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뉴욕 타임스는 21세기 첫 25주년을 기념해 이 시대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책을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총 2주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소설가, 논픽션 작가, 시인, 비평가 등 문학가 503명을 대상으로 2000년 1월 이후 미국에서 출간한 책 가운데 베스트 책 10권 씩 추천 받아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명 작가와 명사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이나 주연 배우 제시카 파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저자 보니 가머스,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를 비롯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들이 이번 100대 도서 선정에 참여했다.


가장 먼저 스티븐 킹이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에 추천한 10권의 도서는 다음과 같다.

1.이언 매큐언의 '속죄'

2.벤자민 블랙의 '크리스틴의 추락'

3.도나 타트의 '황금 방울새'

4.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

5.코매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6.마거릿 애트우드의 '오릭스와 크리크'

7.사라 워터스의 ' 게스트'

8.필립 로스의 '미국인의 음모'

9.비엣타잇 응우옌의 '동조자'

10번째 마지막 추천 도서는 자신의 책인 '언더돔'을 추천했다.


스티븐 킹에 뒤이어 작가 이민진이 추천한 10권 도서가 NYT에 올라갔을 정도로 현재 미국 문학계에서 작가 이민진의 위상이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작가 이민진이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에 추천한 10권의 도서는 다음과 같다.

1.앤서니 도어의 '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2.캐서린 부의 '안나와디의 아이들'

3.콜럼 토빈의 ' 브루클린'

4. 줄리 오츠카의 ' 다락방의 부다'

5. 타라 웨스트오버의 '교육'

6.매튜 데스몬드의 '쫓겨난 사람들'

7.메릴린 로빈슨의 ' 길리아드'

8. 에드워드 p 존슨의 '알려진 세계'

9.바버라 애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

10.필 클레이의 '재배치'


이번 대형 문학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이 추천한 도서 중에서 단연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전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 대부분 10권의 추천 도서 모두 '소설'을 추천했다.

반면에 작가 이민진이 추천한 10권의 도서 목록을 잘 살펴 보면 부의 불평등, 계급간의 갈등, 젠더 갈등, 교육의 불평등,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국가의 의무로 전쟁에 동원된 젊은이들 그리고 미국 내 뿌리 깊은 흑백 간의 갈등의 불씨였던 노예 농장이 운영 되었던 남북 전쟁 시대까지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차별과 박해, 인종 갈등의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 이민진이 추천한 10권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가 추천한 10권의 도서들은 단순히 허구적인 세상만이 아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문제와 모순되고 왜곡된 갈등의 불씨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 되었는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통합적이면서 균등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가 엄청난 대서사시를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대서사시 같은 역사가 저를 소유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역사와 문화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저로 존재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 책이 한 세대의 이야기만 담도록 쓰는 것을 상상할 수 없어요. 한편으론 관심사가 코리아 디아스포라로 특정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 주제만큼 강하고 오래 제 흥미를 끄는 것은 없습니다.

열아홉 살,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재일 한국인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때부터 자이니치의 이야기에 끌림을 느꼈고, 끈질기게 연구하고 조사해 갔어요. 제 인생을 소비할 만한 이런 주제를 발견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민진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파친코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앞으로 전개 될 이야기가 역사라는 거대한 서막의 시작이라는 걸 어느 정도 가늠 할 수 있다.

이토록 강렬한 문장을 첫 서두에 주제문(thesis sentence)으로 써 놓은 작가 이민진의 작법은 현시대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방식이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전체 통독 하지 않은 이들도 이 문장 만큼은 어디선가 자주 접했을 것이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의 이야기' 중에서


19세기 최고의 인기 작가였던 찰스 디킨스가 첫 문장을 주제문으로 시작하면서 이후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을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자칫 설교조로 이야기 흐름이 진행 될 수 있기 때문에 21세기에는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작가 이민진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파친코의 첫 문장을 주제문으로 제사한 이유는 ' 역사에서 평범한 일반인들의 삶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진정 역사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문장”이라고 말해 왔다.

2024년 7월 미국 뉴욕 타임스가 실시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중에서 '파친코'는 15위에 올라갔다.

페미니스트 운동가 록산 게이를 비롯해 여러 명의 문인관계자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배우들이 '파친코'를 추천했을 정도로 이 책의 가치는 한 시대를 다룬 역사 소설을 뛰어넘어 선 21세기를 대표하는 명작이 되었다.

뉴욕 타임스는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파친코에 등장하는 교활한 조폭과 장애를 가진 어부, 금지된 사랑을 이어가는 비밀스러운 인물들이 역사의 한 복판에서 겪게 되는 전쟁과 식민지, 개인적 갈등까지 4대에 걸친 한국 가족의 풍요롭고도 소용돌이치는 연대기적인 삶을 펼쳐 보인다.'



파친코는 일본에 번역 출간 되어 외국 소설로 드물게 단행본 출간으로 절판 되지 않고 인기의 상승 곡선을 타서 문고본으로 출간 되었을 만큼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7년에 출간된 <파친코> 라는 작품은 전직 오바마 대통령의 추천에 힘 입어서 베스트셀러 도서에 진입하고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라서며 뒤이어 영상으로 제작되어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유명인의 추천사를 받고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라 영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해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들어 간 것은 아니다.

이번에 선정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2000년 이후에 출간한 책 중 단 한 권도 올라가지 못했다.

영화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테드 창, 마거릿 애트우드 그리고 류츠신의 책도 올라가지 못했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폴 오스터가 필생을 걸고 쓴 작품 <4321>은 추천 목록에 없었다.

단편집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 21세기 주목 받는 현대 작가이자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 역시 100권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았다.

아시아계 작가들 중에서 출간 하는 작품마다 주요 문학상을 휩쓰는 이윤리 작가의 작품도 단 한 권도 못 올라갔고 유명 일본 작가들의 작품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이민진의 <파친코>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두 권이 올라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신비롭고 다른 세상의 공기를 담고 있는 짧은 소설 속에 굶주림과 욕망들이 어떻게 뒤엉키는지 마술적인 언어로 펼쳐 보인다.'

지난 8월 15일에 발표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100 Best Books of the 21st Century) 중에서 1위부터 10위에 뽑힌 책은 다음과 같다.

1)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2012)

2) 이저벨 윌커슨의 '다른 태양들의 따뜻함' (2010)

3) 힐러리 맨틀의 '울프홀'(2009)

4) 에드워드 p.존슨의 '알려진 세상'(2003)

5) 조너선 프랜즌의 '인생 수정'(2001)

6)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 (2008)

7)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2016)

8) W.G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2001)

9)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 (2005)

10) 메릴린 로빈슨의 '길리아드' (2004)


2014년 영국 가디언지에서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 중 10위 안에 들었던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과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는 이번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 10위 상위권에 올라갔다.

