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⑦

 

7. ‘연민’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을까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낯선 괴짜 할머니의 유모차에 탄 소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를 만난다. 행인의 눈에 띄지 않는 밤,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는 할머니가 끄는 낡은 유모차를 타고, 도둑질하듯 은밀하게 세상을 구경한다. 이 소녀에게 뚝딱뚝딱 엉터리 휠체어를 만들어주는 츠네오. 조제는 츠네오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처음으로 아름다운 대낮의 풍경을 보게 된다. 평범한 하늘에 뜬 범상한 구름을 보며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저 구름도 집에 가져가고 싶어”라고 속삭이는 조제, 다락방에서 헌책들을 벽돌처럼 쌓아놓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조제. 두 다리로 걷지는 못하지만 상상 속에서 세상 모든 곳을 바지런히 걸어 다니는 조제에게 츠네오는 사랑을 느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액자 저편에서 아련하게 미소 짓고 있던 타인의 삶이 처음으로 내 삶의 두터운 각질을 뚫고 침투해 오는 이야기다. 액자를 깨고 들어가 사진 속 그녀의 진짜 삶을 직시하고 그녀를 도울 수 있다고 믿었던 츠네오. 그는 막상 액자 너머로 들어가 만난 ‘진짜 세상’에 단지 ‘그녀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간신히 넘어 들어간 그 아름다운 액자 건너편에는, 그녀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녀를 부모님께 도저히 보여드릴 수는 없는 그의 공포가, 그녀와 잠시 동거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는 스스로의 불안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그의 몸은 ‘연민의 마지노선’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랑에 풍덩 빠질 수는 있었지만 그 사랑 속에 끝까지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을 짊어지고 삶을 버티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알아버리고야 말았다. 조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가 도망치더라도 그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츠네오가 잠들었을 때 조제는 마치 머지않아 혼자가 될 미래의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듯, 긴 독백을 한다.

    “깊고 깊은 바다 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처럼, 타인을 믿지 못하는 소년 윌 또한 스카일라의 사랑이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고통의 반복 학습 효과로 인해 윌은 치명적인 피해망상을 앓고 있다. 그러나 윌은 숀이라는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어쩌면, 어쩌면 자신도 사랑이라는 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숀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자신의 아픈 상처를 윌에게 보여준다. 아내가 병상에 누워 있던 6년 동안 직장조차 그만두었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레드 삭스 팀 역사상 가장 큰 월드 시리즈 게임을 직접 볼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숀이 만약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역사적 야구경기를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정신과 의사로서 ‘경력’을 희생당하지 않고 출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숀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냐는 윌의 질문에, 그저 내 아내는 죽었다고 말한다. 숀이라는 타인의 고통을 사유함으로써, 윌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스카일라는 윌에 대해 좀더 알고 싶지만 윌은 자신의 방도 자신의 친구도 보여주지 않는다. 자꾸만 숨기고 싶다. 나의 과거를. 선생님처럼 온몸의 모공을 열어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여자가 나의 모든 것을 알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이 헛똑똑이 천재 소년은 믿는다. 하지만 윌은 “내가 창피한 거야? 아니면 그 반대야?”라는 스카일라의 질문에 더 이상 못 버티고 드디어 윌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 처키(밴 에플렉)와 그 일당들을 보여준다. 친구들도 깜짝 놀란다. 윌이 모르는 사람을 데려온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처키는 윌에게 가장 자주 입는 속옷처럼, 언제나 거기 있는 오래된 골동품 가구처럼 편안한 존재다. 윌은 처키의 우정이 자신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기둥임을 아직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처키는 늘 걱정하고 있다. 내 친구 윌이, ‘우리’와는 너무 다른 윌이, 자신의 재능을 평생 썩히지나 않을까,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을까 하고.

   처키와 친구들을 만난 스카일라는 윌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따스해진다.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사랑에 빠진 여인만이 짓는 농염한 미소를 띠며 스카일라는 말한다. “윌, 나랑 캘리포니아에 함께 가자.” 윌은 놀란다. 그저 여행을 떠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빛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도. 윌은 스카일라의 품에 안겨서 정신없이 행복해하다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그래도 되겠어?” “그럼.” 스카일라의 표정은 이미 결정이 끝난 듯 단호하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몰라. 그냥 알아.” 스카일라의 눈은 행복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직관을 믿는 사람,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의 단단한 미소. 

