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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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여튼 하루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으면서 그의 에세이는 나오는 족족 챙겨 읽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단은 재미있고 적어도 공허하지 않고 호흡이 짧아 부담이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어도 좋고 자투리 시간에 들입다 한 편만 읽어도 무언가 독서를 했다는 포만감으로 배가 부르다.

 

에세이적 자아로서의 하루키는 그의 소설과는 다르게(사실 이렇게 쓰면서 그의 소설이 무언가 아주 비범하고 다소 잔혹할 거라는 쉬운 판단을 내려 버린다.) 지극히 평범하다. 나이는 아버지보다 많은데 감성은 지금 나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신기해하는데 후기를 읽으니 역시나 서른넷에서 서른아홉까지 쓴 에세이를 추린 거란다. 지금의 하루키가 아니라 과거의 하루키의 복기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라는 글은 내가 나의 스무 살에 느끼는 감성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며칠 전 화장품 코너의 아름다웠던 이십 대의 점원에 대하여 가진 묘한 느낌과 맞물려 '청춘이 끝났다'는 것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그 뒷맛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반가웠다. 그리고 청춘의 종결에 대한 자각이 삼십 대 중반부에서부터 다가온다는 서글픈 공감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루키가 '청춘이 끝났다'고 깨닫게 된 것은 청춘 시절 좋아했던 여자와 비슷한 용모를 가진 여자에게 그것을 이야기하자 그녀의 너무나 시큰둥하고 남자들이 그런 말을 잘한다는 식의 전혀 진지하지 않은 반응에서 어떤 소중한 것이 훼손되었다고 느끼게 되었던 찰나였다.

 

물론 나는 과거의 그 여자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은, 정확히 말해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 관한 기억이었다. 그녀에 부수되는 나의 어떤 심적 상황이었다. 어떤 시기의 어떤 상황에서만 주어지는 어떤 유의 심적 상황-그것이 실로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하여> 중

 

그러니까 내가 <건축학 개론>을 보고 울음보가 터졌던 것은 스무 살 좌절된 짝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그렇게도 그 사람때문에 설레어 하고 하루 상간에도 천국과 지옥을 쉽게 넘나들던 그 감정의 파고를 떠안고도 견뎌야 했던 그 나약하고도 청승맞았던 나의 심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연민때문이 아니었을까.

 

짐 모리슨에 대한 이야기도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치는 글도 팝음악을 그저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에게는 생소했지만 왠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고 하루키가 직접 추천한 빌리 홀리데이의 음반을 당장 사러 나가서 턴테이블에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부책감이 들 만큼 달콤하고 끌리는 찬사들이었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젊었을 때는 숨을 죽이고 수없이 들어봐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부분이, 지금은 이렇게 와인잔을 기울이며 느긋하게 들어도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시원하게 세세한 부분까지 들여다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LEFT ALONE-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침> 중

 

나도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적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싱그럽고, 또한 완벽하다. 위태롭고, 확고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그리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프다.'는 느낌을 그가 얘기한 빌리 홀리데이의 미국 컬럼비아 사에서 나온 <The Golden Years VOL. 1>이라는 음반을 들으면서 가져보고 싶다.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음악을 들으며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행복하고 가슴이 아리도록 슬펐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기억해 낼 수 없고 기록해 낼 수 없다면 그 찰나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런 순간들을 채집해서 눈앞에 보여주는 하루키라니. 그는 부정하겠지만 하루키는 친절하고 다감한 사람같다.

 

<유명하다는 것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소회는 더없이 솔직하고 놀랍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가 유명해지면서 겪게 되었던 소란에 대하여 그가 느끼는 감정은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유명해지면 전혀 파악이 불가능한 세계로부터 파악이 불가능한 유의 호의와 악의를 동시에 받게 된다.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매도당하고, 어떤 때에는 무의미하게 치켜세워진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한 번도 얽힌 적이 없는 없는, 이름도 모르는 상대로부터.

-<ON BEING FAMOUS> 중

 

이러한 것이라면 글쎄다. 별로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하루키는 작가로서의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철저히 분리하여 생각함으로써 유명세에 대처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나의 가설이라고. 가설은 자기 자신은 아니다,라고. 아, 이러한 대처는 상당히 유연하고 건강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절하게 통합이 가능한 것이 또 하루키만의 강점이겠지만. 괜찮은 대처법인 것같다.

