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 생이라 새해에 공으로 여덟 살을 먹어버린 꼬마가 요새 내가 읽는 책 제목을 유심히 본다.

 

 

 

 

 

 

 

 

 

 

 

 

 

 

 

 

며칠 새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집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자꾸 "왜 울지 않는 아이가 커서 왜 우는 어른이 됐어? 그러면 나는 우는 아이가 될래. 그럼 크면 울지 않는 어른이 되는 거야?" 라는궤변을 편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두 에세이집 다 참 좋았다. <우는 어른>을 먼저 읽고 뒤이어 <울지 않는 아이>를 읽었는데 둘 다 에쿠니 가오리의 서평이 부록이 더 좋은 잡지처럼 빛난다. 그녀가 같은 작가로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잘 쓴다는  팀 오브라이언도 세상에 구원 따위는 없다지만 그래도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치버도 절로 궁금하게 만든다. 아, 그리고 그녀의 에세이 중 주머니에 넣어두고 싶었던 한 편. <달의 사막을 여행하는 버스> 달의 사막을 보러 튀니지에 간 짧은 이야기는 하나의 단편만한 응축력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노인 단체의 투어 버스에 동승하면서 그들에게 느꼈던 노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완강한 편견이 깨어지는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가 밤의 사막의 아름다움에 숨막혀하며 일찍 자니 이 아름다운 달의 사막을 볼 수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노인의 군단이 예상을 깨고 터번들까지 쓰고 달빛 속에서 와글와글 걸어오는 모습을 '귀엽고, 왠지 모르게 거룩하다'라고 표현한 그녀의 솔직함과 재기가 돋보인다. 그녀는 폭넓은 무게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가장 잘 버티는 지혜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아이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다가 문득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 세상에서 과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미덕을 가르치는 게 좋은 걸까, 싶었다.

 

 

 

안 그래도 딸아이는 퍼주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졸라서 어렵게 산 스티커도, 아끼던 머리띠도 친구가 달라고 하면 고민하다 곧 내어준다. 갑자기 나는 '관계'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아니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관계'가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려워 나는 관계는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무조건 주기만 하는 관계도 건강하지 못한 거라고 열을 올린다. 작가가 들었다면 몹시 서운해할 이야기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 텐데.

 

다음부터 아이는 내가 무언가를 빌리거나 달라고 하면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세상에서 중용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개념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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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1-0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분홍공주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거에요?@@
동생을 보더니 성큼 커버린 듯... 아직 입학은 한두 해 더 남은 줄 알았어요.
드뎌 학부모가 되시는군요, 축하합니다!!

blanca 2014-01-07 10:06   좋아요 0 | URL
그 유명한 황금돼지띠의 막차를 타서 벌써 초등학교에 간답니다.^^ 상당히 긴장되네요. 게다가 젖먹이 동생도 있으니 여러모로 힘든 한 해가 될 듯해요.

2014-01-06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7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8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4-01-0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었어요. 그만이 갖는 특이한 분위기가 있더군요.
괜찮았어요.
중용... 님의 글을 읽으니 세상엔 정답이 없는 게 많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blanca 2014-01-10 09:38   좋아요 0 | URL
아, 그 책을 에쿠니 가오리 소설 중 가장 좋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그게 저부터가 똑같은 상황이 와도 나이가 들면 또다른 대처 방법이 떠오르고 그렇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배워가는 게 아마 인생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중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저 내려오는 그런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스무 살 적 톨스토이의 사진. 미남은 아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던 증언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을 듯한 모습. 깊은 눈매는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이제 그는 열 번째 생일 이후부터 시작되는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언어는 레프 톨스토이 덕에 자기 자신이 이루어 놓을 수 있는 가장 명징한 구체성과 생생함을 마음껏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자전적인 연작 소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해도 된다면) 그의 처녀작이다. 어떤 서투름, 소박함 등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이 거장 앞에서 실패하는 언어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작가는 이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아픈 자각이 뒤따른다.