    윌은 두렵다. 증명할 수 없는, 확신할 수 없는 일에는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또다시 버림받을지도 모르니까. 또다시 혼자가 될지 모르니까. “이건 굉장히 심각한 결정이야. 캘리포니아에 함께 갔다가 내게서 네가 싫어하는 점이 있다는 걸 알면, 같이 가자고 했던 말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쯤엔 우리 관계도 깊어져서, 취소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마지못해서 함께 살게 돼.” 윌은 마치 가상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그들의 미래를 최대한 부정적으로 예측한다. 스카일라는 용기를 내어 사랑 고백을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것처럼, 이미 상처 입은 표정이다. 이제 액자의 프레임을 완전히 떼어내고 사진속의 인물, 그 사람의 날것의 삶에 부딪쳐야 한다. 그들은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연민의 마지노선’과 ‘사랑의 문턱’ 사이에 놓인 아슬아슬한 경계지대를 탈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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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캣 2009-08-19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화 속 조제의 다락방, 쿵, 하며 방에서 다이빙을 하던 조제가 어른거리네요....

mr.black 2009-08-19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무의식중에 하던 거짓말들이 실은 용기 없는 자의 종이 갑옷에 불과했군요. 공감 & 반성;

sotkfkd 2009-09-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아슬아슬한 경계지대를 사는 우리들.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⑥

 

6. ‘가위손’을 닮은 천재 소년, 사랑에 빠지다

   영화 <가위손>에서는 흥미로운 퀴즈가 등장한다. ‘가위손’ 에드워드(조니 뎁)의 기이한 외모와 천재적 재능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킴(위노나 라이더)과 가족들. 킴의 아버지는 에드워드의 ‘정상성’을 시험하기 위해 퀴즈를 낸다. “네가 길에서 돈가방을 봤다고 하자. 주위엔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어떻게 하겠니? A. 돈을 갖는다. B. 친구나 사랑하는 이에게 줄 선물을 산다. C. 불쌍한 이들에게 나눠준다. D. 경찰에 신고한다.” 킴의 동생들은 “나라면 그냥 갖겠다”고, 에드워드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시시덕거린다. 에드워드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킴의 눈빛도 덩달아 흔들린다. 에드워드는 창백한 얼굴에 투명하게 묻어나는 진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킴의 눈동자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주겠어요.” 킴의 아버지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러고 싶겠지만 그래선 안 돼”라고 타이르고, 아이들은 에드워드를 한껏 놀리며 “바보야, 누구나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걸 알아”라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 순간 킴은 가위손을 향한 사랑에 빠진다.    

   에드워드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이 다가가는 모든 존재에게 ‘가위손’이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한다. 가위는 에드워드의 천재적 재능을 실현시키는 도구지만 본의 아니게 킴의 물침대에 구멍을 내고, 킴의 동생을 자동차 사고에서 구해주려다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 여기저기에 난 그로테스크한 흉터 또한 스스로 낸 상처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는 순간 가위손은 상처를 내고 만다. 그가 사랑하는 자리마다 폐허의 공포가 드리운다. 에드워드는 킴을 안고 싶지만, 킴이 가위에 찔릴까 봐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킴은 에드워드를 사랑하기 위한 좁은 문을 발견한다. 그의 가위손을 겁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에드워드의 ‘등 뒤’로 다가가 그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이다. 정면의 포옹이 열정적인 욕망이나 달콤한 행복의 표현이라면, 등 뒤의 포옹은 ‘당신의 등 뒤에 내가 있으니, 불안해하지도, 걱정하지도 말라’는 따스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 아름다운 백 허그(back hug)는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거나 해부하지 않고 다만 등 뒤에서 조용히 껴안는, 사랑의 묘약이 된다.  

 

   우리의 천재 소년 윌 헌팅도 에드워드를 닮았다. 윌의 내면은 가위손의 얼굴처럼 상처투성이다. 양아버지의 알코올중독과 밤마다 계속되는 린치, 몇 번이나 버려지고 파양되었다는 사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공포는 윌의 치명적인 내상을 더욱 깊게 만든다. 윌은 자신의 상처가 폭로될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처가 지닌 기묘한 전염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이 닿는 곳마다 딱딱한 황금으로 변해버리듯이, 자신의 손이 닿는 곳마다 폐허로 변해버릴까, 윌은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길을 택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랄한 하버드생 스카일라(미니 드라이버)에게 호기심을 느끼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스카일라와 ‘데이트’는 하지만 그녀에게 솔직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윌은 알고 있다. 스카일라와의 만남은,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숀과 가까워지는 윌은 스카일라와의 만남도 그에게 털어 놓는다. 호감은 가지만 자신이 먼저 전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게 다 작업의 기술이라고.  

