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디도서 당신을 위한 시리즈
팀 체스터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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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양육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한 마리의 동떨어진 양이 아니다. 우리는 양 떼 속에서 거한다. 그렇게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제자 양육의 중요한 특징은 여러 세대를 아울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디도서 전체가 연장자가 젊은이의 믿음과 사역을 북돋는 것이다. … 그것은 세대 간에 이루어지는 제자 양육이다"(94-95).

이 책에 보면, 저자와 한 교회 개척자가 '사역에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에 나눈 대화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가 평생 사역을 하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와 가졌던 관계를 갖고 있었다. 효과적인 리더가 되려면 아버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56).

<디도서>는 아버지와 같은 바울이 아들 같은 디도에게 쓴 편지입니다. <당신을 위한 디도서>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슴 깊이 파고들었던 질문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사역자로서 나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인물, 다시 말해, 디도에게 있어 바울과 같은 인물, '진리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진리가 이끄는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권면하고 격려하는' 인물이 있는가?"

간절함에 비해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으니 생명의 교훈을 들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실망이 번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책의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당신을 위한 디도서>입니다. 이 책이 바로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 절실한 사역자들에게 바울의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타나야" 한다. 자비와 긍휼로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162).

<당신을 위한 디도서>는 <디도서>를 다시 읽어주는 책입니다. 사실 <디도서>는 교회 제직 임명을 위한 교육 때에나 한번 읽을까, 같은 목회서신이라도 <디모데전후서>에 비하면 눈길이 조금 '덜' 가는 신약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위한 디도서>를 읽으며 <디도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디도서>가 이렇게 생명의 복음으로 충만한 책인지 미쳐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가 다시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주를 믿게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던" 바울처럼(23), 바울이 디도에게 부탁한 일, 즉 우리가 하는 일은 "영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추운 날에 숨을 쉬면 공기 중에 입김이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복음을 말할 때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 우리도 자비와 긍휼로 세상에 참여하며 "나타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가슴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또한 목회 사역에 있어서 흔한 위험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교훈하는데, 그것은 '과도한 목회'와 '방임 목회'입니다(49). 저자는 왜 그러한 목회 형태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합니다. 과도한 목회를 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지배한다고 느끼고 싶거나 사역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싶기 때문"이며, 방임 목회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거질 당할까봐 두렵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거나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51). 목회현장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굳건하게 붙들지 못해서 일어나는 위험임을 감안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강격하게 사로잡히도록 목회자들이 회개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위한 디도서>는 새생명을 누리며 영생의 소망 가운데 있는 우리(교회)가 '오늘(지금)'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과 같은 시즌에 교회가 <당신을 위한 디도서>를 함께 읽고 교회의 리더로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마다 새해 목표를 설계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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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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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이라는 시가 좋아 '나태주'라는 시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요. 자그마한 꽃잎처럼 작고 예쁜 이 시를 자꾸만 자꾸만 되내이다 보니 어느새 시도, 시인의 이름도 커져만 갔습니다. '홀로서기'라는 시 이후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적어 보낸 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웠습니다. 치열하게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상처 입은 마음에 고운 말, 예쁜 말, 정다운 말을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상처를 받으면 통증을 일으킨다는 걸, 그 통증을 치료하는 데는 고운 말, 예쁜 말, 정다운 말이 특효약이라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풀꽃 시인 나태주 등단 40주년 기념 시집"이라는 이 시집은 제게 치료제와 같은 언어로 가득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고달픈 날들을 여행이라고 생각해달라 하고, 자꾸만 자꾸만 예쁘다고 하는, 그냥 예쁘다는 말이 꼭 제게 들려주는 말 같고, 하늘이 좋다, 구름이 좋다, 골목에 핀 꽃이 좋다, 바람이 좋다, 살아 있어서 좋다 하니 주변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좋아지기 시작하고, 세다 보니 좋은 것들이 많아지고, 그렇게 좋은 것들에 둘러 싸이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 먹어주서 고맙다, 사랑해줘서 고맙다, 세상에 있어줘서 고맙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하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더 마음을 쏟게 되더라고요. 이왕 사는 것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말입니다.

