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다이어리 - 시인을 만나는 설렘, 윤동주, 프랑시스 잠. 장 콕도. 폴 발레리. 보들레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바라기 노리코. 그리고 정지용. 김영랑. 이상. 백석.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starlogo(스타로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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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1938)

아프리가 속담 중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5년이라는 긴 시간, 그 먼 길을 함께 걸어갈 길동무로 <동주 다이어리DIARY>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동주 다이어리DIARY>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첫 만남은 2017년 첫 달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청춘을 다 바쳤 일했던 첫 직장에 사표를 내고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저의 첫걸음은 새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동주 다이어리>를 만났고, 새롭게 펼쳐갈 날들을 부탁했더랬습니다. 늘 가방에 넣어놓고 다녔지만, 아까워 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동주 다이어리>는 제게 윤동주 시인이 사랑했던 시를 함께 읽고 묵상하는 '시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 번 본 영화는 두 번 보는 일이 별로 없고, 전공서적이 아니면 한 번 읽은 책도 두 번 읽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제가 <동주 다이어리>에는 특별한 욕심을 내보았습니다. 하얀색 도화지를 앞에 두고 망칠까 두려워 뭔가 그려넣는 것을 망설이는 아이처럼 아까워 쓰질 못하니, 2개를 준비하자 싶었습니다.







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내, 그리고

커다란 키관차는 빼-액-울며,

조고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윤동주(1936)

<동주 다이어리DIARY>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과, 그 윤동주 시인이 가장 사랑했던 시와,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인들의 시와, 윤동주를 사랑한 시인들의 시를 매일 만날 수 있는 그런 다이어리입니다. 한 장 한 장 날짜별로 넘겨가는데, 그 하루가 5등분 되어 있습니다. 5등분을 알뜰하게 나누어 쓰면 총 5년간의 기록이 날짜별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가 바뀌고 다시 그 달, 그 날이 돌아오면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름다운 꽃이 피는 그런 일상을 만들고 싶다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씨가 필요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겠지요. <동주 다이어리>를 보고 있으니 아름다운 씨를 품고 있는 밭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아름다운 씨, 그 씨와 함께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채워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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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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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바뀌어야만 한다.

이런 일을 보고 듣고도 이무렇지도 않은 듯

예전처럼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복음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며 가슴 아파 울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나(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애통은 그동안 들려도 들리지 않았던 세상의 신음소리가 제 무감각한 심장을 강타할 때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울다>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실제로 경험하도록 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목적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설산을 오르며 입이 떡 벌어지게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복음이 울다>를 통해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히려 외면해버리고 싶은 광경입니다.

<복음이 울다>는 힌두교와 불교의 진원지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9백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백 명도 안 되는 복음의 불모지로 안내합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지독한 빈곤, 아이들이 열에 다섯은 여덟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열악한 환경, 어린 여자아이들을 잡아다가 성노예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현장, 질병으로 하루 아침에 수십 명이 죽어나가는 삶의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정확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이 울다>는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귀를 닫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마음을 닫고 사는 교회들을 흔들어 깨우는 책입니다. <복음이 울다>는 믿는 자들에게 맡겨진 "기쁜 소식"이 "기쁜 소식"으로 전하여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파합니다. 무언가 변해야만 한다고 외칩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 그 절절함이 느껴져서 복음 앞에 다시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래디컬>로 전 세계 교회들에 큰 도전을 주었던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다시 한번 교회들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믿음을 머리로만 '알려고' 애쓰고 마음으로 '느끼는' 법은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17).

<복음이 울다>가 교회에 던지는 중요한 통찰 중에 하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그 절박한 육체적인 필요에도 불구하고, 기도마저 무기력하게 느껴질 만큼 참혹한 육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상황도 중요하지만 영적 상황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필요도 외면할 수 없지만, 결국 흑망의 땅, 사망의 그늘에 앉은 영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이며,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격려하는 공동체", 죽 주님이 의도하신 "바로 그 교회"라는 사실을 다시 각성시킵니다.

