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복지관에서 헬스를 시작한지 얼추 두 달이 되어간다. 헬스를 시작한 것은 체중감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저질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없을 때야 힘들면 나름대로 컨디션 조절하며 가끔 졸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면 되는데 아이가 생기니 엄마가 기본 체력은 있어야 적어도 기본적인 것 이상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긴 생머리에 귀엽게 생긴 여자 트레이너는 나에게 근력이 전무하다고 했다. 예상했던 바라 놀랍지도 않았다. 근력이 저조한 게 아니라 전무하다니.  

스트레칭 시간에 가보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 아는 동생을 만나 헬스를 한다고 애기하니 헬스 진짜 진짜 재미없지, 라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봤다. 기막히게 재미있을 턱이 없다. 다시 돌아와서 대부분 나이가 나보다 많은데 내가 제일 못한다. 삼십오 분, 고작 1킬로짜리 덤벨을 가지고 고군분투한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 나가 버리고 싶은 순간 내 앞 육십이 넘은 할머니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입술을 앙 다문다. 별것도 아닌 동작들로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 내가 매일 야구모자의 챙으로 반이나 얼굴을 가려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헬스를 시작하고 살이 찌고 있다. 얼굴은 핼쓱해져 가는데 허벅지는 더 두꺼워지는 것같다. 배가 너무 고파 꼭 야식을 먹어야 잠이 온다. 마의 열한 시 라면을 끓이거나 호빵을 찐다. 헬스 끝나고 복지관 앞 떡볶이집이 닫혀 있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수시로 문을 닫아 버리신다. 근 일주일 만에 가보니 열려 있다. 아주머니는 동년배 손님들을 붙잡고 부동산 업체들에서 오는 좋은 땅을 소개해 준다는 전화를 가지고 빈정거리신다. 그렇게 좋은 땅이 있으면 자기 가족한테 해 주지 나한테 돌아올 차례가 어디 있느냐고, 자기가 여동생이냐고, 가족이냐고,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시며 떡볶이를 조렸다 포장 용기를 꺼냈다 하는데 야구 모자 쓴 허벅지 두꺼운 여자는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마치 후렴구 같았다. 반복할 때 조금씩 조사도 억양도 달라지는데 지겨운 게 아니라 전조로 듣는 노래 같아 듣기 싫지 않았다. 적당히 잘 조려졌어, 맛있을 거예요. 아, 아주머니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 집에 와서 떡볶이를 다 마셔 버렸다. 플라스틱 용기를 분리수거함에 구겨 넣으며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탄수화물을 부르는 운동. 나는 근력을 키우고 있는 것인가, 지방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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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7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8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11-1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을 축적하고 있으며 근력을 키우고 있죠. 오늘밤 지방을 축적하고 다음날 근력을 키우며 지방을 다시 태우고 계신거에요. 블랑카님,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근력을 키우지 않고 또 지방을 태우지 않으면서 마의 열한 시에 라면을 끓여먹거나 떡볶이를 사먹는 1人이 여기 이렇게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요. 제가 응원합니다.

blanca 2011-11-18 09:1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락방님, 저 위안 받아도 되는 거었어요? 밤참도 습관인 것 같아요. 참는 게 극기 수준이에요. 이러면 안 되는데....운동 오래 한 사람들 보니 날씬하다기보다는 탄탄하더라고요. 그냥 이대로 엉뚱이로 살려고요^^;;;

cyrus 2011-11-1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 읽고나니 저도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방학 때 운동 좀 해야겠는데요.
지금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까? 아니면 개인적인 공부를 할까? 신중하게 고민을 해봐야겠습니다. ^^;;
그런데 운동을 하게 된다면 작심삼일 될거 같아요 ㅎㅎ


blanca 2011-11-18 09:13   좋아요 0 | URL
cyrus님 저도 그런 고민했었는데. 결론은 4학년 1학기 여름 방학때부터 취업준비로 그만두기로 계획을 잡았었어요. cyrus님은 기본 근력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분들은 운동을 해도 기본이 다르니 금방 금방 달라지더라고요.

마늘빵 2011-11-1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운동 안한 지 오래 됐는데, 그거 운동하고나면 식욕이 막 솟아서 이거저거 먹게 되는데 그러시면 몸이 불어나신다는... ^^ 그걸 참으면 성공인데 저도 잘 못 참죠. -_- 러닝머신 한 시간 해봐야 빠지는 칼로리는 한 끼 식사만큼도 안 되는데-한 400칼로리 빠지던가요-, 먹는 건 1000칼로리 순식간이에요. ㅠㅠ

blanca 2011-11-18 09:1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아시는군요. 벌써 1킬로 더 쩠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정말 견딜 수가 없답니다. 게다가 저는 덤벨하고 러닝 20분 뛰니 운동을 제대로 한다고도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바로 먹어주고요^^;;

감은빛 2011-11-1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여름에 결혼후 처음으로 예전 몸매에 가까운 상태까지 돌아갔었는데, 그래서 자신있게 소매없는 옷을 입고 다녔는데,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서 또 한동안 운동을 안하고 지내고 있네요. 몸은 결혼전 몸매가 아닌 작년 몸매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요? 블랑카님의 운동을 응원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천천히 조급하지않게 가시길 바랍니다!