오늘의 약속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 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어릴 때부터 일기를 꽤 오랫동안 써왔는데 가지고 있는 일기장이 한 권도 없습니다. 늘 우울할 때, 슬플 때, 이유도 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 유독 일기를 많이 쓰다 보니 다시 읽기 민망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글을 많이 쓸 거라는 저만의 선입견? 편견?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집은 고운 말, 예쁜 생각, 가장 좋은 표정으로 가득합니다. 시인의 마음이 그러해서 시도 시인을 닮았나 봅니다. 강한 글, 공격적인 말, 힘찬 주장들이 가득한 세상에 이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정다운 시를 읽으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 새소리, 맑은 바람를 세상이 살아 있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며, 행복해지기로 약속을 해봅니다. 요즘 '착한' 식당, '착한' 가격, '착한' 운전 같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진짜 착한 것이란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진짜 '착한 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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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디모데 - 지금 여기, 초대교회를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
방선기.신광은 지음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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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Vision, No Project, No Plan!

저도 "미션디모데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미션디모데>는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위그노의 후예'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복음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부름받은 디모데'라는 정체성을 가진 개신교 공동체입니다. '교회'라고 이름하기보다 '공동체'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것은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소속감'을 강조하는 의미에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초대교회의 친밀한 공동체성을 삶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도전적이었습니다.

특히 도전이 되었던 것은 그들이 쉼터를 섬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미션디모데는 교회보다 쉼터가 먼저 출발한 공동체인데, "기거할 곳이 마땅하지 않은 이들"(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난민,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 등)을 위해 '쉼터'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노숙자 전용 숙소에 노숙자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공동체에 기꺼이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는 방식으로 섬깁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사역이 확대되는 미션디모데는 마치 누룩이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모습(마 13:33)과 닮았다. 비전도 없고, 프로젝트도 없고, 계획도 없이 한 아이의 필요를 보고 반응했는데 길이 열리고, 환경이 변화되고, 새로운 가능성이 보였다. 인간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다하면 나머지는 성령이 인도해 주신다"(155).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고 전도나 선교에 있어서 인간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철저히 배제하는 미션디모데는 비전도 없고, 프로젝트도 없고, 계획도 없고, 예배는 단순하고, 삶은 간소합니다. 미션디모데가 집중하는 것은 오직 말씀과 이웃의 필요입니다. 광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다면, 미션디모데는 이웃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션디모데>를 보며, 이웃의 필요보다는 교회의 필요에 의해 사람들을 동원하고, 이웃의 필요에 진정으로 반응하기 보다 우리의 비전, 우리의 프로젝트, 우리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웃의 필요를 사역에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한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를 발견하는 데 있다. 그들은 구제든, 전도든, 선교든, 교회 개척이든 전략을 세운 다음에 그것을 실행하기보다는 이웃의 필요를 먼저 발견하고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되면 실행한다. 그들이 믿음으로 한다는 뜻은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정 상태보다 이웃의 필요를 먼저 고려한다는 을 뜻한다"(313).

교회 개척의 사명을 가진 자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교회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함께 토의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개척에 뛰어든지 만 2년 정도가 지났는데, 이 책은 우리가 아직도 대형교회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동역'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역'을 '동업'으로 해석하는 듯 했습니다. 동역에 실패하고 있는 목회 현장,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사역,"은혜롭고 감동적인 설교를 소비하기 위해서 설교자를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영적 감동을 찾아다니는"(312) 풍조, 소비자의 구매 욕구에 초점을 맞추듯 펼쳐지는 '쇼'와 같이 펼쳐지는 공연을 예배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미션디모데>는 신선한 충격과 도전을 던져줍니다. 아니, 어쩌면 불같은 충격과 도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시는지 '잘 듣고 잘 순종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131).

<미션디모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매사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어가시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교회'(특히 대형 교회)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합니다. <미션디모데>라는 공동체를 '모델'로 삼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침반'으로 삼아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미션디모데>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서, '교회'라는 조직에 대한 선입견, 특히 대형 교회 시스템에 맞추어져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깨뜨려지기를 바래봅니다.

