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②

 

2. 그들의 독백 : 최고의 스승은 나 자신이다

   
 

 내쉬는 달랐다. 그가 어떤 예감을 갖기만 하면, 어떠한 인습적인 비판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에게는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건 정말 섬뜩한 일이었다. 배경 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정신력, 그런 맹목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을 나는 달리 본 적이 없다.   


 - 존 내쉬의 지인, 모저의 회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한 갓 스무 살의 존 내쉬(러셀 크로우)는 수업도 듣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왜 수업을 듣지 않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존 내쉬는 이렇게 대답한다. “강의는 사고를 둔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잠재적인 창의력을 파괴해.” 존 내쉬는 자신의 천재성에 육박하는 대화 상대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그가 동경하는 것은 당시 프린스턴을 전 세계 과학의 메카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인슈타인이나 괴델 정도의 강력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에 불과한 햇병아리 대학원생 내쉬에게 ‘아인슈타인과의 독대’ 같은 것은 불가능한 꿈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기 위해 존은 일부러 출근길에서 서성이며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을 길에서 멈춰 세우고, 그가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무 살 청년 존 내쉬의 바람은 위대한 우상과의 대화였지 평범한 사람들과의 수다가 아니었다.

   존 내쉬는 이후에 경제학에 대한 거의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내쉬 균형 이론’을 창조해낸 것처럼, 물리학에 대한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 프린스턴에 입학한 지 고작 두어 주 지났을 무렵, 자신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대가 아인슈타인의 ‘비공인 천재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존 내쉬는 아인슈타인을 불쑥 찾아간다. 존은 중력과 마찰과 복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한 시간 동안이나 존 내쉬는 아인슈타인을 앉혀 놓고 칠판에 방정식을 써가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아인슈타인이 빙긋 웃으며 한 말은 이렇다. “젊은이, 물리학을 좀더 공부해야겠어.” 

   존에게는 강력한 우상이 필요했지만 친밀한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다. 존 내쉬는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당시 내쉬를 알고 있던 수학자 캘러비는 이렇게 말한다. “내쉬는 지적 독립성을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지나치게 영향받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다른 학생들과는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었지만, 교수들과는 너무 가까워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겁났던 겁니다. 그는 지배당하길 원치 않았습니다. 지적으로 은혜를 입는다는 것조차 싫어했지요.” 존 내쉬는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위대한 천재가 되는 길에만 매진함으로써 그 누구의 친구도, 그 누구의 제자도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만날 또 한 명의 천재 칼 구스타프 융은 학교생활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우리는 저마다 학창시절 학교에 가기 싫거나 숙제나 시험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각종 ‘꾀병’을 생각해낸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의 칼 융은 학교를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심각한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었다. 학교로 가야 할 때가 되면 난데없이 기절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곤 해서 학교를 반년 이상이나 쉬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소년 융에게는 행복한 고립의 자유를 선물해주었다. 방랑, 독서, 수집, 놀이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만끽했던 어린 소년 융. 어떤 의사는 융이 간질병에 걸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융은 의사의 진단에 코웃음을 치며 달콤한 몽상에 빠져 지내고 있었던 어느 날. 소년 융은 손님과 아버지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손님이 아버지에게 아들의 안부를 묻자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의사들도 이제 우리 아이의 발작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우리 애가 만일 불치병에 걸렸다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라고. 이제 얼마 안 되는 재산조차 다 써버렸는데, 만일 융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고. 어린 융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자기만의 몽상에 만족하며 살아가려 했던 소년 융이 엄혹한 ‘현실’의 벽 앞에서 느낀 첫번째 충격이었다. 어린 융은 생각했다. 아, 그래, 우리 집이 그렇게 가난했다니, 아버지께 폐를 끼칠 수는 없어, 그렇다면 공부를 해서 자립할 수밖에 없구나. 걸핏하면 졸도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던 소년 융은 이제 자신의 발작 증세와 맨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한다.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발작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나는 진지한 아이가 되었다. (……) 라틴어 문법책을 가지고 와서 집중하여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10분 뒤에 나는 기절 발작을 일으켰다. 나는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으나 몇 분이 지나자 상태가 다시 좋아져 공부를 계속했다. “빌어먹을, 졸도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 그렇게 10분이 지나서 두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이것도 첫번째 발작과 마찬가지로 지나갔다. “자, 이제 정말로 너는 공부해야만 해!” 나는 꾹 참아냈다. 한 시간 후에 세번째 발작이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발작을 이겨냈다고 느낄 때까지 한 시간을 더 공부했다.
 갑자기 나는 이전 몇 달의 상태보다 나아진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발작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 몇 주 후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발작은 일어나지 않았다. (……) 그 수치스러운 사건 전체를 조정해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 나는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동시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에게 옳지 않은 일을 했으며 나 자신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 탓도 아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66-67쪽.

 
   

   공부도 싫고 학교에 가기도 싫었던 소년 융은 ‘발작을 해봐, 졸도를 해봐, 그럼 공부 따윈 안 해도 되잖아!’라는 명령을 내린 미지의 목소리가 바로 자기 자신의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스스로의 무의식이 바로 ‘가증스러운 탈영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무의식을 육체 밖으로 끌어내어 의식화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아직 정신질환의 각종 치료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융은 아직 소년이었고, 아직 정신과 의사가 되기 훨씬 전이었으며, 소년 융은 그 고통스러운 신경증의 경험으로부터 소중한 무언가를 배웠다는 사실이다. 신경증은 소년 융의 부끄러운 비밀이자 숨기고 싶은 패배였다. 그러나 융은 신경증 덕분에 자신이 ‘겉으로 보이는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성실성’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융은 무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선사하는 황홀감에 빠져들고 싶었다. 융 또한 존 내쉬처럼 마음을 나누는 지속적인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융은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 끊임없이 고독을 추구하도록 충동질하고, 인간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라고 부추기는, 세상 만물로부터 무언가 신비로운 우주의 메시지를 읽어내라고 충동질하는 ‘제2의 인격’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다. 이토록 결연한 고립, 이토록 달콤한 고독만이 세계와 주체의 투명한 만남을 가능케 했던 것일까. 그는 신경증과 발작을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함으로써 학교에 다니면서도 내면의 탐구를 계속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융은 부모의 걱정을 무마시키고 자신의 미래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무의식 속에 ‘비밀의 방’을 설계하고 시공하고 관리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또는 친구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럴 때 기억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생각은 무의식이 된 것이다. (……) 그러나 어떤 것이 우리의 의식에서 빠져나갔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마치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차가 증발해버린 것이 아니듯이. 이 차는 그냥 시야에서만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나중에 그 차를 다시 볼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잊었던 생각과 순간적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다.  