   윌 : 그 여자 애는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재밌어요. 그간 사귄 여자들하고는 달라요.
   숀 : 그럼 전화해, 로미오.
   윌 : 왜요? 그러다 똑똑치도 않고 재미없는 여자란 것만 알게? 지금 그대로가 완벽하다구요. 이미지 망치기 싫어요.  

   숀 : 반대로 완벽한 네 이미지 망치기 싫어서겠지. 정말 대단한 인생철학이야! 평생 그런 식으로 살면 아무도 진실 되게 사귈 수 없어.
   윌 : …….
   숀 : 내 아내는 긴장을 하면 방귀를 뀌곤 했었어. (죽은 아내가 생각나 애틋하지만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러 가지 앙증맞은 버릇이 많았지만 자면서까지 방귀를 뀌곤 했어. (이때부터 숀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말 해서 미안하군, 큭큭. 어쨌든 어느 날 밤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강아지까지 깼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당신이 뀌었수?’ 하길래, 차마 용기가 안나 얼떨결에 ‘응!’ 하고 말았다니까!
   윌 : (키득거리며) 자기 방귀에 놀라서 깨요?
   숀 : 아내가 세상 떠난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런 기억만 생생해. 멋진 추억이지. 그런 사소한 일들이 말야. 제일 그리운 것도 그런 것들이야. 나만이 알고 있는 아내의 그런 사소한 버릇들. 그게 바로 내 아내니까.
   윌 : (웃음이 잦아들며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소중한 사랑의 추억을 지닌 숀이 부러운 듯 애잔한 표정을 짓는다.)
   숀 : 반대로 아낸 내 작은 버릇들을 다 알고 있었지. 남들은 그걸 단점으로 보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 그 여자애도 완벽하진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 이 세상에 모르는 게 없는 너라도 짝을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해. 내게서 그 방법을 배울 순 없을 거다. 안다 해도 너같이 건방진 녀석에겐 알려주기 싫어.
   윌 : 왜요? 딴 얘긴 주절주절 다 해줬잖아요. 빌어먹을! 그쪽처럼 말 많은 의사는 처음 본다구요!  
   숀 :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다 아는 건 아냐. 


   윌은 어느새 숀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신경질도 낸다. 숀은 윌을 분석하거거나 해부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가르칠 수 없는 종류의 지식’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론은 빠삭해도’ 실천할 수 없는 지식, 그것은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을, 몸으로 부딪혀야만 알 수 있으므로. 윌은 아름다운 액자 속에 끼워진 흑백사진처럼 멀리 있어 아름답던 그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처음으로 스카일라가 살고 있는 하버드 기숙사로 찾아가는 윌. 스카일라는 윌이 반갑지만 급한 숙제가 있다며 내일 만나자고 한다. 할 수 없이 돌아서는 윌.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표정. 그는 스카일라의 급한 숙제를 대신 해준다. ‘수재’ 스카일라라면 밤을 새겠지만 ‘천재’ 윌이라면 3분 만에 후딱 풀 수 있는 그 숙제를. 그리고는 말한다.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  

   첫번째 발걸음을 떼기가 우주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 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처음 마음을 열기가 어려웠지만 한 번 마음을 열자 봇물 터지듯 열정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이제 해석하고 계산하고 짐작하고 미리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전화하고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고 먼저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과거만 연관되면 자신도 모르게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한다. 스카일라가 ‘형제가 몇 명이냐’고 묻자 윌은 불에 덴 듯 뜨끔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형만 열 두 명이라고. 신에 맹세코 정말이라고. 행운의 13번째이니까 자신은 행운아라고. 아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윌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윌은 처음으로 여인의 품에서 쾌락과는 다른 종류의 불가해한 따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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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8-1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가위, 손, 손, 손, 손'. 예를 드는 영화마다 어찌나 그리 좋은 영화만을 고르시는지^^*

가위질손 2009-08-1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의 마음을 노크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바로 사랑이겠죠. 윌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궁금해지네요. ㅎㅎ

sotkfkd 2009-09-1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해한 따뜻함!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⑤

