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너무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여든이 다 된 할아버지가 열여덟 소녀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과 남자, 사랑.

 

 

 

진부하지 않았고 통속적이지 않았고 대신 달콤하고 선뜩했다.  친정 엄마와 혼수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에피 브리스트의 성정, 그리고 운명까지도 암시해 버리는 그 예리하고 섬세한 문체에 일단 놀랐고

 

그녀는 가장 우아한 것만 마음에 들어했으며, 가장 좋은 것을 가질 수 없으면 둘째로 좋은 것은 아예 사려고도 하지 않았다. 둘째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피 브리스트> p.31

 

그녀의 안온하고 때로는 지루한 결혼생활에 뛰어들어온 남자는 의외로 근사하지 않았고 바람둥이였고 둘은 하이네의 시를 가지고 유희를 한다. 바닷속에 가라 앉은 전설의 도시의 환영을 보다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려 했던 시인, 다가오는 적군에게서 자신을 보호해 주기를 하느님에게 간청한 과부가 하느님의 담으로 받은 하얀 눈. 이 시들은 이들의 사랑의 가벼움을 덧없음을 은유하고 예언하는 것 같다. 에피는 물론 파멸한다. 사랑으로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들조차 용인받지 못하는 강고한 사회적 시선 앞에서. 이 소설은 사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제도의 허위를, 욕망을 얘기하고 싶어했던 노작가의 소망이자 희망이다. 로맨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썰매 안에서 시작되는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남편이 에피의 배신을 알아차리고 결투를 하는 것도 에피에 대한 사랑에서가 아니다. 자신을 지켜보는 다수의 시선들, 그 시선들을 엮어내는 규칙, 관습들. 그 안에서 과연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에피 브리스트>는 플로베르의 <보봐리 부인>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회자된다. 상류층 여성의 외도, 그리고 파멸. 이런 지극히 통속적이고 교조적이고 싶어하는 스토리를 공유하지만 이 셋은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작가들은 나란히 세 여인의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욕망을 들여다 보지만 그녀들을 단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던 애초에 교환 조건으로 성립된 계약인 결혼 제도의 허위와 그 틈새에서 비어져 나오고 마는 본래의 욕망, 그 욕망이 어그러진 형태로 표출될 때 인간이 맞닥뜨리는 비극에 다가간다.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안나와 음독 자살을 하는 보봐리 부인과 병에 걸려 죽는 에피는 실패한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벌써 보듬어 주어야 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뒤늦게 추억하고 그것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착각하고 대체물을 향해 욕망을 투사하고 남는 것은 자멸감이다.

 

에피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다수의 시선, 다수가 추구하는 가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우리가 자유의지로 결정하는 일들도 사회에서 주입당한 가치 기준하에서 비롯되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것이 아니었다,고 깨닫는 것. 거기에는 항상 일말의 슬픔과 비극과 고통이 따른다. 거기에서 정지하고 마는 것이 이 여인들의 이야기의 한계이기도 하고 다분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극복하지도 체념하지도 않고 눈감아 버리는 것. 세 작품은 약속이나 한 듯 결말도 닮아 있다. 읽는 즐거움은 <에피 브리스트>가 제일 크고 감동은 <안나 카레니나>가 제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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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1-2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도 처음 들어본 책이에요. 저 역시도 읽게 된다면 [안나 카레니나]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12-01-26 22:08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예상 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 가며 읽었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임팩트는 정말.... 말 줄임표 이상으로 표현할 도리가 없네요. 약간의 인내 뒤에 무한 감동이 있는 소설인 것 같아요. <에피 브리스트>가 아주 무게감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노년의 남자 작가가 이렇게 섬세하고 예리하게 여성의 심리를 흥미롭게 파헤친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stella.K 2012-01-26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랑카님 쓰신, "여든이 다 된 할아버지가 열여덟 소녀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과 남자, 사랑."
확 끌리네요. 어떻게 썼을까 궁금한데요?^^


blanca 2012-01-26 22:09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다 읽고 나서 알았어요. 이 작가가 육십이 되어 소설을 처음 쓰고 이 작품은 여든 가까이에 완성했다는 사실을요. 전혀 그렇게 안 느껴졌거든요.

stella.K 2012-01-27 12:17   좋아요 0 | URL
와우, 정말요?
이건 저에겐 완전 복음이군요. 굿뉴스!
내 나이도 늦진 않은 거네요.ㅋㅋ

moonnight 2012-01-2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귀가 솔깃! 올해는 제발 책 좀 작작 사고 있는 책부터 읽자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그럴 수는 없겠네요. (체념;)

blanca 2012-01-26 22:11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참기 위해 허벅지를 찌르고 있답니다. ㅋㅋ 돈과 시간, 수용공간, 시력만 허락한다면 책의 바다에서 헤엄치고파요^^;;;

비로그인 2012-01-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볼래요. 보관함에 담았어요 :)

blanca 2012-01-26 22:11   좋아요 0 | URL
옙, 수다쟁이님도 재미있게 읽으실 거예요. 책장이 휘리릭 넘어간답니다.

프레이야 2012-01-2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들어본 이름, 당장 담아갑니다.^^
블랑카님의 리뷰는 지름신이에요.

blanca 2012-01-26 22:12   좋아요 0 | URL
^^ 이런 지름신은 괜찮지요?

