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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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일시 정지 되었다.

동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지역 하청회사에서 25년 동안 근무 했던 다쓰로는 원자력 규제 위원회에서 새로운 규제 기준을 통과 시키며 일본 열도 전역의 원자력이 재 가동이 되었다.

다쓰로는 원자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이 완전히 해소 되지 않은 시기에 더구나 폐원전 처리 문제도 해결 되지 않은 채 미봉책으로 원자력을 재 가동 시키는 정책에 큰 불만을 품고 회사를 그만둔다.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원자로 일을 하겠다며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해서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후쿠시마를 찾아간다.

지진 발생이 후 단 한번도 후쿠시마 땅을 가본 적이 없었던 다쓰로는 해변에 날아드는 연의 방향에 이끌려서 차에서 내리고 연이 날리는 방향을 쫓아간다.

[100미터 정도 앞에서 나이 든 남자가 연줄을 당기고 있다. 몇 명 정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달랑 한 사람뿐이었다. 연은 육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으며 바다 위에 떠 있다. 겨울의 전조처럼 서늘한, 북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서풍이다.]

-10만년 뒤의 서풍 중에서


연이 날리는 방향으로 따라간 다쓰로는 연을 날리는 남자를 만나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연을 날렸던 미국산 '게일러 카이트'연이라는 걸 알고 친근감을 보인다.

후쿠시마 해변가에서 연을 날리는 남자의 이름은 다키구치, 그는 쓰쿠바 기상청 기상 연구소에서 일하다 퇴직한 후 취미로 연을 날리면서 습관처럼 기상을 관측하고 있었다.

다키구치는 기상청 근무 당시 고층 기상 관측 전문가로 라디오존데라는 관측 장치를 기구에 달아서 상공으로 띄워 넣고 예보에 사용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했었다.

기상 관측 연구가인 다키구치는 1930년대에는 연에 온도계를 달고 기상을 예측하는데 이용했다며 다쓰로 앞에서 직접 시연을 해 보인다.

그는 매일 해변에서 연을 날리며 레이더도 기구도 드론 같은 최첨단 기상 관측 기기가 아닌 연 줄을 타고 손으로 느껴지는 상공 공기의 감촉과 온도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예측하고 습관처럼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다.

다쓰로는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연을 날리며 기상을 관측하는 다키구치가 동일본 후쿠시마 지역에서 원전이 있었던 도미오카마치를 갈 예정이라는 말에 원전 회사에 다녔었다는 말을 꺼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다쓰로는 보수관리과 과장으로 승진해서 9월 말에 발생 했던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 격납시설에 문제가 생겼는지 점검을 나섰다.

진도 4지진 발생으로 원자로의 안전 장치 역할을 하는 필터 벨트에 뒤틀림을 발견한 다쓰로 팀은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부장은 새로운 규제 기준에 근거해서 진도 4정도로 배관이 손상되었다는 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니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하고 문제가 발생했던 원자로의 일시 가동 중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원자로 전력회사의 하청 회사에 소속된 다쓰로는 상사의 지시로 보고서를 수정한다.

그렇게 보고서를 수정하고 나서 리히터 규모 7.3 의 지진과 지진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분명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언젠가 어디선가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뒤바뀐 치명적인 인재 사고 였다.

다쓰로는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가 평생 동안 자랑스러워 했던 2호기 필터벨트의 뒤틀림 보고서를 수정한 직원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족이 사회로 부터 받을 막대한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원전 사고 이후 폐원자로 처리 시설회사 일을 시작한 다쓰로는 원전 사고 유출 발생 지점 근처에서 날리던 연을 따라 서풍으로 이동해서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부대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 전선에 날릴 계획을 세웠던 풍선 폭탄의 이야기까지 흘러 간다.

수소 가스를 채운 직경 10미터 짜리 기구에 소이탄과 폭탄을 매달아 지상의 기지에 띄워서 기구가 상공에 강한 편서풍을 타고 이틀 밤 낮으로 날아 미국 본토 서해안에 자동적으로 폭탄을 투하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943년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는 300여명이 매달려서 기압계를 탑재한 정밀한 고도 유지 장치, 영하 50도에 달하는 상층 공기를 견딜 수 있는 내한 전지를 풍선 기구에 설치 해서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군수품 제조 공장과 극장, 학교에서 학생들을 끌어다 놓고 풍선 폭탄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1944년 11월 편서풍이 불기 시작했던 날 일본 군부대는 풍선 폭탄을 날려 버릴 기지를 태평양에 면한 해안 세 곳에 설치한다.

후쿠시마현의 나코소, 지바현의 이치노미야 그리고 이바라키 현의 오쓰에서 1945년 4월까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풍선 폭탄 기구를 발사한다.

당시 발사된 풍선 기구는 총 1만 발로 약 천 개의 풍선 기구가 미국 본토까지 다다랐다.

일본 군이 날린 풍선 폭탄은 미국 오리건주 마을의 숲과 공원에 떨어져서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군부대 소속 노보리토 연구소의 생물 병기 부서에서는 탄저균과 적리균, 우역 바이러스를 풍선 기구에 매달아서 미국 본토로 날려 버린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기상학자 아라카와 히데토시는 기구를 발사하는 고도와 적절한 계절과 바람 ,발사 지역 그리고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시간과 확률을 계산한다.

1944년 10월 말 오전 3시 풍선 폭탄에 세균을 장착한 기구를 날릴 준비를 갖추고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난 오전 5시 소대장이 '발사' 명령을 내리는 순간 풍선 폭탄은 날아 오르지 못하고 지면에서 폭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풍선 폭탄 사고로 고층 기상대 데이터를 계산하는 중앙 기상대 기수들이 사망한다.

풍선 희생자들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서 다쓰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 지난 시절 아버지와 함께 날렸던 연 세트(게일러 카르트)를 구매 했다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 폐기물은 지하 500미터까지 갱도를 파서 사용 완료된 핵원료를 특수한 재료로 덮어 묻는다. 이런 핵폐기물 처리는 인간이 고안해 낸 방법 중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10만년 동안 폐기물이 지상으로 올라 올 경우가 없다며 원자로 가동에서 나오는 모든 핵 폐기물 처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후 이상 변화로 지구는 나날이 뜨거워 지고 있고 북극과 남극의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서 바닷물 수위는 올라가고 있다.

열을 감지한 지변이 흔들리고 계절의 순환은 뜨거운 여름이 지속 되어 강렬한 햇볕과 장기간 무서운 양으로 내리는 비의 양으로 인간들이 파 묻어 놓은 핵폐기물 시설이 10만년을 버텨 낼 것 같지 않다.


고베 대학에서 지구 과학을 전공하고 도쿄 대학에서 지구 행성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요하라 신은 1998년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단편으로 네뷸러 상을 수상한 컴퓨터 전문가 테드 창의 작품을 읽고 대중들의 시선에 맞는 픽션같은 과학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2003년 부터 도야마 대학 이학부 조교로 근무하면서 안정적인 일을 하게 된 이요하라 신은 2008년 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1년 만에 완성한 첫 번째 소설< 두번째 보름달>로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 마다 우리 일상에서 발생하고 마주 할 수 있는 과학적 현상과 기술을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과 연결 시키며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서점 직원들의 추천서에 이름을 올리는 인기 작가가 된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마치 과학자가 일련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가이드처럼 대화로 묘사로 풀어나가는 이요하라 신의 작품들은 SF장르에 속하지 않고 미스터리로 분류 된다.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은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과학적인 현상과 자연의 변화를 정확한 명칭과 장소를 제시 하며 마치 과학 잡지에 실리는 개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듯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 보인다.

