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여고생들은 미남자에 탐닉했다. 여기에서 무서운 여고생들이란, 용수철처럼 탄성 있는 지독한 곱슬머리, 혹은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원래 눈의 이분지 일 크기도 안보이게 하는 독한 근시렌즈의 안경, 무쇠 같은 종아리 중 어느하나라도 지녀 존재감을 빛내는, 그러니까 전혀 은교 같지 않은, 롤리타의 백만분지의 일도 안닮은 그런 여고생들을 뜻한다.  물론 그녀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눈부신 반전을 몸으로 이루어냈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담긴 사진을 죄악시한다. 누군가가 그 사진을 싸이에라도 나도 친구좀 있었다며 올린다면 바로 그것때문에 늙어도 이지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쩡! 쩡! 봤냐! 봤어? 역시 그녀는 그 날 아침도 다크호스 소식을 물어왔다. 스탠바이미, 쥑인다. 리버피닉스! 환장한다!
<스탠 바이 미>는 나에게도 특별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개봉한 셈이었지만 한참이나 지나 비디오로 접하고 그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르는 나의 절친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그 영화에 등장했던 어린 리버피닉스의 아우라에 굴복했다. 보지 않고도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 지레 물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그 영화를 정말 봤는지 봤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리면 그 무서웠던, 무모했던 지독한 장난꾸러기 여고생 4인방들이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들은 친하다. 목소리도 작아지고 웃음도 줄고 스티븐 킹이 얘기했듯이 단순한 설렘도 점차 잃어가면서. 그래, 설렘의 순간이 줄어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감정의 외줄타기의 그 곤혹스럽지만 황홀한 스릴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빅맥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문학적 등가물이며 평론가들이 개똥으로 안다는(그 자신의 표현이다.)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로 만났었다. 글쓰기의 그렇고그런 작법이나 너절하게 늘어놓는 진부함대신 사실 그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으로 재기와 말발이 용솟음치는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다 울기도 했다. 요즘같이 문자 텍스트가 천대받는 풍조에서 글만으로 독자를 미친듯이 웃길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재능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 책은 그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선입견을 공고하게 하는데 일말의 책임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을 것이라고 독설을 뿜고 진부한 플롯이나 문체에 치중하는 작품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어떤 예술적인 성취에 대한 열등감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을 몰고 오니 말이다. 그는 허술한 반전에 걸핏하면 등장인물을 죽여대며  그렇고 그렇게 독자를 속여먹어 부자가 된 작가로 오인받을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속았다. 그의 그런 작위적 허풍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  

그가 중편의 작품들을 독립 출간할 기회를 벼르다 드디어 네 편을 두 권으로 묶어 내놓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네 편은 그가 단순히 공포물 작가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의 작품이 개똥으로 폄하될 이유가 없음을 강변한다. 이 두 권을 아우르는 타이틀 사계 중 가을, 겨울에 각각 속하는 '스탠 바이 미'와 '호흡법'을 거의 단숨에 다 읽고 나머지 봄,여름편을 같이 구입하지 않은 것을 통탄했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쇼생크 탈출'의 원작이 실려있다.  

제일 중요한 일들은 제일 말하기도 어렵다,로 시작하는 '스탠 바이 미'는 그의 자전적인 작품 같다. 서른 네 살 베스트셀러 작가의 늙어가는 몸뚱이 속(너무하잖아. 겨우 서른 네 살인데.)에 잠들어 있던 열두 살의 '나' 고든 라챈스의 그 여름을 복기해 나가는 얘기다. 그 여름, 열두 살에서 열세 살로 넘어가던 그 찌는 듯했던 여름, 죽은 형의 존재감 속에 부유하는 '나'는 블루베리를 따러 나갔다 실종된 레이 브라워라는 아이의 시체를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찾아 나서게 된다.