앞서 발표한 영국에서 힐러리 맨틀의 튜더 왕조 3부작 중 제 1권인 <울프 홀>은 맨 부커상을 수상하고 이후 10년동안 맨 부커상 수상작 중에 가장 빛나는 작품 베스트에 뽑혔고 가디언지가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 중 1위를 차지했다.

뉴욕 타임스가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바르도의 링컨'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조지 손더스는 총 3권의 작품(바르도의 링컨, 패스토럴리아,12월10일)이 올라갔고 캐나다의 단편작가이자 노벨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두 권의 단편(런 어웨이,미움, 우정, 사랑, 구애, 결혼)집이 올라갔다.

필립 로스의 작품도 두 권(미국인의 음모와 휴먼스테인)이 명단에 올라갔고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스민 워드 (소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와 회고록 '남자들에게 우리는 강간을 당했지') 두 권이 올라갔다.

이민진 작가가 추천한 에드워드 p. 존슨의 책 장편 소설'알려진 세계'는 10위 안에 들어갔고 펜 포크너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라간 단편집 'All Aunt Hagar's Children: Stories'는 베스트 100리스트에서 70위에 올랐다.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제이디 스미스는 '하얀 이빨과 온 뷰티' 두권이 올라갔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41위에 올랐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7부작(Septology)’, 박찬욱 감독에 의해 영상화된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 등도 100권 순위에 포함됐다.

21세기 100권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엘레나 페란테의 일명 나폴리 4부작 소설 중 제 1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My Brilliant Friend·2012)가 차지했다.

나폴리 4부작의 마지막 <잃어버린 아이들>은 100권 중에서 70위를 차지 했고 초기작 나쁜 사랑 3부작 중 2부인 <버려진 사랑>이 92위에 올라갔을 정도로 이탈리아 출신의 엘라나 페란테는 21세기의 첫 25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유년기 시절에 만난 두 소녀 레누와 릴라가 서로 다른 환경과 선택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지 펼쳐 보인 이 작품은 총 4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사랑, 우정, 불륜, 배신, 치정을 다루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들은 여성의 사랑과 우정을 중심에 둔 대 서사 드라마가 널리 읽혀 지는 이유 중 하나로 자신들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현재의 나와 딸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가 사실적이게 읽혀지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오늘 아침 리노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가 평소처럼 돈을 빌려 달라고 할 줄 알고 안 된다고 말하려 했다.' 라는 지극히 평범한 문장으로 시작 되는 이 작품은 두 여성의 일생을 총 4권에 걸쳐 펼쳐 보이며 마지막 4권에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한단다.

우리 주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한 걸음 씩 앞으로 나아가야 해.

실수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엘레나 페란테의 <잃어버린 아이들> 중에서


총 10분을 넘지 않는 영상을 보는데 익숙한 세대들에게 각 권의 분량이 600페이지를 넘는 책 4권을 통독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최고의 소설이자 세기의 명작으로 항상 필독 목록에 올라가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빅토르 위고 작품들을 분량의 압박 때문에 읽다 중도 포기한 독자들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읽기 시작하면 놀라울 정도로 빨려 들어간다.

대단한 서사를 바탕으로 시계 태엽 처럼 정교한 플롯이나 뛰어난 묘사,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도 없는 평이한 서술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대화와 촘촘하게 짜인 개개인의 인생 역정들이 나의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이 시대 어디선가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읽혀진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단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이토록 고달픈 인생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세상에 둘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체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중에서

2024년 한국의 어느 학교 교실에선 학기 중 해외로 체험 학습을 가지 않고 꾸준히 등교하는 학생은 또래들 사이에서 ‘개근 거지’라는 놀림을 받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성실, 책임, 인내, 규칙 준수와 같은 덕목은 이제 교과서에만 나오는 것이 되었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났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태어날 수 없지만 , 인생의 책은 스스로 선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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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4-09-25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나의 최신 스맛폰에서 내글이 안보여서 여러번 업로드
북플도 서재도 기능이 너무 떨어진다
글 한 번 쓸 때 마다 이토록 시간을 잡아 먹게 하다니
 
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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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바다'(Sea of Fertility)는  달의 동반구에 있는 달의 바다 중 하나로 행성 달의  다른 바다들과 달리 '메스콘(중력이 유난히 강한 곳)'이 없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문예 월간지 ' 신초'에 '풍요의 바다' 대작 연재를 시작하고 제 1편  '봄눈'의 마지막장 말미의 부기에 '풍요의 바다'는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를  전거로 삼은 꿈과 전생을 다룬 이야기라는 부연 설명을 붙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는  1965년부터 시작해서 1971년까지 총  4부작을 완결 하는데 5년 정도에 시간이 걸렸고 원고용지 총 6000장을 넘긴 대작이다.



1부'봄눈'의 시대 배경은  1910년대 전후로  스무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는 기요아키가  그다음 이야기에서  특정 신체부위에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서  친구 혼다 시케쿠니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차는 벌써 도쿄 시가에 들어 섰고 하늘은 선명한 남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새벽녘 하늘에 걸린 구름은 도회의 지붕위로 길게 뻗쳐 있었다. 혼다는 한시라도 빨리 차가 도착하기를 빌면서도 이번생에 다시는 없을 기이한 하룻밤이 밝아오는 것이 아쉬웠다. 잘못들었나 싶을 만큼 몹시 미약한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 왔다. 아마도 사토코가 벗은 신발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모래 소리 같았다. 혼다에게 그 소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모래 시계 소리처럼 들렸다. 

-미시마 유키오의 <봄 눈>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의 제목은  달리는 말(奔馬)로  한국어로는 분마 일본어로는 혼바로 읽는다.

풍요의 바다 2부를 읽던 중에 한자어 사전을 뒤적이다가 [달리는 말 奔馬]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이 단어가  나왔다.

 빨리 달리는 말.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도 아니거니와 그간 지삼만이 저질렀던 저열한 방법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의 분마(奔馬) 같은 독주에 이를 갈며 분노하기도 했으나 실상 윤도집이 환이를 위험시하고 있는 것에는 다소 한계를 넘는 것이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 중에서 

부끄럽게도 토지 7권에서 읽다가 멈추었고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을 읽다가  奔馬(분마)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고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풍요의 바다 2부를 집필한 기간은 1966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로 이 기간동안 일본은  잿더미가 된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활기차게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경제 굴기를 내세웠던  '쇼와시대'가 배경이다.

이 시기에  발생했던 '혈맹단 사건'이 2부작 '달리는 말'의 핵심 주제로 집필 당시 미시마는 직접 수첩과 녹음기를 들고 사건을 취재해서 사실을 바탕으로 '신풍연의 난( 일명 사족 반란) 메이지 시대 때 번의 사족들이 일으켰던 난에서 활약했던 인물들 170명중에 난을 주도 했던 인물 '경신당' 세력파를 작품에 핵심인물에 투영 시켰다.


