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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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언덕을 넘으면서 더이상 나의 시선은 앞으로만 전진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삶들을 복기해 보고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하지 말걸, 하면서 수정도 하고 가감도 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의 나이는 이런 시간들을 쌓아가는 징검다리였다. 내일에 대한 전망이나 아슴한 기대대신 걸아온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는 일들이 나의 시간들을 채우며 살아나간다는 것은 더없는 아이러니다. 이게 사는 건가, 정말 생을 호흡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과거의 반추가 덮어버린 시간들이 생의 통찰을 가져온다면 더없이 좋겠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하나의 소설이지만 저자의 철학적 사유의 현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다. 극적 재미나 묘사의 섬세한 매력은 떨어지지만 줄치며 읽는 소설이라는 얘기처럼 이야기 속 화자들에게서 미끄러져 나오는 얘기들이 하나의 경구 같다. 또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한 특질들이 개개의 상징처럼 느껴져 결국 쿤데라의 생에 대한 깨달음을 구체화한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여기에는 기억의 왜곡에 대한 가슴아픈 체념이 가닿는 망각의 힘에 대한 겸손한 수긍과 시간이 무화시켜버리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이 떠오른다. 모든 것은 고쳐지지 않은 채 잊혀지고 기억된다 하더라도 나름의 왜곡으로 변형된다. 시간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원형이 보존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p.399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고향에 와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여러 명의 화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루드빅의 귀향이 더듬어나가는 과거의 시간들의 길목에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또 그 나름의 시선으로 똑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회고하고 이해하고 고백한다. 공감과 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헛된 기대이자 허구의 개념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이 장치는 그 구성 자체로 작가의 의도를 웅변한다. 주인공 루드빅은 여자친구에게 농담을 적어보낸 엽서가 문제가 되어 공산당에서 축출되어 무기를 맡지 않고 사회주의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병사로 징집된다. 이 시기에 만나게 되는 우수어린 느림 그 자체인 루치아를 사랑하게 된 그는 끝내 그녀에게 거부당하고 실패한 사랑에 헛된 환상을 덧칠하게 된다. 대학재학시절 그를 축출하는 판정을 내린 학내 조직 차기 위원장 제마넥에게 복수하고자 수년이 흐르고 난 후 제마넥의 아내를 유혹하지만 루드빅은 이미 예전에 자신을 당에서 축출했던 제마넥이 지금의 제마넥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더군다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므로 복수의 매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루치아와의 관계도 그녀에게는 하나의 폭력의 연장이었음을 전해듣고는 절망하게 된다. 

자기 밖에 놓인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끼인 그런 나이, 또한 다른 사람들은(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 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보 같은 열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p.344 

나의 스무살을 루드빅도 통과했다. 젊음이란 찬란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참담한 것이었다. 그 미숙함과 그 미진함이 그 어리숙함이 과장된 허위 밖으로 미친듯이 튀어 나오려 함에도 끊임없이 억눌러 가며 나는 찬란하며 성숙하다고 거짓말하며 다니던 그 시간들의 반추는 부끄러울 정도다. 그 때 만난 사람들. 사랑들. 쌓인 분노들. 그것들을 추리고 수정하고 음미하는 이 행위들의 덧없음에 대한 자각은 루드빅의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시간들을 되돌아 살아봄으로써 가능해진다. 기억의 왜곡이 스치고 지나간 그 자리, 자의식이 난도질해서 구겨놓은 그 밑그림들은 또다른 개인들에 의하여 개별화된다. 예전의 사람은 지금의 그와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고 내가 그 과거를 우격다짐으로 구겨넣어 나의 감정과 의지로 세탁하여 내어 놓아봤댔자 그것이 가지는 의미나 가치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 다 농담 같은.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쾌한 농담 같이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나 공유하게 된다. 농담은 가볍지만 상큼한 뒷맛대신 눅눅한 미진함을 남긴다. 인생이란 어쩌면 그런 것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시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일런지도 모른다.
 

증오의 대상인 제마넥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루드빅의 귀향이 사랑하면서도 피했던 옛친구 야로슬라브를 두 팔에 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모호하지만 진중한 진실의 화두를 던져준다. 인간 간의 관계는 의지와 이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연대로 가능한 것임을. 좀더 가벼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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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의 심리를 토막질하여 분석하는 서양 사상을 배우면서, 결국 동양 사상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 흐르는 대로,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거. 뱅뱅 돌아서 오게 되더라도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보다 견고한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요?
찬란하지만 잔인한 20대를 보내는게 밋밋한 20대를 보내는 것보다 확실히 나은것인지...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blanca 2010-04-01 22:35   좋아요 0 | URL
혼불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녀고양이님 얘기처럼 동양의 그 윤회와 업에 관한 생각들이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저는 나름대로 처절한 스무 살의 기억이 있는데 중반까지는 그 기억과 화해를 못하다가 서른이 넘으니 다시 그 시간이 온다고 해도 또 그렇게 살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나를 죽이면서 살아왔으니 그 짧은 시간이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합리화하고 있답니다.^^;;