1960년 여름, 그들이 철길을 따라 간 길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왜 하필 캐슬강 교각 위에서 기차를 간발의 차로 피하며 건너는 그 무모한 경로를 택했는지, 곧죽어도 두 개의 선로 위를 고집했는지를 한참 후에야 의아해하면서도 그래서 그 대단찮은 여행이 대단한 것으로 변모했음을 깨닫는다. 그 시절에는 항상 어리석고도 과감하고도 우직한 길을 선택한다. 나중에는 항상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길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전진을 했음을 안다. 그건 성장이다. 꼭 그 길이 아니었어도 됐었을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길을 고집했던 치기와 미숙함은 저멀리 흩어져 간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씁쓸하고 알딸딸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결국 그 불쌍한 아이의 시체를 두고 갑자기 차를 타고 편하게 오는 반칙을 한 형들과 서로 접수하겠다고 다투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러다 결국 누구도 그 시체를 접수하지 못한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고, 안 하고, 못하고, 해서도 안 되고,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해도 못하는 죽음에 대해 섬뜩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과거를 이해하고 죽음에 대비하기 위하여 소설을 쓴다는 그의 고백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별볼일없는 하층민 집안의 아이로 없어진 우유값의 도둑으로 지목되고 대학진학반의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혔던 크리스가  그 아이의 시체가 '우리 거'였어 라고 얘기하는 대목은 그가 갈망했던 것이 결국 어른들의 이해와 존중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해나가는 아이들한테만 정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해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절실함을 호소한다.이 은근히 진중하고 의젓한 아이는 미래의 유명작가가 될 '나'에게 이런 아름다운 조언을 한다. 이 대목은 정말이지 더없이 문학적이다. 개똥이라니!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p.180 

이런 친구가 물 속에서 나를 아무리 끌어내릴지라도 결국 같이 살기 위해 그의 소망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임은 당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넘어가는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던 철로를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시 이 책에도 그 보석처럼 군데군데 빛나는 통찰들이 박혀 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한 적나라한 자기고백, 삶에 대한 깨달음들. 

내 경우에는 글쓰기는 언제나 섹스를 대신하고 싶어 하지만 언제나 섹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래서인지 즐거움이 조금은 줄어들었고 자위행위처럼 죄책감이 섞인 이 쾌감이 내 머릿속에서 인공 수정처럼 냉정하고 분석적인 이미지와 결합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다시 말하자면 출판 계약서에 명시된 규칙과 규범에 따라 사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p.151

그가 끼적인 소설을 누군가가 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던 경험을 회고하는 대목은 글쓰기가 가지는 그 은밀하지만 이중적인 즐거움을 얘기해준다.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지만 또 단 한명의 독자라도 염두하게 되는 모순적인 행위다. 또 그 점이 글쓰기가 가지는 아주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나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또 공유하고 싶기도 한.  

이 무모하고 약간 괴기스럽기도 한 탐혐이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그 탐험의 와중에 친구들을 거의 미칠 정도로 매혹시킨 작가지망생 소년의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 두 편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나 블루베리 파이 먹기 대회의 반전을 다룬 액자 소설은 또다른 수확이었다. 스티븐 킹은 문자 텍스트로 영상 이미지를 띠워 올리는 특출난 재능을 가진 것 같다. 축 늘어지기 쉬운 문자들에게 쭉쭉이를 시켜줘서 신나게 뛰어다니게 한다. 독자는 그러니 지루할 틈이 없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는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런 추체험이 가능하다.   

 함께 실린 <호흡법>은 그가 공포작가로 찍히기를 주저하지 않고 이 중편집에 실은 유일한 작품이다. 우연찮게 노년의 남성들의 기묘한 클럽에 들어가 그 멤버중 한 명이 산부인과 의사시절 환자로 만났던 미혼모와의 얘기를 듣게 되는 구도로 진행되는 얘기는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그 아름다운 미혼모가 순산을 도와주는 호흡법을 열심히 연습하며 사회적 편견들을 헤쳐나가다 맞게 되는 비극적인 최후는 스릴러처럼 흐르려던 작품의 기류를 하나의 처절한 비극적 아취로 마무리지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의지의 겨울, 인간의 의지가 무력하지만은 않음을 모정을 통해 보여준다.  

스티븐 킹이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마법,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따뜻한 곳으로 가는 그 환상적인 체험을 하고 오는 길, 주인공 고든 라챈스의 바람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내 마음의 일부는 언제나 6월처럼 거의 9시 반까지 하늘 한 구석에 햇빛이 어슴푸레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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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 바이 미> 영화를 못 봤답니다. 그런데 4월 행사로 DVD 세일을 하는거여여..
그래서 냉큼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며칠을 미루었어요...
그 사이에 홀랑 품절 되었답니다. 으흐흑...

blanca 2010-05-11 18:00   좋아요 0 | URL
아, 그랬던 거였어요? 저는 품절된 상태만 봤는데 그랬군요. 지나친 구매에 대한 반성의 의미 ㅋㅋㅋ 저도 자숙과 반성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무슨 책을 주문했는지 기억 못하는 상태로 치닫고 있답니다. 무서워요, 제 자신이--;;

L.SHIN 2010-05-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추천을 2개 주고 싶은데.