 - 칼 구스타프 융, 정영목 역, <사람과 상징>, 까치, 1995,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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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2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억력 보강 특별 훈련, 아침 저녁으로 맨손체조를.....

트레인스포팅 2009-09-23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년 융의 신경증 극복 체험! 왠지 섬뜩하지만 뭉클한 걸요. 자기를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룻밤 사이에도 훌쩍 커버리는 아이들...
 

 


영화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①

 

1. 고독은 천재의 학교다?

   
 

  위대한 사람은(……) 여느 사람보다 더 차갑고, 더 거칠고, 주저하는 일이 더 적고, 남들의 생각에 겁내지 않는다. 그는 존경과 체통을 따지는 미덕, 곧 ‘떼거리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결여하고 있다. 그는 앞장설 수 없으면 혼자 간다. (……) 그는 남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길든다는 것의 비속함을 안다. (……) 자신에게 말할 때가 아니면 가면을 쓴다. 그의 내면에는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 중에서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느라 ‘바깥세상’의 아우성이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외부의 사건보다 내면의 사건이 중요한 사람들, 오직 내면의 서사만으로 자서전 1,000페이지를 채우고도 모자라는 사람들, 지나치는 모든 것에서 무의식의 계시를 읽어내는 사람들. 칼 구스타프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압축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운동, 그 예측불허의 가변성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간의 존재는 ‘의식의 통제’만이 아니라 ‘발현되지 않은 무의식’을 얼마나 의식의 장으로 이끌어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러한 견해는 칼 구스타프 융의 시대에는 매우 도발적이고도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융은 자기 생에서 외적 사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무의식과의 충돌’이야말로 인생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삶은 ‘인물-사건-배경’으로 정리되는 외부적 사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행적을 정리한 ‘연보’가 아니라 무의식의 체험, 내면의 사건들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학의 천재 존 내쉬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기만의 방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혼자만의 실험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했고 이런 그를 부모는 끊임없이 사교적인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단짝 하나 없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지적 성취를 과시하여 부모의 질책을 피해가는 법을 배웠다. 또래들이 그를 따돌릴 때마다 ‘무관심’이라는 견고한 내면의 갑옷을 입어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으며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강력한 존재’가 되어 남들의 공격을 피해가는 법을 익혔다. 항상 오빠와 티격태격하며 자랐던 여동생 마사는 존 내쉬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오빠는 항상 남달랐어요. 부모님도 그걸 아셨죠. 총명하다는 것도 알았고요. 오빠는 뭐든 자기 식대로만 하려고 했어요. 어머니는 나더러 오빠를 위로해주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어요. 친구들과 놀 때도 같이 끼워주라고 하셨고요. 데이트까지 시켜주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러실 만했죠. 하지만 나는 괴짜 오빠를 누구한테 소개해준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 실비아 네이사, 신현용 외 역,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54쪽.

 
   

   존 내쉬는 공중에 손을 뻗었다가 오므리기만 하면 손바닥에서 수학이 꿈틀거릴 것만 같다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공기조차도 ‘수학적’으로 꿈틀거렸던 프린스턴의 파인홀은 세계 수학의 메카였다. 지나치는 모든 곳에서 수학적 계시를 읽어냈던 존 내쉬처럼 젊은 시절 칼 융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편지’로 해독했다. 칼 융에게 스스로의 신체는 우주가 보내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영혼의 안테나였다.
    내면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거의 항상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 존재들’이라는 점이었다. 존 내쉬처럼 천재적이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 칼 융처럼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지만 언제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그것은 ‘늘 오해받으면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것’이었고, 또래집단으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더욱 맹렬하게 내면의 동굴로 칩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나를 어리석고 교활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우선 나에게 혐의를 두었다. 어디선가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면 내가 충동질을 했다고 추측했다. (……)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에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 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 세상에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 대신 그는 자연과는 친밀하게 지냈다. 대지, 태양, 달 기후, 살아 있는 피조물, 그중에서도 특히 밤과 꿈, 그리고 ‘하느님’이 내 마음속에 직접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과 가까웠다. (……)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88~90쪽.

 
   

   칼 구스타프 융은 아직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1870년대에 태어나 누구보다도 의식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생생히 경험했다. 모두가 ‘의식’만이 주역인 삶을 추구할 때 그는 이미 홀로 ‘의식을 압도하는 무의식’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칼 융과 존 내쉬의 때 아닌 접속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세계를 뒤흔든 ‘천재’이기 때문만도, 풍부한 심리학적 요소들로 인생을 채우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으로 존 내쉬의 삶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기 위함도 아니다. 두 사람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바로 ‘무의식의 의식화’를 누구보다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무의식의 카오스를 의식의 전면으로 불러내어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험했고 그 결과는 양극단으로 나타났다. 존 내쉬는 무의식이 의식을 습격하는 강도가 해일이나 행성충돌의 충격에 육박하자, 의식의 활동 자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정신분열증은 무의식에 습격당한 의식의 처절한 실패처럼 보였다. 칼 구스타프 융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기 무의식의 분열적 측면, 은밀한 광기를 차분하게 사유의 재료로 삼아 무의식이 뿜어내는 예측불허의 율동 자체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연구 주제로 삼아 평생을 밀고 나갔던 칼 구스타프 융과 존 내쉬가 만났다면 얼마나 풍요로운 밤샘 토론이 벌어졌을까.

