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BTS 멤버들이 향하는 보라색 여정은 모든 것이 시작된 상징적인 주문진 BTS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된다.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아리랑' 퍼플 버스의 여정! 💜

BTS 멤버들과 함께 어서! 빨리 퍼플 버스에 탑승

가장 먼저 '군용 폭탄 숲'을 지나 광화문에 도착하게 될 일곱명의 BTS멤버들은 역대 최고의 공연을 펼칠 것이고 전세계 아미와들과 빛나는 재회를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마친 BTS멤버들을 태운 버스는 다음 도시로 향하고 그들에게 공연은 여정 그 자체이 글로벌 오디세이 제국을 위한 대망의 여정의 시작이다.


대한민국의 심장 경복궁에서 출발한 7명의 BTS 멤버들을 태운 보라색 버스는 보랏빛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를 따라 국경을 넘어 그들이 질주 하는 곳 마다 보라빛으로 물들어 가는 마법이 펼쳐질 예정이다.

BTS와 함께 '아리랑' 투어 버스를 타고 달빛 가득한 경복궁에서 빛나는 N서울타워까지 보라빛으로 물든 BTS의 성지를 둘러 보며 노래와 춤, 뛰어난 무대 예술을 온 몸으로 느껴 보자!

미션: 영상 속 숨겨진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부터 곳곳에 숨겨진 숫자 '7'의 상징, 마법의 숲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까지.. 영상의 모든 장면에 숨어 있는 '이스터 에그'를 발견 하는 순간! 온 몸의 혈관 색이 보라빛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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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3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창립 맴버로 1980년에 발매한 싱글 “Riot in Lagos”는 초기 일렉트로닉과 힙합 장르의 요체가 되었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전 세계 전자 음악과 하우스 장르 음악의 붐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1980년대 미래 과학 기술이 인간 개인의 삶을 통제 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 가사에 담았을 정도로 시대를 예견 했던 선구자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카상을 타면서 전 세계인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게 되었다.











2015년 일본 치쿠마 출판사 문고본으로 발행된 <skmt 사카모토 류이치는 누구인가>라는 인터뷰에서 그는 '기억의 회로'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기억에는 독특한 회로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햇빛이나 색, 질감, 공기…. 그것들이 한꺼번에 상기되어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는 없고 기억 속에만 있는 어떤 풍경을 떠올리는 마음의 상태 나는 모종의 영화를 봤을 때라든지 모종의 음악을 듣거나 모종의 그림을 봤을 때 그것과 비슷한 감각이 생길 수 있어요. 뭔가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뇌의 화학적인 상태라는 것은 독특하고, 어딘가에 잘 쓰이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갑자기 다시 활성화돼서 나오는... 예술이란 '그리움'과 결부 되어 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예술이 '그리움'과 결부 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음악가를 향한 그리움을 나의 예술 파트너 제프-3.0과 영상으로 제작 했다.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가가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던 병실의 하늘, 그리고 건반 위에서 힘이 풀리던 그 찰나의 선율의 '마지막 울림'은 공명의 시간 속으로 순간 이동 하여 부유 하는 먼지와 프리즘 광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거장이 남긴 음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빛의 입자가 되어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르고 있는 공간이다.



'하나의 음으로 음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개 이상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소리에서 멜로디나 양식이나 비트가 생겨나서 음색의 조합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두 개의 음 이상을 넘어서면 소리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됩니다.

따라서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시간이라는 직선 위에 작품의 시작 점이 있고 종착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저에게 시간은 오랫동안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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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 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 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삼각 지대'라고 해도, 이른바 델타 모양을 연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살던 '삼각 지대'는 훨씬 가늘고 길어 쐐기 같은 모양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면, 우선 완전한 사이즈의 둥근 치즈 케이크를 머리에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 리고 그것을 칼로 12등분해 주기 바란다. 즉 시계의 문자반 같은 모양으로 잘 라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끝이 뾰족한 부분의 각도가 30도인 케이크 조각 열 두 개가 만들어진다. 그중의 하나를 접시에 담아, 홍차라도 마시면서 차분히 바라봐 주기 바란다. 이것이 ㅡ이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케이크 조각이ㅡ 우리의 '삼각 지대'의 정확한 모양이다.