기억의집 2010-04-0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언덕을 넘으면서~~ 이 앞 대목 참 좋네요. 전 사실 그렇게 행복한 어린시절이나 20대 시절을 못 보내서 그런지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 때가 있어요.
블랑카님 리뷰 읽으니 이 책이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저는 한때 쿤데라의 열성팬이었는데,,,,
전 몰랐는데 불멸이 절판이라고 하더라구요. 브론테님 방에 가서 글 읽다가 놀랬어요.
아, 그 책이 절판이었구나 싶은게... 전 그 책 쿤데라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했거든요. 프라하도 좋았지만
나중에 나온 불멸이 더 좋았고 저의 천주교 세례명이 아네스인데(지금은 무신론이지만) 불멸에 나온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아네스라고 할 정도로 말이에요. 전 10월 생이라서 아네스는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우겼거든요.
하핫, 별 걸 다 고백하죠!

blanca 2010-04-01 22:38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아네스. 너무 아름다워요. 저는 냉담중입니다. 개종까지 해서 냉담이라니 할 말 없죠. 쿤데라를 좋아하셨군요. 저는 처음이라 조금 낯설고 조금 더 알아가야 할까 생각중입니다. 안그래도 불멸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별 걸 다 고백하는 것을 참 좋아라 한답니다.^^;;

아 그리고 천주교에서 무신론으로 나아간 기억의집님 사연이 살짝 궁금해집니다.

기억의집 2010-04-02 11:30   좋아요 0 | URL
천주교 다닐 때부터 종교인들이 이익집단으로 보였고, 더 큰 영향은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었어요. 그 이후 계속해서 자연과학책들만 읽으면서 더 확고해지는 거 같아요.
 

 

그러나 막상 계집아이 입에다 미음을 넣어 주자 그만 구멍 난 볼때기로 주루룩 흘러 버려, 아이의 어미를 다시 한번 대성 통곡하게 하였다. 넣는 대로 흐르는 미음을 어미는 손바닥으로 쓸어 담아 잇바디 드러난 뺨 구멍으로 밀어 넣어 주다가, 아예 틀어막고 앉아 "먹어라아.......먹고 가아......이놈의 새끼야......내 새끼야, 먹고 가아, 아이고, 아이고오, 내 새끼." 산발을 하여 부르짖는다.                                                                                                                      - 최명희 <혼불> 중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혹한을 뚫고 배를 곯으며 북만주까지 걷고 또 걸어 온 가족. 마침내 또다른 곤궁한 삶이 예비된 그 곳에 이르렀지만 어린 딸내미는 동상과 천연두로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가난하고 무지한 아비는 그런 딸내미의 그 볼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열에 들떠 죽어가는 어린 딸에게 마지막으로 미음이라도 먹여 떠나 보내려고 어미는 산발을 하고 절규한다. 어미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 돌아왔을 때 의외로 그의 모친은 슬픔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빨랫감 속에서 그의 셔츠가 나오자 그녀는 산비탈에서 몇 번이고 몸을 굴러내리며 절규한다.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어도 내 몸과 피를 나누어 만든 또 다른 작은 나의 죽음은 감내할 수가 없다. 내가 내 몸을 풀어 헤치고 내 안의 내장을 다 끄집어 내어도 그 슬픔과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한 그 끔찍스러움은 가실 길이 없다. 자식의 죽음은 견디면서 사는 것이지 망각하거나 화해할 수 없다. 

엄마가 몹시 아팠을 때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했을 때 외할머니는 어린 손녀들 앞에서 몸부림쳤다.
"생떼 같은 내자슥! 생떼 같은 내 자슥! 내 자슥아! 자슥아!" 당신의 절규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한 삽화로 남아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나는 그 때 그렇게 이성을 잃고 펄펄 뛰는 할머니의 모습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종이조각처럼 쪼그라들어버린 지금의 할머니 앞에서 과거의 그 포효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마치 열에 들뜬 듯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울부짖었던 그 모습은 열 달을 품고 몸 전체를 분해시킬 것 같은 진통 속에
그렇게 세상에 내어놓고 가정을 이루어 솔가시켜 놓고도 새끼와 묶은 그 끈질긴 공생의 끈을 놓지 못함이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아니 죽고 나서도 이 세상에 내가 뼈와 살을 발라 주어 내보낸 자식의 안녕을
어찌 걸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가운 물에서 삽십대, 사십대를 누려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이 저린다.
그들의 어미들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견디고 있을까.
그 기다림의 끝에 제발 안도와 기쁨의 웃음이 걸리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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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2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요즘 천안호 침몰 뉴스 접하면서 열불이 납니다.
어찌 저 따위로 구조작업을 하는지... 지들 자식이 그 속에 갇혔으면 저 따위로 할까 싶어 화가 나요.ㅜㅜ

blanca 2010-03-29 16:41   좋아요 0 | URL
아...정말 슬픈 소식이 너무 많이 들려요. 최진영씨도 그렇고 생존자 소식도 없고...가슴이 너무 아파요...

프레이야 2010-03-2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사 위치를 잡았다고 하죠.
제발제발 구조작업이 잘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얼마나 애가 탈까, 감히 입 밖에 내지도 못하겠어요.

blanca 2010-03-29 16: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산다는게 참 날 위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나 아닌지 그런 느낌까지 듭니다.