... 2012-01-2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피 브리스트,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가 한 세트라고들 해서 이 책을 사두고 아직 안 읽었네요. 이 책 살 무렵 블랑카님의 <여명> 리뷰를 보고 그 책과 같이 샀는데 ^^ 재미있는 책이었군요. 이 책에 대한 알라딘 리뷰들도 인상적이었어요.

blanca 2012-01-27 10:2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이번 기회에 읽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저도 이 책 리뷰들 읽고 구입을 결심했지요.

비로그인 2012-01-2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 브리스트> 리뷰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ㅎㅎ 지금은 창고에 넣어두었지만 예전에 쓴 <안나 카레니나> 리뷰에서 함께 거론한 적이 있는데 블랑카님의 리뷰를 보니 공연히 반갑네요. 세 작품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데다 주인공의 파격성에서도 가장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작품이란 생각에 짠했었는데 블랑카님이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blanca 2012-01-27 10:25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저도 표지가 참 이쁘다, 정도였지 읽을 생각 못하다 우연히 읽게 되었답니다. 이런 책을 읽기 시작하니 다 이런 부류로 또 관심이 쏠려서 미시마 유키오의 <비틀거리는 여인>이 지금 옆에 있어요.
 
드리나 강의 다리 대산세계문학총서 3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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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언덕 위를 힘겹게 기어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 속, 손잡이를 잡고 몸을 흔들며 생각했다.  시간은 대체 왜 이렇게 안 가는 걸까? 빨리 스무 살이 되어야 할 텐데. 창밖을 내다 보아야 언덕 위로 다닥 다닥 붙은 집들과 바다 같은 하늘이 다였다. 그런데 세상은, 지구는 꼬마 같은 여자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불가항력이라는 말 자체를 떠올리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우리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난 줄 알았고 나의 꼬부랑 할머니는 귀밑 머리 땋고 얼굴 붉히던 소녀 시절을 가져 본 적이 없었을 거라 여겼다. 이제 버스를 타고 몸을 흔들며 내다보는 세상은 온갖 불가항력으로 덮여 있고 시간은 무참히 빠르다고 느낀다.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세상은 나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불평한다. 살아갈수록 지구에서 내가 그리는 궤적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간다. 세상은 더 커지고 나는 외려 더 작아진다. 인생이란 세상이란 이런 걸까?

 

인생( 이 말은 그 당시 문학이나 정치에서처럼 매우 자주 그들의 대화에 등장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대문자로 쓰여 있다)은 그들 앞에 하나의 객체로, 마치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위한 그리고 지적인 호기심과 감성적인 성취를 위한 전장으로서, 그들이 결코 경계를 알지 못했던 것들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들 앞에는 모든 길들이 끝도 없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길들의 대부분은 그들이 발도 내딛지 않을 테지만(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어떤 길을 택하든 자유이며, 이 길에서 저 길로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 대한 황홀한 의욕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p.348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젊음에 대한 통찰이 예리하다. 게다가 그 젊음들은 터키인, 기독교인, 유대인들로 민족도 종교도 신념도 공유할 수 없는 이질감에 부대껴야 한다. 발칸반도. 고등학교 지리시간 목이 짧은 지리 선생님은 백묵으로 칠판을 치며 "유럽의 화약고!"라고 이곳을 호명했다. 월드컵 때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를 온전히 외우고는 혼자 으쓱했다.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발칸 반도는 축구는 잘 하지만 별안간 시끄럽고 어렵고 혼란스러운 곳으로 폄하된다. 싸움의 틈새에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는 실종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들. 여기에서 태어난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접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를 가로질러 흐르는 드리나 강의 다리가 지켜보는 인간의 역사를 재건한다. 1516년 터키 제국의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고향을 떠났던 정치가 메흐메드 파샤 소콜리가 유년의 상흔을 드리나 강의 다리를 세우면서 치유한 때부터 사라예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여 1914년 드리나 강의 다리가 무너지기까지의 400여 년의 연대기 안에서 결혼식 날 드리나 강에 몸을 던진 어여쁜 신부, 이교도에 항전을 반대한다고 같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드리나 강 다리 카피야의 대들보에 오른쪽 귀를 못밖여야 했던  알리호좌, 아름다운 터키 소녀에 잠깐 한눈을 팔다 그 열정의 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했던 젊은 군인, 비셰그라드 주민들 뿐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족들의 생활까지 지치지 않고 돌보았던 유대인 처녀가 지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더없이 존귀한 존재들이고 나름대로 주어진 시간을 겸허하게 채우며 삶을 살지만 내일이 당연히 오늘 같을 거라고 여기며 사는 나날들은 때로 거대하고 사악한 흐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사고, 병마, 배신, 자연재해, 전쟁. 100년만 지나면 나의 이름을, 나의 노력을, 나의 꿈을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무기력하고 이렇게도 허무한 인생. 이 책을 읽으며 가슴이 스산해지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이 단지 거기에서 추억되고 이야기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작가의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그는 인간 세기의 반 이상을 일하고 절약하고 염려하고 돈을 벌면서도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고 주의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똑바로 자기 앞만 내다보고 소리 없이 돈만 벌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  마지막 남은 산적처럼 두 명의 군인 사이에 앉아서 포탄이나 그 밖에 어떤 것들이 다리를 해칠 때면 그 이유로 그의 목을 베거나 총살할 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중략>

 그런 거지, 그런 거야. 상인 파블레는 혼자 중얼거렸다. 모두들 너에게 일하고 저축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강요하지. 교회와 정부와 너의 타고난 이성도. 너는 그 말을 듣고 신중하게 길을 가며 바르게 살고 있지만 사실은 사는 게 아니라 일하고 절약하고 걱정하고 하는 동안 너의 평생은 그 안에서 지나가버리는 거야.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어져서 세상이 이성을 비웃고 교회는 문을 닫고 침묵해버리며 정부는 힘없이 되어버리고 정직하고 피땀 흘려 돈을 번 사람들은 잃게 되고 빈둥빈둥 세월을 보낸 자들은 얻게 되지.
-p.457

