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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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진다고 해서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 분량 안에 집적해야 한다는 채근이 더 농밀하고 말해져야 할 것을 다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앤드루 포터는 그것을 영리하게 포착한 작가다.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시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면 반드시 할 수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화자가 그러했는지 아닌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로버트가 마침내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으로 시작하는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어쩌면 아주 뻔한 불륜 스토리가 될 수도 있었다. 젊은 여학생과 노교수의 로맨스는 숱하게 반복되어 온 서사다. 성차, 연령차, 심지어 위계의 헤게모니까지 개입하는 이 설정은 전형적이지만 우리의 복잡하고 굴곡어린 삶의 층위의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많이 살아버린 사람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망을 앞둔 이의 만남은 시간이 가로지르는 삶의 어떤 단면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주기 좋은 장치다. 앤드루 포터는 적절하게 힘을 주고 빼야 하는 지점을 의식하며 되도록 뒤로 물러나 로버트와 '내'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공유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그 은밀한 교감을 독자가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만든다. 일주일에 한번 결혼할 전도유망한 남자가 있는 여자가 나이 든 교수와 절대 넘어가지 않는 그 팽팽한 선과 통념의 경계 안에서 그 누구도 이 둘을 결코 비난할 수 없게 되는 공감을 자아낸 것은 작가의 저력일 것이다. 


소년의 시선으로 붕괴되는 아버지의 삶과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코요테>에는 설명하기 힘든 서글픈 아름다움이 있다. '회상'은 앤드루 포터 이야기의 근간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억은 독자의 허를 찌른다. 사실 그건 이랬던 거야. 라고 마치 약올리는 듯한 반전이 곳곳에 있다. 기억은 왜곡되고 현재 시점에서의 과거의 복기는 언제나 허술하고 맹탕이고 왜곡되어 있어 진실의 맹점은 언제나 우리를 가격한다. 아버지는 떠나고 어머니는 남고 소년은 성장한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다시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소년은 남은 어머니보다 떠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소년은 상실을 치유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가 열여섯 살이던 그해 봄"을 회상하는 <외출>에서 스치듯 지나간 아미시 공동체 소녀와의 사랑은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고 마침표를 찍게 한다. 작가는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는 소년, 사회 전체적으로 고립된 아미시 공동체 출신의 소녀가 만나게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소외된 외톨이들의 교감과 성장통이 남기는 상흔을 섬세하게 형상화한다. 이 둘이 만난다고 해서 완벽하게 소통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차가운 깨달음과 함께. 뼈아픈 성장이 남기는 아련한 추억은 남아 예술이 된다. 


<코네티컷>에서 어머니가 이웃 부인과 가진 관계의 색깔 또한 그렇다. 둘은 동시에 각자의 상황으로 불행했고 이 시점에서 나눈 관계는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 여지없이 소년은 이것을 기민하게 알아챈다. 어떤 상식, 통념, 기대를 허물어뜨리고 생의 속살을 알른알른 내비치는 앤드루 포터의 시선은 가닿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의 이야기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꼭 해야 하는 이야기,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고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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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11-13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 년 전, 21세기북스 출판사의 것으로 이 책을 읽었어요. 다 좋았는데 표제작이 제일 좋았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아름다운 사랑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죠.
남자 교수의 절제된 사랑이 존경스러웠고... 그의 죽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 여 주인공이 통곡하며 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땐 남편의 존재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실컷 슬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던 거예요.
여기서 만나니 반가운 책입니다.


blanca 2019-11-14 12:47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미 읽으셨군요. 댓글 읽으니 그 내용이 연상되어 또 뭉클해집니다. 명작이란 이런 건가봐요...
 

체육이라면 치를 떨며 싫어했던 내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삼십 대 중반이었다. 집앞 복지관 헬스센터의 트레이너 덕택이었다. 재미삼아 인바디를 측정했던 나의 체중 대비 지나치게 낮은 근육량에 승부욕이 발동한 (나의 추정이지만) 그녀는 거의 삼 일 동안 1:1 강습을 시작했다. 스쿼트, 런지, 부위별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각종 운동 기구의 사용법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줬다. 그 이후로 운동하는 여자가 되었다. 물론 각종 변명으로 중간중간 게으름을 피운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운동 하고 난 후의 그 성취감과 몸의 상쾌함을 기억하기에 완전히 몸을 쉬는 일은 없게 되었다. 문제는 딱 너무 힘들 정도까지만 하고 그 이후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이를테면 걷기도 육천 보를 걷게 되면 하루 운동량을 다 채웠다 가정하고 널브러져 있다. 근육 운동도 삼십오 분이 마지노선이다. 그러니 근육이 붙을 일은 없다. 근육이 붙기 직전에 나가떨어지니까. 그럴 때면 평생 몸을 주어진 연장이라 생각하고 갈고 닦은 하루키의 말도 생각나고 운동 하기 전의 그 저질 체력의 과거도 떠오른다.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극기와 절제는 상상이상이다. 나에게 만 보는 언감생심이다. 나는 운동에 관한 타협과 자기 정당화에 능하다.



















