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양장)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혼마 야스코 지음, 이훈 옮김 / 역사공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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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갑자기 인다. 그 해궁의 문 옆 향나무 가지에.
파도가 쳐 올라온다. 내 배가 있는 곳간 밖까지.
바다 위로 흰 구름이 북쪽을 향해 흘러간다.
밀물도 북쪽으로 서둘러 흘러간다.
그리운 아내여, 해궁의 회랑에도 바닷물 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많은 새들이 무리지어 날개치고 있는가.
당신은 외딴집 붉은 서까래에
내가 준 하얀 진주를 걸어놓고 홀로 한숨짓고 있는가.
 

그리운 아내여, 이젠 오갈 길 마저 끊어져
사랑하는 아이를 나는 그저 안고 내내 서있을 뿐이요. 

- 소 타케유키(덕혜의 전남편)의 시 <한회> 중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덕혜옹주>가 일본인 혼마 야스코의 이 책에 빚진 바가 크다는 작가의 고백에 관심이 갔다. 덕혜옹주가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이자 일본의 조선왕공족 일본인화의 정책에 의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간주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여성사 연구가가 덕혜옹주를 근대여성사 연구의 일환으로 택한 것은 의외이기도 하지만 그 연구가 과연 편향적이지 않을 수 있느냐의 회의를 숙명적으로 업고 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런 회의와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녀는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하에 그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대한제국의 왕족에 인간적인 연민과 죄책감을 간직하고 있었고, 덕헤옹주의 여자로서의 비참하고 유린당한 삶울 지근거리에서 조망하며 진심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다만 덕혜의 남편 소 타케유키가 대마도에서 소년시절을 보낼 당시 유숙했던 히라야마 타메타로 부부가 저자의 외가였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타케유키를 일관되게 호의적으로 그려내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결국 이 책의 무게 중심은 덕혜와 타케유키의 드러나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애정으로 기울고 있다.(작가 자신도 작가의 말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 정책에 의한 결혼이었지만 이 부부가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시인이기도 했던 타케유키의 여러 작품들을 해석하며 추정하고 있다. 사랑을 추측하고 그것의 논리를 세워나가는 모습이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점이 없진 않았지만 거기에서 흘러나가는 지류들이 파고드는 작은 진실들은 유현했다. 사실과 추측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시종일관 우리나라 독자를 인식한 듯 겸손하고 조금은 자신없는 듯 머뭇대는 그녀의 얘기들에 그래서 되레 더 공명하게 된다. 

고종이 환갑을 넘어 얻게 된 막내딸 덕혜옹주에 대한 사랑은 그가 그녀를 위해 궁내에 유치원을 만들 정도였다. 아름답고 다사로웠던 유년기는 그녀의 인생의 팔할을 덮어버린 정신병으로의 고통과 고립으로 더 애잔하게 빛난다. 그녀가 행복했던 너무나 짧고 유일한 시간들이었다. 뒤이어 일본으로 강제로 보내져 대마번주의 후예와 결혼하고 딸아이 마사에를 낳지만 그녀의 정신병 발병으로 일본에서도 대부분을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지내다 박정희 정권하에서야 비로소 오매불망 그리던 낙선재에 와서 여생을 보내다 최후를 맞게 된다. 

