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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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가 건널목에 서 있을 때면 낯선 이가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 '복이 많게 생기셨네요.', '곧 귀인이 찾아 오겠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이 잘 안 풀리죠?"라며 다가와 사주 관상을 봐준다며 따라 붙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칠 때면  가던 길을 가버리거나 무시하면 그만 이지만 마음의 근심 걱정이 가득 할 때나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 일 때 맞닥뜨리게 될 경우 피싱 문자에 걸려 들듯 ,무엇에 홀려 버린 듯 사주 관상을 봐주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그 낯선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 맞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그가 내 인생의 막힌 부분을 속 시원하게 해 줄 [앤서 맨]이 아닐 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갑에서 지폐를 불쑥 꺼낸다.

여기,  한 청년이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 하던 중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서 자신의 발로 직접  앤서 맨을 만나러 간 남자가 있다.

1937년 10월, 법과 대학원을 갓 졸업한 스물 다섯 살의 필 파커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에 전도 유망한 미래를 앞두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확실하게 결정 된 것들이 없었다.

 법학 대학원 졸업장만 달랑 쥔 필은 결혼과 취직 사이에 고민 하던 중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부모님의 여름 별장이 있는 뉴햄프셔의 작은 마을에 찾아 간다.

차를 몰고 가던 필은 손 글씨로  “앤서 맨까지 3㎞.” 라는 팻말을 발견한다.

손 글씨로 쓰여진 이 팻말을 처음 보았을 때 필은 코웃음을 쳤지만 언덕을 넘어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두 번째 팻말에 ‘앤서 맨까지 1.5㎞’라는 것을 발견하자 잠시 머뭇거리다 운전대를 돌려 앤서 맨이  있다는 그 곳을 찾아 간다.

필은 파라솔 그늘 아래  흰색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신발을 신은 앤서 맨을 발견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앤서 맨의 나이는 대략 50살 쯤 보였고   발치에 왕진 가방처럼 생긴 가방이 놓여 있었다.

대형 로펌의 중간 간부 같은 지적인 그의  분위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필은  이 남자의 정체를 알아 보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앤서맨에게 질문을 하려면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5분 당 25달러

-처음 두 개는 무료.

- “앞으로의 행보”는 묻지 말 것.

접이식 캠핑용 의자에 앉은 필이 팻말에 적혀 있는 주의사항을 물어 보자 앤서맨은 이렇게 대답한다.

"똑똑해 보이는 청년이로군요. 자동차 안테나에 달린 페던트를 보니 대학 공부를 한 청년이에요. 그것도 무려 하버드를 '!

자신이 누구인지 단번에 꿰뚫어 보는 앤서 맨을 신뢰 하게 된 필은   단 5분 동안 25달러를 지불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고 푸념하자 앤서 맨은 필이 자신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 보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

앤서 맨과 밀고 당기는 질문을 하던 필은 “당신의 답이 정답이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죠?”라고 묻자 그는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라고 모호하게 대답해 버린다.

스물 다섯 살의 필이 앤서 맨에게 5분 동안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 여자 친구의 이름은 뭐죠?

-그녀가 청혼을 받아 줄까요?

-우리는 행복하게 살까요?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보세요.

-내 경력이 예상하는 것 만큼 승승장구 할까요?

-내 여자친구의 부모는 제 의견을 존중하게 될까요?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이 참전하나요?

-저도 참전하나요?

-부상을 당하나요?

-제가 전쟁터에서 전사하나요?

5분 동안 속사포 처럼 쏟아낸 필의 질문에 앤서 맨은 이름, 태어난 장소, 인간 관계, 앞으로 발생할 일을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앤서맨을 만나고 나서 필은 과연 사회 초년생에게 작지 않은 돈의 가치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의 인생의 방향은 뜻밖에도 앤서 맨이 예견한 대답처럼 흘러갔다.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장인 장모에게도 인정을 받고 변호사 경력도 원하는 대로 승승장구 하다 미국이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앤서 맨이 대답한 대로   필은 지상군에 파견 된다.

치열한 교전 속에서도 필은  앤서 맨의 예견대로 전사 하지 않고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1937년 10월,  스물 다섯 살에  앤서 맨을 처음 만났던 필은 무사히 전장에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 사이에서 첫 아들이 태어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을 무렵인  1951년 10월, 서른 아홉 살에 두 번째 앤서 맨을 찾아간다.

