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판단이나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니 새로운, 낯선 환경에 노출되면 당황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좌뇌형 우뇌형 인간의 경직된 편가르기에 별로 편승하고 싶진 않지만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것과 거리가 먼 나의 우뇌는 상당히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좌뇌형 인간인가? 좌뇌형 인간은 수학을 잘 해야 하는데.. 흠, 이도 저도 아닌 것도 같고.
실제 뇌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서른 일곱 살에 좌뇌쪽 뇌출혈을 겪으며 완벽히 회복하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실제 대상 환자가 되어 뇌출혈이 있던 그 날부터 개두술, 재활의 과정이 환자와 연구 학자의 시선이 어우러져 생생하게 묘사된다. 저자는 한동안 좌뇌 기능의 상실로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제대로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일종의 니르바나, 평정감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좌뇌가 가지고 오는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경계감, 서열 의식 같은 우가 이 전장 같은 세계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체득하고 나온 기능들이 상실되면서 오히려 여기, 지금 이 순강에서 커다른 섭리와 접촉함으로써 느끼는 편안한 희열감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여기에서 우리가 느끼는 그 숱한 불안감들은 참으로 쓰잘데기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뇌가 이 세계에서 우리를 지탱하기 위해 부여하는 고차원적인 의식들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는 깨달음은 놀라운 것이다. 바깥에서 볼 때는 장애가 있어 불행해 보이는 저자의 모습이 사실 내면에서 충족된 행복감을 맛보고 있는 상태였다는 고백이 이채롭다. 심지어 좌뇌 기능을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가벼운 저항감마저 있었다고 한다. 다시 미래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 등이 돌아올 경우 지금 이 상태보 더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한 반문. 그녀의 회복의 여정은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감동적인 서사다.
내가 느끼는 것들이 뇌의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는 앎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스위치를 끄는 것처럼 이제 그만 비교하자, 그만 불안하자,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뇌형 인간이 못 되는 것은 불행의 단초 같기도 하다. 나와 이 세계가 접촉하는 지점을 의식하는 건 나의 자의식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사실 대단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의식하는 지점이 사실 명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를 의식하는 건 앎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사실 과잉이다. 그리고 거기에 '좌뇌'가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영역도 여기에 있다는 점이다. 말을 잃어버리면 말로 경계지어지는 사물에 대한 감각도 둔해진다. 그렇게 되면 '나'는 유형의 생명이 아니라 일종의 무형질의 액체처럼 이 세계와 섞여 버리는 느낌이 온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좌뇌형 인간에 우뇌형 감각을 적당량 덜어 잘 버무리면 가장 이상적일 것 같은데 이것은 지향이지 현실이 아니다.
'나'를 인식하면서 '나'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그 지점에 대한 이야기니 말이다. '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을 테니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