blanca 2011-11-18 09:16   좋아요 0 | URL
소매없는 옷이요! 우아. 예, 딴건 몰라도 확실히 덜 피곤하더라고요. 체력이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니 계속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pjy 2011-11-1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요? 저도 예전에 헬스했었는데요~ 뭐랄까 몸무게가 줄어드는 효과는 미미했고, 식욕은 하늘을 찔렀고, 다만 몸의 내부구조가 변신되는 경험이었습니다ㅋㅋ 근데요~ 허무한것이 헬스를 관두면 몸이 도루아미타불이더라구요^^; 운동은 꾸준히 계속 해야되는게 관건인가봐요-_-

blanca 2011-11-18 09: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죠, 그죠! 저도 그게 넘 무서워요. 그만두면 더 찐다는 얘기가 있어서요. 몸의 내부구조가 무언가 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같아요. 점점 동작이 덜 힘들어지고 오후에 피로도가 덜한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양철나무꾼 2011-11-1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OO휘트니스 클럽 연간 회원권을 가지고도 안 다닌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고요~
지난 겨울엔 동네 헬스클럽 3개월 등록하고 첫날 딱 하루 갔었습니다, 끙~--;

근데 떡볶이 국물 조려주는 그 동네 어디예요?@@
넘 먹고싶다는~ㅠ.ㅠ

blanca 2011-11-18 09:19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안 그래도 다들 3개월 그것 한꺼번에 끊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첫날 하루는^^;; 여기는 동대문구랍니다. 완전 맛나요. 학교 앞이라 좀더 나가면 온갖 체인 떡볶이집들이 있지요. 그래도 여기 동네 아줌마 떡볶이가 더 맛있어요. 참고 또 참아 1주일에 한번씩만 먹으려고 한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1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는 데는 흔히들 고기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탄수화물도 힘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그래서 보디빌더들도 시합을 위한 훈련이 아닐 때는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죠.당연히 이때는 지방비율이 높아집니다.그러다 시합이 가까워 올수록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죠.

웨이트 트레이닝 교본에 훈련법과 함께 영양학에 대한 지식도 있습니다.하나 하나 공부해 나가면 좋죠.


blanca 2011-11-18 09:1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저는 탄수화물 섭취가 건강에 안 좋다고 자꾸 그런 식으로만 생각이 되었어요. 안 그래도 웨이트 트레이닝 교본을 좀 봐야 되나, 그런 생각하고 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11-1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스클럽 끊고 안 다니고, 집안에도 온갖 운동 기구 갖춰놓고도 안 하고, 이번에 운동 DVD도 구매했는데
아직 뜯지도 않았답니다............ 흐흐.

마의 11시,, 그러게요, 딱 그 시간이 문제예요, 문제~

blanca 2011-11-18 09: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마고님, DVD는 어떤 건가요? 너무 궁금하네요. 저도 집에 실내사이클(옷걸이로)이랑 덤벨 세 종류 있어요. 이번엔 기필코 결단코 운동 오래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순오기 2011-11-18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쩔거야, 마의 11시!ㅋㅋ
나도 근력운동이 필요한데, 귀찮고 게을러서 운동을 못해요.
그렇지만 퇴근길 40분 걷는 게 체력향상에 많이 도움됐어요.
내 나이쯤에는 무리한 운동보다 걷기가 제일 좋다고 하는데, 체중을 줄이는 건 역시 먹는 걸 줄여야 하나봐요.
2~3킬로 빠진 후 한주일을 식생활에 따라 500그램이 올랐나 내렸다~~ 더 이상 안 줄어요.ㅜㅜ

blanca 2011-11-18 09:2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40분 걸으신다니 그럼 몇 킬로나 되는 건가요? 제가 저번에 1킬로 내외 거리를 걸었는데도 꽤 피곤하더라고요. 운동 제대로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운동만으로는 체중감량은 힘든 것 같아요. 2~3킬로라도 정말 많이 빼신것 같은데요. 저는 운동 시작하고 1킬로씩 체중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섬사이 2011-11-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아요. (어느 책이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요...)
유산소운동은 식욕을 억제시키는 반면 무산소운동은 피로감이 높고 식욕을 증가시킨다고 했어요.
유산소운동을 같이 하시면 어떨까요..
전 오늘로 헬스다닌지 딱 3개월 됐는데, 다른 건 몰라도 체력은 좋아졌어요.
(체중도 줄었어요.. ^^)

blanca 2011-11-20 11:36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제가 유산소운동을 너무 소흘히 했나 봐요. 어떨 때는 15분 사이클 타고나서 유산소 운동 했다고 자위하고 -..- 그러거든요. 조언 감사합니다. 체력은 정말 좋아지는 것 같아요!

2011-11-29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9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9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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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와 마음, 머리 전체를 채울 때가 있다. 그것은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냥 조용히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소리에 잠긴다. 

