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 2년 가까이 여러 가지 의도에서 해 온 채식이 심각한 빈혈로 중지되었다. 완전 채식도 아니었겄만 고기를 피하려는 나의 마음은 이렇게 좌절되었다. 오랜만에 세상에서 이런 기쁨이 있었나, 싶게 열중했던 프랑스 자수는 바늘에 찔린 상처가 지속적으로 염증을 일으켜 포기해야 했다. 바늘땀 하나는 별 것 아니지만 그것의 시간과 인내가 모여 완성되는 그림이 주는 감동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바늘에 찔리지 않고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종종 습진이 생기는 손가락에 바늘이 들어가면 사소하지 않은 염증이 생긴다. 그것을 또 각오할 자신이 없다. 항생제를 먹고 손가락에 주사를 맞는 일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고통스러웠다. 


아이가 큰다는 것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몸도 마음도 서서히 분리해 가며 아이를 기꺼이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사춘기가 오고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혹은 핸드폰과 함께 하는 기회를 더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참 씁쓸하다. 나의 열네 살을 생각해본다. 그냥 지켜보고 크게 잔소리 하지 않은 엄마 마음도 헤아려본다. 나는 나 같은 아이는 솔직히 못 키울 것 같다.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춘기를 보냈던 것처럼 아이를 붙잡고 훈계를 한다. 정말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10년쯤 뒤의 내가 와서 현재의 나에게 방향 지시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넌 지금 이러면 안 돼!, 이 길로 가, 저 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

















문학동네 북클럽에서 보내온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강희영의 <최단경로>를 읽었다.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시점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라디오 피디 경력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전공의 이력이 투영되어 신선하다. 상실과 이별이 남긴 어떤 윤리적 책임에 대한 상기는 그것을 방기한 한 남자와 그의 후임자로서 그의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낳는다. 이야기의 속도감 있는 전개, 빅데이터 세계에서의 진부하지 않은 여러 신기술과 신조어의 순발력 있는 재치로 굉장히 탄력적인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아이를 키우고 잃는다는 그 처절한 상실의 서사의 깊이와 호소력에서는 전통적인 글쓰기의 해법이 담아낼 수 있는 스펙트럼을 포용하지 못한 면이 있어 아쉬웠다. 


요즘의 이야기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시놉시스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모두가 활자의 때로 지루하고 해독하기 힘든 심리적 묘사보다는 화면에서의 동적인 움직임에 탐닉하는 시대에 그러한 변화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이야기들만 담아낼 수 있는 그 무엇이 때로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미지와 활자는 사실 싸워 이기고 지는 구도가 아닌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리는 세태가 안타깝기도 하고. '최단경로'만 추구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 아날로그적 감수성 운운하는 게 나이듦인 건가 싶기도 하고.


나는 내 모든 시간 강렬함 속에 '쉬기'를 원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습들'로 풍부해지기를 원한다. 지각으로 느낀 세계가 지적인 세계로 이어지기를 원한다.지성, 인내, 열정, 기발함으로 산 삶(반드시 내 삶이어야 하는 건 니고 공식적인 나, 작가로서의 삶)을 나타내기를 원한다.

-메리 올리버 <휘파람 부는 사람>
















"지각으로 느낀 세계가 지적인 세계로 이어지기를"... 소망해 보는 202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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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 -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
토마스 린치 지음, 정영목 옮김 / 테오리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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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며 의례와 의식이 단순히 허례허식이 아니라 생의 주기마다 일어나는 탄생, 성장, 진학, 결혼, 죽음 등의 외부 사건을 자신의 내면과 삶에 통합하는 데에 적잖은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간소화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그 의식 자체가 가지는 무게는 폄하할 것이 아니다. 특히 장례식이 그러하다. 어쩌면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은 자, 우리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자를 보내고 기억하고 아쉬운 점, 죄의식을 절차에 의해 떠나 보내고 남은 역할을 추스르는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살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매년 나는 우리 타운 사람들 이백 명을 묻는다. 거기에 추가로 서른 명 정도는 화장터로 데려가 불에 태운다. 나는 관, 지하 납골당, 유골함을 판다. 부업으로 묘석과 비석도 판매한다. 요청이 있으면 꽃도 취급한다.

-p.17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의 저자 토마스 린치의 직업이다. 그는 시인 장의사다.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 종사하는 일종의 가업이다. 그와 그의 형제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다. 친구, 이웃 주민, 동료의 죽음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시를 쓴다. 만가를 부른다. 