 

번역가로서의 그가 영어 회화 자체를 능수능란하게 하지 못해도 전혀 괘념치 않아하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공개하고 괜찮아할 수 있는 하루키의 모습도 부럽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육십 대의 하루키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육십 대의 하루키 속에 편재하는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고 납득할 만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나머지의 에세이들이 시간의 연대기순으로 그의 나이듦을 반영하고 있다면 모조리 갖고 싶어질 정도로.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어느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 그 소중한 이야기들은 칠십 대의 시선과 깨달음과 회한을 반영하고 있겠지만 삼십 대의 청춘과 사랑을 포함하고 있기에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삼십 대의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하루키의 저물어 가는 청춘에 대한 단상은 꼭 그 만큼의 깨달음과 치우침을 가지고 있어 뒤돌아 보아도 앞서 보아도 어떤 애틋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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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자 2012-10-08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 형상화하기 힘든 지점에서 그가 끌어오는 그 단순명료한 묘사들은 미처 입밖으로 꺼내어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으켜 세워 한없는 청량감을 준다." 제 느낌에는 blanca님의 글이 딱 그렇습니다^^; (그런 분에게 상찬을 받는 작가라면. 읽어보고 싶네요)

한남자 2012-10-08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blanca님 뭐 한가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페이퍼 쓰실 때 혹시 글씨체가 뭔가요? 굴림? 돋음? 이것저것 해 봤는데 왠지 다르게 반듯해 보여서요

blanca 2012-10-08 09:13   좋아요 0 | URL
니코니코님 안녕하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니코니코님 덕분에 제 페이퍼의 글씨체를 지금 확인해 봤어요. 굴림체가 맞아요^^;

프레이야 2012-10-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 책을 읽고싶어 선물 받아놓고는 읽고있는 게 있어 아직 소중히 옆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요. 책도 참 아담하니 예쁘지요. 님의 리뷰에 어서 읽어보고싶어 안달 나요. 맛깔스런 리뷰! 오늘하루도 평안히 보내요, 우리^^

blanca 2012-10-08 09:14   좋아요 0 | URL
아, 선물받으셨군요! 저는 솔직히 착한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읽게 될 줄 알았는데 이거 한 권 읽으니 모조리 다 읽고 싶어졌어요--;; 여전히 오늘 하늘도 참 이뻐요^^

다락방 2012-10-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참(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감수하고) 리뷰를 잘 쓰세요. 에세이는 그보다 더 잘쓰시지만요.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으면 참 질투나요.

blanca 2012-10-09 09: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ㅋㅋ 건방지게 안 들리고 황송하게 들려요. 다락방님은 일상에서 책 얘기를 너무나 부드럽게 잘 풀어내시잖아요. 다락방님만의 스타일. 그게 딱 확립되어 있어서 저는 그 점이 참 부러운 걸요.

2012-10-17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년 80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완서 선생님의 부고를 핸드폰으로 확인했던 그 날 아침이 또렷이 기억난다. 그 날은 2011년 1월 21일, 아이를 가지고 낳고 이제 누군가에게 맡겨도 울며 엄마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키워냈던 집을 마음의 준비없이 떠나야 했던 날이었다. 당연히 내 소유의 집이 아니니 여러가지로 사정이 안 맞으면 자연스럽게 떠나야 하는 집이었지만 추운 겨울 급하게 이사를 해야 하는 마음은 참 시렸다. 아침부터 눈이 흩날렸고 이삿짐을 열심히 옮기는 인부들 옆에서 왠지 내가 걸리적거리는 것만 같아서 괜히 어슬렁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써낸 전부를 읽고 싶었던 마치 나의 지인 같았던 작가의 부고를 들었다. 바깥에 흩날리는 눈발과 아이가 기어다녔던 방이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분과의 작별. 작가와 독자의 이별은 만남만큼 큰 파란이다. 읽어내는 이야기들은 일종의 만남이다. 그 만남은 텍스트 안에서 읽는 이들의 삶 속으로 물처럼 흘러간다. 그러니 작가의 죽음만큼 슬픈 작별은 없다.