사랑도 그렇게 시작될 때가 있다. 전화선 너머 미성은 정작 만났을 때 복실복실한 외모와 어긋났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족했다. 눈은 보라고, 귀는 들으라고, 코는 냄새 맡으라고 주어졌으니 그것에 충실한 것을 근시안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너무 이뻐서, 몸에서 나는 향내가 좋아서, 목소리가 근사해서 사랑에 빠지는 일이 그러하다. 

김훈이 <칼의 노래>로 나타났을 때 문단은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는 곰이 동굴에서 100일을 마늘로 버텼듯이 철저하게 벼리고 또 벼린 쌉쌀한 맛이 났다.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이야기는 하나의 완강한 사실이 되어 눈 앞에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사실을 보고하고 고발하는 지점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문체가 서사를 앞지른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한계점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했다. 유독 그의 문체가 빛을 발한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신유사옥으로 흑산도에16년간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생을 마친 정약전의 얘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정약용의 형인 약전의 얘기는 중심 가지를 이룬다. 하지만 그 곁가지들에 김훈의 시선은 가 있다. 시대 너머, 이 생 너머를 기약하는 지점에 천주학을 걸어 놓고 부단히 이 생에서 투쟁하다 때로 꺾이고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얘기.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자문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하다.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들 앞에서 매혹당해서는 왜 안 되는지를 미처 묻기도 전해 숱한 이들이 그 질문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이 산화한 지점에서 우리는 타락한 것들에 후달리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가장 쉬운듯하면서 용단이 필요한 일이다. 

김훈은 언제나처럼 버석거린다. 때로 그의 목소리가 너무 도드라져서 그것이 싸안을 이야기들이 울툭불툭 비어져 나온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그답다,고 수긍하기도 한다. 숱한 목숨이 내던져진 절두산 아래 닿아 있는 자유로를 달려 귀가하며 그는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고 한다. 언어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너머로 부단히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보된 이야기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의 고백은 뭉클하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조금씩 밖에 더 나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실재라고 믿는 것을 향해 생을 내어던질 수 있는 그들의 얘기 앞에서 감히 말을 잃고 만다. 너무나 큰 얘기. 언제 누가 들어도 가슴 저릿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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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1-11-1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의 글발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모두가 다산에 주목할 때, '자산'에 눈을 돌린
그의 탁월한 선택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blanca 2011-11-15 23:20   좋아요 0 | URL
hermes91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정약용이 아닌 그의 형을 소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한 것 부터가 김훈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11-11-1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별은 세 개군요. 별로였나요? 기대했는데...
하긴, 작년에 나왔던 소설 거 뭐죠...? 숲 어쩌고 하는 소설
그거 참 별로 였어요. 예전의 작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분도 늙는 것일까요? 헉~

blanca 2011-11-15 23:23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자기 제목이 생각 안 나서 찾아 봤어요. <내 젊은 날의 숲>. 사실 김훈 작품을 다 찾아 읽을 만큼 좋아하는데 그 작품 이후로 문체는 여전히 훌륭하지만 서사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칼의 노래>가 너무 눈부셔서 그 이후의 작품들이 그 후광에 가려지는 것도 같고요. 단편 <언니의 폐경>이랑 <화장> 같은 작품은 참 좋았는데...저도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마녀고양이 2011-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 책 읽으셨군요?
그동안 잘 계셨죠?

blanca 2011-11-15 23:2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안 계신 동안 저는 시간만 죽이고 있었습니다.--;; 아, 갑자기 올해를 떠나보낸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허무한지요....

순오기 2011-11-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젊은날의 숲> 올초에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도 읽었으니 두 작가가 그린 정약전을 비교할 겸 <흑산>을 읽을까 했더니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어요. <흑산>은 정약전보다 주변인들을 더 조명한 듯, 김훈은 점점 호불호가 명확히 나뉘고 장편보다 단편이 더 빛나는 것 같아요.

blanca 2011-11-16 09:1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은 어땠나요? 궁금합니다. 아, 맞아요. 저도 정약전 시점에서 그려진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웅, 저도 순오기님 어머니독서회 들어가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1-11-16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음에 들어요..잘 읽었습니다. 꾸벅.

blanca 2011-11-16 09:10   좋아요 0 | URL
음, 이 아침 기분좋게 하시는 댓글이네요.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yamoo 2011-11-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께서도 읽으셨군요. 이 책을 사야할지 말아야할지...좀 두고 보다가 반값세일 하면 그때 냉큼 사야 겠어요..ㅎㅎ

김훈의 역사소설은 좀 별루 인거 같다는 인상이 짙습니다만..어쨋든, 요즘 젊은 작가보다는 훨씬 고퀄리티의 글을 쓰시는 양반이니 구해서 읽어는 봐야 겠습니다. 아, 근데, 아직 <공무도하>도 안봤군요!

blanca 2011-11-16 22:59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도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책들이 한 다스랍니다. 연말이 되니 더욱더 그렇게 되는군요. 이제는 가진 책들을 하나 하나 제대로 읽고 좀 떨어내고 하려고 하지만 이미 오늘 또 주문하고 말았답니다.--;;
 

다섯 살 때였는지 여섯 살 때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동네 아주머니가 과실주를 담가 왔다. 우리 집에서는 시음회가 벌어졌고, 나도 아마 한 모금 졸랐던 것 같다. 예상 외로 너무 달콤해서 홀짝 홀짝 계속 먹었나 보다. 먹었던 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고 영화의 장면 전환처럼 갑자기 엄마 등에 업혀 울고 불고 하며 술기운에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의 그 출렁이던 멀미의 포격 같은 기분은 아직도 삼삼하다. 술에 참 일찍이도 취했다. 