어느 덧 중년의 나이가 된 필과 달리 앤서 맨은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 없는 모습이였지만 처음 두 개는 무료에 5분에 25달러였던 가격이 3분에 50달러, 무료 질문은 한 개로 질문의 규칙이 바뀌어 있었다.

 과거 사회 초년생 시절과 달리 변호사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필은 단번에  50달러 지폐를  척 꺼내서 앤서 맨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가 상원 의원에 출마하게 될까요?

-우리 아들은 프로야구 선수가 될까요?

-다른 종목은 요?

-대학 야구는 요?

-우리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죠?

두 번째 만난 앤서 맨은  스스로 규칙을  깨 버리고 갑자기 필에게  3분에 200달러로 훌쩍 비용을 올리더니  아들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대답을 멈춰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두 번째 앤서 맨을 만나고 나서 부터 필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가장 소중하고 사랑했던 아들과 아내를  잃고 나서 필은 자신의 삶에 찾아 온 불행을 원망하고 저주 하지만 잃어 버리고 사라지고 떠나 버린 것들은 두 번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우울과 분노에 사로 잡혀 살던 필의 인생에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의뢰인이 방문하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인생의 한 축이 무너지고 나서 찾아 온 행운을 덥석 쥐게 된 필은 가족의 상실과 아픔을 잊어 버리고 일에 몰두 하고 마침내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라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 재단을 세우며 자신이 이룬 성공과 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 하는 나날을 보낸다.

주변의 지인들이 차례 차례 세상을 떠나고 유일한 가족으로 곁을 지켰던 반려견을 땅에 뭍은 필은 1995년 10월, 마지막 세 번째 앤서 맨을 찾아간다.

세 번째 만나게 된  앤서 맨은 뜻밖에도 필에게 무료 이벤트라며  시간 제한이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늙고 병든 필은 앞으로 남겨진 자신의 삶에 대한 궁금증도 사라져서  딱히 앤서 맨에게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 없었다.

 필은 시간 제한도 없고 무료이니 생각 나는 대로 앤서 맨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 하나요?

-우리가 가는 곳은 천국인가요? 지옥인가요? 환생 인가요?

-우리는 야전히 우리로 남을까요?

-과거를 기억할까요?

-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게 될까요?

-좋을까요? 끔찍할까요?

-거기서 꿈도 꾸나요?

-거기서 슬픔이나 기쁨이나 다른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앤서 맨은 필의 모든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맨 처음 필이 앤서맨을 만났을 때 그가 사기꾼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신의 답이 정답이라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죠?”라고 물으니 앤서 맨이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필이 살아 온 인생의 추이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신이 그의 인생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조종하듯이  앤서 맨의 대답대로 흘러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일 필이 그 날 앤서 맨의 손 글씨 팻말을 지나쳐 버렸다면 그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을까?

첫 번째 필이  앤서 맨을 만났을 때  하버드 법학 대학원을 졸업한 자신을 의심하자 그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이 일을 한 지 워낙 오래됐으니 도움이 안 되는 질문을 하는 똑똑한 사람들을 겪을 대로 겪어 봤는데도 여전히 놀랍네요. 다들 너무 흐리멍덩해요. 너무 게을러요.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찾으려는 답이 뭔지 정말 알고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그냥 자부심이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며 틀릴때가 많은 추측을 남발하는 건 아닌지. 나로서는 그들이 그렇게 무능한 질문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네요.

-스티븐 킹의 <앤서 맨 > 중에서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누군가 내게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면 훨씬 더 멋지고 완벽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신 아파 줄 수 없듯이 살아가는 동안 부딪치는 숱한 것에 대한 정답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생-노-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부딪치게 되는 숱한 고난과 고비, 불운과 행운의 순간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 지에 따라  인생의 결이 달라 질 뿐 앤서 맨에게 앞날의 일을 물어 본다 해도 생-노-병-사라는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서 살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승승장구 하길 바라지만 이 세상은 무엇 하나 누군가의 의지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길을 돌아서 갈 지라도 벽을 넘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듯이 사는 동안 겪게 되는 고난과 고통, 실패와 좌절의 과정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과정과 인내의 시간의 길이가 각자 다를 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건 앤서 맨이나 점술가. 인공지능도 아닌 자기 자신 뿐이다.