 

전쟁이 남긴 상흔, 소소한 일상, 지인들과의 추억담이 역시나 소담한 그 분의 손 안에 담긴 따뜻한 밥처럼 다가온다. 예전에 들은 것도 같고 내가 짐작하기도 했던 이야기들도 언제나 새롭고 다감하게 들리는 것도 그 분만의 저력이리라.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또한 행복의 절정처럼 빛나는 순간도 그걸 예비한 건 불길한 운명이었다는 게 빤히 보여 소스라치게 되는 것도 묵은 사진첩을 이르집기 두려운 까닭이다.

-<내 기억의 창고> 중

나이가 듦은 기억과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어떤 어두운 기억도 세월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원만하게 깎아 버린다. 찬란한 환희의 그 빛나던 모습도 세월의 무게 속에서는 적절하게 빛이 바랜다. 그러고 보면 오늘 밑에 가라앉는 어제들은 다 하향 평준화되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내일을 기다리게 되나 보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찬란하기를 고대하면서.

 

 

 

 솔직히 무엇에 관한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는 유명한 초입부에 역시 감탄하며 줄을 긋고 과연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며 출발했다.

 

프랑스 혁명기,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진자처럼 왕복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기막히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는 기묘한 흡인력을 자랑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찰스 디킨스의 다른 작품이라고는 그 지독한 스쿠르지 영감 얘기 정도를 접해 본 나로서는 이래서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프랑스 혁명이라면 고등학교 때 지엽적인 연대기 정도로 달달 외우고 마감했던 기억이 전부였다. 혁명이라니 용기 있는 것이고 시민들의 손에 권력이 이양되었으니 바람직한 역사의 격변이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하늘과 땅만큼 먼 간극 속에 대치한 두 인간 군상은 찰스 디킨스 앞에서 가차없이 발가벗겨진다.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느냐.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여자들이 임신을 못하게 해서 우리처럼 비참한 생명이 아예 멸족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절규했던 아버지를 둔 사람들, 단지 귀족의 태생이라는 것만으로 기요틴에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결국 다 같은 고뇌에 찬 인간들이다. 복수심에 불타 이미 혁명 자체의 명분도 취지도 망각한 채 집단 살육에 이성을 잃은 '애국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거친 사내의 희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찰스 디킨스의 펜은 오히려 가혹하게 느껴진다. 결국 그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희망 그 자체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언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제대로 <두 도시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일런지도 모른다. 이야기만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여명이 아니라 어두운 시대의 가차없는 뒷골목을 헤매다 결국 집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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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10-03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촌의 팔촌 소식 듣는 마냥 지나쳤던 박완서 작가님의 부고 소식, 일 년이 훌쩍 넘어서 저는 다시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있답니다. 제 친구가 박완서 작가님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못한 게 내심 걸리네요. 이 글을 읽으니 내일이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되는 걸요. 걱정도 앞서고, 괜시리 불안해지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내일이니까! :)

blanca 2012-10-04 09:39   좋아요 0 | URL
아, 수다쟁이님, 그 친구를 오늘 만나시는 건가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그러니 괜찮을 겁니다. 저도 박완서 작가를 정말 좋아해서 여동생과 서로 책을 바꾸어 읽으며 전작주의를 시도했었답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이 있지만요.

순오기 2012-10-0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잘 지내셨죠?
박완서 선생님 책 사두고 쓰다듬기만 하다가 이번 추석에 읽었어요.
전날 큰집에서 음식 해놓고 잠이 안와서 읽다가 다음날 집에 돌아와 다 읽었어요.
나도 그분의 책은 다 읽고 싶은 독자거든요.^^


blanca 2012-10-04 09:4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한가위 잘 보내셨지요? 저도 무언가 숙제를 마친 기분으로 이제 밀린 일들을 하려고요. 올해는 철 들어서 큰집 며느리인 저희 친정 엄마께 "엄마, 고생 많다."며 설겆이도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너무 늦게 철이 들어서 아쉽지만요--;; 일교차가 심해지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프레이야 2012-10-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예쁜 박완서 님 미소^^ 블랑카님, 전 저 책은 담아만 두고 아직이고 친절한복희씨 이후 멈춰있어요. 그 소설집이 너무좋았어요. 디킨슨도 그렇고 세상엔 읽을책이 이리 많으니 해피한거죠ㅎㅎ

blanca 2012-10-04 09:4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 다시 책의 지름신이 강림하여 오늘 택배가 두 건이--;; 대기 중입니다. 갑자기 또 책이 너무 막 좋아져서 있는 책들도 이고 있을 지경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제가 사는 건 책의 힘덕분이랍니다 ㅋㅋ