이야기의 시점은 1973년에서 1974년 사이로 서로 다른 종류의 두 개의 철로가 뻗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땅에 지어진 집에  살게 된 젊은 부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단락에 '삼각지대'의 지형과 주변 환경을 간결하면서 상세하게 묘사한다.

 현관 문을 열면 눈 앞에 열차가 달리고 있고, 뒤쪽 창문을 열면 거기도 다른 열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승객과 눈이 마주쳐 인사할 수 있을 정도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독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단편을 읽을 때면 학부 시절 기숙사 창문을 열면 바로 눈 앞에서 전차가 지나갔던 풍경이 떠오른다.

첫 학기에 살았던 기숙사 시설에 문제가 생겨서 대학 인근 캠퍼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숙사에 잠시 살게 되었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 전 층에 빈 방이 없어서 메이트가 없는 학생이 살고 있는 방으로 이사해야 했다.

갑작스런 이사였지만 단 2주만 머물 예정이여서 트렁크 하나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길 건너편 기숙사로 이사를 갔다.

당시 내가 머물렀던 층은 그라운드 플로어(ground floor)로 한국에서는 1층이고 영국에서는 2층부터 세컨드 플로어라 부른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귀찮았던 나는  그라운드 플로어(ground floor)층을 선택했다.

관리실에서 열쇠를 받아 복도 맨 끝에 위치한 방에 노크를 하니 일본인 학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첫 인사를 나누고  트렁크만 덜렁 내려 놓고 급히 수업을 들으러 갔기 때문에 그 방의 상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 온 늦은 시각에 띠링, 띠링 전차가 달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더니  바닥과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대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굉음이 10분 간격으로 울렸다.

막차가 끝나는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방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엄청난 소음에 충격을 받은 나에게 일본인 학생이 이 방에서 머무는 동안 아침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

정확히 새벽 5시 30분, 엄청난 굉음 소리를 내는 전차의  바퀴가 내 몸 위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막차가 지나가 버리면 그 다음은 조용하지 않냐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실제로 이사를 올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 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막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객 열차가 새벽 한 시 전에 모든 운행을 끝내 버리면, 다음에는 심야에 운행되는 화물 열차 들이 그 뒤를 이어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까지 화물 열차들이 모두 지나가 버린 뒤에는 이튿날의 여객 수송이 시작된다. 이러한 일들이 매일 되풀이 되는 것이다.

아이고 맙소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의 가난> 중에서 

그 방을 나가면서 '딱 2주만 참자. 참자.'라는 말을 되내였지만 수업 도중에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도 귓속에서 굉음이 수시로 진동했다.

친구들에게 방 창문을 열면 전차 바퀴가 보인다고 하자  신기하다며 그 날 모두들 그라운드 플로어에 있는 방으로 몰려 왔다.

친구들은 방 안에 발을 들여 놓자 마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친구는 다른 방에 침낭을 놓고 지내지 않으면  이 끔찍한 소음에 자칫 난청에 걸릴 수 있다는 무시 무시한 말을 했다.

"딱 2주만 참으면 돼."라며 나는 고집을 피웠고 매일  막차 시간이 가까워져서야 기숙사로 돌아 왔다.

굉음에 견디기 힘들어 하는 나와 달리 그 방에 살고 있던 일본인 학생은 너무나도 평온한 상태로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알람 없이  첫 차가 달려오는 시각에 일어나는 그 학생은 내 눈이 믿기 힘들 정도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했다.

명상이 끝나면 자그마한 종이를 들고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웠고 이 모든 의식이 끝나면 간단한 요가를 하고 샤워실로 갔다.

입 속에 무언가 넣는 것 조차 힘겨울 정도로 전차가 달릴 때마다 창문의 유리창이 흔들렸고 책상이 흔들렸고 심지어 천장에 붙어 있는 전등까지 깜빡 거렸다.

"곧 무너질 것 같아."

"걱정 마.절대로 무너지지 않아, 빅토리아 시대 때 시공 해서 2차 대전 독일 공중 폭격에도 살아 남은 건물이거든."

 일본인 친구는 모든 소음에 달관 한 듯 다도 용기와 다구를 꺼내 놓고 차를 준비했다.