"네가 그렇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하느님이 재능을 주셨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야.너한테는 이걸
주겠다. 꼬마야. 잃어버리지 마라. 그런데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뭐든지 잃어버리기 마련이야."

생각해봤습니다. 나를(재능을) 돌봐주는 것은 수 많은 책들과 알라디너들의 이야기들 때문은 아닌가 하고.
나를 키운 것은 책이 5할이었어요.

blanca 2010-05-11 18:01   좋아요 0 | URL
L.SHIN님 8할이 아니라 5할이라고 하시니 그 나머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저도 이 대목을 읽으며 괜히 뭉클하더라구요. 저는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서요--;;

순오기 2010-05-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은 참 매력적인 작가예요~ 결코 공포작가로만 기억하면 안되겠군요.

blanca 2010-05-12 14: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정말 몰랐어요. 그렇고 그런 작가인 줄만 알았는데 자녀분들이 좋아한다고 하셨죠? 참, 좋은 작가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5-13 00:53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은 스티븐 킹 많이 읽었어요.
나는 책을 빌려오거나 사주기만 하고 '유혹하는 글쓰기'외에는 제대로 안 봤지만, 영화는 제법 봤어요.^^

穀雨(곡우) 2010-05-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다닐 때 스티븐 킹에 빠져 한 동안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순오기님 말씀처럼 공포스릴러 작가로만 기억하면 스티븐 킹의 한면만을
보는 일이네요.

blanca 2010-05-12 14:13   좋아요 0 | URL
곡우님 그러셨군요. 저는 대중소설적 재미만 추구하는 작가인 줄 알았어요.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순오기 2010-05-1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은 글샘님이 전공이시니 관련 책도 많이 보셨을 듯합니다.
저는 어린이 책은 몇 권 봤지만 일반인을 위한 책은 달랑 '건방진 우리말 달인' 하나 봤거든요.^^

blanca 2010-05-14 16:4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오늘 날씨 정말 너무 더워요. 근처 공원에 갔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답니다.

후애(厚愛) 2010-05-15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왜 하나밖에 안 될까요... 속상해~ ㅜ.ㅜ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anca 2010-05-16 16:55   좋아요 0 | URL
후애님, 주말이 거의 다 저물었네요. 벌써 초여름 날씨 같아요. 행복하게 보내셨죠?

후애(厚愛) 2010-05-17 08:16   좋아요 0 | URL
이곳은 아직 일요일 오후에요.
조용히 잘 보내고 있어요.^^

2010-05-1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1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탠바이 미에 나왔던 리버 피닉스를 알고 있는 십대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스탠바이미는 우리 세대를 위한 책이 아닌가 싶어요.

blanca 2010-05-18 16:42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님, 그럼요. 그 책을 읽고 정말 꿈을 꾸는 느낌이었어요. 다시 그 시절로 귀환한 듯한. 그리고 리버 피닉스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정지되어 있고요. 스티븐 킹에 대하여 과연 책이나 많이 팔아치우는 싸구려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포인트를 다 모아 알라딘의 책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았다. 포인트파크에서 KT마일리지를 끌어와 채워 놓아 배가 두둑하다. 읽고 싶은 책을 공짜로 받아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옆지기에게 강권했다. 당장 포인트닷컴 회원가입을 해서 그 포인트를 날좀 달라. 흑흑. 포인트파크와 헛갈려서 엠한 포인트닷컴에 회원가입을 시킨 것이다.--;;
다시 회원가입을 제대로 시켰으나 타인의 마일리지로 내가 책 구입을 하는 것은 불가하단다.
어버버버 하면서 회원가입을 두 군데나 시켜놓고 무용지물이 됐다. 

# 요즘 단편의 사람 이름과 그 사람의 성격을 기억을 못해서 중간만 가도 다 까먹고 만다. 다 새롭다. 그러니 단편을 읽을 수가 없다. 벌써 이러다니. 장편은 계속 나오니 기억하기가 좀 쉽지만 단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돌아서면 다 잊고 마는 내가 유일하게 등장 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소설은 <태백산맥>과 <안나카레니나> 뿐이다.  명작이라는게 다 이유가 있나 보다. 

# 내가 무슨 책을 주문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연습을 한다. 갑자기 하루중 갑자기 그래, 내가 주문한 책은 이거저거이거다, 라고 떠올려 본다. 떠올리면서 꼭 나머지 한 권은 기억이 안 난다. 이쯤되면 정말 서글퍼진다. 