덕혜의 삶은 그녀가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조연으로 전락한 데에 그 비극의 핵이 있지 않나 싶다. 그녀에게 선택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금기어이자 금제였다. 게다가 그녀의 인생을 무자비하게 조종한 것은 조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가족을 유린한 일본이었다. 저자가 그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데군데마다 그녀는 일본의 죄업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고 통렬히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과도하게 옹호한다는 인상을 떨쳐낼 수 없는 덕혜의 남편 타케유키가 덕혜의 삶 전체가 망가진 근본적인 요인을 결과적으로 희석시키고 있지 않나 싶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의식을 의식적으로 떨쳐낼 수 없는 독자의 한계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작품을 일본인이 읽었다면 또다른 감상을 가질 것이다.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일제 감정기의 역사적 사실들이 때로는 생경하고 언뜻 바로 이해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는 과연 내가 독자로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고나 있나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본인에게 한국의 역사를 배워가고 있었다. 3.1운동은 완벽하게 비폭력이었고 질서를 존중하고 공명정대하고자 했던 공약의 완전한 실현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의친왕 이강이 독립국 조선의 일개 서민이 되더라도 일본 황족의 일원이 되지는 않겠다며 상하이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려 했다고는 대목을 읽었을 때, 다음 문장으로 달음질치려는 나의 시선은 그들의 대의를 위한 투신에 붙잡히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의친왕의 아들 이우가 히로시마 원자 폭탄에 희생되었다는 얘기도 악연했다. 우리가 쓰고 우리가 가르치고 우리가 배우고 우리가 내면화한 역사가 한때 가해자의 후손의 프리즘을 통과해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반향은 역설적으로 더 강렬하고 더 의미심장했다. 개별적 역사적 사실들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걸러진 진실로 응축되어 스스로 둔중한 울림을 보내고 있었다. 그 울림은 몸 전체로 가득찼다.  

한국의 덕혜님이 오신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더니, 아버지가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이 아주 몹쓸 짓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보상을 해야 한다."라고 한 것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내가 덕혜님에게,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 텐데, 왜 당신은 하지 않나요?"라고 물어도 가만히 계실 뿐이었습니다. 
                   -소마 유키카의 여자 학습원 생활 회고 중.(*그의 아버지는 일본 헌정의 신이라 불리는 오자키 유키오다.)

일본인이 한 얘기다. 정작 친일파 청산과 일본의 보상과 전범 처벌에 대한 더없는 관용을 베출고 있는 것은 우리다. 지금까지도 잊을만 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논란들, 그것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관용에서 덮어두고 갈 문제인지를 직시해봐야 하지 않을까. 풀어내지 않은 고들은 살을 눌러 아프게 한다. 무책임과 무관심, 자기기만, 사리사욕으로 아무리 생채기를 감싼들 굳어진 진물 아래 상처들은 저마다의 고통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인형이 입고 있는 치마.저고리의 색이 바래버린 소매 끝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음새 안에 원래의 색이 남아있어요."라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정말 망가지기 시작한 이음새 안쪽으로 아름다운 선홍색이 또렷이 보였다.
                                                                                                                                                   -프롤로그 중 

덕혜의 삶은 바래버린 소매 끝으로 떠올랐지만 그 망가지기 시작한 이음새 안쪽의 아름다운 선홍색도 분명 그녀의 것이다. 누구의 삶인들 소중하지 않고 나름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그녀 전체를 뒤흔든 시대의 질곡에는 분명 비극적 장치가 난무하지만 아버지 고종으로부터 받은 가없는 사랑들과 딸 마사에를 낳아 키우면서 순간순간 느꼈을 경이들, 남편 타케유키와의 교감들에서 눈물어린 진주나마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선홍색 순간순간들이 덕혜에게도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녀를 동정하는 것이 덕혜의 삶 전체를 비하하는 것으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덕혜를 기억하는 것은 한 비련의 여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에 대한 말초적인 호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우리가 눙치려 드는 우리의 상처부위를 또렷이 들여다 보고 깨끗하게 닦아 내는 일이다. 가슴을 에이고 시리는 그 느낌들을 소중하게 모아 하나으 진주로 만들 일이다. 역사에서의 자기 반성은 현재를 담고 미래를 기탄없이 조망하는 거울을 닦는 것과 같다. 덕혜의 슬픈 눈동자가 떠오르는 그 거울을 선물해 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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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0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블랑카님의 리뷰가 정말 좋아요.^^
덕혜옹주의 눈, 참 깊고 슬프네요.