 

니콜렌카 앞에서 관찰되는 독일인 가정교사를 비롯한 집안의 일꾼들의 모습은 매우 적나라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아무리 늙고 비천한 신분이라도 이 소년 앞에서는 저마다의 미덕으로 존재 가치를 가진다. 물론 그의 시선은 어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의 시선은 아이의 그것으로 내려가 있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그 아련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안타까움으로 회상하는 애타는 마음이기도 하다. 신나게 뜀박질을 하고 와 시원하게 우유를 마시면서 꾸벅꾸벅 졸며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 어머니와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늙은 하녀의 죽음을 겪으며 마침내 유년기의 출구에 당도하는 모습에는 누구나 절절하게 겪고마는 성장통의 아픈 상흔이 드러난다.

 

마음에 드는 예쁜 소녀와 마주르카를 추지 못해 안달을 하다 가정교사를 폭행하기까지에 이르는 그의 서투르고 거친 모습은 누구나 가슴 한 곳에 숨겨두는 그 무모하고 서투른 젊음의 치기를 한번씩 꺼내보게 한다. 말년의 다듬어지고 닦인 그의 고결한 모습의 원형에는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들도 침잠해 있으리라. 이렇게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의 그 숱한 실수들과 실패들과 자학들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니콜렌카의 목소리를 빌려 고백하는 것들의 정밀성과 공감을 획득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매우 놀랍다. 니콜렌카의 모든 행동, 감정, 의지, 생각 들은 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부딪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또다른 복기다. 자신의 못남을 숨기려다 오히려 과장되게 행동하고 후회하는 모습, 간혹 솟아오르는 그 젊음 자체가 주는 놀라운 희열, 그럼에도 또 때로 곤두박칠치는 그곳의 비극성. 빛나는 시선으로 훑고 가는 그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물, 풍경에 대한 묘사들.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그 문화 특유의 공감대. 니콜렌카가 대학에 가서 동기들과 프록코트를 벗어 던지고 화주를 마시며 치기를 부리는 모습은 대학 신입생들의 환영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따금씩 느끼는 자신의 태생적 신분을 통해 누리는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죽음, 삶, 윤리에 대하여 고뇌하는 순간들은 오늘날의 톨스토이가 태어나는 데에 일종의 복선 역할을 한다. 그냥 그렇게 편하게 이기적으로 누리며 살 다 갈 수도 있었을 귀족의 자제가 수많은 삶의 편린들을 언어의 체로 걸러 내어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과 삶 자체를 분리할 수 없어 고뇌하다 마침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 분투했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 산화하는 그 과정의 산고의 시발점을 찾을 수 있는 작품. 아니, 이도 저도 다 차치하고 그저 우리 머리 위로 마구 내려왔던 그 투명한 시간들을 한없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 하나 응축하여 손 안에 가두어 놓으려 했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의 결정체가 바로 이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에게 이미 그의 이러한 과업들이 건너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무튼 다시 한번 권해 보고 싶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는 마침내 해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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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저 사진이 톨스토이의 젊은 시절 사진인가요?
만년의 사진만 보다가 젊은시절을 보니 좀 색달라 보이네요.
그나저나 늦었지만 블랑카님 서재이 달인을 축하드리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blanca 2014-01-07 10:11   좋아요 0 | URL
예, 외모 때문에 대단히 괴로워했다던 젊은 시절 모습이에요. 나이 든 모습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흑백 사진. 단발 머리의 젊은 엄마와 어깨까지 닿는 금발머리의 사랑스러운 사내 아이는 코를 맞대고 웃고 있다. 가스 렌지의 손잡이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소는 부엌. 행복하고 안온하고 뭉클해 보이는 장면.