# 왜 울 부모님이 대화를 하시면서 고유명사를 다 빼버리고, 왜 그거 있잖아, 저거, 그거 하며 지시어를 남용했는지를 깨달아 가는 중이다. 옆지기와 대화하며 사람이름, 장소가 생각이 안나 소통이 안될 지경이다.  

# 기억력이 좋고 (특히 고유명사) 운동신경, 미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젤 부럽다. 담 세상에는 꼭 이 세가지를 탑재하고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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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5-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니까, (그 포인트 체계를 잘 모르지만) 옆지기님보고 블랑카님이 원하는 책을 사달라고 하는 건 안 되나요?
# 나는 지구를 떠나기 전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 빌어먹게 긴 이름들, 책 지문의 1/3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은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들을 무시하고 그 신화들을 다 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_-);
# 전..하도 질러대서, 주문한 것 자체를 아예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체국으로부터 문자라도 오면 '잘못 안 거 아냐?'
라는 그런 소리를 지껄이..;;;
# 저는 가끔 주어를 통째로 빼고 말해서 상대의 빈축을 사기도 한답니다.(웃음)
# 지구에 올 때 그 3가지를 옵션으로 달고 오기는 했는데, 그게 의욕이 있을 때만 가동되는지 몰랐어요.
이래서 뭐든지 설명서를 꼭 읽어야..아하하하핫...ㅡ.,ㅡ

blanca 2010-05-06 2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러면 알라딘 회원가입을 또 시켜야 해서요. 도합 세 군데 회원가입시키려니 그래도 알라디너로 만들어 줘야겠지요?^^;; 주문한지도 모른다, 그럼 저는 좀 나은 편에 속하는 거죠? 주문한 사실은 기억한답니다.^^;;

마녀고양이 2010-05-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 이름을 워낙 못 외워서, 그냥 다 언니, 오라버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히죽.
그리고 집에 있는 책을 보고 이거 샀네? 하고 놀랍니다. 심지어 두번 주문한 책도 세번이나 있었습니다.
아....... 저는 대인 관계 좋은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오늘 심리 검사 결과 나왔는데,
사회 회피 지수 최고랍니다. 으이구. 난 왜이리 붙임성이 없는건지 모르겠어여... ㅡㅡ;;;

blanca 2010-05-07 14:30   좋아요 0 | URL
두 번 세 번 주문한 책도 있다구요?^^;; 근데 그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해져요. 그만큼 마녀고양이님이 끌렸다는 애기니까요. 저 토지 검색하다 마녀고양이님 페이퍼에 빨간머리앤이랑 같이 있어서 마녀고양이님한테 물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토지랑 빨간머리앤이랑 강추하시는지요?^^

마녀고양이 2010-05-07 16:26   좋아요 0 | URL
토지는 당연히 강추입니다. 아마 토지 팬이 상당히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요..
빨간머리앤은 동화같아요.. 성인이 되서도 꿈같이 나오죠. 아이를 8명이나 낳아서 키우는 이야기이며, 주변 사람들 이야기이며.. 이런거 좋아하시는 분은 굉장히 좋아하실거구요, 어떤 분들은 거들떠도 안 볼듯도 하고... 그래염~

프레이야 2010-05-07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가지를 탑재하고 태어나리라~,
이 대목에서 ㅍㅎㅎㅎㅎㅎ

blanca 2010-05-07 14:3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어떤 이들은 힘든 세상 왜 또 태어나냐 하지만 저는 꼭 한 번 더 태어나서 이 생에 갖추지 못한 것들 다 가지고 또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ㅋㅋㅋㅋ

프레이야 2010-05-07 20:04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 완전히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용~

후애(厚愛) 2010-05-07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기억력이 참 좋았는데 이제 갈수록 기억력이 안 좋아지고 있어요.ㅜ.ㅜ

blanca 2010-05-07 14:31   좋아요 0 | URL
후애님,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억력 좋은 분들은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후애님 기억력이 아무리 안 좋아져도 저보다는 훨씬 좋을 거예요^^;;

후애(厚愛) 2010-05-0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5-08 14:55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요. 여긴 지금 여름 날씨네요. 짬뽕 먹고 들어왔어요^^;; 후애님은 마니또 공원 가실래나? 펜과 종이 잊지 마세요^^