그러나 내 몸과 삶에 나쁜 것은, 내 작품에도 좋지 않다. 부정적인 충동은 절대 예술가의 연료가 될 수 없다. 예술가의 삶은 단 한순간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작업하고 이를 통해 인간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한 걸음씩 진보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하루에 단 하나의 점만 캔버스에 찍어나가도 10년이 지나면 나의 시간이 집적된 작품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단순한 비유지만, 나는 예술에서 시간을 견디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p.120


하루에 만 보도 이만 보도 아닌, 삼만 보를 걷는다는 하정우의 이 책은 비단 걷기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물론 고작 육천 보 걷고 나가떨어지는 나에게 지금 당장 나가 걷고 싶게 만드는 뿜뿌질은 확실히 해주지만 그가 배우로서 가지는 불안감,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일환으로서의 삶의 전반적인 자세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미 충분히 내실과 인기를 동시에 확보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배우는 아직도 훨씬 더 훌륭해질 일이 남았구나, 싶을 정도로 신뢰가 간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환상이나 현실 부정이 없는 기반 아래 일상의 귀중함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어쩌다 한번씩 체감하긴 쉬워도 자기 삶의 주축이 되도록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정우는 이미 이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 고통스러운 삶의 파도가 몰아치면 가장 힘든 것이 일상의 유지다. 밥술을 뜨는 것이 힘들어지고 자기 몸과 정서에 좋은 루틴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루틴에 기반한 삶 속에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선을 넘어가는 것은 완전한 극복은 아닐지라도 그 고통을 적어도 회피하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일이다.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 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자들에게 그게 무엇이든 루틴을 정해놓고 어떤 기분이 들든 무조건 지킬 것을 권한다. <중략>

루틴이란 내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얼마나 골치 아픈 사건이 일어났든 간에 무조건 따르고 보는 것이다. 고민과 번뇌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묶어두는 동아줄 같은 것이다. 

-p.165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는 말이 참 좋다. 너무 힘들다 여기면 운동도 읽기도 먹는 일도 때로 힘겨워진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고 걷고 읽어야 한다. 쓴다면 더 좋다. 일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몸을 일과처럼 만들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며 기다린 배우의 마음이 응원이 된다. 이제 칠천 보는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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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09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틴의 중요성을 요즘 새삼 실감하는데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19-11-09 10:03   좋아요 0 | URL
강추합니다. 다락방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저는 솔직히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기억해 두고 싶은 문구가 많았어요. 빌려 읽었는데 살 걸 그랬어요...

moonnight 2019-11-09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책 살까 하다 잊고 있었는데 사야겠네요@_@

blanca 2019-11-10 08:23   좋아요 0 | URL
달밤님, 사세요. 사서 읽으면 좋은 책을 빌려 읽으면 흑 난감해진답니다. 사자니 양심에 가책이 느껴지고 그냥 보내자니 다 옮겨 적을 수도 없고...

방랑 2019-11-0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열심히 걷고 있어요. 단풍도 보고 운동할 겸 집 주변에 사찰도 가고요. 책 읽을까 고민했는데 사야겠네요

blanca 2019-11-10 08:25   좋아요 1 | URL
방랑님, 저는 작년까지 걷기를 정말 열심히 하다 요새는 이래저래 변명거리가 많아져 게으름 피우고 있었거든요. 하정우가 공항까지 걸어갔다,는 소문 ㅋㅋ을 듣고 사실일까 했는데 그 대목 읽고는 그냥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걷기는 몸뿐만 아니라 내면의 근육도 함께 키우는 일인 것 같아요. 다시 가열차게 해봐야겠다, 뭐 이런 새로운 결심이 서게 되는 책이랍니다.
 

동네 서점은 아주 성실하다. 이를테면 아이 문제집을 사다 혹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있어요? 하면 반드시 그 책의 정체를 파악하고 재고를 확보해 둔다. 그래서 잊어버릴 때쯤 그 책을 발견하게 한다. 그 책을 사면 다시 빈 곳에 똑같은 책을 채워둔다. 내 뒤에 누군가가 이 책을 사 간다면 다음에도 또 이 책은 반드시 돌아온다. 설령 아무도 사지 않을 책이라도 주인에게 어떤 강고한 철학이 있는듯 누군가 찾는 책은 반드시 다음에 있다. 그 사람을 보면 어떤 감동이 느껴진다.