blanca 2010-04-08 14:0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눈만 봐도 참, 자신의 슬픈 미래를 머금고 있는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4-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비영의 <덕혜옹주>에도 그 쓰시마 남자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했다는데 그런 점이 낫다고 봐요.사실 거의 진부하다시피 한,일본인은 못된 가해자...류의 도식은 좀 질리니까요.권비영 씨가 이 책을 꽤 좋게 평가하더라구요.

blanca 2010-04-08 14:05   좋아요 0 | URL
타케유키가 온갖 비난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은 그가 분명 막돼먹은 인간은 아니라는 방증 같아요. 이 책이 훌륭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후애(厚愛) 2010-04-0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를 만들기 위하여>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리뷰가 정말 좋아요.^^ 감사~
리뷰 잘 쓰시는 알라디너 분들이 정말 부러워요~

blanca 2010-04-08 14:05   좋아요 0 | URL
후애님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도 부러운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억의집 2010-04-0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오노 나나미를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을 읽고 무척이나 실망했는데, 노인네의 편협성과 고집불통 그리고 우익적인 시각때문이었어요. 그 책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드니로와 메릴 스트립을 깐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구로사와 아끼라의 팔월의 광시곡이라는 작품에 대해 한 기자가 원폭피해자로서의 일본이 아닌 전쟁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해 역사적 책임에 대해 질문을 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러자 이 나나미 노인네가 아니 그런 역사적인 문제를 왜 개인한테 묻느냐고 개인이 어떻게 역사를 책임질 수 있느냐는 식으로 글을 전개한 적이 있어요.
글쎄, 저는 역사를 책임지는 것이 어떤 국가나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어차피 역사라는 게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시각인데, 유명감독이 역사의 책임없이 그런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보거든요. 우리가 몰랐던, 저 덕혜옹주의 개인사가 일반적인 대중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틀이나 시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개인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꼭 우리가 역사가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아닌 개인의 시각으로 본 역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게 역사에 대한 오독이든 아니면 성찰이던지 간에 말이죠. 한국인의 시각이 아닌 일본인의 시각으로 덕혜옹주의 틀이 께졌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라고 봐요^^ 리뷰 너무 잘 읽었어요^^

blanca 2010-04-08 14:08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의 긴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시오노 나나미 책은 솔직히 읽어 본 것이 없는데 저는 왠지 내키지 않더라구요. 무슨 얘기를 들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마 기억의 집님과 비슷한 얘기였나 봐요. 무책임한 발언을 했었군요. 그러고 나니 이 저자를 더욱 칭찬해 주고 싶어집니다. 아. 그럼요. 개인을 내세우며 역사의 민감한 부분을 살짝 피해가는 저렴한 센스는 지양되어야겠지요.

마녀고양이 2010-04-0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인생을 만들 수 있는 가치관이나 굳센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저렇게 의무에 얽어매히는 자리에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나'로서 살 수 있는 곳이 가장 소중한거 같아요.

blanca 2010-04-08 14:0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서야 자유인으로^^;; 태어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답니다. 시켜줘도 못할 것 같아요 ㅋㅋㅋ

순오기 2010-04-0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보셨군요, 아직 안 샀는데.... 리뷰를 보니 더 보고 싶어지네요.

blanca 2010-04-08 22:4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리뷰보고 서점가서 바로 질렀어요. 소설을 읽으셨으니 더 깊이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요? 책 표지도 참 이쁘답니다.
 