   자신의 무의식을 속속들이 의식의 영토로 불러낸 사람이라는 것이 존 내쉬와 칼 융의 결정적인 공통점이 아닐까. 존 내쉬가 할리우드식 감동의 자기 극복 스토리로 연마되기에는 훨씬 용이한 대상이지만, 한 존재로서 자신의 무의식과 만나는 데 조금 더 성공적이었던 사람은 오히려 칼 융 쪽이 아닐까. 

   
 

모든 수학자는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산다. 그들은 완벽한 플라톤적 형태를 갖춘 수정(水晶)의 세계에 산다. 얼음 궁전에. 동시에 그들은 모든 것이 덧없고, 애매하고, 영고성쇠하는 속세에 산다. 수학자들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진퇴를 거듭한다. 그들은 수정 세계에 사는 어른이며 실세계에 사는 어린 아이이다. 
 

 - S. 캐펠, 쿠랑 수학 연구소, 1996

 
   

   존 내쉬는 수학의 세계 속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능과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는 ‘아이큐 12의 어린아이’라는 식의 혹평을 받으며 누구와도 지속적인 친밀함을 공유하지 못했으며 사랑도 우정도 동정심 비슷한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위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독이 천재의 ‘학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천재도 인간이며, 인간은 고독을 위무해줄 친구와 연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천재도 비켜갈 수 없는 인간적 진실이다. 존 내쉬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만들 수 없었던 진정한 인간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을까. 존 내쉬의 삶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지 ‘천재-광기-노벨상’의 삼각 편대가 펼치는 화려한 휴먼 스토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이 영화는 그저 순순히 ‘따라 읽기’에는 존 내쉬의 너무 많은 ‘잉여들’을 삭제해버렸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삭제된 잉여’야말로 존 내쉬를 ‘바로 그 한 사람’이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삭제해버린 어느 한 천재 수학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기이한 분열의 조짐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그의 각종 기행, 정신분열이라는 ‘장애물’을 뚫고 노벨상을 타냈다는 식의 할리우드적 감동의 휴먼 스토리에 미처 다 담지 못한 한 천재의 우울한 광기를 소중하게 다룰 것이다. 우리가 2주 동안 떠나볼 이번 여행은 한 천재의 머릿속, ‘수학적 논리’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인간의 무한한 ‘모호성’을 향해 천천히 항해할 것이다.
    존 내쉬의 삶이 ‘뷰티풀 마인드’라는 멋진 제목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정신 질환의 위험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좀처럼 엿보기 힘든 무의식의 소우주를 속속들이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방랑하던 오디세우스가 ‘결국엔 집에 돌아왔음’을 강조하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방황이 지닌 다채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삭제하거나 왜곡해버렸다. 집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다 한복판을 헤매고 있을 오디세우스의 또 다른 자아, 바다 위에 버리고 와야만 했던 오디세우스의 방황과 분열이야말로 오디세우스가 실현하지 못한 오디세이의 백미가 아닐까.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복음서에서 바리새인과 세리들에 관한 부분을 읽고는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 나는 뭔가 나쁜 것, 뭔가 악하고 음울한 것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동시에 어떤 영예와도 같았다. 나는 사실 무엇에 관해 말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말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자주 느꼈다. (……)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체험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나는 파문되었거나 선택되었다는 느낌, 저주받았거나 축복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오늘날에도 나는 외롭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 대부분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들을 내가 알고 있고 그것을 암시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8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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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tkfkd 2009-09-2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칼 구스타프 융! 그에게서는 나는 늘 위안을 얻는데......

apple tree 2009-09-2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저도 머리가 무지 아플 때 칼 구스타프 융의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⑩

 

10. 추억이 없는 곳, 그리하여 원한도 없는 곳으로

   
 

 우리 청각의 한계. ―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듣는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31쪽.

 
   

   노튼 소장은 전보다 더 악랄한 방법으로 앤디를 협박한다. 그는 앤디를 더욱 충실한 개로 만들기 위해 토미를 죽이고도 천연덕스럽게 뻔뻔한 거짓말을 읊어댄다. “토미 말이야. 출옥이 1년도 안 남은 놈이 탈옥하려고 하다니 어리석은 짓이었어. 하들리도 쏘며 괴로워했지. 그 문제는 끝났네. 이제 우리 일을 해야지.” 1달 동안의 독방 생활로 걷잡을 수 없이 초췌해진 앤디는 소장의 제안을 거부한다. “난 안 하겠습니다. 모든 게 끝났어요. 다른 사람을 시키세요.” 노튼은 더욱 잔인한 미소로 앤디를 옥죈다. “끝난 건 없어. 끝나면 넌 살아가기 힘들 거야. 간수 보호도 못 받아. 내가 그 감방에서 끌어내면, 넌 또다시 강간당할 거야. (…) 도서관도 마찬가지야. 벽돌로 차곡차곡 쌓아 폐쇄할 거야. 책들을 마당에서 태우면 수마일 밖에서도 연기가 보일 테지. (……) 한 달만 더 있으면서 생각해봐.” 노튼 소장은 앤디가 입고 있던,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완전히 벗겨 내 그를 서글픈 알몸으로 홀로 서 있게 할 작정이다. 앤디는 다시 텅 빈 독방에 갇힌다. 앤디가 고통 속에서 창조해낸 모든 것을 말소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 

   힘겹게 독방에서 풀려나온 앤디 옆에는 언제나처럼 레드가 앉아 있다. 앤디는 전에 없이 우울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놓지 않았던 아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내는 저에게 말했죠. 난 이해하기 힘든 남자라고. 내가 좀처럼 속마음을 안 드러낸다고 항상 불평했지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전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어요. 다만, 그걸 표현할 줄을 몰랐지요. 내가 그녀를 죽게 했어요.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지만 제가 죽게 만든 거예요.” 죄 없이 감방에 갇힌 19년 세월도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을 지우진 못했다. 그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내의 살인범으로 몰려 무려 19년 동안 감옥에 갇힌 것이다. 그는 풀려나오지 못했지만 적어도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알게 되었으며,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죽음을 슬퍼할 자유나마 얻게 되었다.
    “네가 살인자는 아니잖아. 나쁜 남편이긴 했지만.” 앤디는 어찌할 수 없는 과거의 옷자락을 붙들지는 못함을 안다. “레드. 당신은 석방될 것 같으세요?” “나? 흰 수염이 나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때야 나갈 수 있겠지.” 앤디는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던 자신의 꿈을 말한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지후아타네오예요.” 앤디의 몽환적이지만 더없이 진지한 표정에 레드는 당황한다. 독방에 두 달 동안 갇히는 초유의 형벌 앞에서, 앤디가 입던 무적의 투명코트도 효력을 잃은 것일까. “지후…… 뭐라고?” 