미션디모데로부터 배운 점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 하나는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자연 계시),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특별 계시), 이웃의 필요를 통해서도 말씀하신다는 거시다. 그러고 보니 성경에는 이를 지지하는 말씀이 꽤 있다(잠 19:17; 사 58:6-7; 마 25:45). 이웃의 필요는 곧 하나님의 음성이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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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의 길 -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자라가기
싱클레어 B. 퍼거슨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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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은 대개 시련 속에서 탄생한다.

시련은 우리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조각 작업이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성숙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크리스천, 자신의 은사와 은혜를 온전히 계발한 안정적이고도 능력 있는 크리스천,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자신을 정복한 크리스천,

하나님이 그분을 섬기라고 주신 모든 은사를 사용할 줄 아는 크리스천,

성숙한 크리스천은 성령에 의해 형성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품으로 채워진 사람이다.

성숙한 크리스천은 오직 예수님만 만들어낼 수 있는 특성들을 지닌 사람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특성들을 완벽히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숙이다(20-21).

<성숙의 길>은 "새로운 주제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한" 신앙서적이며, 1980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판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책은 아니지만, 수많은 기독교서적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내리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운데 세월의 시험을 견뎌낸, 여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기독교고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자라가라, 온전한 크리스천으로 서 있으라, 계속해서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나아가라는 이 책의 권고와 격려를 들으며, 격렬한 절망과 소망, 깊은 슬픔과 기쁨, 진동을 일으키는 책망과 위로를 동시에 맛보았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이 메시지 앞에 선다면, 나의 영적 성숙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영적 좌표가 되어 줄 것입니다. 복음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지배를 받는 신앙생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과 짝하며 '내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앙생활, 세상 유혹에 요동치는 신앙생활, 주님의 말씀보다 내 욕망을 앞세우며, 주님과 이웃을 섬기기보다 주님과 이웃이 나를 섬겨주기 바라는 젖 먹이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런 저런 변명과 핑계 속에 숨어 있는 우리의 영적 현주소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교회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으며 참으로 고통스러웠는데, 이 책을 통해 우리 안에 있었던 미성숙의 증거들을 보았습니다. 그릇된 열정, 영적 은사와 능력으로 인한 교만, 회개 없는 기쁨(예배), 종이 아니라 지도자가 되려는 높은 마음, 그리스도의 의보다 앞서는 자기의, 이런 모든 것들이 자신은 열심 있고 거룩한 크리스천이라고 믿는 사람들 안에 오히려 가득한 현실이 보였습니다. 왜 우리는 사탄의 공격 앞에 그렇게 무력했을까 절망스러웠는데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자식으로 인해 어깨에 힘이 들어간 그들은 사랑 안에서 자라는 일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은사가 아닌 사랑을 영적 성숙의 결정적인 증거로 꼽았다"(고전 13:1-13, 249).

 

 

 

바울에게 성숙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31)

<성숙의 길>을 읽으며 우리 안에 가득한 미성숙의 증거들 때문에 좌절하고, 슬퍼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지만, 이 책이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고,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성숙의 길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습니다. 특별히 많은 크리스천들이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기초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들을 탁월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와의 연합, 영적 가지치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 믿음과 인내, 하나님의 전신갑주, 성도에게 시련(고난)과 징계의 유익, 젖 먹이 아이의 신앙과 젖 뗀 신앙의 차이, 계속해서 나아가는 신앙의 위대함 등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성경적 개념들을 아주 탁월하게 설명하고 적용해줍니다.

지금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시즌입니다. 이때에 모든 교회가 <성숙의 길>을 읽으며 신앙생활의 새 목표를 설정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고전 9:26) 주께서 원하시는 성숙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지금은 성장보다 먼저 성숙을 말하고, 성숙을 외쳐야 할 때라는 점에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진심으로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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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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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의 핵심은 결국 '용서'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망각이란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지만 용서는 인간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난을 당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156)

저자인 시몬 비젠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학살자들에 의해 무려 89명이나되는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 둘이서만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증인으로, 전쟁이 끝난 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 및 유대역사기록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무려 1,100여 명이나 되는 나치 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워 심판을 받게 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기된 가장 강력한 윤리적 질문"을 던져놓았습니다.