미운 사람을 죽이는 건 간단하다. 비열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적의 인간적 결함을 들어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구라하라의 커다란 악은 자기 안전을 위해 세이켄 학원을 매수하는 작고 하찮은 악과 연결되어서는 안 됐다. 신풍련의 젊은이들도 구마모토 진대 사령관을 결코 그런 작은 인격적 결함 때문에 죽이지는 않았다.
이사오는 괴로움에 신음했다. 아름다운 행위란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가. 자신은 아름다운 행위를 할 가능성을 불합리하게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저 그 한 마디 때문에!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전작 '봄눈'의 기요아키가  환생한 '이사오'가 애독하는 각종 정치서 교육서 철학서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품에 서술한 일부 책들은 미시마 유키오가 다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메이지 시대 때 넘쳐 흘러 들어온 각종 서양 서적들을 까막눈에서 조금 벗어난 사무라이들이 번역하거나 성직자들과 신부들이 번역한 것들을 이리 저리 짜집기한 사상의 잡서였기 때문이였다.

이런 번역물을 참고 삼아 작가  미시마도 작품에서 사상의 범람의 시대에 표류 했던 잡서들을  '이사오'가 읽게 만들었다.

1부 <봄눈>에서 일본 귀족들의 덧없고 허무한 감정을 펼쳐 보였다면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시대를 변혁 시키겠다는 기세로 펄펄 끓어 오르는 혁명가들과 광신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피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는 11세기 말 헤이안 시대 스가와라노 다카에의 딸이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으로  이야기의 중심 축은 윤회의 전생담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이야기의 커다란 틀을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전체 구성으로 가져왔다.

미완성의 삶을 살다 간 인물이  그다음 번 시대에는 다른 모습으로 동일한 신체 특징을 갖고 시대를 초월하며 다른 인물로 살아간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 (1910년 전후)부터 1975년 여름까지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불교의 윤회설에  투영 시켜서   일본 근현대사의 모습을 병풍처럼 엮었다.

마지막 4부작은 1970년 시대를 다룬 '천인오쇠'天人五衰)는 천인이 죽을 때 쯤 나타나는 다섯 가지 쇠하여지는 모양(模樣)을 의미 하는데 첫째  몸에 빛깔이 흐려지고, 둘째 나쁜 냄새가 나며, 셋째.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넷째 화만이 마르며, 다섯번째  스스로에 자리가 즐겁지 않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할복 자살했지만 마지막 '천인오쇠'는 1971년 1월에 실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풍요의 바다 1부, 2부를 연달아 읽고 폭풍 눈물을 흘리며 일본에도 이런 서사 구성을 갖춘 문학이 탄생했다면 탐복 했지만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 군국주의를 외치며 웃통을 벗고 돌아 당기는 동안 집필했던 3,4부작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영역본 1,2부는 미국 번역가 마이클 갤러 (Michael Gallagher1930년생)가 번역해서 1973년 미국에서 이 책으로 내셔널 북어워드를 받았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로 3년 남짓 일본에 체류하며 영어를 가르쳤고 한국 부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었다(전쟁 당시 낙하선 부대원으로 전쟁 후에는 선교 목적으로 체류함)

마이클 갤러는 미시마 책 두 권을 번역한 후 엔도 슈사쿠 책을 번역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면서 일본 출판사 고단샤에서 출간한 영어 일본어 사전을  편역 했을 정도로 일본어 천재 였다.

3부 '새벽의 사원'의 번역은  두 명의 일본어 전공 학자들이 공동 번역을 했다.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인 세실리아 세가와 세이글레( Cecilia Segawa Seigle)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자 하와이 주립대학에 동아시아 언어 문명사학과에 학과장으로 그녀는 이 번역으로 일본정부가 수여하는 온갖 훈장을 목에 주르륵 걸으며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번역자 DE Saunders은  1919년생으로 정통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 하다가  불교에 입문해서 일본어에 빠진 학자다

마지막 4부 번역은 일본어 번역가로 유명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로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수상 할 수 있게 만들며 미국 출판계에 일본 소설 붐을 일으킨 인물이다

에드워드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해병대 어학장교로 일본 파견 당시 온갖 서류를 해독하려고 일본어를 배웠다.

미군은 에드워드의 뛰어난 일본어 실력과  번역을 통해서 일본 문화를 익힐 정도로 그는 일본의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다.

에드워드는 종전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외교관 시험에 단번에 합격 한 후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일본문학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1948년 그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일본 정치인들에 파벌과  귀족, 화족들의  재산서류들을 분석 하는 일을  담당(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 재벌 기업들에 사유재산을 추적하는 일도 함)하며 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공부하는 열혈 학구파로 살았다.

그렇게 일본의 모든 걸 섭렵하겠다는 기세로 달려 든지 단 2년 만인 1950년부터 '겐지 모노 가타리'를 줄줄 읽기 시작하자 동시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만들며 노벨상 후보에 일본 작가들의 이름을  올려놓는 인물이 된다.

일본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추앙 받는 동안 에드워드는 일본의 전범 국가 이미지를 지워주고 문인들을 배출하는 문명국 이미지를  이 시기부터 덧칠 해 주기 시작하며 친일 도널드 킨과  손잡고 미국 문학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일본 문학들이 영미권으로 진출하는데 큰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 작품을 미국 내셔널 북어워드를 수상하게 만들며 일본 정부로 부터 각종 훈장 메달을 줄줄이 목에 걸고  '사마'로 칭송 받는 인물이 되고 도쿄 도지사는 2006년에 도쿄 인근 섬을 뚝 떼어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한테 준다고 하자 그는  미국 생활을 모조리 정리하고 일본에 영구적으로 살기 위해 이주한다.

에드워드는 반 평생 일본에서 거주 하는 동안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서 밀반출까지 하며 한국의 고미술과 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모순된 인물이였다.

1968년 10월 18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 지던 날 에드워드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등반하고 있었을 정도로  지진 발생이 빈번한 일본보다 바다 건너 한반도의 산과 바다를 누비면서 심신 건강을 유지 했던 기인이였다.

2007년 산책 도중에 넘어져서 4개월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뜨기 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섬에 있는 도서관에 유품 500여점을 기증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계가 역사와 이념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계획대로 방사능 오염수를 착실하게 정확한 시간에  일정량을 쏟아 버리고 있고 세계 문화 유산에 조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강제로 내몰아 버린 사도 광산을 등재 시켰다.

2024년 나라의 독립을 되찾은 지 80년 만에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념으로 갈라 놓고 일본을 배려 하는 기이한 외교 정책을 펼치자 오히려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 할 정도로 한국의 대일 외교 전략은 세계 무대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순수란 꽃 같은 관념, 박하 맛이 강한 양치액 같은 관념, 자상한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리는 듯한 관념을 서슴없이 피의 관념, 부정을 베어 쓰러뜨리는 칼의 관념, 대각선으로 내리치는 동시에 튀어 오르는 피바람의 관념, 또는 할복의 관념으로 이어 주는 것이었다. ‘꽃처럼 지다’라고 할 때, 피범벅이 된 시체는 곧 향기로운 벚꽃으로 변한다. 순수란 얼마든지 정반대의 관념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순수는 시(詩)다.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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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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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빛만으로 남자를 죽였다고 말하면 당신은 나머지 이야기를 듣겠는가?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뒤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듣겠는가?