 

 

아이는 열여덟 살에 이러한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밖에 내어 말한다. 이십오년여 동안 이 지극히 엄마다워보이는 엄마는 정신이 병들어 아들에게 엄마다운 엄마로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 아들은 그러한 엄마가 죽어도 괜찮다,고까지 생각하지만.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 앞에서 전혀 괜찮지 않음을, 주먹으로 한 대 가격당한 듯한 아픔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들은 건강할 때에 부엌에서 아이들에게 엄마표 돼지갈비와 딸기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며 행복해했던 엄마의 모습을 찾아 직접 그 요리들을 재연한다.

 

아들은 이라크 침공현장, 예루살램 등의 그 살육의  현장에 직접 있었던 종군기자다. 그와 엄마와의 관계는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했다. 엄마는 술을 마셨고 환청을 들었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엘리자베스 데이비드의 요리책을 교본으로 부지런히 주방에서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했던 그 건강하고 활기찬 엄마의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그 찰나 같았던 순간들 속에서 모자는 특별한 유대와 공고한 관계를 형성한다. 나머지의 그 파괴되어 가는 모습들이 엄마의 전체를 규정지을 수는 없었다. 애도의 길은 처음에는 곧고 평탄하다 이윽고 생의 가혹한 우연의 요철에 걸려 넘어진 엄마가 어떻게 가족에게서 멀어져 가는지를 더듬고 기억해 내야 하는 곳으로 닿아 있다.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사진이 너.무.나. 눈물겹도록 예쁘다. 일부러 포즈를 취한 듯한 작위성은 걸어나가고 그냥 그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었다. 광고 사진작가였던 아버지가 뷰파인더에 담아 응고시킨 순간들은 그 자체로 이 슬픈 가족의 예쁜 일대기다.

 

 

 

 

아무리 해도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여전히 거기 있을 것 같다. 인위적인 구획으로 나이와 시간을 재단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부모님은 늙어 있고 병들고 떠나고 나의 아이들은 어깨 높이만큼 자라 더이상 나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에 당도한다. 더 나아가면 내 옆에는 눈물 흘리는 사람들, 모든 것은 꿈만 같은 시간들을 뒤로 하고 생에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깨달음에 자꾸 우울해진다. 아들은 엄마의 행복하지 못했던, 그래서 그 자신도 괴롭고 아팠던 반생을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아픔에서 조용히 걸어나간다.

 

오늘 엄마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지하철을 한 시간 가까이 타고 집에 왔다. 엄마가 이렇게 내 옆에 있어 주어 너무 좋다,는 말을 하지는 못하고 "친정 엄마가 반찬해 주니 좋다"고 표현했다. 엄마가 엄마다운 채로 그렇게 나도 엄마의 딸다운 대로 아주 아주 나중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나도 나다운 대로 그렇게 내 딸과도 떠올려도 괜찮을 정도의 작별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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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3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도의 길이군요,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애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많은 면에서요.

blanca 2013-12-31 15: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리고 살면서 아직도 항상 배울 것들이 있다는 게 참 좋으면서도 지나고 나면 또 했던 실수들이 너무 부끄러워져서. 적어도 가족이든 타인이든 상처는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고 있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고님, 벌써 올해도 다 저물어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프레이야 2013-12-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엄마가 계시니 블랑카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저도 김치 담가주신 엄마가 건강히 계세요. 전 제 딸에게 가져갈 멸치볶음을 방금 만들었구요. ^^ 눈물나게 빛나는 책이군요. 한가족의 역사이기도 한 사진들까지.

blanca 2013-12-31 15:0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 참 큰 힘인 것 같아요. 이사벨 아옌데는 어머니가 구순인데 정정하셔서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힘이 되준다는 글을 읽고 너무 부러웠어요. 김치, 저는 언젠가는 제가 김치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이렇게 받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좋기도 해서 미루나 봐요. 멸치볶음은 언제나 스테디셀러죠 ㅋㅋㅋ 프레이야님, 오늘 한 해 마무리 따뜻하게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4-01-0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존재죠. 이제 나이 27인데도 엄마가 좋아요... 그렇다고 제가 마마보이 인증하는 건 아니랍니다.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건강하세요.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기도 함께... ^_^

blanca 2014-01-02 19:44   좋아요 0 | URL
cyrus님, 감사합니다. 님도 올해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 잘 성취하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엄마는 언제나 심지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도 언제나 좋고 보고싶은 그리운 존재이지요. 벌써 1월하고도 2일이 저물어가네요..
 