 

상인 파블레의 일생은 우리의 일생이기도 하다. 상인 파블레의 최후는 우리가 가장 겁내하는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이념, 종교, 민족은 정작 그것들에 대해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무리들이 단지 자신들의 권력, 명예,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돌연 강고한 경계를 가지게 된다. 갑자기 그 경계는 도덕과 비도적, 정의와 불의의 그것으로 탈바꿈한다. 18세기 후반 대홍수가 났을 때 터키인들과 기독교인 유태인들은 한곳에 모여 서로를 다독였던 모습은 이제 하나의 전설처럼 남고 말았다. 드리나 강의 다리가 4세기를 지나 돌연 무참히 무너졌던 것처럼 그들이 나누었던 인간적인 연대와 공감은 흔적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이야기가 묻힌 곳에 증오와 반목은 다시 자라나고 있다. 우리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는데 영원히 살 것처럼 여전히 미워하고 심판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불가능하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영원한 건축물을 세워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고귀한 정신을 가진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이 영원히 이 세상 어디에서든 자취를 감춰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p.471

 

있을 수 없는 일. 단 하나의 희망까지 저버리는 일. 이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파괴와 약탈이 자행되더라고 어느 한 곳에서는 반드시 위대하고 존엄한 정신이 자라나 거기에 끊임없이 항거하고 투쟁하고 건설하는 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일. 그래,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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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01-20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의 글을 읽어보니 "삶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시간이다. 눈깜짝할 새 지나가 버리는 시간에 쫓겨 좀처럼 숨돌릴 여유조차 가질 수 없다. 시간은 교도관처럼 우리 등 뒤에서 회초리를 들고 감시한다."고 했던 쇼펜하우어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요컨대 인생이란 휴전없는 싸움의 연속이며 손에 무기를 든 채 죽게 되어 있다"고도 말하고, 애꿎은 '단테의 신곡'을 빌어 '이 세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알 수가 있다고 통찰했는데 blanca님의 희망찬(?) 이 리뷰에 도대체 어울리기나 하는 댓글인지 저도 조금은 헷갈립니다. ㅎㅎ

* * *

단테의 지옥과 천국

단테는 어디서 지옥의 표본과 이미지를 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말고는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그가 그린 지옥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그런데 단테가 천국과 그 즐거움을 그리려 했을 때,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난관에 부딪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그곳과 비슷한 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테는 천국의 즐거움을 그리기보다 자기가 거기서 얻어들은 조상이며 마음속 애인 베아트리체, 그리고 많은 성자들의 교훈을 전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이 세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blanca 2012-01-20 22:31   좋아요 0 | URL
어디에선가 인생의 심판은 시간이 한다,는 말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가혹할 만큼 빠르기도 느리기도 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희 동네에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를 앓으시는 분들 뵈면 참 많은 생각이 지나갑니다. 지금 붙잡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적은지 자꾸 무기력하게 느껴지네요. 그래서 외려 희망을 자꾸 이야기하고 믿고 싶어지는 지도 모르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보 안드리치 작품 중에는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번역본이 있던 게 이 <드리나 강의 다리>지요.이 작품이 나와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냉전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더니 엄청난 무력충돌과 인종학살이 벌어졌죠.그래서 올림픽이나 월드컵할 때마다 이 쪽 나라들의 국명이 복잡하니 외국기자나 아나운서들이 고생합니다.

2006년 월드컵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였는데 2010년 월드컵에는 몬테네그로가 독립해서 세르비아가 혼자 나오더군요.

blanca 2012-01-25 10:48   좋아요 0 | URL
이 쪽 나라들의 이합집산은 정말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저는 왜이리 몬테네그로가 귓가에 맴도는지--;; 다양한 인종, 종교, 민족이 공존하는 것은 머리로만 가능한 것인가 봐요. <드리나 강의 다리>의 오래된 판본을 가지신 분들이 인터넷에 사진을 많이들 올리셨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12-01-2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예니체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더군요.오래전 읽은 책이지만 그 뒤로 예니체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블로그는 관심있게 보는 편이죠.여자들도 예니체리에 대해 관심이 많나요?

blanca 2012-01-25 22:36   좋아요 0 | URL
아, 노자님, 솔직히 예니체리가 무언가 생각하다 찾아 봤더니 술탄의 근위 부대군요. 음, 저 같은 사람들이 다수의 여자에 속한다면 큰 관심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산너머 남촌에는> 드라마를 꼭 챙겨 본다. <전원일기> 후속격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농촌 드라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류의 드라마를 좋아해서 사람들이 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 적도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보고 있으면 마음 한켠부터 데워지는 느낌이 좋다. 사실 쇠락하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다루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대가족과 지척의 이웃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지속적으로 소재화하는데 농촌이라는 지역적 배경이 주는 이점덕분에 이런 드라마들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같다.