후애(厚愛) 2010-05-09 13:53   좋아요 0 | URL
물어보신 꽃이름 올렸습니다.^^

stella.K 2010-05-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력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시시콜콜 다 기억 못해요. 근데도 뭐...
단지 저 같은 경우는 나이를 먹으니 그나마 기억하는 것도 내가 맞게 기억하고 있나
확실하다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거죠.ㅜ

blanca 2010-05-09 14:20   좋아요 0 | URL
그죠! 확신을 못하겠다는 거. 그래서 괜히 말끝을 자꾸 흐리게 된다는거요^^;; 스텔라님 저 은교 당장 질렀어요^^ 기대가 큽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포인트모으기. 한번 빠지면 은근 중독됩니다.^^

blanca 2010-05-12 14:11   좋아요 0 | URL
곡우님. 포인트도 사실 눈가리고 아웅인건데 자꾸 공짜처럼 느껴져 이 포인트로 책폭탄을 맞았답니다. 책이 밀려 있어요. 벌써 거의 다 써버렸답니다.
 
더블린 사람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5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병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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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껏 어떤 여자에 대해서도 그 자신 이런 감정을 가져본 일이 없었으나, 그는 이런 감정이야말로 사랑에 틀림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물은 더욱 글썽거리며, 희미한 어둠 속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 밑에 서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자기라는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세계로 사라져가고, 그들 죽은 사람들이 한때 살던 현실의 세계 그 자체는 허물어져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 <死者> 중 

제임스 조이스의 초기작인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의 중하층 계급인들의 나른한 일상을 덤덤하게 스케치한 열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만큼은 그도 살아날 희망이 없었다.'로 시작하여 역시 '그의 영혼은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로 끝나는 이 단편집은 마치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문을 닫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제임스 조이스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소재로 택한 것은 이 작은 도시가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년시대, 사춘기, 성숙기, 노쇠기의 민중의 생활은 질벅거리고 침체되어 있으며 극적인 사건도 낭만적인 로맨스도 없다. 발전소 구경을 위해 학교를 빠지고 나룻배로 강을 건넌 소년들은 우연히 맞닥뜨린 노인의 삶의 체념을 들어주어야 했고, 하숙집 여주인이 딸과 맺어주려고 했던 손님은 비겁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헤맨다. 개인은행의 출납계원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 어설픈 로맨스를 만들어가다 짐짓 그 정열적인 움직임에 겁을 먹어 발을 뺐다 그녀의 부음기사를 읽고 외로움을 재확인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들은 제임스 조이스가 인간 간의 소통 자체를 믿지 않는 것으로 대변된다. 그는 모든 인연은 설움으로 이끄는 인연이라고 얘기하며 운명에 거슬려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의 메시지가 메타포에 실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작품으로 엘리엇도 극찬한 <사자>는 이런 그의 소통에 대한 불신과 운명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사무치는 이해와 죽음에 대한 유리알 같은 통찰이 돌올하게 빛난다. 나머지 단조로운 단편들이 줬던 나른함은 이 작품 앞에서 서곡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될 정도로 경이롭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어셔스 아일랜드의 어두컴컴하고 초라한 집에서 늙은 모컨의 자매와 그녀들의 조카가 함께 연 댄스파티의 흥청거리면서도 아늑한 생동감들은 그 파티에 참석한 조카 가브리엘의 아내가 우연히 <오그림의 처녀>라는 민요를 듣고 황홀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에게 아내의 가치와 그녀와 엮은 추억들에 대한 영롱한 아름다움을 재확인하게 해줌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생각들과 기대는 하나의 착각이었음이 드러난다. 아내는 소녀시절 가스공장 소년공에게서 그 노래를 들었고, 고향을 떠나던 날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비를 맞으며 창문에 돌을 맞혀 자신이 왔음을 알렸던 추억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 소년은 죽고만다. 아내는 첫사랑의 애달픈 추억으로 울먹인다. 가브리엘은 지금은 늙어버린 아내가 한때는 한 소년을 죽게까지 한 로맨스를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찰나에 절절하게 스며 시간의 괴력 앞에서 스러지고 만다. 결국 시간의 횡포 앞에서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오해와 착각을 품고 죽음의 장막 뒤로 퇴장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가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결국 다 그림자가 될 것이고 이런 인식을 하는 나마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자각은 삶 앞에서 몸을 떨게 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재력, 권력, 사랑 등 세속적인 기준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레빈이 그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다 스러지고 말것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인식하는 대목이 결말을 장식한 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그것과 절묘하게 맞물리고 있다. 가브리엘은 아내의 사랑의 추억에 질투를 느꼈다기 보다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소녀를 기다리는 장면을 떠올리고 옆에 누워 있는, 이제는 결코 젊고 아름다워 그 때 그 소년의 사랑과 동경을 복원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아내의 모습을 서글프게 느끼며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덮이고 있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죽음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며 이 오묘한 대구를 완벽하게 형상화해낸 작가에게 경외를 느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의 마음에도 그런 절절한 추억이, 사무치는 사랑의 기억이 있나 싶어 들여다 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내어 줄 수는 없다,는 작가의 얘기는 내 자신을 덜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젊은 날의 맹목적 믿음이 허무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회상 속의 사랑은 언제나 박제되어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다. 돌아보면 그 자리에서 잡힐 듯 한데 이미 나는 그 때의 모습도 그 때의 투명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이 깨달음을 주렁주렁 달고 늙어가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사자>를 읽기 위해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펼쳐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 쓸쓸함과 잃어버린 순수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추체험이 오롯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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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5-0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느끼기에 알라딘에서 가장 글 잘 쓰는 작가 중의 한 분인 블랑카님, 잠시 잠깐 들러 보는 것만으로도 저를 흥분케하는 님~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재능(어쩌면 노력일수도...)을 선물 받았을꼬... 봄밤 없는 봄날씨를 탓하며 부러워해 봅니다.