우리의 핵심-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은 늘 죽음과 죽어감과 슬픔과 사별이었다. 그러니까 생명, 자유 또......뭔가의 추구 같은 더 강건한 명사들의 취약한 하복부인 셈이었다. 우리는 작별, 안녕, 마지막 경의를 거래한다.-p.45


시인이 아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물려준 아버지는 언제 장례에 관한 책을 쓸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응답이다. 시인과 장례지도사를 오가며 그는 결국 어떤 노래든 죽은 자를 추모하는 만가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일랜드인 이민자로서의 성장과정, 숱하게 보고 듣고 경험한 불합리한 죽음들, 이혼하고 싱글파더로 아이들을 양육해야 했던 나날들, 죽음을 거래해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 들은 그의 묵직한 때로 자조적인 어조에 실려 과연 우리가 죽음을 전제한 삶의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까 반문하게 한다. 그가 결국 사랑과 믿음, 지금 이 순간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진부하지만 설득력 있는 진실이라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된다. 종착점과 마침표를 안다고 해서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그 균형의 지점에 어떻게든 폭력이 개입되기 마련이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의 얘기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그는 숱한 죽음을 목도하며 스스로 택하는 죽음에 찬성하거나 전염되지 않는다. 


이월이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게 나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세부적인 것들에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굳이 물어보니-이월이면 좋겠다. 내가 처음 아버지가 된 달, 내 아버지가 죽은 달, 그래. 심지어 십일월보다도 낫다.

-p.369


그 자신의 장례를 위한 지침이다. 그의 자녀들이 절대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말기를 바라는, 끝까지 아버지의 장례의식을 참관하고 참여하고 함께 하기를. 그래서 마침내 잘 떠나 보낼 수 있기를, 남은 죄책감마저 그대로 온저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별로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그 엄연한 종결들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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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9-12-30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은 죄책감마저 그대로 온전히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전해져온다. ...는 글이 아프지만 깊은 느낌을 줍니다.
블랑카님은 아직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뤄본 적이 없을 것 같은데,,,책을 많이 읽으시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이시라
경험을 안해도 이런 문장이 나오나봐요.^^;
그나저나 언제 미국에 또 안 오세요? 보고싶네요.^^ 새해 인사도 전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9-12-31 09:55   좋아요 0 | URL
라로님, 흑, 그립네요. 프쉬케님도 함께 참 따뜻하게 맞아주셨는데... 아마 제가 미국 가는 것보다 라로님 한국 오시면 뵐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어요. 라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로님에게도 왠지 근사한 한 해가 될 듯합니다. 보지 않았는데도 왠지 친하게 느껴지는 해든군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
 


크리마스 이브에는 교보문고, 크리스마스에는 영풍문고에 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평소에는 자주 오지 않던 서점 방문을 결심한 것인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무언가 조용히 책을 고르거나 서점 특유의 착 가라앉은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그 느낌은 절대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거의 호떡집 불난 수준의 분위기였다. 제대로 책을 보려면 아주 오래 전에 나왔거나 인기가 없는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를 공략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은 거의 재고가 없는 메리 올리버의 <휘바람 부는 사람>과 원서로 한번 읽어보려다 미루어 둔 토마스 린치의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가 비슷한 곳에 꽂혀 있었다는 것. 

















김연수로 알게 된 시인 메리 올리버는 산문집도 시 못지 않게 좋다. 문장 하나 하나가 시인의 그것이니 만큼 참 농밀하고 덜할 것도 더할 것도 없다. 토마스 린치는 시인이자 장의사란다. 죽음을 보필하는 시인이 하는 얘기가 궁금하다. 


문학동네 북클럽에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를 보내주었다. 궁금하다. 이력을 보니 나이가 내 막내 동생과 동갑이다. 지하철 안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서점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좋은 이야기는 여전히 귀 기울여 들을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책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점점 이북이 싫어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고. 아. 난 종이책이 여전히 좋아 큰일이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은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루키의 신간은, 생각보다 실물이 너무 얇아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진지한 노년의 에세이를 한 삼백 페이지 이상되는 분량으로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몸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을 나이가 들수록 공감하게 된다. 정말 잘 갈고 닦으며 관리해야 이 생의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 텐데. 쉽지 않다. 아무리 철학과 영혼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는 일은 반드시 몸을 담보로 전제로 한다. 그건 정말 완강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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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26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 올리버는 저도 김연수의 소설 서문에서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올해 1월 저세상으로 가기 전, 산문이 어찌 좋은지요. 맑고 밝은 영혼의 소유자였어요. 저 책을 크리스마스 시즌 서점에서 발견하다니 완전 인연인 거죠. 왠지 럭키 예감 블랑카 님.