 

지난 주 바지락을 넣은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장염도 아닌 것이 식중독도 아닌 것이 그 묘한 경계에서 무척 고생했다. 계속 오한이 나서 일단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드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친정 신세를 좀 졌다. 일요일 아침 모처럼 아침 준비를 좀 뒤로 하고 이 드라마를 봤다. 종갓집 종손은 이혼하고 두 번째 연애에서도 상대 여자에게 실연을 당한다.  직장 회식 자리에서 겉옷도 나둔 채 무작정 택시를 타고 연인이 일했던 유치원의 닫힌 문을 두드리며 절규하는 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다독임이 감동적이었다. 이 한심한 자식아, 여자 하나 때문에 이게 뭐냐? 라고 면박을 주는 대신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안는다. 자신은 왜 매번 사랑에 실패하냐는 아들의 자학에 아버지는 "너는 인연을 실패라고 하냐."고 반문하는 아버지.

 

인연에 실패라는 말을 감히 갖다 붙이지 말라는 듯 책망하는 눈빛의 아버지의 모습. 갑자기 대학교 2학년 그 시간들이 떠.올. 랐. 다.

 

나는 과도한 수강 시청에 과도한 통학 거리로 매일 여섯 시에 기상해서 집에 오면 오후 일곱 시 가량이 되어 그 때부터 밤을 새우며 레포트를 작성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분량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과(무식하지만) 한번 레포트가 날아갈 뻔한 악몽 덕택에 플로피 디스켓에 이중 저장을 수시로 해가며 그러니까 종일 자판 두드리고 좀 자고 시간 쪼개어 지독하게 귀여운 초등학생에게 과외 교습을 하는 것이 대학생활의 태반이었다. 그 와중에 했던 소개팅에서 몇 번 만난 남자애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그 남자애는(물론 사귄 것은 아니었다) 몇 번 만나더니 슬쩍 예정되어 있던 어학연수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뭔가를 해보려 했더니 뜬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몇 년을 만난 남자와 이별을 하는 것같은 절망을 느꼈다. 각박한 현실에 단비와 같았던 그 남자애에게 느꼈던 감정은 이제 정처 없었다. 그 남자애가 떠난다는 날, 나는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마음껏 슬퍼하고 대단한 사랑을 한 것처럼 과장되게 절망하고 싶었지만 쓰던 레포트를 마저 끝내야 했다. 마음의 결이 있다면 한 결, 한 결마다 피가 스미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슬퍼하고 힘들어할 상황도 아니었건만 그때는 미성숙한 식견과 요동치는 감정으로 세상 전부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오열하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방문을 닫았건만 아버지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셨나 보다. 다음 날 아침 부은 눈으로 엄마 앞에 서니 엄마는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잠깐 내려오라고 해서 내가 왜 이리 우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묻지 않고 엄마와 집에 있을 때 나의 상황을 알아 내려하지도 않고 조용히 밖에서 엄마를 일부러 불러내 나의 눈물을 걱정했다. 그런 은근한 관심과 지지가 고마웠다. 아마 아버지는 내가 왜 우는지 어렴풋이 아셨을 것같다. 무슨 청승이냐고 왜 우느냐고 닥달하지 않고 그렇게 넘어가 준 아버지.

 

자식의 사랑, 이성친구와의 결별, 혹은 짝사랑의 좌절. 이런 것이 자라고 나이 든 부모의 눈앞에서 폄하되지 않는 풍경이 눈물겹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어린 사람의 실연은 사실 과소평가하기 쉽다. 게다가 그것이 나의 몸에서 나온 자식의 것이라면 그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아 더더욱 질끈 눈감아 버리거나 바라던 자식의 배우자상에 대한 훈계나 교시의 계기로 삼게 되기도 한다. 꼬맹이가 자라서 어떤 사랑을 하든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사실 인연의 어긋남은 그것이 다음 인연을 예쁘게 가꾸는데 자양분이 된다고 해도 겪지 않거나 조금만 아프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이별은 언제나 너무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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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2-01-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이 아니라 '이 별은'이라고 읽었어요.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별' 가끔은 미치도록 슬프거든요.

blanca 2012-01-13 22:06   좋아요 0 | URL
L.shin님 댓글이 더 멋지네요. 갑자기 강경옥의 <별빛속에> 만화가 생각나요.

cyrus 2012-01-12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복통이 많이 나으셨는지요? 겨울에도 음식 관리 잘 해야될거 같아요.
연애를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프면서 아픈 것은 확실한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고백을 해봐서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거든요 ^^;;

blanca 2012-01-13 22:08   좋아요 0 | URL
cyrus님 졸업하시기 전에 연애는 꼬옥 해보셔야지요. 아픈 추억도 지나고 나면 좋았던 기억만 남는답니다. 복통은 다 낫자마자 또 커피를 마시니 다시 재발의 조짐이... 내일부터 다시 위를 다스려야 할 것 같아요.

블루데이지 2012-01-13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 편찮으신건 좀 괜찮으세요?
저도 <산너머 남촌에는> 친정가서 봤어요. 아빠 생신이셨거든요..
그날 참 가슴찡한 내용이었어요^^아버지의 모습이 더 가슴 아프더라구요~
근데 페이퍼 계속 읽다보니 그 드라마보다 blanca님의 그때 그이야기가 더 찡하네요~~

blanca 2012-01-13 22:09   좋아요 0 | URL
아, 블루데이지님도 친정 가서 보셨어요? 찌찌뿡^^;; 그죠! 저는 혼자 막 눈물까정 흘렸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 눈물 그렁그렁한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참 가슴 뭉클하더라고요.