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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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만난 지 얼마 안 되면서부터 소소한 부탁들을 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러한 부탁의 경중이 지극히 주관적이라 헷갈렸다. 내가 너무 빡빡한가. 그 정도는 들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시작이 물꼬를 트고 이윽고 무리한 것들에 대한 요청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때로 내가 그녀에게 부탁하면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이내 뒤로 물러서게 됐다. 그 부탁을 함으로써 더한 것들이 밀어닥치지나 않을까, 하는 소심함이 나를 무르춤하게 했다. 그러니 관계에서 도타운 정대신 자꾸 불쾌함과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단지 그녀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그녀와의 만남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을 만들었다. 혹시, 이 사람도 또?

 

옛날부터, 여성 친구에게 빚을 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녀들에게는 손톱만큼의 악의도 없지만 일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선물에 과도하게 감격하거나 별생각 없이 큰 희생을 치르기도 하고.

 그것은 때로는 미덕일 수 있지만 때로는 아주 난감한 일이다. 예를 들어 화분을 한 번 맡긴 일이, 알게 모르게 하나에서 열까지 도와주었다는 인상으로 바뀌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러한 망설임, 두려움에 대해 예리하게 표피를 벗겨낸다. 그런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녀는 유부녀지만 과거의 연인들을 한 명은 제외하고 다 남성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친화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계의 불분명함이 없다는 것이 친구 남자들과의 관계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다만 이 친구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피곤함은 절대 함께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배우자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그녀 기준에서는 절대 그들과 불륜으로 나아갈 위험성은 없다는 것이다. 음, 작가이고 남편과 떨어져 살고 일본인인 그녀의 친구들과의 관계는 여기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조금 힘들지만 여하튼 그녀의 솔직 담백한 고백들은 그녀의 투명하고 속살거리는 단문들로 감싸여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자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랄까. 몰랐는데 바로 이거구나! 싶은 깨달음의 관문 역할. 무엇보다 그녀의 언어들은 쉽고 짧다. 호흡을 구태여 가다듬지 않아도 그녀의 이야기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외롭거나 심심할 때 부담없이 불러올 수 있는 친구. 게다가 그 친구는 아주 예의바르다.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정확히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조금 건조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스스로를 불량하고 사치스럽고 악의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선량함으로 한번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고 소망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에서 줄곧 살아 숨쉬는 그녀들의 그 투명한 매력들을 생각할 때 그녀들을 만들어 낸 에쿠니 가오리가 유독 불량하고 악의적일 것 같지는 않다. <워터멜론 슈가에서>에 나온다는 아이디아뜨 근처에 가보고 싶다고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을 거라 두렵다고 고백하고 욕조에서 매일 두 시간 동안 있다는 고백은 이 중년의 여인을 상당히 귀엽게 보이게 한다. 어린 시절 여동생과 방 한 곳에서 태풍을 맞아들이는 정경, 아버지와 가족 신문을 만드는 풍경은 동화책의 삽화처럼 사랑스럽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는 쉽게 쓰인 것 같고 그 만큼 쉽게 읽히지만 쉽게 가시지 않는 잔상이 있다. 누구나 그녀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그녀처럼 곧잘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딱 그녀처럼 쓸 수는 없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다지도 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에세이'이라는 글의 장르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가식과 적당한 가면을 찾기 마련임에도 그러지 않는 도발이 있는 글들. 한밤중에 꼭 부부싸움을 하고는 밤새 열려 있는 북센터에 들어가 책냄새를 맡고 나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앞에서 그때는 이런 날이 올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여자.