blanca 2010-05-07 14:32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님의 과찬은 저를 너무 행복하게 합니다. 오늘 이 칭찬 먹고 오후를 행복하게 보내렵니다. 감사합니다.!

穀雨(곡우) 2010-05-12 09:46   좋아요 0 | URL
느와르님 말씀에 백배동감. 베스트 오브 베스트.^^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나도 알라딘에서 글 잘쓰는 사람이란 평을 받아보고 싶어...블랑카님.부러워라...요즘은 제 서재에 댓글 달러 오는 사람도 없답니다.

blanca 2010-05-10 13:13   좋아요 0 | URL
노자님.ㅋㅋㅋ 댓글 읽다 웃습니다. 제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은 아닌데요^^;; 노자님의 박학다식은 어쩌구요? 노자님 서재에 가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조이스...요즘엔 많이 안 읽히는 작가인데...그래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은 조금씩 팔리는 편이죠?

blanca 2010-05-10 13:15   좋아요 0 | URL
솔직히 재미는 없더라구요^^;;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 뒤의 단편작가들 대부분 모방한 것 같아요. 한 마을 사람들 모습을 연작형식으로.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17   좋아요 0 | URL
맞아요.우리나라에도 이문구<관촌수필><우리동네> 박영한<왕룽일가>가 있지요.<원미동 사람들>도 있군요.
 