과학자인 이요하라 신은 소설을 쓸 때면 '과학자가 보고 있는 풍경 그리고 세계의 모습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들여다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화두를 던져 놓고 글을 쓴다.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에 맨 마지막 장에는 이요하라 신이 작품 집필에 참고한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 주소가 빼곡하게 수록되어서 작가의 소설적 상상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 실제 우리 눈 앞에서 발생했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요하라 신은 <팔월의 은빛 눈>에서 팔월에 은빛 눈이 내릴 수 있다는 가설을 이렇게 정의 했다.


[내핵은 지구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별로 크기는 달의 3분의 2 정도로 열방사 빛을 제거하면 은색으로 빛나는 별이다. 그것이 액체의 외핵에 싸여서 떠 있는데 그 별 표면은 전부 빽빽한 은빛 숲으로 높이 100미터나 되는 철로 된 나무 숲이다. 실제 그 정체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은 철 결정으로 외핵 밑 부분에서 액체 철이 얼면 내핵 표면으로 은빛 가루가 천천히 눈가루 처럼 흩날린다.]

-8월의 은빛 눈 중에서


은빛 숲에서 내리는 은빛 눈의 소리, 무덥고 습한 7월의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8월의 은빛 눈>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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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6-30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작가인데 너무 매력적인 리뷰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scott 2024-06-30 12:39   좋아요 2 | URL
이 단편집 정말 좋습니다
과학적 현상을 이토록 현실감 넘치게 묘사한 작가의 문체가 너무 유연하고 탄탄해서
대단하다는 생각만이 ^^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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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대법원관 자리에 올라간 얼 워런(1891~1974)이 이끄는 대법원은 매사 진보적인 판결을 내려서 흑백 분리주의 정책을 유지 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얼 워런 대법관은 흑백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나서 형사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했고 선거구 인구 불평등을 위헌으로 판시하면서 보수 정치인들의 표밭을 뒤흔들어 버린다.

일련의 진보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는 여전히 흑인 전용 화장실이 존재 했고 가게와 공공 장소 학교 그리고 클럽 마다 흑인 사절이라는 푯말을 내걸었다.


1960년 11월 8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존 에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미국 전역에 진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963년 11월 22일 재선 선거를 앞두고 미국 텍사스 댈러스 파클랜드 헐스를 퍼레이드 하던 중에 리 하비 오스월드의 총에 맞아 암살 당하고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예비 선거의 후보자 로버트 F. 케네디가 팔레스타인 난민 시르한에게 친이스라엘 성향이라는 이유로 선거 유세 중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면서 미국의 진보 정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지게 된다.


8년 후 1968년 대선을 앞둔 대통령 예비 후보 리처드 닉슨은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고 19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자 워런 대법원장은 그가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1968년 6월 26일, 존슨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이자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1910~1982)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다.

유대계 에이브 포터스 대법관은 모든 사안에 대해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한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때마침 에이브 포스터는 고액 보수를 받고 강연을 다녔던 과거 이력이 들통나버린다.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에이브 포터스는 친구이자 마지막 대통령 임기가 남은 존슨 대통령에게 지명을 철회 할 것을 요청했고 존슨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 해 11월 공화당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 되고 워런 대법관이 이듬해 5월에 사임하면서 대법원에 두 명의 대법관 자리가 생기게 되어 닉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수의 가치를 내건 깃발 두 개를 꽂아 버린다.


가장 먼저 닉슨 대통령은 미네소타 출신이자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역임한 워런 버거(1907~1995) 컬럼비아 지구(DC) 연방항소법원장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 다음으로 닉슨 대통령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클레멘츠 헤인스워스 제4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으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 55로 인준이 부결되자 뒤이어 닉슨은 플로리다 출신인 제5연방항소법원 판사 해럴드 카스웰을 지명했지만 그 역시 인종차별 성향임이 드러나서 상원에서 45대51로 인준이 부결되어버린다.

닉슨은 남부에 보수의 깃발을 꽂으려는 시도가 연달아 실패하게 되자 버거 대법원장이 추천한 미네소타 출신의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해리 블랙먼(1908~1999을) 제4항소법원 판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한다.

1970년 6월 상원은 해리 블랙먼을 94대0으로 통과시키고 1년 뒤 대법관 두 명이 건강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자 닉슨 정부는 만세를 부르며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국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루이스 파월(1907~1998)과 법무부 차관보이던 윌리엄 렌퀴스트(1924~2005)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면 미국 대법원을 완벽하게 보수주의자들이 장악 하게 만들어 버린다.

취임 한지 ​불과 2년 반 만에 닉슨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3명을 임명하는 기록을 세워서 대법원을 보수 4인, 중도 2인, 진보 3인으로 바꾸어 버렸다.


미국의 진보 언론은 닉슨의 깃발이 꽂혀진 대법원을 ‘닉슨 대법원’이라고 불렀다.

1972년 1월 7일 일명 닉슨의 꼬리표가 붙은 대법관들로 구성된 미국 대법원은 잇달아 진보적인 판결을 내리면서 닉슨 정부를 경악 시켰고 미 전역으로 엄청난 진보적 개혁의 바람이 불게 만든다.

가장 먼저 1971년 4월 대법원은 먼 거리에서 통학 시켜서 라도 스쿨버스로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을 통합 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많은 백인 학생들이 멀리 떨어진 흑인 학생이 많은 학교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게 돼서 백인 학부모들의 강력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곧바로 닉슨은 이 문제에 연방법원이 개입하는 데 반대했으나 버거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원 판결로 자신을 지명한 닉슨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두 번째 진보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판결은 ​1971년 6월 30일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기밀문서로 분류된 펜타곤 페이퍼를 게재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대법원은 6대3 판결을 내리고 뒤이어서 사형에 대해 잔혹한 형벌이며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5대4 판결로 위헌으로 판시했다.

이 판결로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주(州)는 형법을 개정해서 사형 판결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 했고 차츰 미 전역으로 사형 집행이 중지된다.


지금까지도 찬반의 대립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 땅을 분열 시키고 있는 낙태 문제는 1973년 1월 22일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에 대법원이 낙태금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여성의 사생활권을 침해한다며 7대2로 위헌 판결이 선고되기 시작하면서 미 대륙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임신 첫 3개월 동안 여성은 자신의 의사로 낙태를 할 수 있고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정부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규제할 수 있으며,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주 정부 법으로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닉슨이 꽂아 놓은 대법관들 모두 진보적인 성향으로 돌아서서 이번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낙태 문제 판결로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판결은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명 운동(Pro-Life Movement)을 촉발 시키면서 미국을 두 개의 이념과 사상, 종교로 대립하는 양극화에 불을 질러 버렸다.