stella.K 2012-01-1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블랑카님 같은 미인과 사귀기 쉽지 않을텐데
그 남학생 누군지 참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능.ㅋㅋ
그게 참 그래요. 사람 만나고 이별하는 것도 큰 시간안에서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뭐 과소평가라기 보다 그 시간을 건너면 별 것 아닌 것인데
너무 현재의 슬픔에 집착하는 게 안쓰러워서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블랑카님도 그 시간을 거쳐서 이만큼 살아오신 거잖아요.
<산너머 남촌에는> 이 드라마가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ㅎㅎ

blanca 2012-01-13 22:12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ㅋㅋ 그런 건가요? 아, 그런 면도 있지요. 젊고 어릴 때는 딱 여기, 이것 위주로 보고 느끼다 보니 크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신의 상황을 해석하기 힘드니까요. 그래도 저도 지나오고 느낀 것들을 그만큼 아이의 그것도 크고 소중하게 공감해 주고 싶은 소망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흑, 절대 종영하면 안 되는데 결방이 너무 잦네요.

moonnight 2012-01-1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집니다. 남자가 이게 무슨 꼴이냐. 하지 않고 인연을 실패라 하느냐고. 반문할 줄 아는 어른. 블랑카님의 아버님처럼,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는 어른이고 싶어요. 저도요.

blanca 2012-01-13 22:13   좋아요 0 | URL
이 드라마 작가에게는 놀라운 면이 있어요. 자주 메모하고 싶은 대사들이 있는데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껴본 사람 같아요.

비로그인 2012-01-1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요, 블랑카님.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먼 거리로 떠난다고 하면
그것을 정신적인 관계의 종결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이 그대로 상생할 수 있다고, 한의학 종사자와도 같이 생각하는 저는
늘 의문이었어요.

blanca 2012-01-13 22: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 땐 몰랐어요. 저도 바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기다림과 마음고생을 지레 피하고 싶은 자기보호본능 때문은 아닐까요?

카스피 2012-01-13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농촌 드라마가 남아 있었나요? 이름도 못들어봐서 좀 신기하네요.
그나저나 플로피 디스켓 안쓴지가 꽤 오래되었네요.제 컴이 2006년을 얻어온 것인데(나름 최신형이죠.램 126메가^^)
이 컴에는 플로피 드라이브가 달려있어요.근데 요즘 나오는 최신형 맥미니같은 것은 dvd도 안달린다고 하는군요^^

blanca 2012-01-13 22:1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저의 연식을 들켰군요^^;; 맞아요. 이제 플로피 디스켓은 과거의 유물처럼 되어 버렸지요.

프레이야 2012-01-1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속 그 아버지의 대사가 참 찡하네요.
인연에는 악연은 없는 거라는 말로 해석해도 될까요.

블랑카님의 아버지, 그 큰 사랑을 읽으니까 저의 아버지도 생각이 나요.
내내 침묵하고 기다리며 지켜보다 한마디 묵직한 말로 구름이 싹 걷히게 해주시는..
영화 '정사'의 이미숙이 병실에 누워있는 친정아버지를 찾아가 웃으며 눈물짓던(마음속으로) 그 얼굴도 떠올라요.

blanca 2012-01-13 22:18   좋아요 0 | URL
구름이 싹 걷히게 해주시는 아버지. 그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프레이야님과 아버님의 단단한 끈이 느껴집니다. '정사'에 그런 씬이 있었군요... 요새는 자식한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되어요. 하여튼 생각이 많아지는 연초예요, 프레이야님.

꿈꾸는섬 2012-01-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던 것 같아요. 직접 묻고 싶으셨을 때가 많으셨을텐데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주셨죠. 그땐 그게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인 줄 몰랐는데 돌아보니 그러네요.

blanca 2012-01-15 21:52   좋아요 0 | URL
재작년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작년부터는 부모님이 그런 묵묵한 사랑을 주셨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나이 드는 게 안 보인 것들을 하나하나 일깨우기도 하니 나쁘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oren 2012-01-1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었을 때의 사랑과 이별의 고통은 정말 '그 무엇에도 바할 데 없는' 것이었음을 blanca님의 글을 읽으며 새삼 떠올려보게 되는군요. 그런데 blanca님께서는 (비록 눈이 퉁퉁 부어오를 만큼 오열하셨다고 하더라도) 밤새도록 태연히 레포트를 쓰셨다고 하시니 정말로 '성실한' 대학생이었다는 걸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싶군요. ㅎㅎ
* * *

연애란 엄숙하고도 뼈아픈 것으로, 큰 환락과 고뇌가 따르는 까닭은 종족에 관한 커다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몇천 년 전부터 수많은 예를 들어 그것을 묘사했다. 이 주제는 종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그밖의 어떤 주제도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즉 개인과 종족의 관계는 물체의 표면과 물체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옛날부터 다루어온 진부한 것임에도 언제까지나 고갈되는 일이 없다.

(중략)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을 단념하는 일이 어떤 희생보다 크게 여겨지는 것도 납득이 된다. 영웅은 일상적인 일로 비탄에 빠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사랑의 비애에 대해서는 비탄을 억누르지 못한다. 이 경우 비탄에 빠지는 것은 본인 자신이 아니라 종족 자체이기 때문이다. 칼데론의 훌륭한 희곡 《위대한 제노비아》제2막에 제노비와 데시우스가 등장하여 데시우스가 말한다.
"아, 하늘이여, 당신이 날 사랑한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승리를 포기하겠소. 적진에서 도망쳐버리겠소."
여기서는 여러모로 이해타산적인 명예가 무시되고 그 대신 사랑, 즉 종족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명예와 의무, 그리고 충성은 지금까지 유혹이나 심지어 죽음의 협박에도 저항해 왔으나, 종족의 이해 앞에서는 고분고분 양보하고 굴복해 버린다.
- 쇼펜하우어, 『인생을 생각한다』중 '사랑의 형이상학' 中에서

blanca 2012-01-15 21:56   좋아요 0 | URL
지나고 보니 그렇네요. 성실하려고 항상 노력은 했던 것 같아요. 쇼펜하우어는 개인적인 사랑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다 종족번식의 사회적 책무가 프로그래밍화되어있는데 자기들이 개인 의지와 정념으로 사랑에 빠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쇼펜하우어가 사랑의 비탄에 대하여는 절절하게 이해하고 공감한 줄을 몰랐어요. oren님 댓글은 언제나 지적이십니다.^^