 

그게 에쿠니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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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1-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그녀처럼 생각할수도, 곧잘 이야기할수도 있겠지만, 딱 그녀처럼 쓸수없다는 말에 크게 공감해요~
참 쉽게 쓰고 쉽게 읽히는 듯 한데, 잔상 또한 오래 남기는 걸 보면, 깨끗하고 따뜻하고 배부르면, 행복하다는 통찰을 굳이 잘 포장해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어나오게 쓰는 작가 같달까요~
그 지점 때문에, 아싸 가오리 씨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고,,, 이중적인 감정을 느껴요~

아,, 블랑카님의 문체로 가오리 씨를 해석해 보니, 아삼삼 멋지네요~

blanca 2014-01-03 16:46   좋아요 0 | URL
에쿠니 가오릭 지나치게 얕다,고 생각하는 의견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무언가, 좀 무겁지 않은 그녀만의 그 단문들이 편안해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젠체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꾸준히 읽게 되네요.
 

<거짓말>의 서툴 정도로 솔직하고 자주 멈칫거리며 어떤 경계에서 머뭇거리던 젊은 배우 이성재를 기억한다. 이제 이성재는 내년에 대학교에 진학하는 딸을 둔 중년의 남자이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린 아버지의 볼에 뽀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도 스킨쉽이 거의 없었던 부자는 이제서야 볼에 입을 맞추는 사이가 됐다. 그는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티비 앞에서 밤 열두 시가 넘어 나도 운다.

 

 

사회역사학자 로널드 블라이스는 말했다. '노인들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키스와 포옹이 필요한 인생 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의사 외에는 누구도 그들을 만지지 않는다. <중략>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아버지를 만나고 헤어질 때 껴안으면서 인사를 하면, 아버지는 몸을 떨면서 울고 또 운다.

-데이비드 실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중

 

 

 

 

저자 데이비드 실즈의 아버지는 놀랍게도 97세다. 데이비드 실즈는 이성재보다 나이를 다섯 살 정도 더 먹었다. 그도 아버지를 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성재의 아버지처럼 아들의 뽀뽀를 얌전히 받는 대신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흐느껴 울기까지 한다. 아들은 에너자이저 토끼 같았던 아버지가 이제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깨닫는다. 나이듦을 이해하는 것이 죽음과 화해하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죽음'이라는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을 저도 모르게 저어한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는 경구를 인용하며 삶의 단계는 의학적으로 통계적으로 경험적으로 설명되고 고백된다. 이 책은 저자의 인터뷰 내용처럼 '파괴적 논픽션'이자 통렬한 자서전이다. '나이듦'과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아프게 더듬는다. 우리는 누구나 늙고 죽어 사라진다. 이 당연한 명제를 이다지도 길게 이다지도 와닿게 듣다 보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몽환적인 낭만성은 허무한 사기극처럼 다가온다. 인간의 삶의 몰락성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는 구태여 멀리 찾지 않아도 된다. 슬프게도 그것은 우리의 부모님에게서 뼈아프게 배워야 한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에게 이겼지만 결국은 질 것이고 데이비드도 그러하다,고 서글프게 고백한다. '죽음'과 '시간'은 언제나 우리 위에서 걸어간다. 백전백승이다. '지금' , '여기'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마도 백 년 이상의 시간차는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내 의지대로 살았다고 믿었는데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나는 결국 어머니 손바닥 위에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은 나이를 먹는가 보다.

-이근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이 책을 아버지 이름 앞으로 배달하고 선물 메모를 넣었다. 과거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판하기도 하고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을 쏟아낸 적도 있다. 지금 막내 남동생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아이를 낳고 노모를 봉양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의 손을 이제 잡아드리고 싶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부딪히게 되는 각종 한계 상황들 앞에서 어쩌다 한번씩 한 실수로 부모의 전체 역할을 폄하하고 심판하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인 일이다. 누구나 상처는 있다. 그 상처 위로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은 작별이다. 마침내 '나'도 사라진다. 그 다음 우리는 서로 안을 수도 입을 맞출 수도 사과할 수도 고마워할 수도 용서를 받을 수도 없다.