   “지후아타네오. 멕시코에 있어요. 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이죠. 멕시코 사람은 태평양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추억이 없는 곳이라고 해요. 그곳에서 남은 생을 살고 싶어요.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바닷가에 조그만 호텔을 열고 낡은 배를 사서 수리한 다음 손님들을 태우고 낚시를 하는 거지요. 지후타네오. 그곳에선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레드는 쓴웃음을 짓는다. “난 거의 평생을 여기서 살았지.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도 이제 길들어졌어. 브룩스처럼.” 앤디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거두고 레드를 바라본다. “자신을 비하하지 마요.” 하지만 레드는 이미 체념한 듯한 표정이다. “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몰라. 태평양? 엿이나 먹으라지! 난 큰 바다를 보면 빠져 죽을까 봐 겁부터 날 거야.” 앤디는 굳은 표정으로,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처럼 말한다. “난 아니에요. 난 내 마누라도 정부도 쏘지 않았어요. 난 내 실수보다 더 많은 걸 보상받을 거예요. 호텔과 보트……. 그 정도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레드는 전에 없이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앤디의 정신 건강이 걱정된다. “자신을 학대하지 말게, 친구. 실현될 수 없는 꿈이야. 멕시코는 저 멀리 있다고.” 앤디는 마치 유언을 하듯이 비장한 표정으로 레드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지요. 멕시코는 저 멀리, 난 여기 있죠. 선택은 간단해요. 열심히 살던가, 빨리 죽던가.” 흠칫 놀라는 레드에게 앤디는 부탁한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나가거든 부탁이 있어요. 벅스톤 근처에 풀밭이 있어요. 거대한 오크나무를 끼고 긴 돌담이 있는 곳. 프루스트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요. 그곳에서 아내에게 청혼했어요. 우리는 함께 소풍을 가서 그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아내는 내 청혼을 받아줬죠……. 당신이 나가면 그곳을 찾아줘요. 담 아래를 보면 특이한 돌 하나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까만 흑요석이에요. 그 돌 아래 뭔가가 있을 거예요.” 앤디는 지금 스스로 미래를 만들고 있다. 흑요석 아래에 그가 담을 메시지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 레드와의 ‘약속’을 통해 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앤디의 진심을 알 리 없는 레드는 더럭 겁이 난다. 마지막 유서를 남기듯 절절한 그의 메시지는 레드의 걱정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다른 죄수들도 앤디를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듀프레인 말이야.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밤에는 꼭 혼자 있잖아.” 헤이우드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털어놓는다. “맙소사. 듀프레인이 오늘 나한테 와서는 밧줄을 구해 달랬어.” 레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밧줄?” “응. 2미터 길이로 말이야.” 아직 앤디의 계획을 모르는 관객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은 브룩스다. 브룩스처럼, 절망에 빠진 앤디가 목숨을 놓을까 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관객을 살짝 속이기 위한 거짓 복선. 그날 밤, 아무리 걱정되어도 앤디의 방을 찾아갈 수 없는 처지인 레드는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을 보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속삭이던 앤디의 표정과 브룩스의 유언이 담긴 마지막 편지와 헤이우드가 전해줬다는 밧줄이 머릿속에서 ‘공포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듯하여, 레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쇼생크 감옥 초유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다. 앤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가장 피가 마르는 것은 노튼 소장이다. 앤디와 가장 친했던 레드를 붙들고 늘어지는 소장. “늘 같이 있었잖나? 뭔가 말한 게 있을  텐데?” 레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한다. “기적이 일어났군. 귀신처럼 사라지다니! 흔적도 없이! 돌 몇 개와 여자 사진만 남겨놓고!” 소장은 길길이 날뛰다가 앤디의 방 여기저기로 돌을 집어던지고 그러다가 라켈 웰치의 멋진 포스터를 맞힌다. 그 순간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 이후로 앤디의 방을 늘 지키고 있었던 여신의 육체가 숨겨준 비밀의 문이 드러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드디어 앤디의 머릿속에 살고 있던 모차르트를, 앤디가 늘 입고 다니던 투명코트의 비밀을 통쾌하게 누설한다. “1966년 듀프레인은 쇼생크 감옥을 탈출했습니다. 진흙 묻은 죄수복이 발견되었죠. 비누 한 개랑 닳아서 해진 망치 하나도 발견되었죠. 굴을 파려면 600년이 걸릴 걸로 생각했던 그 망치 말입니다. 그에게는 20년도 안 걸렸죠. 그는 지질학을 좋아했습니다. (……) 오랜 시간에 걸쳐 압력과 지질을 연구한 거죠.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합니다. 터널을 파는 것도 압력과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포스터는 터널의 입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지요. (……) 듀프레인은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을 500미터나 기어갔습니다. 저라면 안 했을 겁니다. 500미터라니. 축구장 5개만 한 길이죠.” 

   “포스터의 비밀이 벗겨지던 바로 그 순간 한 신사가 주 은행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류상에만 존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랜달 스티븐스.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없는 게 없었습니다. 서명마저 똑같았죠. (……) 듀프레인은 그날 아침 은행을 12군데나 들렀습니다. 소장의 돈 37만 달러를 찾아갔습니다. 죄 없는 옥살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었죠.” 앤디는 은행 직원을 통해 소장의 부정부패를 낱낱이 기록한 보도 자료를 보내고 포틀랜드 신문에는 <쇼생크-타락과 살인의 온상>이라는 폭로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한다. 우리의 친절한 앤디 씨는 소장에게 상큼한 작별의 편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장 말이 옳았소. 이 책에 구원이 있었소.” 소장이 늘 ‘돈세탁’의 근거지로 사용하던 금고 속에는 소장의 성경과 앤디의 성경이 은밀하게 바꿔치기 되어 있었다. 물론 앤디의 소행이다. 소장이 한때 빼앗을 뻔했던 앤디의 성경 속에는 구원의 망치를 숨겨놓는 비밀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파랗게 질린 소장은 자기 앞에 놓인 선택지가 ‘체포 아니면 죽음’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소장에게 성경이 ‘악행의 은밀한 알리바이’였다면 앤디에게 성경은 ‘엑소더스를 향한 무기’였던 것이다. 