<복음이 울다>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았다면, 이 모든 고통을 외면하고 그저 편하게 살고 싶은 게으름 이면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갈망도 우리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뜨겁게 알려 줍니다. 이 책은 그런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교회가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주님은 이 책을 통해 "제 삶이 이 기도가 응답되는 도구로 쓰이게 해 주십시오"라는 뜨거운 기도와 함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며 응답할 한 사람을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교회됨을 위하여, 가능하면 교회의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한지 2년 째인데,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마땅한 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얻었습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우릴 사용하소서"라는 뜨거운 기도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그래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 이 여정을 나누는 나의 주된 목적은 당신을 이 질문의 지점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다. 주변 세상의 절박한 필요를 진정으로 느끼는 지점까지, 그리고 온갖 물음이 머릿속에 가득한 가운데서도 예수님이 그 고통 중의 궁극적인 희망이라고 믿게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곳에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당신의 삶을 계획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293).




하나님,

제게 주신 모든 것으로

당신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제대로 된 교회가 되면,

교회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제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제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절박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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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마시멜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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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


"옛날 옛날에 꾸뻬 씨란 정신과 의사가 살았다. 그는 사람들한테 핑크색 안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자기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환자들이 주변을, 자기 자신을, 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건 이를테면 이들에게 새로운 안경을 만들어주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10).

꾸뻬 씨가 다시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입니다. 꾸뻬 씨는 "당신은 오늘 어떤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을 덜 암울하고, 덜 왜곡되게 바라보게 해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게 해줄 핑크색 안경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꾸뻬 씨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도 자기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아내 클라라는 자기에게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할 판이었는데(아내가 무척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꾸뻬 씨가 진료실과 자기가 좋아하는 도시를 떠나야 하는 상황),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것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료실 밖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꾸뻬 씨는 아내를 만나기에 앞서, "뭔가 커다란 번민에 사로잡힐 때마다"늘 찾아가곤 했던 세 친구를 차례로 찾아갑니다. 전쟁터에서 인도주의적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장-미셸, 정말이지 다양한 활동으로 삶을 즐기는 에두아르, 한때 연인이었던 아녜스가 그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함께 책을 쓰기 원하는 젊은 기자 '제랄딘'이 동행하며 그들의 여행은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은 각각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보여주며, 꾸뻬 씨와 함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자기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옮긴이는 이 책이 "소설의 양식을 빌린 일종의 심리치료서"(334)라고 말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몰입하다 보면, 독자들도 어느새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어떤 독자들은 내가 지금 내 삶을 망치는 나쁜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 있고, 나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독자들은 나에게 맞는 핑크색 안경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찾은 내가 쓰고 있는 나쁜 안경은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나의 약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입니다. '약점에 치중하는 안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하나, 감정 때문에 사태를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보게 된다는 설명도 내 감정을 돌아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꾸뻬 씨는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는 제랄딘에게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나쁜 감정을 초래하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건 A(내가 누군가에게 벌미받다)가 C란 감정(절망감, 죽고 싶은 마음)을 초래한다고 믿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A라는 사건은 B란 생각(예컨대, 앞으론 더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남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을 초래하고, 그러고 나서 C란 감정(절망감)을 초래한다"(121). 꾸뻬 씨는 이를 '정서적 추론'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제가 쓰고 나쁜 안경이라는 사실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적으로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순간, 마인드-리딩(mind-reading), 즉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안경을 끼고 있다고 믿고 있다"(165)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망치고, 스스로에게 깊은 내상을 입힐 수 있는지를 깨달아졌는데,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이 바로 치료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독서 치료 효과를 톡톡히 경험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꾸뻬 씨를 따라다니며 지금 나는 어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나를 질문하다 보니 이것은 다시 '무엇이 내 삶에 동기를 부여해주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꾸뻬 씨의 핑크색 안경>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다는 진실과 다시 마주하게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기 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바꿔써야 한다고 말하니까요. 그러니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너)이 아니라 나의 관점, 다시 말해 '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삶의 뭔가를 바꿔볼 작정이라면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가슴에 새겨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히는 책입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로 혼자 끙끙 앓고 있다면 꾸뻬 씨를 만나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책 속에서 기대하지 못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떼니까요. 끝으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안경을 바꾸는 일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하니까"(16)라는 조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가까이 하고 계속 되새김한다면, 꾸준하게 몸에 익히는 훈련 또한 이 책이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꾸뻬씨의 저자 인터뷰 영상 (김미경tv) :