1980년대 낙태에 대한 입장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정체성 차원의 문제가 되었고 1980년 11월 4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대법원에 또 다시 보수주의 깃발이 꽂히게 된다.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생명을 지켜라’ 등의 팻말을 들고 낙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5개월 전 대법원이 텍사스주에서 낙태금지 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이에 반발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일명 바이블 벨트 지역에 거주 하며 활동하고 있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대선 같은 대형 정치 행사에서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작은 정부, 총기 자유화를 내걸며 강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일반 유권자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전미복음주의연합(NAE)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으며 다음과 같은 신념을 내세우고 있다.


- 성경주의(성경이 절대적 기준)

-십자가 중심주의(예수의 희생을 강조)

-회심주의(성경에 의한 거듭남을 강조)

-행동주의(사회 참여)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2004년 대선과 2016년 대선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79%)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81%)에게 완전한 몰표를 던져서 당선을 시켰고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합하는 정치 집단세력이라는 걸 증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 한지 불과 8일 만에 낙태 반대론자인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 했고 2022년 6월 24일 .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을 제외하고 보수 성향으로 채워진 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고 낙태는 각 주가 스스로 규제하도록 판결하면서 후 폭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삶 중 어떤 부분에서도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와 특권층 뿐만 아니라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사회입니다. 요즘 흑인의 힘이니 여성의 힘이니 이런저런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태아의 힘은 어떨까요? 비록 세포에 불과 하다 해도 그들 역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위해 싸울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낙태에 반대하는 연설을 패러디한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은 ‘트릭 E 딕슨’이라는 가상의 대통령을 내세워 그가 재선을 위해 펼치는 정치적 공작을 거침 없는 독설과 조롱, 유머를 뒤섞으며 공화당 출신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향해 빅 펀치를 날려 버린다.


낙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아의 권리’를 주창한 1971년 4월 닉슨의 샌클레멘테 연설을 마치 한편의 풍자극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필립 로스는 태아 권리를 명분 삼아 (1972년 재선거 전) 태아 투표권까지 법제화 시켜서 재선에 당선 되기 위해서 온갖 모략을 참모들과 도모하는 소설 속 대통령 트릭 딕슨을' 리키(Tricky, 사기꾼)'로 부른다.


“이 나라가 다시 위대해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량의 무지”라는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는 미 합중국 트리키 대통령은 12~13살 짜리 보이스카우트 단원 소년 세명이 반정부 세력 집단으로 파악한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숨지자 정치·군사·법률 참모들을 모아 놓고 사살 진압과 즉결 처분 안부터 좌파 화 공작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한다.

트리키 대통령은 국가의 모든 정책을 마치 미식축구 전략 짜듯 추가 논의로 밀어붙이고 보수성향과 반대의 길을 가는 진보적인 국가를 향해 포르노 정부라 지칭한다.

그는 국가의 공권력으로 사회의 정의와 공공 이익을 우습게 보며 법원에 자신들의 가치 성향에 부합하는 법관들을 앉혀 놓고 시민들의 눈과 입을 가려 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법관들을 앉혀 놓은 트리키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 지배 논리를 시민들에게 늘어 놓는다.

이토록 음험하고 음흉한 다크 베이스 같은 독심술을 품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작가 필립 로스는 1970년대 미국 사회를 두 개로 갈라 버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건들을 수면 위로 올려 버린다.


[목사, 이건 내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요! 목사와 내가 보기에 더 훌륭한 퀘이커 교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어린 녀석 무리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에 오염되어 있소. 그들의 정신을 깨우면서 동시에 대통령직의 위엄과 신망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만약 이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예전에 나는 앨저 히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했어요. 흐루쇼프를 가리켜 약자를 들볶는 불한당이라는 말도 용감하게 했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나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소!]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1971년 이 작품을 발표 할 당시 필립 로스를 향해 복음주의자들이 닉슨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맹비난을 퍼붓자 필립 로스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이렇게 맞 받아쳤다.


'저는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저지에서 성장하면서 오로지 국민 전체를 '전쟁 사업'에 총 동원 시키기 위해 라디오와 신문 같은 언론들이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 전투 소식으로 국민의 마음을 자극했었죠.

저도 그 시절엔 열심히 깡통 모으는데 동참하며 동전 한 푼이라도 이념을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군인 아저씨, 삼촌, 사촌 그리고 이웃들에게 보내줬습니다.

아주 대단히 헌신적인 뉴딜 당원이였죠.

1968년 닉슨 대통령은 우리 집안에서 악당으로 불렸고 종종 이모들은 신문에 그의 얼굴이 실리면 손에 부엌 칼을 들고 찍어낼 정도로 증오 했습니다.

저는 베트남 전쟁 시기에 제 인생에서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했고 공산국가를 돌아 다니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우리 패거리>에 등장하는 트리키 대통령을 닉슨 대통령을 풍자하고 우스꽝스러운 똘아이로 그린 것이 아니라 리처드 닉슨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미국 땅에 똘아이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부패하고 음험 하고 무법적인 대통령은 닉슨이 처음이였고 조 매카시도 그 사람보다는 덜 했을 정도죠.

저는 일개 소설가로 고작 이런 이야기로 세상이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쓰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는 시위대 한 가운데서 고함 치며 피켓을 흔드는 것보다 종이로 인쇄되어 이런 인간이 버젓이 내뱉는 '미국'이라는 말에 어떤 애국심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애착심도 없는 패거리들끼리 사기 치고 수작 부리는 꼴을 널리 읽혀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1974년 필립 로스

마흔 살을 갓 넘긴 필립 로스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고 뚝딱 완성한 <우리 패거리>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에 발표되었고 이 똘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반 세기를 지나 2022년 미국 땅을 두 개로 갈라 버린 낙태법 폐기 법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충격일 정도로 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 예언서처럼 읽혀진다.

복음주의가 미 정계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시기는 1970년대 닉슨 집권기로 1973년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내리자 낙태를 죄악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거리로 나섰다.

2003년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찬반 논란이 극심했던 ‘부분 출산’(태아의 머리나 몸통 일부를 먼저 꺼내는 낙태 방식)을 금지하자 낙태 반대파는 이 방식이 매우 잔인하며 사실상의 영아 살해라고 반발했고 찬성론자들은 감염 위험이 적고 산모에게 안전한 시술이라고 반박했지만 부시 정권은 밀어붙였다.

2016년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 된 트럼프는 집권 이후 줄곧 반낙태, 반이민 정책을 펴며 복음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구현했고 재임 중 3명의 보수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했다.

이 세 명 모두 닉슨 시절에 헌법을 반기를 들며 진보로 돌아섰던 대법관들과 달리 보수적 판결을 충실하게 내리며 미국 사회를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대립 하게 만들었다.

현재 대선을 앞둔 미국은 전체 비율로 미세하게 바이든이 앞서고 있지만 경합주인 총 6개 지역에선 트럼프가 앞서고 있고 이 지역에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몰려 살고 있다.

필립 로스가 1971년에 쓴 <우리 패거리>의 우두머리이자 미국 역대 최고의 똘아이 대통령 트리키는 이런 말을 내뱉는다.


