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세이스트로서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소설가로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기에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조목조목 댈 말은 없다. 어느 날 여동생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고 들어왔다. 누군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며 읽어보라 했단다. 이윽고 나는 동생 대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었지만... 끝내 완독하지 못한 소설로 남았다. 그 다음부터 막연히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청춘에 그의 작품과 조우했던 극적인 순간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너무 젊어서 그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서들, 느낌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 어떤 휑한 간극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야기하는 하루키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다. 대인관계도 활발하지 않고 그저 규칙적으로 일어나 근육을 단련하듯 필력을 연마하는 겸손한 생활인이다. 그런데 그가 썼다는 이야기들에는 흔히 방황하는 청춘이 있고 꿈틀대는 심연의 욕망이 있고 때로 미처 실현되지 않은 좌절된 꿈들이 있단다. 그는 나의 엄마 연배이다. 그러한 그가 썼다는 이야기가 정말 그 어떤 젊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나는 의심했다. 그러니 내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의구심이 항상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쩌다가 이동진과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색깔 없는 사내 다자키 쓰쿠루와 엮여 버리고 말았는 지. 만약 이번에 다자키 쓰쿠루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영영 하루키의 소설과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매혹된 지점은 읽기도 전에 서른여섯이 스무 살로 돌아가서 푸는 어떤 실타래라는 것이다. 종종 아니 이제는 가끔 나는 그 비슷한 연배에서 스무 살로 곧잘 돌아가서 움직이고 느끼고 사랑하고 울고 좌절하는 나를 무연히 지켜본다. 그 나이의 나는 지금의 '나'와 백만년보다 더 떨어져 있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지금의 깨달음과 노쇠함을 가지고는 그 시절의 나를 곱게 지켜볼 도리가 없다. 아마 그런 아이가 내 주변에 지금 있다면 나는 참 황당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잔소리와 훈계를 해댈 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었다.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스쿠루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

-p.421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스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로 시작하는 다자키 스쿠루의 이야기.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 그룹에서 제명당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 모두 그의 연락을 피한다.  그는 고향 친구들의 왕따에 여린 속살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파한다. 이후로 그는 대학을 마치고 철도기업의 지하철역을 설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것처럼 보이며 그 일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며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의 제안과 독려로 스무 살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옛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그는 함께 했던 친구들이 때로는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남고 때로는 부적응자가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모습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 우정의 펜타곤이 무너진 지점에 그룹의 일원인 시로가 자신을 그녀의 삶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한 것을 발견한다. 도저히 그럴 캐릭터가 아니었던 그였지만 친구들은 저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그녀의 위증 아닌 위증을 수용한다. 하루키가 주목한 지점은 이곳이었다. 남녀가 섞여 있던 친구 집단에 그 어떤 이성적 호기심도 허락하지 않았던 암묵적 동의 밑에 깔려 있던 저마다의 어두운 욕망, 질투가 마침내 옅은 속살을 뚫고 나온 곳. 누구나 비뚤어지고 어그러진 욕망이 해소되지 못한 지점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통찰. 만약 그랬더라면,의 가정들이 난무하는 추억으로의 회귀 지점에서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똑같은 오늘에 대한 긍정. 여기에는 매일 아무리 힘들어도 육체 단련을, 글쓰기를 미뤄두지 않는 성실한 절제력을 가진 하루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욕망을 응시하지만 그 욕망에 함몰되는 인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 욕망을 억지로 비끄러매고 숨기면서 때로 불거지는 비극으로 인간의 삶 전체를 포박하지 않는다.