마녀고양이 2012-01-1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그 남자분, 참 나쁘네요!
어학 연수 갈 계획이면서 소개팅을 하다니! 쳇.
그런데 말이죠, 저도 주드님이랑 같은 생각을 했어요... 어학 연수란게 기간이 긴 것도 아닌데
꼬옥 거리 때문에 이별해야 했을까? 머 이런..... 우린 어쩌면 이별을 사랑하는게 아닐까요?

흐흐, 엘신님의 말씀처럼, 이 별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구요!

blanca 2012-01-16 22:1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운 거예요--;; 이 별이란 말이 너무 좋아요!
 
클레브 공작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9
라파예트 부인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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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게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때로는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사랑이 전존재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아주 호사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다. 이렇게 시작한다.

 

 성대함과 정중함이 앙리2세 치세 말년 만큼 프랑스에 눈부시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왕은 우아하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디안 드 푸아티에, 그러니까 발랑티누아 공작부인을 향한 왕의 열정은 이십 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그때보다 덜 열렬하지도 덜 눈부시지도 않았다.
-p.9

 

 이 소설은 사람을 주어로 시작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결한 자질, 나약하지만 강렬한 정념은 인물들보다 더 강력하게 소설을 휘젓고 다닌다. 성대함과 정중함이 눈부시게 나타나는 시대에 나타난 열정. 이 필연적 모순에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사랑은 눈을 뜨고 이야기는 끝나고 사랑은 숨어버린다. 가장 저급한 사랑도 가장 고급한 사랑도 가장 자라기 쉬운 토양인 궁정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전투처럼 노동의 전장에 달려나가야 하는 생존에 대한 얘기는 한번이라도 더 연인의 눈길을 받기 위해 과장하고 위장하고 연기하는 무리들과, 깔고 앉은 권력과 재물을 거머쥐기 위해 벌이는 암투들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저쪽이 삶이기도 하도 이쪽이 삶이기도 하다. 저것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게 되어지기도 하고 이게 전부라고 여기며 살다 죽게 되기도 한다.

 

 야망과 연애, 이것이 궁정의 정신이었고 사내들이건 여자들이건 하나같이 그 일에 전념했다. 숱한 이해관계와 각기 다른 파벌이 있었고, 거기에 여자들도 깊이 관여했다. 사랑은 항상 사업과 뒤섞였고, 사업은 항상 사랑과 뒤섞였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무관심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더 올라가기를, 누구의 마음에 들기를, 누구를 떠받들기를, 누구를 해치기를 염원했다. 권태도 몰랐고 여유도 몰랐다. 쾌락에 혹은 밀통에 바빴다.

-p.23

 

소위 지배층이라는 자들의 모습. 이 묘사는 낯설지 않다. 정치라는 것이 민중과 유리되어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에 놓이는 모습은 역겹기도 하고 사실적이기도 하다. 더 올라가기를, 누구의 마음에 들기를, 누구를 떠받들기를, 누구를 해치기를 염원하는 모습. 17세기는 21세기에도 파편화되어 복기된다.

 

이러한 곳에서의 사랑. 궁정의 소문난 바람둥이 귀족 느무르 공과 도덕적인 정열이 대체로 불가능함을 알고 끊임없이 정숙하고자 스스로를 괴롭히는 클레브 공작부인의 사랑은 고도의 심리전과 위장술로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이 시대의 사랑은 비도덕적이기도 하면서 정숙한 겉모습을 위장하기를 바라고 한없는 정열을 바라면서도 진중한 이성이 감침질하기를 기대하는 모순의 결정체로 보인다. 정략적인 결혼이 태반을 이루고 나머지 부수적인 정념들은 각자가 알아서 내밀하게 해결하는 것을 쉬쉬하며 용인하는 모습.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그 상황 자체가 기이한 열정, 욕구 불만 등을 애타는 사랑으로 오해하기 십상으로 만들곤 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그 미세한 균열을 감지하는 예리한 촉수를 가졌다. 매력적인 미혼남이 자신에게 바치는 애정은 기실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의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몸을 흔들 때 느끼는 짜릿한 전율에서 더 배가되는 것임을 안다. 사랑이 자신을 인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는다는 고백은 정작 자신이 눈멀지 않기 위한 필사의 노력의 몸짓이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 분)가 남편과 동승한 차 안에서 자신의 연인의 모습을 보고 뛰어 내리지 않기 위해 고통스럽게 참는 모습은 흡사 병마에 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사투를 벌이는 병자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아가페적 사랑은 지향점이고 에로스적 사랑은 현실로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클레브 공작부인, 프란체스카는 아마도 이 금기의 열정을 경험한 이후 돌아가려고 했던 이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기억해 내지 못할 것이다. 덧없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우리가 이미 칼라 영상을 보고 나서는 흑백 영상에 적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그런 이야기. 사랑을 쾌락과 애써 분리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쾌락으로 폄하하지도 않고 고결하고 완전한 것으로 숭배하지도 않고 그것의 한계, 모순을 보여주며 있는 그대로 그것이 피어오르고 스러지는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아름답고 섬세하고 낭만적인 묘사. 사랑만을 이야기해 보려 했지만 사랑 그 이상을 묘파해 낸 매혹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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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
    from Value Investing 2012-01-14 16:20 
    blanca님의 멋진 서평글을 다 읽고 나니,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연정은 겉보기에는 별나라 같아도, 사실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이 본능이 특수화된 것이며 개체화된 것이다.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이 희곡이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거기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며,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다) 연출하는 중
 
