없으면’이라뇨?
    오라클: 정말 알고 싶나? 모피어스는 네가 ‘그’라고 믿어. 너도 나도 아무도 그를 설득할 순 없어. 널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그는 눈이 멀었어. 넌 선택을 해야 돼. 모피어스의 목숨과 네 목숨 중에서 말이야.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그건 네 손에 달렸어. 


   내가 ‘그’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피어스는 내가 ‘그’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그의 기대를 저버리면 어떻게 될까. 난 이제 매트릭스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내가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여기 머물러야 할 이유가 뭐지? 매트릭스의 편안한 세계에 대한 미련, 그리고 내가 정말 이 엄청난 미션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 오라클은 네오가 아직 버리지 못한 이 미련과 공포를 진정으로 떨쳐내게 하기 위하여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라클은 그의 마음속에서 ‘그’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을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오라클은 ‘너는 그가 아니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네가 바로 그야’라고 확실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오라클은 단지 너를 만드는 것은 너 자신임을 일깨운다. 내가 ‘그’임을 믿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아찔한 것,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엄청난 일임을 암시할 뿐이다. 답을 저 멀리 바깥에서 구하지 마. 언제나 그렇듯 답은 네 안에 있어. 다만 그 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가, 그게 관건이지. 네 마음을 찬찬히 만져보렴. 너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은밀한 해답의 질감이 느껴지는가. 

   
 

폴 리쾨르에 따르면 실존의 두 기둥이란, ‘쾌락’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생명의 기둥’과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신의 기둥’이다. 리쾨르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인생이란 이 두 기둥이 하나로 합쳐서 서로 밑거름이 되어주는 그런 인생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립되는 이 두 요소를 파악해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리쾨르가 그러한 필연적인 통합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믿은 인간의 기능은 바로 ‘느낄 수 있는 능력feeling’이었다. 신화는 이 느낌들의 기록이다. 신화는 자신들의 실존적 모순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쳤던 인간적 시도의 기록이며, 그 해결의 살아 있는 도구였다.  


- 비얼레인, 배경화 역, <살아 있는 신화>, 세종서적,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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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1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네오는 처음부터 '그'가 아니라 '그'로 되어가는 건가여?
아님 오라클이 네오를 '그'에게로 이끌려는 마지막 시험?
왠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듯^^

오늘은 일빠^^

맨손체조 2009-12-1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삶의 매트릭스가 더욱 또렷해지는 연말, 연말, 연말 파티! 나도 '우주적 시간'을 느끼며 '생명의 기둥'과 '정신의 기둥'이 비빔밥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ㅠㅠ

니모 2009-12-1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느낄 수 있는 능력! 지금 네오에게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냄새가 그 느낌의 향기군요^^

qmffnqpfl 2009-12-1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제 벌써 100회를 향해 달려가는 군요~!^^

gPdud 2009-12-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벌써 100회네요. 축하합니다~ 늘 재미와 감동, 사색할 거리를 주는 씨네필입니다. 홧팅!!!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⑥

 

6. 내가 정말 ‘그’일까? (2)

   
 

 오늘날이라고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신화의 그늘 속에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찬란한 빛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탓에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 막스 뮐러

 
   

    네오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이 ‘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가상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모피어스가 제공하는 훈련 공간을 ‘그저 가상일 뿐이야’라고 느낀다. 모피어스는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았던 매트릭스가 2199년의 인류에게 유일한 현실이었듯이, 지금 네오가 훈련하고 있는 가상공간이야말로 네오가 일굴 새로운 ‘현실’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평생 매트릭스로 훈육된 시공간의 법칙을 스스로 깨뜨린다.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진짜 육체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가상의 매트릭스 안에 있을 때조차도 진정한 육체를, 진정한 영혼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감정의 짐짝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네오는 조금씩 매트릭스의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모피어스에 대한 의심도, 트리니티에 대한 궁금증도, 오라클의 예언에 대한 불안도, 그는 조금씩 내려놓는다. 내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도,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지막 미련까지도 내려놓는 순간. 그는 드디어 철벽같은 모피어스의 방어를 뚫고 공격에 성공한다. 이 회심의 일격은 모피어스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피어스와 네오 사이에 놓인 의심과 불안의 장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소통’의 첫걸음이었다. 


   
 

나와 타자 사이에 혀를 날름거리는 심연을 건너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가벼움을 확보해야만 한다. (……)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방법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친숙한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선입견, 무의식적인 행동을 그 뿌리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장자의 권고는 마치 새에게 날개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았을 때 과거와의 이런 단절이 없다면 우리는 친숙한 세계에 영원히 포획되어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장자는 마음을 비우려고 하였고, 공자는 사사라운 뜻, 고착됨, 사적인 자의식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불교도 자아의 동일성을 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 강신주 외, <21세기의 동양철학>, 을유문화사, 2005, 366~368쪽.