 

쓰쿠루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연하의 친구와 그를 그룹에서 내치게 만든 여자 친구 시로와 쓰쿠루를 연결하는 지점에 리스트의 피아노곡 <르 말 뒤 페이>가 있다. 그 자신이 재즈바를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소설적 정서와 장면의 여운을 고조시키는 데 아주 절묘한 역할을 한다. 그 어떤 부속이 아니라 순간 핵심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개별의 이야기를 보편의 그것으로 확대시키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단지 무미건조한 쓰쿠루가 겪은 왕따의 아픈 추억에 대한 치유의 여정이 아니다. 직업병에서 비롯된 면도 있겠지만 쓰쿠루가 지하철역에서 관찰하는 그 수많은 출퇴근에 지친 직장인들의 정경, 특이한 유실물들에 대한 역직원들과의 대화, 아버지의 방황기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대학 후배와의 대화 들은 내러티브를 뛰어넘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지한 철학이 있다. 사람의 내면에는 아무리 친밀한 타인도 심지어 그 자신도 응시하기 힘든 어두운 심연이 있다. 그 심연에 조약돌을 던져 생기는 파문이 번져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자리에 하루키가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함몰되지 않는 미덕에 그가 거는 타인과의 공명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한 '너'와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삶에 대한 책무라는 것을 하루키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이제서야 온전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냈다. 그것은 분명 이십 대의 나로부터 내가 걸어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나 보다. 전학와서 사귄 친구와 단짝이 되어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 우연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책을 보게 되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의 책이었나 했다. 단숨에 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이 되었다. 어떤 긴장을 끌고 가는 힘 뒤에 애거서가 슬몃 슬몃 뿌려 놓는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막 달리는 롤러 코스터가 아니라 때로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뒤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그녀만의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은 감해지지도 스러지지도 않고 꾸준히 나의 성장과 함께 했다. 그녀가 다른 필명으로 장르 소설이 아닌 본격 소설 작품을 한동안 썼고 그것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출판되어 또 다른 진지한 삶과 여인의 내면에 대한 천착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참 반가웠다. 까도 까도 또 깔 껍질이 나오는 양파처럼 이 작가는 무궁무진하고 깊다.

 

그녀는 다행히도 환갑 언저리에 시작하여 장장 15년에 걸쳐 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남겨 두어 나 같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다.  고고학자인 남편을 따라 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이라크의 님루드에서 시작된 그녀의 삶의 복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파란만장한 문학이다. 전체를 따라 흐르는 그 유쾌한 분위기와 삶의 애착이 참으로 따뜻하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진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치기도 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여전히 확신한다.- 서문 중

그녀는 뉴욕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오빠와 언니를 둔 다복한 가정의 사랑받는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인내심 많은 유모와 유쾌한 아버지, 이해심 많고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 밑에서 그녀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는 행운을 누린다. 유아기와 유년기에 대한 그녀의 묘사는 너무 생생해서 상상놀이에 심취하고 굴렁쇠를 굴리는 어린 애거서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번도 진지하게 작가를 꿈꿔보지 않았고 음악에도 재능을 보이고 약제실에서도 일했던 그녀가 우연히 어머니의 제안과 격려로 이야기를 쓰게 되는 장면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써 보기 전에는  쓸 수 있는 지 알 수 없다,는 어머니의 조언은 금과옥조다. 디킨스를 함께 읽고 어떤 선택이든 지지해 주었던 그녀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거의 한 세기 전의 그녀의 어머니의 육아 방식은 자녀의 눈높이에서 성장의 단계마다 아낌없이 호응하고 너그러움을 발휘하는 모습으로 오늘날의 각종 육아서에서 설파하는 가장 이상화된 엄마의 현현 같았다. 어쩌면 애거서가 그렇게도 삶에 대한 굳건한 애정과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러한 행복한 성장 과정이 밑받침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의외로 평생 눌변이었고 소심한 편이었다고 한다. 여행이나 변화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애거서가 그 틀을 깨고 나와 세계일주를 하고 심지어 중동에 가서 유적 발굴에도 참여하는 모습이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누군가 데려다 주기 전에는 산책을 나가지 않는 개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살 지 모른다는 그녀의 조언은 울림이 컸다. 그녀의 이야기 속 귀여운 해결사 할머니 미스 마플의 모습은 그녀가 군데 군데 남발하기도 하는 빛나는 조언들 속에 녹아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듣기 싫지 않도록 위트와 자신의 경험을 풀어 놓는 장치가 아주 정교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녀가 아마추어 작가에서 프로 작가로 나아간 지점에 '돈'이 있었다는 솔직한 고백도 그렇다. 백년해로할 줄 알았던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다 끝내 이혼을 선택하는 장면은 노년인 지점에서의 회상씬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슬프고 애잔하다. 재혼의 대상이 될 줄 모르고 한참 어린 청년과 예쁜 빛깔의 돌을 색깔별로 늘어놓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의 이름은 맥스이고 그녀와 백년해로하게 되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등장시킨 미스 마플의 <잠자는 살인>을 헌정받게 되는 주인공이 된다.