2012-10-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을 읽자고 결심할 만큼의 박완서 샘의 팬이 생각보다 많군요. 저는 이 책의 리뷰들을 통해 박완서 샘의 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 반해서,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두어 권 더 산, 초보독자..^^
앞으로 더 많이 시도하게 될 것 같아요. 박완서 선생님 책읽기. 읽다 보면 거의 전작을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할만큼 반하기도 했어요.^^

<두 도시 이야기>. 저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넘 재밌게 읽었었지요. 아직도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물론 주니어 세계문학,이라는 축약판으로 경험했으니, 원작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지만요.)

blanca 2012-10-23 17:34   좋아요 0 | URL
섬님, 정말 신기해요. 제가 아이 임신 중에 어떤 식당에 박완서 선생님 책을 들고 갔는데 낯선 아주머니가 말 걸어오더라고요. 박완서 작가 좋아한다면서요. 그 만큼 고정 독자가 많은 것 같아요. 일단 재미있어서 흠뻑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아, <두 도시 이야기>를 고등학교 때 읽으셨군요! 그 시절 읽은 책들은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성으로 녹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목욕탕에 가지 않게 되었다. 샤워로 대신하다 보니 때를 미는 일도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살이 벌겋게 될 때까지 때를 밀어야 제대로 된 목욕을 했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그러고도 살 수 있냐고 신기해한다. 물론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 뜨거운 김이 자욱한 목욕탕, 지우개 가루처럼 나오는 때를 무슨 전리품인 마냥 보람을 느끼며 씻어내는 맛, 무언가 정화된 느낌으로 먹으며 나오는 요쿠르트나 초코우유의 맛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까운 목욕탕을 찾아보면 대형스파나 찜질방과 연계되지 않은 그 옛날식의 아기자기한 목욕탕은 찾기 힘들다.

 

 

 

그러한 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얘기다. 샤워만 해본 아이는 이해하지 못할 것 투성이다. 냉탕에 몸을 던지는 맛이며 죽은 듯 누워 엄마에게 고문당하듯 때를 미는 그 고통이며 그러한 고통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 주는 포상품으로서의 시원한 야쿠르트 맛도 아이에게는 와닿지 않음에도 연거푸 계속 읽어달란다. 엄마는 항상 최소 두 번 이상 전신을 밀어야 밀린 숙제를 완수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나, 여동생, 엄마까지 도합 여섯 번의 강도 높은 때밀이 노동을 했다. 그 정도 되면 세 여자의 몸은 벌겋게 익어버린다. 이 때밀이 문화가 피부의 유익한 각질층까지 제거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도망다니며 울며 불며 때를 밀리고 나서는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야쿠르트를 하나 달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언 머리카락을 헤쳐 푸는 재미가 쏠쏠했다.

 

목욕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조금 멀어도 조만간 목욕탕 원정을 갈 것이다. 내 몸을 두 번 밀 힘도 없는 저질체력이라 나도 엄마처럼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가열차게 때를 밀어주고 잡으러 다닐 자신은 서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줌마의 힘'이 엄마 세대에는 육아의 원동력이자 가정을 지키는 근원적인 힘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뜨거운 김이 풀풀 나는 온탕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몸 전체를 막 넣었을 때의 그 화한 느낌을 감수할 용기를 내기 직전 그 찰나가 두렵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럴 때에는 다시 아이가 되고 싶어진다. 죽은 듯 엎드려 엄마에게 때를 다 밀리고 타 낸 요쿠르트를 몰래 건네줄 장수탕 선녀님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서양의 요정보다 좀 엽기적이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이러한 나이든 할머니 선녀님을 만나는 목욕탕은 언제고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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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12-09-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유아 시절 단테의 지옥도를 떠올렸더랬습니다(그 나이에 왜 단테를 알고 있었는지는..그냥 지나쳐 주셔요)
하지만 블랑카님은 분홍공주님과 함께 장수탕 선녀님을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요쿠르트도 같이!

