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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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분명 성적 지향은 다른데 내가 느꼈던, 내가 그리워했던, 내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그 모든 감정들과 느낌들을 환기하는 작가의 능력은 여전하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고 쓸 수 없는 것들을 툭툭 내던지는데 거칠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신기했다. 재미있고 특별한 데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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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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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의 유행 이후 대중에게 친숙해진 용어가 있다. '역학 조사'다.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을 참조하면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역학적 특성을 밝히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대규모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효율적인 방역 대책을 수립하자면 필수적인 과정이다. 전염 경로 조사와 확진자의 동선을 밝히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역학 조사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1854년 역학 조사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때 런던의 소호 거리의 마취 전문의 존 스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갑자기 거리를 덮친 콜레라의 발병 원인을 찾다 저도 모르게 역사적인 역학 조사자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존 스노의 동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구성하는 의미 있는 자취가 된다. 
















"자네하고 나는 그런 날을 보기 전에 죽겠지. 그런 날이 와도 내 이름은 완전히 잊혀질 걸세. 하지만 대규모 콜레라 발생이 까마득한 과거의 일로만 여겨지는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거라네. 그리고 질병의 전파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질병 박멸의 수단이 될 것이네."

-스티븐 존슨 <감염 도시>


자신이 죽고 난 후를 비장하게 예언한 존 스노의 말은 절반만 맞았다. 후손들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심지어 근처 펍은 그의 이름을 따라 영업 중이고 많은 사회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그를 연구하고 그를 여전히 인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학 조사가 대규모 전염병 전파의 방역에 가지는 의미에 관한 조언만은 진실이었다. 놀랍게도 존 스노의 역학 조사의 동지는 근처 교회 부목사 화이트헤드였다. 의사와 목사는 처음에는 콜레라 발병 원인을 둘러싼 수원지에 대한 의견이 달라 반목했지만 금세 실질적 정보 앞에서 의기투합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한다. 당시 콜레라의 발병 원인은 런던의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오염되고 더러운 공기로 인한 발병이라는 '독기이론'이 주류였다. 이것에 대항한 두 열정적인 아마추어의 활약은 놀라운 것이었다. 과학적 진실과 발로 뛰는 역학 조사로 수인성 전염이라는 결론을 얻는 과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수집,분석, 발표하는 과정이 마치 소설처럼 드라마틱하면서 감동적이다. 더 나아가 최초 발병자의 배설물이 흘러들어가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 브로드 가의 우물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는 장면은 더없이 극적이다. 콜레라는 존 스노라는 통섭이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의사와 완고하고 독선적인 종교인의 자세 대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개방성과 겸손함을 지닌 한 젊은 목사의 보조로 마침내 종식의 길을 걷게 되어 다시금 그 박테리아가 돌아왔을 때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머리말에 언급된 박테리아, 도시, 스노, 화이드헤드라는 네 주인공들이 만들어 낸 감염지도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저자 스티븐 존슨은 19세기의 이러한 역사적인 현장에서 21세기의 오늘날을 조심스레 예언한다. 도시화가 생존 전략으로 자리잡은 현상황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가장 위험한 요소로 전염병과 핵폭발을 언급한다. 전염병 부분에서 그는 지극히 낙관적이라 통제 가능할 것이라 봤다.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는 그가 이 <감염 도시>를 쓰게 한 지점이자 취지이다. 역사의 시계를 돌리면 생존해 있는 우리의 시점에서 대부분이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 셈이 된다. 여기까지 와서 이곳에서 살아남은 우리를 후손으로 하는 선조들의 행동은 결국 우리가 여기에서 영위하는 삶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현실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의 힘든 현재는 다시금 후손들의 긍정적인 오늘을 위한 과거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존 스노와 헨리 화이트헤드를 기다리는 골든스퀘어 주민들의 심정이 된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신종 코로나 또한 종식되어 역사의 장에 남게 되기를, 그리고 이러한 전염병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적어도 유의미한 가르침과 교훈과 진보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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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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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번역 출간되기 이전 이미 몇몇 기사에서는 40년 전 이미 신종 코로나를 예견한 추리 소설이라는 얘기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일치하거나 노스트라다무스적 예언은 아니라는 갑론을박도 함께였다. 딘 쿤츠는 비교적 우리나라에서는 지명도가 낮지만 전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을 판매한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티븐 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라는데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원서는 절판되었고 번역본도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금세 번역되어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이 작품은 전직 무용수이자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쇼의 제작자인 티나라는 젊은 여성이 아들 대니를 잃고 그 상실을 딛고 자신의 삶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처절한 노력의 도정에서 출발한다. 서스펜스 작가는 자신의 플롯을 밀고 나가려는 성급한 욕망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마음을 단순화하려 하지 않는다. 성공한 제작자로서의 커리어에 매진하려는 아내를 못마땅해하는 남편의 저열한 마음의 묘사도 사실적이다. 티나는 남편을 잃고 다음으로 아들을 잃는다. 떠나간 아들은 그녀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듯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그녀는 마침내 변호사인 연인 마이클과 함께 그 메시지의 성격과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상정된 악은 놀랍게도 국가다. 냉전시대의 종식에도 강대국들은 생화학 무기개발 경쟁에 물러나지 않으려 각축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등판한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실수로 유출되는 과정에 티나의 아들이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참가한 캠프의 사고가 연결된다. 국가의 거대하고 은밀한 프로젝트에 개인의 삶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이것은 더 큰 비극으로 연결된다. 소설 속 이야기는 극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는 일어나는 일들에 마치 하나의 평행우주를 예견한 것같다. 아이를 다시 품에 안은 어머니의 눈빛과 만나는 아이의 눈빛은 그 전의 해맑고 순진한 빛을 잃었다. 삶의 어두운 이면을 보아버린 아이는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딘 쿤츠의 예지력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빛난다.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어쩌면 그 진실은 끝내 알려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추정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각종 불투명한 상황은 그것만으로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여러번의 예견과 그 예견에 제대로 대응하고 준비하지 못한 모습이 그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곳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 파괴하기 위해서 과학과 의학의 진보를 이용한다. 그것은 애국심도 대의도 아니다. 단지 파괴다. 딘 쿤츠는 거기에 바로 이 깊은 어둠의 심연이 있다고 봤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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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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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년의 내가 인정하기에는 조금 안타깝지만 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느끼는 감성이, 쓸 수 있는 얘기가 있다. 어딘가 한 구석은 열려 있고, 날것의 경험은 겉돌지 않고, 소통과 교감에 대한 기대를 속단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다 표현할 수 없는 애타는 간절함이 서려 있는 이야기가 있다. 김연수가 그랬던 시간에 만든 이야기들을 신형철 평론가가 갈무리하던 시간을 기억한다. 쓰고 해석하고 느끼고 마무리하는 둘의 궁합은 정말이지 최고여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가 너무 좋은데 그 이야기를 다시 복기하며 내가 놓친 것들을 꼼꼼히 챙겨주는 평론가의 마무리까지가 소설가의 작품의 연장선상인듯한 느낌은 흔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상기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잊어버린 감각이 되돌아오고 이젠 다시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느낌들을 다시 맛보았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일곱 작품과 짝꿍처럼 곁들여 있는 신진 평론가들의 평론도 다 함께 마저 읽어버렸다. 물론 내가 충분히 젊었을 때 한창 젊었던 소설가와 비슷한 평론가의 평론을 읽으며 느꼈던 그 시간의 감동의 진폭과 결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감동을 충분히 기억해 낼 만큼 좋았다. 