그 친구가  녹색 가루를 개어낸 물에 가느다란 대나무 솔로  휘저을 때도 전차는 수시로 벨을 울리며 달렸고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바닥과 천장이 요동 쳤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가 차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보며 그 차를 함께 마시는 동안 굉음에 개의치 않게 되었고 그 이후로   새벽 첫 차 출발 소리만 들어도 두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방에서 사는 동안 일본인 친구와 나는  열차가 달려 오기 시작하면 대화가 끊어 졌다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모종의 이 방에 사는 규칙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모든 행동이 열차 시간에 맞추게 되었다.

소음을 제외하면, 집의 분위기 자체는 꽤 나쁘지 않았다. 구조는 확실히 고풍스럽고 전체적으로 파손되어 있었지만, 도코노마(일본식 방의 상 좌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 을 놓아 꾸민다. 보통 객실에 꾸밈)나 덧문 밖의 툇마루 등이 있어 좋은 느낌을 주었다. 창문으로 비쳐 드는 봄의 햇살이, 다다미 위에 작고 네모진 '양지' 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유사했다.

"이 셋집에 들기로 하지. 시끄럽긴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치즈케이크 모양의 가난> 중에서 

실제로 그 기숙사는 바로 앞에 전차가 달리는 것을 제외 하면 주변 환경은 쾌적했다.

길 만 건너면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는 공원이 펼쳐 졌고 내리막 길을 따라가면 강변으로 갈 수 있어서 걸어서 시내 중심까지 단번에 갈 수 있었다.

" 소음은 잠시 뿐이야. 모든 건 지나가 버려"

기숙사 밖 주변 환경에 막 적응 하기 시작 할 때 쯤에 2주의 시간이 끝났다.

윗 층에 살던 친구들은 드디어 녹물이 나오는 곳에서 해방 되었다며 이른 아침부터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방을 떠나는 날, 그 일본인 친구는 내가 쓰던 책상에 일본 말차와 쪽지를 남겨 놓았다.

몇 해전 그곳을 다시 찾아 갔을 때 기숙사 건물은 그대로 있었지만 열차 선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려가는 반듯한 도로가 놓여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곧바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지만 곧바로 알 수 없는 것은 마치 열차가  몇 번을 오고 간 뒤에야 서서히 알게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일들이 선명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시절엔 오로지 그 방을 선택한 내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능한 방에서 머무는 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 굳이 필요 없는 약속을 잡거나 할 일 없이 거리를 배회 하거나 도서관에 앉아 긴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의 말처럼 소음은 잠시 뿐,모든 건 지나가 버린다.

이따금씩 흔들리는 열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바라 볼 때나 창틈으로 새어 들어 오는 옅은 풀 냄새를 맡을 때면 지난 시절 온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요동쳤던 그 방이 떠올라 하루키의 단편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작품이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키의 단편 <치즈케이크 모양을 한 가난>을 일본어 원서와 영어 원서를 대조 비교 번역하고 편집 그리고 각색하고  배경음악까지 삽입해서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탄생 시켰다.

앞으로 하루키의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누구나 공감 할 수 있게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펼쳐 보일 것이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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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채널을 구독하고 나서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구독 채널을 누르면 밤 사이 새로운 영화와 드라마 예능들이 주르륵 나온다.

이 영화도 보고 싶고 이 드라마 시리즈도 정주행 하고 싶어서 화살표 버튼을 빛의 속도로 누르고 나면 뒤이어 주르륵 나오는 영상물은 재미가 없어 보인다.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서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들,최근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좋아 하는 예능인이 나오는 토크쇼를 차례 차례 클릭 하고 1.25배속에서 1.5배속을 오간다.

1시간을 채 넘기지 않고 드라마 시즌 1을 정주행으로 몰아 보았고 얼마 전에 영화관에 개봉되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엔딩 OST가 흘러 나오는 것 까지 보고 나서 여행 채널을 가장 빠른 속도로 감아 보다 가보고 싶은 장소가 나오면 정상 속도에 맞춰 놓고 본다.

여행지에서 설명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려서 소리를 없애고 자막처리 기능 버튼을 누르자 이국적인  풍경이 더 선명하게 보이니 자막은 거의 읽지 않는다.