blanca 2012-09-28 09:0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유아 시절에 벌써 단테를! 쥬드님은 어렸을 때부터 성숙하고 진지했을 것 같아요. 이 그림책의 할머니가 은근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들춰볼수록 중독이 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09-2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엄마가 때밀어주시는데 전 왜그렇게 울고짜면서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요ᆢ 아프고 답답하고 막 그랬던 기억이ㅠ 아마 선녀님이 주는 야쿠르트가 없어서였는지도ᆢㅎㅎ 이 그림책 그림 참 좋아보여요. 구름빵의 그 작가죠. 상상력도 놀라워요.

blanca 2012-09-28 09:04   좋아요 0 | URL
저도요! 프레이야님, 저는 저희 엄마가 유독 심하게 때를 민다고 생각했는데 프레이야님 어머님도 ㅋㅋ 그러셨군요. 이 작가는 여기까지가 전부인가 싶으면 또다른 상상력의 지평을 열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유독 아이가 이 작가의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어른이 읽어도 웃음이 빵 터진답니다.
 
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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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강력한 독신주의자였다. 삶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없었는데 아이들은 아주 좋아했다. 현모양처와는 대체로 멀었고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서툴렀다. 서른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씩씩하게 혼자 늙어가는 모습을 그려본 적은 있다. 결론은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결혼했고 적잖은 기다림 끝에 아이를 얻었고 살면 살수록 겁나는 대상들의 목록이 늘어간다. 그리고 이젠 팔십이 된 나도 상상할 수 있다. 죽는 게 무섭고 때로 진저리 나기도 하지만 가을에는 특히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좋다. 살면 살수록 삶에 더 연연하게 되는 것 같다. 죽음과는 더 불화하게 되는 것 같다. 계획과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삶은 혼자서 흘러간다. 그리고 그러면 그런대로 또 그 풍경은 싫지 않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게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의 영화를 봤던가? 나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로라 브라운이 어린 아들을 놓아두고 어느 날 탈출을 감행했던 장면을 분명히 기억한다. 분명 세 명의 여자들의 시공간이 펼쳐졌을 터인데 나에게는 중산층의 전업주부 로라가 아들을 떠났던 그 장면만 남아있다. 왜 그랬을까?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연년생의 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집에 잠시 맡져졌다 돌아와서는 엄마가 나를 떠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었다. 꿈에서 엄마는 매일 나의 동생을 업고 나만 남겨두고 떠나 버렸다. 그래서 로라가 결국 아들 곁으로 돌아왔음에도 나는 '떠났다'고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당시에 세상 그 자체였다. 그 세상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언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고문이었다. 그래서 로라 브라운이 둘째를 품고 모텔에서 단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 아들 곁으로 돌아왔을 때 놀랍기도 하고 안도가 되기도 했다. 엄마는, 모성애는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작동되는 생래적인 것이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작가는 이것을 알고 있고 직시한다.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공유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어느 날 외투에 돌을 가득 집어 넣고 호수로 걸어 들어가던 그 날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20세기 말 뉴욕의 동성애자 예술가에서 사이에서 비교적 성공한 축에 속하는 여인 클래리사는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동료이자 한 때 사랑했던 리차드(그는 클래리사를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부른다)의 문학상 수상 기념 파티를 준비한다. 시간은 1949년 로라 브라운 여사와 1923년 런던 교외의 호가스 하우스에서 신경 발작을 일으키는 버지니아 울프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세 여인은 동성애적 성향과 페미니즘적 가치관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인습의 힘은 중력의 힘보다 강하다'는 절망감을 공유한 채. 일상에 때로 진저리를 치면서도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지 못한다.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이 지점을 포박한다. 그 불가사의한 삶에 대한 애착. 버지니아 울프가 결국 호수로 걸어들어가 모든 지각을 멈춘 것도 로라 브라운이 끝내 자살을 포기하고 자식들보다 더 오래 살아 온순한 노부인이 된 것도 그 엄마가 자신을 떠날 것을 예감하고 붙잡는 그 한 마디 "사랑해"를 외쳤지만 끝내 자신은 병마에 서서히 먹혀 들어가는 종말에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던 리차드도 (로라 부인의 아들이었다) 결국은 삶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죽음과 타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마이클 커닝햄의 통찰은 놀랍다. 그리고 그 통찰은 미려한 문장으로 술술 풀려 나온다.