그래서 <빨강머리 앤>에서 철저하게 감정이입이 된 대목은 앤이 라즈베리 시럽으로 착각하고 건네 준 포도주를 연거푸 마시고 술에 취한 다이애너에게 앤이 절교당하는 부분이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간 다이애너는 곤드레만드레 취한 모습으로 엄마 배리 부인을 경악시킨다. 이 대목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 등에 업혀 울며 주정을 했던 꼬마도 같이 생각나 기분이 묘해진다. 그 꼬마는 하여튼 커서도 술과 관련된 많은 해프닝의 주인공이 된다.-..-  

 

  

사실 그린 게이블즈의 그 주근깨투성이의 빨강머리 소녀의 얘기는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ANNE>에서는 초반에 불과하다. 무뚝뚝한 중년의 남매에게 뚝 떨어진 고아원에서 온 소녀의 얘기가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자 작가에게는 속편에 대한 부담과 압력이 가해진다. 이 덕택에 앤은 성장해서 유년기의 첫사랑 길버트와 결혼하여 대가족을 이루고 아들들을 전장에 내보내며 늙어간다. 앤의 시점에서 이야기는 점차 확대되어 앤의 보금자리를 둘러싼 이웃들의 삶까지 닿는다. 이 작품은 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앤이 성장한 애번리 마을사람들의 연대기에 가깝다. 유년시절의 꿈, 청춘의 무모함과 순수, 열정, 중년기를 거쳐 노년기의 쇠잔, 소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밀착된 시선과 섬세한 묘사는 삶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아우른다. 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의 유년, 청춘, 지금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망에 얽힌 가족들, 타인들의 시점까지 함께 자꾸 돌아보게 한다. 지나치게 낭만화된 결말들, 조금씩 서투른 반전들의 아쉬움까지도 다 덮어줄 정도로 이 작품이 매력을 가지는 이유는 사람과 삶을 결국은 믿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본능적 치우침을 작가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장'에 대한 얘기는 필연적으로 끌리고 만다. 뒤돌아봐도 만질 수 없는 것들. 그 애달픈 서투름. 시간을 돌려도 항상 과거의 실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그 몫을 고스란히 지키려 든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우유부단하고 어리버리한 청춘의 모습은 의외로 촌스럽지 않다. 육십 년대의 청춘이든, 구십 년대의 청춘이든, 21세기의 그것이든 청춘은 본질적으로 어리석음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청춘이든 그것은 시행착오, 실수와 더불어 채색되고 어느 정도 그것이 줄어들 때쯤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한다. <졸업>에서 그가 유난히도 망설이고 자신없어 하는 모습은 관객을 웃기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울리려는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성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확실한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술에 취해 본 것은 스물 다섯 언저리였다. 낙지 안주가 너무 잘 받아서 주량인 소주 세 잔의 두 배를 마시고도 거뜬하다고 생각하며 음식점을 나오자 갑자기 하늘과 땅이 붙어 버리는 경험을 했다. 놀림도 받고 위로도 받았던 그 사건의 최후는 엄마 등에 업혀 울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과 같다. 졸업해 버린 것들. 언제나 부끄럽고 가끔은 절절하게 그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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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1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무렵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집에서 담갔다는 포도주를 억지로 먹이고는 혼자 집에 보내는 바람에 술 기운에 비틀비틀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어요. 이틀쯤 앓아누웠었죠 아마. 이 페이퍼를 읽으니 그 기억이 떠오르네요^^

blanca 2011-11-13 22:06   좋아요 0 | URL
후와님은 정말 다이애너와 흡사한 경험을 하셨군요. 그런데 지금 포도주 마셔보면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을 정도는 아닌데 어렸을 때 어찌 그리 달콤하게 느꼈었는지 참 불가사의해요. 후와님도 아시는군요^^

poptrash 2011-11-13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술, 많이 마셨어요. 집에서 담근 포도주, 아버지 친구들이 마시던 맥주.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에... 그래서 결국 이런 어른이 되었는지도...

blanca 2011-11-13 22: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런 어른^^;; 저는 제가 상태가 안 좋은 게 혹시 그 때 술에 너무 취해 뇌에 약간이 손상이 가서가 아닌가 가끔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1-11-1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최근에서야 포도주를 처음 마셔본 적이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포도주가 달달한 포도주스인줄 알았는데,,
마셔보니 아니더군요 ^^;; 포도주는 포도주스가 아니라 포도 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ㅎㅎ