[미국 대통령, 또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십 대 소녀가 이분을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자유 세계의 지도자, 제 친구이자 저명한 재판관으로 현재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법조인은 얼마 전 제게 보낸 편지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최고급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남자가 이분을 '미군 최고 통수권자'로 부르는 걸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분은 평범한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비범한 의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았던 우리가 마치 반려동물에게나 붙일 법한 소박하고 허물없는 이름으로 그를 생각하는 겁니다.

어린 강아지에게나 붙일 법한 편안하고 친숙한 이름이죠.]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트럼프는 미국 언론에서 "불법무도한 사이코패스(lawless psychopath)"로 심리 전문가들에게는 자기도취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자로 불리고 있지만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는 우리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로 칭송 받고 있다.

여러 우려 속에서 이번 미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과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게 된다면 포퓰리스트 사이코패스 패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는 현재 한국 정치 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만들 것이다.



무능하고 교활한 정치인에게 작가가 펜으로 맞서는 최대치의 항거를 보여준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는 전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익 집단의 패거리들의 행태와 악행을 실랄하게 풍자한 세기를 뛰어넘는 걸작이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념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지킬 의욕과 능력이 있는 대 악마가 필요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계속 우리 편으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편이니까요. 우리가 악의 편이니까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대악마로 선출된다면 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은 올바름과 평화의 끔찍한 고통을 결코 모르게 할 겁니다.]

-필립 로스의 <우리 패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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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스콧님~

scott 2024-07-06 02: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주말 동안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레이먼드 카버의 말 -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레이먼드 카버 지음, 마셜 브루스 젠트리.윌리엄 L. 스털 엮음, 고영범 옮김 / 마음산책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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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루 종일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내가 깊이 생각했던 것, 그래서

하게 된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메리엔-지금 그녀는 자신을 애나라고

부른다- 에 대해 품었던 마음들

나는 물을 한 잔 받으러 갔다.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다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다음 주제로 쉽게 넘어갔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대못처럼 파고드는 그 기억.

1983년에 발표한 <대성당>으로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면서 3년 전 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던 시러큐스 대학 정교수 자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뮤즈이자 동반자인 시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위싱턴 주 포트앤젤레스로 이주하고 방문객 사절이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타자기를 치는 동안에는 집안의 전화 선까지 모조리 빼버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시를 읽고 반나절 동안 시 한 편을 써낸 카버는 <대성당> 성공 이후 단 한편의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그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터뷰가 줄을 이었고 서평과 추천사를 써 달라는 출판사에서 보내는 편지들이 매일 한 가득 도착했고 문학 행사를 여는 도시 마다 그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각종 문예지마다 카버의 문장을 흉내 낸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 정도로 1980년대 미국 문학계에 최고의 스타는 레이먼드 카버 였다.


1971년 <에스콰이어> 잡지에 <이웃 사람들> 단편이 처음 실렸을 때부터 카버의 글은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카버의 문장을 대폭 뜯어 고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호칭을 받게 만든 고든 리시가 편집하는 작품 마다 호평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더러운 삶을 사는 밑바닥 백인의 이야기를 팔아 먹는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의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이 출간 되면서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수록된 단편들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다.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에 책이라곤 없었던 환경 속에서 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셨고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열 여섯 살의 여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던 레이먼드 카버는 지독한 가난과 파산과 알콜 중독으로 파멸 직전까지 내몰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학업을 이어나갔고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사랑과 이별, 미움, 질투, 두려움, 슬픔 같은 살아가는 동안 느끼고 겪게 되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게 되는지 카버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인물들의 구석 구석을 냉정하게 들여다 보지만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 해주면서 연민의 시선으로 접근 한다.

단어 하나 하나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의미를 담은 그의 글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하지만 살아가는데 절대로 잊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스무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카버는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 다니며 주유소 시급일 부터 튤립 수확, 병원 청소, 화장실 청소, 장난감 조립, 쿠키 공장,교과서 편집일을 전전 하는 동안 파산과 불화, 중독과 이혼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대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발생한 이야기들로 그의 출세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보여준 의심과 질투, 분노는 이후에 출간한 작품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사랑'을 전면으로 내세운 이야기까지 지난 시절 고통과 절망에서 몸부림쳤던 모습을 겹겹이 이어 붙여 놓았다.



카버의 단편들을 모조리 읽고 나서 맨 앞 장으로 돌아가 두 번 세 번 읽어 나갈 때마다 그가 살아 왔던 인생들이 보였다.

16살 나이에 임신해서 무일푼에 카버와 결혼한 아내 메리엔은 불안정한 주거지에 극심한 생활고 속에서도 어떤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다녔고 남편 카버가 변변치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쓸 수 있게 배려 했고 아이들 양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반면에 남편 카버는 아내가 사회적으로 승승 장구 할 때마다 외도를 의심했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알콜 중독으로 치료소를 들락 날락 거리는 동안에는 아내에게 칼을 휘둘러서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불화 속에서도 아내는 10여 년 동안 힘겹게 대학에 다녔고 법률가 꿈을 포기 하지 않았고 남편 카버는 아내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 될 때마다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속 좁은 남자였다.


남편 카버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결혼 생활을 지키려 했던 아내 메리언 역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알콜에 빠져서 병원에 드나들었고 이런 부모를 뒷바라지 했던 속 깊은 딸 역시 알콜 중독자가 된다.

1977년 지역 문학 행사에서 만난 시인 테스 갤러거와 사랑에 빠진 카버가 먼저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5년 후 이혼을 한 카버는 과거의 나쁜 남자에서 벗어나 시라큐스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날개를 펼쳤다.


미국의 북서쪽에 위치한 워싱턴주의 내륙의 소도시 야키마 출신인 카버는 미국의 전형적인 백인 노동자 남성의 마초적이면서 비굴하고 소심한 성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분리된 시절에 성장했던 카버는 초기 작품에서 흑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며 작품 속에서 거친 용어를 내뱉으며 노골적이게 흑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공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 수록 그는 사랑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나갔고 <대성당> 이라는 작품에서 장애를 가진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펜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 나와 다른 피부색과 출신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나누고 만들어 나가는 모습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레이먼드 카버는 다중적인 시점으로 현란한 기교를 섞은 실험적인 성격의 스토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숨어 있는 나약한 모습을 그린 그는 한때 평론가들로 부터 '더러운 리얼리즘'이라는 혹평을 들었고 그가 쓴 시는 어떤 평론가도 공개적으로 평론을 쓰지 않을 정도로 일절 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1983년 <대성당>이 퓰리처 상 후보에 올라갔고 종신직 교수직에 엄청난 문학 기금의 수혜자가 되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언어로 책들이 번역 되어 미국 단편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 하며 비로소 삶에 환한 등불이 밝혀지던 시기인 1986년 폐암 선고를 받는다.

연기와 기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타티야나 이바노브나가

뜨개질거리를 붙들고 조용히 앉았을 때, 그는 그녀의

손가락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살아가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내 친구...'그가 말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말아요! 현재에는 젊은, 건강, 불이 있지만 미래는 연기와 기만일 뿐이에요.! 스무 살이 되는 즉시 인생을 시작해요.

티티야나 이바노브나는 뜨개바늘을 떨어뜨렸다.