아니면 나에게서 도망치겠는가?

이 흐릿한 고대의 거울로 부터, 이 기이한 육체로 부터 도망치겠는가?

나는 당신을 안다. 당신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면 어떻까. 괴이한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절벽 끝에 서 있는 한 여자. 그리고 절벽 바로 아래, 배를 타고 있는 한 남자.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시간보다도 오래된 이야기를 둘은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제시 버튼의 <메두사> 중에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메두사는 눈빛 만으로 남자를 죽일 수 있고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돌로 변하는 괴물로 변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메두사에게도 치명적인 운명의 족쇄가 있다.

그건 고르고네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니기 때문에 영웅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메두사라는 존재가 남자들에게 주는 공포심을 '거세 불안증'과 연결 시켜서 심리학적으로 분석을 했을 정도로 <메두사>는 수 세기 동안 여러 문화에 깊이 영향을 끼쳤다.

역사 속에서 문화와 관습의 차이로 오인 되거나 간과 됐던 여성의 삶을 다시 쓰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영국의 작가 겸 배우 제시 버튼은 <메두사>의 신화에서 태생적 운명의 출발점인 언니들과 바위 섬에 살던 시절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해서 남성 서사 중심의 신화를 전복 해 버린다.

어느 날, 메두사가 살고 있는 섬에 아름다운 청년 페르세우스가 찾아오고 고립된 섬의 외로운 유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메두사는 바위에 모습을 감춘 채 페르세우스에게 말을 건넨다.

메두사가 페르세우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메리나 라고 말하자 페르세우는 섬에 진짜 온 목적을 숨기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각자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오르고 진짜 벌을 받아 섬에 유폐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늘 지위를 잃을까 봐. 자기보다 젊은 누군가에게 권력을 뺏길까봐 두려워 했어. 예언자의 말만 믿고 자신의 두려움에 놀아난 거야. 태어나지도 않은 어린애가 늙은 나무의 껍질을 벗기듯 자신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장작으로 쓰리라 생각한 거지. 결국 할아버지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고작 어머니를 청동탑에 가둬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일을 막는 거였어. 그러고는 절대로 어머니를 풀어 주지 않겠다고 맹세 했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 수록 강하게 끌리지만 페르세우스는 메리나에게 자신의 '메두사'를 사냥하러 섬에 온 것이라는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페르세우스에게 반해버린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아닌 뱀을 머리에 이고 있는 흉측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어야 할 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내가 숨을 내쉬면 뱀들도 숨을 내쉬었다. 나의 근육이 긴장하면 뱀들도 공격 태세로 몸을 뻗었다.'

-만약 그때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만약, 만약, 만약, 우리 인간들은 왜 항상 지난날을 돌아보고 더 쉬운 길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까?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메두사의 모습은 현 세상으로 건너와 세상의 중심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이 남성을 누르고 올라섰을 때 '악의적'인 이미지를 덧 씌워 버렸다.

두 개의 자아가 충돌했다. 새로운 자아와 과거의 자아, 마음이 무거운 자아와 근심 걱정 없는 자아. 흉측한 자아와 아름다운 자아

남성 중심의 서사적 신화에서 여성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손쉬운 평가의 대상이 되어 신들의 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나는 위엄 있고 당당했다. 어린 시절처럼 나의 주인은 나였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하건 그것은 나의 영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처럼 나는 저녁이 되면 태양과 함께 죽었다가 아침에 다시 태어났다. 우리가 어디로 향했느냐고? 안개와 우울의 땅도 아니고 피와 연기의 땅도 아니였다. 그런 곳이라면 이미 볼만큼 봤고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세상을 헤매는 영혼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바다에 머물며 계속 항해했다.

결국 남성의 힘으로 눌러 버린 메두사는 현 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세기 동안 권력을 가진 여성 또는 권력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은 탁월한 싸움꾼 또는 표독하고 악랄한 모습의 메두사에 비유되어 왔다.

기존의 신화에서 메두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다 아테나의 저주를 받았고 그녀를 단칼에 제거해버린 페르세우스는 신화 속 영웅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 부터 몸 속에 운명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신의 선택에 의해서? 아니면 우주 만물의 신묘한 기운을 받아서?

아니면 마치 로또 당첨의 행운의 숫자를 뽑듯이 경이로운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나서?

어떤 능력을 갖고 태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그저 태어난 순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갈 운명으로 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권력자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도 죽음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신화의 결말처럼 작가 제시 버튼이 다시 쓴 <메두사>에서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버릴 수 있을까?

한때는 우리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스테노와 에우리알레

뱀들을 리본처럼 휘날리며 갑판에 서 있는 나, 햇살에 금빛과 은빛으로 털을 반짝이며 뱃머리 양쪽에 앉아 있는 개들...

이제 나는 안다. 우리가 찬란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스토리에서 선과 악이 등장하고 서로 충돌하다 결국 영웅이 악당을 무찔러 버리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 온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누구 편에 설지, 고민하지 않고 악당을 물리쳐 버린 영웅을 응원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다르다. 절대선도 절대악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제시 버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형적인 악인 캐릭터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메두사>는 인류 역사에서 추앙과 멸시의 대상으로 석화석 처럼 굳어져 버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에게 정당함을 부여하는 것들을 완전히 전복 시켜버렸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보아주기를 원했다. 사랑을 원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뱀들까지 전부 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을 원했다. 그러길 원한다고 인정하는 게 나약한 마음이 아님을 스테노가 일깨워주었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어떤 여자도 외딴섬이 아니었다. 낯선 이들에게 외딴섬이 되길 강요 당할 뿐이다.

-제시 버튼의 <메두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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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8-30 0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화도 남자가 썼으니 여성을 안 좋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거 예전에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메두사도 어쩌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그것 또한 남성이 질투해서 안 좋게 이야기했던 건지도...


희선
 

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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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이 흩어진 섬의 해변에 파도에 씻긴 석유 드럼통이 떠 밀려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세월 간간이 이런 저런 물건들이 도착했다. 해진 셔츠며 밧줄 찌그러진 플라스틱 도시락 뚜껑, 인조 가발 등. 이따금 시신도 도착 했는데 오늘도 한 구가 있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어느 아침과 다름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흔 살의 등대지기 새뮤얼은 등대 내부 계단을 내려오다 파도에 떠밀려 온 드럼통을 발견한다.

서둘러서 해안가로 달려간 등대지기는 자신이 등대 창문으로 보았던 드럼통 바로 앞에 시신 한 구를 발견한다.