강화길의 <음복>은 아직 제사문화가 남아 있고 곧 화자 같은 올케를 맞이하게 될 지 모를 지금 나의 상황을 곱씹어보게 했다. 비판없이 전승되는 가부장 제도의 집약인 '제사'에서 그것을 주도하는 남성들의 역할과 그들을 보조하고도 자신이 한번도 본 적조차 없는 상대 배우자의 조상에게 절조차 나가서 할 수 없는 여성들의 희생과 그 틈의 긴장, 감정의 소진이 신세대 며느리의 시선 앞에 생생하게 정경화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고 골치아픈 모든 문제들로부터 보호되는 남편을 사랑하는 '나'의 모순은 결국 이 젠더의 구조화가 미치는 여성들 간의 갈등, 암투로 교묘히 왜곡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대목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고 비판 없이 그러한 가족적 전통 서사를 받아들였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은행의 계약직이었다 늦깍이 대학생이 된 화자가 여성 강사와 만나 교감하고 오해하고 어긋나며 역설적로 그녀가 걸어간 길을 답습하게 되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최은영 특유의 큰 서사 없이도 삶의 어떤 그리운 정경을 불어내는 재주와 그것에서 확장되는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만나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화자의 자문에 깊이 공명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똑똑하고 당차던 그녀들이 사라져간 길을 다시 꾹꾹 눌러 밟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의 질량감을 길어올리는 작품이었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허구의 소설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커밍아웃과 애인과의 동거 생활에 대한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에세이 같았다. 여전히 유쾌하고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으면서 삶의 행간의 의미를 끌어올리는 작가의 능력은 그의 성정체성을 뛰어넘는 것이다. 특히나 화자의 책을 읽고 난 어머니가 사투리로 "니 진짜로 그애랑 그런 생활을 했나?"라고 묻는 대목에서는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막상 심각한 장면인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에 찍힌 방점은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어머니가 장성한 아들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기대치와는 완전히 대치되는 '그런'이 비극적인 신파로 전락하지 않는 데에는 분명 김봉곤 작가의 생에 대한 활달한 긍정과 씩씩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자체의 생동감이 하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결론은 타협, 수긍인데 이야기는 침잠하지 않고 왜 이리 유쾌하게 역동적인지 나도 그의 '그런 생활'을 어느새 인정하고 이해해버린 듯한 느낌.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어느 구석인가 테드창을 떠올리게 하는 단서가 있다. 우리의 집단화된 구조화된 사고체계를 격자로 실체화하고 그 안팎을 넘나드는 화자와 이단아 같은 친구의 관계망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어느새 우리 안에 고착화된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고정 관념, 계승되는 각종 제도와 교육에 관련한 그 경직된 틀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여지없이 상큼하고 창의적이었다. 결이 아직 촘촘하지 못하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시간과 함께 충분히 숙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작품.