일요일 밤 여덟시 반. 즉흥적으로 영풍문고 종로점에 가게 되었다. 
대형서점은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고 언제나 그리운 장소다. 학창시절 시험이 끝나면 나는 언제나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한 이만 원 정도이면 네 권 정도의 책을 살 수 있었다. 요즘에야 두 권도 벅찬 금액이지만 말이다. 고르고 또 고르다 다리가 아플 때쯤 네 권의 책을 품고 아빠를 기다렸다. 이제는 그 곳에 나의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기는 통로에만 관심이 있고 뽀로로 책 정도에 눈독을 들인다. 책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이 나 잡아봐라, 이 곳 저 곳으로 날쌔게도 몸을 숨겨주신다. 이 정도면 서점은 더이상 나에게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라 곤욕스러운 곳이 되고 만다. 그래도 그 와중에 민음사 전집 코너를 둘러본다. 항상 인터넷으로만 봐 오던 책 표지가 실물로 치환되니 되레 적응이 안된다. 인터넷으로만 책을 구입하다 보니 실물을 보고 고른다는 행동 자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컴퓨터 모니터로 보던 책 표지를 실물로 느끼게 되니 얼떨떨하기까지 하다. 알라딘 서재에서 자주 봤던 <애도하는 사람>의 두께에 놀라고 김별아라는 작가가 <미실>의 작가였는데 에세이를 냈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이미지의 재현에 인이 박히다 보니 오히려 현실 세계가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젊은 남녀들이 많았다. 서점은 나에게는 언제나 왠지 에로틱하다.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발전될 것만 같다. <연애시대>의 여운 때문인가. 평소 좋아하는 감우성이 대형서점 직원으로 나왔던 드라마. 동창회에선가. 첫사랑과 재회하고 다시 만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하늘로 솟아오를 듯 통통거리며 비밀스러운 웃음을 칠칠맞게 흘리고 다니던 그 서점. 그 설렘의 미숙한 노출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해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이 시작되려는 지점. 누구나 칠칠맞게 그 비밀을 흘리고 다니게 마련이다. 좋아 죽겠는데 어쩌겠는가. 나는 낯선 사람한테도 막 자랑하고 싶었었는데 말이다.



 

순오기님 서재에서 본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의 꽃분홍 표지가 연연했다. 잠시 망설이다 집어들게 되었다. 소설은 취향이나 상황의 망에 걸린 망설임을 동반하지만 그 소설에 영감과 골격을 제공한 역사적 사실의 보고는 소장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하며. 일본 사람이 쓴 일본에 끌려가다시피 한 우리나라 마지막 황녀의 얘기는 어떨까? 날것 그대로일까? 나름의 시선으로 윤색되고 말아버렸을까.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었다.

 

옆지기는 비싼 책을 조른다. 인터넷으로 할인받고 적립금 받아 주문해주겠다고 꼬셔 봤지만 사고 싶을 때 사야 한다고 해서. 그리고 관심있었던 책이기도 해서 둘이 읽는다고 합리화 하며 또 구입. 

평소 존경하던 함세웅 신부님이 보수단체에 의하여 반국가 인사로 지명된 상황과 그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으로 처음 박종철 변호사를 맞았다는 사실이 묘하게 맞물린다. 차례가 돌아오면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아이는 예외없이 뽀로로 책을 골랐다. 자장가 몇 곡 녹음되어 있는 책인데 참 비싸더라. 언제쯤 뽀로로 얼음나라에서 빠져나올지 궁금하다. 뽀로로가 팔할은 아이를 키웠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일요일 밤에 서점에 가곤 한다,고 쓰고 싶어진다. 힘들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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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4-0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삼성을 생각한다>는 오프에서 사기 왠지 아깝다. 그죠? ㅎㅎ 예전에 광화문 근처에서 회사 다닐때는 막 한 번 가면 쇼핑백 두개 바리바리 들고 오곤 했어요. 요즘은 바로드림도 한 두권씩 사는 정도지만요.

<애도하는 사람>의 두께는 ... 편집이 널널해서 두껍지만, 많은 분량은 아니에요. 요즘 문동의 책이 한페이지 21줄이 많더라구요. 예전엔 23줄도 적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 21줄이면, 정말 페이지가 후딱후딱 넘어가요.

blanca 2010-04-05 22:34   좋아요 0 | URL
이만 원 넘는 책은 부담스러워요^^;; 그런데 요즘 책값들이 기본적으로 만오천원선으로 가고 있더라구요. 바로드림 서비스는 하이드님 통해 알게 되었지요.