저자는 침대에 누워 죽어 가던 한 SS대원 청년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줍니다. 학살에 참여했던 그 청년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죽기 전, 어느 유대인 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손을 꽉 붙잡으며 그토록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그 SS대원을 외면한 채 아무 말도 없이 그곳을 나와 버립니다. 그 청년이 참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용서의 말을 할 수 없었던 시몬 비젠탈은 그런 사실 때문에 고민하고 그 고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와의 만남은 내게 커다란 짐이 되었고, 그의 고백은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95). 그리고 이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요청합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가 그때 그 죽어 가는 SS대원과 함께 병원에 있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이것은 독자 개개인의 양심에 던져지는 상황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범죄와 속죄에 관한 보다 거대한 담론이기도 합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이 질문에 대한 53인의 답변(심포지엄)을 함께 엮고 있습니다. 답변자들은 저마다의 양심적, 심리적, 경험적,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 신앙적, 인도주의적, 철학적 가정 하에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 에바 플레이슈너(가톨릭 신학자, 미국인)의 경험이 흥미롭습니다. 홀로코스트 관련 강의 때마다 매번 학생들은 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 신자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용서를 주장한 반면 유대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시몬이 카를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한 점이다. 거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227).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124).

개인적으로 '용서'에 대한 교리(말씀)를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온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가장 깊이 공감하며 마음에 새긴 교훈은, 누군가에게 함부로 용서를 강요할 권리가 내겐 없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용서는 희생자에 대한 배신이다"(178)는 모세 베이스키의 말처럼, 값싼 은혜는 희생자들에게 대한 또다른 모독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전 세계의 여러 성직자들과 박애주의자들과 철학자들이 나치를 용서하자고 전 세계를 향해 탄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타주의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남에게 뺨 한번 맞아 보 적도 없는 주제에,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을 동정하고 있었던 것이다"(138).

이 책은 (쉽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일깨웁니다. 용서가 피해보다 더 큰 고통과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많은 희생자들이 자네에게 권리를 위임하지 않은 이상, 자네로서는 그를 용서해 줄 권리가 없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자네에게 저지른 짓에 관한 한,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잊어버려도 되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네의 양심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죄가 될 수 있을 거야"(108-109).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 이처럼 끔찍한 모욕을 당하는 광경을 말없이, 항의 한마디 없이 바라보는 것 역시 악랄한 행동 아닐까?"(97)

어쩌면 나치가 저지른 혐오스러운 악행이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그 SS대원처럼 우리도 범죄를 저지르도록 세뇌당할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진정한 참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모든 답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참회 없이는 용서도 없다"는 것이니까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경험한 인류가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씨름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문, 모욕, 살인과 같은 위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마찬가지로 유죄라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의 작은 보금자리가 평화롭고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수백만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을 일종의 발판으로 삼아, 나치 범죄자들은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었다"(148).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용서나 화해가 아니라, 나의 죄인됨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잊지 말자"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홀로코스트의 가장 분명한 교훈이 아닐까](로버트 매커피 브라운, 192).

개인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모욕과 배신을 당하고 마음이 지옥일 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시몬 비젠탈이 그 SS대원을 만난 것은 마음의 큰 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치유의 시작이기도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1,100명의 전범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법정에 세움으로써 얻으려 한 것은 처단의 의미보다 정의가 존재한다는 믿음,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 이외의 것들에 대한 나의 믿음을 되찾으려 한 것"(137)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시작은 그 SS대원으로부터 진정한 참회의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진정한 참회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전 세계의 독자 앞에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우리에게 비극적 역사를 (올바로) 기억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누군가 나의 아픔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 보아주고, 그 고통을 깊이 공감해주고, 내가 당한 일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해줄 때, 다시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함부로 용서를 말할 수 없게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화해, 진정한 용서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해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책입니다. 이 비극적인 역사가 소설처럼 아름답게 읽히며 강렬한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시몬 비젠탈의 인간적인 고뇌가 그 처첨하고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선한 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 스스로 은혜 베풀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묵직한 주제이지만 잘 읽히는 책입니다. 모든 분야의 필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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