 

5. 전시되는 고통, 소외되는 인간


   눈앞에서 끔찍한 현실을 목격했을 때 ‘세상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리얼한’ 화면을 발견했을 때 ‘정말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데!’라고 감탄하는, 스펙터클의 사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 영화 <라이온 일병 구하기>가 처음 나왔을 때 관객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의 극치’라며 전투 장면의 현장감을 극찬했다. 그러나 <라이온 일병 구하기>의 숨 막히는 전투 신이 과연 ‘사실적’이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일까. 사실감이란 본래 ‘현실과 재현 사이의 거리’를 측정한 후 판단되는 감각 아니었는가.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은 총알이 눈앞에서 난사되고 사람이 피와 내장을 흘리며 죽어가는 실제 전투를 겪어본 적이 없다. 재현은 있지만 현실은 없다. 그러므로 재현과 현실 사이의 ‘거리’ 또한 측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를 보면서 ‘와, 이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걸!’이라고 느끼는 바로 이 ‘리얼함’의 감각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일까.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했을 때 그 건물에서 간신히 피해 나왔던 사람들이나 근처에서 그 장면을 그대로 봤던 사람들은 처음 그 공습을 설명하면서 “믿을 수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 같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할리우드 재앙 영화가 만들어진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결국 어떤 재앙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자신이 짧은 시간 동안 겪었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재앙을 “마치 꿈처럼 느껴져요”라는 말 대신에 “마치 영화처럼 느껴져요”라는 말로 표현하는 상황이 닥쳤다.) 


-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43쪽.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거대한 스펙터클로 재창조하여 미디어에 전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라크전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전대미문의 ‘충격과 공포’를 자아냈던 방법은 바로 컴퓨터 전쟁 게임 같은 화면을 이라크 현장에서 연출하여 ‘전쟁을 영화같이’ 만든 후 그 편집된 화면을 전 세계에 방영하는 미디어 전략이었다. 현대인은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볼만한 구경거리, 화려한 스펙터클로 전시한다. 우리는 ‘기아’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소말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등지에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의 사진 이미지를 떠올리고, ‘전쟁’ 하면 할리우드 영화나 컴퓨터 3D 전쟁 게임에서 본 ‘스펙터클’을 떠올린다. 미디어가 규격화하여 보여주는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공감(共感) 능력을 규정하고 한계 지운다. 고통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고통이 주는 공포 혹은 ‘내가 저 고통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리얼’하게 보였던 것은,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감독이 연출해낸 장면의 ‘자극’이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훈련시키는 것만큼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미디어 사이보그가 되어가는 걸까. 


 

   윌에게 상처 입은 숀이 깨달은 ‘윌의 허점’도 바로 그것이다. 윌은 모든 것을 다 안다. 그의 천재성은 단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독서량과 기억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윌은 그림 하나에 얽힌 인간의 심리를 눈앞에서 보듯 생생히 그려낼 정도로 상상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윌의 모든 지식은 책이라는 미디어와 머릿속의 상상력을 통한 간접 체험이다. 그는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광기 어린 사랑을 문학작품을 통해서만 경험해본 ‘책상 위의 천재’인 것이다. 이제 숀의 반격이 시작된다.
    두번째 정신과 상담. 윌의 난데없는 선제공격에 고통스러워하던 숀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숀은 이제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생각하다가 갑자기 얻은 깨달음이 있다고. 그건 바로 윌, 네가 ‘어린애’라는 것이었다고.   

   숀 : 넌 네가 뭘 지껄이는 건지도 모르고 있어.
   윌 : 알아줘서 고맙네요.
   숀 : 당연한 거야. 넌 보스턴을 떠나본 적이 없으니까.
   윌 : 그렇죠.
   숀 :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그에 대해 잘 알 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본능까지도 알 거야, 그치?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또, 여자에 관해 물으면 네 타입의 여자들에 관해 장황하게 늘어놓겠지. 벌써 여자와 여러 번 잠자리를 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여인 옆에서 눈뜨며 느끼는 행복이 어떤 건진 모를걸.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다시 한 번 돌진하세, 친구들이여, 하며!
   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 건지……. 사랑에 관해 물으면 너는 한 수 시까지 읊겠지만, 한 여인에게 완전한 포로가 되어본 적은 없을 걸……. 그녀의 눈빛에 완전히 매료되어 신께서 너만을 위해 보내주신 천사로 착각하게 되지……. 절망의 늪에서 널 구하라고 보내신 천사……. 또한 한 여인의 천사가 되어 사랑을 지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그 사랑은 어떤 역경도, 암조차도 이겨내지……. 죽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두 달이나 병상을 지킬 땐, 더 이상 환자 면회 시간 따윈 의미가 없어져…….
   윌 :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생소한 감정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처음으로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잠자코 듣고만 있다.) 
   숀 :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진정한 상실감이란, 타인을 네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아마 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없을  걸? 
   윌: …….      