-안톤 체호프, <비밀 조언자>

폐의 3분의 2를 들어낸 대 수술을 받은 카버는 매일 아침 동반자 갤러거가 안톤 체홉의 단편 하나를 읽으면 그는 늦은 저녁 시간에 시 한 편을 썼다.

레이먼드 카버는 50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총 두 번의 인생을 살면서 마지막 생애 끝자락에서 체홉의 단편 속에서 자신이 살아 온 지난 날의 삶을 읽었다.

마지막 몇 해를 앞 둔 카버는 체홉의 단편들 속에서 시어들을 골라내고 행갈이를 해서 부분적으로 문장을 다듬어 시의 형태로 만들어 나가면서 체홉의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었다.


예감

'어떤 예감이 들어요... 어떤 이상하고

암울한 예감 때문에 우울해요. 꼭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을 것만 같아요.'

'결혼하셨나요, 의사 선생님?' 가족이 있으시죠!'

'아무도요. 홀몸이에요. 심지어 친구도 하나 없어요.

부인 말씀해보시죠. 예감을 믿으시나요?'

'오, 그럼요. 믿죠.'

-안톤 체홉 <영원한 기계>


카버의 단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삶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서 싸움이 시작 되기도 전에 포기하거나 희생하거나 방관하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한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너무나도 무작위적인 주변부 인물들의 암울한 삶의 문제들을 카버는 마치 깃털로 살짝 건드리듯 부드러운 어조로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조등을 켜놓고 속삭이듯 긴장감 넘치는 대화체로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30여 페이지 분량 속에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담긴 인물들의 삶을 담아낸 카버는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시와 소설을 동시에 썼을 정도로 밑바닥 부터 창작을 차곡 차곡 다져나갔다.



'꿈이란, 결국 우리가 거기에서 깨어나야 하는 어떤 상태입니다. 그런 순간은 발견되어야 하고 상상 되어야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나는 지난 시절에 읽었던 카버의 단편집 보다 그의 시를 자주 읽고 있다.

그가 남긴 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소한 기억들과 아버지, 낚시, 사냥, 여행,첫 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 그리고 두 번째 아내인 시인 갤러거와 기타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모습까지 담고 있다.



만약 내가 운이 좋다면, 온갖 줄을 다 꽂은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겠지. 튜브가 내 코로도

기어 들어가고 하지만 친구들 겁먹지 마!

지금 얘기해두지만 그거 다 괜찮아.

마지막 순간에 그 정도는 요구 할 수 있지

누군가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모두에게 전화를 돌려서

이렇게 말하겠지 '빨리 와, 얼마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다들 오겠지. 그러면 나로서는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생길 거야. 내가 사랑하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죽음 중에서

1988년 5월 마지막 인터뷰에서 카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도 어른이였을 때도 저는 그들 중 한 사람이였습니다. 작품을 출간하자 마자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소설은 미니멀리즘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에게 검은 잉크로 휘갈겼다는 소리를 들은 시에는 제 삶의 모습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비록 시인으로 불리지 않지만 지난 시절에 사나흘 정도 술이 깨어 있을 때 시를 쓰고 나면 이야기가 떠올랐고 정신을 차려서 문장에 리듬감을 담아서 수시로 찾아 오는 잔인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쓰다보니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으니 곧 좋아 질 것이고 어쨌든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레이먼드 카버


이 인터뷰를 마친 카버는 한 달 후 양쪽 폐에 모두 암이 재발하고 6월 17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시인 갤러거와 결혼식을 올린다.

7월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나고 돌아 와서 시애틀 병원에 입원하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한다.

1988년 8월 2일 포트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을 거둔 카버는 2틀 후 입관 되어 오션뷰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가난과 고통에서 발버둥치며 사랑 받기 위해 글을 썼고 사랑 받았다고 생각할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화강암 묘비에는 '시인, 단편소설 작가. 에세이스트'라고 적혀 있고 가장 마지막 줄에는 <만년의 편린 Late Fragment>라 새겨져 있다.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내가 사랑 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 받았다고 느끼는 것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의 '만년의 편린' 중에서

50세로 세상을 떠난 카버는 25년 동안의 다섯권 분량의 소설과 시, 산문, 그리고 서문이 담긴 작가 선집에 수록된 것 까지 포함 해서 총 73편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여기 이 책 속에 25년의 작가 인생을 사는 동안 했던 24개의 인터뷰가 500여페이지 분량 속에 그의 인생 철학과 창작 과정들이 모두 담겨 있다.

각각의 인터뷰가 곧 인간 레이먼드 카버의 인생 이야기들로 이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결국 읽고 쓰는 행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씁니다.'

-레이먼드 카버(1938-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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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5-31 09: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정말 좋네요 재능은 누구나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 쓴다...ㅠㅠ

scott 2024-05-31 10:50   좋아요 3 | URL
네, 열정만이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 ^^

2024-06-0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 옷의 어둠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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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중에 히로시마 우지나에 있는 육군 선박포병교도대에 소속되었던 '모토로이 하야타'가 승선한 무장선이 부산해협에서 침몰한 뒤 우지나로 돌아 왔을 때 타고 나갈 배가 단 한 척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야타는 남아 있는 연료조차 없어서 고립 된 와중에 어느 날 만주 건국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동기 몇 명과 함께 대학 은사를 만나려고 노우미 섬으로 건너간다.

​모토로이 하야타가 은사의 집이 있는 노우미 섬에 체류하는 동안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서둘러 우지나로 돌아와 곧바로 폭탄이 투하된 지역을 돌아다니며 구호 활동을 펼치던 중 동료들은 방사선에 피폭 되어 죽었고 그만 살아남게 된다.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자 패전과 함께 하이타가 소속된 육군 선박 포병 교도대가 해산한다.


[당연히 너는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을 테지만 그런 일은 혼자 고민해봤자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까 일단 이리로 놀러와라.]


하야타는 우연 곡절 끝에 도쿄로 올라와 여러 번 전차를 갈아타서 마침내 대학 동창인 가이 신이치와 약속한 우에노 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쟁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도쿄의 주요 번화가 들은 거듭된 공습으로 초토화 되었고 온갖 물건들을 불법으로 거래하는 거대한 암시장에는 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었다.

전쟁 전에 노점을 관리했던 조직인 데키야가 도쿄 곳곳에 은밀하게 퍼져 있는 암시장을 관리하는 동안 일본군 징용으로 끌려 온 중국과 조선, 대만 사람들이 패전 후 일본에 남아 장터를 차지 하면서 서로 간의 영역을 다툼이 시작되었다.

전쟁 고아들과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들, 거리의 부랑아들이 데키야 조직과 야쿠자 조직에 합류하면서 암시장의 규모는 거대해 졌고 이곳에선 일본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무법의 영역이 되었다.

화물 운반 거룻배 운항일을 하는 집안 출신인 하야타와 데키야 두목의 아들인 신이치는 패전 후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공통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야타는 편입한 대학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고 국가 재건에 보탬이 되기 위해 탄광촌에 뛰어 들어가서 그곳 탄광 종사자들이 살고 있던 주택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해결 하고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며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검은 세력의 배후를 쫓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의 친구 신이치는 데키야 조직을 이끄는 아버지를 통해 쇠퇴의 길을 가고 있는 암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괴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 하야타에게 해준다.