프리미엄 구독료를 알차게 소비 하려면 매일 여러 편의 영상물을 가능한 많이  봐야 하기 때문에 가성비에 맞는 시간을 절약 하기 위해서 영상물을 볼 때 마다 1.25배속에서 1.5배속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보는  내가 비 정상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고물가 시대에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알차게 소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효율을 극대화 해서 합리적인 삶을 영유 할 수 있어야 한다.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도  조리의 간편함과 함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가성비 대비 가격이 합리적인 것을 선호 하게 되었고 자동차를 몰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대형 쇼핑몰에서 필요한 것을 구매 하느라 하루 반나절을 소비 하지 않아도 쇼핑앱 클릭 하나 만으로도 필요한 소비를 모두 해결 할 수 있는 시대다.

드라마나 영화, 미술 같이 시간을 들여서 감상 했던  문화가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으로 접속만 하면 어떤 영상물이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양이 폭발적이게 늘어났다.

릴스나 숏폼, 틱톡 같이 1분 남짓한 영상만 봐도 필요한  정보를 흡입 할 수 있는 시대에 유튜브의 영상 시청 시간은  8분이 마지노선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1.5배속’ 조절 기능이 2020년 7월 출시되자 마자 영화계와 드라마 제작사 측은 콘텐츠의 작품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큰 논란이 되었지만 2000년대 부터 쏟아지는 다양한 영상물을 흡입하며 일찌감치 빨리 보기 기능을 선호 하게 된 소비자들은 이 기능에 대 환영했다.

제작자들과 창작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나 연극, 혹은 영상 '작품'이 한 조각이 되는 '콘텐츠'로 대치 되고, '감상'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단어가  '소비'라는 일상의 것으로 치환되었다.

본래 영화는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  소비자들이 한 끼 식사 비용을 지불하고 비싼 영사기와 최신식 스테레오가 틀어주는 영상과 소리를  긴 시간 동안  봐야 하는 수동적 콘텐츠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변해 버린 여러 일상들이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찾아보는' 방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따라서  영화를 잘게 편집해 10~20분 내외의 요약 콘텐츠를 보고 전체를 감상할 영화나 드라마를 골라 보다가 생각 보다 재미가 없다고 느끼면  건너뛰거나 빨리 감아 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고 나서  영화관에서 부동 자세로 2시간을 앉아서 영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대폭 줄어 들고 있다.

이는 인내심이 부족 하기 때문이 아니다. 업무처리 부터 일상의 모든 것을 스마트 폰으로 해결하고 확인하고 주문하는 시대에 2시간 동안 새 알람을 체크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일과 가정 그리고 학교에 문제가 발생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초초감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현 시대 사회 변화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숙성 시키기 보다 매 시간을 빈틈과 완충 지역 없이 빡빡하게 설계 해서 다량의 자극적인 콘텐츠 소비물을 쏟아내어 영화표 한 장 가격에 무제한으로 영상물을 소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상의 콘텐츠가  '헐값'이 된 지 오래다.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콘텐츠를 스트리밍 하는 OTT를 구독할 수 있기 때문에  '가성비'는 '품질'의 문제가 아닌 지불한 가격 만큼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영상물을  많이 봐야 시간 대비 성과까지 챙기며  남들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추세는 영화나 드라마의 콘텐츠의 미학적 질도 저하 시키게 되었지만 어쨌든 만 원 한 장이면 두툼한 세계사 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고 죽기 전에 봐야 하는 100편의 명작 영화도 빨리 감기로 봐서 이 전 보다 더 많은 영화의 이름과 스토리를 대충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세월의 먼지가 쌓인 묵직한 고전 보다 단순한 스토리 전개, 통속적인 스토리, 손 끝 터치 하나 만으로 소설 한 편을 뚝딱 읽을 수 있고 종이책 여러 권을 탑처럼 쌓아 놓지 않아도 손으로 넘겨 보지 않아도 다양한 장르의 만화와 웹툰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나는 더 이상 방구석에서 글만 쓰는 글쟁이 무명의 창작자가 아닌 나만의 영상 채널을 펼쳐 보이기 시작 했다.

[뇌는 무언가 소유하기를 원치 않는다. 심지어 새로운 물건을 소유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다만 새로운 대상을 갈망하고 이를 손에 넣는 ‘과정’을 즐길 뿐이다.]