꿈꾸는섬 2010-03-29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떼깥은 내 자슥......정말 그렇죠. 내 속으로 난 자식이니 그 아픔을 이루 말할 수 없을거에요.ㅠ.ㅠ
구조작업이 잘 이뤄져야할텐데 말이죠.

blanca 2010-03-29 21:13   좋아요 0 | URL
지금 보니 가망이 없는 쪽으로 기울고 있네요...너무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한 하루입니다.

기억의집 2010-04-0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의 죽음은 망각할 수도 화해할 수도 없죠. 제가 새끼를 기르다보니 예전에 몰랐는데 어린 자식이 아니 청춘의 자식이 죽었을 때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의 동네에 한 할머니중에서 거의 매일 술 드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아들을 군대에서 잃었어요. 제대 가까울 때 트럭에 치였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 후로 술로 의지하면 세월을 보내시다가 손주 태어나니깐 좀 나아지시더라구요.
지금 정부가 하는 짓보면 참 용서 못하겠지요. 오늘은 속보로 북한이 했다고 하던데요. 아, 정말 눈물겨워요. 시나리오 만드느냐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죽은 장병들의 부모한테 또 한번의 못을 박네요.

blanca 2010-04-01 22:32   좋아요 0 | URL
방금 아이를 재우면서도 참 슬프고 화가 나더라구요. 다 큰 청년들에게도 이렇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안고 어루만지고 재우고 했던 아기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고 누군가에게는 또 그런 아빠이기도 한 그 사람들이 이런 죽음을 당하고 그냥 하나의 재난으로 잊혀져 갈 거라는 생각에. 진짜 안좋은 머리로 나름대로 고도의 시나리오 짠다고 욕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에......어디에 있소......
효원은 등을 구부리고 기도하듯 강실이를 부른다.
그 온 몸에 눈물이 차오른다. 
-<혼불> 10권 마지막 대목

여기. 바로 여기에서 작가의 못다한 얘기들과 아직도 들어야 할, 듣고 싶은 얘기들은 미완의 마침표를 찍는다.
미처 끝나지 않은 해원의 굿마당, 그 적요의 휘장을 걷고 나오는 길. 정령을 머금고 있는 말의 마력을 직시하고
그것을 조심스레 휘두른 작가가 숨결을 불어넣은 그 수많은 인물들이 지금이라도 누런 책의 표지를 뚫고
두레두레 앉아 두세두세 맛깔스런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낼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힌 나는 그 책들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물건의 무서움. 혼을 건네서 묻히고 심는 것이라 했던 작가의 말은 그녀가 자신의 온 몸을 조금씩 덜어내어 쓴 이 책으로 
체화되었다. 나는 그래서 <혼불>이라는 이 책을 무감하게 둘러볼 수 없고 어쩌면 조금은 두려운 경외의 심정에 사로잡혀
살아 생전 작가의 삶을 먹고 자란 이 책의 날숨에 아득하게 취할 수밖에 없다. 책이 살아 있는 그 느낌 속에 오련한 황색 표지 위에 임리하게 떠오른 <혼불>이라는 거친 표제가 애써 누르고 있는 그 수많은 이들의 혼과 삶은 어떻게든 비어져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편하게 앉아 그저 책장을 넘겨 보는 것이 미안하다.

작가 김영하가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그 시대의 명예시민이 되는 경험이라고 했던 얘기는 <혼불>을 읽는 독자가 되는
일이 그에 못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미안스럽게 고백하는 데에 차용할 수 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전북 매안 이씨  3대 종부를 중심으로 그 문중의 쇠락과 얽혀 거멍굴 상민들의 질곡어린 삶을 엮어낸 이야기들은 당시의 관혼상제, 세시풍속들을 생생하게 복원하고 수많은 민담, 설화를 덧대어 잊혀진 과거의 완벽한 복기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단지 이 작품이 소설로서 끝나지 않고 하나의 전통문화의 보고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완벽에 가까운 고증들과 자료조사가 그 먼지의 더께를 떨어내고 삶의 결 속에 스며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어있는 기록의 나열이하였다면 그토록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작품의 문화사적 성취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을 작가가 일으켜 세워 숨결을 덜어넣는 작업은 가만히 앉아 완상하기에 미안할만치 처절한 노력과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혼불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던 작가의 얘기는 그녀가 미혼으로 죽음과 사투를 벌이면서까지 이 작품에 매달렸던 그 결곡한 투신의 가치를 대변한다.   

  

 혼불, 그리고 죽음 

생의 유한성이 삶의 가치를 절하할 것인지 아니면 떠받쳐줄 것인지를 우리같은 범절한 이들은 알 수 없다. 다만 끊임없이 회의하고 그럼에도 다짐하고 앞으로 밀고 나갈 뿐이다. 목숨만큼 화려한 것이 없다는 청암부인의 얘기와 살아 있어 미안하다는 손자 강모의 얘기에서 생 그자체의 응축된 지고의 가치를 걷어낼 수 있지만 최명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의 체를 뚫고 면면히 나아가는 혼에 가 닿는다. 운명하기 전에 저와 더불어 살던 집, 육신을 내버리고 홀연히 떠오른다는 혼불은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무위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농밀하게 응축시키고 아집과 망집의 상흔을 치유하고 인연의 실오라기에 매달린 사람들에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소롯길을 보여준다.