문동이 비교적 여백이 많고 열린책이 하이드님 말씀처럼 빽뺵한 편집으로 가더라구요.

마녀고양이 2010-04-0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서점가기 너무 좋아합니다. 솔직히 서점에 누군가와 가서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었던 듯해여. 저만 즐거워서 이거저거 만지작대고, 푹 빠져서 어슬렁거리고, 다른 사람들은 지루해하는 듯 하고. 딸아이는 먼저 책을 사줘서, 교보문고 아동코너 안쪽 좌석에 앉아있도록 하고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가야가 뽀로로 볼 나이가 되었나봐요? 귀엽겠어요. 울 딸두 뽀로로에 한때 미쳐있었더랬죠. 그담에는 캐릭캐릭 체인지에.. 지금은.. 리젠드 작가의 만화에 홀랑 빠져있더라구요... ^^ 조금 더크면 따님과 잠실 삼성 어린이 박물관(? 제목이 정확하지 않네요)에 가보셔요... 재미납니다~

blanca 2010-04-06 18:58   좋아요 0 | URL
하루종일 뽀로로의 세계에 빠져 산답니다. 아, 그 정도로 키우면 서점 나들이가 우아할 수 있겠어요. 안그래도 삼성 박물관 가보고 싶었는데 욕심납니다. 글구 서점나들이 저도 누구랑 가서 즐겁게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0-04-0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점 아이들하고 많이 다녔어요. 그림책코너에 가서 책도 읽어주고...인터넷 서점에서 사면 휠 쌀텐데 기어이 오프에서 산다고 해서 눈물을 머믐고 제 값 다 내고 애들 그림책을 사 오곤 했지요. 아이하고 많이 다니세요, 블랑카님. 저는 애들하고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서점이나 야외에 많이 나갔었거든요. 지금도 징그럽게 많이도 붙어있긴 하지요~~~ 어제는 이마트 가는 길에 딸애가 엄마, 우리 저런 곳에서 낙엽 주워서 엄마한테 내가 뿌렸지? 그러더라구요. 너, 그거 기억나? 물었더니 기억난다고 배시시 웃는데, 정말 이뻤어요^^

애도하는 사람, 혹 집에 암으로 투병하신 분 있으세요? 있으시다면 절대 읽지 마세요. 후유증이 대단해요. 저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었던 책이에요. 많이 울었구요. 작가 자신이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을 만난 것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진짜 리얼하게 묘사했어요. 지금도 후유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중!

삼성을 생각하다, 저도 읽어보려고 맘은 먹고 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주문할 때마다 제동이 걸리는 거 있죠. 부군 말씀이 옳아요. 사려고 맘 먹을 때 사는 게, 정답이더라구요^^ 그래도 우린 아까워 하죠?

blanca 2010-04-08 14:11   좋아요 0 | URL
아....구구절절이 맞는 얘기입니다. 애도하는 사람은 기억의집님 얘기를 들으니 무서워지네요. 요즘은 슬픈게 무서워요. 삼성을 생각하다,는 책값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읽어볼 참입니다.^^;; 요즘 책값들이 너무 올라서 두 권 사면 삼만원이 넘더라구요. 요즘 책을 사는 욕구와 싸우는 중입니다. 한 달 오만원 꼭 지킬랍니다, 불끈!
 

이 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책 속의 문장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그 속의 장면들을 쏟아내어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었던 경험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열 다섯 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상과 꿈과 기대와 소망이 현실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는 그 거대한 가능성과 몽환으로 엮인 시간들을 복기할 수는 있지만 완전하게 복원할 수는 없다.  