 

 

나는 지금 대기실에서 피할 수 없는 부름을 기다리며 빌린 시간을 살고 있다. 부름이 내리면 그것이 무엇이든 기꺼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리라. 운이 좋게도 우리는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다. 지금까지 너무도 복된 삶을 살아왔다. <중략>

에스키모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찬미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화창한 날 늙으신 어머니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얼음 너머로 걸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처럼 위엄 있게 단호히 삶을 떠나는 것은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리라.

-에필로그 중

 

 

일흔다섯의 나이에 삶에 관한 한 말해야 할 것은 모두 말했으므로 자서전을 끝내야겠다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되풀이해 읽었다. 그저 언어로 포장한 것이라 할지라도 죽음에 대하여 이토록 담담하고 아름답게 이야기한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늙음과 죽음은 항상 두렵고 소외된 것이라 여겼는데 이 위대한 추리 소설의 여왕이 노년에 이야기하는 그것은 어떤 타협의 지점에서 깊이 있는 울림을 주어 기억해 두고 싶다. 위엄 있게 단호히 삶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삶의 근사한 대미로 장식될 것이다. 소멸은 물론 분명 어떤 고통을 담보로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번 존재한 것은 무엇이든 영원히 존재하는 법이라는 애거서의 이야기를 위로로 담는다. 그녀처럼 더없이 행복하기만 한 유년을 가지는 축복은 받지 못했지만 나에게 아낌없는 헌신과 스러지지 않는 사랑을 가르쳐준 나의 할머니와의 추억들도 엄연히 거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몇 번이나 다시 돌아가 끝내 하지 못한 포옹과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으니까. 프롤로그가 아니라 에필로그를 장식한 애거서의 어린 시절 사진은 분명 그런 기회가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삶을 예찬할 수 있었던 그녀의 작품들을 읽어 온 시간들이 더욱 더 오롯이 나에게 채워지는 것 같은 시간들, 고마운 이야기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1-0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라면 실종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올려요. 어렸을 때 미스터리 모음집에서도 나올 정도로 특이한 사연이었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로 크리스티가 사라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마도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이 자서전을 읽으면 실종 사건에 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blanca 2015-01-04 10:09   좋아요 1 | URL
저도 어렴풋이 들었는데 자서전에서 이 중대한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어요. 찾아보니까 첫남편의 외도후 운전해서 나간 차에서 실종되었는데 어느 여관에서 그 남편이 외도한 상대 여성의 이름으로 묵고 있었다고 해요. 이게 충격에 의한 기억상실인지 아니면 일존의 연기였는지 그 진실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cyrus 2015-01-04 23:50   좋아요 0 | URL
하필 제일 중요한 내용이 없다니 아쉬워요. 그래도 본인에 관한 모든 얘기를 자서전이라해서 무조건 다 알려줘야하는 법은 없으니까요. ㅎㅎㅎ

라로 2015-01-04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 나이에 아가사의 팬이 되셨군요~~~초딩때의 독서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해든이도 아가사를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수준이~~~ㅠㅠ 그러고보니 블랑카님 엄청 똑똑하셨군요!!!

blanca 2015-01-04 10:09   좋아요 0 | URL
아웅, 비비아롬모리님, 똑똑한 것과는 ㅋㅋ 거리가 있었어요. 참, 해든이 혹시 구스범프는 어떨까요? 요새 분홍공주는 거기에 빠져 있는데 글밥이 좀 많아서 부담스러워하긴 하더라고요.