지금 표제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으며 감탄하는 중이다. 작가 이력을 확인해보게 될 정도다. 레이먼드 카버와 체홉과 줌파 라히리가 한곳에서 회합하는 느낌이다. 좋다고 소문난 책은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구나. 이 정도면 잊지 않고 이 책을 읽어야 할 부책감을 안겨준 서점 주인장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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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0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으면 무슨 물리학 책 같은데 말입니다.
저는 동네서점 가 본지가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요즘 동네 서점이 옛날 아날로그 시대의
그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시절이 그립긴 합니다.
예전에 단골 서점 아저씨가 조카 대하듯 저를 맞아주곤 했는데...ㅠ

blanca 2019-11-08 09:49   좋아요 1 | URL
이 책 있냐고 물으면 다들 표정이 ㅋㅋ 저도 제목 보고 물리학 책인 줄 알았습니다. 어릴 때만 해도 정말 동네 서점들이 활황이었지요. 이제는 정말 찾기 힘들게 됐습니다. 중고서점도 그렇고요. 약속 장소를 그런 곳으로 정하곤 했는데 다 옛말이 되었다는 게 참 서글프네요.

다락방 2019-11-0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블랑카님 ㅜㅜ

blanca 2019-11-08 09:50   좋아요 0 | URL
헉, 다락방님 이미 아셨어요? 이 단편을! 와, 저 이것 읽다 아까워서 중간에 접었잖아요. 이 작가 천재 아닙니까. 게다가 데뷔작. 사람들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요...

psyche 2019-11-08 0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네책방. 서점이 없는 동네 (블랑카님도 잘 아시겠지만)에 살다보니 더욱 부럽네요.

blanca 2019-11-08 09:52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 하지만 그곳은 또 도서관이 그리고 아마존이 있잖아요. 저는 요새 사실 프랑스 자수에 빠져 손에 바늘 찔려 난리랍니다. 프쉬케님 손으로 만드시는 것에 재능있으시잖아요. 그래서 프쉬케님 떠올렸어요...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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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중언부언할 수 없다. 섣불리 거창해질 수 없다. 한정된 지면과 시간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하려는 말을 최대한 응축하여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서 쉽게 성공하기 어렵다. 할 수 있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 면에서 이번 김승옥문학상 수상 작품들은 명료하고 농밀하다. 하려는 이야기가 모호하거나 지리멸렬하지 않지만 읽는 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핍진성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고 서걱거리지 않은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한동안 너무 어려운 문학, 모호한 메시지, 파격이 진부하게조차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다시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대상작인 윤성희의 어느 밤의 화자는 "일주일 전,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로 재기발랄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삶의 그 수많은 고충들에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린 할머니라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에 구원자가 되어준 청년과의 조우는 저마다의 상실과 고통의 몫을 소화해야 하는 양세대의 화해와 소통의 지점을 확인시켜 준다. 아이의 새 킥보드를 어이없이 도난당한 경험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에선가 그 킥보드를 타고 있을 그 누군가가 연상됐다.


권여선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는 종교 공동체 안의 나이 든 여인들의 시선이 교차하고 중첩한다. 가장 가난하고 불행해 보였던 한 여인의 죽음은 뜻밖의 성찰의 시간을 가져온다. 저마다의 사적인 삶은 사회적인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었다. 여자 노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격랑을 통과해 온다는 것이 가지는 그 무게와 의미가 조명되는 순간이었다. 


편혜영의 <어쩌면 스무 번>은 여전히 편혜영 답다. 울울한 정서, 인간의 내면의 그 어두운 욕망, 기만. 큰 사건 사고가 없어도 절대 늘어지거나 긴장이 늦추어지는 법이 없는 그녀만의 서사의 그 팽팽함은 여전하다. 여기에 병든 노인의 부양에 관한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이 한 가족 구성원들의 은밀한 욕망과 패배감과 연결될 때 빚어질 비극의 깊이는 상상불가다.


개인적으로 초기에 줄거리를 따라잡기 힘들었던 황정은의 <파묘>가 참 좋았다. 쉽게 들어오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실명의 명명이 가지는 의미가 차차 밝혀지고 '파묘'라는 일회적 사건을 둘러싸고 노출되는 한 가족사의 요약이 가지는 응축도가 대단했다. 단 한 문장도 낭비되거나 부족한 면이 없이 예리하게 조탁되어 이야기의 얼개를 이룬다. 