그 때는 열 다섯 살이었고 겨울 밤이었고 모든 시험이 끝난 그런 때였다. 다사로운 훈김 속 나는 요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이광수의 <단종애사> 첫 장을 아마 저녁 아홉 시쯤 펴들었을 게다. 새벽 네 시 춘원의 건조한 문장들이 아무린 마무리는 가혹했다. 그저 단종의 죽음에 관한 정경 묘사. 그리고 날짜. 그 어떤 감정의 덧붙임이나 애도의 감침질 없이 춘원은 그 처절한 역사적 사실 가운데 나를 내려놓고 쓰윽 가버렸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열일곱 살 삼촌의 손에 죽임당한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 그리고 그를 위해 죽어간 그 수많은 사람들.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 성리학의 명분을 수호하고자 했던 신하들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 당시 명분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의연히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에 경도되었다. 십 대는 그런 나이였다. 현실의 이해 관계와 실리에 무게중심이 옮아가면서 수양대군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일종의 순응이자 세상에 대한 비애어린 묵인이었다. 나의 이십 대, 사육신의 명분은 투실투실한 속살을 못보고 바스라져 가는 껍질만을 주워담으려는 어리석은 자기기만으로 변질되어 인식되었다.  

그러나 삼십 대, 사육신과 단종에 대한 이해는 다시 열 다섯 살 그 시점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가치와 명분의 수호가 현실 이해에 영합하여 도리를 저버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결단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깨달음 뿐만 아니라,정치라는 것이 자신의 권력욕이나 현실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는 지점에 과도한 방점을 내리찍게 될 때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 지에 대한 체감때문이었다. 

 

역사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현실적 이해가 아니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삶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덕일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중

김종서는 <단종애사>에서 수양대군의 심복이 휘두르는 철퇴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것으로 짤막하게 언급된다. 이 때 그의 나이 70세로 태종, 세종, 문종, 단종 네 임금을 섬기여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며 북방을 개척한 대호이자, 아내의 장사도 미처 다 치르지 못하고 몽골군의 침략에 맞서 평안도로 떠났던 그가 선왕의 유지를 받들고자 했던 것, 헌정질서에 반하는 일련의 일들을 용인해 낼 수 없었다는 것만으로 수양대군의 가동이 내리친 철퇴로 머리를 맞아야 했던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비를 지키려 했던 아들 김승규도 죽임을 당한다.  남은 가족들중 남자들은 대부분 죽고 여자들은 관로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수양대군의 쿠데타의 공신들의 처첩으로 전락하기까지 하며 무려 293년이 지난 뒤에서야 공식적으로 신원된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무신의 호연한 기개가 절로 일성을 내지를 것만 같은 이 시 한 수는 김종서의 현신 같다. 하지만 그는 원래 문신 출신이다. 또한 의외로 단신으로 체수도 왜소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세종대왕의 진취적 기상과 절대적 신뢰를 등에 업고 노구를 이끌고 북방에 부임하여 4군 6진을 개쳑하는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 같다. 당시로서도 함길도 같은 북방 지역은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리는 오지였다. 백성들마저 이주를 꺼리는 지역을 개척하여 두만강 이북 공험진까지 국경을 확장하여 국경선을 확정하고 백성들의 삶의 근거지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듣는 것은 더없이 가슴벅찬 일이었다. 추상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구체화되어 스며드는 일은 나의 존재의 핵에 다가가는 일이라 감미롭고도 가슴뭉클하다.  

그러나 이런 김종서의 욱일승천하던 기세도 결국은 그를 알아주고 백성과 국가를 귀히 알았던 명군주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의 죽음과 문종의 단명에 뒤따른 어린 단종의 등극, 수양대군의 왕위찬탈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극은 그와 더불어 그의 후손들까지 처절하고 곤구한 삶으로 내몰게 된다.  