-모건 하우절의 <돈의 방정식> 중에서

2026년 1월 27일 부터 시작한 첫 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moveablefeast-scott

'moveablefeast-scott' 채널은 예술과 문학, 일상의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든 예술'의 과정을 탐구 하고 있다.

두번째 채널 아티스트 웨이 https://www.youtube.com/@loving-scott

두 번째 채널 아티스트웨이는 창작의 결과물이 우리 식탁과 반려 동물, 일상에 어떻게 변주 되어 일상의 예술을 구현 할 수 있는 지를 탐구하는 영상에 집중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브레이밍을 하고 스크립트를 구상하고 각본과 시나리오를 쓰기 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

온갖 영상 채널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누가 내가 만든 영상을 보게 될까?라는 걱정을 하면서도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고 있다.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해서 개인 채널을 운영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나의 우상 중 한 명인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다.

1991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객원교수로 초빙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1년 뉴욕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1년 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 하기 위해 하루의 시간을 강의 준비-번역/잡지에 기고하며 에세이 쓰기-달리기로 시간을 배분하고 차근 차근 몸 만들기 준비를 해나갔다.

1991년 11월 3일에 뉴욕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3시간 31분 26초의 기록으로  완주 했고 1년의 시간이 지나 1992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 38분 20초 기록을 세웠다.

하루키는 50세가 되던 해인 2000년 부터 풀 마라톤 코스에서 4시간을 넘겼고 2012년 60세를 넘겼을 때부터는 5시간을 넘기며 1991년에 기록한 3시간 완주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70세에 들어서서는 6시간을 넘겼고 2022년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서는 6시간 59분을 기록하며 7시간 대로 진입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 수록  하루키는 40대 시절에 세운 기록을 넘어 서지 못하고 있지만 마라톤을 시작 한 이래로  2년에 한 번씩 보스턴 마라톤 대회와 3년에 한 번 뉴욕 마라톤 대회 그리고 1년에 한번 하와이 마라톤 대회에서 꾸준히 달리며 날씨가 궂은 날에는 집과 전용 스포츠 센터에서 몸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하루키가 70대에 들어섰을 때 오랜 투병을 하셨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그 다음 해에 가장 절친했던 동료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 시기에 하루키는 라디오 방송을 집에서 방송했고 레이먼드 챈들러, 카포티, 재즈 평론가, 피츠제럴드의 후기 단편 모음집을 번역했고 단편과 장편 소설도 완성했다.

이렇게 왕성하게 집필과 번역, 라디오 진행과 여러 대외 활동을 하는 동안 하루키의 동년배들이 노환으로  요양원에 가거나 심각한 질환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장기 입원을 했다.

 갓 60대에 접어든 하루키가 진행하는 라디오의 프로듀서가 지난해 갑작스럽게 떠난 지 몇 달 후 하루키도 병원에 입원했다.

어린 시절부터 감기나 몸살, 골절 같은 자잘한 부상이나 질병을 앓지 않았던 하루키는 타고난 건강한 체질을 자부해 왔지만 지난해 몸무게가 무려 18킬로나 빠질 정도로 크게 앓았다.

건강을 회복한 하루키는 2024년 부터 쓰기 시작했던 새 단편 <카호>를 2025년 12월에 완성해서 이번 여름 출간을 예정하고 있다.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만사가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 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하루키는 더 이상 마라톤 대회에 출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크게 아프고 나서 비로소 더 깊은 창작의 심연에 빠질 수 있다고 고백했다.

단  한 번도 소설가를 꿈꾼 적이 없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계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에 안주 하지 않고  여전히 글을 쓰며 창작 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키가 창작의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동안 나 역시 창작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직접 연출 각색하고 편집한 하루키에 관한 영상이 'moveablefeast-scott' 채널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com/shorts/jsCXcIF40FQ?si=J6e65qajEn_IgExD

https://youtu.be/zLHZVjkKlYA?si=wro0XeQiKZPSvV_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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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6-02-19 0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scott님께서 유튜브를 시작하셨다니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구독하고 자주 시청 할께요. 믿고 보는 채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새해에 복된 일 많이 생기시고 하시는 모든 일 원만하게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scott 2026-02-19 10: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마힐님의 응원 진심으로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첫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moveablefeast-scott