    “노튼 소장, 체포 영장 가져왔소. 문 열어요!” 소장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가 결국 그 총신을 자신의 목에 겨눈다. 앤디는 자신만 탈옥한 것이 아니라 ‘노튼 소장 재임기’의 쇼생크의 통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 것이다. 죄수들은 앤디를 그리워하면서도 앤디의 목격담을 통쾌한 영웅 서사로 치장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동료에게 맥주를 달라는 조건으로 자신의 금융 관련 지식을 기꺼이 내다 팔았던 앤디, 쇼생크 도서관을 짓고 죄수들의 교육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의 충견 노릇도 마다치 않았던 앤디……. 누구보다도 앤디를 그리워하는 것은 레드였다. 가족이나 연인 못지않게 서로를 아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떼어놓을 수 없는 영혼의 분신이 되어 있었다. 앤디는 멕시코 국경을 넘기 직전 레드에게 소인만 달랑 찍힌 빈 엽서를 보내고 레드는 앤디의 무언의 메시지를 이해한다. “그의 빈자리는 때로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새는 가둘 수 없다는 걸 떠올려야만 했죠. 새의 깃털은 눈부시게 아름답죠. 새들이 비상하는 기쁨을 뺏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래도 저는 허전했습니다. 제 친구가 그리웠죠.” 30년 넘게 복역했던 레드는 드디어 가석방 심사를 통과하고, 브룩스가 잠시 머물다 죽었던 바로 그 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레드는 브룩스의 안타까운 죽음과 앤디의 믿을 수 없는 탈주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트에서 일하다가 “화장실 가도 될까요?”라고 묻는 레드에게 지배인은 말한다. “일일이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가시라고요.” 레드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40년 동안은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허가 없인 한 방울도 쌀 수 없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죠. 일부러 죄를 지어 쇼생크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었죠. (……) 내가 원하는 건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두렵지는 않으니까요. 제 발목을 잡은 한 가지는 앤디와의 약속이었습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 주거지를 이탈하여 앤디가 말했던 벅스톤으로 떠나는 레드. 프루스트의 시에 등장하는 것처럼 ‘가지 않은 길’을 현실에서 만난 듯한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레드가 만난 것은 바로 30년 감옥 생활 끝에 잃어버린 자기 자신, 잃어버린 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앤디가 말했던 흑요석 밑에는 그가 정성 들여 쓴 편지와 ‘자유의 땅’으로 떠나기 위한 여비가 두둑이 들어 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멀리 오셨을 테니 좀 더 멀리 오셔도 상관없겠죠? 그 도시 기억하시죠? 지후아타네오. 저와 함께 사업을 꾸려갈 친구가 필요하답니다. 보고 싶어요.”
    레드는 생애 두번째로 죄를 짓는다. 주거지 이탈. 앤디의 편지는 레드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한 번도 마음껏 꿈꾸지 못했던 자기 안의 희망이었음을 레드는 깨닫는다. “너무 흥분돼서 앉아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유를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이었죠. 결과가 불확실한 긴 여로에 오른 것입니다. 부디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내 친구를 만나 악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꿈속에서처럼, 태평양이 파랗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희망합니다.” 한 번도 태평양을 직접 보지 못한 레드의 눈빛은 저 아름다운 지후아타네오를 목격하자마자 앤디의 꿈을 한순간에 이해한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독방에서도 늘 지후아타네오를 생각했던 앤디의 꿈을,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고통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던 앤디의 꿈을. 앤디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질문을 던졌기에 아무도 다다르지 못한 대답에 다다른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향해 동시에 나아가는 것.
 너는 무엇을 믿는가? 모든 사물의 중량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너의 양심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동정(同情)에.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의 희망을.
 너는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가? 항상 모욕하려 하는 사람을.
 네게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것.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니체, <즐거운 학문>, 250~251쪽. 

 
   

   3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던 한때 레드는 자기혐오에 빠졌고 자기의 능력을 과소평가 했다. 갇혀 있기 때문에 생긴 제약을 스스로의 무능력으로 오인한 것이다. 앤디는 가장 절망적인 인간들로부터도 자신의 희망을 읽어냈고, 최고의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고의 고통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앤디는 모두가 포기해버린 질문, 생각하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워져서 질문하기조차 싫어하는 질문을 매일 던졌다. 19년 동안.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감옥의 철책을 스스로 무화시켰다. 그는 단지 제 한 몸 탈옥한 것이 아니라 쇼생크에 있는 사람들, 쇼생크처럼 스스로를 잿빛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주인이 되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강간과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낮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주어진 임무보다 항상 초과근무를 하며 쇼생크 감옥에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었고, 밤에는 마치 텅 빈 독방에 따스한 수프와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만든 진정한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미녀 포스터 뒤에 동굴의 형태로 아로새겨진다.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희망을 가꾸기 위한 제의를 20년 가까이 홀로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닳아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그 작은 망치로, 쇼생크를 탈출하려면 600년은 족히 걸릴 것만 같았던 작은 망치만으로도.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왠지 뒤통수가 가렵다. 앤디를 괴롭히던 감옥을 바라볼 때는 ‘내가 감옥에 있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여겼던 관객들은 이제 앤디가 떠나버린 지후타네오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이 감옥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흔쾌한 의심이니 마음껏 던져도 좋다. 마음속에 앤디의 아름다운 탈주를 보듬은 사람들은, 우리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는 그 모든 중력의 악령과 싸우는 용기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저 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탈주를 꿈꾸는 밝은 눈이, 죽음조차 죽여버리는 우리의 용기만이, 우리 안에 잠자는 저마다의 모차르트를 깨우고, 우리 안에 숨겨진 ‘자유’라는 이름의 투명코트를 권태로운 침묵의 옷장에서 끄집어낼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네 문을 활짝 열어두어라!
 낡은 것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너도 한때는 젊었지만, 이제-훨씬 더 젊다!
 (……)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
 내 자신의 혈연이며 함께 변해간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
 그들도 늙어버리고 쫓겨났다 :
 오직 변하는 자만이, 나와 인연이 있다.
 (……) 이미 밤낮으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네,
 새로운 친구들이여! 어서 오라! 때가 왔다! 때가 온 것이다!
 (……) 이제 우리는 축하하며, 하나로 뭉친 승리를 확신하고,
 축제 가운데 축제를 한다 :
 친구 짜라투스트라가 왔다, 손님들 가운데 손님이!
 이제 세계는 웃고 끔찍한 커튼은 찢기고,
 빛과 어둠을 위한 결혼식이 다가왔다……. 