'해가 지며 어디선가 빨간 망토를 입은 괴인이 나타나 아이를 유괴해 죽인다.'


마을에 전설 처럼 내려왔던 괴담이 1906년 2월 11일 밤 후쿠이현 사카이군 미쿠니초에 있는 선박 화물 중개상 하시모토 리스케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발생한다.

비좁은 미로 같은 붉은 암시장 거리에는 여성들을 뒤쫓는 '붉은 옷'의 정체불명의 괴인이 잔혹한 살인으로 시장 사람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는 무시 무시한 사건이 발생하자 신이치는 이 암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상인 조합의 보스인 삼촌에게 자신의 대학 동창인 친구 하야타를 소개 하며 이들은 괴이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정체 불명의 '붉은 옷'을 입은 자가 저지르는 살인 사건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곳에 있는 상점들마다 붙어 있는 밀실 공간으로 하야타가 이 사건을 추적하고 쫓기고 미행 당하는 동안 1936년 육군의 친황파 청년 장교들인 일으킨 2.26쿠데타 사건부터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 전쟁부터 전쟁 중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군부대에 위안소를 설치해 놓고 중국과 한국, 대만의 미성년자 여자 아이들을 끌어다가 몹쓸 짓을 하게 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버려 버린 20세기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붉은 노을이 진 깊은 밤, 붉은 옷에

쫓겨 도망친 게 어느 날 밤이었나.

가게 계산대의 매상을

데키야에게 넘긴 건 환각이었을까

열 다섯 누나는 어둠이 되어

고향에 보내는 소식도 끊겼네

붉은 노을이 진 깊은 밤, 붉은 옷을

바라 보고 있어요. 바로 뒤에서

일본 땅 어디에도 주소지를 두고 살지 못했던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붉은 미로의 판자촌 기사이치유가장의 밀실에서 발생한 사건은 단순히 희대의 살인마가 저지른 사건이 아니였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 땅의 남자들을 위해 한반도와 중국 전역 그리고 아시아 곳곳에서 끌려온 소녀들은 전쟁에 패배하는 날 부터 짐승 같이 죽거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일본 땅 빈민굴에서 숨어 살며 어둠의 세력이 되고 그 어둠의 세력들은 또 다른 약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며 살아간다.

작가 미쓰다 신조는 20세기 총과 칼로 무장해서 이웃 국가의 무고한 생명들을 마구 짓밟았던 일본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간신히 죽음의 사선에서 살아 남았지만 돌아갈 집도 가족도 모두 잃어 버린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그리고 전쟁 고아들이 일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갔는지 모토로이 하야타라는 20대 청춘이 붉은 옷을 입고 여자와 아이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희대의 살인마를 뒤쫓으면서 근대 암울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 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작가 미쓰다 신조가 참고한 문헌에 대한 기록이 두 장에 걸쳐 적혀 있다.

일본 고전문학 전집 부터 시작한 참고 문헌은 숨겨진 전쟁 기록- 도쿄 암시장- 매매춘의 근현대사- 아무도 모르는 국가 매춘 명령-종전 직후의 일본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점령하의 일본- 불타버린 벌판의 암시장- 환락가는 암시장에서 탄생했다. - 0년 도쿄 블랙홀-역의 아이의 싸움 이야기하기 시작한 전쟁고아-중국 전선, 한 일본인 병사의 일기 1937년 8월- 1939년 침략과 가해의 일상 까지 작가는 오랜 기간동안 일본이 동아사이와 한국 땅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소설적 상상력으로 버무린 허구의 세계가 아닌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

일본은 무모하게 전선을 확대 시켜 나가면서 한국인들의 집안에서 쓰는 가제도구는 물론이고 산과 들 그리고 가축과 짐승들까지 모조리 빼앗아서 군수 물자로 썼고 소녀들을 납치하거나 돈을 많이 주는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군부대 마다 차려 놓은 위안소로 끌고 갔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나 형무소 생활을 하는 죄인들까지 모조리 끌고 간 일본은 아시아 전선에 군수물자를 보내지 않고 한반도 땅에서 빼앗은 금과 은, 구리 그리고 땅 속 깊은 곳에 파묻힌 광물을 모조리 군수 공장으로 보내 무기를 제조하는데 쏟아 부었고 각 전선마다 배치된 군부대들에게는 철저하게 현지에서 조달하라고 명령했다.

총과 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중국 난징 시를 살육의 처형장으로 만들어 버렸고 만주 전역과 대만 본토에는 희귀한 나무와 나비들까지 전부 뽑아버리거나 멸종 시켰고 일본 땅에서 발발한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 민간인들은 한국인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몰살 시켜 버렸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가죽을 벗겨 먹었던 일본 군인들은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인간으로서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 하기 위해 일본은 '메스암페타민' 이라는 피로와 졸음을 없애는 마약 성분의 각성제까지 먹여서 반 미치광이 상태로 만들어 살인기계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핏물로 물들였다.

패전후 미군에게 항복한 일본은 모종의 거래를 통해 경제적 실익을 차곡 차곡 챙겨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을 전혀 하지 않은 채 한국 땅에서 발발한 6.25 전쟁으로 경제적 특혜와 군사적 이익을 모조리 쓸어 담아 경제 대국의 자리에 올라서서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역사에서 지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책에서 줄창 미군에게 원폭을 맞고 전쟁 중 도심 곳곳에 폭격과 공습으로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렸던 것만 기록하고 있고 패전 후에도 살아 남은 일왕은 이웃 국가에게 극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어떤 사죄를 하지 않고 [통석의 염]이라는 장례식을 거행할 때 치루는 입관 용어를 내뱉고 퇴위했다.

왕이 통치 했던 시절의 아시아 군주 국가에서는 왕이 국가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는 의미로 연호(年號)를 썼지만 20세기 두 차례 전쟁을 겪고 나서 더 이상 연호를 쓰지 않지만 일본은 유일하게 연호를 쓰고 있다.

2019년 10월에 즉위 해서 레이와 시대라 명명한 나루히토 일왕 아키히토는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그는 즉위식에서 세계 헌법 준수와 평화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외교적 수사 발언을 했다.

2023년 전쟁 피해자 추도식에서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고 아직까지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참배하지 않았다.

작가 미쓰다 신조가 창조한 20세기 청년 하야타는 탄광에서 검은 얼굴의 여우로 불리는 괴기스러운 사건을 해결하고 암시장에 있는 붉은 미로 속 유곽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파헤치고 나서 자신이 나아갈 길은 일본 경제를 다시 세우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 해상 보안청 소속의 항로 표식 직원으로 취직해서 어느 섬의 등대지기가 된다.

붉은 옷의 유래는 풍수지리에서 동쪽의 청룡의 청색, 서쪽의 백호의 백색, 남쪽의 주작은 적색 그리고 북쪽의 현무는 흑색이라 명명하고 천상의 북극성은 황색을 상징했다.

남방 불교에서 아축여래는 청색, 아미타여래는 백색, 보생여래는 적색인 붉은 색, 불공성취여래는 흑색 그리고 대일 여래는 황색으로 다섯 여래를 오색 으로 대응 시킨다.