이 혼과 넋의 이동의 관문의 예인 전통장례절차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설명을 듣는 일은 죽어있는 고루한 폐해로 폄하되던 각종 의식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어 그 전아한 속살을 가만히 느껴볼 수 있게 하는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종부 청암부인이 혼인날 입은 장삼 족두리를 수의로 입고 그 때 가지고 온 혼서지를 신발로 신고 저승의 명부로 떠나는 의식에서는 황홀한 슬픔이 배어 나왔다. 고인을 우주의 순환 속으로 아무 걸릴 것 없이 돌려 보내려는 정신의 체화가 초상의 예인 것이다. 

  

 잊혀진, 잃어버린 역사의 복기

또한 마한, 후백제, 조선 왕조 발상지로서의 전주의 재조명은 승자의 칼 끝에 인각 왜곡된 패자의 잊혀진 역사를 낱낱이 복원하고 복기하여 살려내는 일이었다.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마침내 산화하여 버린 그네들의 잊혀진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존감을 일깨우게 된다. 꽃의심, 꽃의 힘, 꽃의 마음을 이고 역사 하나를 등에 지고 오늘도 우리의 숨결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땅 위에서 스러져간 그 사연들에 우리는 애잔한 기시감을 느끼며 돌아보게 된다. 잊혀지고 폄하된 어제를 듣는 일은 지워버리고 묻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과거 이야기들을 마찬가지로 살려내고 보듬어 주는 일이라 아프면서도 온전히 상처를 들어내어 치료하고 면역을 얻어내는 일로 승화된다.   

  

 눈물어린 신분제도의 질곡 그것이 남긴 숙제

시간으로는 비록 새해가 되어 축시라 하지만 다른 때라면 짐승도 잠이 드는 오밤중에, 기둥에 걸린 등롱의 붉은 불빛을 희미하게 받으며 검은 마당에 웅긋중긋 줄줄이 늘어서서, 사랑채 누마루 제머리 꼭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 덩실하니 나와 앉은 상전 이기채에게, 일제히 엎드리어 절을 하는 종들의 등허리는, 시꺼먼 그림자를 길고 어둡게 드리우고 있었다. -5권 p.32 

새벽 세 시도 안된 그 어둠 속에서 집안의 웃어른을 제쳐 두고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어쩌면 자신보다 어릴 수도 있는 상전을 높은 마루 위에 세워두고 문중의 종들이 일제히 흙바닥에 엎드려 새배를 올리는 그 장면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똑같이 세상을 향해 일성을 내지르며 태어났으나 그 배가 어디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숙명적 신분의 틀 안에서 누구는 누구를 동등하고 존중하여 줄 생명체가 아닌 하나의 부속품마냥 수족마냥 부릴 수 있다. 이 공고한 차별의 악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중의 차이만이 있을 뿐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여기에 서서 그들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은 모두 악착을 부리며 내 앞에서 자기의 열심을 보이려 애쓰고 있는 것일까?...' <안나 카레니나> 중 

매안 이씨 문중과 그들에 기생하여 먹고 사는 팔천 동네 거멍굴의 병치는 인간이 만들어 내었지만 결국 그 안에 결박당해 버린 역설이 가지는 중층적 의미에 대한 탐구와 그것이 극복 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청암부인의 손자 강모와 사촌 강실 간의의 금기된 사랑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강실이 거멍굴 춘복이의 씨를 받게 되는 것과 그의 가시버시를 자처하는 옹구네가 피를 섞어 버리라며 절규하던 그 극단의 증오어린 저항은 하나의 비애로 치부된다. 이 비애가 단순히 감정의 배출과 복수로 마감되지 않고 중화될 수 있었던 지점에는  거멍굴의 상처받은 상민들을 보듬어 안으려 하고 그 옹이와 아집을 풀어버리려 시도했던 대안적인 인물 강모의 사촌형 강호가 있다. 작가는 어둠을 뚫고 나가는 그 지하의 만월 그믐밤의 그 가치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강호에게 정성스럽게 깎은 화병을 선물하고 돌아서는 백정 택주와 그를 돌아보며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그것의 중추적 의미를 가슴에 인각하는 강호의 모습은 상생과 공생의 방증 같다. 

결코 순탄치 않은 시대와 역사, 진부한 인습, 억울한 관념의 편벽이 그대들을 상하게 할지라도, 오히려 저마다 제 몸으로 깎은  화병 하나, 삶의 중심에서 빚어 낸다면, 그 몸에 어리는 무늬들은 이윽고 이 세상에 새로운 풍경을 이루어 드리울 것이니.
-8권 p.252

  

 그리고 혼불이 나에게 남긴 것들

눈빛에 꽃빛은 도장의 인주처럼 선명하게 지문을 찍는다. 그 꽃빛은 사람한테 한 번 묻으면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넋을 홀리어 흔들며 사로잡는다.-10권 p.276 