      윌은 숨 돌릴 새 없이 이어지는 숀의 일갈에 허를 찔려 뜨끔하면서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모두들 엄마 손에 이끌려 떠난 후 황혼 속에 혼자 남은 아이처럼, 막막하고 슬픈 표정이다.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나만의 고통’에 빠진, 고독한 천재 소년. 윌은 자신의 고통을 말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내면을 보게 되는 순간 얼굴을 돌려버릴 것을 알았다. 그 또한 오랜 차별과 핍박의 경험이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지식’이었다. 윌은 ‘천재’로 판단되어 호명되는 순간 천재라는 존재를 길들이는 사회의 호명체계 속에 갇히게 된다. 그의 캐릭터에서 ‘천재 이외의 것’을 보려 하는 사람, 그의 명석한 두뇌 회전의 광휘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상처의 풍경을 본 사람, 그가 바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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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생각해도 2009-08-1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거대한 상처의 풍경, 나의 내면도 그림처럼 한 번 보고 싶네요.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당신들'의 내면 역시. ^^

radiohead 2009-08-16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디어 사이보그라니, 어쩐지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네요, 휴~~^^

맨손체조 2009-08-17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는 빛났죠. 우리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멘토가 있을까요?

sotkfkd 2009-09-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빈 윌리암스는 늘 그렇게...... .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④

 

4. 당신의 불행이 당신의 질병을 부른다?


   카프카는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나는 정신적으로 아프답니다. 폐 속의 질병은 내 정신적 질병이 넘쳐흐른 것에 불과하지요.” 이런 식으로 ‘정신적 요인’을 질병의 원인으로 치환시키는 사고법은 ‘당신의 성격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 ‘암을 유발하는 특별한 성격이 있다’, ‘암 환자는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된 사람이다’라는 식의 당혹스런 논리를 대중적으로 유포시키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믿음은 16세기 후반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부터 유포된 낭만적 환상이었다. 감정이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논리, 질병의 원인 자체가 개인의 불행 혹은 악행에 기반한다는 상상은 수전 손택이 열렬히 비판했던 ‘질병에 대한 은유의 시스템’이었다. 질병을 정신적으로 치환할수록 질병의 실체는 타자화된다. 모든 일탈이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됨으로써 사람들은 일탈의 원인 제공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순환논리에 빠져든다.

   수전 손택이 보기에 이런 관점은 질병의 책임을 환자에게 덮어씌우는 폭력이며, 의학적 치료의 필요성과 과정을 알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꺾어버릴 뿐 아니라, 환자가 의학적 치료자체를 회피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환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치료가 가능해진다는 당혹스런 환상이 유포되는 것이다. 

   윌은 ‘소년의 불행이 정신질환을 낳았고, 소년의 정신질환이 범죄를 낳았다’는 식으로 전개되는 기성세대의 판결에 저항한다. 윌은 자신의 불행과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모든 권력에 구토를 느낀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천재 길들이기를 위한 정신분석 맞춤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램보의 노력을 무시한다. 램보의 대학 동창 숀(로빈 윌리엄스)은 램보가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찾아가는 정신과 의사다.

   윌은 이번에도 또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진단하려는 의사의 속셈을 속전속결로 격파하겠다는 듯, 시건방진 표정으로 숀의 진료실을 두리번거린다. 윌은 ‘너의 불행은 네 과거의 상처 때문이다. 그 상처 때문에 너는 악행을 저지르거나 질병에 걸린다’는 식의 태도를 혐오한다. 그러나 윌 또한 이러한 전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윌은 숀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 스민 내면의 상처를 투시하여 숀의 인생을 속속들이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그림 한 장으로 숀의 인생 전체를  MRI 스캐닝하듯 훤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득의양양하다.