책으로 된 앤의 이야기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블랑카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TV에서 해주던 만화에서 술 취한 앤이 나오는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나네요.
혹시 <토지>에 이어서 <앤> 시리즈를 읽고 계신가요? ^^



blanca 2011-11-13 22:08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포도주와 너무 늦게 만나셨군요. 그죠, 생각보다 맛없죠! <앤>은 다 읽었답니다. 이제 되도록 시리즈물은 안 읽으려고요. 부담감이 커서요. 중간에 읽다 그만둘 수도 없고. 그러면서 또 <임꺽정> 재미있다는 얘기에 자꾸 마음이 동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주 전에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에 나왔는데, 서양에서도 <빨간머리 앤>은 여자들이 읽는 소설이라고 알려졌더군요.백인남자관광객이 "남자들은 아무래도 잘 안 읽는 작품이죠.제 아내는 감명 깊게 읽었대요." 하더군요.나는 재밌던데...

blanca 2011-11-13 22:10   좋아요 0 | URL
어, 정말요? 정말 아름다운 섬이라면서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고요. 여자들이 읽는 소설 ㅋㅋㅋ 노자님 재미있게 읽으셨어요? 내용이 남자들이 재미있게 읽기는 힘든 요소들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노자님은 안 읽은 책이 없군요. 정말 박학다식하십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14 16:18   좋아요 0 | URL
그쪽은 애틀랜틱 캐나다라고 해서 대서양 쪽의 동부 캐나다입니다.전에도 무슨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바다경치도 좋고 산도 아름다워요.특히 캐번디시는 몽고메리 고향이면서 '빨간머리 앤'을 집필한 곳이라 관련시설이 잘 되어 있더군요.'걸어서 세계속으로' 다시 보기 하면 나올 거에요.

20여년 전에 나온 완역본 10권 짜리를 읽었는데 시간 꽤나 잡아먹었죠.

2011-11-1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11-1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 얼마전에 선물받은 포도주를 따서 홀짝 홀짝 마시다가 그만 다 마셔버렸는데, 아..어릴 때 포도주 담아둔것을 마셨던 생각이 나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11-11-13 22:13   좋아요 0 | URL
탁님 반갑습니다.^^ 저는 포도주를 한 잔 이상 마시면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어렸을 때 다들 과실주에 취한 경험들이 있군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니 괜히 반갑네요.
 
슬로우 데스 - 일상 속 내 아이를 서서히 죽이는 오리인형의 진실
릭 스미스.브루스 루리에 지음, 임지원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샤워솜에 바디샴푸를 듬뿍 바른다. 부걱부걱 거품이 피어오른다. 젖은 머리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샴푸를 발라 헹군다. 그 머리에 다시 헤어컨디셔너를 바른다. 헹구고 다시 헤어 트리트먼트를 바른다. 나온다. 다시 바디로션을 바른다. 갈라진 발뒤꿈치에는 발전용 각질크림을 바른다. 

화장대 앞에 앉는다. 스킨, 로션만 얼굴에 바르면서 너무 피부에 소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어 굴러다니는 에센스 샘플병을 찾아 바른다. 머리를 말리기 전에 끝이 다 갈라진 머리칼에 헤어에센스를 뿌린다. 음이온이 나온다고 선전하는(믿을 수는 없지만) 헤어드라이기로 머리칼 틈새 틈새 손을 넣어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다. 

이 일련의 과정.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내 몸을 소흘히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주기는 한다.
그. 러. 나. 

   
 

 나는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원의 수전 듀티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실험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듀티는 2005년,400명의 남성 소변의 프탈레이트 농도와 그들이 사용하는 목욕용품의 종류 간의 상관관계를 살펴본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매우 명확하고 놀라운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더 많은 제품을 사용하면 할수록 소변 중의 MEP 농도가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P.80

 
   

 