 
아이리시스 2012-01-1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영국소설인가요, 블랑카님? 공작부인이라니까 그렇게 생각해봤어요. 첫줄은 완전 공감이구요. 블랑카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도 재밌어요. 읽기에는 좀 힘들 것도 같은데.. 에로스는 타나토스와도 닮아 있대요. 3초의 희열이요. 예전에 쾌락이 사랑의 전부인 것마냥 묘사하면 좀 거부감이 들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것도 이해가 돼요. 사랑이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지 않아도 매혹적일 수 있다는 것이요.

blanca 2012-01-12 22:20   좋아요 0 | URL
프랑스 소설이랍니다. 작가도 라파예트 부인이라고 귀족 부인이고. 그 시대의 로맨스물격인 것 같아요. 아, 분량도 적고 의외로 잘 읽힌답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이러한 것이다, 단정지을 수 없을 것 같아요.

dreamout 2012-01-1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이 책에 대해서 누군가 리뷰를 쓰긴 쓰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역시 있으시네요. ^^

blanca 2012-01-12 22:22   좋아요 0 | URL
^^;; 다른 분들이 읽고 더 좋은 리뷰를 써 주기를 바랍니다.

2012-01-1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13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1-1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소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거 같아요.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이외에는 국내에서 외국 여성작가의 영향력이 미미하니까요.
이 작품이 문학동네 전집 일부로 출간되었군요, 블랑카님 글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저도 이 책 읽어볼께요 ^^

blanca 2012-01-13 22:20   좋아요 0 | URL
아, 이게 프랑스에서는 공무원 시험에도 나오는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반사르코지의 아이콘 같은 책이기도 하다네요. 저는 몰랐어요. 예, 한번 읽어 보시고 저와는 또다른 감상을 들려주세요.

비로그인 2012-01-1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럴 때 차에서 바로 내립니다.

blanca 2012-01-13 22:27   좋아요 0 | URL
쥬드님, 처음에 무슨 얘기인가 했어요^^;;
 

이런 여행.

나에게 성석제의 <칼과 황홀>의 백미는 막상 음식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자취를 찾아 떠난 여행기였다. 저자는 그에게 사로잡혔던 청춘을 회고하며 지나치게 자신 속에서 비대해져 버린 이 거인의 여성편력의 흔적에 때로 실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성석제가 네루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감출 수 없는 애정과 경탄이 엿보인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에 삶을 밀착시킨 시인이다. 그의 시의 가장 적나라한 현현은 그의 삶 그 자체다.  그의 시는 쓰인 순간 그의 손을 떠나지만 다시 그에게 떨어진다. 성석제는 네루다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자신을 얘기한 책이 있음에 흥분한다. 더불어 나도 흥분했다. <칼과 황홀>을 읽고 네루다의 자서전으로 간다.

 

 

 

칠레의 숲 속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땅에서, 그 흙에서, 그 침묵에서 태어나 세계를 누비며 노래했다.

-p.16

 

네루다의 첫 시는 글을 배운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어머니였던 새어머니에게 바친 시였다. 세계적인 대시인이 될 이 꼬마의 시는 자갈기차 기관사 아버지 앞에서 무참히 폄하된다. 아버지의 반응은 "어디서 베꼈니?"가 다였다고 한다. 꼬마는 절망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부른다. 그의 시는 생존 자체가 투쟁인 일용 노동자의 입술에서 체 게바라의 배낭에서 절망으로 끝날 것을 알면서도 달려가는 젊은이의 슬픈 사랑의 여정에서 신산하지만 아름다운 삶을 일군다. 터키 정부에서 18년 동안이나 감방에 가두고 해군 반란 선동 혐의를 씌워 인분이 가득한 화장실까지 몰아 넣었지만 기억 나는 사랑의 시와 노래를 모두 읊으며 타협도 승복도 하지 않았던 나짐 히크메트.  네루다가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 시인 로르카와의 추억담들을 회고하는 대목들이 저릿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신뢰는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가장 낭만적인 사람은 가장 용감한 투사가 되기도 한다. 파시즘, 군국주의, 제국주의와 투쟁했던 평생은 그가 저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인간에 대한 연민, 신뢰,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써 내려간 궁극의 시였다. 이런 그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은 노래"라고 노래한 혁명시인 나짐 히크메트와 프랑코 정권과 투쟁하다 암살당한 로르카와

만난 것은 필연이었다.

 

 

사람은 사람일 뿐, 그 외의 어떤 규칙이나 호칭이나 딱지를 붙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중략> 내가 생각하는 투쟁이란 모든 투쟁을 끝내기 위한 투쟁일 뿐이며, 강력한 대응이란 모든 강력한 대응을 끝내기 위한 강력한 대응이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p.341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고 고백하는 네루다의 슬픈 최후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의 말미를 장식한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네루다가 머물렀던 아름다운 이슬라 네그라의 유일한 우체부 직원으로 일하게 된 청년 마리오가 그와 나눈 교감으로 흘러 넘친다. 비틀즈의 노래에 맞추어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네루다, 청년의 연애사업을 전두지휘하고 시심을 일깨우는 네루다의 모습은 실제 같다.