   윌 : (건들거리며) 누구누구처럼 선생님도 곧 귀를 자를 것 같네요.
   숀 : 그래? 당장 프랑스 남부로 이사 가서 고흐로 이름이라도 바꿀까?
   윌 : 풍전등화라는 말 알아요? 어쩌면 선생님이 그런 격인지도 모르죠.
   숀 : 어째서?
   윌 : 폭풍 속의 항구처럼 위태위태해 보여요. 머리 위의 사나운 폭풍우와 집채만 한 파도. 게다가 노는 부러질 것 같고. 너무 놀라 혼비백산할 지경이라 있는 힘을 다해 항구로 치닫는 꼴이라구요. 어쩌면 힘든 현실을 피하려고 정신과 의사가 됐는지도 모르죠.
   숀 : 맞아, 그거야! 그러니까 직분을 다 해야지. 빨리 시작하세.
   (숀은 그 정도의 예리한 분석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인정한다. 그러나 윌은 얼핏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 속을 꿰뚫어볼 듯한 표정으로 숀에게 뇌까린다.)
   윌 : 잘못된 짝과 결혼했나 보군요.
   숀 : (이번에는 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입 조심해. 조심하라구, 알았어?
   윌 : (숀의 분노에도 아랑곳 않고 더욱 잔인한 표정으로, 더욱 오만하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숀을 밀어붙인다) 내가 맞춘 거죠? 부인을 잘못 얻은 거죠? 왜요? 배신하고 도망갔어요? 딴 남자랑 눈 맞아서? 
   숀 : (윌의 멱살을 잡고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다시 내 아내를 모욕했다간 널 그냥 안 두겠어. 그냥 안 두겠다구! 알아들었어?
   윌 : (조금은 당혹스런 표정을 애써 숨기며 애써 쿨한 척) 시간 다 됐네요.
   숀 : 그렇구나. 

   윌은 웬만한 의사나 교수의 실력보다 자신의 직관과 지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윌 스스로가 ‘나보다 나은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윌은 이번에도 자신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의 자존심을 가차 없이 꺾어 자신에게는 치료가 필요 없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숀의 붓 터치와 색감을 분석하여, 숀의 심리를, 숀의 과거를 난도질한다. 숀의 표정은 지금까지 윌에게 봉변을 당한 다른 의사들처럼 ‘오늘 똥 밟았네!’ ‘재수 옴 붙었네!’ 같은 표정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처 입은,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이다. 윌은 숀의 고통을 규격화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숀의 과거를 도륙한다. 이로써 숀은 말썽꾸러기 윌이 처음으로 끝까지 상담 시간을 지킨 생애 최초의 정신과 의사로 등극한다. 결과는 ‘막돼먹은’ 윌 군의 판정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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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ewithyou 2009-08-1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 윌 헌팅으로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었죠. 두 사람 모두 짱 멋있었음. 지금 봐도 대사가 서늘하고 먹먹...

맨손체조 2009-08-14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울님의 오늘 글을 보니, 갑자기 MBC드라마 <고맙습니다>가 생각나요. 너무 많이 울었던 그 드라마. 강부자와 서신애 공효진 그리고 장혁과 신구의 그 애절한 모습이 생각나요. 참,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의 <필라델피아>도 그래요^^*

울컥소년 2009-08-1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현실이 힘들어서 그런지, 상처입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 괜시리 울컥하네요. 쩝 ㅠㅠ

sotkfkd 2009-09-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고 당기기!
그곳에 진정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③

 

3. ‘천재’라는 꼬리표가 담을 수 없는 것들


   질병에 대한 가장 악질적인 환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범죄가 범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질병도 환자의 소유물이라는 환상이 아닐까. 아픈 사람 스스로가 병을 만든다든지, 환자 자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식의 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범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듯 질병 또한 환자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에이즈 인권 운동 포스터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단지 내가 HIV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내가 죽음의 전문가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내 모든 에너지를 오직 ‘삶’을 향해 쏟아 붓고 있다.” “나는 HIV 보균자 그 이상의 존재다(I’m more than HIV-Positive).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신나게 춤추러 가고 싶고, 포켓볼도 치러 가고 싶다. 내 친구들과 함께.” 