노동자들의 상징인 푸른색 작업복과 같은 색의 플라스틱 드럼통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등대지기는 이 드럼통을 자신이 거주하는 오두막으로 가져가 텃밭에 쓸 빗물을 저장 해두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드럼통 옆에 발견 된 시신은?

앝은 모래층 밑에 단단한 바위층으로 이루어진 섬의 지층에서 시신 한 구를 파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등대지기는 섬에 가장 많은 돌멩이들로 시신을 눌러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멩이들을 찾아 보지만 시신의 부피가 너무 커서 그 시신을 덮기 위한 돌멩이들을 찾아 다니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지난 23년 동안 등대지기로 섬에 거주 하는 동안 해일에 떠밀려 온 시신은 모두 서른 두 구로 그는 시신이 발견 될 때마다 당국에 신고를 했다.

오랫동안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다 새로 들어 선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은 등대지기의 신고를 받고 섬으로 찾아 와 독재 치하에서 고통 받다 행방 불명 된 이들을 찾아 주겠다는 신념으로 보디백까지 들고 와 섬 전체를 빗질하듯 샅샅이 뒤졌다.

밀물과 썰물이 강하게 밀려 들어 올 때마다 시신이 한 두 구 휩쓸려 섬에서 발견되고 등대지기가 무전으로 연락을 하면 담당 공무원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들은 무슨 색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무슨 색이냐고요? 시신들, 색이 어때요? 그러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피부색이 짙은가 하는 걸 묻는 겁니다. 당신이나 내 피부색 보다 짙습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얼굴은 요? 우리보다 긴 편인가요? 광대뼈는 어떻게 생겼죠?'

'그냥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시신입니다.'

'잘 들어요. 우린 바쁜 사람들입니다. 다뤄야 할 진짜 범죄들이 산적해 있었요. 실제 잔혹 행위 말이죠. 다른 나라 난민들이 도망치다 물에 빠져 죽을 때마다 섬으로 가서 시신을 끌고 와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건 우리 일이 아닙니다.'

'그럼 저 시신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난민 시신은 필요 없으니까.'

섬에 시신이 발견 되어도 더 이상 당국에서 처리 해주지 않게 되자 등대지기는 텃밭을 일구고 돌담을 쌓아서 섬 이곳 저곳에서 벽돌만 한 돌을 주워 모은 뒤 적당한 높이와 길이가 될 때까지 하나씩 맟추며 쌓아간다.

등대지기가 돌을 쌓아 올릴 때마다 작은 만이 조금씩 넓어지고 톱니 같이 생긴 모서리들이 둥그스름해지면서 섬 모양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공사를 계속 해나갔던 등대지기는 해안가에서 시신이 발견 될 때마다 돌담 외벽 안 쪽에 파 묻어 버린다.

드럼통과 함께 발견된 그 시신도 텃 밭 돌담 외벽에 묻어버리려고 살짝 건드리자 팔과 다리가 움직이면서 시신의 목구멍에서 으르렁 소리가 났다.

50,200,350,500.....

시신의 맥박이 파도 소리에 맞춰 뛰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모래 밭 위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는 등대지기 새뮤얼이 내 준 옷을 입고 홀로 살고 있는 등대지기가 먹고 자는 공간을 차지 하면서 지난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한 꺼번에 밀려 들고 서서히 낯선 이방인의 존재를 두려워 하게 된다.


나라가 독립했을 때 아버지는 심각한 신체 장애를 입었음에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들고 갈 수 없는 책상이며 의자, 전구,의약품, 전화까지 식민주의자들이 남김없이 파괴했는데도 아버지는 이 파괴를 옹졸한 행위나 폭력으로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뮤얼이 거리로 옮겨둔 의자에 큰 머리와 앙상한 몸을 힘없이 기대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어린 시절 새뮤얼의 나라는 어느 날 갑자기 식민지가 되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가족과 함께 쫓겨났나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면서 구걸 하는 동안에 국가는 식민지에서 독립해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군부 독재로 국민을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군사 정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장애를 갖게 됐다.

청년이 된 새뮤얼은 자유를 위해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고 아버지 처럼 끌려가 감옥에 갇혀서 짐승 취급을 당하며 노동형에 처해진다.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좋은 시절은 찾아 오지 않았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손에 넘어간 정부의 무능한 정책에 이웃나라에서 밀려 들어온 난민들까지 나라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결국 나라는 무정부 상태가 되고 어디에도 살 곳이 없었던 새뮤얼은 등대지기에 자원에서 홀로 섬에서 살아간다.

파도가 밀려 드는 바다는 사납고 무서웠지만 무정부 상태의 육지보다 등대 불빛만 비추는 이 곳 섬의 삶은 자유로운 낙원이였다.



'이것은 땅이다. 나는 땅을 맛보았다. 땅은 내 핏속에 들어 있다. 땅이 내 몸이고 내 몸이 땅이다. 두려움 없이 땅에 맹세한다. 나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피와 불로 맹세하나니, 땅은 나의 것이고 내가 땅이다.'

새뮤얼은 오두막 돌담 외벽사이 떠밀려 온 시신을 매장 시키는 동안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과거의 기억 속에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젠 그의 삶의 영역이자 유일한 '땅'에 낯선 남자가 그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런 식으로 도망가지 말아야 했어.'

'난 늙은이야. 내가 누구를 다치게 한 적이 있겠나?'


거대한 석상이 사라진 육지에서 새뮤얼이 군인의 목을 끝까지 졸라서 독립의 깃발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흔들며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그는 자유롭게 육지에서 가족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2021년 부커상 후보에 올라갔던 캐런 제닝스의 <섬>은 영국의 마일스 몰런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면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였지만 정작 작가의 고향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떤 출판사도 선뜻 출판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캐런 제닝스의 세번째 소설 <섬>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식민지 역사의 상흔과 백인 독재 정권의 악랄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여러 해 동안 외면 받았다.

'우리는 빼앗김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캐런 제닝스

폭력은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을 낳는가?억압된 자유에서 해방되어 또 다른 억압은 누구를 향하는가?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갖은 낯선 이방인들은 사회의 안전망에서 어떤 보호를 받아 삶을 살아 갈 수 있는가?

지도 상 어디에도 없는 섬에 살고 있는 어느 등대지기와 파도에 휩쓸려 온 어느 낯선 남자의 이야기가 모습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 두 발을 안전하게 딛고 걷고 뛸 수 없는 땅 한 평 없는 유랑자이자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 섬에 들어 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건 마구 구르고 뒤채고 휘도는 파도였다. 고립보다도 길들지 않는 땅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그럼에도 새뮤얼은 싫은 내색 없이 파도를, 그리고 섬을 둘러싼 거대한 바다를 경외하려 애썼다. 그가 계속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돌담을 쌓은 건 아마도 물살의 공격에서 땅과 자신을 지켜내려는 시도 였을 것이다.

2주에 한 번 오는 보급선이 세상과 유일하게 연결 되는 순간으로 등대지기 새뮤얼에게 섬은 온전히 그의 것, 그의 전부 였다.