라로 2015-01-06 04:16   좋아요 0 | URL
분홍공주는 벌써 구스 범스를 읽는 다는 말이에요!!! 저도 이번 학기는 분발해야겠네요~~~. 어쩌면 해든이도 읽으라고 하면 읽을지도 모르겠긴 하네요,,,^^;;; 암튼 더 분발해야 겠어요,,,해든이 막내라고 거의 방목!!ㅠㅠ
 

2014년이 가고 2015년이 온다. 1996년을 제외한다면 나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한 해는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난 해를 정확히 기억해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누군가 2001년을, 혹은 2009년을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시간이란 인위적인 구획으로 가두는 것이 불가능함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는 머뭇댄다. 정말 2015년이 오고야 만다.

 

서른 살이 되는 나를 1996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마흔 살이 되는 나를 2014년에는 현실감 있게 지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 내가 쉰도 심지어 여든도 될 수 있음을 안다. 이제 나는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로 간다.

 

2014년,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아침을 유모차를 굴리며 학부형이 되는 시간들을 나름 힘겹게 보내고 결혼기념일 한 학교의 한 학년 아이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거짓말 같은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창 예쁜 짓을 하는 아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더욱 더 그 부모들 마음에 감히 감정이 이입되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 게 세상사구나, 싶어 사는 게 더 한층 두렵게 느껴졌다.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더 육아서에 집착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좀 더 나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안심이 되고 어떤 방향등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많은 육아 관련 책 중 이 책은 나에게 베스트다. 무엇보다 어떤 교조적인 가르침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제 아이를 키우는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 더 나아가 그 인터뷰에 응한 부모들에 대한 강한 공감, 친밀감, 지지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공명하게 한 점이 감동적이었다. 유아기, 어린이, 사춘기를 거쳐 성장해 가는 아이들에 따라 변하는 부모의 역할과 자리에 대한 느낌, 감정 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우리가 부모가 되어 부모로 산다는 것이 우리의 긴 생애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까지 나아간 부분은 이 책의 대단원이다. 좋은 부모로 사는 것보다 좋은 인간으로 삶을 잘 사는 것과 그것을 접목시키는 지점에서 읽는 이의 지지를 끌어낼 수 밖에 없는 책.

 

소설은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재미있게 읽은 것이 많았다. 특히 브론테 자매의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시골의 목사관의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나 그런 다이나믹한 상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는 지, 정식으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닌데 문장들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 지, 요절한 자매들은 소설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 같았다.

 

 

 

 

 

 

 

 

 

 

 

 

 

 

 

 

찾아보니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톨스토이의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읽은 기록이 있다. 지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유아기부터 소녀 시절을 거쳐 이제 애거서는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힘든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아직 유명 작가가 되기 전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십 년이 훌쩍 지나 영국 여왕과 만찬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전업 작가가 되리라고도. 나도 지금으로부터 사십 년 뒤 내가 어떤 모습일 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여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그 때도 건강하게 읽고 쓰고 까페라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지금 같은 정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상식이하의 끔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도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으니 그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지금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너그러워지고 사랑이 많아지고 편견이 적어졌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품어본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5-01-0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블랑카님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많이 배웠어요~~~. 늘 충실하게 글쓰는 모습을 배우고 싶고요,,,2015년도 블랑카님의 서재를 즐겨 찾으며 공감을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가족이 늘 평안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5-01-01 16:57   좋아요 0 | URL
비비아롬모리님, 서재에 돌아오셔서 생생하고 즐거운 일상 남겨주어 저에게도 행복 전염이 되어 고마워요.
비비아롬모리님 가족도 또 저희 가족도 항상 건강하고 더욱 즐거운 이벤트 많이 만드는 2015년이 되어요.^^

2015-01-0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5-01-0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한 모습을 갖는 일은 생각과 달리 꽤 어렵더라구요. 요즘 들어 자주 느끼죠. 블랑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_ 더 그득한 사랑 누리시기를 바랄게요.

blanca 2015-01-03 15:08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더 즐거운 읽기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저는 아직 멀었어요. 계속 실수하고 반성하고 그러며 나이 먹는 것 같아요.