 

몇몇 사람은 창에서 뛰어내리거나 스스로 물에 빠지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절대 다수는 서서히 어떤 질병에 먹히거나, 아니면 아주 행운아라면 세월에 먹힌다. 위로 삼을 것이라곤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아주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왔던 모든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그리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이런 시간 뒤에는 불가피하게 그보다 더 훨씬 암울하고 어려운 다른 시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

-p.306

 

 

성장은 희망을 키우고 세월은 희망을 포기하도록 학습시킨다.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희망과 작별하지 못한다. 그것은 고문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하다. 여인을 읽고 삶을 읽게 하는 책. 마이클 커밍햄이 첫키스보다 강렬했다고 추억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이렇게 그에게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돌아왔다. 그것을 듣는 일은 근사하고도 저릿한 일이었다. 로라 브라운은 '아이는 엄마를 영원히 지켜볼 것이다'라는 작품 속 예언처럼 아들의 죽음 앞에 다시 돌아왔다. 떠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을 떠나려고 했던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단죄를 받았다. 저마다의 희망은 고정된 인습의 틀 바깥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도록 조종된다. 그 너머로 넘어가는 일은. 삶을 넘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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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12-09-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테레즈 데케루>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살자,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체처럼 살자. 저 너머를 보려고 애쓰지 말자.
테레즈가 자살을 결심했던 순간 고모가 죽고 테레즈가 고모의 죽음 앞에서 마음 속으로 말하는 부분. blanca 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문득 떠올랐어요.
저는 그런 생각 들어요. 천상을 아울렀다 바닥을 쳤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라도 그냥 살아야 하는 게 삶 같아요. 쉬워지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서른을 넘겼고 이제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12-09-21 10:52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테레즈 데케루> 읽고 계시군요! 저도 예전에 전혜린 책에 언급되어 있어 꼭 읽어야지, 해서 작년인가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 그런 대목이 있었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렇게 얘기해 주시니 다시금 새롭게 받아들여집니다. 죽기 전에는 삶이라는 것을 다소 이해할 수 있을지 살면 살수록 의문 투성이입니다.

북극곰 2012-09-2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이 책 읽고 있어요~!
다 읽고나서 블라카님 글 볼게요. ^^
왠지 잘 안들어와서 두 번은 읽어얄 것 같아요.

blanca 2012-09-21 10:52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도 중반부터 잘 안 넘어가서 그만 읽을까도 생각했었답니다. 참고 읽다 보니 마지막에 와서야 참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어요.

댈러웨이 2012-09-2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어떻게 이렇게 잘 각색할 수 있었는지 창작자의 창작행위가 그저 놀라울 뿐이에요. 저는 영화만 봤어요. 책은 지금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다음 주문까지 기다리고 있는 참인데, 영화 정말 좋았어요. 감독도 그렇고, 세 명의 주연 배우들도 그렇고, 에드 헤리스, 토니 콜렛... 셉티머스의 리차드화도 그렇고 아무튼 마이클 버닝햄이라는 작가의 이 책을 제가 아직까지 안 읽었다는 게 유감스러울 정도에요.

아, 저는 독신주의자도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더니 결국엔, ㅎㅎㅎ 제가 제일 먼저 결혼했어요, 블랑카님처럼. 저는 모성애가 아이 낳으면 당연히 생기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2-09-21 10:54   좋아요 0 | URL
영화를 저도 봤던 것 같아요. 로라 장면만 남아 있지만요. 모성애에 관해서라면 --;; 저는 아이 낳기 전에 모성애로 충만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아이를 낳고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도 공부 중이고 노력 중이지만요. 저는 하도 결혼 안 할거라고 얘기하고 다녀서 무안했지요 ㅋㅋ

프레이야 2012-09-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는 이 책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표지가 아주 산뜻하고 마음에 들어 보관함으로 보셔갑니다.
영화도 있군요. 찾아봐야겠어요.
가을에는 이렇게 살아있는 게 좋다, 이 구절에 동감해요. 가을은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이렇게나 눈부시게 맑은 가을하늘 아래서는 대개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근데 님은 팔십을 상상하실 수 있어요? 전 못해요.ㅎㅎ 지금의 저도 십년 전에 상상할 수 없었지요.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 블랑카님의 참 좋은 리뷰 고마워요.^^ 마음이 더 좋아져요.

blanca 2012-09-21 10:5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그죠! 가을이 너무 좋아요. 너무 찰나이고 너무 예뻐서 이런 계절에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저는 이런 상상도 해요. 죽기 전. 정말 다 너무 허무하고 모든 게 꿈 같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 책은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동기의 결혼식장으로 향하던 지하철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날을 위하여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번연히 알면서도 까만 나비 날개 같은 원피스를 구입하여 입고 평소 같으면 질끈 동여맬 머리를 풀고 귀찮아서 안 하던 귀걸이, 목걸이를 다 동원하였다.