 -니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책세상, 2002, 319~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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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2009-09-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엑소더스' 페이지에 꽂혀 있는 저 책갈피와 망치 케이스로 쓰인 성경, 정말 멋졌지요~ 지후아타네오의 저 아름다운 풍경도 그리운.

sotkfkd 2009-09-2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의 고통과 최고의 희망을 동시에 추구할 것!

슈슈 2009-12-1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짜 자유란 스스로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⑨

 

9.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예언자적 인간이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훌륭한 “재능”이 주어졌으며, 그대들도 이 재능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그래서 나는 비유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 동물들이 대기와 구름의 전기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겠는가! 동물 중의 몇몇 종들은 날씨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례로 원숭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들을 예언자로 만든다는 것은 ―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양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구름의 영향으로 인해 음전기로 변하여 날씨의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이 동물은 마치 적이 다가오고 있기나 한 것처럼, 방어 자세나 도주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은 어딘가로 숨어든다. 그들은 악천후를 날씨가 아니라 적의 손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89쪽.

 
   

   레드가 쇼생크의 최고참이 되고 앤디가 쇼생크의 중견이 되는 동안, 쇼생크에는 끊임없이 신참 죄수들이 입성한다. 토미는 바로 그 신참 죄수 중 하나였다. 토미는 텔레비전을 훔치다가 들켜 무단침입죄로 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온다.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토미는 순식간에 쇼생크의 마스코트가 된다. 도둑질조차 서툴렀던 토미는 좀도둑질을 하다 매번 붙잡혀 어린 시절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토미의 넉살 좋은 수다를 듣고 있던 앤디는 불쑥 충고를 한다.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는 게 어때? 자네는 도둑질도 잘 못하니 다른 걸 해보라는 거야.” 


   토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생각하며 앤디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죄수들의 학업을 도와주며 쇼생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던 앤디는 토미의 개인교습도 도맡기로 한다. 문맹이었던 토미를 위해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앤디. 토미는 빠른 속도로 고교 과정을 습득하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토미였기에 배움은 더욱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앤디는, 자신으로 인해 매일매일 변해가는 토미를 자식처럼 아낀다. 토미를 가르치는 것은 앤디가 기획하고 있었던 어떤 문화 사업 프로젝트보다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배움에 대한 아무런 열망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토미가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는 것,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던 인간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누군가가 나 때문에 삶의 노선 전체를 바꾼다는 것. 그 모두가 앤디에게는 또 하나의 감미로운 모차르트였고, 또 다른 희망의 뮤즈였다. 레드는 토미를 향한 앤디의 열정을 이렇게 해석한다. “감옥의 하루는 매우 길죠. 그래서 집중할만한 게 있어야 합니다. 어떤 죄수들은 성냥 쌓기도 하죠. 듀프레인은 쇼생크 도서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죠. 바로 토미였습니다. 수년간 갖가지 돌을 깎고 다듬은 이유도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앤디는 여배우 사진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앤디가 토미를 자식처럼 가르치고, 조각가 못지않게 돌을 연마하고, 여배우 포스터를 수집한 것은 단지 감옥의 권태를 견디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 후 토미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보고 나서 스스로 시험을 망쳤다고 판단하며 절망한다. 그런 토미를 위로해주는 레드. 토미는 시험을 망친 것보다 앤디 실망시켰을까 봐, 그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앤디가 실망했겠죠?” “그렇지 않아. 앤디는 자네를 늘 대견하게 생각한다네. 우린 오랜 친구라서 내가 잘 알지.” 앤디가 사회에 있을 때는 최고의 은행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레드. 토미는 앤디가 아내를 살인한 죄로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래, 앤디는 살인을 할 사람은 아니지. 침상에 있던 아내와 정부를 총으로 쐈다고 하더군.” 토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가 충격을 받는다. 앤디를 불러 자신이 아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는 토미. 

    “4년 전 토마스톤 감옥에 있을 때였어요. 전 자동차를 훔쳤어요. 바보 같은 짓이었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새 식구가 들어왔어요. 엘모 블래치였죠. 미치광이 같았어요. 아무도 그런 작자랑 방을 같이 쓰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는 6년 형을 선고받았죠. 도둑질만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 어느 날 밤에 제가 그에게 물었죠. 살인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토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살인자 엘모 블래치의 끔찍한 고백이 시작된다.  “딱 한 번 저질렀지. 컨추리 클럽에서 돈 많아 보이는 대상을 물색했어. 한 남자를 골랐지. 밤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가서는 한탕 했다고. 그놈은 잠이 깼는지 나한테 대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죽여버렸지. 옆에 있던 여자도 같이 말이야. 이 대목이 중요해. 그 여자는 골프선수와 자고 있었어, 결혼한 여자였는데 말이야. 그 여자의 남편은 성공한 은행가였지. 남편이 내 대신 죄를 뒤집어썼어.”
    엘모 블래치의 잔인한 미소와 앤디의 당혹스런 표정이 오버랩된다. 앤디의 지난 19년 감옥생활, 그 모든 것이 끔찍한 누명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19년. 갓난아기가 태어나 어엿한 성년으로 자랄 만한 시간, 감옥에 갇힌 한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 그리고 앤디에게는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을 거쳐 ‘라켈 웰치’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타 헤이워드’는 반란의 시작을, ‘라켈 웰치’는 반란의 끝을 장식하는 앤디만의 암호였다. 