디에틸프탈레이트(DEP)는 제품에 들어 있는 다른 성분들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한다. 로션이 피부에 잘 스며들게하고 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해준다. 우리들의 집 안의 목욕용품, 각종 세제 들에 들어있다. 목욕이나 각종 접촉을 통해 우리 몸에 침투해 들어와 호르몬을 교란시킨다. 특히 아이들의 발달 장애 및 신경학적 문제와 성인 남성 기능의 생식 기능 저하, 고환암 등과 관련되어 있는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나는 몸에서 오염물질을 씻어 내기 위하여 더 많은 화학 물질들에 내 몸을 축이고 더불어 우리가 마실 물을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목욕을 했으니 먹을 차례다. 가스 레인지 위에는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진 난스틱 후라이팬, 일명 테팔이 올려져 있다. 코팅 후라이팬을 사용하면 웬만한 요리는 초보라도 가능하다. 들러붙지 않고 뒤집개로 뒤집는 일도 간단하다. 수명은 짧다. 그 벗겨진 코팅제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스텐 후라이팬은 워낙 고가이고 관리도 어렵다는 얘기에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이 책 이후로 저렴한 스텐 후라이팬을 주문했다) 부엌 조리기구 찬장에는 이렇게 코팅이 벗겨졌지만 버리기 아까워 둔 후라이팬이 두 개나 더 있다. 이 후라이팬은 주로 튀김을 하거나 생선을 굽는 데에 사용해 왔다. 참치 통조림에서 참치를 꺼내어 전을 부친다. 아이는 가방에서 영수증을 꺼내어 그 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냥 일상이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소하고도 자잘한 일상들에서 나는 테플론과 수은을 먹고 먹이고 비스페놀A로 오염되고 있는 아이를 방치하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정작 그런 화학 물질을 방출하지도 환경을 오염시킬 의도도 없었던 무고한 남반구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들. 그리고 관성. 뭘 그 정도를 가지고. 이건 쉬운 일이다. 좀더 편하기를 바라고 좀더 무감각해지기를 원한다면 인생은 쉽지만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정말 내 몸을, 내 아이의 몸을 대우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톤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나의 심장이 내 몸 밖으로 나가 바깥세상을 걸어 다니게 될 것을 영원히 결정하는일"이라고 했다.(p.326) 나의 심장만이 아니다. 무고한 수많은 어린 심장들에는 수많은 독성물질들이 쌓여가고 있다. 어떤 물질이 그 이하에서는 안전하다,는 논리로 대중들을 안심시키려는 기업들, 정부 기관. 저자는 '수용 불가능한 안전성'을 평가하지 않고 '수용 가능한 유해성'을 내세우는 그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들 우윳병에서 용출되는 비스페놀A에 대적하기 위하여 아이 엄마들과 주의회로 향한다. 단단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비스페놀A에 노출되었던 생쥐에게서 태어난 암컷 생쥐의 난자는 40%나 손상되어 있었다. 단 한번의 노출이었다. 주지사 앞에서 아이들은 난장판을 만들었다. 엄마들은 젖을 먹이고 아이들을 달랬다. 캐나다는 세계 최초로 비스페놀A 노출을 제한하는 국가가 되었다. 레이첼 카슨의 본능적 직관을 칭찬했던 저자는 그 직관 앞에서 용감하게 행동한다. 뭉클했다. 

이 책의 미덕은 진정성에 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실제로 수은, 프탈레이트, 비스페놀류 등을 축적시키는 단기 생체 실험을 자행한다. 단 며칠의 조금 과장된 생활용품들에의 노출로 우리 몸 속의 독성물질은 어마어마하게 치솟는다.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사용하며 우리 몸에서 좋은 향기를 내뿜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타인들에게도 얼마간은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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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11-1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바디샴푸가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 때문에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군인 시절 때 샤워하면서 처음 사용하고 난 뒤에 지금까지도 계속 사워할 때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어요. ^^;;
예전에는 비눗칠만으로 샤워를 했었는데 요즘에는 향기 나는 고급스런 이미지를 가진 바디샴푸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비눗칠로 하는 샤워는 깨끗하지 씻겨지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를 가진 사람들도 보곤 했어요.
바디샴푸를 쓴다고 해서 완전히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

blanca 2011-11-10 22:21   좋아요 0 | URL
비누로 하는 게 사실 거품도 잘 안 나고 번거로운 면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다 피부로 흡수되어 호르몬을 교란시킨다고 하니 참 난감하네요. 예전에 티비에서 샴푸 안 쓰고 머리 감는 사람도 나오긴 하더라고요. 몇 년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가 샴푸를 최소량으로 해서 한 번 감아봤는데 머리까 가렵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부터 목욕할 때 물만 끼얹고 비누도 안 쓸 때가 많아요.그래도 제 몸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난답니다.미남의 향기....

blanca 2011-11-10 22:22   좋아요 0 | URL
노자님, 인증샷 기다릴게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11-11 16:08   좋아요 0 | URL
에그머니...무슨 장면을 찍으라는 말씀이신지...19금 발언을 어찌 그리 태연하게 하시나요? 당혹 당혹~

blanca 2011-11-11 21:25   좋아요 0 | URL
노자님도 참, 제가 노자님이 하도 스스로 미남이라고 하셔서 정말 미남인지 얼굴 인증하라는 얘기였는데 19금이라니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2 16:07   좋아요 0 | URL
음...그냥 상상으로 그려보세요.이기광이 조금 더 나이 들면 저같이 될 거에요.이젠 그림이 그려지시죠?

아이리시스 2011-11-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오리인형 다리가.. 다리가.. 저렇게 예쁜 오리의 다리가..ㅜㅜ
이거 보니까 끝까지 산재가 아니라 우겨왔고, 우기고 있는 삼성이 생각나요. 난자가 손상된 생쥐처럼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도 바디샴푸를 안쓸 수는 없고, 대안은 안나와요, 블랑카님? 이 책, 궁금해요. 나부터 생각해야지 아이는 무슨.. 이라고 적고, 아.. 내 아이..ㅜㅜ

blanca 2011-11-10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삼성에서 이쁜 아이 두고 백혈병으로 죽어간 아버지 기사 생각나더라고요. 수많은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가슴이 답답해 오더라고요. 독성물질로 인구가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했어요. 일단 우리가 쓰는 모든 것들이 식수로 돌아오니 최대한 안 쓰거나 줄여 써야 겠는데 극소량도 전반기에 걸쳐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킨다네요. 여기에도 나오긴 하는데 소극적으로는 일단 안 쓰고 줄여 쓰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정부와 기업들에 어필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는 않지요. 저도 저 표지의 다리 한참 있다 알았어요.--;;