   그렇다. 사람들은 누군가 HIV 보균자라는 정보를 입수한 순간, 그 사람의 이름도, 존재도, 희망도, 취미도 깡그리 잊어버린다. 단지 ‘HIV 보균자’라는 사실만으로 (아직 발병하지 않았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도) 존재 전체가 그 새빨간 낙인 속에 갇혀버린다.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낱말을 떠올리는 순간 동시에 ‘죽음’을 떠올린다. 마치 에이즈 환자라면 당연히 죽음에 대해서는 훤하게 통달했을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정작 에이즈 환자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윌의 상처 또한 그렇다. 사람들은 윌 헌팅이 ‘천재’라는 것을 안 순간 그가 왜 ‘천재답게’ 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끊임없이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지, 자신의 재능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써먹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램보 교수는 윌의 이 병적인 행동만 교정하면 윌이야말로 세계 수학계를 뒤흔들 재목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윌의 천재적인 재능이 그의 트라우마 혹은 정신질환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윌의 입장에서 이 공격적인 태도는 ‘질병의 발현’이라기보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 혹은 공격적인 방어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은 어쩌면 이 영화의 트릭이다. 그는 남들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를 ‘천재’라는 화려한 커튼 뒤로 철저히 은폐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상처는, 그의 고통은 ‘천재’라는 꼬리표로도, ‘트라우마’라는 진단으로도, ‘자기애성 인격장애’라는 병명으로도 완전히 담을 수 없는 불가해한 미로이므로.  

   램보 교수는 구치소에 갇힌 윌을 빼내기 위해 협상을 한다. 판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보호하에 윌을 석방하기로. 램보 교수는 윌에게 면회를 가서 그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첫번째 조건은 매주 자신과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 두번째 조건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윌은 피식 웃는다. 램보는 심각하다. “내겐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거든. 둘 중 어느 조건이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남은 복역기간을 채워야 해.” 윌은 이 조건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램보 교수와 함께 하는 수학 공부는 견딜 만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죽을 맛이다.
   윌이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치료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더불어 정신과 치료의 엄숙한 분위기도 한몫한다. 마치 ‘구원의 대상’인 양 그를 딱하게 바라보는 의사들의 눈빛을 그는 견디지 못한다. 윌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의사들에게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문제가 ‘치료’로 해결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언한다. 최면을 걸려는 의사 앞에서 최면에 빠진 양 가짜 연기를 하고, 상담을 하려는 의사에게 “당신 게이지? 지금도 날 덮치고 싶지?”라는 식의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치료는, 아니 ‘환자라는 낙인’은 윌을 더욱 나쁜 상태로 몰고 간다.

   
  질병은 두 가지 가설을 통해 확대됐다. 첫번째 가설은 모든 사회적 일탈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범죄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었으며, 범죄자는 비난받거나 처벌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가 그를 이해하듯이) 이해되고, 치료받고, 교정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두번째 가설은 모든 질병이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질병은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사건으로 해석됐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 원했기 때문에 병에 걸리게 된 것이며, 의지를 사용해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으며, 질병으로 죽지 않기를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다고 믿도록 유도됐다. (……) 질병을 심리학적으로 다루는 이론은 환자를 비난할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스스로 질병을 가져 왔다는 통고를 받게 되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병을 앓을 만한 짓을 했을 것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86~87쪽.
 
   

   지금 윌에게 필요한 것은 진단이나 치료가 아니다. ‘너의 성격 때문에 너의 천재성이 질식당한다’느니, ‘너의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면 너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느니, 이런 식의 감언이설은 윌에게 먹히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그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해줄 사람이 아니라, 겹겹이 닫혀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그의 마음의 문을 열어줄 사람이다. 그의 ‘천재적인’ 자기방어의 치밀한 방범시스템을 뚫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 자신도 잊고 있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줄 사람. 이 가망 없는 게임에 드디어 구원투수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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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크림 2009-08-1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수전 손택 젊었을 때 사진, 포스 작렬인데요~^^

블랙베리 2009-08-12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인생의 구원투수는 언제 나타날려나. 주변에 온통 악당들 뿐이다. ㅠㅠ

flytothemoon 2009-08-1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ㅎㅎ 블랙베리님, 완전 동감입니다요^^ 굿윌헌팅의 로빈 윌리엄스는 너무 완벽해서 비현실적이예요. 하지만 정말 저런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게 하는 사람.

둥이 2009-08-1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난 램보 교수이길 원해야 하나여?
아님 윌이길 원해야 하나 고민중....

sotkfkd 2009-09-13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과 병원. 꼭 필요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