세조가 피의 숙청을 단행하며 등극하며 불거진 문제는 그가 백성을 위한 치세를 펴는 것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여 실리 그 자체의 기반도 빈약하게 만든다. 즉 그의 비정상적인 왕위 찬탈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 수많은 공신들을 책봉하고 그들에게 권력과 물질적 포상을 해야 했던 것은 끝끝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왕위를 계승한 후손들도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는 데 두고두고 장애물로 작용했던 것이다. 세조가 국가 권력을 공신집단의 사적 이익실현의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저자의 지적은 국가 권력이 제대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뼈아픈 계도의 지침이 될 것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둘째이며, 군왕은 그보다 가벼운 것"이라 했던 김종서의 웅변을 머금고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삶 자체를 바친 잊혀져간  그들을 마음으로 다시 신원하며 나의 삶에도 지킬 만한 마땅한 가치 하나를 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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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06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이 맘에 듭니다. 잃어버린 가치를 위하여.
처절할만큼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주인공, 신념을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는 주인공.. 이도 저도 아니고 방황하며 납작 엎드려서 사는 나.. 진화학적으로 본다면, 제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ㅎㅎ

blanca 2010-04-06 18: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엎드려 삽니다.
 

걸어가다 비를 맞을 때가 있다. 우산도 동행도 없이 가랑비가 아닌 폭우로 몸이 젖어들 때 우리는 사위를 둘러보게 된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 꼭 그 누군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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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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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생 2학년 268명의 삶 72년간의 추적 보고. 누군가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나의 인생을 반추하고 짐작하는 데에 중요한 참조점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들의 인생이 어떤 요인에 의하여 행불행으로 나뉘어지는 지를 지켜보다 보면 나의 삶 속에서 고통과 상실이 가지는 의미를 찾아 낼 수 있다.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픽션이 아니라 사람의 삶일 수 있다는 것도 더불어 느낄 수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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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글쓰기? 아니다. 이 책은 창작기법을 강론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스티븐 킹의 자서전에 가깝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인 그가 정작 자신의 삶을 최후의 소재로 숨겨 놓았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다. 그 정도로 그의 삶은 다이나믹하고 슬프고 아름답다. 싱글마더 밑에서 형과 함께 저지르는 과격한 장난 스토리를 읽다 보면 너무 웃다 사래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그가 직면한 삶의 고난들에 대처한 자세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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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조증 환자라고 진단한 그녀의 얘기는 삶 그자체로 대변된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 그녀의 도발적 삶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유쾌해진다. 지도 밖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도 그녀가 주는 보너스다. 언제나 재미있고 언제나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힘을 내게 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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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실, 과잉 어느 한 쪽이다. 내가 힘든 이유를 더듬어 보면 그렇다. 신경과 전문의의 올리버 색스는 이 모자람과 넘침에 기발하고 독창적인 시선을 제공한다. 그 자체로 오히려 가치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발견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 또한 다른 프리즘을 통과해서 보게 한다. 병든 사람들의 얘기가 그들의 고통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놀라운 적응과 거기에서 얻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한 번 들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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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0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가야할 길, 그러잖아도 서재친구 어느 분이 권하시더군요.
참 좋았다고요. 마음의 위로나 힘이 될 수 있다면
블랑카님의 추천으로도 또 담아갈게요.^^

blanca 2010-04-05 13:42   좋아요 0 | URL
책장 한 켠에 두고 두고두고 읽게 되는 책인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녀고양이 2010-04-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도 스캇펫 박사 책들 못 읽고 서재 한쪽에 있어요.. 흑흑.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는 가볍게 읽기 좋았습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그 앞선편인 <화성의 인류학자>에 홀랑 반해서 사놓고는 아직도 고히 모셔져있고. ㅠㅠ 김형경 님의 천개의 공감, 사람풍경, 좋은이별을 참 좋아합니다. 행복의 조건도 제 바로 옆에 고히 모셔져있군요.. 대체 책을 얼마나 사놓고 못 읽은거람.. ㅉㅉ

blanca 2010-04-06 18:56   좋아요 0 | URL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더 좋았어요. 그러니 꼬옥 읽으세요! 제가 읽고 싶어라 하는 책 다 사셨네요^^;;
 
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p.118 

2003년 4월, 13대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과의 대담에서 법정스님이 남긴 말이다. 결말을 알고 있는 소설을 읽어 나가는 일은 시시하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하나하나와 자잘한 동선 마다마다에 스미는 의미를 해독해 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피천득 선생과 법정 스님이 가신 자리, 그 안을 밀고들어온 그들의 말 음절 하나 하나가 만들어 나가는 유언장은 삶의 이정표마다 세워둔 거울 같다.