[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하늘은 께느름한데 모처럼 가디건을 벗어던지고 싶다고 느꼈으니 날씨가 좋았다고 눙칠 수 있을 지경이다. 그 정도로 파란 하늘과 샤방샤방한 날씨는 이 해 들어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날 전날 지독한 콧물 감기와 배려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하늘을 찔러 한 마디로 구린 하루였다. 예전에는 귀엽고 ㅋㅋㅋ 젊었으니 우울하다면 돌봐주는 사람도 몇 있었건만 나이들고 아줌마 되니 누구하나 내 우울에 관심 기울여 주는 이 없다.-..- 근처 대학교가  두 개나 있는데 그 아이들의 젊음을 보면 눈이 부시고 슬며시 질투가 난다. 아놔~이렇게 나이들어 가나 보다. 스무살 적 스물 아홉살을 보고 정말 절망적인 나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나이의 아줌마에 대한 기억은 없는 걸 보니 아예 사정권밖으로 치워버렸었나 보다. 그러니 10문 10답이나 하련다.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혼불>의 최명희를 만나고 싶다. 이미 이 생의 사람이 아닌 그녀가 미처 끝내고 가지 못한 <혼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못다한 얘기들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너덜거리는 듯한 느낌에 아연했다. 그 자체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살아 숨쉬는 듯하는 등장인물들의 뒷얘기를 알 수 없음에 목이 말랐다.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이 생에서는 결혼을 해봤으니 다음 생에서는 결혼을 안할테다.(비장한 어조로)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올리버 색스가 쓴 <색맹의 섬>을 읽고 이 팔자좋은 할아버지의 삶에 진심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이른이 훌쩍 넘은 나이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올리버는 때로는 자신이 심취한 양치식물을 탐사하기 위하여 혹은 풍토병을 연구하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미크로네시아섬에서 태평양이 보이는 옥상에서 저물녘 사카우를 마시고 만취하여 조이스의 "축축한 암청빛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별 가득한 하늘나무'를 봤다는 대목에는 절로 질투가 났다. 내가 저기 앉아 있어야 하는데--;; 참, 이건 그러니까 작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이니 등장 인물이라기 보다는 실제 인물이 되버려서 질문과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낚인 책은 정말 많지만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솔직히 심미안이라고는 없기(미술은 항상 우미였음)에 표지를 논할 자신이 없다. 다만 도서출판 이후의 수전손택 시리즈는 그녀의 사진들을 활용하여 가장 그녀다운 표지를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세워서 꽂아 놓으면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된다. 수전 손택의 얼굴로. 연인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들인 것 같은데(확실하진 않으나 확인하기 귀찮다--;;) 역시 불순한 감정이 담겨야 사진이 샤하게 나온다. 연인이 같은 여자였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수전 그녀다웠다.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솔직히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않지만 춘원 이광수의 책이 대부분 절판인 것은 의아하고 아쉽다. 중학교 때 참 좋아했었다. 힘들게 수집해 놓았는데 아버지가 딱 <흙> 한 권만 남기고 다 처분하셨더라. 왜 하필 <흙>이었는지.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동그라미를 친다. 왜 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만다. 많이 나오면 혼자 막 신경질 낸다.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사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이 아니라서. 어렸을때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문학전집은 다 매우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계몽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에 나왔던 책 대부분. <쿠오레>, <소공녀>, <소공자>, <작은아씨들>. 참, 그리고 로라 잉걸스의 초원의 집 시리즈는 미리 장만해 뒀다.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뒷심이 좀 부족한 책이긴 해도 정말 너무나 다사롭고 읽기만 해도 마구마구 행복한 책이다.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태백산맥> 10권. 시작할 때는 분량에 질렸지만 마칠 때는 아쉬웠다.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결국 좋은 책을 좋은 장정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자금력의 문제인 것 같다. 좋다는 의미는 여러 면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안 읽을 것 같은데도 좋은 책을 공들여 찍어낸 출판사는 그 어디라도 그 공력에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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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5-05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명희와 수전 손택이 눈에 띄네요.
블랑카님 휴일은 잘 보내셨어요?
전 그저 뒹굴거리며 잘 보내고 있어요.
저녁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나가서 자전거나 탈까싶기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blanca 2010-05-06 12:5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근데 둘째 따님은 아직 어린이 아닌가요?^^;; 저는 집앞 공원에 가서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었답니다.ㅋㅋ 멀리는 못가고 근처 대학교 캠퍼스도 가구요. 덥기만 했지 하늘은 어찌나 꾸무룩하던지. 저는 자전거를 못타서 이런 얘기 들으면 너무 부러워요. 자전거 타며 바람가르고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5-0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오레... 이거 얼마만에 들어보는 제목인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모자를 아내로~> 못 읽었는데, 블랑카님 때문에 엄청 끌린네요.
오늘 외출하면서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혼불...... 보고 싶어라~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영.... ㅠㅠ

blanca 2010-05-06 12:51   좋아요 0 | URL
모자 책 있어요? 그럼 마녀 고양이님 꼬옥 읽어보세요. 저는 가수 호란 추천으로(이러면 꼭 친구 같지만 ㅋㅋㅋ) 읽게 되었는데 완전 빠져서 이 사람 책 다 샀답니다. 혼불은 다른 책 다 치우고 나서 그것만 읽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요즘 갑자기 또 책욕심이 동해서 주문 대박입니다.--;;

비로그인 2010-05-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명희, 조정래, 수전 손택에 눈길이 갑니다.

새로 나온 [혼불] 보다는 예전 한길사 표지가 더 끌리네요. 다행입니다. 그때 차곡차곡 사둬서 말이죠..

아마 제가 처음 이자리에 흔적을 남기려고 했던 건, 이 페이퍼를 보면서였을거예요. 그게 생각나 몇 마디 덧붙여 놓고 갑니다. ^^

주말. 얼마남지 않은 봄날. 부디 좋은 시간 되시길 빌겠습니다.

blanca 2010-05-29 14:45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그런데 바람결님 같이 말씀하시는 분이 또 있더라구요. 저는 글씨가 크게 잘 나왔다고 해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신판이 나왔을 때 오호! 하며 질렀드랬죠. 예전 표지가 주는 또 묘미가 있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소장가치도 훨씬 더할 것 같네요.