파도에 떠밀려 온 낯선 그 남자가 섬 전체를 누비는 동안 등대지기의 고립과 평화가 동시에 깨져 버리고 사람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폭력으로 돌변해버린다.

'외국인이 이 땅에서 우리 걸 갈취하고 우리가 힘들게 쟁취한 것을 훔치게 둘 순 없습니다. 이 땅은 우리 땅이며, 우리 말고는 그 누구도 이 나라에 대한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 말고는 누구도 여기 있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 오직 우리만의 나라입니다. 이제 외국인은 더는 환영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줍시다. 그들을 내쫓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캐런 재닝스의 <섬>이 2021년 부커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영국 가디언지와 미국 뉴욕타임스는 고립된 섬에서 단 4일 동안에 발생하는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의 잔혹한 식민지 역사와 어느 날 난민이 되어 바다 위를 표류 하게 된 현 세계의 비참한 삶이 압축적으로 묘사된 수작이라 평가했다.

낯선 작가의 얇팍한 분량의 이 책<섬>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외로운 섬과 바다 사이를 비추는 등대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면서 육지와 맞닿은 항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 십만개의 번쩍이는 불빛들이 어디에도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한 채 끊임없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망연히 지켜보던 새뮤얼은 문득 게들이 나타난 그곳, 햇빛이 닿지 않는 해저 깊은 곳, 그들이 수세기 동안 섬으로 길을 내며 온 그 침몰한 외계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거대하고 육중한 몸으로 바위와 다시마와 해안에 밀려온 다양한 표류물과 배에서 버린 해양폐기물을 꾸준히 헤치고 수세기 동안 항상 같은 지점으로 나아가는 한결같은 마음. (…) 이듬해, 그는 두려움 없이 혼자 게를 잡았다. 그리고 14년 동안 한 번에 한 마리 원칙을 고수하며 같은 방식으로 게를 잡았다. 그런데도 게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섬으로 돌아오는 게는 점점 줄다가 결국 어느 해, 돌아오기를 멈추었다.

-캐런 제닝스의 《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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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16년 약 3,7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세계 제 1차 대전을 겪은 인류는 전후 전쟁에서 싸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전투기 조종을 맡았던 조종사들은 전쟁터에서 '바람직하게' 싸우는 전쟁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 하기 시작한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 비행기는 합판과 천, 금속, 고무 재질로 제작 되어 위 아래 두 쌍으로 달려 있는 날개는 지주로 연결 되어 있었다.

좌석은 하나 였고 프로펠러와 동기화 된 기관총이 앞을 향해 있고 총알은 프로펠러 사이로 발사 되었다.

차고에서 순식간에 조립해서 급박하게 움직이는 전쟁터로 출격해야 하는 전투 비행기들은 공습 목표물 폭격 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까지 파괴 시켰던 괴물이였다.

폭격 대상을 정밀하게 조준하는 능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에 목표물을 향한 정확도가 떨어지는 전투 비행기는 시속 300-500킬로미터로 날아 올라서 800킬로미터까지 치솟다가 9킬로 미터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순간 지상으로 폭탄 물이 떨어 질 때 까지 약 35초가 걸렸다.

만약 폭탄이 떨어지는 동안 바람이라도 분다면 시속 160킬로미터까지 이르러서 지상으로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 조종사가 조준 했던 목표물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떨어 지는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전혀 몰랐죠. 어디인지는 모르면서도 거기에 이를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집단 내부에서 일어난 정말 특이하고도 중요한 일은 기술적인 진보와 소재 개발에 대한 강한 믿음, 적절한 비행기를 손에 놓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어떤 선택의 재검토> 중에서

20세기 초 공중에서 적과 교전 할 수 있는 기동성이 뛰어난 비행기는 1차 대전을 겪고 난 후 1930년대 비약적인 항공 기술로 거듭 발전해 나갔다.

알루미늄과 철이 합판을 대체했고 엔진은 더 강력해졌고 항공기 내부 크기는 더 커지면서 더 높이 날아 오를 수 있었다.

어떤 전쟁에서도 멋지게 창공을 가로 지르며 적을 제압 할 수 있는 항공기들은 193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칼라일 소재 육군 대학원에서 탄생 했다.

이곳에 항공 기지가 설립 되면서 세워진 항공단전술학교에는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속도에 미쳐버린 20-30대 젊은 리더들이 모였다.

'우리는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진보 한다.'


이들은 일명 '폭격기 마피아'집단으로 불렸던 항공단 교수진들로 대부분 1차 대전에 참전 했던 전쟁 용사들이였다.

전쟁 후 장군으로 진급한 이들은 전자 회사나 거대한 방산 업체에서 근무 하면서 항공 기술 개발에 몰두 했다.

이들 폭격 마피아들은 레닌과 스위스 연방공대 동기 출신의 네덜란드 태생 괴짜 엔지니어 칼 노든이 개발한 폭격 조준기( 망원경·볼베어링·수준기(水準器) 등으로 구성된 조준기에 공기 온도 등에 관한 64개 알고리즘을 활용해 조작하면 어느 시점에 폭탄을 투하해야 지상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조준기)로 비행기에 장착해서 적의 병참·군수 핵심만 정밀 타격하면 민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편은 십 수 명에 불과 하지만 상대편에는 1만 명의 장교로 가득 찬 육군 해군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열의가 충만했다. '

당시 이들의 교육 방침이나 항공 기술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폭격 마피아'들이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추진하고 있을 때 상황을 점검 하라 거나 멈추라고 지시 할 사람이 없었다.

교과서나 지침서도 없었고 강의 계획서도 없었던 항공단전술학교의 모든 교육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실시 되었다.

폭격 마피아 교수진들은 장소를 정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든 지 공개적인 토론을 벌이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육군성 지휘부의 참모들이 당시 우리가 하고 있었던 일이 무엇이였는지 알았다면 우리 모두 즉시 감옥으로 끌려 갔을 것이다. 기존의 군사 규칙이나 무기 개발과는 완전히 상반 되었던 것으로 이 사실을 알고도 우리가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행위를 절대로 묵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폭격 마피아 교수진들 중 핵심 멤버 도널스 윌슨 자서전 중에서


이렇게 엄청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던 폭격 마피아들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항공기, 즉 인입 식 착륙 장치와 가압형 동체를 부착한 항공기를 탄생 시킨다.

이 항공기는 미국 전역으로 승객을 실어 나르는 상업 항공기가 아닌 오로지 폭탄을 싣고 날아 올라서 기상의 적들에게 무시 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강력한 무기였다.

1차 대전 당시 적진에 폭탄을 떨어뜨렸던 시기는 어두운 밤, 달빛이 떠올랐던 순간이였지만 이제 폭격 마피아는 훤한 대낮에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목표물을 향해 정확하게 조준하는 변수를 입력해 작동을 시키는 순간 9킬로 상공에서 지상의 오크통 위로 정확하게 폭탄을 떨어 뜨릴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폭격기 마피아들의 이런 구상과 설계는 지극히 이론적인 것,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것 이였을 뿐 이였다.