2015-01-0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03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더..배워야 한다니..또 고쳐야 한다니.
한참..멍해서 종일 부지런 떨어 집안일을
했어요....더는 새로울 게 없다고.
저는 어디서 그런 마음이 든걸까요ㅡㅡ
이건 책 속에 있을 답이 아닌 듯 합니다.
하긴..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책엔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하는 인생의 정답 따위..없어요.그렇지요?. 또 다른 길이
있을 뿐... 음..은사님..하핫 자주 뵈야지.좀 괴롭혀 드리고..약도 좀 올려 드리고요.부쩍
노염이 많아지시더라고요..흐하하..세월의 힘이지..합니다.더 자주 가까이 뵈야지.
blanca 님..단꿈..꾸시고 또 뵈요..^^

blanca 2015-01-03 15:1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집안일 얘기하셔서 돌아보니 제 주위는 --;; 새해 벽두부터 속에 탈이 나
이것저것 다 의욕 상실이네요. 저는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나마 정답이라고
여기던 것들도 또다른 시각에서 다른 답이 보여요. 이게 지각의 한계일까요?
안 그래도 며칠 전 저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는 꿈을(미생 부작용일까요 ㅋㅋ) 꿨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힘들었던 상황을 너무 잘 풀어가고 있어서 일어나고 나니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장소] 2015-01-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합니다.저는 불면증이 심해요.잠을자도
보통 악몽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누구와 곁을 같이해 잠을 자는 것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되곤합니다. 아직 새해..잠든 시간이래야 잠시 앉아 꾸벅 존 정도..그 사이 다녀간 손님도 역시 지독하게 ..이건
좋은지 않좋은지..ㅎㅎㅎ반복해서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여러버전으로 제가 한꿈에서 수도 없이 지독하게 죽고 .죽고 또 죽고..뭐,
그럽니다..이젠 아..또 올게 왔구나..할정도..입니다.하도 여러버전으로
다양하게 죽어봐서요.
인생을..신입으로 다시 사는것.과 죽었.다
사는 것..뭐가 더 끔찍할까요?
저는 이쪽도 blanca님 쪽도 그닥 반갑진
않아요.하핫..
그래도 blanca님 꿈끝이 기분 좋으셨다니..
참 다행이고 기쁩니다.^-^

blanca 2015-01-04 10:11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아웅 힘드시겠어요. 저도 물론 악몽도 꾸긴 하지만 좋은 꿈 어쩌다가 한번 꾸고 나면 그 여운이 참 달콤하더라고요. 저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어요. 내용도 다니나믹하게요.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꿈없는 밤이 많아지네요.

[그장소] 2015-0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뭐 벌써 연장전 돌입해서요..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이 예민한 상태..
집중 못하고있죠.^^ 그래도 점점 꿈이 줄어
든다니 희망이 저...멀리 있긴 한거네요.!
비소식있더라고요..오후던가,내일즈음..감기 조심하시고요..기지개 켜고 시작할까요?^^

blanca 2015-01-05 19:2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많이 풀렸더라고요. 마무리하는 시점에 댓글을 달게 되네요.
그장소님도 오늘 하루 잘 마무리하셨기를 바라요^^