어떤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이 의도 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버릴 때도 있지만 어제와 오늘이 쌓여서 앞으로 내달리는 동안 불운과 고난, 역경을 스스로 극복 해 나가야 한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 선택이 나와 우리를 만들며 그 선택으로 인해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지금 우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 혼돈의 시대에 서 있다.

앞날을  ‘예측’하는 역술인들의 글과 영상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는 묻지 말아야 한다는 앤서 맨의 규칙이 없는 인공지능은 과연 자연과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질문을 던진  자기 자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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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빈 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아몬드 꽃을 좋아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한 선물로 이 꽃을 그렸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하루라도 빨리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 쬐는 봄이 오기를 바라지만 매년 봄바람에 휩쓸려 날아 온 초미세먼지로 뒤덮인 매쾌한 공기에 봄이 찾아 온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무더운 여름이 오든 말든  연일 강추위로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새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 왔듯이 봄을 기다리든 미세먼지에 휩싸이든 말든 이 계절의 시기는 결국 다음 계절의 시기로 넘어가버린다.

변화 무쌍한 날씨 처럼 인간이 처한 상황 역시 어떤 마음을 갖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2023년 1월 22일 부터 쓰기 시작한 <모닝 페이지>는  2026년 3월 2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AM 12:00 자정에 발행해왔다. 투비컨티뉴드 사이트가 다운이 되었을 때도 글이 저장이 되지 않아 날아가 버렸을 때도  사이트가 불안정해서 예약해 놓은 글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을 때도  투비 컨티뉴드에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해왔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자정 시간에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는 동안 머릿속이나 입으로 쓰지 않고 두 손을 쉼 없이 움직이며 썼다.

어떤 날은 천 자 이상을 썼고 어떤 날은 이천 자, 그리고 어떤 날은 천 자를 채우지 못했지만 1000편의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하루 몇 시간을 할애해서 쓸 때도 있고 단 몇 분 만에 쓸 때도 있었다.

러시아의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브가 매번 새 작품의 원고를 담당 편집자에게 넘겨 줄 때 마다 들었던 소리는 바로 '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원고 분량이 정해져 있다.'라는 말이였다.

특정 직업이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우리가 내뱉고 사용하는 언어의 양은 정해져 있기에 문자와 톡 메시지가 아닌 한 페이지 이상을 오로지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그리 쉽지 않다.

200여 페이지의 단행본 분량을 채우는 글자 수는 대략 150,000자 정도로 이 숫자를 쌀로 환산 하면 27가마니 정도 분량이다.

SNS 시대에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마주 하지 않은 채 여러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살아 간다.

마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듯  반 만 공유된 약간의 신뢰를 품고  지각의 안개 속에서 살아간다. 

감각의 데이터는 욕망과 믿음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며 굴절되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사고가 형성되고 이는 전혀 다른 곳에서 왜곡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이는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기억하며 거기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정적인 이곳과 다르게 전 세계인들이 드나들고 있는 유튜브 채널 세계도   우연한 만남, 우연한 발견, 우연한 통찰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다.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세상의 모든 인연이 우연이듯 내가 운영하는 채널에도 나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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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정확히 다섯 시를 넘어가면 머릿 속에 불이 켜지고 천천히 팔 다리를 움직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루를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한 것 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부터다.

집에서 먼 거리(지하철로 30분, 버스로 50분)에 있는 학교에 통학하는 동안 몇 번을 제외하고는 교문이 열리는 시간에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학급 친구들 보다 2시간 먼저 교실에 도착 하니 그날 해야 할 것,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사용했고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를 언제 ,몇 시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

세상의 반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하루 4시간만 잤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루 11시간씩 자면서 연구 활동과 저술, 강연을 펼치며 세기의 업적을 세웠다.

자연의 세상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먹이를 찾는 습성을 가진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로 나뉜다.

자연계에서 새벽 부터 활동하는 부류들은 극소수들로 대부분 천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해가 지고 난 후에 활동하는 습성을 가진 부류들이 더 많다.

개개인의 생체 시계는 모두 달라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 잠을 자야만 하루 종일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다.

늘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하루에는 하루 종일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고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듯 각자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는 생체 시간이 있다.