 
   

 


   네오와 모피어스의 멋진 한판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네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오른다. 네오를 질투하면서도 의심하는 사이퍼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네오에 대해 누구보다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트리니티의 눈빛은 점점 깊어진다. 잠든 네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극진히 보살피는 트리니티를 바라보는 사이퍼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살기가 감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그러더니. 그가 특별하긴 한가 보군? 정말 네오를 ‘그’라고 믿는다면 왜 오라클한테 안 데려가?” 트리니티는 동요하지 않고 대답한다. “준비가 되면 가겠지.”
   언제쯤이면 예언자 오라클에게 네오가 ‘그’임을 확인받으러 갈 수 있을까. 아직 모피어스는 침착하게 네오의 몸과 마음을 수련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오가 유일한 현실이라 믿고 살았던 1999년의 지구. 그들은 변함없이 ‘지금은 1999년 O월 O일’이라는 매트릭스의 달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네오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여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듯 애잔한 눈길로,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본다.

   모피어스 :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그 시스템이 우리의 적이다. 둘러보면 뭐가 보이나?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들도 시스템의 일부니까 우리의 적이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들은 너무나도 시스템에 잘 길들여져서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하지. (……) 누구나 요원일 수 있어. 우린 그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아남았지. 하지만 그들은 문지기야. 그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지.
    네오 : 누군가가?
    모피어스: 거짓말은 안 하겠다. 그들과 싸웠던 자들 중에 아직 살아남은 자가 없어. 하지만 자넨 성공할 거야.
    네오 : 왜죠?  
    모피어스 : 요원은 콘크리트 벽을 부술 수도 있고 총알을 퍼부어대도 우습게 피하지만 그들의 힘과 스피드는 매트릭스 안에서 제한되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능가할 순 없어.
    네오: 그럼 나도 총알을 피할 수 있나요?  
    모피어스 : 아니. 네가 준비가 돼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어.


   단지 영화 속 매트릭스 안의 인간들만이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의 삶만을 절대화하는 모든 힘들, 과학과 논리의 힘만을 신봉하는 지식의 흐름들, 달력으로 표시될 수 있는 역사적 시간만을 신뢰하는 이성의 근시안. 통장의 입출금내역과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도시인의 일상적 시스템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다른 삶의 기회’가 오면 뒤로 흠칫 물러선다. 지금까지 이 삶에 적응하기도 바빴는데 또 다른 삶의 모험에 뛰어들기가 두려운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친 적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미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미몽 자체가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 꿈에서 깨어난다면 너무 괴로울 테니, 아예 깨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런 상태라면 사이퍼의 말처럼 ‘모르는 게 약’이고, 무지야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네오에 대한 질투로 불타는 사이퍼는 ‘성(聖)’의 세계로 떠나 고통받느니 차라리 ‘속(俗)’의 세계에서 영원히 안주하고자 한다. 성공하고 싶다고, 영화배우처럼 유명해지고 싶다고, 돈을 왕창 벌고 싶다고. 그러니 매트릭스에 다시 ‘꽂아만’ 달라고, 그는 스미스 요원에게 청탁을 한다. 매트릭스라는 미몽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비종교적’ 인간의 대다수는, 비록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자기가 비종교적이라고 느끼며, 그렇게 주장하는 근대인들도 여전히 수많은 은폐된 신화와 변질된 제의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 새해를 맞이할 때나 새 집에 살게 될 때에 수반되는 축제는 비록 속화되기는 했을망정 여전히 갱신의 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아기의 탄생, 새 지위의 획득, 사회적 진출 기타 등등에 따르는 잔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 (……) ‘꿈의 공장’이라고 하는 영화는 무수한 신화적 모티프들을 채용해서 써먹는다. 영웅과 괴물의 싸움, 입사의 투쟁과 시련, 모범적인 인물들과 이미지들(처녀, 영웅, 낙원의 풍경, 지옥 기타 등등)이 다 그러하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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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1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가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 역시 일상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인가?