최은미의 <운내>는 이 작품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였다. 두 소녀의 성장기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한국적, 무속적인 은밀함이 스며 있다. 하지 않고 참은 이야기의 여백에 끼어드는 상상력의 여파가 두려울 정도다. 쓰는 행위에 이미 읽을 자들의 역할이 가정되어 있는 영리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작품들은 한결 같이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 구조가 여성의 개인적 삶에 가하는 어떤 폭력에 대한 예리한 관조가 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는 사실 공적인 이야기의 변주이기도 하다. 그러한 면에서 이야기들은 흩어져 있는 듯해도 결국 집약한다. 수상작들이 모여 일련의 메시지를 전하는 놀라운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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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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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던 바로 그 책이다. 아내에게도 똑같은 약속을 했었다. 2005년 7월, 3년 동안 조현병에 시달리던 작은아들 케빈이 스물한 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우리 집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을 맨 뒤 10년 동안 나는 그 약속을 지켜왔다.

- 론 파워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머리말 중


스스로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은 왕왕 일어난다. 그것은 삶을 통과하는 시간과 공간과 사건들이 그런 약속을 했던 나 자신조차도 때로 변화시키기 때문일 테고 그렇게 했던 결심 그 자체가 가치는 의미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이 지극히 사적인 애통한 상실과 그 상실을 둘러싼 사회적, 역사적 함의를 천착한 보기 드문 책이 있다. 저널리스트 론 파워스에게는 사랑스러운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 딘과 케빈은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보통 형제 이상의 교감과 연대감을 나누었다. 과학자인 어머니와 작가인 아버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우연으로 부부가 된 낭만적인 사연을 가지고 영민하고 아름다운 형제를 버몬트의 동화 같은 풍광 속에서 키운다. 너무나 현실 같지 않은 빛나던 시간들은 비극적인 결말의 지점으로부터 돌아서 바라 본 지점에서 회고된다. 그 시간들의 마침표로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왜 이러한 일을 이렇게밖에 겪을 수밖에 없었는 가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을 가지고 온다. 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조현병도 함께 앓게 된다. 동생은 형과 함께 연주하던 시간을 눈물어린 추억으로 만들어버린다.


사적인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과한다. 론 파워스의 경우 비단 조현병 뿐 아니라 광범위한 의미의 정신질환을 둘러싼 미국의 200년간의 역사의 개관을 활용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가장 무력한 자들을 어떻게 가장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를 지향한 철저한 몰이해와 오판의 사례다. 정신질환의 범죄화가 바로 그것이다. 


'문명'사회가 그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사례로 끝없이 채워져 있는 나의 파일은 그 자체로 대대적인 잔혹함에 관한 하나의 서사다.

-p.261


결국 정신질환자들은 병원보다 감옥을 더 많이 채우는 비상식적인 결론을 낳았다. 이 안에서 애초에 받았어야 할 적절한 치료와 보호 대신 이들은 철저한 고립과 학대, 방임으로 더욱 망가진 상태로 세상 밖으로 내쳐진다.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이 론 파워스의 결론이다. 적시의 진단, 적절한 개입, 인내심이 필요한 약물치료와 사회적 지지 대신 즉각적으로 손쉬운 교화, 분리 등을 택하는 사례는 그러나 용기 있는 이들에 의하여 재고되고 그 방향을 트는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의학적 진보는 질환에 대한 이해를 수반했고 이는 결국 이 책의 원제처럼(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개혁적인 움직임도 가지고 왔다. 명료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는 그 가름끈을 선악의 구도로 속단하지 말고 그러한 비극을 철저히 타인의 것으로 치부하고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닌 공감어린 정책에 힘을 실어주자는 목소리는 저자 자신의 처절한 상실로 깊이 공명한다. 사적인 상실의 애도는 심오하게 깊어지고 확장되어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적인 시선으로까지 나아간다.


너무나 정상적이었던 그래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당연시하고 꿈꾸었던 한 가정이 어떻게 갑자기 몰아닥친 비극으로 흔들리고 그럼에도 그 상실을 딛고 또 다시 삶이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지금 여기에서 숨을 쉬고 생을 산다는 일의 그 엄중한 무게를 실감케 한다. 꽃길만을 걸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맨발로 때로 유리에 발을 베는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쌓는다. 그것을 개인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확장하려는 저자의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강고한 의지와 노력이 전해져 뭉클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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