2009년독일의 한 연구 기관에서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데 이는 마치 눈동자 색깔, 머리카락, 신장 크기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개개인 마다  수면 시간과 활동시간이 다르고  연령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개개인의 몸속에 내재된 고유 생체 시계에 맞춰 활동 할 수 없다.

나처럼 아침형 생체 시계를 가진 부류들은 오후 5시부터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기에 자정에 가까워 질 수록 집중력과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잉글랜드부터 이집트 그리고 대서양 해안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이어지는 대 제국을 통치하고 지배 했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시간에 침대로 돌아갔고 늦은 오후 시간에 일어나 대부분의 일을 처리 했다.

당시 로마인들의 하루의 시작은 오전 6시로 공공 기관의 시작은 오전 9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의 첫 구절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뒤이어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 어떤 곳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 보다 더 평화롭고 더 한적한 피신처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 피신처를 자신에게 대비하고 원기를 회복하라. 

그리고 <명상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너는 5막이 아니라 3막 만을 마쳤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과는 달리 3막에서 인생이 끝이 날 수 있고 3막의 지루함과 고단함의 고비를 넘어가면 전과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 진다.

2026년 1월 27일에 개설한  첫번째 유튜브 채널에 숏츠 영상을 올리고 지금까지 이 채널에 동영상 106개를 올렸고 두번째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는 지금까지 127개 영상을 올렸다.

첫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두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처음 채널을 시작 할 때 내가 직접  영상의 콘텐츠를 기획해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편집과 음원 그리고 음성과 자막 생성 삽입까지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 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해서 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장르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로봇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운전 할 때 지도 역할을 해주는 네비게이션을 비롯해서 집안에 로봇 청소기가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듯이 나를 대신해서 주문을 하고 심부름도 하고 함께 거리를 활보 한다 해도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하고 부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어떻게 영상으로 제작할지 기획 하기 시작하고 영상 작업을 위한 스크립트를 짜고  프롬프트 작성을 하며 여러 버전의 편집본을 제작 해 둔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돈을 벌고,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비탈리 카스넬슨의 <죽음은 통제 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 할 수 있다> 중에서

이 세상이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데로 움직이지 않지만 내가 기획했던 것들을 입체적인 결과물로 만드는  동안 나라는 인간은 세상의 단 하나 밖에 없는 크리에이터, 즉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24시간이다.

24시간 동안  각자의  삶에 맞는 목적과 행위, 사고를 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겨우 2막이 시작 되었는데 2막에서 끝이 날 수 있는 것도 인생이다.

그러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조언처럼 지금의 내 인생이 몇 막에서 끝이 나버릴지 모르니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 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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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6-03-22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튜버되셨군요!ㅎ 일단 실버버튼까지 쭉 달리시죠! 응원할께요! 구독!ㅎ 조아요!ㅎ

scott 2026-03-22 20:27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오랫만입니다!
구독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
실버버튼은 너무 멀어 보이지만 열심히 해 볼 생각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
 


자신의 아내를 친구 이자 시인인 사토 하루오에게 양도 하겠다는 기사를 신문에 게재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친구 사토 하루와 사랑에 빠져버린 아내 치요코를 주도 면밀하게 관찰 하며 <여뀌 먹는 벌레>라는 작품을 집필한다.

 
'별일 아니다. 그녀와 결혼하고 부터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어떻게 이혼해야 할지 하는 문제 만을 계속 고민하며 살아왔다. 헤어지려는 일념밖에 없는 남편이었다.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의 냉혹한 모습이 가나메 자신에게도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해 주지 못하는 대신 모욕감 만큼은 결코 느끼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썼지만, 여자한테 그런 배려가 가장 커다란 모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여뀌 먹는 벌레> 중에서 


준이치로는 상인과 정치인에게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하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는 말을 남기고 첫 번째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 하고 스무 살 연하인 문예지 기자와 결혼을 한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이 합의하여 치요코는 준이치로와 헤어져 하루오와 결혼하기로 하였기에 알려 드리오며, 준이치로의 딸 아유코는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쌍방의 쿄류는 종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적당한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 피로연을 갖고자 하며, 그 일은 추후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치요코,사토 하루오

                                 <아사히 신문> 1930년 8월 19일자


준이치로는 두번째 결혼 역시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생활 중에 알고 지냈던 네즈 마쓰코 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거상의 딸이였던 네즈 마쓰코는 가세가 기울어져 갔던 시기에 정략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이를 지켜 보았던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으로 부터 해방 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 잡히고 두 사람은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마흔 한 살 생일 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스물 다섯인 마쓰코와 결혼 도장을 찍고 서로 부부가 된 그날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자신을 하인으로 불러 달라는 계약서를 내민다.