장류진의 <연수>는 내가 삼십 대 중반이 넘어 중년의 여성 강사에게 받았던 운전연수를 떠올리게 해서 반가웠다. 모든 것에서 엄친딸인 화자가 운전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그녀를 교묘하게 자극하고 결국 독립시키려는 강사의 모습이 유사 모녀 관계를 연상시키며 어떤 현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는 아들을 키워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평범한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어떤 상실감감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모가 살아오며 체득한 사회적 제도망에서 자신들이 낳고 키워낸 자식이 일탈할 때 부모로서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삶에 통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참신한 작품이라 읽고나서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야기였다. 


전반적으로 모두의 작품이 건드리는 사회적 통념과 경직화된 구조의 공고함은 어떤 유연함을 사고의 전환을, 도약을 향해 약진하는 느낌이다. 서사는 참신하고 문장은 구어적이고 결론은 열려 있다는 공통점에 기대어 오랜만에 모든 단편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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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10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해 최근에 다들 좋다고 하던데 블랑카님도 별다섯을 주셨네요. 거침없이 저도 지르겠습니다.

blanca 2020-04-10 14:39   좋아요 0 | URL
일단 다락방님, 재미있어요. 보통 단편들은 인내심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하나 같이 그냥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또 가볍지도 않고요. 그저 ‘인정‘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책값도 착하고요. 표지도 예쁘고 이러고 보니 완전 영업 중이네요. ^^

moonnight 2020-04-10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그래요? 저도 헐레벌떡;; 보관함에 던져넣습니다. 일단 재미있다니♡ 얼른 읽고 싶어요. blanca님^^

blanca 2020-04-11 13:2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공감하는 대목이 분명 있어요. 제 기억에 사변적이고 추상적이고 한창 무슨 말인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난무했던 시간도 분명 있었어요. 심지어 소설을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요. 그런데 이제 뭔가 꿈틀꿈틀 이야기들이 다시 피어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정도의 작가들이 계속 나와준다면 이야기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 너무 극찬을 하고 나니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데 괜히 부담스러워지네요. ^^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감은빛 2020-04-10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 읽으며 저도 안타깝단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 찜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20-04-11 13:2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중년은 정말 영 나와는 먼 친정 엄마한테나 쓰는 용어인 줄. 하지만 현실은 이젠 완연한 중년이죠. 후회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추천합니다.

유부만두 2020-04-21 1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는 중이에요. 실은 블랑카 님께서 빼놓으신 단편에 분노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읽고 있는데 줄어드는 남은 쪽들이 아쉽네요. 블랑카 님 감상이 어떤 면에선 더 제 맘에 가깝고요. ^^