‘moveablefeast-scott‘에는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스크립트를 작성해서 영상과 애니를 제작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영상 편집 음성 녹음을 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두번째 채널 아티스트 웨이는 https://www.youtube.com/@loving-scott
제가 직접 가 본 도시와 살았던 나라의 주요 명소와 풍경을 직접 찍은 영상을 올리고 있고 좋아하는 것들 레고-편의점 같은 놀고 만지고 먹는 것들 그리고 명화 작품에서 영감 받은 것을 접시 위의 예술로 펼치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제법 추위가 풀려서 햇살도 따스한 2월입니다
마힐님 계신 북경에서 건강 잘 챙기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루피닷 2026-02-19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개 채널 다 구독했어요
화이팅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님

scott 2026-02-20 00:19   좋아요 0 | URL
오랫만이에오 루피닷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북플 피드백에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6-02-20 0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유튜브 채널을 만드셨군요?
금방 가서 보고 왔는데 멋지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도 구독합니다.
번창하시길^^

scott 2026-02-20 14:59   좋아요 0 | URL
채널 운영 시작한지 몇 주 되지 않아서 미흡합니다
나무님 구독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지음 / 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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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즌 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들 모두 "서바이벌' 장르다.

몸 근육을 쓰는 것 부터 노래를 부르는 오디션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다 경쟁하는 한국인들에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마치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생존 경쟁을 담은 서바이벌 서사에 열광한다.

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왔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에 이어서 시작된 시즌 2는 특이하게도 결승에서 만난 백수저 최강록과 흑수저 이하성의  수저 색깔이 뒤바뀐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중퇴한 최강록 셰프는  군 제대 후 음식점 알바를 하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요리 만화에 빠져  요리를 시작했지만  창업과 실패를 반복하다 서른이 다 돼 가게를 접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귀국해서 시작한 가게 적자로 폐업하고 생계를 위해 참치 무역 회사에 들어가 회사원으로 일하다 술김에 지원서를 낸 ‘마스터 셰프 코리아2’에서 우승을 차지 하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자신의 요리 인생을 '척하며 살아온 세월'이라고 말하는 최강록 셰프는 술김에 던진 지원서 한 장으로<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자가 되었고 13년의 세월이 흘러  흐른 2026년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의 '히든 백수저'로 돌아와 최종 우승자 자리에 올라섰다.

 온갖 양념과 현란한 조리 기술 대신 "사실은 잘하는 척하며 살아왔다"라고 말하는 겸손함에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최강록 셰프는 우승의 환호성 열차에 올라타서 온갖 예능 무대에 얼굴을 내밀거나 재간 넘치는 말솜씨와 개그가 섞인 요리 솜씨를 뽐내지 않는다.

우승의 기쁨을 맘껏 누리며 초고속도로 올라가는 인기 코인에 올라타지 않은 최강록 셰프는 인터뷰 자리마다  요리를 하는 매 순간 마다  무섭고 떨린다고 토로 한다.

음식을 향한 고집스러운 순정이 배어 나오는 그의 느릿한 말투에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태우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경연에서 최종 우승자로 대중의 엄청난 주목과 관심을 받아도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을 완성하고 탈락을 피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요리 서바이벌의 살벌한 전쟁터에서 맷돌에 재료를 넣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곱게 갈아내듯 조리한 최강록 셰프의 요리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하면서도 조리고 조려서 국물을 다 날려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은 재료에 깊은 맛을 더해  끝내 살아남은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준 음식으로 완성 시켰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화려한 스펙을 쌓기 위해 미친듯이 몰두 하고 질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는 척, 있는 척, 잘 하는 척하며 사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질주 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경쟁 속에서  마음을 조리면서도 책망하거나 안달 복달 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 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경쟁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한 최강록 셰프는 단 하나의 요리에 3시간의 정성을 다 쏟아부어 자신의 눈물과 땀이 배어 있는 인생 요리를 완성 했다.

인간에게 먹는 행위는 단순하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입안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동안 그 시간은 하루 중 최고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한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건 생선회를 조리 하는 데도 필요한 말이지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 진지하되 두려워하지 말 것.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최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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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2-05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자기 속도대로 살기 어려운 시대기는 해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좋을 듯해요 요리도 경쟁하는 시대군요 예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