준이치로는 절대로 아내 마쓰코 보다 먼저 밥을 먹거나 숟가락을 들지 않았고 그녀가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앉지 않았다.

아내가 식사를 할 때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야 밥을 먹었다.

 
'이처럼 슌킨은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였지만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심술궂게 행동하지 않았다. 유난히 사스케를 대할 때만 그녀의 심술이 심해졌는데 원래 그런 기질이 있는 데다 사스케만이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기에 그를 가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스케 또한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필시 그녀의 유난스러운 심술을 응석으로 여기며 일종의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슌킨 이야기> 중에서 


세번째 결혼한 아내와 주종 관계를 맺은 준이치로는 아내 마쓰코를 관찰 하며 <슌킨 이야기><장님이야기> <갈대 베기>를 집필한다.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 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 주는 유일한 별, 여자 없이는 내게 시도 예술도 없다. 마쓰코... 내 육신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나의 삶, 나의 사상, 이념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다.'



준이치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세키'를 항상 그리워 했다.

대단한 미모에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결혼 생활로 인생의 빛을 발하지 못했던 어머니 '세키'의 삶의 조각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 시키며 유년 시절의 기억의 조각을 맞춰 나갔다.


1942년에 발표한 작품 <세설>은 마쓰코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탄생 되지 않았다.

준이치로는 <세설>이라는 작품 이전인 1910년대 발표한 작품에는 여성 숭배, 페티시즘,마조히즘에 몰두 하며 발에 집착하는 변태 성욕자들을 등장 시켰다

1923년 어머니의 외모를 쏘옥 빼닮은 마쓰코, 그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 하고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에 몰두 한다.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집필 구상을 마친 <세설>은 아내 마쓰코의 실제 자매들의 모습 속에 간사이 지방의 상류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세설>은 셋째 유키코의 혼담 문제가 중심이지만 사계절의 흐름을 통해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일상을 영상기를 돌리듯 펼쳐 보인다.
 












'이곳 아시야 부근은 원래 대부분이 숲이나 밭이었는데 다이쇼 말 무렵부터 조금씩 개발한 땅이다. 그래서 이 집의 뜰도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옛 모습을 전해 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세 그루 들어서 있고 서 북쪽으로는 이웃집 정원수들 너머로 롯코 일대의 산이나 구릉이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유키코는 우에혼마치의 큰집으로 돌아가 너댓새 있다가 돌아오면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생기에 넘치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녀가 지금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쪽으로는 잔디밭과 화단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동산이 꾸며져 있다. 그 동산에는 희고 가느다란 꽃이 달린 공조팝 나무가 정원 석 사이에 있는 마른 연못으로 드리워져 있고 연못가에는 벚꽃과 라일락이 피어있었다. 벚꽃은 사치코가 워낙 좋아하는 꽃이라서 비록 한 그루라도 뜰에 심어 집에서 꽃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 두세 해 전에 심은 것이다. 벚꽃이 필 때는 그 나무 밑에 의자를 내놓고나 모포를 깔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매년 꽃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라일락은 눈처럼 만발해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라일락 나무 서쪽으로는 아직 움이 트지 않은 백단향과 벽오동이 있고 그 남쪽으로는 프랑스어로 <세렌거>라고 하는 일종의 관목이 있었다. 유키코의 프랑스어 선생님인 쓰카모토 부인이라는 프랑스 사람은 자기 나라에 흔한 세렌거 꽃을 일본에 와서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뜰에서 보니 신기하다면서 아주 정겨워했다. 그래서 유키코도 이 나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고, <세렌거>가 일본어로 는 <사쓰마우쓰기>라는 댕강목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꽃은 항상 공조팝나무나 라일락이 진 뒤, 별채의 울탈 옆에 있는 황매화나무와 거의 동시에 피어서 이제야 겨우 어린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쓰마우쓰기> 너머는 슈토르츠 씨네 뒤뜰과의 경계라서 철망을 쳐놓았는데 그 철망을 따라 벽오동 아래 잔디밭에 오후 햇볕이 화창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준이치로의 <세설> 중에서 


<세설>은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라 선다.