blanca 2019-12-27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좋았어요. 정말 시인 같다고나 할까요. 이 책 검색해 보니 세상에 제가 외출 나온 근처 영풍문고에 한 권 재고라고 뜨는 거예요. 찾아보니 정말 딱 꽂혀 있었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moonnight 2019-12-27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과 프레이야님이 함께 좋아하시는 책 저도 보관함에 담습니다. 올해의 마무리 책이군요. 어느새ㅜㅜ 하루키가 좀 두꺼운 분량의 진지한 노년에 관한 에세이를 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격한 공감을. 제발♡

blanca 2019-12-27 09:29   좋아요 0 | URL
하루키. 저는 그의 용감한 역사관도 좋아요. 한국에 몰래 몇 번 왔었다는 소문을... 쿨럭쿨럭. 그 독자들 만나는 자리를 하루키가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저는 정말 신간 내면서 온다고만 한다면 달려갈 용의가 되어 있는데 말이에요. 올리버 색스, 필립 로스를 두고 그런 꿈을 꿨었는데 두 분 다 한국땅도 밟지 못하고 가셨잖아요. 좋아하는 작가 실물을 보고 사인도 받고 좀 그러고 싶은데...이제 노년에 관한 글을 쓸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기대만 가져봅니다.
 

지금은 어둡다. 밤의 첫 커브가 아닌 마지막 커브, 나의 시간이다. 곧 이 필연적인 어둠에서 빛이 솟을 것이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정말일까? 그렇다면 위로가 되는 말이다.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는 서문을 쓴 메리 올리버의 우려는 시의적절했다. 이 엄정한 산문은 그 개다움을 잃지 않으며 적절하게 깨끗해지는 그 지점을 적절히 포착하고 있으니까. 메리 올리버만이 쓸 수 있는, 메리 올리버다운 글은 남용하지도 지나치게 저어하지도 않으며 어떻게 세상과 자연과 작가에 대한 순정한 표현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전범이다. "예술은 비범함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메리 올리버를 세상에 순응시키기 위한, 평범한 세계 안에 안착하기 위한 그 세속적 교육의 가치 또한 속단하지 않는다. 그게 실패했다 할지라도 그 실패 그 자체와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생래적 반항아의 영원에 대한 갈구 또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아 목소리를 낸다. 시인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예민한 촉수와 그것이 안으로 향했을 때 가다듬을 스스로의 정화된 언어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노력과 평범한 생활의 희생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저 노력한다고 해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_메리 올리버 <긴 호흡>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자주 마음이 찢어진다. 물론 그 경도와 그 강도와 그 지속 시간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이십 대의 찢어짐은 전율이었다. 일상이 불가능했다. 삼십 대에는 여전히 흔들렸다. 마흔 이후에는 그 찢어짐이 잦아들 것임을 알아 덜 아프다.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조언은 생경하다. 하지만 나의 것으로 가지고 간다.


돈은 우리 문화에서 힘과 같다. 결국 힘은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돈도 별 의미가 없다.

_메리 올리버 < 긴 호흡>


메리 올리버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초월하는 초탈하는 법을 알고 넌지시 일러준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녀의 환기는 놀랍다. 


습지의 시인은 자연이 가지는 그 광대한 힘에 기꺼이 굴복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현대 문명의 믿음은 공허하다. 주어진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가지만 생에 집착하여 죽음에 맞서지 않는 중용의 지혜를 안다. 


그리고 내가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_메리 올리버 <긴 호흡>


이거다. 사실 여러번 내 삶 앞에서 도망가버리는 꿈을 꿨다.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에는 내 삶을 나의 것이라 외치고 정작 책임져야 할 때는 회피하고 싶었던 모순의 지점을 들킨다. 내가 원하는 걸 하려면 내 삶에 대한 책임도 한데 그러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기꺼이 그러한 삶의 종결을 받아들여야 한다. 


"학생들의 시간 든 서류철을 들고 <중략> 빛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메리 올리버를 상상해 본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의 그러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내 삶에 대한 책임과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을 그녀의 언어로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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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항상 습진을 달고 살았던 왼손 중지에 생긴 염증으로 왼손을 이 주 동안 쓰지 못했다. 고작 손가락 하나인데 살짝 뭔가 닿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의 통증이다보니 아예 왼팔은 옆구리에 붙이고 다니는 지경까지 갔다. 생각보다 한 손만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세수도 양치도 머리를 묶는 일도 그랬다. 아이의 패딩 점퍼 지퍼를 채워주며 부들부들 떠는 엄마를 내려다 보며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항생제를 먹고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도 여전히 차도가 없어 손가락에 주사까지 맞았다. 손가락 주사는 마취 주사를 먼저 맞고 맞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설명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렇게라도 나으면 싶었다. 그러나 통증은 끈덕지게 돌아왔다. 누구한테 이 고통을 호소해야 할지 대체 어느 병원 어느과로 가야할지도 오리무중이었다. 손가락 관절이 통증이 아니라 손가락 피주의 통증이니 사례도 많지 않았고 사람들한테 왠지 손가락이 아파서 힘들다고 얘기하기도 계면쩍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통증으로 고생할 사람들이 떠올랐고 그 사람들의 고통의 십분지 일이나마 통감하게 되었다. 남들은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말할 통증이 그 사람 삶 전체에 회색 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는 것까지도.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들기 직전 손가락 통증이라는 단어를 검색어에 넣고 온라인의 온갖 사례를 읽고 그 다음에 내가 가야 할 곳과 내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걱정이 되어 잠도 안 왔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도 싫었다. 더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난 손가락이 따가워 살기 싫어지다니.... 이렇게 계속 아프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어제 아침부터 드디어 그 손가락을 쓸 수 있게 됐다. 