[그장소] 2015-01-0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 맛있게 드셨나요? 날씨 풀린 듯..했죠. 그치만 비 올거같아요...잠자리 드시기까지 내내 평안이 함께..
그럼.또 뵈어요*^^*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때로 이런 상상을 한다. 겨울밤이었으면 좋겠고 아주 따뜻한 실내, 밤새 나는 듣기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그런 분위기. 살아온 이야기도 괜찮고 읽은 책 이야기면 더욱 좋을 것같다. 졸면서도 듣고 잘 듣고 있다고 이따금씩 되도 않는 이야기를 덧붙여도 되는 그런 정경. 하지만 되도록 너무 심각하거나 너무 진지하거나 너무 졸렬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 하는 바람을 십분 충족시키는 그런 책이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선별한 소설 일곱 편을 둘러싼 그들의 이야기다. '빨책방'은 정말 책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진 책 전문 팟캐스트다. 매번 챙겨듣지는 못하고 가끔씩 관심있는 책을 다루었을 경우 골라 듣는 정도였다. 영화평론가라지만 독서의 스펙트럼이나 깊이가 여느 작가 못지않은 이동진의 매끄러운 진행과 유려하지 않은 듯한 말투 뒤에 슬며시 작가다운 촌철살인과 성실하게 언어를 차곡차곡 쌓고 표현하는 김중혁의 착한 반응 들은 때로 두 사람의 친밀감에서 비롯된 재치 있는 위트와 더불어 정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한껏 주는 방송이다. 서문에도 나오지만 '독서'는 분명 아주 사교적인 행위는 아니다. 아니, 고독한 일이다. 이것에 소통이 덧대어질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분명 기대이상이다. '읽는 일'을 마치 여러 사람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친밀감을 나누는 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이 방송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미처 읽지 못한 책도 아니 취향의 문제로 영원히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다. 지루하지도 낯설지도 않게 이 두 사람은 다독여준다.

 

특히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그저 주어진 대로 읽기에 급급해 소설의 깊이와 완성도에 분명 경도되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던 나에게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사랑과 속죄의 드라마를 복기하며 제대로 깊이 있게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좋은 소설을 너무 늦게 읽어 배신감까지 느꼈다는 중혁 작가의 말, 만약 이 소설을 아직 안 읽었다면 여기서 이 책을 덮고 무조건 읽기부터 하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소설의 다양한 층위와 더불어 작가 이언 매큐언의 이력, 영화의 한계 들에 대한 이야기는 <속죄>를 미처 시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시작해버린 사람들에게도, 이미 끝낸 사람들에게도 더 풍요로운 읽기를 가능하게 할 것같다.

 

두 번째로 언급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 어떤 추천사보다 화려하다.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 중에서 이 정도로 통찰력 있는 소설도 드물 것 같다."는 이동진의 첨언은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는 독법의 제시와 더불어 당장이라도 이 책을 구하러 뛰어 나가고 싶게 만든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회한의 정서'로 돌아보는 과거로 마지막에 거론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샐린저 평전>을 읽은 중혁 작가가 작가의 은둔을 고집했던 생애와 종국에는 그를 그러한 고립으로 몰아 넣어 버린 <호밀밭의 파수꾼>을 함께 이야기한 것은 작품이 결코 작가의 삶에서 떼어내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또다른 읽기의 지평을 열어준다.

 

소설과 영화의 완성도 모두 높았다고 평가되는 <파이 이야기>는 각각 작가와 감독의 색채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그 미묘한 차이와 색깔, 강점을 눈에 보이듯 보여준다.

 

읽지 않은 책이라도 다 읽어버린 책이라도 무방하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도 약간의 스포일러만 감수한다면 전혀 낯설지 않게 데면데면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고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 층위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말 그대로 참 좋다. 에세이만 읽은 하루키에 대해서도 '소설도 어디 한번'을 가능케 하는 저력을 갖추었으니 믿고 따라가기만 해도 참 유쾌한 시간이었고 할 수 있다.

 

다 차치하고 이렇게 진지하게 이렇게 장시간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지면이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그래서 마음이 한없이 노골노골해지는 그러한 위안이 되는 책. 겨울밤에 읽으면 따악 좋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4-12-29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저는 신형철의 팥케스트를 간간히 듣고 있을 뿐 빨간 책방까지는 진입을 못했는데...그냥 공허한 공간에 사람의 소리가 노래가 아닌..목소리가 필요할 때
좋더군요. 나즉 나즉 한 것은 그것대로 매력이고요..언젠가 청취..하겠습니다.잘 읽고 배워 갑니다. 포근한 새 해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ㅡ(^-^)v

blanca 2014-12-29 12:48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저는 아직 신형철의 팟캐스트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맞아요. 라디오에서 그냥 나직나직 사람 목소리만을 듣고 싶을 때 이런 책 관련 방송이 참 위로가 되지요. 덕분에 포근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세실 2014-12-29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정치적 상황 건너뛰고 읽으면 완벽한 러브스토리죠. 저도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 뛰었어요^^
<속죄> 읽고 싶네요.

blanca 2014-12-29 12:5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는 쿤데라 책은 <불멸>만 읽어봤어요.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어요.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렇고 세실님도 그러시고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니 ^^;; 좀 걱정이 되네요. <속죄> 정말 강추입니다! `소설은 죽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작품 같아요.