1930년대 전장에 투입했던 비행기들을 보게 된다면 이런 말을 내뱉을 것이다.

'뭐야, 이 사람들은 마약을 얼마나 많이 했던 거야?'

1차 대전을 겪었던 공군들은 필사적으로 육군이나 해군과 전혀 다른 전투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싶었다.

1931년부터 1941년 항공 단 전술 학교를 중심으로 공군은 해군과 육군보다 앞선 기술력을 발전 시켜 나갔다.

이들이 집중 폭격 대상으로 삼은 건 '교량'과 '송수로' 그리고'전력'시설물이 였다.

교량을 파괴하고 송수로를 붕괴 시키고 전력을 불 태워 버리면 전쟁에 승기를 잡는다고 가정 했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폭격의 정밀한 기술과 폭격수가 어떤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 시킬 수 있는데 만 집중적으로 연구 했다.

'폭격기 마피아'들은 폭격기를 동원해 도시를 초토화 시켜서 단 시간 안에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공군력은 수 개월 동안 적과 충돌을 거듭하며 참호 궤멸 작전 속에서 수 백 만명의 목숨을 잃은 1차 대전의 대 학살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이 20여 년 동안 운영한 항공단 전술 학교 졸업생은 고작 천 여명 남짓으로 수세 대에 걸쳐 육군 장교를 배출한 웨스트 포인트의 위엄과는 수적으로 전쟁 경험으로 비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1941년 여름 히틀러의 진격으로 유럽 전역에 나치 깃발이 꽂혀 버리자 워싱턴은 폭격기 마피아 전술 교관들을 호출한다.

교관들은 이라는 놀라운 문서를 들고 간다.

이 문서에는 미국이 필요한 항공기(전투기, 폭격기, 수송기)종류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조종사와 몇 톤의 폭발물이 필요한지 부터 독일 지역의 50개의 발전소와 47개의 수송망,27개의 석유 정제소,18개의 항공기 조립 공장, 6개의 알루미늄 공장,6개의 마그네슘 공급원 같은 중요 표적물 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은둔의 10년 동안 오로지 항공 기술 개발에 매달렸던 폭격기 마피아 교수진들과 교관들은 미국 군 수뇌부에 단 9일 동안 전쟁을 승기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준다.

미국 육군 항공단 전술 학교에서는 폭격기 마피아들이 폭탄을 고도로 정밀하게 사용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반면 영국의 물리학자 린더만은 탁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 조차 증명 하지 못했던 수학적 명제를 해결 했던 천재로 미국 측 폭격기 마피아들과 전혀 상반된 논거를 처칠 총리에게 제시했다.

영국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폭탄을 만들고 폭격기 승무원을 훈련 시키고 이 모든 폭격기와 승무원을 독일 노동자 계급의 가옥을 폭격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한다면 18개월 안에 인구 5만 이상 모든 도시의 50퍼센트를 파괴 할 수 있습니다.

린더만은 처칠을 설득했고 처칠은 영국 폭격 사령부 지휘관 자리에 아서 해리스를 임명한다.

부하들에게 도살자로 불렸던 아서 해리스는 폭격 작전을 맡자마자 독일 쾰른 시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한다.

표적을 확인하지 않고 영국에서 천 개의 폭탄을 싣고 서 쾰른 시 중심부에 90퍼센트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그는 단 3일 만에 드레스덴을 폭격해서 2만 50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폭격의 이유는 군의 이동을 막기 위한 것 이였지만 폭격의 대상은 민간인들 이였다.

아서 해리스는 폭격을 더욱 정확하게 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전쟁에서 사람들이 아닌 전쟁 기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42년 가을 B-17 폭격기를 몰고 슈바인푸르트를 향하고 있었던 육군 항공대 대령 커티스 르메이는 회피 기동을 하지 않은 채 약 8분 동안 직선 고정 비행으로 목표물에 접근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전략을 세운다.

슈바인 푸르트 공습 전날 대령 르메이는 제4폭격비행단(B-17 폭격기)를 이끌고 레겐스부르크에 있는 매서슈미트 전투기 공장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하기로 했지만 출격 당일 날 아침 극심한 안개로 인해 활주로에 발이 묶여 버린다.

기상 악화로 인해 125대 비행기 중 24대가 독일 폭격기에 맞아 공중 분해 되었고 50-60대 비행기가 크게 파손되었다.

각각 8-9개의 폭탄을 실은 230대 폭격기들이 총 2000여개의 폭탄을 떨어뜨렸지만 목표물 중 고작 80여개 만 사라졌고 매서슈미트 전투기 공장은 큰 파손 없이 정상으로 가동 되었다.

슈바인푸르트는 1,2차 공습을 당해도 항공기 산업이 전혀 마비 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 측의 제 8공군이 출격한 60대의 전투기 중 17대는 심각한 손상으로 폐기 해버렸고 650명의 항공병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참전한 대원 중 4분의 1이 사라져 버린 폭격기 마피아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전투 계획을 세우고 기술력을 보강해 나간다.

1944년 12월 괌 사령부의 대 언론 공식 발표 자리에 선 공군 사령관 해이우드 핸셀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폭탄을 우리가 원했던 장소에 정확히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일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초기 실험 단계에 있을 뿐이다.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많은 운영상의 문제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944년 미군은 일본 군이 주둔하고 있던 괌, 사이판 등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하자마자 일본 본토를 공략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 변모한다. 당시 이곳 전초 기지를 지휘 했던 인물은 헤이우드 핸셀 준장으로 그는 제21폭격기 부대를 이끌었다.

핸셀 준장은 낮에 폭격기를 출동 시킨 뒤 공장, 발전소 등 적국의 기반 시설을 조준해 타격하는 ‘정밀 폭격’ 전술을 선호했지만 적의 대공포를 피하려 구름 위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투하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전략이 연달아 실패하자 민간인 학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미국 본토에선 새 지휘관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을 새 지휘관으로 임명한다.

르메이 소장은 정밀 폭격을 포기하고 적의 대공(對空)공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 시간대에 표적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보단 광범위한 공격을 가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야간 공습 전략에 '사탄의 제안'이라고 불렸던 '네이팜탄'을 썼다.

1945년 3월9일 밤 도쿄 커티스 르메이의 지휘로 첫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었고 네이팜 탄을 장착한 폭격기는 오사카-구레-고베-니시노미야-오카야마-도쿠시마-도야마를 초토화 시켰다.

7월26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방송으로 내보냈지만 일본 군부는 ‘최후통첩’ 격인 포츠담선언을 격렬히 비난하고 언론을 통해서 절대로 항복할 의사가 없다는 걸 명확하게 밝혔다.