중병의 발병과 회복은 내게 '정상적'인 삶이 대단히 비싼 것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줬다. 어떻게든 정상에 가까운 삶을 재구축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에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절감했다. -데이비드 파젠바움 <희망이 삶이 될 때 >















응당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인  의사 당사자가 중병에 걸려 투병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폴 칼라니티가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과 공감을 얻은 바 있다. 그래서 솔직히 그 아류일 거라 단정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한때 풋볼팀 주전 쿼터백이었던 파젠바움이 이름도 생소한 희귀병인 캐슬만병의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드는 데 대처하는 이야기는 폴 칼라니티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로의 이야기이다. 일단 칼라니티가 걸렸던 폐암 역시 난치병이지만 적어도 캐슬만병 같은 도저히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은 아니었다. 또 캐슬만병은 주기적으로 재발하며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가는 양상을 보여 암의 병세와는 다른 경로를 보인다. 이 병의 정체를 파악하고 치료약을 찾는 과정을 환자이자 의사인 파젠바움 자신이 하는 이야기는 비장한 투쟁의 행로다. 그에게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증거 수집을 통한 과학적인 예측이자 불굴의 의지가 한데 어우러진 용광로 안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 그 자체였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면서도 그는 치료약을 찾기 위한 자신의 생체 샘플을 만들 궁리를 한다. 그것은 비단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고통 받고 있는 희귀 난치병 환자들 전체를 위하여 협업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장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치료약을 찾기 위한 대승적 차원의 꿈과도 만났다. 감정적으로 굴복하고 절망하는 대신 그가 초인의 의지로 보여준 치료를 위한 열의와 이성적인 대처는 비단 그가 발병 전 체력을 열심히 단련했고 본인이 의사인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가족의 지지와 사랑, 앞날이 불확실한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연인의 곁에 끝까지 남아준 흔들리지 않는 사랑 덕분이었다. 그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가지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마음이 오래 투병하고 있는 가족을 떠올리게 해 그대로 전해져 와서 아팠다. 


내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갖다 놓지 않는 한 아무도 그것을 갖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지 않아야 했다.

-<희망이 삶이 될 때> 에필로그


그가 꿈꾸던 것이 결국 이루어지는 에필로그를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기도하는 그 사람도 그러하기를 바라며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사례는 희망의 명백한 증거가 된다. 이 책은 의사의 그렇고 그런 투병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그것에 대처하며 삶을 계속해나가는지에 대한 장엄한 서사시다. 고통을 딛고 난 이후의 삶이 가지는 여운이 길다. 또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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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2-17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블랑카님.
마지막에 쓰신 ‘꿈꾸던 것이 결국 이루어지는 에필로그‘란 글귀에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blanca 2019-12-18 13:38   좋아요 0 | URL
이 책 기대이상이랍니다. 진부하지 않고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줘요. 일단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을 일거에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들로 보이게 해 주니까요. 그 어떤 해피엔딩보다 감동적이었답니다.

moonnight 2019-12-1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볼래요 blanca님@_@;;; 손가락 증상이 좀 좋아지셨다니 천만다행이에요. 조마조마했어요ㅜㅜ;

blanca 2019-12-18 13:58   좋아요 0 | URL
이 주 동안 항생제를 계속 먹었더니 이제는 위가 아프네요... 여튼 사례가 많지 않으니 온갖 상상하느라 힘들었답니다. 감사해요^^ 머리 감을 때 양 손으로 거품낼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9-12-23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통증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에요. 충분히 앓고 시간이 지나야 나아지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이 마음에 걸리지만요. 몸이 아플 때면 또 여러 생각이 들곤해요.
고통을 딛고 난 이후의 삶, 그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미리 크리스마스~~^^ 이 책 담아가요.
아, 갑자기 분홍공주 생각이 ...

blanca 2019-12-24 13:5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오늘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흑, 올 한 해 진짜 일도 많고 탈도 많고 특히 몸이 여러 군데 말썽을 부렸어요. 내년엔 프레이야님도 저도 건강하고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분홍공주는 ㅋㅋ 사춘기라지요. 오늘 방학해서 어떻게 좀 훈련을 시킬까 고민 중이랍니다. ㅋㅋ 프레이야님 행복한 성탄 전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