티베트에서 시작되어 중국 대흥선사에서 자리 잡은 남방 불교의 한 종파인 밀교를 한국의 혜초스님이 일본 땅에 전파 해서 일본인들의 민간 신앙과 뒤섞여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빛으로 빛나는 네명의 보살을 거느리고 일체의 재물과 보배를 맡고 있는 붉은 색의 보생여래는 중생들의 평등한 삶을 관장 해서 교화하고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 미쓰다 신조는 <붉은 옷의 어둠>이라는 책에서 일본 땅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살인마에게 붉은 색 옷을 입혀 놓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보관하는 포 항아리와 검붉은 옷 그리고 붉은 홀겹 옷의 한자에 모두 옷의衣라는 한자가 들어가고 검붉은 옷 색을 의미하는 자赭 한자에 붉을 적赤 한자가 들어가고 홀겹의 옷도 붉다.

이 셋을 합치면 혁의赭衣,즉, 죄인이 입는 <붉은 옷>이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이 책에 등장하는 희대의 살인마에게 붉은 색 옷을 입혔고 그 붉은 색 옷을 입은 살인마 죄인은 지난 시절 일본이 대동아 전선에서 아시아인들에게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형벌을 의미한다.

단순히 밀실 미스터리라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 들고 읽다 보면 청년 하야타가 추적하는 붉은 미로 속 밀실 사건의 붉은 옷을 입은 살인마에게 희생된 불행한 시대의 한국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희생 당했는지 미약하게나마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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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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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F장르물의 거의 모든 상을 휩쓸고 있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1986년생으로 도쿄 대학에서 이과로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교양 학부로 옮기고 대학원에서 문화 연구를 전공했다.

박사과정 시절에 쓴 작품 <유트로니카의 이면>이 일본 장르 문학 출판사 하야카와가 주최 하는 SF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계로 뛰어들었다.

오가와 사토시는 약 2년에 한 번 주기로 장편과 단편을 발표하는 동안 요시카와 에이지상과 일본 SF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했고 야마다후타로상을 받고 나서 마침내 <지도와 주먹>으로 나오키상까지 거머쥐었다.

2015년 부터 2022년까지 약 6년에 걸쳐 이 많은 상을 수상한 작가는 일본 내에서도 오가와 사토시가 유일무일한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그의 작품 팬층은 굉장히 탄탄해서 출판 즉시 주요 문학상과 서점대상 후보로 줄줄이 올라간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너의 퀴즈>로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까지 수상해서 SF물과 미스테리, 역사물까지 거의 모든 장르 분야의 상을 휩쓸었다.


2022년 나오키 상과 야마다 후타로 상까지 2관왕 수상작인 <지도와 주먹> 만주 땅으로 건너간 일본인 통역사와 만주 철도망을 러시아까지 확대 하려는 차르 정부에게 고급 정보를 넘겨 주기 위해서 파견된 러시아 국교회 소속 신부 그리고 삼촌에게 속아서 만주로 오게 된 손오공과 중국 동쪽 지방의 봉촌이라는 곳에서 온 <이가진>까지 지도에도 없는 어느 섬을 무대로 러일 전쟁 전야 부터 시작에서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50년의 세월 동안 흔적 없이 사라져서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지략과 살육의 전쟁을 다룬 SF 공상 역사 소설이다.

역사를 뒤흔들었던 특정 사건과 몇몇 인물들이 이런 선택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역사는 이런 식으로 흘러 가서 현 시대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 SF 공상 역사물인 <지도와 주먹> 작품에 앞서 출간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2022년 대망의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의 시놉시스 같은 작품이 있다.


[1844년 1월 9일 오전 10시 30분. 지금부터 워딩턴 공장 습격에 관련한 맨체스터 특별 순회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단편 <거짓과 정전>의 첫 장면은 사회주의 혁명과 마르크스 주의 핵심 사상을 응집 시켜서 공산주의 시대를 낳게 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영국 맨체스터 순회 법원 재판석 피고인 자리에 앉아 있다.

이 재판에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선 인물은 쿡 앤드 휘트스톤식 전신 기사인 새뮤얼 스톡스로 정전의 수호자인 앵커로서 법정 증인석에 앉아 있다.

독일 에르멘 앤드 엥겔스 방적공장의 경영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시니어의 아들이자 방직공장의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재판석에서 이런 변호를 시작한다.


[저는 이 법정에서 유럽에 존재하는 흉악한 인간이 아일랜드인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이미 아일랜드인 수십 명이 순회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바 있지만 독일인인 치고가 저지른 죄는 그저 날뛴 것 뿐인 아일랜드인들보다 더 악질적입니다. 피고인은 폭동을 빌미로 사업 경쟁 상대의 공장을 파괴함으로써 엥겔스 공장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올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공방이 오고 가고 나서 마지막 증인 발언 시간에 정전에서 기사 스톡스가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는 지금 증인석 자리에 서있는 스톡스는 정전의 수호자의 중계자에게 메시지를 받고 나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 년 전 부터 기다리고 준비 해 왔다.

이 정전기사는 지난 육백 년에 세월에 걸쳐 활동하면서 1884년 1월 마침내 영국 맨체스터 법원 재판석에서 '역사 전쟁'을 종결 시키는 작업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반 세기의 시간이 흘러 미국과 소련 스파이들이 모스크바 한 가운데서 주요 연락책과 긴밀하게 연결해서 서로 치열한 첩보전을 펼치고 있던 중 한 소련인 과학자 안톤 페트로프가 미국 CIA에게 포섭된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최신 기술을 넘기려고 하던 중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된다.


'우르마노프형 정전 가속기로 전자를 고압 방출하면 특정 조건 아래 전자가 사차원 공간을 통과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원리는 전자를 임의의 과거 일시, 장소로 방출할 수 있고 기술을 활용하면 초광속으로 과거와 통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온다.

안톤 페트로프는 직접 시현을 해보는데 전자를 이용해서 지난 시절에 살아있던 아버지와 메시지를 주고 받기도 하던 중 미래에서 온 메시지를 받게 되자 그는 마침내 자신과 비밀리에 접촉 중인 CIA요원 화이트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기기 작동을 두루 살피며 시험 해 보는 동안 소련 과학자 페트로프의 주변 인물들이 KGB비밀요원들에 의해 체포되어 소식조차 알지 못한 상태가 되고 서서히 포위망이 페트로프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백년의 세월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영국 맨체스터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선고형을 확 뒤집어 버릴 수 있다면 현 세상에 공산주의라는 사상도 국가도 전멸하게 될까?


[역사는 때로 중대한 양자 택일을 강요 당한다. 전쟁인가, 비전쟁인가,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정직인가, 거짓인가, 대통령이 아니어도 황제가 아니어도 판단을 그르칠 때가 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엥겔스가 실제로 유배형에 상당 하는 행동을 했는지 아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는 유배형을 받았어야 했다. 그는 마르크스를 수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가와 사토시의 가상의 SF역사물의 시작은 만약에 이 인물이 이런 선택을 했다면, 만약에 이 장소에 이런 사람이 살게 되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나오키 수상작 <지도와 주먹>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君は満洲という白紙の地図に、夢を書きこむ

너는 만주라는 백지 지도에 꿈을 써넣는다.