blanca 2020-04-21 20:40   좋아요 1 | URL
혹시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좀 잘 안 읽히긴 했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이야기였어요. 전반적으로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은 없었고 너무 무겁고자 했던 이야기도 없어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체험을 글쓰기에 활용할 때는 자칫 독자와 유의미한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며 공감을 얻으려면 그 이야기는 내면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본질로의 천착과 외연으로의 확장의 균형점을 적절히 찾아야 할 것이다. 우울증에 25년간 시달린 박물학자 에마 미첼이 일 년 동안 집 주변의 숲속을 산책하며 만난 야생식물과 동물, 곤충을 수집하고 배열하여 사진찍고 그리고 기록한 이 관찰기는 그녀가 완벽하게 치유되었다는 과장된 결말을 제시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있는 힐링의 여정을 제공해준다. 11월 6일 그녀는 숲속에서 산사나무와 가시자두와 화살나무와 들장미와 너도밤나무 가지를 주워 펼쳐놓고 사진을 찍어 이 책의 삽화를 만든다. 그 삽화를 들여다보는 나는 단 한번도 그러한 것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명명하며 관찰한 경험이 없어 어느 것이 어떠 이름에 대응하는지조차 모르는 채 한참을 멈추어 그녀가 펼쳐놓은 색과 빛에 젖는다. 자연의 그 무수한 다양성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생존의 주기에 경탄하다 보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겪는 모든 고단한 것들도 결국 어떤 섭리에 귀의할 것임을 믿게 된다.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책이다.
















일본계 작가의 십 대 아들이 영국의 공립 학교에 진학하여 겪게 되는 계층과 인종의 긴장과 갈등의 성장기는 쉽게 읽히고 공감의 영역이 넓다. 특히 사춘기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아이가 학교에서 겪게 되는 각종 갈등 상황에 저자인 엄마가 반응하는 공감어린 대화의 방식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을 것같다.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회에서 교육의 기회는 철저히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거하여 작동하여 결론적으로 위계를 만들어버린 영국의 교육 체계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다.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 학교와 저소득층이 다니는 공립학교가 연습하는 수영장 레인을 노골적으로 구분하여 운영하는 모습에 특히 놀랐다. 아이들 마음에서는 자연스럽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명확한 경계와 장벽이 자리잡고 때로 그러한 낙인을 서로에게 붙여 도발하는 현장에 어른이 어떻게 현명하게 개입하는지에 대한 예시는 씁쓸한 한계를 노출한다. 평등과 자유가 어떻게 절충 지점을 찾아야 하는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현장에서부터 가장 사려 깊게 시도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른들의 방관과 편견과 이기심이 어떻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 현장에 파고들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 같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혼란에 왠지 낯익은 묘사들은 기시감이 든다. 헤밍웨이는 쉽고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탁월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많은 단어나 복잡한 문장 구조를 쓰지 않고 툭툭 던지는 짧고 활력 있는 문체로 그 어떤 공간과 사건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그의 재주에 경탄스러웠다. 위대함이란 이렇게 태어나는 것같다. 배의 구조와 관련한 전문 단어들은 사실 잘 와닿지 않아 아쉬웠다. 한글 단어를 찾아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바다와 거대한 물고기를 상대로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 결국 다 잃고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진 노인의 모습은 인간의 삶 자체의 은유 같아 가슴이 저릿하다. 그러한 노인 곁에서 훌쩍이는 소년의 모습은 노인의 그 언뜻 무의미해 보이는 시도가 가지는 궁극적인 의미를 암시하는 듯하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사랑, 공감, 소통. 그리고 우정. 짧디짧은 책의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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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4-09 0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지요?
아이들 학교 안 가니까 많이 힘드시겠지만요~.^^;;
˝개인적인 체험을 글쓰기에 활용할 때는 자칫 독자와 유의미한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며 공감을 얻으려면 그 이야기는 내면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본질로의 천착과 외연으로의 확장의 균형점을 적절히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글 읽고 반성합니다. 딱 저에게 해당되는;;;;
하지만 저처럼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오지 않을 도리가 없더라구요.^^;;;
글을 쓰다보면 블랑카 님처럼 잘 쓰게 될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요???응??^^;;;;
좋은 글 잘 읽었어요!^^

blanca 2020-04-09 09:21   좋아요 0 | URL
아이들도 이제 두 달째에 접어드니 점점 지겨워지는 것 같아요. 오월이라도 개학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게다가 온라인 개학이 여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버벅대고 시행착오가 많아서 여러가지로 어려워요. 미국도 빨리 진정되고 빨리 전세계적으로 확 사그라들어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에잇, 라로님 이건 저한테 하는 이야기였는데요? 한국은 지금 봄이 한창이라 이 상황이 더욱 실감이 안 납니다. 다만 갑자기 미세먼지가 확 사라져서 실감해요. 작년 이맘때 미세먼지 대단했었거든요. 우리 모두 건강하게 이 시간 잘 이겨내기를 바라요.