 

더 많이 사랑하고 그보다는 더 많이 표현할 일이다. 데이비드 실즈가 알려 준 것.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인생의 첫30년은 사는 데 쓰이고, 이후 40년은 삶을 이해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믿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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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12-25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아버지를 만나고 헤어질 때 껴안으면서 인사를 하면, 아버지는 몸을 떨면서 울고 또 운다.
- 엄마한테 스킨십은커녕 전화도 잘 안 드렸는데, 이 문장보고 몸이 떨리네요. 누구나 늙는 것을...
글 잘쓰는 블랑카님, 메리크리스마스^^

blanca 2013-12-26 12:06   좋아요 0 | URL
팜므느와르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어요? 저도 정작 아버지,어머지 손을 잡았던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지금도 잡을 수 있을까, 안아드릴 수 있을까, 괜히 부끄럽게 느껴져요. 내년에는 부디 더욱 더 아쉬움이 남지 않는 표현하는 딸들이 되어 보아요^^

프레이야 2013-12-2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전 오늘 큰딸이랑 갈등을 빚으며 설왕설래 하다가 제가 그랬네요, 니가 뭘알겠냐고, 니가 무슨 내속 엄마속을 알겠냐고, 지적질 해댔던 옛날의 나를 돌이켜보며 어머니의 삶, 나아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더 살아가고 있나보다 끄덕이게 되네요. 즐거운 성탄 보내셨지요!

blanca 2013-12-26 12: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제가 부모님한테 했던 언행들 생각하면 --;; 그런데 참 사람이라는 게 딱 나이에서 고만큼의 앎과 시야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또 그런 실수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이제는 돌아보았을 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은 삶을 살고 싶은데 잘 할 수 있을지...

저는 아직 산타를 믿는 딸의 선물을 택배 아저씨께서 딸과 함께 있을 때 배달해 주시는 기염을 토하셔서 ㅋㅋ 후다닥 숨기느라 쇼좀 했어요. ^6^ 크리스마스 낭만적으로 잘 보내셨죠!

마태우스 2013-12-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라는 단어, 저한테는 좀 더 의미가 크죠.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못한 채 보내야 했으니깐요. 엊그제가 아버지의 12주기 제사였답니다.... 암튼 그건 그거구요, 블랑카님 글은 언제나 감탄이 나오게 만드네요. 서재달인이란 타이틀이 정말 당연해 보이는 글솜씨....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다

blanca 2013-12-26 12:10   좋아요 0 | URL
아....... 어떤 댓글을 달 수 있을런지....
마태우스님은 엊그저께도 티비에서 뵈서 너무 반가웠어요.
그런데 피부 및 외모가 계속 너무 일취월장이에요. 정말 카메라 마사지라는 게 있는 걸까요?^^;;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죠?

마태우스 2013-12-27 22:52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솔직히 별루였어요 ㅠㅠ 그냥 뭐, 일했죠...ㅠㅠ 아내와도 사이좋게 못지냈어요 흑흑. 제 좁아터진 소견머리 땜시...

마녀고양이 2013-12-2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께서는 부모님께 손을 내미시는군요.
저는 부모님과 밥도 먹고, 김치도 얻어오고, 수다도 떨지만
여전히 제 감정을 활짝 열어보이기가 어렵답니다. 마지막 문구, 좀 더 많이 표현해야 한다는.... 징 울리네요.

blanca 2013-12-27 11: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아직도 저는 멀었지만 그래도 퇴보하지 않고 나날이 조금 더 나아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자꾸 예전에 했던 실수들이 생각나서 곱씹을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서 나중에는 오늘을 생각할 때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