비로그인 2011-12-1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블랑카님 :)

리뷰 제목이 뭔가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읽었네요 ㅎㅎ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오르는 책이에요. [침묵의 봄] 읽을 때 처음에는 오호, 그렇군. 이랬다가 점점 지루해지면서... 결국 살충제는 나쁘다! 그리고 BBT는 해롭다! 두 문장으로 정리했던 기억이... 대체 방안을 찾는게 정말 중요한데, 생활 용품은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로션/스킨도 안 바르고 머리 감을 때 린스 안 하는 걸로 나름 실천한다고 생각하지만... 꾸준히 유해한 성분을 쓰고 있을 거에요. 크- 난센스에요 난센스.

그러면 이 책에는 구체적인 대안 같은 것도 들어있는 건가요?

blanca 2011-12-12 22:03   좋아요 0 | URL
말없는 수다쟁이님, 저도 환경운동하는 사람들한테 고전이 되어버린 레이첼 카슨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빌려보려고 잠시 들춰보고 말았어요. 요새는 조금 지루해 보인다 싶으면 선뜻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아, 대안이요! 물론 구체적이거나 실질적인 것은 많이 없지만 그냥 저 개인적으로 좀 달라지긴 했어요. 프라이팬도 코팅은 안 쓰고 되도록 세제, 화장품은 멀리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들은 되도록 사지도 먹지도 않으려고 하고요. 참, 환경운동하시는 분들 중에 샴푸 없이 머리 감고 화장 아예 안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샴푸 없이 머리 감는 것 그건 저도 아직--;; 그런데 신기한 게 하다 보면 머리가 적응을 한다고는 하더라고요.

비로그인 2012-01-0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홀함과 치밀함의 접점이 오락가락입니다. 한동안은 모든 화학약품을 끊어내 버리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하였건만 지금은 화학약품으로 온몸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상한다는 말에 나의 이번 여름이 오싹해지고(맨얼굴로 땡볕 아래를 한두시간 걷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으니)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허전하여 계속계속 뿌리고, 지금은 손에는 핸드크림 입술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앉았습니다. 결국 모든 물질은 피부를 통해 흡수되거나 쌓일 것인데 흡수되지 않도록 차단하면 다른 식의 변이가 일어나게 되어요. 결국은, 결국은, 결국은, 이것은 시거를 피우며 구강암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벼운 레종이나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며 폐를 한바퀴 연기로 돌려 폐암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댓글을 쓰다 보니 왼쪽에 제 닉네임이, `미천한 사람 주드'로 눈에 확 들어오지 뭡니까(알아요, 토마스 하디!). 결론은,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블랑카님!

blanca 2012-01-08 10:23   좋아요 0 | URL
쥬드님, 그럼요. 제가 한동안 암것도 안하고 얼굴을 내버려 두니까 각질이 말도 못하더라고요. 저는 향수를 안뿌리지만 저는 향수를 뿌린 사람의 반경 안에 들어가 그 냄새를 맡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지만 항상 딜레마를 느낀답니다. 섬유유연제 안 쓰려고 구연산을 쓰다 섬유 유연제만 못한 그 느낌에 실망하기도 하고.

저는 미천한 사람 쥬드를 아직도 읽지 못했어요. 읽을까요, 쥬드님? 자꾸 망설이네요....

비로그인 2012-01-10 12:27   좋아요 0 | URL
오락가락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생각하며이젠 이쯤 된 거 뭘 어쩌겠어, 하며, 그나마 머릿결을 좀 더 보호해 준다는 샴푸에 한 달가량을 의탁하기로 했어요.

몸은 썩을테지만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어요. 입맛은 가버릴텐지만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것 아닐까요.

미천한 사람 주드, 어찌 읽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디의 남녀들이 그러하듯 나락으로 늪지로 사면초가의 어둠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것을 읽어버리면다시 돌아올 길을 찾기가 좀 힘들어 지실지도 모르겠어요. 이상한 추천이지요? 제 추천이 좀 이렇습니다. 간단히 '일독을 권합니다' 라고 말하지를 않지요.
 

나는 노빠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데에는 그 어떤 논리적인 근거도 없다. 그의 하회탈 같은 미소,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 금방이라도 손을 내밀 것 같은 수더분한 느낌. 그것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었다. 그의 가치관, 정치행보에 대하여 솔직히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언론이 그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진보진영에서도 그를 변호해 주지 않았다. 퇴임즈음, 퇴임 이후, 그는 형편없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혔다.  

그의 죽음까지. 그에 대한 사랑 그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좀먹었다. 이유는 내가 무식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그의 죽음은 꿈결처럼 들려왔다. 울면서 그를 다시 알아갔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내어 놓았던 각종 정책들, 마지막까지 꿈꾸었던 비전들.  