하늘이 오늘은 또 꾸무럭하네요. 얼마남지 않은 봄날. 그래도 아직은 봄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바람결님도 행복하시기를.
 
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있을 법한 것에는 끌리지 않는다.
오히려 믿기지 않는것, 불가능한 것에 그것도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마음이 끌린다.
 - 페르난도 페소아 

열 여섯 살에는 모든 불가능한 것들에, 불온한 것들에 끌렸다. 스무 살에는 껍질이 달보드레한 것들에 중독되었다. 서른 살에는 물질의 권능에 사로잡혔다. 서른 중반. 나의 과거를 사로잡았던 모든 것들이 시간 속에 박제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나의 사후에도 나를 여전히 미치도록 사로잡는 것은 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책은 용모가 매력적인 이성을 알아가는 과정의 포문을 연다. 인간성까지 그럴듯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책에 대하여 썼다는 것만으로 책중독자들의 기본적인 호의는 깔고 가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 김이경은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첫 소설집임을 고백하는 실책을 범한다. 첫소설. 무엇이든 그 서투름과 설익음을 광고하는 접두어 밑에서 솟아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 그러니까 이게 겨우 처음이다, 이거지. 누구나 마음속의 이러한 속삭임을 저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이라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이니까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는 구획 안에 재빨리 구겨넣고 적당히 무시해주는 타성을 먼저 학습한다.  

그러나 이 책들에 관한 불온한 상상들을 선포한 저자의 이 첫소설집은 인간성까지 좋은 퀸카를 존재감없는 중매쟁이 덕택에 불시에 만난 듯한 환희를 선사한다. 시대와 지역을 종횡무진하며 책에 관한 역사와 숨은 얘기에 서사를 가미한 열 편의 얘기는 픽션의 형식을 띤 책에 관한 아담하고 내밀한 역사이다. 

저승에서 저마다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한다는 저승은 커다란 도서관, 패설에 빠진 조선 사람들의 얘기인 상동야화, 분서의 역사, 인피(사람의 피부) 장정에 관한 섬뜩한 이야기, 일본 에도시대의 걸어다니는 책대여점 가시혼야를 두고 벌어지는 기담, 말하는 사람을 책으로 대여하는 얘기, 장서가들, 중세유럽의 도서문화, 책도둑, 표제작인 순례자의 책 등 애서광들을 달뜨게 할 매혹적인 책에 대한 얘기가 인문학적 해설과 함께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책을 사랑하는 애인의 어깨피부로 장정한 실제 사례를 통한 책의 몸에 관한 시선과  역으로 사람의 몸 자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읽는 것에 대한 얘기는 문자가 단순히 추상적이고 접촉 불가한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숨쉬고 호흡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생명으로 확장되는 체험을 가능케 한다. 전자책의 등장과 각종 영상매체들로 인한 문자텍스트에 대한 경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또한 살아나가는 일 그 자체가 삶으로 엮이고 그 삶이 하나의 텍스트로 치환되어 장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 하나하나에 대한 존귀한 무게감을 실어주는 일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의 역사가 죽는 것이다. 누구나 등에 자신의 삶의 장서를 지고 다닌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외할아버지가 나그네들에게 "말하소!"라고 외쳐대며 그들의 얘기를 듣기를 열망했던 것은 우리에게는 본능적으로 삶을 이야기화하려는 경향과 그것에 매혹당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와 보르헤스처럼 천국을 도서관으로 상상한다면 그리고 내가 과연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 도서관의 사서를 꿈꿔본다.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힘이 오늘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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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0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다.. 이거 확 끌리네요.
당장 살펴보러 가야겠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나는 아침 식사 전에 불가능한 일 여섯가지를 상상하지.

blanca 2010-05-06 12:13   좋아요 0 | URL
마녀 고양이님 이 책 진짜 매혹적이에요. 픽션이라지만 책에 관한 역사에 작가가 상상력을 덧붙인 정도지 소설집이 아니라 책에 관한 소소한 얘기들을 풀어놓은 역사책 같답니다. 추천해요!

로드무비 2010-05-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순례자의 책> 땡스투가 들어왔던데 혹시 blanca 님이 누르신 건가요?
아주 오래 전 '책에 관한 오브제전'이라는 전시회가 있었거든요.
이상하게 그 전시회가 가끔 생각납니다.
<순례자의 책>과도 통하는 부분인데, 님의 리뷰가 꽝 도장을 찍는군요.

blanca 2010-05-06 12:53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제가 맞을 거예요^^ 책에 관한 오브제전이요? 아, 듣기만 해도 가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