“(8월6일) 8시15분 15초, 폭탄 투하실의 문이 열리고, 리틀 보이가 떨어진다. 티비츠는 비행기를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돌린다. 43초 후 조종석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으로 가득해진다. 충격파가 비행기를 때리고, 티비츠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소리친다. ‘대공포!’ 뒤를 돌아보니 에놀라 게이를 향해, 훗날 그의 회상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끔찍하게’ 솟구쳐 오르는 구름이 보인다. 아래쪽에서는 히로시마가 타르 양동이처럼 검게 끓어오른다.”

-에번 토머스의 '항복의 길'중에서

일본 땅에서 진짜로 핵이 터지자 전쟁을 이끈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은 항복 여부를 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3대 3’ 군 강경파는 항전 할 의지를 밝히며 전쟁의 지속을 위해 황궁 내 쿠테타까지 모의 한다.


8월 6일 특별 장비를 장착한 B-29 에놀라 게이가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떨어 뜨리자 정확히 43초만 7만명이 즉사했고, 뒤이어 약 7만명은 천천히 고통 속에서 사망했지만 일본이 여전히 항복의 의지를 밝히지 않는다.

3일 후 휴전 협상을 기대했던 소련군이 대대적으로 만주로 침공을 개시하고 8월9일 규슈의 나가사키에도 핵폭탄 ‘팻 맨’이 투하된다.

전쟁 막바지 최고전쟁지도자회의 참석자 6인 가운데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는 연합군의 최종 목표는 도쿄로 최후의 항전이나 결전이 아니라 오히려 항복만이 일본과 천황을 살리는 길이라 믿고, 핵폭탄 투하 후에도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한 군인들에 맞서 히로히토 덴노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8월15일 정오 일본 전역에서 ‘라디오 도쿄’를 통해 히로히토 덴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생각하건대, 이제부터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진실로 심상치가 않다. 너희 신하와 백성의 충정은 짐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곤란을 감당해내고, 참아야 할 곤란을 참음으로써 만대를 위한 태평시대를 열고자 한다.”

일왕이 항복을 선언하자 2차 대전이 끝이 났다.

일본 외무 대신 도고 시게노리 예측 대로 세 번째 핵 투하 장소는 도쿄였다.

스파츠는 자신이 이끄는 항공대의 B-29 폭격기 7대를 도쿄 상공에 띄워 가로 4인치, 세로 5인치의 전단(삐라) 500만장을 살포했다.

도쿄 상공에서 떨어진 삐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전쟁을 종결할 기회다.

천황(일왕)을 설득하라.”

임진 왜란 당시 왜군에게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가 천황을 설득 하지 않았다면 연합군이 일본 땅에 핵 100기를 투하 해도 일본 군부는 절대로 항복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종전 후 전범재판을 받고 수감됐던 도고가 1950년 7월 면회 온 가족에게 마지막 이런 글귀를 남겼다.

‘일본의 미래는 영원하겠지만, 매우 끔찍한 이 전쟁이 끝나 조국의 고통이 사라지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다. 이로써 나의 일생의 과업은 달성되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하든 중요하지 않다.“

폭격기 마피아의 리더 였던 헤이우드 핸셀 장군은 도쿄에 대한 네이팜(소이탄) 공격을 거부하다 경질되었다.

만일 폭격기 마피아의 양심과 신념이 그대로 지켜졌다면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 했을까?

1945년 8월 12일 일본은 이미 한국 동해안의 작은 섬에서 소형 원자폭탄을 실험했다. 미국이 7월 16일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한 것보다 불과 3주 뒤로 이 핵실험 성공을 미국측이 알고 있었는지 현재까지 어디에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1942년 4월 18일 미국이 일본 본토에 첫 공습을 시작하고 1944년부터 전략폭격으로 확대해 나가자 일본은 원폭 프로그램을 한국의 흥남으로 옮겨 버렸다. 따라서 흥남지역에서 일본군이 원자탄 연구를 계속 수행 하는동안 소련 잠수함이 흥남항 주변까지 내려 왔다.

“만일 1945년 8월 15일 나가사키에 B-29 폭격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먼저 미국 본토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서 미국을 평화협상에 강제로 끌어 당겨 놓고 영원히 한반도와 동아사이 전체를 집어 삼켰을 것이다."

핵폭탄 성공 후 익명의 플루토늄 폭탄 개발 관여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더 ‘나은’ 이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용되지 않길 바랐고, 그것이 초래할 파괴를 생각하며 몸서리쳤습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 종류의 폭탄 역시 예상한 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말해서 그 복잡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몹시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끔찍한 생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지속 된 세상의 모든 전쟁은 서로를 제거 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사람을 투입했다.

인류는 빠른 시간 안에 전투에서 승리 하기 위해 엄청난 파괴력과 정밀한 조준 기술을 갖춘 무기와 폭탄을 개발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1,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군용 폭탄, 신관, 독가스,연막 통, 수류탄 같은 폭탄 물을 해체하고 분해 하면서 수백 번의 실험을 거쳐 무엇에 든 달라 붙어 활활 태워 버리는 '네이팜'을 탄생 시킨다.

세상의 어떤 전쟁에서도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 해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 거대한 폭탄들이 도시에 떨어지는 순간,사상자의 피해는 막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평화란 선악의 거미줄에 간신히 매달린 비항구적인 긴장 상태에 불과하다.

2022년 부터 불길이 치솟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2024년 중동의 화약고인 가자 지구인 팔레스타인 땅에 무인 폭격기로 온갖 신 무기들이 대량 살상과 학살을 자행 하고 있다.

전쟁광 푸틴은 핵 미사일이 탑재된 항공기로 유럽 전역을 공격할 준비 태세를 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주도 면밀한 폭격과 공격 하마스 군 수뇌부와 수장들을 잇따라 살해 하면서 중동 전역으로 전쟁의 먹구름이 퍼져 나가고 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 이 두 도시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희생된 이들은 대부분 민간인들로 약 15만~24만6000명이 사망 했고 이 사망자 숫자에 조선인도 약 10% 포함 되어 있다.

아시아 전역과 한반도 에서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포함해서 일본은 500만 명의 병력과 죽창부대만 믿고 핵 폭탄이 떨어지고 나서도 일주일을 버텼다.

매년 8월이면 일본 미디어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들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방송 하며 당시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가 정당 했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 하며원폭의 비인간성과 일본이 지구상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데 대한 피해자 의식을 상기 시키고 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명의 위패가 안치 되어 있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우익들의 성지인 야스쿠니 신사에 전 현직 총리와 관료들이 줄을 지어 전범들에게 참배하는 모습을 전 세계로 생중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결 같이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만행을 덮어 버리며 교묘한 방법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자국민을 세뇌 시키는데 열을 올리는 동안에도 2024년 79주년 광복절을 맞이 했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땅에서 여전히 ‘광복’과 ‘건국’에 대한 논란에 서로 불붙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무 정부적이며,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는 냉엄한 국제 사회 현실 속에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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