월간 <샘터>의 400호 기념으로 2003년 4월 이루어졌던 피천득과 김재순, 최인호와 법정 스님의 대담을 채록한 이 책이 내 손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사실 법정 스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90대(피천득)와 80대(김재순), 70대(법정)와 60대(최인호)의 시선으로  걸러진 삶의 화두들이 궁금했기에 기다림이 초조했다. 이 전아하고 정갈한 책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향내가 풍겨내는 아취에 빚진 바가 클 것이다. 표지의 하얀 바탕에 어우러진 매화 꽃잎 띄어진 차에서 은은하게 피어날 것만 같은 그 향내에 취하고 그 속의 말들에 취해 금아 선생의 서재에서, 길상사에서 그 분들을 모시고 고언들을 듣는 듯한 착각도 행복했다. 

특히 환생에 대한 진중한 얘기들은 울림이 컸다. 피천득 선생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이 생활을 반복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금생에서 받은 행복의 다사로움이 이 한마디로 축약된다. 죽음이 가까워 올 무렵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처칠은 90회 생일에 기자들에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다시 그를 낳아준다면 이 생을 꼭 그대로 가감없이 살고 싶다고 했단다. 다시 살고 싶은 시간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삶 전체를 덮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네들이야 다시 내생에서 그 나날들을 재현해 내어야 한다는 가정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 온다. 그렇지 않은 삶이란 드물고도 특별하게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법정 스님은 이 다음 생에도 다시 수도승으로 그 어떤 틀에도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금생에서 누려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수도를 계속 해나가겠다는 그의 말은 그 자체로 수도하는 자, 구도의 삶의 전범이 된다. 세속적 욕망을 죽이고 엄격한 절제와 억제로 포박하여 심신을 단련하는 고행의 틀 안 성직자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자유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 우리가 느끼는 자유와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 과정의 부수적인 것들과 미망에 사로잡히고 법정 스님 같은 이들은 자신을 심오하게 응시하고 자잘한 욕망들을 떨어내는 과정에서 받는 선물 같은 자유의 지평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상을 받는다.  

어쩌면 소설가 최인호의 얘기가 우리 같은 범속한 이들에게는 더 와닿을 지도 모른다. 

도를 이루거나 성인이 되면 윤회가 끝나니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가장 좋은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죠. 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고,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p.116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 부족하다,는 말.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다는 소설가 김연수의 말. 정념에 이끌린 열정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두고 발효시켜가야 하는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와 신뢰의 나이테. 사랑의 역사를 쓰는 일은 그래서 달콤하지 않고 그러니까 싫증나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미완으로 남는 그 사랑의 이야기들은 죽음이 단순한 종결이 아님을 예언해 주는 것 같아 가슴뿌듯하다.  

진지한 얘기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책상에 언제나 놓여 있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진 얘기와 강원도 오두막 벽에 붙여져 있는 법정 스님의 봉순이 그림은 작고 귀여운 여백 같다. 특히나 법정 스님이 외로움이 옆구리로 스쳐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한 대목과 봉순이 그림을 앞에 두고 "봉순아!"하고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경이 맞물리며 애잔한 느낌이 든다. 구도와 수도의 길목마다 서리 틀고 앉아 있는 외로움을 그림 한 장으로 달래는 풍경. 그 바람을 맞으며 장삼 자락을 떨치고 가버리신 그 분의 단아한 웃음이 그립다. 


 

우리는 저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 초대받은 것이라는 스님의 고언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저마다 진귀하고 한없이 소중한 생명들이 낙화처럼 지고 있는 갈피짬 사이로 스며든 이야기들에 목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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