<혼불>은 나에게 꽃빛 같다. 나의 눈빛에 나의 마음빛에 작가는 선명한 지문을 찍고 지하의 만월로 떠오른다. 그 흔적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온전하게 이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거멍굴에서 강실이가 부른 배를 움켜잡고 손톱 밑에 앓는 이름 강모를 부르며 울먹이고 있고 그 옆에는 있지만 그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오유끼가 문 앞의 노루발 밑에 웅크리고 앉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몸으로 맞아내고 있고, 더더군다나 그의 아내지만 그를 증오하며 강실이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을 아내 효원이 온 몸에 차오르는 눈물을 속수무책으로 닦아내지도 못하고 흘려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하고 싶은 얘기. 나도 <혼불>을 닫고 나오며 어둠을 믿게 되었다고. 지상의 만월보다 지하의 만월인 그믐밤 더 몸을 뒤척이며 땅 속에 버리듯이 내 소원의 씨앗들을 뿌리겠다고 다짐하여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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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3-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님 이렇게나 멋진 페이퍼를요. 추천 20개 누르고 싶어요.
다 읽으셨군요. 손톱밑에 앓는 이름과 그 온몸에 차오르는 눈물,
님의 문장들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가요.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blanca 2010-03-28 21:3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덕분에 읽은걸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잊고 지내다 프레이야님 페이퍼 보고 다시 마음이 동해서 읽게 된거니까요. 미완의 대하 소설이 가져오는 그 아쉬움과 또 그래서 더 빛나는 마무리가 참 오래 여진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오히려 책을 더 읽지 못하게 될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3-2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혼불을 읽지 않았기에 감동에 동참할 수 없어 안타깝네요.
그래도 예전에 KBS의 최명희 스페셜을 봤기에 '혼불 하나로 족합니다'의 감동은 알지요.

blanca 2010-03-28 22:06   좋아요 0 | URL
최명희 스페셜 너무 보고 싶은데 다시보기가 정말 콩알만하더라구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 보지 못했어요. 순오기님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아리랑'이랑 시대가 겹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읽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3-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다 읽으셨어요? 와.. 속도 엄청 나시당. 감탄.
'꽃빛은 사람한테 한 번 묻으면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이거 너무 좋은데요.
저한테 묻어있는 꽃빛은 어떤 색일지. 고운 꽃분홍이길 바라지만, 칙칙한 누런색만 아니더라도 만족하렵니다.
저도 읽어야할텐데... 이쁜 리뷰입니다.

blanca 2010-03-29 21:1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진짜 이 책 강추입니다. 다른 책은 읽지도 않고 먼저 덤볐는데 글자도 크고 한 권당 분량이 많지 않아서 열 권이라지만 다른 대하소설보다 되레 더 빨리 읽혀요. 2권까지만 조금 인내심 발휘하면 그 다음부터는 열 권밖에 안된다는 게 게다가 끝도 아니라는게 아주 속이 터진답니다. 그러니가 결말을 모르는 채 가야 된다는게 너무 답답해요. 그리고 마녀고양이님한테는 예쁜 핑크 꽃빛을 묻혀 드리지요. 무척 어울릴 것 같은데요^^

꿈꾸는섬 2010-03-29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과 님의 혼불 페이퍼는 정말 너무 읽게 만드시네요. 저도 부지런히 찾아 읽어야할텐데 요새는 또 책도 잘 읽히네요.ㅜ.ㅜ

blanca 2010-03-29 21:17   좋아요 0 | URL
꿈꾸는 섬님 읽으셔도 후회 없으실 거예요. 중간 중간 좀 지루하고 장황한 대목이 있긴 한데 또 그 부분은 공부도 되더라구요. 책이 안 읽힐 때는 오히려 대하 소설이 나을 때도 있어요. 다만 살림이 좀 뒤로 미뤄져서^^;; 어떤 분이 토지 읽다 살림 작파하셨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3-2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이나 <토지>를 완독한 사람들...정말 대단해요.이런 책을 읽고 나서는 세상이 달리 보이겠죠.

blanca 2010-03-29 21:19   좋아요 0 | URL
저는 근현대사에 대한 빠삭함을 자랑하는 노자님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조금 더 연민을 가지고 공감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수 있다는 착각을 주지요^^;;

gimssim 2010-04-03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설에 좋은 리뷰...잘 읽었습니다.
저는 혼불 한권으로 된것...처음에는 한권으로 출간됐지요...읽었는데,
다시 도전해 보고자 마음먹고 있습니다.
삶의 결에 도 많은 충성함을 주겠지요.

blanca 2010-04-03 11:37   좋아요 0 | URL
중전님. 저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소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인생 전체를 관조할 수도 있다는 데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말 그대로 모래바람이 미친X   널뛰듯하는 날 힘겹게 폭풍의 언덕(정말이다)위 집에 아이를 끌고 밀며
힘겹게 당도하고 한참이나 지났는데
씩씩거리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 
 

"아침에 집에 있었어요? 없었다구요? 근데 택배왔다는 얘기는 못들었어요?
 거 참 웃긴 놈이네."
아저씨는 화풀이를 할 건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애먼 택배기사들을 괴롭히는 재미에 한창 심취중이시다.
물론 그 무거운 책박스를 연락 한 마디 없이 경비실에 맡겨버린 그 사람도 한 소리 들을 만하긴 하지만. 

"저녁에 가지러 가면 안되나요??(소심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왜요!"  