그는 우리를 꿈꾸게 했지만 그의 죽음과 이후 벌어진 상황들은 희망을 앗아갔다. 과연 정치라는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 그 시도 자체가 무익하고 무용한 것이고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결국 인간은 자기 앞의 밥그릇 앞에서 대의를 걷어차도록 내몰리지 않는가?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고 자위하며 어제는 투표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었다. 기대가 유린당하는 과정은 학습된 무력감을 불러왔다. 그래, 안 할래.  

그 순간 문자가 왔다. 한창 아프고 힘들었을 때 그 아이는 나에게 밥을 먹게 해 주었던 아이다.
언니, 나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  

그 문자는 졸던 나를 내리치는 죽비 같았다. 일부러 아이를 데리고 투표장에 갔다. 정치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대단하고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칸막이가 된 내밀한 공간에서 내가 오해로든, 이해로든 지지하는 사람에게 꾸욱 도장을 내리누를 수 있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던가,를 잊었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투표장은 근처 중학교였다. 운동장에서 사내애들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몰려 다니고 있고 하늘은 더없이 새파랗게 몸을 떨고 있었다. 작은 도서실은 주민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큰 기대 없이 그 도서관에 들어갔다.  

아, 그 도서관은 숲 속에 숨어있다 느닷없이 튀어 나온 작은 과자집 같았다. 중년의 명랑한 사서는 아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자신이 만든 지도를 따라 그 집을 안내했다. 아담하고 정겨운 분위기. 왜 진작 몰랐을까 안타까웠다. 아이 책을 대출하려 서니 사서는 아이를 곁으로 부른다. 몸소 책의 바코드를 스캔하는 영광을 아이에게 하사한다. 핑크빛 회원증을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당신이 너무 부러워요. 라고 외치고 싶었다.  

어렸을 때 나는 책이 너무 고팠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항상 의심했다. 돈을 의식했던 것도 아마 책과 관련된 결핍 때문이었던 것같다. 복지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욕구들에 바로 결핍과 돈이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 그 여백에는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 그렇다면 정치는 유효하다. 무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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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메아리 칩니다. 너무 자주 기권,했던 접니다. 후회합니다.
이번엔 서울 시민 아니어서 기권,할 기회조차 없었지만요.^^;;

'중년의 명랑한 사서'를 만날 수 있어서 저도 싱긋- 웃어봅니다.
오늘 날씨 정말 화창합니다.^___^

blanca 2011-10-27 23:04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그 사서분이 눈에 밟혀요. 날잡아 또 가보려 합니다. 아이 책도 읽어 주셨는데 정말 저와 다른 시각에서 질문들을 던지면서 읽어 주시더라고요. 공부를 정말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날씨 너무 아까워서 밖에 계속 있고 싶었어요...가는 가을의 날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saint236 2011-10-2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권도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장 비겁하고 가장 대가가 비싼 선택이지요.

blanca 2011-10-27 23:05   좋아요 0 | URL
그런 선택을 하려고 하던 찰나에 문자 하나가 저를 투표장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다행이지요.

마녀고양이 2011-10-2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투표하셨어요,
어제 하루 흥미진진했죠... 머, 나름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아우, 책과 관련된 결핍, 어제 주문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언제 다 읽을까요? 미쳐.

blanca 2011-10-27 23:0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도 지금 책이 잔뜩 밀려 있어요. 보기만 해도 한숨이. 일단 앤을 다 읽어야 하는데 스티브 잡스 전기도 넘 보고 싶은데 천 페이지라면서요? 임꺽정도 보고 싶고. 무슨 숙제처럼 일단 있는 것 다 떨고 욕심 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1-10-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도 소중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저 자신에게 바라야겠어요.
내리치는 죽비에 번쩍 정신이 든 블랑카님, 책에 대한 허기는 늘 채워지지가 않죠? ^^;;

오늘은 신간 평가단에서 두 권의 책이 날아왔는데 아주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이 드네요.
이것도 금세 허기로 변하겠지만요 ㅎㅎ

blanca 2011-10-29 22:3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아마 죽을 때까정 '나는 아직 배고프다' 이러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이 읽을 책이 주르륵 놓여 있으면 행복한 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참, 알 수 없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님이 퇴임하고 나서 현 정부 집권 초기엔 인기가 많았죠.그때 방송에서 김해 고향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즉석연설하는 노무현 님을 방영해주고...대단한 인기였죠.그러다 1년이 안 되어 저세상으로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특히 2009년 3월부터 박연차 사건으로 모든 언론에서 물어뜯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이 그 어떤 언론사도 다 싫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blanca 2011-10-30 22:23   좋아요 0 | URL
언론이 양날의 칼인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인데 이제는 언론에서 얘기하는 반대로 자꾸 받아들이면 되겠구나, 하는 체념이 생겨 서글픕니다.

sjoome 2011-11-2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나 언니 일기의 조연된거야?
우하하~~ 기뻐기뻐~~ 정말 기뻐!~
자꾸 언니랑 얘기하면 언니 일기의 주연도 시켜줄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