   앤디는 비로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깨닫고 노튼 소장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한다. 토미의 증언이 있으면 자신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앤디를 자신의 ‘충직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석방이 곧 자신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살인자는 지금 어디 있다고 하던가? 그자가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으니 벌을 대신 받겠다고 할 줄 아나?” 그는 앤디를 설득하려 하지만 앤디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토미의 증언이면 다시 재판 받을 수 있어요.” 노튼 역시 필사적이다. 앤디가 쇼생크를 떠나는 순간 자신의 호시절이 끝날 것이라는 예감에 몸을 떤다. 19년 무고한 감옥 생활 동안 한 번도 분노하지 않았던 앤디는 드디어 폭발한다. “제 인생이 달렸다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옥 밖으로 나가도 ‘돈세탁’에 관련된 일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앤디의 말에 노튼은 결정타를 맞는다. 앤디를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노튼은 자기 인생을 정작 좌지우지하는 것은 앤디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앤디가 없다면 그의 모든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앤디는 ‘한 달간 독방 감금’이라는 쇼생크 감옥 역사상 최고의 형벌을 받고, 앤디가 그토록 아꼈던 토미는 앤디를 석방하지 않으려는 노튼의 흉계로 목숨을 잃고 만다. 토미가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생애 최고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끽한 직후였다.

   앤디는 1달 동안의 독방 생활 동안, 그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망상들을 죽인다. 노튼 소장은 자신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 법의 힘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는 환상,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죽인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 태어난다. 그에게 토미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지만, 그 동아줄은 향기로운 만큼 더없이 위험한 미끼였다. 토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실낱같은 환상을 일깨운 토미는 그에게 아름다운 유혹이었던 셈이다. 그는 토미의 죽음을 통해 자신 안에 있었던 마지막 망상을 죽인다. 토미의 죽음은 더 없는 슬픔이었지만, 앤디 안의 또 다른 앤디의 죽음은 기쁜 죽음이었다. 쇼생크의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반란이 비로소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그 모든 적들보다도 가장 무서운 적,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순간, 초인의 새벽은 밝아온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므로. 

  

   
 

모두에게 그렇듯 니체에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씁쓸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모든 거친 질료들을 씹어서 자기 신체의 구성 요소가 될 때까지 향유할 줄 아는 건강한 사유자였다. 그는 죽음에서 슬픔이 아닌 기쁨의 요소를 발견한다. (……) 그는 죽음에서 소멸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먼 신비를 발견한다. 기쁘고 명랑한 죽음이 있으며, 이 죽음을 다른 말로는 생성이라고 부른다. 후일 그는 이런 생성의 기쁨을 찾아가는 사유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했다.  


 -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200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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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1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앤디처럼, 노튼소장같은 내 상사에게 한 방 날릴 무기를 만들어야 할 터인데....

wow! 2009-09-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손체조님! 그럴려면 튼튼해야 해요! 잘못하다간 나만 다치거든요 ㅠㅠ 맨손체조 하루 1시간씩! 영차영차~~^^

sotkfkd 2009-09-2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 = 생성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⑧

 

8. 내 머릿속에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다 

   
   질투 없는 눈.
 그래, 그의 눈에는 질투가 없다 : 그래서 너희들은 그를 존경하는가?
 그는 너희들의 존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는 너희들을 보지 않는다―그는 별들을, 별들만을 바라본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51쪽.
 
   

   일일 DJ로 활동한 앤디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 편안하게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한다. 소장과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열어! 열라니까! 경고한다! 꺼라! 넌 이제 죽었어!” 노튼 소장은 믿었던(?) 앤디의 도발에 분노하고, 앤디는 2주간 독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독방은 사람은 물론 빛도 소리도 책도 없는 광막한 어둠을 마주하는 곳이지만, 2주나 독방에 갇혀 있던 앤디는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레드는 돌아온 친구에게 1주일이 1년처럼 더디게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앤디는 씩 웃는다. 난 괜찮았다고. “모차르트가 친구가 되어줬거든요.” 순진한 레드는 앤디의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독방에 녹음기를 넣어줬단 말이야?” 앤디는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을 가만히 가리킨다. “내 머릿속에 모차르트가 있었어요. 그들이 그것까지 빼앗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요?”

   레드는 아주 머나먼 곳,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덧없이 회상하듯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왕년에 하모니카를 잘 불었지. 이젠 흥미를 잃었어. 도무지 감흥이 안 나서.” 앤디는 곧바로 레드의 말꼬리를 붙잡는다. “감흥을 느끼는 데는 감옥이 제격이죠. 왕년의 그 하모니카 소리를 잊지 않도록 가끔 불어보세요.” 앤디는 천연덕스럽게 감옥이야말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데 적당한 장소라며 미소 짓는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도 있어요. 그 안쪽까지는 저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죠. 건드릴 수도 없어요. 그건 오직 당신만의 것이니까요.” 레드는 앤디의 투명한 눈빛에 서린, 달콤하지만 불온한 상상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앤디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말한다. “희망이요.” 레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마치 ‘금기어’를 들은 듯이 정색을 하며 앤디에게 경고한다. “희망? 내가 충고 한마디 할까? 희망은 위험한 존재야. 사람을 미치게 하지. 감옥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레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앤디를 바라보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하모니카의 슬픈 환청이 망각의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하다. 레드의 가처분 심사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심사위원들은 도살장의 쇠고기 등급을 심사하는 듯 냉혹한 눈빛으로 레드를 샅샅이 훑어본다. 