이쯤되면 무섭다. 다시 그 황량한 언덕을 모래 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기다렸다는 듯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냉큼 박스를 치워버린다. 남편의 미니미는 무거운 택배 박스에 얼굴까지 가려진 엄마는 보이지 않고 그 추위 속에서도
이곳 저곳 다 참견하고 다 지체하며 속을 태운다. 심지어 이 기괴한 날씨 속에서도 그네를 열심히 타고 있는 한 언니를
발견하고는 놀이터로 줄달음쳐주신다. 솔직한 심정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입구에서 표정으로 다그치다 안 먹혀들어 다시 낑낑대며 상자를 이고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봤지만
막무가내다. 저 언니는 할아버지가 재미나게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 그 언니의 반의 반 줌이나 될까 말까한 자기는 왜 그네를 타서는 안되는지(사실 내가 춥고 힘들어서였으니)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구원투수의 등장.
그 언니. " 너 몇 살이야! 몇 살이야? 안되. 이거 타면 무서워!" 

그 한 마디에 바로 미니미는 놀라는 시늉까지 하며(능청은 ㅋㅋㅋ 평소 잘만 타면서) 되돌아온다.
까무잡잡 유쾌하게 생긴 아홉살의 그 언니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매달려 콧소리로 과자를 사달라며
다리를 질질 끌며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온다. 미니미는 언니가 맘에 들었는지 연신 되돌아 보고 좋아한다.
무엇보다 슈퍼가서 과자 사달라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반가웠나 보다.
더 웃긴 것은 폭풍의 언덕 아래받이에서 오버하며 미끄러지는 그 언니의 모션과 거의 동일한 시점에
미니미도 같이 넘어지며 더없이 즐거워하는 것.
한 마디로 가관이었지만 두 마디 더 얹으면 참 귀여운 풍경이었다. 

그 아이 덕분에 나의 아이와 실갱이를 벌이지 않아도 될 수 있어 좋았다.
둘째가 아니라 항상 그 연배의 미니미를 귀여해 주는 첫째가 어디서 뚝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항상 언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혼불이 왔다. 누군가 나에게 혼불을 구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정말 기적처럼 혼불을 적당한 가격으로 만났다.
새 책이나 진배없는 상태에 안티 링클 팩까지 동봉해 준 그 센스에 감동받아 당장 수령확인을 했다. 

이제 나의 상반기 책 구입과 독서는 이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제발 그랬으면)
그 옆의 쿤데라의 <농담>과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는 좀 뒤로 미루어 두고.
차근차근 깊게 젖어들며 그녀가 끌로 새기듯 엮어냈다는 이야기들에 묵주신공을 바치듯
짚어가고자 한다. 

잘 할 수 있을지 독서가 고행이 되지나 않을런지 우려도 되고.
하이드님 신간마실에서 자꾸 읽고 싶은 책들이 튀어나오니
괴롭고 그런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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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워더링 하이쯔에 사시는군요.^^
혼불~ 아직 읽을 준비가 안돼서 책구입도 못해요.
하지만 오래전에 KBS스페셜을 보고 언젠가는 꼭 읽고 말리라 다짐했어요.
구간은 글씨가 작아서 저는 읽기 힘들어요. 이젠 글씨 작은 책은 내겐 '쥐약'같아요.ㅜㅜ

blanca 2010-03-17 14: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무슨 운명 같이 학교란 학교는 죄다 언덕. 집이란 집도 다 언덕입니다. KBS스페셜이 정말 대단했나봐요. 블로그마다 다 그 얘기가 있던데. 꼭 찾아 보고 싶어요. 안그래도 저는 벌써 ^^;;그래서 2009년도판으로 구했는데 너무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정래샘 책들과는 달리 책 한 권의 분량이 적은 편에 속해서 되레 금방 읽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이드 2010-03-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원에 가기는 아주 술술 넘어갈텐데.. 눈깜짝할 사이에 읽어버릴꺼에요. 읽으면서 막 페이퍼거리가 우수수 떨어질지도. 아, 이런거, 아 이런거. 하면서요.

그간 신간마실이 좀 모였으니, 내일 정도에는 페이퍼 쓸지도 모르겠네요. 서점도 다녀올꺼구요. 새로나온 푸엔테스의 책. 책 안 사는 와중에도 덥썩 샀던 책이에요. 그 책 정도면 블랑카님이 혹하실지도.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 (먼산)

전 이제 막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을 끝내고, 오늘은 안나 카레니나나 읽다가 자려고 합니다.


blanca 2010-03-17 14:1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을 신간마실만 보면 장바구니가 터질려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 드뎌 시작하셨군요.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면 심장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더라구요.(제가 과장이 심한 건 아시죠?ㅋㅋㅋ)

푸엔테스의 책이라구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하이드님 아니었으면 저한테 안기지 않았을 그 수많은 완소책들을 둘러보니(정말 하이드님은 지름신) 또 동할 것 같군요.

어제 <그녀에게 말하다>에서 출판디자이너 정병규 얘기를 읽으며 하이드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쓰오카 세이코 얘기도 하고.

마녀고양이 2010-03-1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구입하셨군요. 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지금 급히 읽을 책에 밀려서 당분간 포기인데. ㅠㅠ
여하간 책이 많이 쌓여있는거... 행복하지 않으세요?
혼불 읽고 리뷰 꼬옥~ 네?

blanca 2010-03-17 14:20   좋아요 0 | URL
근데 주르륵 열 권 꽂혀 있는 거 보면 괜히 해야 될 숙제 쌓여있는 것 같아 괜히 부담스러워집니다. 1권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 있어요. 지루하다는 평이 좀 있어서. 오히려 이게 책 값을 줄일 수 있는 편법일지도 모르겠어요. 당분간은 책을 사지 못할테니까요^^;;

기억의집 2010-03-17 19:32   좋아요 0 | URL
당분간 책을 사지 못할텐데요, 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마 블랑카님 손이 근질근질할걸요. 책주문도 가만보면 마약중독처럼 끊을 수 없나봐요. 전 진짜 안 사야지 책 사야지 했는데, 그래서 한 며칠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건 저지른걸요. 정경화 40주년 기념박스세트로요!