 

우리는 스무 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때로 스물세 살 정도였다. 어떤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 세상이 한없이 친절해 보이고 어떤 날은 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세상처럼 냉혹한 게 없어 보였다. 어떤 날은 세상 모든 이치를 알 것 같았고, 또 어떤 날은 세상에서 아는 게,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자학하였다. 시간이 한정없이 있으면 돈이 없었다. 동기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것도 같았고 때로 무심코 들은 한 마디에 큰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여 끙끙 앓기도 했다. 그게 바로 청춘이었을까?

 

해 질 녘, 초록색의 황혼 녘,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 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 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김화영 <행복의 충격> 중

 

 

 

이젠 중년들의 티가 완연히 났다. 사내 아이들은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었고 이미 초등학생 학부형이 된 녀석은 아이 둘을 쫓아다니느라 대화의 맥이 자꾸 끊겼다. 여기 저기에서 익숙하지만 십여 년을 만나지 않고 나니 대학 시절처럼 무람없이 대할 수 없는 얼굴들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백팩을 매고 마구 그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 깡통매점에서 청량음료를 하나씩 나누어 들고 퍼더 앉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들었던 얘기를 또 듣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어제 같았다고밖에 그런 진부한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는 느낌을 가지고 내 앞에 포박해 들어온 그 아이들의 시간의 무게에 아연해졌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를 둘러싼 녀석들을 보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그 시간을 뒤로 밀어내며 왔던 것이다. 내 가슴 속의 별. 그 별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찬연하게 때로는 서럽게 빛나고 있다. 아무리 비하하고 아무리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것만큼 찬란한 별은 없을 것이다. 젊음. 청춘. 지금의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나이는 또 그 만큼의 어리석음과 치기를 들쳐업고 나타날 것이다. 청춘은 그런 것같다.

 

해질 녘이 되면 프로방스에서는 항상 우주가 보인다는 저자 김화영의 얘기는 그 젊음을 고스란히 집과 학교에 누려야 했던 좁은 공간 출신의 나로서는 더없이 샘이 나게 한다. 사실 나는 문학평론가서로도 유명한 번역가로서도 그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된 그는 청춘을 우주가 보이는 지중해에서 보내고 그것을 적당한 거리에서 관조하며 복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세계.

 

그 꿈은 어느 여름 오후를 보낸 쿠르 미라보의 까페, 그늘지고 조용한 구시가의 작은 골목으로의 산책, 벤치 위에 내리는 햇빛의 반점들, 서점에서 만난 초록빛 눈의 처녀, 부활절 무렵부터 늦봄까지 피는 코클리코 붉은 야생화, 자동차로 십오 분이면 항상 눈앞에 출렁거리는 지중해, 근교의 푸른 하늘을 물들일 듯한 보랏빛 라벤더의 광활한 고랑들, 언덕배기의 자욱한 텡(타임)의 그윽한 냄새, 토르네 성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양옆의 숲 속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하얀 별장들, 작열하는 태양에 빛이 바랜 붉은 기와, 시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이 소도시를 가득히 채우는 영원한 청춘의 설렘, (중략)

- 김화영 <행복의 충격> p.37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그렇다,고 얘기하는 대신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더 행복해하며 그 자체로 충만해하며 젊음을 누리고 싶다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가지고 덧붙일 것같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니까. 너무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나를 너무 아프게 했던 일들. 그 자체로 웃어도 되었던 일들을 왠지 망설이며 유보했던 일들. 청춘은 덜 익은 차가운 과일 같다. 싱그럽지만 처음 베어 먹을 때의 그 아릿한 차가움은 피할 수 없다.