섬사이 2014-12-30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의 빨간 책방, 저도 매번 챙겨 듣지는 않지만, 가끔 지루한 집안일을 하게 될 때 켜놓고 듣곤 해요.
얼마전에 <다섯째 아이>를 읽고나서 빨간 책방을 들었는데,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과 다른 시각을 알게 되어 놀랍고 기뻤어요.
<속죄>, 꼭 챙겨 읽어봐야겠네요. ^^

blanca 2014-12-30 14:53   좋아요 0 | URL
아, <다섯째 아이>도 다루었군요. 아무래도 방송이 분량이 있고 그냥 흘려듣기는 힘들어서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 해서 제대로 다 듣지 못해 아쉬워요. 섬사이님, <속죄> 꼭 읽어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2014-12-3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31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하지 않다"와 "불행하다"가 동의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제 더 이상 온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질투심이 없어졌다,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별것 아닌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좀 밀어 둘 수 있지만 그것이 사소한 일들 모두를 쿨하게 넘길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인간이 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살아온 만큼 더 살면 노인이 된다. 지금은 어떤 능선을 따라 내려오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천상병 시인은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회고할 수 있게 늙었지만 나에게 비친 세상은 점점 더 참혹하게 느껴지고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게 비치고 나를 감싸던 안온한 포근함은 점점 더 하나의 착각처럼 느껴진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비극이 일어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기본 원칙은 수시로 무너지는 풍경, 그것이 내가 곧 사는 곳이다. 이제 더 이상 바깥은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춥지만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귤을 까먹으려 읽고 또 읽었던 '쿠오레' 같은 세상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엄혹한 현실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 불평등과 부조리, 착취와 굴종만이 삶의 조건인 것일까?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한 느낌은 늘 따듯했다. 비록 늘 지쳐 있었지만 어딘가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와 다정한 엄마, 자신이 누군가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뿌듯한 안심...... 그것은 마치 새 둥지처럼 아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은 다 사라지고 없는 걸까? 왜 모든 게 가혹하고 싸늘해진 걸까? 그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천명관 <퇴근> 중

 

맞다. 이런 느낌인 것같다. 미래의 사회상을 그린 극단적이고 어두운 이 <퇴근>이라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세계의 나락에서 건져 낸 이 비참한 가장의 회고는 사실 미래의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때로 너무 슬프고 너무 아프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종종 가지는 안온하고 따뜻한 그 안정감의 보루만은 명확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구체적인 풍경 때문이 아니었고 어린이만이 세상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그 아주 편협하고 자그마한 영역의 울타리가 주는 본질적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중년이 되어간다는 이러한 싸늘한 느낌은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는 위로,가 분명 주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한국작가가 쓴 단편을 찾아 읽지 않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밀도 있는 찰진 서사가 뚫고 들어오던 내면의 벽이 더 두꺼워진 탓도 있을 테고 어느 순간 한국의 단편에도 어떤 '찡'하던 총기가 감하고 매력이 흘러 넘치던 전성기를 치고 내려오는 지점에서 좀 머뭇댔던 탓도(나만의 생각?) 있었던 듯 싶다. 하지만 김훈, 김연수, 은희경, 성석제, 김영하, 김언수, 천명관이 쓴 단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같았다. 그것도 이럴 줄 알았어,가 아닌 역시 산타 할아버지는 늙지 않는구나, 싶을 만큼의 재기가 여전히 반짝이는.