흑흑 저야말로 미친X 지 뭐예요! 아무래도 중독치료 센터를 들어가던지 해야겠어요.

요즘은 택배 사고가 많아 경비실에 맡겨두라는 추세잖아요. 저의 애아빠는 알라딘이든 뭐든 무조건 경비실에 맡기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10권은 집앞까지 배달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힘드셨겠어요!

마녀고양이 2010-03-18 09:22   좋아요 0 | URL
ㅋㄷㅋㄷ, 책 사기는 중독이라는 말씀 절대 공감합니다.
이상하단 말이예요, 도박, 술, 담배 이런 중독은 안 걸리는데... 커피와 책 구매 중독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중독은 보통 순간 충동 조절 실패라는데.. 에공. 그래도 이런 중독 한두개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것도 없다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

기억의집 2010-03-18 10:13   좋아요 0 | URL
하긴 그래요. 중독된 것이 책이 아니고 옷이였다면 아마 파산했을 거에요. 어제 학부모총회 있어서 옷 좀 사 입었는데 옷은 티쪼가리에 하나에 만원도 넘더라구요(좀 이쁜 티요!). 좀 비싼 책도 있긴하지요. 요 며칠 눈독 들이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건 3만원 후딱 넘어서 현재 망설이고 있어요. 사실 남들 눈에는 종이쪼가리일 뿐인데...... 왜 제 눈에는 책이 보물단지로 보이는지..이걸 콩깍지라고 하나봐요.

blanca 2010-03-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커피와 책 중독 알라디너들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그걸로 살아가는걸요. 그중독이 아님 다른 나쁜 중독들에 또 빠졌을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꿈꾸는섬 2010-03-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정말 좋겠어요. 저도 보고 싶은데 아직은......님 읽으신거 보면서 마음 동하면 저도 사서 볼거에요.^^

blanca 2010-03-23 22:1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저 2권까지 보고는 10권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졌었는데 지금 완전히 빠져서 마지막 세 권 아까워서 읽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정말 정말 아... 다 읽고 말씀드릴게요.^^;;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삶을 비극이라 상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W.B. 예이츠 

영국의 계관시인이었던 테드 휴즈의 전처이자 그 자신 유망한 여류시인이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테드 휴즈의 외도와 잇따른 별거 후 하필 백년 만에 찾아온 영국의 혹한 속에서 옆방에서 노는 두 살, 한 살의 아이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두고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한다.
 

그녀의 이러한 최후로 인해 실비아는  창조의 뮤즈가 되기 위한 그 금제의 벽을 뚫고 스스로가 증여물이 되는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인처럼 여겨졌다. 비극과 장렬한 최후와 치사한 치정극까지 버무려 윤색된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아름답고 젊은 시인 부부. 한 명의 배신. 그리고 남겨진 자의 자살. 아이를 옆방에 두고 홀로 가스를 마시며 존재를 흩어버림으로써 어쩌면 남은 자들을 가장 극적으로 단죄해버린 그 간접적이고 슬픈 복수.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고 말 것을 나는 욕망한다...... p.69  

이 일기는 그녀의 사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했던 남편인 시인 테드 휴즈의 자의적인 검열을 거쳐 발간된다. 또한 죽기 직전의 일기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각된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역겹게도 그녀의 휴즈에 대한 열렬한 경탄스러운 애정의 표현만을 내키지 않지만 꿀꺽 삼켜야 한다. 한편 세상에 나온 이 일기는 일순간 그녀를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남성 문화의 폭압하에 순교한 여성해방운동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다. 또한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단어하나하마다 그녀의 피가 밴 시들이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 그러니 그녀의 죽음은 남겨진 아이들의 아픔만을 제외한다면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도 소망하고 기다렸던 세상의 상찬을 받는 역설적 계기가 되고 만다.
 

칠백여 페이지의 때로는 내면의 의식의 흐름에 침잠하여 읽는 이를 염두해 두지 않고 써내려간 일기를 읽어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잡을 듯 해도 순간 나의 둔탁한 감수성의 그물코로 빠져 나가고 마는 그녀만의 독특한 어휘들과 그것들의 배열, 창작에 대한 강렬한 욕망들과 상치하는 일상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경멸, 때로는 분노들을 단지 읽어내려가는 것만으로 그녀의 십분지 일도 이해할 수 없음을 통감했다. 그럼에도 한 여류시인의 전 생애(그래봐도 삼십 년 남짓이지만)를 관조하는 일은 그것도 적법하게 훔쳐보는 일은 나의 삶들과도 맞물려 깊은 통찰과 어쩔 수 없는 애수를 자아내게 했다. 야금야금 그녀의 고백들을 갉아 먹다 보면 어느새 인간의 삶의 유한성과 그 불가항력적 비극의 무게에 짓눌려 치사한 질투와 자잘한 오만과 욕심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모든 이들이 삶의 그 강퍆함과 빈곤하지만 무자비한 서사 앞에서 연민과 용서와 이해의 대상으로 재편되는 순간 그녀의 일기를 읽는 일은 작지만 의미있는 깨달음의 새순이 움트는 경이로운 체험으로 승화된다.

