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모든 것이-보고 듣고 만지는 것 모두-하늘에서 내려온다. 선택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아이들 위로 그저 내려온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에쿠니 가오리 <울지 않는 아이> 중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저 내려오는 그런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다.
스무 살 적 톨스토이의 사진. 미남은 아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던 증언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을 듯한 모습. 깊은 눈매는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이제 그는 열 번째 생일 이후부터 시작되는 유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언어는 레프 톨스토이 덕에 자기 자신이 이루어 놓을 수 있는 가장 명징한 구체성과 생생함을 마음껏 발휘한다. 게다가 이 자전적인 연작 소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해도 된다면) 그의 처녀작이다. 어떤 서투름, 소박함 등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이 거장 앞에서 실패하는 언어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위대한 작가는 이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아픈 자각이 뒤따른다.
니콜렌카 앞에서 관찰되는 독일인 가정교사를 비롯한 집안의 일꾼들의 모습은 매우 적나라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아무리 늙고 비천한 신분이라도 이 소년 앞에서는 저마다의 미덕으로 존재 가치를 가진다. 물론 그의 시선은 어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의 시선은 아이의 그것으로 내려가 있기도 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그 아련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안타까움으로 회상하는 애타는 마음이기도 하다. 신나게 뜀박질을 하고 와 시원하게 우유를 마시면서 꾸벅꾸벅 졸며 사랑하는 어머니 앞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르셀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 어머니와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늙은 하녀의 죽음을 겪으며 마침내 유년기의 출구에 당도하는 모습에는 누구나 절절하게 겪고마는 성장통의 아픈 상흔이 드러난다.
마음에 드는 예쁜 소녀와 마주르카를 추지 못해 안달을 하다 가정교사를 폭행하기까지에 이르는 그의 서투르고 거친 모습은 누구나 가슴 한 곳에 숨겨두는 그 무모하고 서투른 젊음의 치기를 한번씩 꺼내보게 한다. 말년의 다듬어지고 닦인 그의 고결한 모습의 원형에는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들도 침잠해 있으리라. 이렇게 보면 타인에 대한 이해는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의 그 숱한 실수들과 실패들과 자학들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그가 니콜렌카의 목소리를 빌려 고백하는 것들의 정밀성과 공감을 획득하는 능력은 정말이지 매우 놀랍다. 니콜렌카의 모든 행동, 감정, 의지, 생각 들은 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부딪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또다른 복기다. 자신의 못남을 숨기려다 오히려 과장되게 행동하고 후회하는 모습, 간혹 솟아오르는 그 젊음 자체가 주는 놀라운 희열, 그럼에도 또 때로 곤두박칠치는 그곳의 비극성. 빛나는 시선으로 훑고 가는 그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물, 풍경에 대한 묘사들.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그 문화 특유의 공감대. 니콜렌카가 대학에 가서 동기들과 프록코트를 벗어 던지고 화주를 마시며 치기를 부리는 모습은 대학 신입생들의 환영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그가 이따금씩 느끼는 자신의 태생적 신분을 통해 누리는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죽음, 삶, 윤리에 대하여 고뇌하는 순간들은 오늘날의 톨스토이가 태어나는 데에 일종의 복선 역할을 한다. 그냥 그렇게 편하게 이기적으로 누리며 살 다 갈 수도 있었을 귀족의 자제가 수많은 삶의 편린들을 언어의 체로 걸러 내어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과 삶 자체를 분리할 수 없어 고뇌하다 마침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 분투했던 한 위대한 인간으로 산화하는 그 과정의 산고의 시발점을 찾을 수 있는 작품. 아니, 이도 저도 다 차치하고 그저 우리 머리 위로 마구 내려왔던 그 투명한 시간들을 한없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 하나 응축하여 손 안에 가두어 놓으려 했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의 결정체가 바로 이 작품이다.
에쿠니 가오리에게 이미 그의 이러한 과업들이 건너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무튼 다시 한번 권해 보고 싶다. 비처럼. 눈처럼. 햇살처럼. 그는 마침내 해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