둥이 2009-12-1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려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가 되어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면 조금 의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나는 한마리 이름없는 새~~,새가 되어 살고싶어라~~~
 

 


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⑤

 

5. 내가 정말 ‘그’일까? (1)

   
 

무의미는 삶의 충만함을 저해하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것이다.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것들을-어쩌면 모든 것을-견디게 한다. 과학은 결코 신화를 대신하지 못하며 그 어떤 과학으로도 신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 칼 구스타프 융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 인생의 곳곳에서 자기만의 ‘사적 부활’을 꿈꾼다. 일 년의 끝과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그저 TV를 통해서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는 느낌.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저마다 스스로와의 소중한 약속을 시작하는 시간. 왠지 술 담배도 끊고 아침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환희. 우리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렇게 짜릿한 영혼의 ‘부활’을 꿈꾼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느끼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생의 시작처럼. 네오는 지금 마치 2199년에 재림한 사이버-예수처럼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탱크 : 안녕, 잘 잤어?
   네오 : (매트릭스와 연결된 몸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목뒤를 보며) 넌 구멍이 없…….
    탱크 : 그래, 난 구멍이 없어. 나와 도저 형은 진짜 세상에서 100% 구식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시온’의 자녀거든.
    네오 : 시온?  
    탱크 :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파티가 열릴 곳이지.
    네오 : 시온은 도시야?
    탱크 :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지.
    네오 : 어디 있는데? 
    탱크 :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도 따뜻한 지구의 중심부에 있어. 우리가 오래 살면 갈 수도 있겠지. 젠장! 모피어스가 맞다면 네 능력을 정말 보고 싶어. 이런 얘길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네가 ‘그’라면, 정말 그렇다면……. 정말 신나는 거지!


   
 


가장 거룩한 자는 세계를 태아와 같이 창조한다. 태아가 배꼽 부위에서부터 성장해 가듯이, 신은 배꼽에서부터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며, 거기서부터 그것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지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은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요마(Yoma)는 “세계의 창조는 시온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40쪽.

 
   

   탱크가 느끼는 ‘시온’을 향한 감정은 세계의 중심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이 혹독한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파티를 열 장소, 시온. 그곳은 2199년 매트릭스와 싸우는 전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네오에게도 이제 매트릭스라는 강요된 고향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새로운 그리움의 거처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낯설고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네오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 매트릭스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연산’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도시라니!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그’일까.
   그러나 아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이르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그’임을 확인하기 위한 갖가지 미션을 준비한다. 첫번째 훈련. 그것은 ‘스파링 프로그램’이다. 각종 무술과 담력을 훈련하면서 동시에 시험하는 가상 프로그램 속에서 네오는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무공을 쌓아올리게 된다. 유도, 태권도, 취권, 쿵푸 등 각종 무술을 연마하며 네오는 어느새 모피어스에게 도전하게 된다. 

 

    네오 :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한 눈빛으로) 이제 쿵푸를 할 줄 알아요!
    모피어스 :보여줘 봐. 이건 스파링 프로그램이지.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현실과 비슷해. (네오의 현란한 액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아! 적응력, 순발력 모두 좋아.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냐. (정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동작으로, 자기만족에 흠뻑 취해 있는 네오를 가볍게 제압해버리며 살짝 미소 짓는다.) 이봐, 방금 내가 어떻게 이겼지?  
    네오 :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이 너무 빨라서요.  
    모피어스 :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네오 : (네오는 이곳이 가상의 스파링 프로그램 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다시 동작을 시작한다)
   모피어스 :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  
    네오 : (이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모피어스 :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시온’에서 기독교 신화를 떠올렸던 관객은 ‘모든 걸 버려, 마음을 열어!’라고 외치며 동양의 무술을 가르치는 모피어스를 보며 장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술을 ‘기술의 연마’로 생각했던 네오가 드디어 가상과 현실의 벽을 뚫고, 타자와 자신 사이에 놓인 소통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순간. 그는 장자가 말했던 ‘허심(虛心)’의 경지를 터득한 셈이다. 장자의 말처럼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친숙한 세계를 버리고 ‘트임’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채움을 위한 비움이 아니라, 트임을 위한 비움. 정보와 지식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워 네가 자유로이 드나들 존재의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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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1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연히 매트릭스3를 보았어여(케이블에서 해주더군여)
순간 전 여울님의 힘으로 매트릭스가 방송되는건 아닌지 혹 여울님이 '그'가 아닌지..^^
절묘한 타이밍이져? 여러번 본듯한데 또 다른 느낌이더군여 감사합니다^^

쿠쿠 2009-12-1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채움, 비움, 트임, 틈새. 이런 말들이 오늘따라 한국어의 완소 아이템처럼 느껴지네요 ^^

love hurts 2009-12-15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동적인 영화에는 거의 어김없이 멋진 멘토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바로 모피어스가 그랬죠. 네오가 갈팡질팡할 때마다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려주시는 모피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