https://youtu.be/pzVcqRAf9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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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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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역설, 놀라움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전적인 무력함과 약함에 자신을 내어주는 선택을 하심으로써 예수는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나중에 바울이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대해 반대하는 모든 인간적, 사탄적 힘에 대해 승리하신 것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였다. 그분의 힘이 그분의 무력함 안에 드러났다. 철저한 약함 속에 죽어가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악과 폭력의 모든 힘을 궁극적으로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의 계시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설인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133-134).

이 책은 영국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크리스토퍼 J.H. 라이트'의 '십자가' 설교를 모은 것입니다. 특별히 저자는 총 다섯 편의 십자가 설교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개인적인 논평'을 실고 있는데, 설교를 준비하는 사역자들에게 매우 유익할 듯합니다. 먼저 저자는 부활절을 맞아 그에게 '할당된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설교를 위한 본문을 직접 선택하지 않고, 주어진 본문으로 설교하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는 까다롭지만 "전체 본문을 주의 깊게, 그리고 불평하지 않고 연구하는 훈련"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고백합니다(14).

저저의 설교 준비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복음서 본문에는 거의 언제나 구약성경의 메아리가 존재한다"(16)는 점입니다. 저자는 복음서 본문에 울려퍼지고 있는 구약성경의 메아리를 청중들이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하여 총 다섯 편의 설교를 담고 있는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이 의도적으로 숨겨 놓은 구약성경의 메아리가 아주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본문을 이해할 때, 복음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메시지가 살아 움직이듯 역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제자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본문을 환기할 때, 예수의 몸이 찢기고, 그분의 피가 흘려진 것이 그저 끔찍한 우연이나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출애굽과 유월절, 새로운 언약의 유익이 온전히 성취될 희생 제사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그들은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을, 그들이 노예 상태와 죄로부터 속량될 것을, 그들의 죄가 용서를 받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합되어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적 관계로 들어가게 될 것"(39)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예수님의 행적, 십자가 사건은 더 생생하고 놀라운 구원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 한 단어에 기독교 메시지의 독특성이 걸려있다. 왜냐하면, 구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호의를 받을만한 자격을 얻기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과 그분의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미 무엇을 행하셨는가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밖에 없기 때문이다"(204-205).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는 설교집이지만, 그 어떤 주석서보다 더 본문을 주의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는 자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십자가가 어떻게 성공에 대한 숭배에 맞서는지, 십자가는 우리의 실패 가운데로 어떻게 예수님이 들어와 그 실패를 승리로 바꿔주셨는지, 가장 무력해 보이는 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셨는지, 십자가가 어떻게 깊은 어둠이면서 동시에 빛의 시작일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의도하신 것은 무엇이며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온전히 성취하셨는지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줍니다.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에게 자유함을 가져다주는지를 생생하게 맛보여 주는 설교입니다. "십자가는 여전히 좋은 소식(Good News)이다"는 말의 의미가 살아서 숨을 쉽니다. 십자가의 역설, 십자가의 신비에 놀라 춤추게 하는 설교입니다. 명설교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을 쏟아내게 합니다. 목회 훈련을 받는 학도들의 설교학 교재, 설교 예제로 사용해도 좋을 듯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 십자가 복음의 진수를 알기 원하는 독자들, 복음을 듣긴 들었으나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열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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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 백과사전 -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
신디킴.임선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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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 어디까지 먹어봤습니까?

이 책은,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음식과 더불어 세계 4대 음식으로 꼽힌다는 중국요리의 맛있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중국요리의 정석 8대 요리(산둥요리, 쓰촨요리, 광둥요리, 화이양요리, 저장요리, 푸젠요리, 후난요리, 후이저우요리)를 기본으로 중국음식문화 전문가(신디킴)와 음식작가이자 미쉐린가이드 칼림니스트(임선영)와 함께하는 '중국요리 미식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음식은 예술이자 학문입니다. 단순한 끼니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가능케 한 위대한 창조물이지요. 이 안에는 전통과 문화, 생활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14).