단편 <거짓과 정전> 역시 작가가 백지의 종이 위에 공산주의는 만유인력처럼 특정 인물(뉴턴)이 없었어도 존재했을까? 아니면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특정 인물(찰스 디킨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만일 뉴턴이 없었더라도 만유인력은 발견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유인력은 이미 케플러 같은 앞선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찰스 디킨스가 없었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불후한 성장 서사가 없었기에 당대 영국 땅에서 어떤 작가도 어린 고아 어린이가 어른들의 불법적인 행위와 노동에 착취 당하는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다.

따라서 찰스 디킨스의 존재 자체가 <올리버 트위스트> 작품과 같은 의미이기에 ‘역사적 필연성’은 존재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헤겔의 사상을 계승한 무신론 철학자 마르크스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노동운동에 정통했던 엥겔스 이 두 인물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공산주의는 탄생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공장에서 일어난 폭동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엥겔스의 모습에서 시작해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치열했던 냉전시대까지 조망한 <거짓과 정전>에는 역사에서 공산주의를 없애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 그리고 현대 역사를 변형 시키려는 사람과 전송 수단 통신 기기인 ‘정전’을 고수하려는 사람이 서로 대립하며 시간 여행이라는 SF적인 발상으로 마지막 장까지 긴박감을 향해 종횡무진 질주하는 SF 역사 스파이 스릴러 물이다.

장편으로 늘려 써도 좋을 만큼 재치 넘치는 설정과 기발한 전개, 여러 상황들이 역사적 시간대별로 절묘하게 들어 맞아 움직인다.

능숙한 조련사처럼 작가 오가와 사토시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인물들끼리 주고 받는 대사 그리고 복잡한 과학 구조 원리와 기술적인 관계를 특정 상황에 대비 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상황이 발생 할 수도 있구나 라고 수긍 시킬 정도로 치밀할 정도로 논리적이다.

2019년에 발표한 SF미스터리 단편집 <거짓과 정전>은 출간 즉시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뽑혔고 수록된 단편 <마술사>는 중국 최대 SF어워드인 은하상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또 다른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한 줄기 빛

-시간의 문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마술사>와 <거짓과 정전> 두 단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들은 기발한 설정이나 놀라운 결말로 치닫는 작품들은 아닌 그저 작가가 여분의 시간에 아이디어 구상처럼 쓴 것 처럼 밋밋한 맛이 느껴지지만 문장과 전개 방식은 뛰어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되고 뒷맛도 개운하다.

나는 매해 미국에서 출간 되는 《Asimov’s》나 《FSF(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같은 기나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고 있고 로커스상,필립 케이 딕 상,네뷸러와 휴고상 수상작들은 최신작품 부터 지난 시절 수상 작품들까지 전부 섭렵해서 읽었다.

특히 전 세계 SF작가들이 출간하는 단편들 중 한 해동안 출판된 SF 단편 작품들 가운데 수작들만 모은 SFnal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편집자 조너선 스트라한이 발행하는 잡지)의 최근 출판된 것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일본 문학상 작품 중에 꾸준히 읽는 수상작들은 아쿠타가와와 나오키,일본 추리협회 대상 그리고 가끔씩 요시카와 에이지와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문고본으로 출간 되기 전 단행본부터 구입해서 읽고 있다.

일본은 최근 십 여년 동안 주요 문학상 작품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수상작들 대부분이 역사물이 대세로 메이지 시대 말기의 청춘 미스터리, 신기술을 차용한 미래 사회를 펼쳐 보이는 본격 미스터리,러 일 전쟁, 2차 세계 대전의 어느 유럽 도시,환상과 괴물이 날 뛰어다니는 미래의 가상 도시, 인구 소멸로 인간이 사라진 도시,이상 기후 변화로 강과 바다가 범람해서 지하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 1945년 종전 직전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오사카 어느 마을,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 소 전쟁터에 나서 소련 여성 스나이퍼 부대까지 현 시대가 아닌 지난 세기와 미래 시대를 넘나드는 대 서사 SF역사 공상 소설물들이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베스트 순위에 올라와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자신의 소설 원칙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SF의 재미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가치관이 붕괴되는 듯한 감각을 맛보는 데 있습니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마술을 선보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마술사 >단편에서 아버지에게 마법을 가르친 스승 맥스 월턴은 '마술사가 해선 안 되는 일 세 가지'를 반드시 잊지 말라고 당부 했다.


-마술을 선보이기 전에 설명해선 안된다.

-같은 마술을 반복해선 안된다.

-트릭을 밝혀선 안된다.


나 역시 단편 <마술사>의 마술 스승 맥스 월턴 처럼 오가와 사토시의 <거짓과 정전>에 담겨진 모든 단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2015년 이후 부터 활동한 오가와 사토시에게 일본의 메이저급 작가들은 입을 모아 '천재'라며 매번 발표하는 작품마다 달려들어 가장 먼저 읽겠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오가와 사토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열렬한 책벌레로 주변 사람들 중에 자신만큼 책을 읽은 사람이 없다고 자부 할 정도로 독서광 중에 광인이였다.

그는 대학원 박사 과정 중에 여분에 남은 시간 동안 소설을 끄적이다가 일단 시작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를 짖자 라고 결심하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그는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좋아 하겠구나, 지금 시대에 이런 작품이 잘 팔리고 읽혀 지는 구나를 전혀 염두 해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한 이야기를 파고 들어 쓰고 고치는 동안 스스로 재미가 붙어야 작품을 완성하는 성향으로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손바닥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집요하게 달려들어 시대 상황과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한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지도와 주먹>을 읽은 심사 위원들이 모두 제자리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칠 때 그는 이 정도 열심히 썼는데 라는 자신감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스스로 다져나간 창작 주먹이 단단하다.

그럼에도 매번 한 작품을 탈고 할 때마다 영혼의 밑바닥부터 창작의 샘까지 바싹 말라버려서 다음 작품을 집필할 때면 맨 땅에서 헤딩 하듯 맨 주먹으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정신 상태로 회귀하는 작가다.


[모모야마는 문화를 사랑했다. 영화도, 소설도, 음악도, 패션도, 미술도 모두 좋았다. 자신은 어째서 문화를 사랑하나. 모모야마는 ‘불필요해서’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없다고 굶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불필요한 것’이 자신들의 생활에 색채를 부여하고 있었다.]

-오가와 사토시의 '무지카 문다나' 중에서


오가와 사토시의 <기억과 정전>은 2024년 상반기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지나온 시간의 흐름과 앞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우리 모두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고의 발상과 시간 여행이 주는 즐거운 감각을 일깨워 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 <거짓과 정전> 2014년 한계도 경계도 없이 폭발하는 상상력을 꼭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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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4-22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작가로군요 젊기도 하고 @_@;;; 작가도 작가지만 scott님 존경합니다. 뱅글뱅글 @_@;;;;

scott 2024-04-22 17: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문나잇님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뱅글뱅글 @_@

희선 2024-04-23 0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설이라는 것도 없어도 되는 거군요 그래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그저 살기만 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이건 언제나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음악 미술 여러 가지가 나타났겠지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