80세로 생을 마감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는 여자를 나보다 높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우러러 볼만한 존재가 아니면 여자로 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


1960년 <세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샤르트르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다른 일정을 미루어 놓고 준이치로가 묻혀 있는 곳부터 찾아 갔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들 시냇가 풀숲으로 쭈욱 들어가 보았다. 그 주변은 희미한 어둠에서 시시각각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 가는 미묘한 때였다. 그때 양쪽 기슭의 수풀 속에서 반딧불이가 휙휙 참억새 높이로 낮게 활 모양을 그리며 시내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한줄기 시냇물을 따라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한없이 양쪽 기슭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거진 키 큰 풀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위쪽으로는 날아오르지 않고 물을 쫓아 낮게 날아다닌 탓이었다.

새까맣게 어두워지기 직전 움푹 들어간 시냇물 수면에서 짙은 암흑이 기어 올라오고 아직도 근처의 풀이 움직이는 모양이 어슴푸레하게 시각에 느껴졌을 때였다. 멀리멀리 이어지는 시내 끝까지 무수한 선을 그리면서 양쪽으로 뒤섞이며 점멸하고 있던 유령 같은 반딧불은 지금도 꿈속에 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는지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정말 오늘 밤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것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를 보러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반딧불이 잡이는 꽃놀이처럼 회화적인 것이 아니라 명상적인 것이라고 해야 좋을 것인가. 그런데도 옛날이야기 속 세계처럼 어린아이 같은 면은 있지만..... 그 세계는 그림으로 그리기보다 음악으로 연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토나 피아노로 그런 느낌을 작곡한 것이 있어도 좋을 텐데.....'

-세설 중에서

<세설>은 1940년대 이전의 일본 문학에서 무시되고 멸시 되고 간과 되었던 여성의 모습, 그녀들의 일상과 문화를 한 순간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 처럼, 가볍게 흩날리는 가랑 눈 처럼 세파의 폭풍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섬세한 필체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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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마이라 칼만 지음, 진은영 옮김 / 윌북아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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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무얼 가지고 있나?

집과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음식.

친구 관계.

일.

세상의 일.

그리고 인간 다워지는 일

기억들.

근심거리들과

슬픔들과

환희.

그리고 사랑.

내 친구(남자)가 말했다.

내 어휘집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별히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그럴 땐 수많은 사람을

내가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온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어떨 땐, 작은 방조차 겨우 가로지른다.

나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다. 얼어버린다.

우리 할머니는 늘 땀에 젖어 계셨고

항상 궁지에 몰린 것 같았다.

아마도 자기가 사랑한 남자와

결혼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가졌다가 기진맥진하고

낙담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이 차오를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누구든 어떤 날에든 그럴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 순간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당신은 시간을 찾자마자 더 많은 시간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을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 그리고 절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너무나 이상하다.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죽는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

- 마이라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에서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은 매일 무언가 쥐고, 만지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로 삶을 짓누르며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덩어리들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양배추 크기였다면 매일 몇 장씩 잎을 떼어내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 해서 전부 씹어 삼켜 버릴 수 있다.

양배추를 가지고 있었을 때와 양배추 한 덩어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났을 때의 마음 상태가 다르듯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금전이나 물건도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행복을 어떻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흐를 수록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정작 삶의 소중한 시간은 허비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놓치는 동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도 하며, 어깨 위에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의 무게를 벗어던지기 위해 인생을 행운의 날벼락 같은 숫자에 맡길 때도 있다.

산책 하듯 강변 길을 걸어 가면  꿈의 숫자,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쏟아내는 행운의 명당 판매점이 있다.

 경제가 나쁠 수록 불티나게 팔리는 건 저가형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그리고 로또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일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로또를 살 때 마다 '혹시 모르지, 당첨될 지도 '라는 꿈에 잔뜩 부풀러 오른다.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꽤 만족스러울 때면 내 몸 하나 온전히 버텨 내는 것 만큼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 같다. 

취업난, 월급난, 물가난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 속에  커피 한 잔 값으로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며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어떤 것을 가졌다가 낙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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