 

 

 

시인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불러도 놀라지 않았다. 시는 반역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파괴분자라고 불러도 화내지 않았다. 생명은 모든 구조를 초월하며, 영혼은 새로운 규범을 찾는다. 씨앗은 도처에서 싹을 틔우며, 모든 생각은 이국적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며, 인간질서의 변혁을 열렬하게 고대한다. 봄은 반역이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p.436

 

네루다가 정치적 동지 아옌데와 함께 꿈꾸었던 이상은 군부 쿠데타로 무참히 짓밟힌다. 꿈의 궁전에서 살듯이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기를, 그래서 죽거들랑 바다 근처 지명이 아름다운 곳에 묻히기를 바랐던 그의 소망은 그가 죽고 이십 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진다.

 

하늘의 별을 보며 책상에서 시를 쓰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 허리에 마대자루를 두른 노동자들에게 그 시를 읽어 주고 함께 손을 잡고 투쟁하고 그렇게 살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무참히 죽이는 풍경 앞에서 절규하며 눈을 감은 이 시인. 감히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시인이란 시란 이렇게도 위대해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싶어 절로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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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0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성석제 작가가 네루다를 좋아했다는 걸 그책에서 알게 됐어요.
덕분에 저도 네루다를 알고 싶어졌는데 생각만 있고 영 이러고 있네요.
올해부터는 한 작가를 독파해 보는 뭐 이런 프로젝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지금도 그냥 막막해하는 중입니다.
무계획이 계획인 저였는데, 못 지키는 계획이라도 안 세우는 것 보단 세우는 것이 낫겠죠?
올 연말에 또, 갈팡질팡하다 이럴 줄 알았지. 이러고 한해를 마감하면 안될텐데 말입니다.ㅋ

blanca 2012-01-04 22:40   좋아요 0 | URL
저도 <칼과 황홀>에서 네루다에 관련된 얘기를 읽게 될 줄 몰랐답니다. 성석제 작가 참 솔직하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아직도 이러고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딴짓 하다 맞다, 맞다 이러고 있답니다.--;;

잘잘라 2012-01-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글은 읽기가 두려워요. 님 글을 읽으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언급하신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거든요. 그냥 ‘한번 읽어보고 싶다’ 또는 ‘읽어봐야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 읽지?’이러고 있으니 원..

blanca 2012-01-04 22:42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그런 두려움은 좋은 두려움 같은데요?^^;; 저도 요새 다시 책욕심이 발동해서 큰 일이랍니다. 이제 자리가 없어요. 있는 책들을 또 처분해야 하는 시기가 왔나 봐요. 하나 하나 봐도 다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마 할머니가 되어도 이러지 않을까 싶어요.

2012-01-04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2-01-0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요.

성석제의 칼과 황홀, 찜해둘게요.
더불어 파블로 네루다, 저 아직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궁금하네요.

blanca 2012-01-04 22:44   좋아요 0 | URL
꿈섬님, 안 그래도 오늘 페이퍼 읽고 댓글 달려는 참이었어요. 꿈섬님 페이퍼에 갈게요.^^

로드무비 2012-01-05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케스와 네루다의 식사 장면이 네루다 자서전에 나왔나봐요.
둘의 식탐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소개한 글을 읽었거든요.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보니 반가워서.^^

blanca 2012-01-05 22:54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ㅋㅋ 둘이 만난 얘기는 나오는데 제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이 대목은 좀 낯서네요. 그런데 네루다 얼굴만 봐도 식탐 강하게 보여요 ^^;;

마녀고양이 2012-01-0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에서 네루다로 흐르셨군요.
좋았나봐요.. 네루다 자서전 저도 읽고 싶어집니다.
난 평전이나, 자서전이 참 좋더라구요. 정말로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가슴을 저미는구나 싶어서.

blanca 2012-01-05 22:55   좋아요 0 | URL
마고님, 저도요. 너무너무 좋아요. 그래서 자서전이랑 평전 많이 읽은 사람이 추천해 주는 페이퍼 같은 것 있나 찾아봐도 아쉽게 잘 안 보이더라고요. 마고님이 추천해 주실 평전 혹시 있나요?

마녀고양이 2012-01-10 17:58   좋아요 0 | URL
난 마크 트웨인 자서전이랑, 이상 평전 사놓고 손도 못 대고 있는 사람이예요.
무슨 추천을 해줄 수 있겠어여.. 에휴휴.

프레이야 2012-01-0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과 황홀'과 네루다 자서전 담아갑니다.
블랑카님 리뷰 보면 자동으로 책을 담게 되어요.^^
참 좋은(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열할 게 많으니^^) 리뷰 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분홍공주랑도 잘 지내시구요.^^

blanca 2012-01-08 10:1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햇빛눈물 2012-01-0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바람결님 서재에 들렀다, 이렇게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우연히 들어오게 된 서재에 좋은 서재지기님과 좋은 글들이 많아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 자주 들르겠습니다. 저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을 읽으며 네루다에 대해 생각하던 때가 기억나네요. <인상과 풍경>은 솔직히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기억이. 올해는 네루다 책도 한번 꼭 읽어봐야 겠네요. 늦었지만 새해 건강하시기를~~

blanca 2012-01-08 10:1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햇빛눈물님! 새해 벽두부터 저는 몸살이 났네요. 건강하라는 인사가 그래서 더 고맙고 와닿는답니다. 햇빛눈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