 

누군가를 붙자고 이야기해도 그 자체로 용인되던 그 날들 같지는 않았다. 주고받는 안부 인사. 자꾸 끊기는 화제들. 우리는 그렇게 삶의 가장 바쁘고 과업이 많은 시기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충분히 나이들고 나면 그 때는 우리 다시 모일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들 얘기했다. 지금은 아직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어떤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모든 것을 향해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언제든 느낄 태세를 갖추고 있는 오관과 살을 가지는 그 순간에 모든 목적은 달성되었다. 날들은 과일과 같다. 우리들의 역할은 그 과일들을 먹는 일이다.

- 김화영 <행복의 충격> p,80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는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딘가를 지향하며 직선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나이 드는 일도 또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도 두렵고 때로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과업들 앞에서 망연해지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게 죽음이라는 게 나이든다는 게 그 자체로 가치롭고 의미를 품고 있다는 가르침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중이다. 죽을 때까지 가장 찬란하고 가장 어리석고 가장 슬펐던 시간들은 제가끔 끊임없이 돌아올 것이다. 각기 다른 버전으로 다른 가르침으로.

 

공강 시간 결혼식의 신부와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고민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느끼며 점심 때에 과연 명동까지 가서 틈새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 본다. 가능할 것도 같다. 우리 둘은 일어나서 명동까지 가기로 한다. 젊으니까 젊었으니까 가능한 일들. 그 빨갛고 강렬한 맛을 적절하게 중화시켜 줄 밥알이 탱탱한 김밥은 필수다.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꼭 껴안았다. 구태여 말하여지지 않아도 신부와 나는 눈을 맞추며 순간 눈물을 재빠르게 숨긴다. 이제 행복해할 일만 남기기로. 우리들의 역할은 잘 반죽된 빵 같은 지구에서 과일 같은 하루 하루를 맛있게 음미하며 먹는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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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8-30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blanca님!
나도 '잘 반죽된 빵 같은 지구에서 과일 같은 하루 하루를 맛있게 음미하며 먹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정신없이 분주한 나날들이라 하루 세끼 챙겨먹기도 어려워요, 더구나 책은 몇날 며칠 손놓기 일쑤고요.ㅠ

blanca 2012-08-30 13:0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요즘은 바쁜 것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디선가 나를 찾아주고 내가 필요한 일들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세 끼는 꼭 챙겨 드세요. 저는 며칠 점심을 건너뛰곤 했었는데 몸이 지치더라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프레이야 2012-08-30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잘 익은 나날들,이란 제목이 책제목보다 더 좋아요. 요즘 포도알이 달달해요. 태풍에 과일들이 떨어져 안타까워요. 수확만 기다리고 있던 잘 익은 것들이요. 오늘하루도 맛나게 먹어야겠어요!^^

blanca 2012-08-30 13:0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행복의 충격보다 이게 낫겠어요! 오늘 또 태풍이 올라온다네요. 창문에 붙인 테이프를 뜯자 마자요. 농민들도 어민들도 피해 안 보고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어제 전복 폐사했다고 막 우는 모습 보니 안타깝더라고요. 저도 요새 거봉이 넘 맛나서 하루 걸러 한 송이씩 해치우는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2-08-3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감각적으로 글 잘 쓰는 블랑카님. 이 책 산다면 거의 전부가 님 글 덕분이지요. 나머지 10퍼센트가 김화영 브랜드 값. 크~

blanca 2012-08-31 18:17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이 댓글 읽고 배시시 웃음이^^;; 나요. 좋아서요.

굿바이 2012-08-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글을 읽으며 잠시 저도 이십대의 어느 날로 불려갔어요~! 좋은데요, 이렇게 추억할 것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나저나 언제 읽어도 글이 참 따뜻하고 좋아요.

blanca 2012-08-31 18:19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도 그러셨다니 반갑네요. 저는 그런데 너무 옛날 생각을 많이 해서 할머니가 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할머니가 되면 또 지금을 추억할 텐데. 지금도 어떻게든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놓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십 대의 그 풋풋하고 강렬한 싱그러운 추억과는 좀 성질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꿈꾸는섬 2012-08-30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는 오고, 블랑카님 글 읽으며 난 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잘 살아야겠다....남은 날들은 더 열심히~ 이러고 있어요.^^

blanca 2012-08-31 18:2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미 그러고 계신 것 같아요. 현준이 학교 생활 적응기 읽고 참 부러웠어요. 저는 배우는 입장인 걸요. 아이 키우는 일에서도 참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반성도 많이 하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