 

김훈의 노량진 고시텔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의 이야기는 역시 그의 정묘한 문장, 묘사 들과 어우러져 생생한 하나의 르포 같았다. 사실 나도 여기에서 재수를 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는 낯설지만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사육신의 묘지의 이야기와 공무원 시험 과목 중 국사의 쪽집개 식 강의가 펼쳐지는 풍경과의 교차는 마치 우리의 삶과 어떤 죽어 있는 이론, 상식의 대조의 풍경과 닮아 있었다. 필요에 의해 가난한 계약 동거를 마치고 쿨하게 찢어지는 '나'와 '영자'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담담하지만 어떤 '찡'한 구석이 있다.

 

김연수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여전히 김연수적인 아름다움과 또 거기에 덧대어진 약간의 권태, 하지만 은은한 여운이 길게 남는 이야기였다. 한국의 포크 여가수가 일본에 공연 초대를 받아 간 사연, 또 그 사연이 서술되는 방식인 이미 끝난 사랑에게 보내지는 이메일, 자신은 미처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떤 성의가 익명의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는 감동, 김연수의 시선은 여전히 별을 향해 있어 반갑기도 하고 안심이 된다.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는 섬뜩했다. 마트에서 우연히 아이를 잃게 되고 그 아이를 찾아 헤매며 흘러가는 십년 남짓한 세월이 파괴하는 일상, 그 일상을 다시 뚫고 들어오는 실종된 아이의 귀환이 행복이라는 마침표 대신 더한 비극과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의 진폭은 소설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소름이 끼쳤다.  앓던 이가 빠진다,는 표현. 어쩌면 우리는 어느새 '앓던 이'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미결로 남아 나를 규정하고 내가 그것을 하소연하는 데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고민했던 모든 문제가 풀리고 남는 것은 명쾌함과 행복이 아니라 어떤 황망함과 또다른 상실감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그러한 예리한 간파.

 

천명관의 <퇴근>은 놀라웠다. 회사에 정식으로 출퇴근하는 정규직들은 극소수의 상류층으로 고착화되고 대다수는 '담요'라는 너절하고 초라한 '환유' 아래에서 하루 하루 힘겹게 생존을 위하여 투쟁해야 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일말의 진실은 사실 우리가 지금 오늘 애써 외면하는 지대에 있다. 미 모든 역겨운 일들의 중심에는 사실 사람마저 도구화 부속화시키는 천민자본주의의 횡행이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제 욕할 정부마저 슈퍼리치들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모든 것들이 철저히 돈의 논리에 종속되는 황량한 풍경을 눈에 보이듯 그린다. 천식에 걸려 암시장에서 약을 구해야 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해매던 무능한 아버지가 어린 시절 집을 나갔던 아버지와 재회하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압권이다.

 

토마 피케티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 터라 그와 함께한 좌담 자리의 기록이 반가웠다. 자본주의의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그의 대안적 관점은 실현 가능성이나 한계 등을 차치하고라도 오늘날 누구나 느끼고 있는 물질에 의한 삶과 생명의 소외,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하나의 출구를 진지하고 젠체하지 하고 모색하는 움직임이라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자주 인용하는 발자크의 소설에서의 인물들의 '돈'을 매개로 혹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반가웠다. 발자크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 '돈'에 시달렸던 '돈'에 집착했던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오늘날에도 지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 같다. 기회가 된다면 토마 피케티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다.

 

 

 

 

 

 

 

 

 

 

 

 

 

 

 

문학이라는 게 결국은 삶을 기록하는 데 끝내 실패하는 행위잖아요. 중요한 건 실패하면서도 끝까지 기록한다는 거죠.

-리뷰 좌담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의 곁에서' 중 양재훈 

 

이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눈에 보이는 것들, 손에 만져지는 것들만으로 효율성으로 수익성으로만 무언가를 인정하고 평가하는 세태에서 실패하는 게 당연한 무용한 시도들을 밀고 나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가지는 무게와 가치, 아름다움이 있다. 응원을 보내주고 싶고 오랜만에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2-23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3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