스미스여대의 9월 새학기가 시작되기 직전부터 테드 휴즈와 결혼하여 둘때 니콜라스를 낳고 데번에서 사는 얘기까지의 일기들이 그녀의 자살행에 대한 유효하고 직접적인 설명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기의 문구하나하나에서 흘러넘치는 자기 완성와 시창작에 대한 높은 지향과 괴리되어 있는 현실들의 간극 속에서 유영하며 치열하게 고뇌하는 그녀의 모습과 남편 테드를 자신이 설정한 완벽한 남성성의 현현으로 숭모하는 대목들은 결국 그런 남편의 배신과 두 아이를 홀로 떠맡아야 했던 그녀가 느꼈을 그 처절한 고통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글쓰기 작업을 종교적인 아우라로 휘감고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용의가 있었던 이 여인의 사춘기 시절의 빛나던 영감들과 통통 튀는 재기들이 점차로 흐느적 거리는 자기 비하와 생계를 위하여 읽고 쓰는 시간을 때로는 포기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모습들로 변질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를 보게 된다. 때로는 사랑이 어떤 목표가 세계 전부를 덮어버리고 우리를 중심으로 지구가 돌던 그 시간들. 순간순간이 너무나 명료하고 너무나 지루해서 우리는 당연히 영원을 끌고 가는 아주 긴요한 중심축이 될 줄 알았던 그 시간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더이상 영원한 것은 없고 기쁜 일의 당사자가 되기 보다는 슬프고 짜증나는 일들의 예외가 되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그럼에도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날마다 색색깔의 구슬이 꿰어진 한 줄 목걸이처럼 살고 싶어. 미래에 타지마할 같은 대건축물을 짓겠다고 악다구니같이 노력하며 그 설계도에 맞추려고 현재를 잔인하게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싶지는 않다.-.p.202 

그래, 실비아. 마치 나에게 하는 전언 같은 이 말들을 꼬옥꼬옥 눌러 담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겠어. 당신도 이제는 편안한 휴식을 제발. 테드의 그 여인도 결국 당신과 같은 전철을 밟고 말아. 그러니 당신이 떠나고 간 그 자리 해피엔딩은 없어. 그 예쁜 당신의 두 눈이 또 당신의 손 끝에서 그렇게나 힘겹게 태어났던 그 수많은 시구들이 당신의 딸 프리다에게 연결되고 있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테드는 말년에 당신과의 그 수많은 오해들과 슬픈 어긋남 대신 처음 공명했을 때의 그 눈부시도록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에 헌사를 바치게 되.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실비아> 

 

p.s.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또 그녀의 딸이 그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이 영화에 공식적으로 악언을 퍼부어댔지만 이 장면만큼은 눈물없이 볼 수가 없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하루 종일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그녀의 존재의 이유였던 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럼에도 아름답게 자라났지만 둘째 아들 니콜라스도 결국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신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우유와 빵을 준비해 놓고 가스가 샐까봐 문틈을 꼭꼭 여며놓았던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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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6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녀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용서되지 않아요.ㅜㅜ
책은 보기 어렵고 영화를 구해 보면 좋겠네요. 기네스 펠트로가 맡았다니 더욱 더.

blanca 2010-03-16 20: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러니 딸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들도 자살하고.... 책은 솔직히 인내를 요하는 독서였습니다.--;;

프레이야 2010-03-16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 콧등이 시큰하네요.
우리의 순정과 사랑도 어쩜 그리 변색될까요.
테드와 실비아의 고드름처럼 명징했던 감정이 영화를 보며 뒤로 갈수록 안타깝고 가슴 아팠어요.
집요하게 집착하며 흔들리던 실비아의 영혼도 그렇구요.
결국 테드 위주로 삭제되었던 부분이 많았던 것도..

blanca 2010-03-16 20: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영화 보셨군요. 저도 너무 보고 싶어요. 테드는 얼마나 일기장을 교묘하게 삭제해 놓았는지 자신에 대한 헌사로 그득찬 부분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 정도로 실비아가 그를 사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마녀고양이 2010-03-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저는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다 읽으셨네요. 조금 읽다보니 같이 늪 구덩이에 빨려드는 느낌이라 덮어버렸던 기억이 있네요. 너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던거 같아요. 얻는게 많으면 잃는 것도 많다.. 저는 천재들을 보면 그런 문구가 생각나요. 세상을 찬란한 색채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얻은 대신, 인생을 잃는게 아닐까 하는..

blanca 2010-03-16 20:4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중간 이후부터는 솔직히 참 힘들더라구요. 읽어온 장이 아까워서 꾹 참고 읽었답니다.^^;; 인생에서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어는 없는 것 같아요. 언제나.

stella.K 2010-03-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이 연속이로군요.
저도 이책 읽다 포기하게 될까 봐 못 읽겠던데 그래도 다 읽으셨네요. 축하합니다.^^

blanca 2010-03-22 14: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동안 너무 책을 사서 지금은 있는 책 소진중이랍니다. 적립금을 조금 아껴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