모든 음식은 맛과 향, 소리와 색(컬러)뿐 아니라, 음식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인간 삶의 애환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은 바로 그 이야기를 전하는 책입니다. 중국에서 치킨을 즐기는 최고의 스폿은 왜 기차인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왜 곰보투성이라는 '진씨 아주머니'를 이상형으로 꼽는지, 세계 각지의 차이나타운에서 왜 구루러우가 가장 인기 있는 요리가 되었는지, "난징에서는 오리 한 마리도 살아서 성을 넘지 못한다"(155, 281)는 말은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푸젠인들은 왜 며느리를 들일 때 하이리젠으로 요리 솜씨를 테스트했는지를 듣다 보면, 중국요리가 간직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지리적인 특징, 식재료의 종류, 생활풍습까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중국을 처음으로 여행하게 된 한 선배가 중국에서 마주했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음식'이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식재료에 놀라 중국요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중국인들조차도 다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중국요리를 어디까지 먹어봤는지 확인해보며 중국요리에 대한 식견을 넓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맛이 가장 궁금한 중국요리, 솬라펀

이 책을 통해 정말 다양한 중국요리를 만나며 가장 먹어보고 싶은 요리는, 스님도 담벼락을 넘게 하는 최고의 보양식 '불도장'도 아니고, 연두부를 머리카락처엄 얇게 썰어 만든 예술에 가까운 요리 '원스터우푸'도 아니고, 천하일미라는 민물 게 '양청후 따자시에'도 아니고, 총 108가지 요리가 포함되는 '만한전석'도 아니었습니다. 그 맛이 가장 궁금한 중국요리는, 탄탄면과 쌍벽을 이루는 면 요리, 새콤매콤한 당면요리라는 이름의 '솬라펀'입니다(68-71).

충칭이라는 도시가 유난히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상림>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솬라펀에 한 그릇에 충칭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세상살이의 애환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은 솬라펀의 맛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솬라펀의 맛은 신들린 듯 미묘합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이 올라오다 급기야 신맛에 눈을 찡그리게 됩니다. '뭐지? 고통스러운데 맛있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 젓가락 더 집어먹는데 이로부터 중독은 시작됩니다"(69).

중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며, 시큼매콤함이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라는 솬라펀. "이 한 그릇 비워내면 실연의 아픔 정도는 잠시 내려둘 만"하다는 솬라펀, 맛있는 자극이 필요할 때 기억하라는 솬라펀. 14억 인구라는 중국인들조차 다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다는 중국요리 중 제 원픽은 바로 '솬라펀'입니다!

중국요리는 거대한 용광로 같습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을 보니, 중국요리의 가장 큰 미덕은 포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땅과 계절의 신비가 요리에 녹아들고, 자기를 고집하고 않고 먹는 사람의 입맞에 맛을 맞출 줄 알기 때문에 중국요리가 세계 각지로 퍼져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에서 만난 요리 중 가장 궁금한 요리가 '솬라펀'이라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는 중국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청두'입니다. "먹고 먹고 먹고 차 마시는 동네"라는 한 문장만으로도 그곳의 매력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재스민차가 잘 어울린다는 도시의 은은한 여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미각이 발달했다고 하니, 천부적인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어떤 맛인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에는 알아두면 잘난척 하기 좋은 중국요리에 관한 잡학지식이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짜장면의 원조는 베이징인데, 베이징 짜장면은 차갑게 먹는 면식이라고 합니다. "베이징에서 짜장면은 여름에 즐겨 먹는 가정식입니다. 무더위에 입맛이 없을 때 집에 있는 야채와 볶은 된장을 면에 비비면 한 끼 식사로 훌륭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277). 베이징 짜장면은 투박한 비빔국수에 가깝다는 것을 상식으로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마라탕' 가게가 자고 나면 하나씩 생겨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기인데, 마라탕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의 음식인지 아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중국요리 백과사전>은 미식을 테마로 한 중국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요리에 대한 식견도 넓히고, 중국을 이해하는 데 지평도 더 넓어진 기분이 듭니다. 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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