      
    “당신은 30년 동안 복역했소.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됐나요?” 레드는 평소와 달리 긴장된 눈빛과 경직된 말투로 심사에 임한다. “물론입니다. 전 옛날의 제가 아닙니다. 위험한 존재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전 완전히 교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이 ‘부적격(rejected)’ 판정이다. 가처분 심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종신형 죄수를 고문하는 또 하나의 형벌이다. 레드가 복역한 지 30년, 앤디가 복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앤디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레드에게 전해준다. “이거 가처분 불합격 선물이에요. 뜯어봐요.” 레드가 한때 멋들어지게 불었다는 하모니카였다. 한가로이 하모니카를 부는 레드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앤디의 심정을 알면서도, 레드는 지금은 불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모니카는 잊고 있었던 바깥세상을 일깨워줄 것이며, 앤디의 머릿속에 사는 모차르트가 일깨운 위험한 자유의 공기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레드는 그 희망의 냄새를 다시 맡는 것이 새삼 두렵다. 레드는 다음에 불어보겠다고 이야기하며 쓸쓸히 웃는다. 

   앤디는 정말 일주일에 두 번씩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쇼생크 도서관을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한 앤디의 ‘허황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앤디가 쇼생크에 입성한 지 13년째 되던 1959년, 드디어 주 의회는 200달러만으로는 앤디의 끈질긴 편지 공세를 무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주 의회는 매년 500달러씩 쇼생크 도서관에 보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앤디는 주 의회의 생색내기용 일회적 지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적 지원을 바랐다. 아마 그가 떠나도 쇼생크에 계속 ‘우리 안의 모차짜르트’를 들려줄 DJ가 필요하다고, ‘우리 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불러내 줄 수많은 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상상한 것이 아닐까.
    앤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와 교섭하고 재고서적을 싸게 구입하여 쇼생크 도서관을 당대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는 쥐똥이 득실거리는 창고를 개조하여 쾌적한 감옥 도서관을 만든다. 이제는 ‘친구’가 된 동료와 함께. 죄수들은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며 쇼생크 감옥을 새로운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앤디는 단지 책이라는 물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책 속에 기록된 형체 없는 희망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회색 공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위험한 선동을 구입한다. 그는 이렇게 감옥 안에서는 가장 위험한 무기인, ‘희망’을 차입해온 것이다. 

   노튼 소장도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번창시켜, 죄수들을 사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는 허울 좋은 공익사업에 착수한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미명 하에, 그는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쇼생크의 죄수들을 감옥 밖에서 ‘임금 없는 노동자’로 착취할 계획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죄수들의 ‘노동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며 노튼 소장을 유명인사로 만든다. “죄수들은 담장 밖에서 노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겠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에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인건비와 자재비 등 엄청난 ‘외부의 돈’이 감옥으로 굴러들어 오기 시작했고, 노튼 소장은 거의 무한한 ‘제로 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엄청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건설 수주를 따준다는 명목으로 뇌물까지 수수하는 노튼의 비리 행각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뒷거래 배후에는 검은돈이 뒤따랐고, 이 무시무시한 돈들을 청결하게(?) 세탁하는 임무는 앤디의 것이었다.

   앤디는 노튼 소장의 돈세탁이라는 꺼림칙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레드에게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 비법까지 공개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인다. “꿈에도 생각 못할 수를 써서 등을 쳐요. 더러운 돈이 이곳을 통해 나가요. (……) 주식, 은행예금, 채권을 이용해서 제가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불려주죠. 노튼이 은퇴할 때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거예요.” 레드는 혀를 내두르며 걱정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꼬리가 길면 의심받아. FBI든 세무국이든 누군가 눈치챌 거야.” 앤디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봐야 저도 소장도 의심 안 받아요.” “그럼 누구야?” “랜달 스티븐스!” “누구라고?” 랜달 스티븐스라는 낯선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사귄 절친한 벗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든든한 표정을 짓는 앤디. “말 없는 파트너죠. 돈세탁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이름밖에 안 나와요. 가상의 인물이죠.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제가 만들었어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죠.” 레드는 소스라친다.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제도의 허점을 알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랜달 스티븐스는 출생증명도 있고 운전면허에, 사회보장번호도 있는 걸요. 어떤 계좌를 추적한다 해도 내 상상의 단면밖에 못 찾아요.” 레드는 앤디의 신출귀몰한 기술에 놀란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젠장, 내가 널 좋은 놈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잖아?” 앤디는 웃으며 대답한다. “맞아요. 더 웃기는 건 내가 사회에 있을 땐 오히려 정직했다는 거예요. 전 사기꾼 되려고 교도소에 왔나 봐요.” 이제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앤디의 여유로움 뒤로 신비로운 음모의 냄새가 배어나온다. “그 일 덕분에 쇼생크 도서관을 확장했고, 동료에게 고등학교 과정도 가르칠 수 있었어요.” 

   앤디는 성격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인 돈세탁을 하면서도, 그의 몸짓은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고 기품마저 넘실거린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인하고 신념에 찬 쾌활한 모습.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지 모차르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침묵의 파트너 랜달 스티븐스. 그와 함께 앤디는 무언가를 은밀히 계획하는 중이다. 아니, 모차르트나 랜달 스티븐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머나먼 그 무엇을 향해, 앤디의 눈은 서늘하게 빛난다. 그는 지금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거대한 휴화산이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의 분출. ― 인류가 예전의 단계에서 획득한 무수히 많은 것들, 그러나 너무 미약하고 미숙한 단계에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오랜 후에, 아마도 수 세기가 흐른 후에 빛을 보게 되는 경우. 그 사이에 그것이 강하고 성숙해진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달리 비유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이후에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도.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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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러너 2009-09-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탁할 돈이라도 있었으면,,,,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쇼핑 목록들. 아무도 빼앗을 수는 없다^^*

둥이 2009-09-1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너님의 머리속에 있는 많은 쇼핑 목록들이 희망이군여^^앤디의 그것과 같은
그럼 러너님두 혹 지금 꿈틀거리나여 그럼 "참으세요"라구 말하고 싶어지는데여^^

ㅍㅎㅎ 2009-09-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들 넘 웃겨요 ㅋㅋ 무서운 휴화산들이네^^

sotkfkd 2009-09-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겨진 정원과 식물!

콩콩 2009-12-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너무나 와닿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잠재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때를 위해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